1920년대 낭만주의 시1. 들어가며1920년대에는 일제 식민지 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문학에서 특히 시문학에서 이전의 시가와는 다른 문예사조인 낭만주의가 유입되었다. 특히 일본으로 유학한 신지식인들이 그 중심이 되어 《백조》,《창조》,《폐허》,《장미촌》등등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많은 시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였다. 본고에서는 낭만주의의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 낭만주의는 어떠한 수용양상을 보였는지 알아보고 몇 편의 주요 작품을 통해 낭만주의가 어떠한 면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2. 낭만주의의 의미와 우리나라 낭만주의의 수용낭만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전 유럽에서 전개되었던 문예사조로서 감성적인 세계인식, 유기체적 세계관, 관념주의를 중심내용으로 삼는 로맨티시즘을 뜻한다. 이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범유럽적 지적운동으로 문학, 음악, 회화, 건축 등의 예술양식 및 작품, 철학적 저술, 의상, 풍습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어났으며 특히 문학에서 주도적인 현상을 나타냈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이성과 지성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의 형식과 규범에 얽매인 경직된 문학관을 거부하고, 상상력과 감성 및 주관적인 세계인식을 토대로 하여 문학을 유기적이고 창조적인 생명의 힘으로 보고자 하는 시대사조로 태동하였다.)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에 낭만주의 문예사조가 유입되었다. 1920년대 조선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변환을 통해 일본 자본주의 상품시장으로 전락하고, 산업 자본에 의한 민중 착취가 심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지식인들의 입지 위에서 당대 문학의 정체성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으되,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들의 사상적인 거취는 내면세계로의 침장이나, 서구 문물로의 맹목적인 추구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20년대 시인들의 작품 경향은 국권 상실과 3.1운동의 실패에서 오는 암울한다의 사회적 상황들 속에서의 복합적 영향관계 아래서 형성된 것이었는데 반해, 우리는 유교적 전통과 보수적인 사회체제 아래서 19세기 초 개항으로 인한 갑작스런 서구 물질, 문명의 유입이 이루어져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 일대 혁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1920년대 초의 시문학에서는 서구의 문예사조를 의욕적으로 수용하고자 하였으나, 낭만주의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20년대의 낭만주의 수입은 철저한 자각 하에 이루어 지지 못하고 사조적 혼류 양상을 띠며 낭만주의 본래의 특질에서 벗어난 ‘한국적 낭만주의’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3. 낭만주의 특징과 낭만주의 시인별 작품3.1. 한국 낭만주의 시의 특징한국 낭만주의 시는 1920년대를 중심으로 당시 우리 문단에 많이 영향을 준 외국번역시의 영향을 받고 《창조》,《폐허》,《백조》등의 순문예지를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었다. 특히,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있던 김억의 는 번역 시집의 가치를 넘어 시 교과서라 할 정도로 한국 근대시의 성장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었는데, 여기에 실렸던 상징파의 시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우리의 주정적 문학 전통, 그리고 김억 자신의 문예사조에 대한 불분명한 이해 등의 이유로 상징파 시의 본래의 모습에서 굴절되어,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짙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굴절된 모습의 는 당시의 문학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결국 한국 낭만주의 시 형성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한국 낭만주의 시는 이처럼 창조나 폐허 그리고, 백조 등의 문예지를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어 오면서 공통된 특징을 유지했으니, 그것은 3·1운동의 좌절에서 오는 감상과 비애, 또는 ‘눈물’등을 그 주조로 했다는 점이다.)창조의 여러 동인 중에서 주요한은 그의 시 에서 처음부터 감상적인 자기고백으로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애조를 띠고 있다. 또, 폐허의 경우도 이와 같은 감상적인 경향이 여러 동인들의 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시의 낭만주의적 양상이 제 모 이해하게 만들거나 해석하게 한다. 시에서 대상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외재적인 도덕률이나 이념에 의한 일방적 풀이를 거부하는 일이 된다. 문학을 형상화를 통해 이룩되는 가치 있는 체계 자체로 보다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시어의 확충은 1920년대 시에 두드러지게 많이 사용된 말들, 즉 꿈·님·영원·죽음·눈물과 같은 언어의 출현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 시어는 흔히 번역시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1921년 출간된 김억의 는 이 경우의 현저한 예가 된다. 시어를 일상어와 다른 영어로 치부한 예는 차치하더라도, 종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당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외시의 번역은 이미 1981년부터 간행된 태서문예신보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1920년대의 낭만주의 시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현상은 감정의 과도한 표출과 현실도피적 성향일 것이다. 특히 〈백조〉동인들은 영탄적 어법을 많이 구사하였다. 또한 이와 아울러 시의 주요 이미지로서 밀실·동굴·죽음 등을 주로 사용하여 현실도피적인 성향을 노골화하였다. 밀실이나 동굴은 다 같이 지금 이곳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외나무다리 건너’ 저쪽 어느 곳에 있다. 이와 같이 몸담고 있는 현실보다는 현실 저쪽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일은 철저한 현실의 부정에 기인한다. 3·1운동 실패에 따른 좌절과 정신적 정체는 당시 시인들로 하여금 현실보다는 과거, 삶보다는 죽음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시인이 현실 속에 내던져져 있으며, 그 압도적 현실 원리 속에 자신이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현실을 경멸하고 또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표박이나 유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김억의 등은 이러한 표박의 전형적인 예를 이룬다.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할 사실은 감정의 절제 없는 토로로 나타난 미적 거리조정의 실패에 관한 사실이다. 