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최근 들어 오늘날의 가족이 미래사회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가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집단으로 존재해 왔지만, 그 구조나 기능 등은 항상 시대와 환경, 그리고 문화적 변화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 사회는 더욱 다양화되면서, 가족의 형태나 기능, 그리고 구조도 더욱 복잡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다양한 변화를 나타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확대가족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혼, 재혼, 독신가구 등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무자녀가족이나 미혼동거형태도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분위기속에서 가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바꾸어서 새로운 가족제도를 형성해나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인 대가족이나 산업사회의 핵가족형태가 더 이상 보편적이거나 이상적인 가족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족이란 무엇이고 어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러한 미래가족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하자.Ⅱ. 본론1. 가족의 의미(1) 가족의 개념정의)1) 형태적 측면: 가족이란 전통적으로 혼인, 혈연 및 입양을 통해서 이루어진 관계자들의 집단이며, 이들은 의식주의 해결을 공동으로 하고 정서적 ? 정신적 유대와 공동체적 생활방식을 갖는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 협의적 개념보다는 혼인, 혈연, 입양 외에도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서 기타 관계의 사람들이 지속적인 연대의식으로 일상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집단까지도 포함시키는 광의의 개념이 더욱 유용하다고 본다. 이것은 역사적 ? 계층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족의 형태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이라는 단어는 학술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어휘이다. 일상적으로는 집이나 가정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일상적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은 식구라는가족 밖의 경제체계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분석하는 시도는 했으나 경험적 검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가족을 지나치게 의존적인 변인으로 본ㄴ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즉 친족, 재산, 국가, 계급 등과 연관된 다른 제도의 시대적 구분에 따라 가족의 특징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은 가족의 자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③ 여권론적 관점: 여권론자들도 기존의 가족에 대한 가정 또는 이해에 대해서 비판한다. 즉, 견고하게 불변하는 성별 분업, 예컨대 생계유지자인 남편과 전업주부이고 어머니인 아내로 이루어지는 가족만이 유일한 형태이고 그것만이 바람직하고 합법적이고 기능적이라고 보는 단일적 시각에 대해 비판한다. 또한 가족의 제반 배열체계가 불변의 것으로 보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서적인 활동과 수단적인 활동이 상호 배제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며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을 비판한다.3) 가족사적 접근의 관점앞에서 논의한 비판적 시각은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지 못하는 제한점을 갖고 있고,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접근방법이 가족사적 접근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가족을 시간적 변화의 관점에서 특정 사회적 ? 문화적 맥락과 연관시켜서 검토하게 하는 방법이다. 오늘날 가족사적 접근방법은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의 두 개 영역으로 나누어서 논의될 수 있다.① 연구대상: 연구대상과 관련된 연구는 대강 두 가지의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변동과 가족과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분석한 것과, 다른 하나는 가족조직 또는 가족역할의 변화가 가족관계의 질과 가족 내의 역동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전자의 연구에서는 산업화로 인해 도시나 공장지대로의 이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친족관계는 지속되었고 오히려 친족은 새로운 환경에의 정착에 도움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경제적 도움뿐 아니라 이주를 조직하고 직업을 알선하고 정착을 지원해 주었다는 것이다. 후자의 연구에서는 현대가족은 사적화되고 가정 가르치며, 그리고 특정문화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각종 기술을 익혀주는 사회화를 담당한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은 일생동안 계속되는 것이지만, 특히 어린시절의 가정환경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애정기능가정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에 애정을 가꾸어가는 곳이다. 가족은 구성원들에게 사랑과 이해 및 안전을 보장해주며, 수용적이고 친밀하며 지속적으로 애정이 넘치는 가정분위기에서 함께 생활한다. 특히 오늘날 가족간의 애정은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가 초석이 되고 있다.(4) 경제적 기능가족의 경제적 기능은 생산기능과 소비기능으로 나누어지며 가족은 경제의 기본단위로서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집단이다. 산업화로 인하여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어 생산기능이 약화되고 소비기능이 강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소비기능은 가족 내에서 생활물자를 소비하는 기능을 말하는데, 근대가족 특히 도시가족은 단순한 소비 공동체라고 불릴 만큼 소비기능의 비중이 높다.