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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성질환 빈혈
    Anemia of Chronic Disease1 Anemia of Chronic Disease(ACD)?Mild to moderate anemia often observed in patients with infectious, inflammatory, or neoplastic diseases.?Also seen in a variety of other conditions, including severe trauma, heart disease, and DM.만성질환에 의한 빈혈은 철결핍성 빈혈 다음으로 흔한 빈혈이며, 면역기능이 급성적 또는 만성적으로 활성화되어 발생한다.■ 원인만성질환빈혈은 세망내피계의 “면역 cytokine”들이 철 항상성, 전적아구세포의 분화, erythropoietin생산, 적혈구 수명 등을 변화시켜 발생된다.종양세포는 염증유발 cytokine과 free radical을 생산하여 전적아구세포를 손상시킨다. 출혈, 비타민결핍(코발라민과 엽산), 비기능항진증, 자가면역성용혈, 신부전, 방사능과 화학요법은 빈혈을 악화시킬 수 있다.만성신질환의 경우 erythropoietin 생산저하 뿐만 아니라 말기신부전에서 감염이 증가하면서 철 항상성에 변화가 생긴다.2 Pathogenesis■ 철항상성이상세망내피계의 철 흡수 및 보유가 증가하여 순환철의 세망내피계에 저장되는 경향이 되면서 전적아구에서 철이용이 줄어들며 철이 제한된 상태에서 적혈구를 생성하게된다.1) 철흡수증가염증유발 cytokine인 interleukin-1과 TNF-α를 주입한 쥐에서 혈청철저하와 빈혈이 발생하였다. 이는 대식세포와 간세포에서의 cytokine 유발 ferritin(저장철과 관련된 주요단백성분)의 합성과 관련되어 있다. 만성 염증에서 대식세포에 의한 적혈구 파괴시 철흡수가 일어나며, divalent metal transporter 1(DMT1- 2가철수송) 단백에 의해 Fe2+가 막을 통해 내부로 수송된다.interferon-γ, lipopolysaccharide), TNF-tin)을 억제하여 대식세포로 하여금 철분을 보유하고 있도록 만든다. 또한 interleukin-10같은 항염 cytokine은 대식세포에서 트랜스페린과 철 결합을 분리시켜 페리틴발현을 증가시킨다.3) Hepcidinhepcidin은 철을 조절하는 단백, 25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있다.hepcidin은 lipopolysaccharide와 interleukin-6에 의해 발현되며, TNF-α의해 억제된다.hepcidin은 십이지장에서 철흡수를 감소시키며, 대식세포의 철분비를 저해하여 만성질환빈혈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hepcidin 과발현시킨 쥐에서 심각한 철결핍성 빈혈이 발생했다. hepcidin 결핍된 쥐는 염증소견이 있어도 저철혈증이 유발되지 않았다. interleukin-6와 hepcidin은 몇시간 만에 쥐에 저철혈증을 유발시킨다.■ 전적아구 분화과정 손상만성질환빈혈에서 적혈구 전구체)는 interferon-α-β-γ 와 TNF-α, interleukin-1에 의해 손상된다. interferon-γ는 가장 강력한 억제제이며, 그 수치가 증가하면 헤모글로빈수치와 reticulocyte count가 감소한다. cytokine으로 인한 apoptosis는 전적아구의 erythropoietin 수용체 발현을 억제시키며, erythropoietin 생성과 활성을 손상시키고, 다른 줄기세포 같은 조혈요소들 발현을 감소시킨다. 게다가 cytokine은 질산과 활성산소와 같은 불안정한 자유라디칼로 전적아구세포에 직접적인 독소로 작용한다.■ erythropoietin에 대한 반응의 둔화erythropoietin은 적혈구형성을 조절하며, 조직의 산화와 헤모글로빈수치와 반비례하여 발현된다. interleukin-1과 TNF-α는 시험관 실험에서 erythropoietin발현을 억제했다. Lipopolysaccharide를 쥐에 주사한 경우 신장에서 erythropoietin mRNA의 발현이 감소하였다.만성질환빈혈이 심해지고 cytokine이 증가하면 전적아구세포의 용체 기능 저하, 철이용과 헤모글로빈합성을 억제시켜 erythropoietin에 대한 반응이 둔화된다. 또한 염증상황에서 cytokine과 freeradical 의해 적혈구세포파괴증가로 인해 적혈구의 수명도 줄어든다.3 Laboratory evaluation■ Iron status (만성질환빈혈과 철결핍성 빈혈의 감별)만성질환의한 빈혈은 Mild)에서 Moderate)수준의 “정색소성 정세포성” 빈혈이다. 적혈구 저생산으로 Reticulocyte count가 낮다. 