이 거리 조정의 실패는 결국 당시의 낭만시가 감정의 극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말하자면, 감정을 제어 내지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의 일부 -의 중심적인 심상은 사월 초파일 밤의 연등제 속에서 ‘가신 님’에 대한 회상으로 시적 화자가 남다르게 겪는 비애의 감정이다. 시의 문맥에서 ‘가신 님’은 물론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에 놓인 사사로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당시 현실의 여건상 시인이 설정한 사별의 님은 시인으로 하여금 묵은 삶의 질서와 감정을 벗어나 남다른 감정 체험을 환기 시키는 중요한 매개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에서 ‘가신 님’은 과거와 미래의 시간 속에서 화자의 감정을 정리하는 복잡한 상징성을 함축한 대상으로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920년대의 낭만주의적인 시에서 나타나는 ‘님’의 의미는 대체로 이와 같은 상징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시인이 현실에서 소외된 자아의 내면화된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가신 님’은 삶의 희망이 거세된 자할 수 있을 것이다.3.2.2 홍사용의 홍사용은《백조》의 간행 경비로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백조파 동인의 주역이었다. 홍사용은《백조》파의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서구 지향적인 자유시에의 경도와 회월과 월탄, 상화 등의 퇴폐적 낭만성 등을 거부하며 전통 지향적 맥락에서 순수서정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이것은《백조》(2호)에 六號雜記에서 잘 드러난다.“무엇을 흉내낸다고 민족적 리듬까지 죽여버리고 아무 뜻도 없는 변주옥을 만들어냄은 매우 유감이올시다. 이런 점은 신시에서 더욱 많이 보겠습니다. 물론 이것을 누가 잘못함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행방이 불분명하고 사상이 불건강한 우리 문단 자신의 죄이겠지요. 그러나 될 수만 있거든 아무쪼록 순정한 감정을 그대로 썻으면 합니다.”)이렇듯 홍사용은 퇴폐적인 경향과는 먼 소박한 낭만주의의 애상성을 띄었다. 그의 작품 나 에 나타난 애상과 민요적 분위기는 이나 같은 다른 시인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이러한 감상과 낭만을 기조로 한 애상과 향토성의 정서, 그리고 다분히 자전적인 것이기도 한 초기시의 특색은 한국 낭만주의 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를 통해 그의 시의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나는 王이로소이다 나는 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어여뿐아들 나는 王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아들로서……그러나 十王殿에서도 쫏기어난 눈물의왕이로소이다.“맨처음으로 어머니께 바든것은 사랑이엇지오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겟나이다 다른 것도 만치오마는……“맨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이러케어머니께서 무르시면은“맨처음으로 어머니께 들인말슴은 ”젓주셔요“하는 그소리엇지오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엇나이다” 하겟나이다 다른 말습도 만치오마는……-(중략)-누-런떡갈나무 욱어진山길로 허무러진 烽火뚝압흐로 쫓긴이의노래를 불으며 어실렁거릴때에 바위미테 돌부처는 모른체하며 감중연하고 안젓더이다.아-뒷동상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가는 뜬구름은 얼마나만히 王의 눈물을 실고갓는지요나는 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나는 다.)
이 효 석 < 화분 >Ⅰ.들어가며이효석의 은 1939년 『조광』지에 연재되었다가 같은 해에 전작 장편소설로 출간된 바 있다. 남녀의 애욕을 다루었다고 해서, 발표 당시에도 상당한 논쟁을 촉발한 작품이다. 상업적 소설이 아닌 본격소설로서 만큼 남녀의 성 풍속도를 작품의 중심에 둔 작품은 일찍이 찾기 어려웠다. 남녀 간의 애정문제가 중심을 이루지만, 거기에다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성관계와 아울러 동성애까지 다루어 변태적이고 일탈적인 성격을 지녔다.그러나 은 이효석의 작품 중에는 보기 드문 장편소설이다. 때문에 이효석의 작가적 면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문학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효석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속에 존재하는 작품적?형식적 특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Ⅱ. 작가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이효석(1907~1942)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으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성제1고보를 거쳐 경성제대 영문학과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경성제대 예과시절에 이미 시와 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1928년 7월호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30년에 경성제대를 졸업한 다음 1931년에 잠시 총독부의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였으나 곧 사퇴하고, 경성농업학교의 교원이 되었다. 이 해에 단편집 『노령근해』가 출판되었다. 이어 1933년에 단편작가로서 주목을 받게 한 작품 「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34년에 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고, 또한 1936년에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서 「황제」, 「화분」, 「벽공무한」등 수십편의 단편과 평론을 계속 발표했다. 이처럼 작가생활과 교원생활을 겸하였으면서도 개성있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교원으로서도 평판이 높은 교육적 봉사를 하여 당시의 많은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34세 되던 해에는 상천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유아마저 잃어버렸다.를 초월하려는 한 방도로서 순수한 자연과의 통합을 시도하는데서 또는 잃은 행복을 회상하는데서 얻어진 것이라 하겠다.)Ⅲ. 의 작품적 특성1.작품 개관「푸른 집」에는 현마와 세란, 그리고 세란의 동생인 미란, 식모 옥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따금 미모의 청년 단주가 놀러 온다. 그는 현마가 영화사에 데리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단주와 미란은 우연히 단주의 아파트에서 같이 자게 된다. 그들은 성인(成人)의 기로에서 괴로워했지만 아무 일없이 밤을 지내고 무척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마는 처제와 단주가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한다. 잠시라도 그들을 떨어져 있게 하기 위해 일본 길에 미란을 동행한다. 그 사이에 자유분방한 세란은 단주를 유혹해서 정을 통한다. 한편 현마는 처제 미란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끼면서도 끝내 참는다. 동경에서 현마와 미란은 피아노를 사러갔다가 피아노를 두고 어느 한국인 청년과 말다툼을 하게 된다.