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머리말 ※참고 문헌Ⅱ. (1)고인돌의 개념 이영문 2001.3.(2)고인돌의 기원 김월선 1995.(3)고인돌의 분포 김진실(4)고인돌의 입지 1975. 6.(5)고인돌의 구조 2001. 2.(6)고인돌의 형식 변광현 2000.(7)고인돌의 기능 하문식 1999.(8)고인돌의 축조방법(9)고인돌의 매장방법(10)출토유물Ⅲ. 맺음말Ⅰ.머리말고인돌은 고대 선사 시대의 거석 문화의 한 예로 죽음의 세계를 의미하는 무덤으로서가 아닌 무한한 생명력과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신비스럽고 감동스러운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중심으로 권력의 형성과 종교의식의 발생에 관련되어 발생한 것으로 인간 역사의 초기 단계에 형성된 정신성을 담고 있는 조형물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나라 선사시대의 문화요소 가운데 고인돌 만큼 한 시대의 특징을 부각시켜 주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고인돌이 청동기시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고인돌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이 발표를 통해 여러분들이 고대 선사시대의 고인돌 이해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당대와의 연결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 발표안을 준비하였습니다. 앞으로 소개될 내용으로는 고인돌의 개념을 시작으로, 기원, 분포, 입지, 구조, 형식, 기능, 축조방법, 매장밥법, 출토유물 등이다.Ⅱ. (1) 고인돌의 개념고인돌은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는 고인과 돌로 이루어져 있어, 지석묘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도 고엔돌, 괸돌, 되무덤, 도무덤, 등으로도 불린다. 켈트어로은 탁자란 뜻인, Dol과 돌이란 의미인 Men의 합성어로 돌맨이라하고 , 영어로는 table stone 이라한다. 이의 명칭은 고인돌이 외형상 탁자모양을 한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거석이란 의미로, Megalith 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명칭에서 보듯, 탁자형태를 가진 고인돌은 땅위에 드러난 판석을 네모나게 조립한 후 그위에 납배경으로 한 정착 농경문화와 함께 동남아시아지역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와 분포상 연결시킬 수 있는 중국 동해안지역 중 절강성만 5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형태상 차이를 보이고 잇는 점 때문에 고인돌의 기원을 그곳과 관련시키기에 어려움이 있다.셋째, 북방기원설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이 북방의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요령지방의 돌널무덤에서 변화 발전하였다는 파생설이다.이 설은 형태의 변화에서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자생설에 포함될수 있다.이는 돌무덤의 뚜껑돌이 대형화되어 지상에 드러나 있으면 개석식 고인돌이 되고, 다시 지하의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면 탁자형 고인도 형태가 된다. 형태의 유사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이 잇지만, 중국 요령지방 주변과 시베리아 등 북방지역에서 서유럽 사이에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지 않다.(3) 고인돌의 분포우리나라 고인돌의 분포는 제주도부터 함경북도 지방까지 곳곳에 걸쳐서 자리잡고 있는데 거의가 한 줄로 나란히 놓여 있지만 가끔 두줄, 세줄 또는 둥글게 놓여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동북아시아의 중심 분포지로 여겨질 많큼 수만기가 분포하며 서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제까지 보고되지 않은 함경북도 지방 뿐만 아니라 해안 도서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와 흑산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 나라 고인돌은 서해 및 나해의 연해지역과 큰 하천의 유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전라도와 황해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동해지방으로 가면 그 분포가 희박해지며 산악지대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위치는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 근처로 우리나라 고인돌은 대부분 서해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4) 고인돌의 입지고인돌은 강가의 들판이나 낮은 언덕(구릉), 산기슭, 고갯마루 정상부 등 인간 생활과 밀접한 곳이면 어디에든 세워졌다. 하지만 무거운 돌을 운반하여야 하기 때문에 바위를 구하기 쉬운 곳에 자리하며, 사람들이 활동하는 범위에서 기좌도에 있는 돌기둥과 괴석이 한 고인돌의 받침돌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 담양군 문학리나 남해안 도서 지방에는 산의 경사면에 고인돌이 세워졌는데 윗돌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윗돌 한쪽은 경사면에 닿게 하고 그 반대쪽에만 받침돌을 하나 또는 몇 개씩 받쳐놓은 형태도 있다. 이러한 받침돌이 있는 고인돌은 주로 반도의 남부 지방에 많이 분포 는데 최남단으로 갈수록 받침돌의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하며 인공을 가하여 세련된 것이 많다.③묘실: 묘실은 판석이나 괴석, 강돌, 또는 판석조각 등으로 이루어진 석실이 있고, 토광이 있다. 토광의 경우는 대개 윗돌 밑에 아무 구조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파괴로 인해서 석실이 없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충청북도 영동 유전리 고인돌을 보면 석실은 없으나 윗돌 바로 밑의 판석층이 부장품과 함께 본래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이 판석층은 묘실의 뚜껑으로 짐작되는데 만일 석실이 파괴되어 없어진 것이라면 판석층도 파괴되어 없어졌거나 아니면 적어도 교란된 흔적은 보여야 할 것이다.