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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음악의 종류와 내용
    현대 음악 (10조)근대 음악근대 음악은 19세기 마지막 10년과 20세기 상반기의 약 20년, 즉 제1차 세계 대전 종말(1918년)까지 세기의 전환기를 중심으로 한 시기(약 30년간)의 음악이다. 이 시대 음악의 특징은 점차로 조성이 없는 음악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을 들 수 있다. 근대 음악은 그 표현 방법이나 양식이 다양한데, 크게 인상주의 음악, 표현주의 음악, 원시주의 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현대 음악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부터 1930 연대 초까지에 유행하던 신음악 경향, 1930연대에 고개를 든 신고전주의적 경향, 제2차 대전 이후까지의 세 시기를 현대 음악의 시기라고 한다.제1차 대전 이후, 당시까지의 주관적, 서정적, 조화적인 음악에 반하는, 극단적이고 비정서적이며, 불협화음적인 음악이 유행되었다. 악곡의 구성이나 악기 편성은 규모가 작아졌고, 악곡의 형식은 종래와 다른 새로운 기법이 나타났다. 이러한 음악을 '신음악'이라고 한다.신음악의 과도기적인 실험을 기초로 하여 다시 엄격한 구성감과 고전적인 질서로 돌아가려는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스트라빈스키와 힌데미트에 의해 1930연대에 시도되었다. 그 후 제 2차 대전과 파시즘으로 말미암아 많은 음악가들이 사망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받아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젊은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새로운 음악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 음악은 매우 광범위해졌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조 음악과 무조 음악이 뒤섞여 나타났기 때문에 근대 음악의 특징과 작곡가의 구분도 분명한 선을 긋기가 힘들어졌다. 현대 음악은 현대 과학에 의한 음향 기기가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음악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는데, 자연의 소리를 녹음 편집해서 만드는 구체 음악과 전자파에서 얻은 음향을 변화 합성시킨 전자 음악, 컴퓨터 음악 등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 슈톡, 하우젠, 케이지 등이 있다.● 인상주의풍부하고 다양한 화성과 음색, 묘사적인 상을 창조, 회화적인 시각.리듬은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으나 작품에 색채를 부여 (대표적인 작곡가- 드뷔시, 라벨)● 신고전주의 음악"Bach로 돌아가자" 라는 방향 하에 옛 음악 기법을 20세기 양식에 접목낭만주의가 지닌 지나친 주관성과 형이상학적 음악관에의 반발- 객관성과 형식미, 감정절제 등 고전주의적 개념의 미를 추구, 절대음악 (대표적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프로코피예프)● 무조음악장조나 단조 등의 조에 의하지 않고 작곡되는 20세기 초두의 A.쇤베르크 일파의 음악● 12음 기법조성'이라는 당시까지 유럽음악의 전통적 규칙을 따르지 않은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제2 비엔나 악파)의 음악을 지칭하는 말. 어떤 규칙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무조음악은 1920년 초에 12음기법이라는 작곡방법을 갖게 됨. 지금까지의 전통음악의 음조직을 해체하고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한 가치로서 독립시켜 새로운 음의 표현을 시도● 원시주의19세기 말의 극도의 문화적 난숙이 이루어진 가운데 굴절이 심하고 복잡한 정신생활에나 권태- 원시의 생명에 동경하여 사람들은 단순한 리듬과 루오나 고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색적 음향추구 (대표적 작곡가 - 스트라빈스키)● 실용음악 - 신즉물주의표현주의에 대한 반발. 객관적인 합목적성, 실용성을 존중 (대표적 작곡가- 힌데미트, 와일)
    예체능| 2007.10.10| 2페이지| 1,000원| 조회(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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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렬중의와 무조음악
    음열주의와 무조음악1.음렬주의의 대략적인 설명...쇤베르크(Schoenberg)와 그의 제자들인 베르크(Berg)와 베베른(Webern)으로 구성된 제2빈 악파는 12음음악(dodecaphony)이라는 새로운 음악양식을 개발하였다. 12음음악, 혹은 음열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이 양식은 기존의 장?단조 음계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음악기법으로 작곡을 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12개의 음으로 구성된 반음계를 자신이 원하는 순서대로 배열하고 이것을 음열로 하여 작품의 기초를 이루는데 음열은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의 음을 모두 사용하나 으뜸음이나 조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배열한다. 작품의 선율, 화성, 주제들은 이 음열을 바탕으로 하여 모습을 바꾸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음열은 기본음열(original) 이외에 기본 음열을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역행형(retrograde), 음정관계를 반대로 진행시키는 전위형(inversion), 그리고 전위형을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전위역행형(retrograde inversion) 등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음악은 한 옥파브의 반음계적 12음이 모두 동등하여 어느 한 음도 특별한 기능을 갖지 않는 무조적 또는 범조선(pantonal)음악이다. 