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종교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적 종교 이론스스로를 "무신론적 유태인"으로 묘사했던 프로이트(1856~1939)는 역설적이게도 많은 분량의 저서를 종교를 논의하는 데 할애하였다. 그는 종교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종교가 인간의 마음에 행사하는 힘을 인정했고, 동시에 그 사실이 제기하는 심리학적 문제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무신론자 프로이트의 관심을 끌고 그를 매료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종교의 기원과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이해하려 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 이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것과 아울러 어떻게 그것이 이성과 과학을 능가하는 엄청난 힘을 행사하는가") 지그문트 프로이트,p.123라는 문제였다. 프로이트는 무엇보다도 유태-그리스도교의 기원과 본성을 파악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설정하고 다른 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정신분석학적 연구를 통해 얻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시각에 근거하여 독보적인 종교 이론을 세우려 노력하였다. 그러면 그의 성적충동에 대한 연구가 종교 이론에는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지 먼저 토템 숭배의 발생에 대한 그의 설명을 검토해보자.프로이트는 종교에 관한 그의 최초 저서 의 4장에서 토템의 기원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인식하고 있던 토템 숭배란 무엇이고 어떤 특성들을 진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는가? 그가 이해하는 토템 숭배는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원시 민족들에게 종교의 자리로 차지하는 체계이며 사회 조직의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각 부족마다 조상으로 취급하는 동물이 있는데 평상시에는 엄격히 살해를 금하다가, 일정한 시기에는 토템 동물의 살해가 허용된다. 이때 모든 구성원들은 그 동물의 고기를 먹으며 슬픔을 표시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토템 숭배의 핵심적 특징은 토템은 언제나 동물이고 그것은 조상으로 간주되며, 평상시에는 살해가 금지되어 있다는 점과 토템은 모계를 통해서만 전수되며, 같은 토템 부족 안에서는 성원들의 성교가 금지된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들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프로이트는 다윈의 가설과 동물 공포증에 관한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토템 숭배에 대해 설명했는데, 자신의 설명을 하나의 가설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작은 집단을 형성하며 생활하였고 가장 나이 많고 힘센 남자가 모든 여자들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 아이들이 성장하고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자, 가장 힘센 남자는 다른 남자들을 죽이거나 추방하여 공동체의 두목된다. 후에 추방된 아들들이 합세하여 여자들과 자신의 생명을 확보하기 위해 폭군적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이다. 토템 숭배에 대한 설명에 도움을 주는 정신 분석학적 단서는 무엇인가? 그는 동물에 대한 어린이와 원시인의 관계는 유사하다는 전제로 동물에 대한 어린이의 공포증에 대해 얘기한다. 어린이가 처음에는 동물을 사랑하나 자라면서 공포심을 갖게 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 공포증의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공포에 있었고 동물은 아버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길 바라지만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한다. 그래서 의식상에 아버지의 대용물이 선정되고 공포증이 그것에로 이전되면, 어린이는 갈등에서 구제된다는 것이다. 그의 가설에 따른다면 토템 예식은 어떻게 설명되나? 추방된 아들들이 돌아와 아버지를 살해하였고 식인종이었던 그들은 아버지를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토템 식사는 범죄적 행동의 반복이고 기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에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어서 처음에는 증오심으로 아버지를 살해했지만 애정이 발동하여 아버지의 대용물인 토템의 살해를 금하고 또 부족 여자들에 대한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근친상간을 금하고 족외혼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금기가 아들들의 죄의식에서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였다. 종교는 모두 인간의 에디푸스 콤플렉스와 최초의 살해 사건에 토태를 두는 것이며, 그리스도도 최초의 아버지가 변형된 것에 불과하며, 성찬 예식 안에는 토템 식사의 양식이 존속한다고 주장했다.자신의 본래 질문, "어떻게 종교는 이성과 과학을 능가하는 엄청난 힘을 행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종교관념을 연구했다. 그는 종교관념을 "외적(혹은 내적)실재의 사실과 조건들에 관한 가르침과 주장인데, 인간이 직접 발견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같은 책, p.133라고 정의하였다. 