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 간척사업사례를 통한효율적인 방안 검토새만금 간척사업을 중심으로2008年 04月제1장 머리말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연구에 앞서 간척지의 개념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자면‘간척이란 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어 육지화 하여 농토나 기타 산업부지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서해안과 남해안에 많은 섬이 산재하여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으므로 유망한 간척 후보지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한국의 토지특성 때문에 경작 또는 혹은 기타 토지이용을 위한 유효 토지가 부족한 점은 간척사업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간척지사업 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갯벌을 개발하여 최대한의 용지를 확보하고, 종합 농수산업 시범단지를 조성하여,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장차 새만금 국제무역항의 건설 기반을 구축하는 등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총사업비 2조 510억 원을 들여 담수호, 양·배수장, 방조제 등의 수용시설물이 들어선다. 또한 공사가 완공되면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굴곡진 100㎞의 해안선이 비응도~고군산군도~변산반도 사이를 연결하는 33㎞의 직선 방조제로 바뀌게 되어 그 방조제 안쪽으로 새로이 4만 100㏊의 용지가 생김으로써 그만큼 국토가 확장된다. 이 면적은 전주시 면적의 두 배, 여의도의 약 140배에 이른다. 간척지에는 주택지구·상업지구·공업지구가 들어서고 인구 30만의 신도시가 생긴다. 또 연간 9조 9400만 톤의 용수가 공급되고 수해 상습지 1만 2000㏊가 해소되는 효과를 얻는다. 환경훼손이라는 큰 장벽에 부딪쳐 한동안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6년 3월16일 대법원 전원 합의에 의해 사업이 재 진행되기 시작 하였다. 이와 같이 새만금 간척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쟁점들을 분석하여 새만금 간척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해보고 다른 여러 간척사업진행에 있어 도출되는 간척지의 '69년 극심한 한발과 '70년대 초 세계적인 식량파동이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위해 간척농지개발(대상지 40만ha)을 실시하게 된다. 이후 야산개발, 대단위농업종합개발(금강·평택·영산강·삽교천 등)을 국가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새만금사업도 서남해안 간척농지조성 예정지로 선정되어 '71년에 옥서지구 대단위농업종합개발계획에 포함하여 추진하기로 계획되었다. 그 이후 새만금사업은 '80년대 초 냉해로 인한 쌀 흉작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화되어, '80년대 중반부터 농지조성 목적으로 타당성분석, 관계부처 협의, 환경영향평가, 공유수면 매립면허 등 관련 절차를 거쳐 '91년 착수하였다.2.3새만금 간척사업개요그림1.1 새만금 방조제 전경 그림1.2 방조제 축조 방법간척지의 주요시설로는 우선 방조제를 말할 수 있다.방조제의 길이는 33km이고 높이는 36m아더 방조제의 축조 공법으로는 사석 해사성토공법)을 사용한다. 방조제 이외에는 배수갑문 시설을 말할 수 있다.수량으로는 현재 2개소(가력,신시)가 있으며 문비규모는 저폭30m X 높이 15m X 18련(가력8련, 신시10련)정도 이다. 형식으로는 유압식 선형갑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환경시설로는 저층수배제시설과 어도 통선문을 적용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효과를 보면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향후 10년,20년후 집단우량농지를 포함한 28,300ha(86백만평)의 토지자원을 확보하여 지역발전과 국가이익을 위해 활용하게 된다.우리나라의 농지면적이 지난 10년동안 208천ha가 감소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감소될 전망이므로 집단화·규모화로 생산비 절감 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우량농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283mm로 세계 평균강수량 973mm보다 1.3배 많으나 강수량의 2/3가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내림에 따라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물이 부족한 국가이다. 하지만 새만금호 조성(11,800㏊)을 통해 10억톤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성에 따라 간척지의 경제성부문이다. 우선 환경부문의 해결책으로 정부에서 제시한 방법은 친환경 순차개발방식을 들 수 있다. 정부에서는 시화호 오염문제를 계기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재평가하기 위하여 환경단체의 요구를 수용하여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99. 5 ∼ '00. 6월까지 운영했다. 