쇤베르크는 모든 조성을 혼합했다는 의미에서 12음 음악을 범조성(pantonal)음악이라고 불렀으나, 전통적인 조성을 찾을 수 없어서 일반적으로 무조음악이라고 부른다. 이 새로운 음악 양식의 두가지 중요한 의미는 후기 낭만주의의 불협화음이 극단적으로 확대되고 전통화성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과 선적 대위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는 점이다.19c 후반 바그너의 반음계주의에 의해 그 극한을 이루었던 조성음악체계는 20c초 조성음악에 반발하는 새로운 작곡 기법들의 개발로 그 체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당시의 새로운 작곡기법 중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무조음악(atonal music)은 기존의 조성음악이 가지고 있던 음과 음 사이의 위계질서를 회피하고 12반음의 동등성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합시키는 시도를 하였고, 베베른은 이와 달리 엄격한 음열주의 원칙에 대단히 정밀한 대위법을 적용하여 극도로 압축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쇤베르크는 자신도 말기에는 조성음악과 무조음악이 조합된 작품을 썼다. 결국 무조음악이나 범조성 음악이라는 용어는 모두 조 중심이 명확하지 않은 음악을 말하는데, 12개의 반음을 포함하는 음열이나 set에 기초하는 12음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무조적이나 범조성적(pantonal)이지는 않는다.쇤베르크와 베르크는 인상주의에 상응하는 표현주의 음악을 이끌었다. 표현주의 역시 회화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인간의 내적인 갈등, 긴장, 불안 뿐 만 아니라 불합리와 충동 등 잠재적 의식을 무조성과 불협화음, 원시리듬, 불완전한 선율, 특이한 악기편성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쇤베르크의 , , , 베르크의 오페라 등이 대표적인 표현주의 음악이다. 표현주의는 프랑스 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독일의 일부 작곡가들에게서 일어났지만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음열의 "원형"형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2등의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음열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역행이며, 따라서 전음열의 역행형 은 원형의 복제임을 즉 같음을 주의하라) 1 ,2등의 숫자는 장 3도가 낮게 시작되는 원형의 전위(혹은 역전위) 를 표시하고, 1,2등은 원래의 음에서 시작하는 전위(혹은 역전위)를 표시한다. 네째 마디의 올림C는 음열의 원형(혹은 그 역행)이 장 3도 위로 이위된 것의 시작이다. 이 예에서 역시 주목할 점은 독특하게 간격을 배치한 시원스런 성부 짜임새, 즉 성부에 걸쳐 있는 많은 휴지들이다. 그 하여 각각의 음마다 박자를 맞추고 합주는 작은 점들의 연속이나 음의 작은 다발로 들리게 된다.베베른의 12음기법에 의한 작품은 op.17부터 마지막곡인 op.31 Second Cantata까지로서 구성면 에서 극히 단순하고 기법적인 면에서는 점묘적이지만 op.20 이후로는 작품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작품이라 하더라도(op.21음곡, 관악 5중주곡 등은 12음기법으로 일관된 작품으로서 현대 음악의 역사상 주목할 만하다.1933년 나치스 독재 정권은 유대인을 박해했는데, 그도 유대인이었으므로,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보스턴의 모르킨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다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후배 지도와 창작에 정진하다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작고하였다.미국에서 쓴 그의 작품도 많이 있는데, 그 작품의 특징은 일반이 이해할 수 있는 조성 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처음에 쓴 현악 모음곡은 G장조, 관현악 변주곡은 g단조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12음 음악을 쓰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새로운 기법은 그의 제자인 베르크와 베베른에 의해 더욱 발전하여 하나의 기법으로 정착을 보았다.쇤베르크는 1894년 쳄린스크(Alexander Zemlinsky, 1871~1942)를 만나 비로소 대위법과 작곡 상의 조언을 받게 되었고, 1897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곡 경력은 바그너, 말러,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보이는 후기 낭만주의 양식의 제1기(1895~1908), 전통화성을 무시하며 불협화적이고 범조성적인 표현주의적 제2기(1909~1914), 12음기법과 음열주의의 실험기로서 작곡활동이 잠히 중단되었던 제3기(1914~1923), 12음음악의 제4기(1923~1933), 12음음악과 조성음악의 절충시기인 제5기(1934~1951)로 분류할 수 있다. 쇤베르크의 음악적 특징을 암시하는 최초의 곡은 5부분 관현악곡 으로서 이 곡은 바그너의 와 밀접히 연관된 반음계의 갑작스러운 전조로 가득차 있고, 격렬한 감정이 내재된 표제음악이다. 다른 후기 낭만적 조성음악들로는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은 다성음악적 교향시 ,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8개의 노래 (1904~1915), 바르너의 영향이 뚜렷한 5명의 독창자, 4성부 남성합창, 8성부 혼성합창과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칸타타 가 있다.