미란은 일본에 있는 동안 음악에 매혹되어 음악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미란은 귀국 후 영훈이라는 음악 교사에게 교습을 받게 되는데 그는 바로 일본에서 피아노를 살 때 시비를 했던 청년이었다. 그들은 차차 사랑하게 되었으나 영훈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사팔뜨기 여인 가야가 있었다. 그런 중 미란은 단주의 교묘한 유혹에 빠져 정조를 빼앗기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영훈에 대한 연정은 더욱 짙어만 간다. 어느 날 가야의 약혼자 갑재라는 럭비 선수가 나타나 영훈에게 폭력을 가하자 미란과 가야는 합세하여 그 위기를 구해 주지만 영훈은 그 길로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해 여름 피서 떠날 준비로 푸른 집이 들떠 있을 때 뜻밖에도 영훈에게서 미란에게 장거리 전화가 온다. 그곳은 바로 그들이 가려는 피서지였다.그곳에서 그들은 사랑이 깊어지고 서울에 남게 된 단주는 식모 옥녀를 범한다. 피서지에서 현마는 술에 취하여 처제 미란을 범하게 되고, 미란은 그 날 밤으로 그곳을 떠나 영훈의 사무실로 온다. 아무도 미란의 행방을 모른다. 영훈은 단주로부터 미란의 처지를 모두 들었지만 자 집에는 대문까지 합하여 창과 문이 사십여 폭이 달렸습니다. 벽의 집이 아니고, 창과 문의 집입니다. 초목 속에 그윽하게 가리워져 있는 창속은 제법 부러울 것 없는 피장입니다. 원래 푸른 집인데가가, 겨우살이가 함박 덮쳐 붉은 지붕과 벽돌 굴뚝만을 남겨 놓고는 온통 새파란 겨우살이 집입니다.(c) 그래서인지 우리들이 에서 살 때 나는 여러 색깔의 서양 식물 중에서도 양이의 냄새에 취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붉은 빛 벽돌집 담장이넝쿨이 현관의 벽면을 가리웠기 때문에 노을이 낄 때에는 뒤집혀진 담장이 잎사귀들이 역광선을 받아 무슨 찬란한 비늘처럼 빛나 보였다.세 인용문 중 (a)는 작품의 첫 대목이고, (b)는 이효석이 직접 쓴 서간문이며, (c)는 이효석의 딸 이유미씨가 쓴 회고록이다. 위 인용문들을 통하여, 이효석과 가족들은 자신들이 살던 그 ‘푸른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더러운 욕망과 치졸한 감정이 들끓는 연옥과 같은 것이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여섯 사람인데, 이중 음악도인 영훈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욕정의 노예가 된다. 현마는 비서격인 단주와 동성애를 즐기는가 하면 처제인 미란을 강간한다. 단주는 상사의 부인인 세란, 그녀의 동생인 미란, 하녀인 옥녀와 욕정을 나눈다. 한 가정 안에 존재하는 다섯 인물이 서로 성적 관계로 얽히는 이런 구조는 요즘의 대중소설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변태적이다. 1930년대 당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식민지 상황의 조선에 있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변태적이고 일탈적인 성적 풍속도는 어느 정도 경제적 풍요로움이 보장될 때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창작 시기가 1939년이라면, 이러한 인물과 사건이 개연성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사람에게는 태어난 고장이 영원한 고향이 아닌 것이요, 고향을 한번 떠남으로써 새로운 고향을 찾고자 하는 원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인가 보다. 외국을 그리워함은 고향을 찾아서 떠난 긴 평생 속에서의 고패요, 향수인 것이다.위의 인 이 푸른색들은 ‘푸른 집’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적 공간임을 강조한다. 봄의 젊은 기운과 여름의 뜨거운 열정을 그대로 안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푸른 이미지는 전원적이고 자연적이며 원초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이 푸른색은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담장이덩굴과 푸른 차양은 이 집을 ‘외딴’것으로 보이게 하며, 인물들의 은밀하고 일탈적인 성행위를 보장하는 밀폐공간을 형성한다. 또, 고향의 전원적 푸름이 아니라 이국적이고 도시적인 푸르름인 것이다.그래서 작품속의 ‘푸른 집’이 실제의 집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 하더라도, 의미적으로는 실제의 ‘푸른 집’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소설 속의 공간 배경이 작품의 의미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보면, 의 아름다운 자연 공간으로 그려지는 ‘푸른 집’은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공간으로서 작품 전체의 의미를 집약하는 구실을 한다. 즉, 실제의 ‘푸른 집’이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며 안정적 공간이라면, 작품속의 ‘푸른 집’은 욕정적이고 자연적이며 퇴폐적인 공간인 것이다.)2.인물과 세계의 분열‘푸른 집’에서 인물과 세계의 관계는 통합적이면서 동시에 분열적이다. 김동리는 등의 중편소설이 “민망할 정도로 읽기에 피곤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로지 플롯의 빈곤과 인물의 성격결여에 기인되는 것이다”라 하였다. 인물은 환경에 부딪치면서 사건을 만들어가고, 그 인물과 환경(세계)의 관계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조합인 플롯이 구조화된다.그러나 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자가 뚜렷한 자기 삶의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의지적인 삶을 살지 못하지만, 그 자체도 성격인 것이다. 현마와 단주, 세란, 미란의 사회적 위차나 성향, 현황 등은 당시 한국의 현실에서 보편성을 갖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인물의 성격 자체가 단순하게 결여되어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등장인물들 중 현마와 세란, 옥녀 등은 욕망의 차원에서 지향과 특성이 분명하고 단주와 미란은 욕망는 옥녀의 정욕을 불사른다. 얼핏 보면 각각 다른 두 개의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인물의 의지에 의하여 발생하지 않고 운명적 흐름을 자아내는 것으로 보인다.이 작품은 ‘푸른 집’이라는 가상세계로 독자를 안내하였다가 대단원에 가서 현실세계로 되돌아가게 한다.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미란과 영훈, 두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가상세계 속에서는 모든 인물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다만 미란만이 비극에서 구원되는데, 그 이유는 영훈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현실세계의 관점은 마지막 대목에서 죽서 부부의 대화로 드러나는데, 행복이란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이 관점은 사실상 이효석이 원하는 세계가 아니라 가상세계에서 문득 현실을 돌아볼 때 느끼는 체념적 화해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세란도 그만하면 잠이 깼겠지. 인생이 그렇게 수월한 것이 아니라는 것두 알았을 테구 장난이나 연극을 하는 것같이 늘상 흥분만 있구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두 터득했을 테구”라는 대사를 통하여 가상세계를 하나의 춘몽으로 치부한다.그런데 과 같은 꿈을 장치로 삼는 이야기는 꿈 자체는 이상적 세계로 그리고 꿈에서 현실로 나올 때 비극을 감지하는 것이 보통인데, 에서는 꿈이 비극으로 마감하고, 그 꿈에서 빠져나올 때 어떤 전망이 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가상세계 속에서 현마와 단주, 미란은 어지러운 정욕의 노예로 방황하다가 인간적 패망을 맛보는 반면에 미란만이 상처를 입은 대로 자기를 찾아 나서고 , 그 자기 찾기의 가능성을 현실적 맥락에서 남겨두고 있다.그렇다면 현마와 세란, 단주, 미란 등이 욕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긴 과정은 (그것은 봄의 로망스에서 여름의 희극, 가을의 비극 등으로 계절적 변화에 맞추어 성격을 변이시키면서 전개되는데) 인물들의 의지와 무관한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적 욕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정작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했던 서정적 서상의 요체는 감정과 욕망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세이다.