(5) 정서적 기능가정은 가족들의 정신적 긴장을 해소시키고 안정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은 고도의 도시화, 산업화, 대중화의 상황 하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심신의 긴장이나 피로를 피하기가 어려워져 과거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6) 지위부여의 기능어린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정식으로 하나의 사회성원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처럼 가족에서 합법적으로 출생한 개인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또한 결혼에 의해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면, 남편이나 아내라는 새로운 가족역할이 부과되고 사회로부터 진정한 성인의 지위를 획득하도록 한다. 또한 자녀출산은 아버지나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7) 교육기능전통사회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기술과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및 예의범절과 도덕윤리를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학교를 비롯한 2차적인 교육기관이 자녀의 지식과 기술을 학습시키고 가정은 주로 도덕교육과 예절 동거의 유형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① 라이너스 담요형동거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매우 의존적이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동거자 중 강한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되면, 동거관계에 좌절을 느끼고 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동거관계가 청산되면, 불안한 쪽은 상처받기 때문에 자존심이 더욱 위축되고 강한 쪽은 이것 때문에 죄책감에 빠진다.② 해방형부모의 보호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편으로 동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우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전통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동거를 함으로써 부모나 종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해방감을 누리고 있다.③ 편의형동거관계에서 한 사람이 베푸는 입장이고 상대방은 받는 입장인 경우이다. 이 유형의 동거관계에서는 남성은 성적 만족과 가사노동 부담을 덜 목적으로 동거하게 되고, 여성은 애정을 주고 받고 가정을 관리하며 내심 법적으로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결혼을 표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④ 실험형이 유형에서는 두 사람의 인성이 비교적 성숙하고 결혼과 유사한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성실한 동기가 있다면, 동거는 결혼을 위한 실험무대가 될 수 있다. 동거생활이 잘 이루어지면 결혼이 성립되고 동거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면 헤어지며, 결혼이 성사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서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4) 편부모 가족편부모 가족은 별거, 사별, 이혼, 미혼모 등의 사유로 인하여 부모 중 한쪽만 있거나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모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발생되는 가족이다. 편부모 가족은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부모역할 지원의 문제와 배우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을 지원받지 못하는 어려움 등을 들 수 있고, 자녀의 입장에서는 양성의 부모로부터 얻을 수 있는 성역학 모델의 부족으로 성역할 사회화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편부모 가족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족원 스스로가 화, 해외유학의 자유화가 그 요인이 되고 있다. 주로 경제적 도전으로 부부가 떨어져 살게 되었고, 부부 중에서 어느 한쪽이 일정 기간을 단위로 통근하는 주말부부, 혹은 주말부부의 형태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가족과 일시적으로 별거를 하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별거를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의 경제적 부양자로 직장을 지속하려고 전출을 하게 디면, 대체로 수입이 더 좋거나 승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부모 자녀가 모두 함께 동거하면서 경제적으로 협력한다고 개념 정의를 할 수 있지만 현대인들은 직업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옮겨 갈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동거라는 요인에 의한 가족 정의를 수정 ? 보완해야 한다. 이제 현대 가족의 정의는 공동주거체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정신적 유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10) 무늬만 부부: 심리적 별거 가족우리 대부분은 가족 속에서 태어나서 가족 속에서 자라며 가족 속에서 죽는다. 그러나 그 가족 속에서 꾸려 나가는 우리들의 일생에 걸친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한 조개껍질도 뒤집어 보면 텅 비었듯이, 구조적으로 부부 및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라도 실제로 가족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위기 경향적인 가족이 많다. 부부 또는 가족의 기본적인 기능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정서적이든 육체적이든 부부관계의 기반이 될 친밀성의 상실로 인해 여러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들이 이혼은 선택하지는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이혼이라는 구조적인 해체 대신에 한 지붕 아래에서 남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11)독신가족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추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젊은이들의 독신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결혼시기도 점점 늦추어지고 있다. 즉 혼자 미혼으로 지내다가 마땅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둑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독신생활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 한다.