관찰과 추리로 얻어지는 지식이 아닌 다른 것이 종교관념의 뿌리란 말인가? 그 뿌리란 것은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며 긴급한 소망이고 그것에 뿌리를 박고 있는 환상은 즉, 종교관념이라는 것이다. 환상이 받아들여지고 엄청난 힘을 구사하는 비결은 소망의 힘 안에 들어있다.그 소망이란 무엇인가? 어린아이 같은 무력한 인간이 인생의 위험에서 보호받고, 이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며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은 소망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어린이다운 소망들은 한번도 극복되지 못한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발생하는 어린시절의 갈등에 뿌리 박고 있는 것"),제 21권(1961), p.25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무력감과 소망이 어떻게 종교관념과 관련되는 것인가? 인간이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소망들과 무력감은 신과 여러 가지 종교관념들을 생각하게 만들어, 그 신이나 불멸, 내세, 공평한 보상은 인간의 내적문제의 표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주 안에 도덕 질서와 사후 생명이 있다면 매우 좋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소망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점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같은 책, p.30이 문구에서 프로이트는 우주의 도덕질서와 사후 생명은 인간이 소망하는 것이기에 실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종교관념은 환상에 불과하기에.사람은 의학의 발달에도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이런것들은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절실히 체험하게 하고 인간의 문명은 본성의 억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인간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하는지, 죽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프로이트는 그런 질문들에 대하여 종교는 여러 가지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위로해준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종교의 공헌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의 행복을 위해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인류의 행복하게 만들고 인생과 화해시키는 것을 성공하였다면 아무도 기존의 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문명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고 불행이 가득하다. 이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 결과로 인하여 인간대중에 의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종교를 버리고 떠나가길 바랬다. 물론 인간은 개인적 정신적 질환을 막기 위해 종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계속해서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유아적 심리와 집단적 현혹 상태에 고착시킨다는 것이다. 즉, 인간 성숙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해야 하고, 자신의 자원과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자연의 현실을 지배하여야 한다. 종교적 신앙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지성과 과학, 실증적 검증을 통해 언어진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장래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인간의 지성에 대한 굳건한 신봉자였던 프로이트의 확신이었다.
    인문/어학| 2000.12.09| 4페이지| 1,000원| 조회(732)
    미리보기
  • 통일시대에 있어서 통일민족주의가 갖는 의미 평가A좋아요
    사람들은 이 시대를 '통일시대'라 부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분단 시대라는 개념을 쓰고 있었고 통일 시대라는 개념은 쓰지 않았다. 통일 시대라는 말은 분단 시대의 험한 고빗길에서 통일 의지를 안고 분단 질서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위에 쓰여진 새로운 시대 정신을 집약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의 민족사가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는 일을 그 최고 차원의 목적으로 삼은 시대라면, 20세기 후반기 즉 해방 후의 시대는 민족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을 민족사의 일차적 과제로 삼는 시대로 보지 않을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 이 시기는 로 이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통일 시대를 사는 민족 성원들은 어떤 사상적 지표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이 시대를 통일 시대로 인식하는 모든 민족 성원들 앞에 던져진 물음이다. 