이광수, 읽기Ⅰ. 들어가며춘원 이광수(1892~1950)의 (「매일신보」, 1917.1.1~6.14)은 본격적인 근대 장편소설로 볼 수 있다. 신소설이 가지는 고전소설의 허물을 벗고, 근대소설의 장(場)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치는 근 반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사로 편입되는 이 반세기는, 정치적?사회적 영역에 있어서의 동요는 물론, 정신적으로는 기존 가치 체계와 불가피하게 맞이한 서구문명과의 충돌 및 갈등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던 시기다. 이 경우 불안이란 외세의 폭력적인 힘의 침입에 의해서 자주성이 위협을 받은 데서 파생된 것이며, 희망이란 문명개화, 근대화의 가능성이 비로소 기약됨을 뚜렷하게 감지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은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을 마치자.’ 라고 끝맺으면서 불안보다는 희망, 새로운 가능성을 더 보고 있다. 전근대적 세계 속에서 이탈하여 어둡던 세상을 버리고, 밝은 내일을 희구(希求)하는 것이다. 은 반외세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반봉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식민치하라는 시대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비껴가기 힘들다.본고에서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 한계와 의의까지 다루어보면서 을 읽어보도록 한다.Ⅱ. 내용상 구분은 이상주의적 계몽소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자유연애사상과 민족주의 이념이 그 골자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작품의 주제를 이루는 두 기둥이 된다고 하겠다.1. 자유연애사상‘자유연애사상’은 봉건적 결혼관이나 연애관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토대한 결혼제도를 마련하자는 생각이다. 이 주제는 본래 신소설류에서 관념적으로 제기된 것을 계승하여, 1910년대의 대표적 논설인『자녀중심론』과 초기 단편들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다듬어 온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자유연애사상’이 에 이르러서는 구식결혼의 폐단을 더욱 구체화시켜 드러내면서, 성년기의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자아각성의 바탕 위에서통하여 격변기 조선 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을 보여 준다. 소설은 표면적으로 근대 문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전통 가치와 근대 가치의 충돌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형식과 영채, 선형의 삼각관계는 단순한 애정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 가치와 근대 가치의 대립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당대 개화기 지식인의 전형이지만, 모두 근대로 가는 역사 격변기에 끼여 방황하고 회오(悔悟)하는 과도기적 인물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사랑 역시 과도기적이며 불완전하다. 한계가 지적될 수밖에 없고, 완전히 근대적일 수 없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도 “형식의 사랑은 실로 낡은 시대, 자각 없는 시대에서 새 시대, 자각 있는 시대로 옮아가려는 과도기의 청년(조선 청년)이 흔히 가지는 사랑이다.” 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에서 나타나는 보다 성숙한 자유연애사상 역시 여러 한계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영채를 사랑하게 된 병욱의 오라버니, 병국이 형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내가 구하는 것은 정신적이라든지 육적이라든지 하는 부분적인 사랑이 아니요, 영육을 합한 전인격적인 사랑이외다.” 라고 말하면서 이상적인 연애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러나 병국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고, 도리어 본처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만다. 게다가 이광수는 전통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봉건적 애정관을 비판하면서 근대적 애정관을 옹호하면서도, 그가 그리고 있는 사랑은 완전한 자유연애가 아니라, 조금은 청교도적 순결을 강조하는 정신주의가 발견된다.또한 이 ‘세속적 사랑의 계몽적 민족주의로의 승화’를 보여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형식, 영채, 선형간의 애정의 삼각관계에서 빚어진 갈등이 그 자체의 해결이 유보된 채 삼랑진에서의 구호(救護)와 토론으로 부각된 민족주의의 이념을 통해 해소된다는 전말은, 사랑을 제대로 성숙시키지 못한 채 민족주의의 이념으로의 도피적 전이를 하고 말았다는 인상을 준다.)2. 계몽주의에서 계몽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서다. 주로 등장육으로, 실행으로 저들을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누가 하나요?” 하고 형식은 입을 꼭 다문다. 세 처녀는 몸에 소름이 끼친다. 형식은 한번 더 힘있게,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고 세 처녀를 골고루 본다. 세 처녀는 아직도 경험하여 보지 못한 듯 말할 수 없는 정신의 감동을 깨달았다. 그러고 일시에 소름이 쭉 끼친다. 형식은 한번 더,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였다. “우리가 하지요!” 하는 기약하지 아니한 대답이 세 처녀의 입에서 떨어진다.네 사람의 눈앞에는 불길이 번쩍하는 듯하였다. 마치 큰 지진이 있어서 온 땅이 떨리는 듯하였다.그러나 삼랑진 수해 현장에서 갈등이 해소된다고 말할 때, 계몽주의적 요소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미 계몽(啓蒙)되어있는, 당대 개화기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당대 역사 격변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다만 외세지향?미래지향에의 이상과 집착으로 위안을 삼는 과도기적 인물,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이었다.3. 민족주의 이념형식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니, “옳습니다.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가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를 타고 가는 돈이며 가서 공부할 학비를 누가 주나요? 