紀弦 (기현)중어중문학과 4년 최동훈중어중문학과 3년 경수정. 작가소개허베이성(河北省) 출신으로 뒷날 상하이(上海)와 양저우(揚州)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본명은 루위(路逾)이며, 후에 필명을 지셴(紀弦)으로 바꾸었다. 쑤저우(蘇州) 미술대학 출신인 루이스는 21세 되던 1933년 12월에 시집 《이사시집(易士詩集)》을 출간하였다.그의 생평과 詩作 시기가 크게 3分 된다. 河北省淸苑(하북성청원)에서 출생하여 北京·武昌·南京·上海·日本東京·昆明·香港 등지를 전전하면서 학업·시업·직업을 위해 고생했던 1913년에서 1948년까지 35년간을 대륙시기로, 1948년 11월 대만으로 건너와 1976년 미국 이민까지 28년간을 대만시기로, 1976년 12월부터 1992년까지 15년간을 미국 이민시기로 나뉜다.그는 대륙시기에 자신의 시를 《摘星的少年(별따는소년)》과 《飮者詩 (음자시초)》에 나눠 작품을 수록하였다. 《摘星的少年(별따는소년)》은 그의 서른살 이전의 작품으로 대부분 서정적인 자유시이고, 《飮者詩 (음자시초)》는 서정적인 자유시이지만 격동하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사실적인 비평과 주지적인 경향의 시가 대부분이다.대만시기에는 대만에서 1953년 2월 《현대시사(現代詩社)》를 설립하고 중국 현대시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83명의 시인들을 규합하여 新詩의 現代化 를 추구하여 종전의 감정 위주에서 지성 위주의 시풍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50년대초 대만에 일고 있는 반공일변도의 정치시에 대한 반동으로 30년대초 대륙에서 시도되었던 상징시와 현대시를 재현한다. 《現代詩社》가 제창한 현대시운동은 50년대중후반의 대만을 휩쓴 시단의 충격이었다. 우선 초현실주의의 수법에 의한 난해의 기풍과 이미지즘의 추구에 따른 건조화, 그리고 형식의 과감한 파괴가 몰고 온 해이와 지성의 단순추구현상 때문에 신시는 날로 현실과 민중으로부터 괴리현상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공업사회에 알맞은 진실하고 엄숙한 현대시를 제창하였다.그는 중국 대륙보다는 대만에서의 활약상이 더 크기 때문에, 대륙보다는 대만에서 인정받는 현대시인이다.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1935년에 《지나온 목숨(行過之生命)》, 1937년에는 《화재의 도시(火災的城)》, 1939년에 《구름을 사랑하는 기인(愛雲的奇人)》, 《슬픈 날(煩哀的日子)》, 《불후의 초상(不朽的肖像)》을 발표하였다. 현대시 운동에도 열정적이어서 1934년에는 혼자 《화산(火山)》이라는 시 전문지를 창간하였으며, 1936년에 《채화(菜花)》와 《시지(詩誌)》를, 1944년에는 《시영토(詩領土)》를, 1948년에는 《이단(異端)》을 간행하였다.지시엔은 중국 대륙에서 9권의 시집과 7종의 시 전문지를 간행하였는데, 9권에 수록된 시들을 대만으로 건너온 후 《별 따는 소년(摘星的少年)》과 《음자시초》 등 두 권에 총 344편을 나누어 재간행 하였다. 그 시들은 꿈과 사랑, 그리고 술과 자연을 자서전적으로 노래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아한 정서를 저속하지 않은 시어와 청렴한 이미지로 표현하여 결코 난해하지 않은 현대시이다.시집으로는 《무인도》 《지센(紀弦) 시선》 등 10여 권과 시론집 《신시론집》, 《지센 논집》 등이 있다.. 작품소개{ (배){{{{{{{;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慂{{{ 난 파도가 용솟음치는 육지를 항행한다.{{{{{{{{;내 파이프 연기를 뿜으면{{{{{{{{{� 배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로 노래한다.{{{{{{{旅{�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순위(順位)는 `인생(人生)'이란 중량.-----〈濱 樹(乙集)〉♧ 이 시는 명상(冥想) 속에서 터득한 인생의 한 이치를 상징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의 제재는 담배와 배이며, 주제는 '항해와 같은 인생의 중량'이다. 2연으로 이루어진 소곡(小曲)에 속하는 자유시로 배와 나의 이중적인 이미지가 교묘하게 대비되어 제시된 시이다. 즉, 파이프를 입에 물고 인생을 사색하는 작자의 모습이 작품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그것은, 작자의 시상이 파이프로부터 발상 되고, 그 객관적 상관물로 배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는 담배 파이프가 계기가 되어 배로 발전하고 배의 화물, 여객은 다시 인생으로 발전되면서 배의 항해와 인생의 영위, 배의 화물과 인생을 살아가는 일 등이 서로 연관되면서 입체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인생 문제를 배의 항해에다 연관시킨 서정시로, 인생의 어려움과 벅참을 말하고 있다.이시는 고교 2차교육과정에 반영된 시이다. 번역본이 실렸다.{{{{ (이리의 독주){{{{{{{{{{{{{� 나는 홀로 광야를 달리는 한 마리 이리.{{{{, {{{{{{{{� 일찍이 안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탄식은 없다.{{{{{{{{{{{{ 소름 끼치도록 처절한 육성을 내어{{{{{{{{{{,저 텅빈 천지를 흔들어 놓고{{{{{{{{{{{,천지가 온통 벌벌 학질을 앓도록{{{{{{{{, {{{{{,쏴∼쏴∼ 찬 바람을 일으킨다. 쏴쏴쏴쏴{{{{{{{� 이것이 바로 한 종류의 만족이다.♧ 광야에 질풍을 일으키면서 독왕독래하는 한 마리 이리의 생태를 쾌재로 그린 작품이다. 紀弦의 1964년 작품으로 그의 일생과 문단사적 성격, 그리고 그의 시풍을 가장 전형적으로 표현한 단시다. 지시엔은 80세가 가깝도록 독래독왕한 시인이었는데, 동물로는 이리 , 식물로는 빈랑수 에 스스로 비유했다. 이 시를 보면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간 후){{{{{,바람이 지나간 밤 하늘,{{{{{{{{{{ 축축한 수채화 같은 몽롱한 달{{{{{{{,저녁때에 나물국엔{{{{{{{{{ 쓸쓸한 느낌이 감돈다------〈風後〉의 일부古捲 (옛것){{{, 깊고 깊은,{{{{{{{{ 오래된 골목에{{{{{{{� 7, 8채의 집이 숙이고 있네.{{{{{{{,꼭 갇힌 까만 사립문,{{{{{{{{{{, 주인처럼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없는 듯,{{{{{� 암담하다.{{{{{{{{, 은둔자가 높은 담벼락 밖으로 내밀어,{{{{{{{{, 봄에 꽃이 핀 보랏빛 등나무,{{{{{{� 지금은 파랗네.{{{{{{ 곱추된 사내가{{{{{{, 오향 말림을 파는 방울로,{{{{{� 황혼을 흔들어 떨군다.----- 〈古捲 No.2〉의 일부♧ 이 두편 모두 1933년 작품이다. 단시와 산문시, 곧 농출과 산만의 대조적인 형체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매우 백화적인 시어와 사물을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방법과, 서정성을 띈 시들이다. 가치 판단이 없는 순수감각으로서 시를 쓴 느낌을 준다.最後的都市 (최후의 도시){{� {{{{{�장마철. 그리고 마지막 도시{{{{{{{{{{{{비약적으로 기형적으로 번창해온{{{{{마지막 도시{{{{{{{장마철은 아주 우울하다{{{{{{{{{{{,마지막 도시의 도로를 걷고 있는,{{{{{{{{{{나의 우울함은 장마철과 같다{{-{{-{{-{{{{{,철도―하류―철도―멀고 긴 고속도로,{{{{{{{{{{{{{{{{,남중국의 나무지도에 그려진 유랑의 포물선,{{, {{{{-{{{�내일, 또 철도―바다와 바다.