이러한 예를 보아 토광을 가진 고인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석실의 경우는 그것이 지상에 세워진 지상묘실형과 지하에 묻힌 지하묘실형으로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석실의 구조만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④보호시설: 보호시설로는 여러 가지의 형태가 보여진다. 지하묘실형은 묘실의 둘레에 적석을 한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여러 묘실의 적석이 이어져 있어 하나의 묘역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 적석시설은 지상묘실형에서도 가끔 나타나는데 지상에 세워진 석실의 주위에 돌을 쌓아 보강을 한 형태이다. 황해도 심촌리 중학교 곁 제 1호 고인돌과 신대동 제 2호 고인돌 등에서 보기를 찾을 수 있다. 1) 그러나 지상묘실형의 보호시설로 일반적인 형태는 받침돌의 밑부분에 적석을 하여 받침돌이 쓰러지는 것을 막고 있는 형태이다. 또 보호시설로서 특수한 것으로는 얇은 편암으로 장방형의 석실을 만들고 다시 그 외부에 두터운 판석으로 받침돌을 세워서 무거운 윗돌을 올려입이 용이하게 조립한 구조이다. 남쪽지역의 탁자식은 두터운 덮개돌 밑에 장벽석 2개만 있는 것이 많다.그래서 한쪽 또는 양쪽 마구리 역할을 한 판돌은 무너졌거나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덤방을 이룬 판돌은 위의덮개돌을 지탱할 수 잇는 두께가20㎝ 이상으로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고 있다. 남쪽의 탁자형 고인돌은 대개 3~4의 크기의 크기의 덮개돌 밑의 무덤방 높이도 1m 이내로 낮아지고 덮개돌도 1m이상으로 두터워지며, 약간 다듬은 돌을 사용하고 있다. 즉 고인돌의 규모가 작고 무덤방 폭도 좁다. 남한에서는 강화 부근리 탁자식이 최대 규모이다. 덮개돌 크기는 길이가 6.5m, 너비가 5.2m두께가 1.2m이며, 지상에서의 전체 높이는 260cm이다. 받침돌은 현재 양끝의 마감돌이 없어지고 좌우만 남아 있다. 전북 고창 도산리 탁자식 고인돌은 북한지역의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이 고인돌은 길이 3.5m, 너비3.1m, ,두께 38cm로 두께가 매우 얇은 판상석의 덮개돌을 하고 있으며, 그 밑에 2개의 장벽석이 지상에서 1.8m높이로 고인 형태이다. 전남 나주 회진 고인돌은 토성 안의 조그마한 분지형 계곡 끝 경사면에 위치하며, 현재 3개의 벽석만 남아 있고 영산강이 바라다 보이는 앞쪽 면이 개방되어 있다. 덮개돌은 길이 4.1m, 너비 2.4m,두께 0.9m이며, 무덤방은 길이 2.0m, 너비 1.0m 지상의 높이가 0.85m이다. 이러한 탁자식 고인돌은 남쪽으로 올수록 분포 양상이 희박해지고, 덮개돌도 기반식과 같이 두터워지며 받침돌도 1m 이내로 매우 낮아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탁자식 남방 한계선은 경남 거창, 전남 영암과 강진이다.②기반식 고인돌: 기반식 고인돌은 판돌을 세우거나 깬돌, 자연석으로 쌓은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그 주위에 받침돌을 4개에서 8개 정도 놓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 돌을 덮어 마치 바둑판 같은 형태를 띤다. 외형상 지표면에 드러나 있어 웅장하게 보인다. 덮개돌이 거대하고 괴석상을 한, 대형들은 호남과 영남지방에서만 보이고 뚜렷한방을 엎은 것에서 개석식은 무지석식, 뚜껑식, 대석개묘 등으로도 불린다. 이 형식에서는 대개 돌로 만든 무덤방이 확인되고 있어 무덤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요동반도, 한반도, 일본 구주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 고인돌 형태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다. 덮개돌의 형태에 있어서도 판석형, 직육면체인 장방형, 볼록렌즈형태의 장탁원형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북쪽 지역에서는 덮개돌 두께가 얇으나 남쪽에서는 대체로 두꺼워지는 경향이 있다.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유몰도 대부분 이 형태에서 출토된다.④제주식 고인돌: 위의 세가지 형태 이외에 제주식이라 할 수 있는 제주지역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구조가 있다. 이 형태는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데, 수매의 판석이 덮개돌 가장자리를 따라 돌려 세워진 형태이다. 지상에 드러난 판석의 수가 6매 이상으로 덮개들의 평면 형태와 유사하며 대개 타원형이나 방형에 가까운 무덤방 형태가 특징이다. 이는 장방형이 기본 형태인 다른 지상 무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주 용담동 4호 고인돌로 판석 11매가 덮개돌을 따라 타원형상으로 돌려져있다.이유형은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형태이나 중국 절강성지역에서도 유사한 무덤방 구조가 발견되고 있다.(7)고인돌의 기능①무덤으로서의 기능: 고인돌이 무덤이란 것은 19세기 말에 제기된 이후, 충북 제원 황석리 13호에서 완전한 사람뼈가 보고되면서 일반적으로 인식되었다. 고인돌 무덤방의 규모가 무덤으로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석실으 l길이와 폭이 다양하여 퍼묻기, 굽혀묻기, 두벌묻기, 화장이라는 장법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무덤기능의 고인돌 근거로는 첫째 고인돌이 한 곳에 떼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는 점, 둘째 무덤의 가장 직접적인 자료인 사람뼈가 나타난다는점, 셋째 무덤 축조 과정에 묻은 껴묻거리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②제단으로서의 기능: 고인돌을 축조하던 사회에서는 여러 집단들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어떤 상징적인 기념물이 필요했는데, 거대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