그의 작품은 더욱 반음계적이 되어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이 풍부하고, 조성이작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즉, op. 10의 전반 2악장(아직 조성적)은 피카소의 그림의 좌측부분(전통적)에 해당하며 op. 10의 후반 2악장(무조적)은 그림의 우측부분(큐비즘적)에 해당하고 있다.계속해서 쇤베르크에게는 충실한 창작기가 찾아오지만 이 시기에 그는 피에르 불레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최대의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X자유무조 양식의 걸작을 낳았다. 이 시기의 특징을 사람들은 종종 불협화음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떤 화음이 어떤 화음의 뒤에 계속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불협화음은 조만간 최종적으로는 협화음(3화음)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속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해결에 대한 거부는 1908년경부터 그후 수년간 쇤베르크의 스타일이 극도의 불안을 나타내고 죽음을 연상시키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1908년부터 1909년에 걸쳐서 스테판 게오르게 Stefan George의 시에 기초한 15곡의 연작가곡인 금지된 정원의 서(書) op. 15를 작곡했다. 1909년에는 5개의 오케스트라곡 op. 16, 3개의 피아노곡 op. 11, 모노드라마인 기대 op. 17이 이어서 작곡되었는데 그 중 마지막 작품은 1924년에 가서야 초연되었다. op. 16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독주자들의 대규모적인 앙상블로서 다루어졌다. 이와 같은 음색 자체에 대한 관심은 5곡 중 제3곡에서 분명히 나타나며 이 곡은 거의 모든 음역과 악기를 바꾸어서 계승되는 5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화음만으로 만들어졌다. 쇤베르크는 이미 이론적 연구에서 분명히 했던 하나의 원리, 즉 음색선율 Klangfarbenmelodie의 원리를 이것에서 실천했을 뿐이다.쇤베르크의 특이한 성악 취급법은 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목소리의 음영을 전시하는 , sprechstimme와 노래가 섞인 합창이 있는 을 거쳐 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한다. 는 21개의 노래로 구성된 연가곡으로 각 곡마다 반주 악기가 다르고, 성악가는 s 성서의 길 Der biblische Weg(1927)의 대본을 집필했다는 사실에 의해서 분명해졌다. 1933년 10월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그는 보스턴과 뉴욕, 그리고 1936년부터 1944년까지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바이올린협주곡 op. 36(1934~36)과 현악4중주곡 제4번 op. 37(1936)은 2개의 위대한 음열적 작품이다. 그 후 쇤베르크는 콜 니드레 op. 39(1938)나 바이런의 시에 기초한 나폴레옹에 대한 오드 op. 41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조성과의 관계 또는 조성기능을 자신의 음악에 재도입시켰다. 캘리포니아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그는 생활을 위해서 개인교수를 해야만 했다. 또 1945년에는 구겐하임재단의 장학금을 거절당했는데, 이 장학금을 받았더라면 야곱의 사다리와 모세와 아론, 그리고 몇 권의 이론서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1946년 8월 2일 천식으로 인한 심한 발작 후에 쇤베르크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으나 주사가 그의 목숨을 구했으며, 8월 20일부터 9월 23일에 걸쳐 작곡된 장려한 현악3중주 op. 45는 이 일시적인 죽음에 대한 음악적 표현이다. 이듬해에는 게토의 생존자의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바르샤바의 생존자 op. 46을 작곡했고, 1949년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 op. 47가 완성되었다. 쇤베르크의 최후의 작품은 종교적 성악곡이었다. 1950년에 그는 현대시편의 편집을 시작하였고 다윗의 시편과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첫번째 시편에 151번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그는 이 시편에 음악을 달기 시작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이 최후의 작품(op. 50C)은 미완성으로 끝났다.쇤베르크만큼 정신적으로 자극을 주는 작곡가는 많지 않다. 그의 음악은 물론 그의 수많은 저서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견고한 이론이나 예리한 심리, 그리고 약간은 빈정거리는 유머 등 어느 하나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그는 평생동안 역설을 연구하기를 즐겨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소수다.
    예체능| 2007.10.10| 15페이지| 1,500원| 조회(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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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평가B괜찮아요