민관공동조사단은 경제성, 환경영향, 수질보전 등 3개 분과 3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관전문가 20명(환경단체 추천 10명 포함), 정부기관 10명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국무총리실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공동으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고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01. 5월 25일 국무총리 주재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하여 친환경 순차개발방식으로 재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는 환경 분야의 사회적 문제를 정부가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적용한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두 번째로는 사업의 경제성부문이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국책사업은 착수 전에 전문가들이 충분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하여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되어야만 추진하는 것으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산업경제연구원에서 시행하였고 그 결과 B/C Ratio) 1.19 이라는 수치를 산정하게 되었다. 이는 곧 경제성 판단기준에서 적합한 판단을 얻었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만금사업에 대한 경제성 문제는 약간의 미완으로 남게되었다. 농지와 갯벌의 가치에 대하여 전문가마다 상반된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이 발생 하였고, 정부는 지난 1999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년간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경제성을 재평가하였다. 민관공동조사단은 갯벌가치를 포함하여 경제성을 분석하였고 대다수가 새만금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하였다.새만금사업은 경제성분야나 환경오염적인 측면을 다소 효율적으로 운영한 좋은 사례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간척지는 시화호사태와 같이 부족한 점이 많이 드러나고있다. 따라서 간척사업 선진국들의 사례를 알아보고 그 있다. 이를 통해 성공한 간척지의 타당성이 입증 될 수 있다. 또 방조제 내측의 사면을 잔디와 초지로 녹화하여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곧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부각되어 관광증가라는 긍정적 경제적인 측면까지 발산하고있다. 하지만 서산지구에도 해결할 쟁점이 발견되는데 이는 사업후의 토지이용 및 민간 기업의 간척지 경영체계로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공업화의 진전으로 인하여 이에 따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이러한 점에서 서산은 삶터로서의 환경의 보호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급격한 지역 변화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도전을 동시에 받고 있다. 1984년 현대건설은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 공사’(일명 정주영 공법)로 여의도의 48배에 해당하는 서해안을 간척했다. 이것이 지금의 서산농장이다. 현대건설이 1980년대 조성한 ‘서산 A·B지구 간척농지’는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1%에 해당하는 3100만평에 이르는 초대형 농지로 변모하였다. 완전 기계화 영농이 가능해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농지인 이곳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부각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2000년 말 유동성 위기에 놓이면서 일반 매각을 추진해 2001~2002년 700여명에게 약 1000만평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2003년에는 1448만평을 평당 2만원에 피해 농어민 우선 매각분으로 처분했는데, 현재 도시민 1인당 300평으로 쪼개지고 있는 땅은 현대건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피해농어민 보상분이다. 이것이 도시민에게 주말농장이란 이름으로 재 분양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이면서 효율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3.2.1 시화호 간척사업농어촌진흥공사가 시화지구 대단위 간척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87년 4월부터 1994년 1월 24일까지 6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시화방조제를 완공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이다. 면적은 56.5㎢이며, 방조량이 부족해 유입되는 폐수의 일부가 그대로 시화호로 방류되었다.그림1.3 시화갈대습지공원의 전경3.2.2 시화호를 통한 시사점시화호는 앞서 기술한 시산지구와는 달리 다소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시화호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는 환경오염적인 측면이다. 