조선이 주는 것입니다. 왜? 가서 힘을 얻어오라고. 지식을 얻어 오라고, 문명을 얻어 오라고, 그리해서 새로운 문명 위에 튼튼한 생활의 기초를 세워 달라고, 이러한 뜻이 아닙니까.”형식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전심으로 지도해 왔으며, 병욱은 구도덕에 얽매여있는 영채를 새롭게 눈뜨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제관계로 나타나는 계몽주의만으로는 형식, 영채, 선형의 애정 삼각관계가 해소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에서는 이 갈등의 표면적인 해소의 도구로 민족주의 이념을 끌어온다. 당대 식민지하 민족의 수난상을 상징하는 삼랑진 수해 현장에서 형식, 선형, 영채, 병욱이 벌인 구조 활동과 문답식 토론과정에서 민족주의 이념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곧, 첫째는 구조 활동을 통해 부각되는 것으로 고통 속에 있는 동족에 대한 강렬의 지적과, 소설의 장래계획을 미리 세우지 못한 소치)라고 말한 김동인의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의 줄기와 무관한 내용들에 관한 내력을 빈번하게 서술하거나 동일 사건을 반복하는 등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혼란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기차상의 기연(奇緣))’ 같은 신소설적 우연성이 큰 흠으로 지적되기도 한다.그러나 에 등장하는 철도는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화륜선과 함께 근대의 상징)으로 당대 신문명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아주 적합하다. 또한 끝부분에서 삼랑진 수해 현장에 네 인물을 끌어들인 것은 이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 민족의 처지이며, 서로 대립하고 있는 네 젊은이가 사회적 자각과 민족애를 통해 새로운 행동을 촉구하게 하는 적절한 결말이라고 본다. 시기상 배경이 6, 7월이고 더위, 뙤약볕, 모기장, 땀에 젖은 모시 적삼 등을 일관성 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형식, 선형, 영채, 병욱이 기차에 탔을 때부터 비가 내리는 배경을 깔고 있는 점 등은 우연성을 배제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속셈이다.그밖에도 형식과 영채, 선형 간의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신구(新舊)의 대립을 그들을 통해 표현한 것, 즉 과거에 대한 의리이냐 미래의 출세와 이상에 대한 동경이냐를 두고 극도로 고민하는 주인공을 가운데에 둠으로써 갈등과 혼란, 모순 속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2. 문체상의 특징논설문체를 근대화한 것이 육당 최남선의 공적이라면 소설 쪽은 단연 춘원 자신임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근대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다소 과도기적인 표현을 내포한 것이었다.) 다음은 의 첫 장면이다.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려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아동 김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고빙하여 오늘 오후 세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라.강조한 부분 ‘되었음이라’는 고대소설 전등가에는 하루살이 등속이 떼를 지어 모여 들어간다.이 부분은 영채가 기차 안에서 형식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괴로워할 때 병욱이가 위로하며 딸기를 권한 직후의 장면이다. 여기에서 쓰인 묘사는 개념적이고 상투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다. ‘눈물같은 물방울’, ‘하루살이 등속’의 이미지는 가련한 영채의 모습과 조화되어 애틋한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Ⅳ. 등장인물의 설정양상과 성향에는 서구문명의 세례 속에서 깨어가는 자, 깨어져 가야할 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들 인물 중에서 중심이 되는 형식, 선형, 영채, 우선 그리고 병욱 등을 살펴보자.형식은 고아 출신의 교사로, 작가의 분신적인 요소를 지닌 인물이며 과도기적 사회의 전형적인 인텔리의 재현이기도 하다.) 형식은 스스로 선각자적인 의연한 자세로 무지몽매한 대중을 자신이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를 과거 고전소설의 영웅적인 인물로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당혹감을 일으킨다. 이상적 인물로 기대되지만 정작 형식의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형식은 자신을 찾아온 영채를 대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그녀가 기생일지도 모른다는 혐오감, 과거 스승과의 의리, 영채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유혹의 갈등 속에서 주체하지 못한다. 영채가 청량리에서 수모를 당하고 오는 순간에 동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영채의 유서를 접하고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영채의 시체를 찾으러 평양까지 달려갔으나 그 기세와는 다르게 아무 소득이 없었고, 별다른 슬픈 기색도 없다. 도리어 어린 기생 계향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충만감이 드러나 있고, 서울에 다다를 쯤에야 후회하게 된다.이에 대해 김동인은 “줏대 없고 무정견한 괴짜”, “어릿광대”등으로 평한다.) 반면에 정창범은 심리분석적 방법으로 형식에 대해 옹호론을 펴고 있는데, 영채의 과거사를 듣는 도중 형식의 내면에 생긴 유동은 “양립될 수 없는 의욕간의 갈등과 여러 충격의 결과”이지 결코 줏대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인의 딸을 구하려는 강한 의무 본다.
염상섭의 Ⅰ. 서론는 횡보 염상섭이 《조선일보》에 연재(1931.1.1~9.17)했었던 식민지 시대의 한 중산층 집안의 신?구 대립과 그 필연적 몰락과정을 그린 리얼리즘 소설이다. 는 장편으로서의 규모나 구성의 치밀성, 내용상의 풍요로움에 있어 한국소설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 급변하는 사회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세대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식민지 치하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하는 시사점도 준다.본고에서는 염상섭이 를 통해 민족현실의 극복방법과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또 당시 문단상황 속에서 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Ⅱ. 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당대의 현실을 폭넓게 또는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부?손의 3세대를 다룬 소설이다. 따라서 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은 조의관―조상훈―조덕기로 연결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상반되는 가치관을 지닌 한 가족의 존재 방식이다.그러나 안에는 한 가족을 통해 제시되는 역사의 시간적 흐름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천과 갈등을 중심축으로 하고 각 세대가 접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폭넓게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상황을 더욱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끌어안고 있다.