♧ 紀弦의 마치 중국의 남단에 서서, 장처 벌어질 풍전등화 같은 마지막 도시 를 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의 형상은 장마철에서 얻었고, 意境은 장마철과 마지막 도시 중간에 교착되어 있다. 시어는 상징을 위주로 하였다. 雨季로 우울한 시대를 상징하고, 포물선으로 유랑하는 중국인을 상징했으며, 마지막엔 아주 긴박하게 내일, 또 철도―바다와 바다 라고 암시하고 있다. 도대체 바다의 저쪽은 어디일까?讀舊日友人書 (옛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 옛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 많은 관현의 음악이 가슴속 솟구쳐 오른다..{{{{{{{{{{, 먼저 맑은 나팔소리가{{{{{{{{{{{, 쪽빛 작은 새들이 날개를 치듯,{{{{{{{{, 저 갖가지 악기의 화성은{{{{{{{{{{� 페르시아의 카펫처럼 아름답다.-----〈讀舊日友人書〉에서 절록♧ 미국으로 건너간 뒤의 1977년 작품이다. 여기에 쓰인 백화와 인상적이고 즉물적인 묘사와 비유, 그리고 평이한 산문적 구성과 서정의 바탕은 그의 초기시, 심지어 습작기와도 별로 다를 바 없다.過程 (과정){{{{{{, {{{, {{{{{, {{{{{{�{{{{{{{{{{{, {{{{{{{{,{{{{{, {{{{{{{{{{{{{�{{, {{{, {{{{{{{{,{{{, {{{{{�(中略){{{{,{{{{{{,{{{{{,{{{{{, {{{{{{{{{{,{{{{{{{{{{{{{{{{{,{{{{{{{{{{{{{{{{�이리처럼 가는 다리로, 깡마르고 길죽한 그림자를 균열된 대지에 던졌다.황량한 들에는겨우 몇그루의 선인장이나 몇포기의 잡초가 살고 있지만그것들 모두 마르고 초췌해서 식물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듣건대 천년전, 여기는 본래 옥토,오랜 가뭄으로 인적이 끊겼다.(중략)언제부터인지이 괴상한 녀석은 여기를 지나는 유일한 나그네그 녀석은 지팡이를 집고, 천천히 핏빛의 낙조로 걸어가서,저녁 노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아치형의 지평선에서 사라진다.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저 홀로 가는 모습은얼마나 거룩한 긍지인가?
{익산 왕궁특수지역 축산폐수 문제1. 왕궁 축산폐수 문제의 발단과정익산시 왕궁면 온수리와 구덕리 일원 51만평으로 지난 1949년 정부의 시책에 따라 전국 최대규모의 병역자 정착촌으로 조성하고, 그 일대에 농장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1,050여 세대가 살고 있으며, 돼지 10만여 두와 닭 19만 두 등 축산업에 대부분 종사하고 있다. 이들 마을에서 1일, 1천여 톤의 축산 분뇨를 배출함으로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축산폐수로 인한 새만금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인 만경강의 수질오염의 근원이기도 하다.그러나 이 지역은 다른 곳과는 달리 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축분과 폐수를 공공 처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정부지원으로 살아가는 특수집단인데다 양돈의 개별 규모가 영세하고 생활이 너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이로 인해 7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4년여에 걸쳐 지난 98년말 완공된 현재의 축산폐수 처리시설을 만들었으나 축산폐수 처리에 역부족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이 시설은 3천톤 규모로 설계됐으나 현재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99년부터 4년여를 끌며 어렵게 용역을 통해 다시 03년 5월 사업방향을 정했다.하지만 용역을 통해 마련한 사업계획도 사업비 확보 문제는 물론, 계획대로 투자가 이루어지더라도 여러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 돼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대안이 대두되고 있다.2. 왕궁 축사 시설과 축산폐수 시설왕궁 특수지역 주민들은 돼지 사육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축사를 뜯어 고쳤다. 맨 처음 도입한 처리방식은 3조식 정화조를 묻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정화조를 퍼내야 했고 결국 비용문제로 폐기됐다. 두 번째는 톱밥 돈사방식, 이 방식은 소나무 톱밥을 구하기가 어려워 다시 슬로니 돈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냄새와 가스 등의 문제로 이 방식도 폐지됐고 현재는 스쿠루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그리고 축산폐수 시설은 98년 완공된 현재의 축산폐수 처리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98년 완공된 축산폐수 시설은 국가 예산 70억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축산폐수 처리에는 역부족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축산분뇨 중 40%만 처리되고 나머지는 농가 자체에서 처리하거나 주변 하천에 그대로 버려졌다.3. 왕궁 축산폐수 무엇이 문제인가?1) 새만금 사업의 만경강 수질오염의 근원지역 균형 발전 면에서 다소 낙후되어 온 전라북도에 서해안 지역의 1억 2천여 만평에 달하는 새 국토를 확장하는 새만금종합개발 사업을 1991년에 착수하였으나 이렇다 할 진전도 없이 터덕거리다가 근래에 본격적인 사업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그러나 이 사업은 2001년 1월, 정부방침으로 동진강 수역은 계획대로 진행하되 만경강 수역은 수질기준 확보 후 개발하는 순차적 개발 방안을 채택하게 됨으로써 만경강 유역의 수질오염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라북도의 숙원사업으로 대두되어 있다.더욱 만경강 수질오염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왕궁 특수지역의 축산폐수 문제 때문이다. 하루 1천여 톤에 달하는 축산폐수가 정화 없이 가까운 하천으로 유입되어서 만경강 상류를 그대로 오염시키고 있다. 축산폐수처리시설이 있지만 과다한 축산폐수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만경강의 상류 대부분 하천들이 이렇게 축산폐수로 인해 오염되어가고 있다.