정책적인 토지이용 또한 간척사업의 주된 쟁점이기도 하지만 사업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환경적 측면이다. 이와 같이 시화호 내 환경오염이 가중되자 지속적으로 수질개선 노력을 한 결과 1997년 20.8㎎/ℓ에 달하던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 2000년에는 3.9㎎/ℓ로 줄어들어 수질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인 상태이다. 이를 통해 사업이전에 간척지에 적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 모색이 중요하며 사업이전에 생태적인 측면의 면밀한 분석이 조금 더 요구 된다면 향후 개발에 있어 이러한 실패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제4장 해외사례 검토4.1 네덜란드 플레보랜드간척 선진국이자 국토가 비좁은 네델란드에서는 플레보랜드를 비롯한 대형 간척지들의 용도가 국토의 다른 부분들에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간척지에 농경지는 물론 도시, 공업단지, 공원, 자연보전지구등이 모두 배치되어 있는데 국토면적에 비교해서 유독 간척지가 많은 네델란드에서는 간척지에 국립공원과 자연보전지구를 설정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지난 세기에 쥬다지 프로젝트와 델타 프로젝트(Delta Project)라는 2대 간척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그림 1.5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습지보전지구(Wetland Reserve) 오스트바드플라센 은 쥬다지 사업지구의 사우드 플래보랜드 간척지에, 국립공원 비스보쉬는 델타 사업 지구의 마스강과 바스강이 합쳐지는 삼각지에 조성된 각각 5,000ha와 7,100ha 규모의 대자연이다.그림1.4 우스트바더스프라센의 위치 그림1.5 자연보전지구와 습지 국립공원 예먼저, 오스트바드플라센은 1960년대에 사우드 플래보랜드 간척지
목 차1. 서론2. 본론● 고구려의 토지제도와 생활상● 백제의 토지제도와 생활상① 지배층의 토지지배 유형과 성격② 농민의 토지소유● 신라의 토지제도와 생활상3. 결론-서론-고대 사회에 있어서 경제 생활의 중심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삼국 시대에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인 귀족 정치가 성립됨에 따라, 모든 국토는 왕토라는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 토지가 개인 뿐만아니라, 국가에서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따라서, 삼국 시대 각 나라의 토지제도를 살펴 봄으로써, 그 나라의 생활상이 어떠하였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토지제도를 통해서 그 나라의 사회적인 성격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의 주요한 토지제도와 그와 연관된 귀족과 농민의 생활상에 대해 다뤄 볼 것이다.-본론-1. 고구려의 토지제도와 생활상고구려는 농업을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하여 성립되고 운영된 나라이다. 따라서 토지를 둘러싸고 형성된 인간들간의 관계는 고구려사회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이룬다. 그런데 토지제도가 갖는 이 같은 비중과는 달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토지제도 관련자료는 극히 적다.고구려가 발생한 압록강 중류지역은 청동기 문화기에서 부터 상당수의 주민들이 모여 정착문화를 이루고 살았다. 따라서 이 지역에는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주민들에 의하여 토지가 경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국이 역동적으로 형성되어 가던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도 이 지역에는 집단적인 주민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뒤에는 부(部)로 전화하는 나(那)가 여전히 주민들의 생활공동체로서 자리잡고 있었다.공동체로서의 성격을 상당부분 가지고 있던 나(那)들이 모여 국가를 형성해가는 시기에 있어서 토지를 둘러싼 계급간의 갈등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이 개인적으로나 가족단위로 이동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이동하는 현상에서 나(那)안의 성원간의 토지소유의 문제는 계급적 대결로 나타날 만큼 첨예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런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죄목은 '다른 사람의 처첩과 우마, 재화를 마음대로 빼앗고 주지 않으려 하면 매를 때린 데' 있었다. 여기서 약탈의 대상은 처첩과 우마, 재화였음이 일단 주목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약 2세기 뒤인 고국천왕 12년(190) 9월에 일어난 유사한 사실에서는 이와는 약간 대비되는 점을 볼 수 있다.