“조선의 현실 사회의 움직이는 모양을 피로하고 중산계급의 살림과 그들의 생각을 살로 붙여서 그리”) 고 있는 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파악을 위해 작품 줄거리를 따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① 23세의 일본 경도3고 학생인 조덕기가 방학 차 집에 왔다가 다시 유학길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고 있다. 이때 조부 조의관, 친구인 병화가 등장한다. 조부 조의관은 비단 이불이 젊은 손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꾸짖는 한말의 전통적인 인물이다.②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과 그 첩인 홍경애가 소개된다. 술집 여급으로 있는 홍경애는 조상훈의친과 그의 처, 수원집 사이에 일어나는 여인들의 대립과 갈등, 첩 홍경애로 인한 덕기와 부친(상훈)과의 갈등 등이 드러난다.⑥ 덕기가 경도로 간 후 홍경애를 사이에 두고 김병화와 조상훈이 만난다. 바커스의 여급 홍경애를 두고 김병화, 조상훈, 그리고 일본인 청년들이 패싸움을 벌여 파출소로 붙잡혀 가게 되고 상훈은 홍경애를 만나 김병화와의 관계를 따진다.⑦ 파출소에서 풀려난 이튿날 병화는 서울을 떠나면서 십 원의 돈과 함께 하숙집에 써놓고 간 덕기의 편지에 대해 병화는 필순에 대한 덕기의 관심이 순진함인지 아닌지 생각해 본다.⑧ 조상훈이 병화와 타협하기 위해 새로 사준 외투 때문에 상훈의 새 첩인 김의경이 탄로 나고, 이를 알게 된 경애는 질투와 증오심을 일으키고 이 장면을 김병화가 지켜보고 있다.⑨ 장안의 명물 매당이가 등장한다. 뚜쟁이를 통해서 부잣집 아들이자 교회에 다니며 교사의 신분인 조상훈의 타락이 가능했음을 드러내게 된다. 매당과 김의경, 홍경애 사이의 갈등이 노골화된다.⑩ 매당과 중매인 최참봉을 통해 조의관의 첩이 된 수원집이 감기로 앓아누운 조의관을 독점하며 덕기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을 중상 모략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켜 나간다. 조상훈은 수원집이 매당집에 자주 드나드는 점을 들어 수원집을 역습하기도 한다.⑪ 사회주의 활동가인 피혁이 홍경애의 집으로 숨어들어 지내며 탈출의 준비를 한다. 한편 자신을 대신해 국내 활동을 할 김병화와 접촉한다.⑫ 피혁은 국외로 탈출하며 남녀학생 수삼인을 골라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병화는 필순에게 먼저 물어보지만 의외로 필순은 거절한다. 조부의 급환으로 덕기가 서둘러 귀국한다.⑬ 덕기는 조부로부터 유학을 포기하고 가문의 상징인 사당과 금고(재산)의 열쇠를 받으라는 명에 의해 처음에는 유학을 마치고 와서 받겠다고 말하나 조부는 엄명으로 금고의 열쇠를 건네주며 공부와 경도 행을 포기하라고 한다.⑭ 이 사이 조부는 병이 위독, 대학병원에 입원한다. 덕기가 금고의 재산을 확인하는데 이에 수원집, 최참봉 등 다른 인물들이 감시 직접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조덕기를 내세우고 있다. 조덕기는 신세대로 어느 정도 개인의식의 자각과 사회의식의 긍정 속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비판적인 지식인상을 보여준다. 행동양식으로 볼 때는 나약한 인텔리의 속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관념과 심리를 통해 그 원인을 치밀하게 산문화함으로써 당대 사회에 대한 하나의 해부도를 제공해준다. 소설 전반에서는 조덕기의 입을 빌어 조상훈으로 대표되는 개화기를 가장 역점을 두어 비판하고 있으며 오히려 조의관으로 대표되는 한말의 복고주의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복고주의적 취향으로, 조덕기의 중도적 보수주의 세계관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결국 조의관과 조상훈은 물론이요, 김병화나 장훈 등의 사회주의자들도 내분과 이념의 변질, 일제의 탄압 때문에 몰락하고, 경애의 부친이나 필순의 부모 같은 과거의 민족투사들도 일제의 탄압 때문에 몰락하고 만다. 필순은 그 부친의 희생물이다. 복고주의에 대한 작가의 일말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조덕기만이 남아 가산을 물려받는다는 점에 주목할 때, 작가는 를 통해 민족적 의식을 가지면서도 사회 현실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물상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Ⅲ. 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지금까지 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부터 이 소설의 시간적?공간적 배경과 사용한 기법, 이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우선 의 배경은 일제시대로 추정된다. 소설에서 홍경애가 ‘아이코상’으로 불린다던가, 일본인들이 그 술집의 단골이라던가, 상훈과 병화가 그 술집에서 일본인들의 시비로 싸움이 붙지만 그 일본인들은 금방 풀려나고 상훈과 병화와 경애는 거기서 여러 가지 수모를 당했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서울이다. 여이 묘사되고 있고, 상훈과 경애가 다시 만나는 ‘재회’ 부분에서는 상훈을 중심으로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또 의 경우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다수 활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 화자의 목소리를 통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개입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서술상의 또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곳곳에 나타나는 편지 형식이다. 편지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화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사상 혹은 삶의 태도를 무리 없이 비판하기에 적합한 양식이다. …(중략)… 의 경우, 서울 중산층의 한 전형인 조덕기와 사회주의자 김병화 사이의 계층의식이나 사상이 편지를 통하여 나타난다.)에는 또한 다양한 대립되는 인물?계층들이 등장한다. 조의관과 조상훈의 대립이 하나이고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를 한 축으로 하고 홍경애, 김병화 등이 한 축이 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립이 다른 하나이다. 조의관과 조상훈의 대립은 근대화로 나아가는 우리의 역사에서 구와 신의 대립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조상훈은 겉으로만 근대화를 주창하고 있을 뿐이다. 지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갸륵한 뜻을 품고 그 방편으로 교회의 문을 두드렸던 그는 인 데다 라고 이야기 될 정도의 성공을 이룩한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어디까지나 외관상의 그것으로 그칠 따름이었고, 그의 내면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타락의 길을 일직선으로 치달아가게 된다.) 그러면 그의 소설 속에 나타난 기독교의 모습은 기독교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반대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더 강화하게끔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을까.