    1. 들어가기처음에 가졌던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경제와 역사에 관한 작가의 통찰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즉,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닌,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책이다. 자료에 대한 해석조차 다른 학자의 관점을 인용하는 작가의 결벽증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50페이지를 넘기면서 작가의 의도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자에게 자신의 통찰을 강요하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를 보는 통찰력을 갖게 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이 책은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요 사건과 주목할 만한 현상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보여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작가가 제시한 많은 자료들을 나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는 역사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역사가 가지는 속성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즉 소수(少數)의 역사, 투쟁(鬪爭)의 역사, 합리화(合理化)의 역사, 기만(欺瞞)의 역사, 반복(反復)의 역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2.1. 소수(少數)의 역사우리의 역사는 소수의 역사, 즉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역사를 주도해 왔으며, 불행하게도 그들은 한 사회의 극히 적은 숫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힘없고 가난한 다수의 사람들은 어렵고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 사회의 혜택과 특권을 누리는 것은 언제나 ‘소수’이다.길드 제도가 붕괴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장인과 직인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도제→직인→장인이 통례였다. 이제 도제→직인으로 변했고, 거기서 끝났다. 노동자가 고용주로 올라가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반면, 특권을 가진 소수는 특혜를 받았고, 그 덕분에 더 쉽사리 장인이 됐다. 보통 도제는 3년간 도제살이를 하고 걸작품을 제출하고 25리브르를 내야 하지만, “만약 장인의 아들이 그 직업을 시작하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다른 종류의 엔클로저가 있었다. 양을 치기 위한 엔클로저였다. 양털 값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영주들은 농경지였던 자신들의 토지를 양 치는 목장으로 바꿈으로써 더 큰 화폐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영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토지에서 살던 농민들은 직업과 생계를 잃었다. 양을 돌보는 데는 농사를 지을 때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필요했다. 생계를 꾸릴 수단을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들은 법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소송비용을 낼 수 있는 부자에게나 손쉬운 일이어서 소작인들에게 승소할 수 있었던 경우에조차 싸움을 계속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 돈 있는 영주는 소작인들이 포기할 때까지 소송을 끌고 갈 여유가 있었다).한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시련 앞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언제나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 곧 노동자와 농민들이다. 봉건 제도 아래서 농민들은 자신의 생계나 안정보다는 영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 상호 간의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농민에게 상당히 불리한, 불평등한 계약이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땅(토지)의 주인은 그 땅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땅의 흙 한 줌 만져보지 않은,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이다.법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고 그럴 듯하게 말하지만, 위의 기록을 봐도 그렇고 요즘 우리 사회를 봐도 모든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는 못한다. 법은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보호하고 싶은 소수의 사람 편에 서 있다. 처음엔 억울한 마음에 소송을 준비했던 사람들도 결국엔 더 많은 상처와 손해만을 입고 포기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부자들의 횡포 앞에 그저 무릎 꿇고 마는 것이다. “오랫동안 농민은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문장이 머릿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2.2. 투쟁(鬪爭)의 역사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가난한 사람들, 하류 계층은 된 사람들은 대부분 현상 유지가 되지 않으면 정말로 사회 질서 전체가 붕괴할 거라고 생각했다).