역시 같은 의 고국천왕본기에 의하면 당시의 왕후의 친척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빙자하여 다른 사람의 자녀와 전택(田宅)을 빼앗아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서 왕으로부터 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 그런데 이 때에는 앞의 사실과는 달리 전택이 수탈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약 2세기에 걸친 국가의 발달, 농업의 발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토지의 중요성이 그만큼 증대된 사실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사적 소유의 역사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이제는 공동체적인 유대가 개인들의 생계의 면에서는 거의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토지소유에 있어 국초의 자연적인 점유나 성원간의 유사한 양의 분점 등의 상황이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변화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의 국가체의 형성과 발전도 이 같은 구성원간의 계급의 형성과정에 힘입은 바 있을 것이며 국가의 발전과정이 계급의 분화를 북돋았을 것이다.이 같은 사실은 고국천왕 16년에 있었던 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의 고국천왕본기에 의하면 고국천왕이 10월 어느 날에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길에서 앉아 울고 있는 이를 만나게 되었다. 왕이 왜 울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빈궁하여 늘 품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해 왔는데 금년에는 흉년이 들어 품팔 곳이 없어 식량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이같이 울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 길에서 울고 있는 농민은 토지의 점유 및 소유를 둘러싼 경쟁에서 몰락해 가는 빈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자들은 예외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으로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그것은 이 사건에 의하여 백성들에게 봄에 국가의 곡식을 꾸3)의 식읍 지급기사는 이 시기가 갖는 역사적 상황이나 전후 내용을 보아 마땅히 믿을 수 있다. 이 같은 식읍의 지급은 기록에 남아 전하지 않고 있는 다른 귀족들에게도 있을 수 있었던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식읍을 받지 못하는 귀족들에게도 국가로부터의 다른 형태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을 것이다.식읍은 토지로부터 국가가 받는 조세를 식읍주가 대신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받는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인민의 노동력 징발권까지도 받는 등 일종의 봉지(封地)라고 할 수도 있어 단순한 토지제도로만 말하기는 적합치 않겠지만, 이러한 경제적 특권을 배경으로 하여 귀족들은 좋은 토지를 더욱 집적해 갔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몰아내고 이 지역의 기름진 토지가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된 후, 더구나 장수왕 때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는 더욱 강화되었으리라 본다.현재 전해지고 있는 자료로 보아 토지에 관한한 국가권력에 의한 토지 보유나 소유에 대한 전면적인 재지급 등의 국가적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전에 전해지고 있는 고구려의 조세 내용으로 보면, 고구려인들의 세금액수는 빈부의 차이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등급간의 차액이 극히 적고 전체 세액은 당시의 수준에서는 적지 않은 각 호당 곡 5.5석~6석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조세량에 근거하여 이를 주민들로부터 수취할 수 있으려면, 주민 일반에게 균전법 등과 유사한 토지의 국가적인 지급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고구려에서 전면적인 토지의 지급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시도되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그 같은 거의 균등한 세액의 인두세에 가까운 조세수취는 일반민들 간의 경제력의 차이가 심각한 정도에 이르지 않아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세금을 부담하는 백성들의 대다수는 경제력의 차이가 심하지 않은 자영소농민이었던 데에서 그 같은 조세 수취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귀족들조세미의 일부나 전쟁포로와 말 등을 어떤 특별한 공로가 있을 때마다 지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한 사례로서 다음의 기사가 참고된다.전지왕 2던 가을 9월, 해충(解忠)을 달솔로 삼고 한성조(漢城租) 1천 석을 주었다.( 권 25, 백제본기).위의 기사에서 해충은 전지왕을 옹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 공로로 한성조를 지급받았다. 