이 왕궁 특수지역의 축산폐수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만경강의 수질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전라북도와 환경부, 농림부 등은 만경강 수질개선을 위해 토론회를 열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각계 다른 주장만을 내세워 직접적 관련이 있는 왕궁 일대 주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각계 다른 주장만을 내세우는 동안에도 이 지역의 축산폐수는 그대로 만경강 상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왕궁 특수지역의 축산폐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만경강 수질은 개선되지 않을뿐더러 전라북도 대대적 사업인 새만금간척사업도 발목을 잡혀 다시금 사업 중단까지 이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2) 축산폐수 처리를 두고 12년째 해법 난항으로 국가 세금 낭비왕궁 특수지역 축산폐수 처리문제는 그 자체 만경강에 부담을 주는 오염원이 될 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 관련 수질문제의 상징성까지 담고 있어 전라북도와 익산시가 90년대부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70여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4년여에 걸쳐 지난 98년 축산폐수 공공처리시설을 만들었으나 축산폐수 처리에 역부족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고, 이에 99년부터 4년여를 끌며 어렵게 용역을 통해 2002년 5월 다시 사업 방향을 정했다.그리고 주춤했던 새만금 사업이 다시 추진되면서 축산폐수 처리문제는 발등의 불이 됐다. 농림부와 환경부 전라북도 익산시는 농장안의 개선사업과 축산폐수 처리장의 보강 축산폐수처리장을 하수종말처리장과 연결처리 등을 위해 올해 예산으로 1백96억원을 확보하고 용역을 착수했다. 기존의 설계를 완전히 바꿔 생활하수나 빗물 등과 분리된 순수한 축산폐수만 처리하기로 하고 추진, 그러나 용역 중간보고 결과 이 사업은 시설개선에 5백73억원∼7백억원이 소요되며 이에 따른 연간 운영비도 53억원∼3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예상의 3배가 넘는 막대한 소요비용에 놀란 익산시는 용역을 중단하고 농림부와 환경부 등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3) 왕궁 특수지역 주변환경의 변화익산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축산폐수처리장과 금오농장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주교지는 30년전만 해도 가물치, 붕어, 각종 물고기가 서식하던 곳이었다. 예전만 해도 낚시꾼들이 심심치 않게 월척을 건져 올리던 저수지는 지금은 축분이 쌓여 깁은 뻘층을 형성하고 있다. 저수지의 생태 기능은 현재 마비된 상태이다.저수지뿐 아니라 마을의 토양도 심하게 오염된 상태이다. 마을 주변 하천으로 유입되는 축산폐수로 인해 그 하천 주변의 토양 또한 오염에서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다. 그리고 얼마 전 구제역과 돼지콜레라 발생 등으로 살처분한 돼지를 그냥 땅속에 묻는 바람에 주민들이 먹는 지하수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이다.왕궁 특수지역 주변환경 변화로 인해 주민들은 각종 질병과 악취 오염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4. 왕궁 축산폐수에 대한 대책1) 익산시. 민자시설보강방법(시설비 640억원)2002년 정부는 익산 왕궁지역에서 발생하는 하루평균 2천여톤의 축산폐수를 처리하기 위해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 6월 동양 건설 등이 제출한 제안서를 검토한 후 축산폐수처리시설 부문에 대해 민간투자 사업으로 추친 하기로 결정하고, 민자를 통해 축산분뇨를 정화할 수 있는 단독 시설을 설치, 운영하기로 했다.그러나 최근 환경부가 총 사업비와 운영비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민간투자사 업의 백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업비가 너무 많이 들고 현실 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이다.이에 익산시는 축산폐수 처리를 위한 사업계획이 또다시 변경될 경우 사업지 연 등에 따른 새만금 상류지역의 수질관리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녹지공간 조성민자시설보강방법과 병행으로 왕궁일대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하고 있다. 퀴퀴한 냄새로 찌든 왕궁특수지역내 축산농가의 부지를 쾌적한 녹지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익산시청은 3월 왕궁 익산농장, 금오농장, 신촌농장 과 이 일대에 축산업을 포기한 농가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오는 2007년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이 방침은 쾌적한 녹지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물론 새만금수질 보전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산된다.익산시는 토지와 건물을 매입한 뒤엔 다양한 나무들을 심는 등 녹지공간을 확 보, 쾌적한 농촌환경을 조성해 나간다는 것이다.2) 전라북도. 자연처리공법(시설비 180억원)전라북도는 왕궁특수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저수지인 주교제를 활용한 자연정 화처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익산시가 주장하는 민자시설보강방법은 사업비가 너무 과다하여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주교제를 활용한 자연정화처리 방식 은 사업비도 적게 소요되고,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이 방식은 축산폐수가 집중해 유입되는 지점인 저수지 주교제를 매입, 이곳에 서 침전 등의 물리적 방법, 갈대 등의 식물과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적 방법, 기 존 축산폐수처리장에서 한번 더 걸러주는 복합적 방법을 이용하는 방안이다.
Ⅰ. 서론편의점이 우리에게 선보인 것은 1989년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부터이다. 그 후로 잠시 도입 단계에서의 진통을 겪은 다음 20여 년 간 꾸준한 성장세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2002년 초 선두 격인 세븐일레븐의 경우 1000개 체인점 개점을 달성했고, 뒤이어 LG25 ·훼미리마트 등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개점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도입 초기만 해도‘밤새 문을 여는 현대식 구멍가게 정도로 인식됐던 편의점이 최근 들어 ㆍ물류ㆍ소비 비즈니스 서비스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소비자들과 가까운 곳에 전국에 걸쳐 위치해 있고, 24시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 용도와 활용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일반 소비자는 물론이고 심야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편의점의 지역 거점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최근 2~3년간 편의점만큼 취급 종류와 영역을 꾸준히 확대해간 업종을 찾기 힘들다. 1990년대 초 24시간 문을 여는 생활용품 판매점으로 출발한 편의점은 각 사 마다 점포 숫자가 전국에 걸쳐 500여개를 넘어서면서 다양한 편의 생활 서비스의 도입이 가능해 졌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택배 서비스를 비롯해 공공요금과 보험료 수납대행, 현금 입출금 서비스, 꽃배달 서비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특히 최근 2~3년간 IT 정보통신이 활성화 되면서 인터넷 쇼핑몰과 연계한 서비스도 점차 늘고 있다. 