이로 인해 특권층과 하층 계급 사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여,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순박한 사람들은 상류 계층의 횡포에 대해 항의하게 된다. 배우지 못한 그들은 조리 있게 자신들의 입장을 말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고, 그들의 몸부림은 거칠고 위협적인 존재로 비쳐지게 되는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권력과 힘을 가진 특권층과 하류 계층의 싸움에서 패자는 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직인들은 장인이 돼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분개했다. 그들은 직인만의 조합을 조직했다. 이런 직인 조합은 요즘의 노동조합처럼 조합원의 임금을 높이려고 애썼다. 그리고 요즘의 노동조합처럼 그들의 이런 노력은 장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장인들은 시 당국에 호소했고, 시 당국은 ‘친절하게도’ 직인 조합이 불법이라고 선언했다).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려고 하지만, 이것은 기득권층에게 있어 그저 사회의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골칫거리일 뿐이다. 위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합리적인 절차를 무시한 장인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직인 사이에서 시 당국은 장인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이것은 단지 15세기 유럽의 문제만은 아니다.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기존의 질서에 저항하여 그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혜택이 하층민에게까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에나 기득권층은 형성되게 마련이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전에 자신들이 경멸했던 그 ‘특권층’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다.봉건 영주에게서 도시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는 상인, 장인, 노동자 할 것 없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모든 도시민이 힘을 모았다. 그러나 승리의 열매는 상층 계급에게 돌아갔다. 하층 계급들은 단지 알맞도록 만들어진 교회 교리가, 신흥 중간 계급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힘과 충돌했을 때, 굴복한 것은 교리였다. “고리대금은 죄”라고 종전대로 말했지만,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이라고 덧붙인 새로운 결정과, “고리대금을 강요하는 것은 죄지만, 특별한 경우에는……”이라고 말한, 종전과 다른 결정을 통해 서서히 고리대금에 관한 성가신 교리는 변하는 상황에 맞춰 수정됐다).위의 기록에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역할이다. 한 사회를 정신적으로 이끌어야 할 교회가 막대한 부를 가지고 권력을 휘둘렀다는 자체가 모순이지만,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 교회가 행한 일들은 그들의 존재가 사회에 끼친 해악을 짐작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정치적인 힘은 중세 유럽처럼 막강하지는 않지만, 부와 권력을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서로를 헐뜯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다음으로, 권력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지 위해 행한 합리화의 과정에 주목할 수 있다. 고리대금을 하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압박하면서 막상 자신은 고리대금업으로 수입을 늘린 교회의 모습은 말과 행동이 다른, 요즘 우리 사회의 권력층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교회의 경제적 수입을 위해 교리를 바꾸고, 기득권층의 이익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달라지는 사회의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2.4. 기만(欺瞞)의 역사대학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고 알아 왔던, 우리 사회와 역사에 관한 일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현상을 보는 기준을 세우고,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형성되어야 할 나이에, 우리는 거짓된 역사책을 읽고, 왜곡된 역사를 배웠다. 과거의 일은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 위조된 역사를 배웠다는 사실은 모멸감까지 느끼게 했다.십자군 운동의 진정한 힘과 그것을 이끈 활력은 특정 집단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주로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집단은에 관한 기록들이다.루터와 그를 따른 종교 개혁가들은 지배 계급의 지지를 잃게 되는 일, 즉 위험한 평등주의 교리를 설교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루터는 억압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성공의 기회를 망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분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농민 반란이 독일에서 일어나 널리 퍼졌을 때, 그는 반란을 진압하는 것을 도왔다. “나는 언제나 반란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반대할 것이다.