따라서, 이는 전공이나 서물(瑞物) 진상 등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중이 크기 때문에 다른 곡물로 지급할 경우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신라의 경우 세조(稅租)가 녹봉의 성격으로 이해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보면 해충은 출신지인 한성의 일정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수취권을 수여받은 것이 아니라, 한성의 국가창고에 보관된 조세 수납미 중에서 1,000석을 해마다 일정기간 동안 지급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왕을 옹립한 대가로 토지로부터 조세 수납된 특정지역의 전조에 대한 권리를 분급해 준 것이며, 후대 녹봉제의 연원이라 할 수도 있다.이와 같이 백제는 국가에 대한 특별한 공로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특정지역의 전조에 대한 권리를 분급하였는데, 후대 귀족관료들에게 분급한 수조권적 토지지배의 연원이 된다. 그 분급 내용은 농민들로부터 수취한 일정한 양의 조세미를 유공자에게 녹봉의 형식으로, 또는 일회적인 포상으로 급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에는 때때로 관등의 승급, 재화의 분급, 포로의 분배 등이 수반되기도 하였다.다음으로, 백제의 식읍지급 사례로는 의자왕이 왕서자 41인에게 좌평 신분과 식읍을 지급한 것이 유일하다. 이는 의자왕이 왕족 중용정책의 일환으로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백제의 식읍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성격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고구려나 신라의 예와 거의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식읍은 뛰어난 훈공이 있는 왕족이나 척신 고위관료 등 특별한 자들에게 수여한 일종의 경제적 특혜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 주대의 봉건제도 아래서 왕족과 공신에게 분봉하던 봉토에 기원을 둔 것으로, 우리나라의 광개토왕릉비 수묘역의 예에서 보듯이 일반 농민들과 노비노동에 의해 경작되었다. 그리고, 왕실 보유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국왕 직할의 행정부서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성왕 대에 설치한 22부사 가운데 곡부가 바로 이 업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 곡부는 궁내부에 속한 관서 중에서 서열이 전내부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는데, 어공(御供-왕에게 바침)에 관계되는 곡물의 조달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어료지(御料地)의 경작 ?관리 등을 맡았을 것이다.한편, 백제는 정복활동이 진전됨에 따라 사민과 개척을 활발히 하였다. 의자왕대에는 대야성을 빼앗고 그 주민 1천여 명을 서쪽지방으로 사민시킨 사례도 있었다. 백제가 웅진과 사비로 천도하였을 때에도 많은 사민이 행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 개간된 토지에는 신라가 소경을 설치할 때의 사례에서 보듯이 귀족과 호민을 비롯하여 많은 주민들이 함께 출신지역을 떠나 강제로 이주되었다. 특히 귀족들은 미개발지역에 이주하여 새로운 토지를 개간하고 소유함으로써 식읍이나 사전 등과 함께 대토지를 소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 밖에 백제는 침류왕대 이후 불교가 국가의 공인과 보호 아래서 "승려와 사탑이 대단히 많았다"고 할 정도로 크게 번창하였다. 이에 따라 사원은 왕실과 귀족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많은 토지와 재화를 소유하게 되면서 대토지 소유자로 등장하였다. 성왕 때에 설치한 국왕 직속의 내관 12부서 가운데 왕실의 불사업무를 관장하는 공덕부에서는 왕실의 원찰에 노비와 함께 많은 토지를 바치는 일도 담당했을 것이다.이와 같이 백제는 전승, 서물진상, 왕의 옹립 등과 같은 어떤 특별한 공로가 있을 경우, 그 유공자에게 조세미의 부분적인 분급권을 수여하였다. 또한 식읍을 비롯하여 국가나 왕실의 토지보유 및 새로운 토지의 개간 등으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화가 진행되었고, 아울러 사원도 왕실과 귀족들의 기진과 기탁 등에 의해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2) 농민의 토지소유삼국은 국왕을 중심으로 통치조직을 정비하고다.
한국과 유럽의 문화교류 (여행)유럽여행언젠가부터 여행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유럽여행이 되었다. 시대가 많이 변해 이제는 여행을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지고 정보도 다양해져서 과거에 비해 많이 식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의 경우엔 대학생시절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 바로 유럽이다.유럽의 매력해외여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연휴가 되면 이제 뉴스에서는 귀성객 대신 해외여행으로 북적이는 공항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적인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유럽일 것이다.대학 신입생이 되면 여름방학에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마치 하나의 관행이 된지도 십여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유럽 여행을 가는가? 