철결핍성빈혈은 “저색소성소세포성” 빈혈이다.1) 트랜스페린포화도와 트랜스페린만성질환빈혈과 철결핍성빈혈 모두 혈청철의 농도와 Transferrin 포화도가 감소한다. 만성질환 빈혈에서는 transferrin이 정상 또는 감소하며, 혈청철 감소로 인해 트랜스페린 포화도가 감소한다. 철결핍성빈혈에서는 transferrin 증가 때문에 트랜스페린포화도가 감소한다.철결핍의 원인을 알기위해서는 식사나 영양문제를 알기 위한 history taking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여성의 경우 월경량증가와 만성위장관출혈, 염증성장질환, 혈관이형성증, 위장관 암, 기생충감염등에 의한 출혈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2) FerritinFerritin은 저장철을 나타내는 수치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15ng/ml이하는 저장철부족상태이다. 그러나 30ng/ml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철결핍성빈혈을 더 강렬하게 시사한다는 것이(92~98%) 연구에서 밝혀졌다. 만성질환 빈혈에서는 ferritin수치는 정상 또는 증가한다. 이는 면역활성으로 인하여 세망내피계에 저장철이 남아돈다는 것을 의미한다.(편의상 단순철결핍성 빈혈의 기준을 페리틴 12이하, 단순만성질환빈혈을 페리틴 60이상, 혼합형을 12-60사이로 보고 실험군을 나누어 평가한 국내 논문 있음)3) 가용성트랜스페린수용체가용성트랜스페린수용체(soluble transferrin receptor)는 원뿔이 잘려진모양의 막수용체로 철결핍성빈혈에서 증가한다. 반면, 가용성트랜스페린에 상업용으로 나온 assay를 활용할 수 있다.4) 두가지를 동반하는 경우만성질환의한 빈혈만을 갖고 있는 환자에 비해 철결핍성과 만성질환빈혈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환자는 소세포성 빈혈을 갖고 있는 비율이 더 높으므로 빈혈은 더욱 심해진다. 가용성 트랜스페린수용체의 농도와 페리틴수치의 log비율을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log비율이 1이하인 것은 만성질환빈혈을 의미하고 2이상인것은 철결핍성빈혈 또는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성질환 빈혈에서 저색소성 적혈구 비율이나 reticulocyte의 헤모글로빈함량을 확인함으로서 철결핍이 동반된 적혈구생성이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겠다.■ ErythropoietinErythropoietin수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10이상인 경우에는 정상범위이므로 그 이하인 환자에서만 의미가 있다. Erythropoietin수치는 만성 질환 빈혈 치료에 대한 EPO성분약의 반응을 보기위해 분석된다. ?4 Treatment■ 치료의 근거빈혈은 전신 산소공급을 위한 심박출량의 보상적증가를 필요로하므로 그 자체로 해롭다. 빈혈은 다양한 상황의 예후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특히 심혈관질환, 폐질환, 만성신질환을 가진 65세 이상환자에서 중등도 빈혈은 교정해야 한다. 화학요법을 받는 암환자와 투석을 받는 신부전환자는 헤모글로빈 수치를 12이상으로 교정했을 때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빈혈은 암, 만성신질환, 울혈성심부전 포함한 여러 상황에서 환자의 예후를 악화시킨다. 이런 관계는 장기간 혈액투석을 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되어왔다. 10만명의 혈액투석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향적연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10~11인 사람에 비해 8이하인 사람에서 사망률이 2배였다. 따라서 암과 만성신질환 가이드라인은 11~12로 헤모글로빈을 유지하도록 추천하고 있다.고용량의 EPO, 철주입 치료를 받아 헤마토크릿수치가 높은 (42이상)경우 헤마토크릿 수치가 낮은(30이상) 그룹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철저장상태와 사망률의 관계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투가 목표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연구가 있다. 