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천민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무리 악할지라도 정부가 존재하기를 하느님은 바라실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이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하셨다”고 부르짖었을 때, 루터는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귀족들에게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귀족들을 격려했다. “폭도를 죽이는 사람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비밀리에 또는 공공연히 때려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찔러 죽여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투쟁에서 죽는다면 어느 누구보다 숭고하게 죽는 것이다.” 이렇듯 루터가 성공한 한 가지 이유는 그가 특권층을 내쫓으려고 시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에 대한 종교적 반대는 성장하는 국민국가의 이익과 일치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역사 교과서에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에 맞선 의로운 투쟁으로 묘사되어 그들의 초상화까지 실려 있다. 그러한 종교개혁이 신흥 중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건제의 요새인 교회를 공격한 이권 다툼의 하나였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것이 없다는 허탈감을 안겨 준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권력과 부를 가졌던 교회나,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을 위해 종교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진 신흥 계급의 투쟁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2.5. 반복(反復)의 역사다음은 1989년에 출판된, 시인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입』에 실린 ‘안개’라는한다.
    경영/경제| 2005.04.13| 8페이지| 1,500원| 조회(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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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과 사회(포르노의 고찰)
    포르노에 관한 고찰성적인 첫 경험을 할 때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순간의 열정일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일까? 사람에 따라서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예전에 보았던 포르노 영화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정말로 나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되어 있는 성지식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나의 첫 경험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을 보고 따라하며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 나도 그런 배우처럼 흉내내며 어느새 익숙해져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학교에서 곱셈을 배워 계산에 썼던 것처럼 그것을 보고 난 일상에서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나의 인생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성생활에 포르노는 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된 것일까? 포르노는 도대체 무엇일까?우리가 흔히 포르노(pornography)라고 칭하는 단어는 원래 ‘매춘부 또는 전쟁에서 포로가 된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porne)와 ‘그림 이나 묘사라는 단어’(graphy)의 합성어이다. 어원상으로 묘사의 대상이 그런 여성에 한정된 예술이라면, 이는 주로 남성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발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 도중 포로로 잡힌 여성을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로 여겼으므로, 이를 묘사한 것 자체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현역병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사기를 충만시킬 수 있는 도구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요즈음의 연령층으로 말하면 입대하기 전의 대학생 또래부터 제대 후의 예비군들까지가 해당될 것이다.나중에는 포르노의 의미가 확장되어 포로가 된 여성의 묘사만이 아니라 성욕을 자극시킬 의도로 표현된 글이나 그림을 모두 칭하게 되었다. 포르노의 기능도 사기의 진작에서부터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의 불만족을 위로하기까지 다양해졌다. 