편의점은 인터넷 쇼핑몰이 갖고 있지 못한 오프라인 점포망을 십분 활용, 그 영역이 무섭게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각 편의점들은 조만간 항공티켓 발권, 주민등록 등본을 비롯한 민원서류 발급, 게임 다운로드 등이 가능한 MMK기 설치, 외국환 환전, 우체국 업무대행 등의 부가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일 계획이다. 이 같은 서비스 다양화에 따라 편의점의 양적 질적 규모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내 편의점 업계는 지난해 하루 5.4개꼴인 1,944개 점포가 신규 증설돼 12월말 현재 5,635개에 이른다. 매출액 규모도 올해에는 2002년 1조8,275억제빙공장에서 비롯되어 현재 전세계 24개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1973년 11월에는 일본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 운영업체인 이토-요카도사와 미국 내 세븐일레븐 운영업체인 사우스랜드사가 체결한 지역 라이센스 계약에 따라 제 1호점이 설립되었다.세븐일레븐 제펜사는 사장이자 최고경영자인 스즈키 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1974년 5월 도쿄 중심가에 그 첫 번째 매장을 개설한 이래로 줄곧 일본 내 편의점 업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왔다.-1973년: 요크세븐사 설립, 미국 사우슬랜드사와 라이센스 계약 체결-1974년: 1호점 개점-1978년: 점포수 500개 돌파, 회사명을 으로 변경-1979년: 도쿄 증시에 상장-1980년: 점포수 1000개 돌파-1982년: POS시스템 도입-1987년: 점포수 3000개 돌파-1991년: 사우스랜드사 경영권 취득-1993년: 점포수 5000개 돌파-2003년: 점포수 10.000개 돌파(2) 세븐일레븐 제팬의 현황세븐일레븐 제팬은 1927년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서 설립된 세븐일레븐사의 세계 최대 편의점 운영업체이자 체인점 영업권 및 라이선스 대여업체로, 전 세계적으로 2만20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하루 평균 600만명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총 2만2648개의 매장 중 8600개 가량의 매장이 일본지역에 소재하고 있다. 이들 매장은 세븐일레븐 제팬이 체인점 영업권을 부여해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 매장 대부분은 북미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2001년, 가맹점을 포함한 세븐일레븐 제팬의 총매출액은 2조460억엔 (약 24조원)이었으며, 783억 엔 (약 7830억원)이라는 기록적인 순이익을 벌어들였는데, 이로 인해 세븐일레븐 제팬은 일본 내 최고의 수익성이 있는 최대 규모 편의점업체가 됐다. 세븐일레븐 제팬은 또한 선도적 위치에 있는 3개의 편의점 업체(즉, 세븐일레븐, 로손(Lawson), 패밀리마트 (Family-Mart)) 가운데 가장 높은 매장 당 1일 평균 매출액을 기록했다. 67만5000엔의를 이용해 주문을 발주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982년에 세븐일레븐은 다음 단계로 POS 시스템을 도입했고, 1991년에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활용해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뤄졌다.쌍방향 의사소통은 가맹점이 호스트 컴퓨터와 POS 데이터 및 그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는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1) POS시스템{ POS(Point Of Sales)시스템 - 컴퓨터를 이용하여 각종유통정보를 분석 활용하는 유통 시스템세븐일레븐본부와 프랜차이즈 세븐일레븐구성원이라는 양자간에서 이루어지는 상품판매정보의 교환이다. 이것의 목적은 가맹점 매장의 상품구비를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양만큼 구비한다.」「무한 지속적 상품구비 개선」활동을 위해서 인기상품의 최적 재고량 정보와 커트해야 할 상품정보, 투입되어져야 할 신상품정보라고 하는 「지시적 정보」를 생산하는 데 있다.2) EOS시스템{ EOS(Ethernet over Sonet)시스템 -온라인 수발주 시스템. 발주단말기를 사용하여 발주데이터를 발주처(도매업)의 컴퓨터에 전화회선을 통해 직접 전송함으로써, 도매업에서 납품 / 매입전표를 발행하여 납품하는 발주 시스템세븐일레븐가맹점 - 세븐일레븐본부 - 도매상 - 메이커 4자간 에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수발주(受發注)정보 교환이다. 이것의 목적은 정보교환 속에서 참조되어진 지시적 정보대로 결여품과 과잉재고를 회피한 최적상품구비를 매장에 매일 구체화시키기 위한 정확한 「정보네트워크」와 「물류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연쇄형 조직의 주축인 세븐일레븐본부의 4종의 구성주체간에 물류네트워크라는 경영자원을 제공함과 동시에 정보네트워크를 흐르는 정보들을 컨트롤함으로서 세븐일레븐본부의 외부자원인 세븐일레븐가맹점·메이커·도매상들의 행동과 물류를 조정하고 있다.3) POS시스템과 상품구비의 지속적인 개선활동* 세븐일레븐의 POS시스템 구성 요소 *1 광학식 자동 독해기인 스캐너 2 POS 금전등록기3 Store Computer 4 상품의를 기울이고 있다. 도시락(bento)이 그 적절한 사례. 많은 일본인 근로자와 학생들이 소매점에서 자신들의 점심거리로 도시락을 구입하기 때문에, 세븐일레븐 제팬은 도시락을 가장 중요한 전략상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도시락은 막대한 수익뿐 아니라 고객 충성도(customer loyalty) 및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한다. 즉, 사람들은 도시락을 사기 위해서 세븐일레븐의 매장을 찾는다.도시락 상자는 하루에 3번 배송되며, 배송 시간에 따라 적색과 녹색으로 구분 표시돼 있다. 일반적으로, 세븐일레븐은 정규매장의 영업시간 중 약 2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만 부패성 제품을 유지시킨다. 세븐일레븐은 가맹점이 확실하게 모든 제품에 대한 신선도를 유지토록 하기 위해 레이블 및 차트를 이용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취급하고 있는 모든 부패성 제품 가운데에서 커피는 매장 내 진열시간이 가장 짧은 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커피는 폐기 된다. 세븐일레븐의 신선도 개념은 변화하는 고객 욕구 및 기호의 적시 수용이라는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고객이 동일한 제품 구색에 식상해 하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세븐일레븐은 오래된 품목을 지속적으로 철수하고, 그 진열공간을 새로운 항목에 넘겨준다. 각 매장별로 유지되고 있는 3천 개의 최소유지상품단위(Stock Keeping Unit, 매장에서 상품을 관리하는 최소단위) 가운데에서, 대략 절반 가량이 매년 교체된다. 