에펠탑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한 번 올라가 보고 콜로세움에 실제로 들어가 보기 위해? 포트벨로(영화 ‘노팅힐’ 에서 나온 벼룩시장)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기억을 떠올리고 프라하(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과 김주혁을 기억해보기 위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빈에서 발레나 오페라, 런던에서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페레가모 구두를 한 번 싸게 사보기 위해? 알프스에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 사람에 따라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호시노 미치오(여행하는 나무의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그것은 사람의 시간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세계를 지배하는 기본 이념을 만들어낸 그리스 로마의 세계. 세계의 주요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의 성장사. 중세 암흑기를 이겨낸 르네상스의 시대.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과 그 치열했던 대결. 세계를 제멋대로 휩쓴 대항해 시대. 현대 기계문명의 모태가 된 산업 혁명. 그리고 세계를 전쟁의 포화로 몰아넣었던 1,2차 세계 대전. 이 모든 것이 유럽 대륙 안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 있던 우리에게는 활자와 사진의 2차원에 갇혀있던 역사가 유럽에 발을 딛는 순간 눈앞의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기분을 위해 유럽에 가는 것이다. 유명하거나 아니거나 모두 좋은 곳이 유럽이다. 낡은 돌다리, 쓰러질듯한 건물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고 그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한 모습이 감탄이 될 수는 있어도 유럽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동이 되지 못하는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부족해졌기 때문이다.사실 유럽 대륙은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다. 우리가 워낙 좁은 반도의 반밖에 안 되는 땅에서 살아서 그렇지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유럽 대륙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럽 특유의 그 공기는? 다른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는 것이다.위 글은 한 여행전문가의 글인 데 이는 나의 생각을 잘 대변해준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양한 문화들을 체험할 수 있고 방송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접한 유럽을 실제로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도 유럽에 가고 싶다. 과거 세계중심이었던 유럽을 밟아보고 잠시나마 한국이라는 작은 우물에서 나와 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점이 하나 생기는 데 우리도 유럽과 같이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욱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낸 통계나 집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해외관광을 통해 많은 돈을 해외로 유출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로 유입되는 관광수입보다 훨씬 많은 돈들이 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으로 오는 유럽관광객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미래학자들은 관광산업을 정보통신산업, 환경산업과 함께 21세기를 주도할 핵심 3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근래 관광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향상되어서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관광상품들을 내놓고 있는 데 국민들이 해외에서 소비하는 돈의 유출을 막을 수 없다면 외국사람들을 한국으로 모셔올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우리의 자세와 노력예전 우리 관광상품의 중심은 서울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서울중심의 관광상품에서 탈피해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인 관광자원 개발,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개발해야 하고, 전통문화 공간의 상설 공연장화, 시내 관광의 활성화, 지역특성에 맞는 관광지 개발 및 홍보 강화, 관광유형 변화를 감안한 관광상품 개발 및 홍보를 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하였을 때 경쟁력 있고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고객참여형 관광상품, 상품다양화 및 특화 관광상품 전략이 있는 데 안동 하회탈 마을이나 이천의 도자기 마을에서 직접 참여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개발되었다. 