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행정의 역사는 어느시대 어느 장소이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글래든(E. N. Gladden)은「행정의 역사」(A History of Public Administration)에서 행정은 역사의 탄생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하소 있다. 또한 토인비(A. Toynbee)도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행정에 대한 연구가 고대문명하에서도 고도로 발달하였음을 발견하였고, 레포스키(A. Lepawsky)는 행정학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나 고대 중국에까지 소급하여 논의하고 있으며,{) A. Lepawsky는 그의 저서에서 고대.중세.근대초기의 행정사상에 대하여 1고대 이집트왕조와 톨레미의 이집트,2고대중국,3고대 희랍의 아테네 도시국가,4로마공화국과 로마제국,5중세의 영국과 프랑스,617,18세기의 독일,719세기의 미국,820세기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디목(M. E. Dimock)도 설형문자나 상형문자 등에 관한 분석결과 행정은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인류의 주 관심사가 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들 주장은 행정에 대한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시대의 선정에 불과하며, 행정이 근대적인 행정이념과 목적을 가지고 형성된 것은 관방학(Cameralism)시대부터이다.이를 시발로 행정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16세기 중엽∼18세기 말까지 관방학, 18세기 말부터 발달한 행정법학,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존재했던 슈타인(Stein)행정학, 행정법학,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미국 행정관리학으로 그맥을 짚어 볼 수 있다.일반적으로 관방학 등 유럽의 행정학을 현대행정학의 실질적인 기원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행정학의 실질적인 기원은 현대행정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행정학의 출발인 1887년 윌슨(W. Wilson)의 「행정의 연구」에서 찾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그러나 미국 행정학의 전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헤밀턴(A. Hamilton), 제퍼슨(T. Jefferson)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십청명,행정학개론(동경:동경대학출판회,1966) p.24전기 관방학의 관심은 최량의 행정관리에 의한 왕실의 경제적 수입의 유지와 증식이었다. 따라서 행정,재정,예산,경찰 및 공예에 관한 지식을 내용으로 하였고 ,국가적 요청에 따르는 행정·재정에 중점적 고려를 하는 사회과학이었다.반면에 후기 관방학은 전기보다 전문적으로으로 분과가 진행되어 경찰학,농학,임학,국민경제학등으로으로 발전하게되었다. 특히 유스티(Justi)는「경찰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국가이념을 통일적 계기로 삼는 광의의 관방학을 경찰학, 경제학, 협의의 관방학, 기타로 체계를 세우고 경찰학은 모든 국가 재정의 유지 및 증식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스티는「행정학의 아버지」라는 명칭을 듣기도 한다.관방학은 독자적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지 못하고‘정치의 시녀’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2) 행정법학시민혁명의 성공으로 입헌군주제가 등장하여 국가에 대한 시민의 권리 옹호가 행정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로 추구되기 시작하면서, 행정을 법률의 하위개념으로 파악하여 “법률에 의한 행정” 즉 법치주의행정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행정에대한 연구가 법률을 위주로 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몰(Mohl)로 대표되는 행정법학의 등장배경은 시민적 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행정에 확고한 법적 제한을 설정하려고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행정법학의 등장은 법치국가의 이념 하에 행정에 대한 본격적인 법적 접근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3) 슈타인(Stein)의 행정학시민적 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국가의 역할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이 몰의 행정법학으로부터 슈타인의 행정학으로 관점이 전환된 배경이다.슈타인은 관방학과 전통적인 공법학에 비판을 가하고 독자적인 행정체계의 정립을 시도하였다.{) 김운태,행정학원론(서울:박영사,1981) p.46-48슈타인(Stein)은 국가와 구별되는 자기 법칙적 영역인 (시민)사회를 구분하여 국가와며 분석의 초점도 대게 역사에 두었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 저서로 Jaur'es의 行政史와 August Tierry의 行政의 比較歷史硏究 를 들 수 있다. 한인숙, “프랑스의 행정학연구와 행정학교육”한국행정학보,제16호 (1982), p.52그러나 새로운 과학기슬이 발전되고 지식의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가 되고 법학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신 사회학 내지 정치사회학적 접근의 장점이 인식되면서 행정에 대한 연구도 법, 사회학적 2중적사고가 혼합된 방식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법제도적 접근과도 다르지만 미국식 기술적, 사회학적 접근과도 같지 않다.사회적 문화와 역사적 체험이 실증주의와 더불어 강조되는 것이 그 특색이다.Simon의「조직론」(Organization)이 1964년 번역소개된 이후 이와 같은 법, 사회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연구업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P. Gremion에의 지방정치, 행정체 연구, D. Desjeux의 국가관여방법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행정에 대한 교육훈련은 19세기 나폴레옹 시대의 행정개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나폴레옹은 고위 관리의 충원시 능력을 중시하였다. 