세븐일레븐은 특정 품목의 매출액이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즉시 당해 항목을 철수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조치는 일반적으로 다른 매장에 비하여 조기에 이루어진다. 신선도 또는 참신성을 유지하는 전략은 정보 시스템에 의해서 지원을 받고 있다.(3) 제품의 배송전략1) 도미넌트 방식(점포집중 방식)도미넌트 방식의 최대의 메리트는 물류 코스트 삭감에 있지만, 그 이외에도 다점포 집중 출점의 효과는 여러 가지이다. 수많은 메리트 중에서도, 물류 코스트의 삭감과 이어지는 것은 출점 지역에서의 presense가서는 도매상과 배송까지 커버하는 메이커를 벤더라 부른다. 1974년, 세븐일레븐이 1호점을 열었을 때, 도미넌트 출점을 이해할 수 있는 벤더는,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다. 고도 경제 성장의 말기이기도 했던 당시까지는, 대량 생산, 대량 판매의 전성기였으며, 메이커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상품을 자사 계열의 도매상에 내보내고, 도매상은 그것을 소매점에 내보내는 구조였다.인기가 없는 상품이라도, 도매상이 메이커의 결산 대책을 위해서, 여분으로 구매하기도 하고, 메이커가 소매점에 판매 촉진비등을 투입하여, 판매 부진을 뒷받침하는 등, 압도적인 메이커 주도의 물류 시스템이었다. 그 중 많은 부분이 "특약점 제도" 등으로 불리어, 현재도 많은 상품 분야에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이 같은 시스템을 때문에, 도매 단계에서도 메이커로부터의 매입을 담당하는 것은 경험과 지위가 있는 영업맨이고, 역으로 소매점에의 세일즈는 누구라도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젊은 영업맨이 할당되어져 있었다. 여기에서 메이커는 도매쪽에서 말단 소매의 하류에 향하여 "이것을 이정도 팔아라"라는 정보의 흐름이 압도적이고, "이것이 팔리니까, 다음은 이런 상품이 이정도 필요하다" 식의 밑에서부터 위에의 역의 정보의 흐름이 되기는 힘들었다.이 때문에, 잘 팔리는 상품이 도매상 단계에서 장기간 결품이 되기도 하고, 팔리지 않는 상품이 창고에 산처럼 쌓이곤 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 고도 경제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는, 항상 소비재는 물건이 부족이 경향이었다. 이 같은 문제는 별로 표면화되지 않고, 업계 관계자도 "공급측 주도"라는 관습에 젖어, 그것이 자연스러운 물건의 흐름이라고 보고 있었다.그러나, 스즈키는 편의점의 존재 의의는 "언제 가더라도, 일상 생활에 필요한 상품서비스가 점두에 구비되어 있다"는 편리성에 있는 있는 것임을, 미국에서 느끼고 왔다. 그래서 소비자 사이드에 서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리원칙이라고 위치 지었다.어느 가게도 똑같이 잘 팔리는 상품을 항상 구비하여, 결품이 일어나지 않게
서 론과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과학이라 함은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이다. 과거의 과학은 전문학자들이 자연의 새로운 경험과 사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얻어진 결과를 하나의 학문으로 구체화시킨 학자의 전유물이었던 반면, 현재는 인간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수단으로서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응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과학이다.인간생활에 있어서 과학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과학만으로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힘들고,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궁금증이 과거에서부터 계속 발생하면서 인간은 과학이 아닌 사이비과학 혹은 의사과학(pseudo science)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사이비과학은 과학보다도 더 이전부터 우리 인간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이라는 체계가 잡힌 그리스시대 이전부터 사이비과학은 대중의 힘과 더불어 학자들마져도 사이비 과학에 더 많은 집착을 해왔다. 의학 지식 속에 항상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요소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시대에 과학자들이 과학의 체계를 잡음으로써 과학에 대한 믿음의 새싹이 돋아났다.이런 우리 인간 생활 속에 뿌리 뻗고 있는 사이비 과학과 그리스 과학을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과학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겠다.본 론사이비 과학(Pseudo Science)영어에 슈도(Pseudo)라는 단어가 있다.'가짜의’ '모조의’ '의사(擬似)의’ 등의 뜻을 지닌 이 단어는 뒤에 다른 말과 합성해 진짜처럼 보이는 어떤 일들을 의미하고 있다.가령 슈도 이벤트(Pseudo event)는 꾸며낸 사건으로, 슈도 사이언스(Pseudo science)는 사이비과학, 의사과학 정도로 풀이된다.아무튼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진실되고 참된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뜻으로 해석될 때 ‘슈도’를 붙이는 것 같다.사이비 과학은 과학이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하는 그리스 이전 강하문명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하문명시대에 과학은 대부분 미신과 주술이 혼합된 과학이었다. 모든 분야에 있어서 과학보다는 점성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의학에서는 마술이나 정령의 힘을 빌어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또 종교와 과학이 결탁하여 사이비 과학을 신이 보증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사이비 과학에 대한 의문, 설득, 해석,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이러한 사이비 과학은 인간사회에 차츰 차츰 뿌리 내려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2차 세계대전, 법죄율의 증가, 환경파괴 등등으로 급격하게 인간사회가 위협받고 있을 무렵 더더욱 성행했다. 인간은 이런 불만족한 소용돌이의 어지러운 움직임을 떠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이때 이들의 안식처는 초정상에 대한 믿음, 즉 사이비 과학이다. 이렇듯 사이비 과학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인류학자 레트(James Let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사실상 사이비과학을 면밀히 조사해 보면 그 가운데는 안전감과 위안을 주는 요소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에 대한 비경험적 해석을 받아들이는 초월적 유혹(transcendental temptation)이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지만 또한 그 해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감정적으로 만족시키는 것만이 중요한 의미에 대한 환상도 갖고 있다.""