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 쪽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횡보는 조의관과 조상훈의 대립을 통해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던 과거의 악습은 되풀이하면서 겉으로만 근대화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는 조상훈에 대해서는 한 치의 동정이나 연민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굳혔다. 1920년대에 발표된 염상섭의 소설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려고 노력하는데, 그의 가치중립적인 성격이 잘 드러난 것이 단편 이다. 의 속편으로〈무화과>를 내놓은 이후〈모란꽃 필 때〉,〈그 여자의 운명〉과 같은 통속소설을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주로 가정을 무대로 한 인륜관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 현실의 문제와 정신적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는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소설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1920년대 말의 식민지 조선사회를 살아가는 3세대의 인물들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祖)-부(父)-손(孫)으로 이어지는 삼대라는 인물 설정은 당시 한국 사회를 구성했던 한말세대, 개화기세대, 식민지세대인 세 세대를 상징적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인물들을 통해 개화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냉철한 시선에서 별다른 치장 없이 리얼하게 묘사함으로 당시 식민지 우리 민족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서울의 중산층 집안뿐만 아니라 당대의 이념적 인물군과 퇴폐적 인물군의 풍속까지 꿰차고 있어 폭넓은 현실 재현을 한 점, 세대 간의 갈등, 이념간의 갈등, 경제적 갈등을 세밀하고 묘사한 점, 일제 강점기하 청년들의 정신적 고뇌를 세밀하고 묘사한 점 등도 이 작품이 리얼리즘적 성격을 가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이 작품에서 덕기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몰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결국 덕기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소유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염상섭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실대응 방법론으로는 효과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긍정적 작중인물 조덕기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의미를 통해 다.
이육사의 시 세계Ⅰ. 서론민족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는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우리에게 안겨 준 시기다. 식민지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은 고유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1930년대는 한반도의 병참기지화 정책과 동시에 내선일체라는 미명 하에 신사참배, 창씨개명, 우리말 사용금지 등이 강요되던 시기로 언론은 그 기능을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육사 이원록은 이런 절망적 상황 하에서 죽는 날까지 민족혼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증거하며 시의 시다움을 실천적으로 보여 준 암흑기 최대의 저항 시인이자 탁월한 예술 시인이다.) 지금부터 본고에서는 이육사의 시세계를 살펴봄으로써 어떠한 의식들이 그의 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지 고찰해보고, 더불어 형식적 구조의 특징을 통해 주제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되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생애육사 이원록은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22세 때인 1925년 국민당정의부, 대한독립당 군정서, 의열단 등에 친우였던 이정기와 함께 가입, 주로 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하였다. 24세인 1927년에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되었는데, 1929년에 미결수로 석방되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은 출발하는데 시로서는 마지막 투고 작품인 〈파초〉를 상재할 때까지 이어진다. 1935년에는 민족주의자 위당 정인보 선생과 민세 안재홍 선생을 알게 되면서부터 《신조선지》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여기서 신석초와 친교를 맺는다. 육사가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하게 된 잡지도 《신조선지》로, 여기에서 최초로 발표한 작품이 〈춘수삼제〉와 〈황혼〉이다. 신석초의 회고록을 통하면 그의 시작(詩作)이 이 무렵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937년 윤곤강 ?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였으며,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를 비롯하여 〈교같은 도시와 농촌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탐색하나 과 에 이르러서는 보다 넓은,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시간적 ? 공간적 현실의식으로 그 범위를 확대시킨다.)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벽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가엾은 박쥐여! 어둠의 왕자여!...(중략)앵무와 함께 종알대어보지도 못하고딱따구리처럼 고목을 쪼아 울리도 못하거니마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서러운 주문일사 못 외일 고민의 이빨을 갈며종족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가엾은 박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는 아닐망정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새 흘리는 피는그래도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을 노려도 봤을너의 머-ㄴ 선조(先祖)의 영화롭던 한시절 역사도이제는 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생략)- )에서 육사는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과 같은 조국의 현실을 토로하면서 암흑 속에서 무력하게 퇴화해가는 박쥐와 우리 민족을 나란히 동일 선 상에 두고 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절망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박쥐의 모습은 민족의 수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육사는 이러한 민족적 현실을 탄식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현실에의 적극적인 관심과 빼앗긴 조국의 가엾은 겨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연민의 정을 저변에 깔고서, 육사는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위해 당대 현실을 극렬하게 인식하는 데에 박차를 가한다.