17세기 초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막부를 설치하고 실권을 잡은 후 가장 염려했던 것은 경제력이나 군대가 있어도 실권을 잡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불평을 위해서 개간한 곳이 바로 유곽이며, 그 곳에서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춘화가 가장 돈 많고 힘 있는 계층들의 애완 독점물이 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포르노 비디오가 유행하였다.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장급 여관에서는 손님의 의향하고는 상관없이 방영된 곳도 있었고, 문화 비디오라고 여길 정도였기에 대낮에 여관을 찾아갔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비디오 제품들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던 그 당시, 왜 불법으로 규정된 포르노가 적극적으로 규제되지 못하고 암묵 속에 방치되었을까는 대학생 정도라면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정부의 실권자가 정통성을 유지했더라면 젊은이들의 욕구 불만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곧 포르노란 현재까지도 어떠한 특정 계층을 위해서 존재해 오고 있다. 여성보다도 남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한 젊은이들의 특권으로 여기는 경향도 강하다. 그래서 비디오방에서 ‘빨간색 테이프’를 성인이 즐겨 본다면 퇴폐 문화를 즐긴다고 평하겠지만, 청소년들이 골라서 보면 탈선이라고 할 것이다.다음으로 부자와 빈자 간에도 포르노를 감상하는 권리가 달라진 것 같다. 해외여행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던 1970년대는 일본 TV 방송의 전파가 우리나라 서남 해안까지 타고 왔기에 여유 있는 사람들이 부산의 해운대 지방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했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나체의 상태라도 음모가 노출되지 않는 조건이라면 방송에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이를 휴가 도중 즐기는 것을 그들은 특권으로 여겼을 것이다.포르노는 또한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불평등 관계도 반영한다. 옛날에 호주의 한 항공 회사를 상대로 태국인들이 분개하는 시위를 했던 기사를 읽었었다. 이유는 그 항공 회사가 태국으로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태국의 젊은 여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광고물을 게재하여 마치 태국에 오면 즐길 수 있다는 암시를 주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약자가 이용되었듯이, 현대의 포르노는 약자와 강자간의 불평등 및 상업성이 문제시되기도 한다.내용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많다면 예술적인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얻는 것이란 인간적인 그리고 잃는 것이란 비인간적인 요소를 뜻한다. 비인간적인 요소를 토대로 작품이 제작된다면 상업주의에 입각하여 작품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서 마땅하다.비인간적인 요소란 한 마디로 인간을 차별하는 내용을 말한다.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생명을 경시하고, 여성을 종속화 시키고, 유색인을 비하하고, 아동이나 노약자를 학대하는 등의 요소에서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경우에는 작품을 감상하지 못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 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그러한 작품을 많이 감상하는 사람들은 작품의 내용에 동조하는 경향이 어는 정도 나타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관계를 자주 갖고 성적 환상을 빈번히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도 연애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는 연구 결과가 그 예일 것이다.앞에서 말했듯이 문제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부터 이 비인간적인 요소를 간파하기 어렵다는 점이며, 이 때문에 볼 권리를 제한하는 일보다 작품의 제작을 제한하는 일이 더 현명하다. 교묘하게도 관객들은 다양한 감각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되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제작자들은 돈을 벌지 못한다. 곧 제작자들은 법규를 어기면서까지 그러한 작품을 시도하게 되고, 관객들은 비싼 요금을 내며 사회의 눈을 피하여 두근두근한 심장 고동 속에서 쾌감과 함께 약간의 수치심과 죄의식도 얻는다. 그런 작품을 비싼 값에 관람한 사람일수록 그 작품이 비싼 돈을 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으므로 제작자는 가격을 비싸게 매기면서 이중 이득을 본다.반면에 그런 작품을 감상할 의향이 없었지만 만약 우연히 그것도 어릴 때에 보았다면 쾌감은커녕 불안, 수치심, 죄의식 등만이 심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언제 처음으로 포르노에 접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중학 시절이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고 또한 초등학교 시절도 많았다는 설문도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로 인하여 수치심이나 죄의식, 충격 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답했다. 어떤 학생들은 주인공들처럼 부모의 동물적이고 더러운 관계를 통해서 자신도 태어났다고 믿고 부모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럽다고 표현했다.