외국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정부 또한 관광진흥을 위해 정보화, 한국을 대표할 상징물 개발, 지역 특성에 맞는 유치전략 및 홍보대책 수립, 관광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관광종사자들이 서비스 정신을 강화하고 좋은 상품을 개발해야만 관광객들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이 해외관광에 나가는 돈이라니 더욱 분발해 내국인을 만족시킴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경주에서 길쌈을 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화려한 신라의 의상을 전시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 한 겨울임에도 화사한 모습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불교와 전통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관광상품전남 강진군에서는 도자기 사금파리와 도자기를 즉석에서 제작할 수 있다전통물레로 도자기를 빚는 체험장PAGE PAGE - 7 -
-육교의 개선및 개선방안--목차-1)육교란?2)육교의 문제점3)육교의 활용사례4)개선방안5)결론1)육교란?횡단보도교의 하나로 보행자의 도로횡단을 위한 다리 모양의 공작물(工作物)이다.육교의 목적보도육교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입체적으로 처리하는 시설이며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교통안전의 원활한 흐름을 확보함과 동시에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설치 목적으로 건설이 되었다.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육교모양은 다음과 같다[그림2-8-1 안국동육교][그림2-8-2동작동 봉천고개]도로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으며 사고의 위험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대로 위나 기타 도로의 위쪽 공간을 활용 하면서 설치를 한 형태이다.2)육교의 문제점조사를 하면서 가장 발견한 육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발견된 3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선 보행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측면 이였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육교의 불편함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지고 있는 공통 사항일 것이다. 육교의 이용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사를 해보았다.관악구와 동작구 일대 육교 (남현동육교 이수교육교 봉천고개육교) 3군데를 각각 3일 동안 아침 1시간 점심1시간 저녁1시간씩 보행자 수를 조사해보았다.(2007년 4월8,12,19일간) 남현동의 경우 남부 순환로 에서 사당 사거리 고가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간 부분에 육교가 설치되어있었다. 그리고 100m아래쯤에 건널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육교를 이용하는 보행자수는 각각 3,5,8명으로 거의 이용이 없는 상태였다. 반면 100m아래 보행건널목은 대량의 보행자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나머지 2개의 육교 또한 10,9,14명(이수교) 17,22,26명(봉천고개육교) 순 이였다. 인근에 위치한 보행건널목 이용자의 수에 반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은 보행자들은 약간 길을 돌아가더라도 육교의 이용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면 그 원인은 당연 높은계단 이였다.[표2-8-1] 육교의 이용량 조사남현동육교(4월8일)(다소흐림)이수교(4월12일)(약간비)봉천고개육교(4월19일)(맑음)오전)08:00~09:0031017오후)12:00~13:005922오후)18:00~19:0081426두 번째로는 도시미관의 저해를 꼽을 수 있다. 현재 [그림1-2]와 같은 신도시의 육교형태와는 달리 기존시가지의 육교형태는 위의 [그림1-1]과 같이 굵은 철제 계단식 육교가 대부분이다. 이는 곳 단지 내의 미관, 크게는 도시의 전체적인 미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세 번째로는 이런한 육교의 위험성을 들수있다. 원래 육교의 규정 높이 상태에서 도로의 아스팔트포장 등으로 인해 도로의 높이가 증가하게 된다. 이는 곧 트럭이나 기타 높이가 높은 화물 적재차량 등의 소통에 방해를 하고 심지어는 육교와 부딪히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3)육교의 활용사례[그림2-8-3] 대전 대덕연구단지 육교 [그림2-8-4] 대전 대덕연구단지 육교현 육교를 활용하거나 새롭게 개선한 사례 등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위의 두 사진은 대덕연구단지내의 보행자 육교이다 기존육교의 틀 위에 돔형식의아크릴 지붕을 설치한 형태이다. 눈이 나 비가 올 때 보행데크의 노후도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가장 큰 특징으로는 노약자나 장애인등을 위하여 엘리베이터 시설을 설치 이동의 편리성을 추구하였다.[그림2-8-5] 경기도 일산의 육교 [그림2-8-6]일본 나가사끼 육교위의 두 사진은 일본 나가사끼 육교와 한국 일산의 육교인데 두 육교의 특징을 보자면 기존 일직선인 보행계단을 나선형의 계단으로 바꾸었다. 