오늘 민족 성원은 통일 시대의 민족 의식을 지니고 민족 문제를 풀어내는 데 힘써야 할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민족 성원으로서 민족 의식을 저버리고 민족 문제의 해결을 포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기의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것이요, 따라서 그것은 민족적 삶에서 자기를 분리하여 결국 민족 성원인 '나'를 소멸해가는 자기 해체의 과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민족 성원들에게 민족 의식은 한낱 감성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심리 작용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아니되며, 그것은 곧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과 이론적 해명을 추구하는 치열한 현실 문제가 되어야 한다. 민족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눈을 뜬 의식과 행동이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되어 마침내 민족 성원들의 집단적 의식과 행동으로 형성될 때, 그것은 민족주의라는 언술 체계를 지니게 된다. 이로써 민족주의는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족 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된다. 우리 민족이 당면한 문제를 통일 시대의 역사 인식으로 파악할 때, 그리고 우리 민족이 당면한 최고 문제를 조국의 통일이라고 할 때, 이 시대의민족주의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 안에서 통일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가려고 했던 사상의 순결성을 잃지 않았던 흐름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 흐름에 잇닿아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반민족 세력들에게서 모진 고난과 핍박을 받아야 했고, 자유 민주주의가 만들어놓은 사상의 감옥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고달픈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민족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유지·확장해 주는 체제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반민족 세력들과 싸웠고, 그래서 그 세력한테서 탄압을 받은 것이다. 이 줄기는 분단 질서를 유지하려는 반통일·반민족 세력들의 탄압 때문에 자칫 끊어질 것 같은 단절 위기를 넘기면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사상의 줄기다. 이 줄기를 총칼과 감옥으로 끊어버리려고 했던 세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역대 분단·독재 집권 세력이며, 이른바 문민 대통령이 들어선 지금도 분단·독재의 유물인 안기부와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존치·운용하고 있음을 볼 때, 근본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① 장준하의 통일 민족주의여기 통일 민족주의자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민족주의자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한 인간이 민족적 양심에 따라 자기의 생애를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이것은 장준하가『씨량의 소리』1972년 9월호에 발표한 자신의 글「민족주의자의 길」을 시작하면서 던진 첫 물음이다. 그는 이 물음에 대하여 "그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삶, 고달픔과 보람을 민족의 그것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답을 주었다. 그 사상의 싹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설명을 달자면 그의 사상은 '민족'이라는 실체 안에서만 오로지 '개인'을 발견한다는 명제로 집약될 수 있다. 그를 통일 민족주의자로 부르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읽는 이들의 가슴에 울컥 뜨거움을 느끼게 하는 우리 시대 민족주의자의 넋이 스며있는 그의 글 가운데서 한 군데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남북의 동포가 다 합해야 겨우 5천만. 일본도 1억이 넘고, 미국이 2억, 소련도 2들이 한 짓인지 아니면 자기 정권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한 짓인지 분명히 가려질 날이 곧 올 것이니 두고보라"고 말했다. 이것은 실로 선견지명이 번득이는 설파가 아닐 수 없다.그의 예언적 설파가 현실로 나타나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아니했다.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이 분단 영구화를 꾀하던 반민족성을 이른바 '평화 통일에 관한 외교 전략'이라는 그럴듯한 기만의 포장지로 쌓아 세상에 내놓았던 '6·23 선언'은 사실상 통일 민족주의에 대한 완전한 부정과 반역임이 밝혀졌을 때, 그는 무척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반역의 날'을 맞은 자신의 쓰라린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해 보았다. 석간 신문 한 장을 들고 그 성명 내용을 조목조목 읽어보았다. 애들도 이미 잠들고 밤거리를 스치는 자동차 소리마저 끊긴 면목동의 깊은 밤,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석간 신문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거듭 읽어가며 괴로운 심경을 달래야만 했다." 그의 괴로움은 깊은 밤에 스쳐가는 한 줄기 감상 따위가 아니었다. 민중이 냉전·분단 세력의 압박에 가위눌린채, 아직 7·4 남북 공동 성명에 천명된 통일 민족주의를 실현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지 못한 이른 새벽녘에, 통일 민족주의의 정치적 선언은 통일 민족주의에 반역의 칼을 댄 세력들에 의해서 한낱 휴지 조각처럼 허공에 날아갈 수 밖에 없음을 뒤늦게 깨우치면서 얻은, 그처럼 살아픈 자책과 반성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전면적 도전을 받았던 장준하의 통일 민족주의가 한때 휘청거릴 수 밖에 없었던 신념의 위기이기도 했다. 