둘째로 (그리고 이것은 두 요소 중에서 더욱 거슬리며 더욱 위험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인은 초정상적 현상 주장에 대해 비평적으로 평가할 지식, 수련, 경험이 부족하다. 언론학 교수 필립 마이어(Philip Meyer)는 많은 언론인이 어떤 일에 대한 객관적 진리에 관해 상관하려고도 않는다고 시인한다. 다시 말해 '어떤 인상적으로 보이는 학위나 타이틀을 가진 자가 흥미 있는 어떤 것을 말하면, 그것이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레트는 앞서 홀턴, 레더만과 마찬가지로 초정상이 유행하는 다음 이유로 교육 시스템의 불충분성을 들었다. 교육에서 과학적 방법의 기초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학생들은 사실의 암기만을 중요시하지 비평의 개념을 배우지 않는다. 실제 과학에서는 "연역적 귀납적 논리, 과학적 방법론, 인과론적 및 비인과론적 해석, 자료의 해석 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평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유추하며, 적절히 평가하는 능력이 없이 사회에 나온 학생들은 과학의 성과를 존경하며, 과학의 피상적 형식은 인정하지만, 그들은 그 성과와 형식에 내재된 속임수를 알아내지 못한다.마지막으로 레트는 미국인의 부정확한 세계관을 초정상 이유로 분석하였다. 어떤 사회건 문화적 세계관은 센스와 난센스가 복합된 대다수의 대중이 믿는 것이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영혼을 갖고 있으며 사후에 생이 있다"고 할 때 이런 가정은 미국인의 세계관의 일부를 형성한 것이지만 진리가 아니다. 어느 것도 증거가 없으며 논리적이며 경험적인 검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관의 일부이므로 미국인은 대부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상식이 없는 것에 속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우리의 세계관에는 전통적인 기(氣)가 깊숙이 들어있다. 신과학 비평가들이 기란 어느 문화권에도 있었던 만유생명력 개념이라고 말해준다고 하자.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로 마치 전통문화의 공격으로 오인된다.한국인의 세계관의 정확성을 떠나 어떤 것이 존중되고 계승되어야 할 전통문화인지,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억제해야 할 것인지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성을 느낀다.이렇듯 사이비 과학은 한시대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사회에 계속적으로 뿌리 깊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원성이 없는 인간사회에 사이비 과학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기로 하자.사이비 과학은 첫째, 인간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기 쉽다. 그만큼 대중화가 쉽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커다란 혼란과 혼동을 준다. 둘째, 감정적 욕구에 호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셋째, 개인적인 갈망에 대한 환상을 제공해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여 자살하거나 더 좋은 사회에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넷째, 인간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오만에 대한 위상을 높여준다. 다섯째, 사이비 과학은 과학과 종교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여, 사회에 하나의 종교로 구축하는 신례가 많다. 여섯째, 자신의 잘못도 신에게 계시를 받은 것으로 하여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사이비 과학이 과학보다도 인간사회에 더 깊숙히 뿌리 내린다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커녕 모든 문제들을 사회로 돌릴 것이다. 그만큼 사회 혼란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것이다.과 학(Science)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를 과학의 탄생지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과학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며, 그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오리엔트로부터 선사시대까지, 더 나아가 인간이 문명을 만들어낸 시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직접적인 원형은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의 기초개념인 추상화·체계화·법칙화, 그리고 기본적인 방법으로서의 실험·관찰·계산은 고대 그리스에서 다소 의식적으로 확립되었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과학정신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신화시대에 축적된 자연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오랜 기술문명에서 축적된 지식에 밑바탕이 있다. 지식을 독점하던 사제계급대신에 지식을 전문으로 하여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가 탄생 먼저 사상의 자유가 필요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었다. 즉 민주제도가 실시되고 있었으며, 노예제도하에서 번영한 새로운 상공업은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여가를 주었는데, 그들은 이 여가를 생활이나 일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색하는 데 소비하였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의 부의 축적(항해, 진취적, 상업, 민주적)으로 인해 분업이 가능해지고, 그래서 전문가 계급 탄생하였으며, 전문가들은 각자 사색, 연구를 거듭함으로써 과학의 기본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니키아 민족으로부터 알파벳을 얻어 쓰기 시작하여 복잡한 고대문자대신에 간단한 표음문자 사용도 과학이 그리스에서 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했던 것이다.과학의 정의는 체계적, 일반적, 보편적이며 자연 현상의 원인을 자연 원리로 설명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 시대의 과학은 위의 '과학의 정의'에 모두 부합되었다. 그래서 과학의 시작을 그리스 시대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