이 역시 보행자의 이동을 최대한 고려함과 동시에 딱딱한 기존육교의 틀을 벗어난 예라고 할 수 있다.[그림2-8-7] 서울시 서초동 육교 [그림2-8-8] 서울시 도곡동 육교[그림1-1]의 육교는 서초동 예술의 전당 왼쪽에 위치한 아쿠아 아트 육교로서 육교의 도입부에 워터스크린을 설치 뛰어난 디자인을 통한 지역이미지 증진과 함께 보행자에게 보행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림1-2]은 도곡동 대도초등학교앞 육교로 이 역시 지역 미관증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육교이다.4) 개선방안지금까지 알아본 육교의 문제점 및 활용사례를 토대로 크게 두 가지 개선방안을 생각해보았다개선안의 첫 번째는 기존육교 및 신설 되어질 육교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왼쪽의 그림은 기존 육교의 굵은 철골 구조를 얇고 간결한 소재로 바꾸었다.이는 곧 지역의 이미지 개선과 함께 보 행자의 보행에 즐거움을 부여할 수있다. 색체또한 기존의 회색에서 하얀색으 로형성하여이미지를개선하였다. Deck부분에 Arcade 형성 또한 보행 자를 위함이 라고 할 수 있다.[그림2-8-9] Arcade형 육교?다음은 위의 봉천고개육교와 같은 육 교이다. 최근 신도시주변에 많이 형성 되는 육교로서 기존 보행로에서 기울기 를 서서히 형성하였다. 노약자나 어린이 들을 위해 또한 자전거나 기타 짐수레 등을 운반하기 쉽도록 설계한 육교이 다.[그림2-8-10] 보행자 및 자전거 육교?이 육교는 조경공간과 벤치 등을 설 치한 새로운 개념의 육교라고 할 수 있다 주변시민들의 공원 역활도 할 수 있는 동시에 보행도로의 역 활까지 하고 있다.[그림2-8-11] 조경공간으로의 육교?마지막으로 보행계단공간의 재구성이 다.좁고 협소하며 경사가 심했던 기존 육교의 계단공간을 넓은 Deck로 구성 하여 걷기만하는 공간이 아닌 쉼터의 공간으로 재해석을 하였다.(하지만 이 육 교는 보행Space가 충분한 지역에만 설치가 가능한 약점 이있다.)[그림2-8-12] 쉼터형 육교지금까지의 내용은 기존의 육교와 새로 신설될 육교의 활용 개선방안을 통한 문제 해결이였다. 두 번째 개선안은 육교의 철거이다. 현재 서울시내의 육교의 대부분이 1970년대 말에 설치된 것들이라, 내구연한이 끝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육교들은 철거 후 재 설치하거나 철거 후 횡단보도를 설치하여야 하는 시점에 다가왔다. 2000년에 개정된 도시계획시설기준에 관한규칙에 따르면, 횡단시설은 원칙적으로 평면횡단보도로 설치토록 개정되어 평면횡단시설의 설치가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는것을 알 수 있다.-최종개선안-1)육교철거에 따른 횡단보도 설치(교통량과 유동인구조사를 통한 신호주기 도입)2)기존 육교의 밑 부분에 횡단보도를 설치 보행자에게 선택권을 넓혀준다.
내가 생각하는 호신술솔직히 처음 호신술 수업을 신청하면서, 쉽게 한 학기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호신술 수업을 동기들과 신청을 하였습니다. 평소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또 이론수업에 쥐약인 저에게 호신술은 솔깃한 과목으로 보였습니다.하지만 수업이 지날수록 생각하게 되는 점도 많았고 운동의 여러 가지 지식또 한 배워가는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국기인 태권도도 모르고 살아왔던 제 자신이 한심스러워 보였습니다. 물론 상위 개념인 호신술을 태권도라는 무술의 한 가지 개체로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처음 호신술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가 생각하는 것은 태권도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이라면 아들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태권도장에 보내는 것이 관습처럼 행해 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신술 다시 말해서 공격과 방어라는 두 가지가 상충된 이 단어는 무었을 뜻하는 것인지우선 개념을 보자면 ‘호신술’이란 타인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상대의 폭력을 제어하여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기술을 뜻합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할때두 있겠고 그러한 상황을 통해 큰 상해나 잘못하면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신술은 꼭 물리적인 방법밖에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신 설득 다시 말해서 심리적인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생각엔 호신술이 발생한 이유는 양자 간의 의견이나 기타 다른 문제가 개입되어 서로 간에 공격 또는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것 이며 이는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급박한 상황에 직면 했을 때 침착하게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서로간의 의견을 상충한다면 큰 상황을 작은 상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최대한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힘을 가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여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