시인의 현실의식과 자아의식은 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에서 보이는 극한 상황은 확실히 육사가 겪은 시대적 상황의 극한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으로 상징된 제국주의의 러내는 데에 이른다.)2.2. 실향의식과 방랑의식자신이 처한 시대적 현실이 정신적이든 실제적이든 간에 도저히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극한적인 절망의 상황일 경우, 인간은 방황하고 방랑하게 되며 그 방랑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실향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육사의 시에도 역시 끊임없는 떠돌이 의식 혹은 삶의 고달픔과 같은 정서로 인한 실향의식과 방랑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실제로 40평생을 떠돌며 살았던 이육사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개입된다.이러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는 , , , 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를 예로 들어 위의 의식들에 대하여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쪼각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남들은 기뻤다는 젊은날이었건만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짱크」와 같애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푸러 올랐다항상 흐릿한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가고전설에 읽어본 산호도는 구경도 못하는그곳은 남십자성이 비쳐주도 않았다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시궁치는 열대식물처럼 발목을 에워쌌다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인 양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왔다.머-ㄴ 항구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노정기(路程記)〉)는 제목 자체에서부터 끊임없는 방랑과 고달픈 삶의 여정을 시사하고 있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이라함은 자신의 삶은 험난한 시대 속 만신창이가 된 부서진 뱃조각과 같다는 시인 자신의 고백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서 ‘서해를 밀항하는 짱크’와 같이 표랑하는 시인의 삶은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푸러 오르’고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야 하는 매우 암담한 역경의 연속이자 절망적인 어둠으로 점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유랑의 목표로 하는 것은 ‘전설에서 읽어본 산호도’지만 그 곳은 ‘남십자성’도 비추어주지 않는, 지금까지와 비슷한 어둠이 존재하는 곳이다. 정신적으로 지향하던 곳조차 절망적인시어들은 모두 배의 항해와 관련된 심상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육사가 표현한 향수와 실향감에 의한 방랑의식 등의 시정신과 일치하고 있거나 최소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뒷받침이 된다.)2.3. 초인의지와 미래 염원이육사가 살았던 시대는 역사적 과도기로서 그가 지녔던 이념은 급격히 무력화되어 갔고, 더구나 그의 삶과 이념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주의에 의해서 극도로 왜곡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이육사는 초기에 강한 항일 저항의식을 나타낸 시를 노래하다가 항일 저항의식이 약간 퇴화하면서 아주 정서적으로 변화되어 서정의 율조를 이루는 시기에 이른다. 비극적 의지가 무거운 긴장감조차도 떨쳐버리고 넉넉한 관후함과 의연한 자세를 갖춘 경지의 작품으로 〈청포도(靑葡萄)〉,〈광야(曠野)〉,〈꽃〉,〈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자야곡(子夜曲)〉,〈나의 뮤-즈〉등이 있다. 육사로 하여금 절박한 상황에서도 너그러움과 굳셈을 지니게 한 요인은 바로 초인의지와 기다림이었던 것이다.)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때에도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꽃 >암흑과 절망의 극점을 시인의 날카로운 초극의지로서 삶의 희망과 기다림으로 승화시켜 나타낸 극적변환을 보여주는 이 시는, 육사의 강인한 정신이 식민지 시대의 어둠과 투쟁에서 이루어낸 고도의 정신적 산물에 해당한다. 1,2행에서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어떤 생명현상에 대한 극한 상황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극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핀다’ 는 것은 극도의 역설적 표현이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필 수 없는 상황에서 피는 이 ‘꽃’은 ‘내 목숨을 꾸며’나갈 생명현상의 개화(開花)로서,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지적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광야〉원대한 시간성과 광야의 광활성을 배경으로 깔고, 동양적 이미지를 가진 ‘닭 우는 소리’ 로부터 이 시는 출발한다. 에서의 닭소리는 ‘인간의 삶의 시작’ 이라는 심상으로 쓰이고 있다. 시인의 삶의 광장인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광야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 봄의 입김인 매화향기만 아득한, 암담한 겨울 같은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암담한 현실이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고 보람된 미래가 찾아 올 것임을 확신하고, 미래에 피어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려는 것이다. 그 ‘노래의 씨’는 어쩌면 자신의 생애동안에는 발아(發芽)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그 어느 날엔 왕성한 삶으로 피어날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의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육사의 선구자적 사명의 자각과 미래에의 확신은 시인에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중대한 임무와 직결 되어 있다. 따라서 제 4연에 제시된 ‘나’ 는 선구자적 자아라고 볼 수 있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놓고, 그 씨앗을 기르고 가꾸어서 억압과 절망에서 벗어난 해방된 삶을 마음껏 구가해 줄 것으로 기대된 ‘초인’)을 기다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열엇다’, ‘뿌리다’, ‘목노아 부르게하리라’와 같은 시인 자신의 행동의 적극적 양상을 요구하는 언어들이 거침없이 쓰이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다. 이것은 육사가 능동적이고 의욕적이면서 적극적인 행동의 세계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이러한 미래에의 확신과 기다림의 실체가 작자의 사물에 대한 아름답고 신선한 감각으로 형상화 되어 있는 시가 이다.내 고장 칠월(七月)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