    예체능| 2005.04.13| 3페이지| 1,0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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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화양연화를 보고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내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인가?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화양연화를 보고 잠시 아직은 짧지만 그동안 내 학창시절의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생각해보면 아마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힘들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행복했었던 그시절이 지금의 나에겐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아픈만큼 성숙해 진다고 한다. 시련이 많을수록 더 자란다고 한다. 화양연화도 이런 역설적인 표현의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의 홍콩이란 배경에서 이루어진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스토리, 그리고 어두운 배경을 넣고 있다.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가 않다. 단순한 구성이다. 다만 영화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나누어 보자면, 만남, 사랑, 이별, 회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만남이 영화는 현재로부터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남편과 함께 이사를 온 첸과 부인과 함께 이사를 온 차우는 우연히 각각의 이웃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첸의 남편은 자주 일본출장을 가고, 차우의 부인은 직장에서 늦게 오기 일쑤다. 각자의 배우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인해 첸과 차우는 서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국수를 사들고 가는 첸, 그리고 만두를 밤에 홀로 먹고 있는 차우의 모습에 이들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한번은 첸이 옆집 구씨에게 신문을 빌리러 갔는데 차우를 만나게 되고 둘다 신문의 연재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공통점을 찾은 둘은 점점 친해지게 된다.사랑차우는 연재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첸은 옆에서 아이디어를 내주면서 서로 자주 만나게 된다. 둘은 이렇게 서로 오가면서 뭔가 낌새를 눈치채게 되고,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그 과정을 따라해 보게 된다. 먼저 남자가 여자에게 바람피자고 했을 경우, 그 다음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람피자고 했을 경우로 나눠서 둘은 예상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첸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첸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현실을 인정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여자였다. 그리고, 이사건으로 인한 둘의 외로움은 커지게 되고 더욱 서로에게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서로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이별둘의 사랑은 더욱 커져가고, 비오는 밤, 차우는 첸에게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차우는 싱가포르로 떠난다는 말을 하고 이별 예행연습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회상차우가 떠나고, 첸은 차우를 찾아가게 되지만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게 되고, 첸은 홍콩으로 돌아와 전에 살던 집을 사게 된다. 차우도 집 주인에게 인사를 하러 오지만, 집 주인은 이미 떠나간 상태고, 집에 살고 있는 첸도 만나지 못한채, 떠나오게 된다. 차우는 캄보디아의 사원으로 가서 벽의 구멍에다가 무언가를 속삭이고 흙으로 덮어놓는다. 아마도 “우리의 만남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때에 나는 당신을 만나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이 영화는 내용적으로는 느린영화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빠른 영화이다. 롱 테이크를 쓰지 않고 짧게 짧게 장면을 넘겨 시간의 흐름을 빨리 했다. 차우와 첸이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 내가 이부분을 처음 봤을때의 시간의 흐름은 동일 동시인거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땐 뭔가 다른게 있었다. 스테이크를 먹을때의 화면은 연결된 화면같았지만 첸의 옷이 달랐다. 즉 날짜가 지났다는 것이다. 또 스테이크를 먹고 난 후 집에가는 장면에서도 첸의 옷도 또 달랐다. 그것은 두 남녀의 만남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영화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비출 때 직접 비추지 않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서 촬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에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 집이면 문틈, 그리고 복도, 철창, 커튼 등 여러 가지의 것들이 카메라와 인물 사이에서 가로막고 있다. 이는 그들을 보는 우리와 그들과는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우리 일반인들은 이들의 가슴아픈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배우들의 대사는 절제된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속으로 삭이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서로의 배우자들의 흉내를 내보면서도, 절제된 말투로 하고 있고, 마지막의 이별할 때에도 감정을 억누르며 말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절제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더욱 애절하게 다가왔다.영화는 특정장면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같은 음악이 흐른다. 첸이 국수를 들고 가고, 차우가 만두를 홀로 먹고 있는 장면에서 특히 주목했다. 이들의 외로움을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둘이 마주치고 지나갈 때, 서로의 아픔을 슬로우 모션과 음악을 통해 강조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주 나오던 첼로연주 음악은 이들의 슬픈 사랑을 잘 대변해주는 음악이다. 라디오에서 화양연화라는 음악이 흐르고, 이둘은 벽을 사이에 놓고 무슨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둘 사이의 벽은 둘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영화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날씨는 항상 우중충하고, 또 비가 오고,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맑은 날은 찾아볼 수 없다. 방안의 조명도 어둡다. 이 조명들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어준다.영화는 전반적으로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영화이다. 나또한 처음 봤을땐 지루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보니 내용도 이해가 되고, 또 주인공들의 영문모를 행동들도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첸과 차우는 그들의 배우자가 만나서 할거 같았던 일, 그리고 첸이 남편이 외도를 밝혔을 때 할말, 그리고 첸, 차우의 서로간의 이별에 대해 예행연습을 했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 그냥 단순히 알고 싶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따라했던 것들이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그러한것들을 했을 것이다. 또, 실제에 있어서의 충격을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인문/어학| 2004.05.11| 3페이지| 1,000원| 조회(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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