그는 고위 관리의 선발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과학과 수학, 그리고 공학 분야의 훈련을 강조하였다. 그 제도적인 장치로서 공직에 전문직종을 신설하고, 점문가 양성기관을 설립하는 등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3) 미국 행정학의 형성과 발달과정미국 행정학은 현실의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행정 기능 변천에 대응하면서 형성·발달되어 왔다. 현실의 문제가 변함에 따라 행정학의 연구 대상과 초점이 바뀌고, 새로운 이론과 접근 방법이 개발되었다. 한편 미국의 행정학은 무국가성 또는 약한 국가성을 전제로 발전해 왔다. 미국인들은 유럽식의 국가를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그리고 발전시키지도 않았으며, 미국에서 국가는 이념으로서나 제도로서나, 그리고 자세면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행정학은 다원주의적 국가론에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데 공헌하였다.이와 같이 윌슨을 중심으로 주창된 정치·행정 이원론은 행정을 정치정당의 오염으로부터 탈출시켜 비효율과 낭비, 부패를 청산함으로써 좋은 정부 구현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또한 행정을 하나의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 정립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요컨대 정치·행정 이원론은 현대적인 공무원제도와 관료제의 발전에 필요한 기초이론이었다.(2) 정통 행정학의 성립·발전기정치·행정 분리론을 토대로 하여 1910년대 이후에는 테일러(Frederick W. Taylor)와 규릭(L.H Gulick)등에 의해 행정 고유영역의 활동을 규율하는 과학적 원리와 합리적인 관리기법의 탐구가 본격화되었다. 이에 대한 중심적인 추진 기구가 뉴욕 시정조사연구소였다. 여기에 참여한 행정학자들은 미국의 사기업 경영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과학적 관리법을 배워서 이를 행정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정치·행정 분리론으로 집약되는 당시의 행정이론과 고전조직이론이 합류하여 행정관리론으로 개화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의 미국 행정학은 경영학과 유사하였다.(3) 정통 행정학에 대한 반발기정통 행정학에 대한 반발적 기류는 1930년대에 경제공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행정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과학적 관리론과 정치·행정 이원론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까지는 정통 행정학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는 정통 행정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관심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 返書의 초점은 어떤 형태로든 정치와 행정은 분리될 수 없다는 점과 행정원리의 비과학성에 집중되었다.정치·행정의 분리에 대한 의문은 1946년 마르크스(F.M. Marx)가 편집한 「공공행정의 제요소」속에 집약되어 나타났다. 고우스(Gaus)는 초기 행정학자들이 행정을 너무나 협의로 인식하여 정치와 행정의 분리에 집착한 나머지 행정을 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우리 시대에 행정이론은 동시에 정치이론을 의미한다고 시작하였다. 두 차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가 가속화되고, 재정압박과 재정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정부실패 또는 공공부문실패 개념이 이때 등장하였고 또한 자원난과 재정위기를 배경으로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작은 정부’ 이념에 기초하여 ‘감축관리론’이 등장하였다.1970년대에는 행정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민간부문의 관리기법을 공공부문에 적용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부활되었다. 민간부문 관리기법을 행정에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고, 적용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1970년대 초에 오스트롬은 미국 행정학의 지적 위기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선택론을 행정학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행정학의 초점을 관료제와 윌슨 행정 모델에서 서비스 전달 체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하면서, 행정형태를 설명하는 데 정치경제학자들의 관점, 특히 공공선택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정책결정에서 경쟁과 대안적 서비스 전달체제를 고려에 넣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공공선택론은 행정의 고객 중심주의·소비자 중심주의, 그리고 행정에서 소비자보호 운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3 1980년대 이후1907년대에 조성된 정부에 대한 불신의 여파가 1980년대로 이어지면서 정보자유법, 사생활보호법, 일몰법, 소득세 인상 제한 등 정부 활동에 대한 통제와 제약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80년대에는 신보수주의가 부활하여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지출 삭감, 규제 완화, 민영화 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윌다브스키의 「정부지출 제한론」, 사바스의 「공공부문의 민영화」등에서는 정부무문 성정 억제 및 민영화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1980년대 초반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신연방주의 노선에 따라 연방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증대시키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