그가 남기고 간 원고 초안 「민족통일전략의 현단계, 그의 자책과 반성이 진하게 묻어난다."이제 와서 생각하면 7·4 성명은 사실 한 장의 휴지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것을 놓고 날뛰던 나 장준하, 이제 나도 내 일생 중에서 가장 위험한 시련에 맞서게 되었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찌기 20대에 일제의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그것이 죽음의 길이 아니라 나를 끌고가는 그 놈들과 마지막 길에 나섰더라면 아마 해방 이후의 정치사는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범이 해방 이후의 복잡하고 혼미했던 정치 공간에서 통일 민족주의자의 임무를 자각하기까지에는 수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각각 스스로를 해체시키면서 단결·합작을 이루어 새로운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한 사회주의 세력의 제안을 받은 백범은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살려 이를 수용해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때 백범을 중심으로 한 임정 세력은 마땅히 사회주의 세력의 합작 제안을 받아들여 단결된 힘으로 통일 국가 건설에 매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에 관한 의정서'가 발표되었을 때도 백범을 중심으로 한 임정 세력은 "통일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는 의정서의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 세력과 전민족적 단결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통일 민족주의자로 걸어가야 할 백범의 앞길을 이토록 가로막고 있었던 걸림돌은 무엇이었던가? 가슴 아픈 평가지만, 그것은 '임정의 주도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자기 중심주의였다. 백범은 "조선에 관한 의정서"를 전면 부정하는 친미 사대주의 세력 이승만 일파와 손을 잡고 이른바 '반탁 운동'에 앞장서게 된다. 그 무렵 백범이 반탁 운동에 앞장선 까닭은 기울어진 임정의 권위를 다시 끌어올리고 임정 세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편협한 생각에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반탁 운동의 지도자로 일어서면서 임정의 주권 행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오였다. 아니 착오에서 더 나아가 분단 정권을 세우려는 이승만의 계략에 말려들어가고 말았던 오류였다.백범의 반탁 운동은 사회주의 세력과의 통일·단결에 결정적인 파탄을 가져왔고, 임정의 주권 행사 선언도 미 군정의 압력으로 하루만에 취소할 수 밖에 없는 좌절을 낳았고, '조선에 관한 의정서'를 지지하는 임정 좌파가 떨어져나가 '민주주의 민족전선'에 참여함으로써 그나마 힘이 미약 걸음걸이가 더딜지 모르지만 뒷날 언젠가는 반드시 엄정한 심판을 내린다는 가르침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분단의 먹구름이 조국의 땅과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던 1948년 4월 19일, 백범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삼팔선을 넘어 북녘 땅을 향해 나선 북행길은 남(한국)의 통일 민족주의자가 분단 질서의 수립을 막기 위해서 기어이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험한 길이었다. 백범은 1948년 4월 23일 평양에서 열리고 있었던 남북 연석회의 연설에서 이렇게 외쳤다.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전 민족의 유일 최대의 과업은 통일 독립의 전취인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항일 민족주의자로서 시련의 고빗길을 헤치며 칠십 평생을 살아온 백범이 역사 앞에서 자기 삶을 솔직하게 되돌아보면서 내린 맺음말이었다.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아 나선 분단 장벽 앞에서 민족 자주와 조국 통일을 전취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할 마지막 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는 통일 민족주의자만이 할 수 있는 참된 고백이었다. 그 해 5월 6일자로 백범이 우사 김규식과 함께 남긴 남북 협상에 관한 공동 성명에서 우리는 통일 민족주의의 광채나는 원광석을 발견하는 설레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글에 담아 역사 앞에 남겼다."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는 우리 민족도 세계의 어느 우수한 민족과 같이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써 증명한 것이다. 이 회의는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서 양 조선의 단선·단정을 반대하며 미소 양군의 철퇴를 요구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줄임) 우리는 행동으로써만 우리 민족이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뿐 아니라 사실로도 우리 민족끼리는 무슨 문제든지 협화였다.
    사회과학| 2000.11.19| 14페이지| 1,000원| 조회(68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7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5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