만성질환빈혈에서 철공급의 부작용은 조심스럽게 더 연구가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치료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만성질환빈혈은 인지되는 경우도 적고 치료도 간과되어 왔다. 1994~1997년의 20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만성신질환의 23퍼센트의 환자가 헤마토크릿수치가 30%이하였고 30프로 환자만이 목표 헤마토크릿치에 있었다. 빈혈 치료만으로 암이나 염증같은 만성질환 예후를 개선할 수 있는지는 아직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지만, 만성질환빈혈은 기저질환 악화를 반영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치료 선택만성질환의 치료가 가장 우선적 접근법이다. 류마티스질환 환자에서 항TNF항체치료를 받은 환자에서 헤모글로빈수치가 개선되었다. 기저질환을 치료할 수 없는 경우는 대안이 필요하다① 수혈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로서 널리 사용된다. 수혈은 특히 출혈과 관련된 severe 빈혈(헤모글로빈 8이하)이나 생명 위협하는 빈혈(6.5이하)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혈은 자체로 다발성장기손상과 관련되기도 한다. 철과부하나 HLA 항원 민감성같은 위험성 때문에 암이나 만성신질환에서 장기적인 수혈치료는 추천되지 않는다.② 철분치료만성질환빈혈에서 철분치료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a) 만성질환빈혈에서 경구 철분제는 십이지장흡수의 저하로 인하여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b) 철은 미생물을 발현시키는 데 필수적 영양소가 되기 때문에 미생물, 종양세포에 철을 공급하지 않는 것이 병원체 성장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치료전략이 된다는 면도 있다. 한 연구에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박테리아혈증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transferrin saturation이 20%이상, ferritin 수치가 100이상인 환자에서 박테리아 혈증 발생률이 유의성 있게 더 높은 위험성이 있었다.c) 철분치료는 독성 라디칼들을 형성하여 조직손상과 내막기능이상, 급성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였다.반면 철치료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TNF-α 형성을 억제하여 말기신부전과 .
    의/약학| 2010.03.23| 6페이지| 1,5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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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 (NAFLD)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NAFLD)NAFLD는 간질환을 유발할 음주 경력이 없는 환자(미국 국립 보건원 기준: 일주일에 남성의 경우 140g, 여성의 경우 70g 이하의 음주량)에서 조직 검사상 지방 축적, 부분괴사, 염증, 간세포의 풍선양 변성, Mallory 소체 및 간섬유화 등의 알코올성 간질환과 같은 소견을 보이는 질환을 말하며 1980년 Ludwig 등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단순한 지방간에서, 지방간염, 간경변증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특히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에서 흔히 관찰되고 최근 간기능 이상으로 외래를 방문하는 가장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만성 간질환의 수위를 만성 B형 및 C형 간염과 알코올성 간질환이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건강 검진 수진자의 상당수가 NAFLD에 이환되어 있음이 보고된 바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NAFLD지방이 간무게 또는 간세포의 5% 이상 축적되는 경우를 말하며 다양한 단계 즉 단순지방증에서 지방 간염, 간경변까지를 다 포함.[분류]①단순 지방증(simple steatosis)NAFLD의 한 유형으로서 염증이 거의 없거나 경미하게 있으며 섬유화가 없는 상태.②비알코올성 지방간염(Nonalcoholic steatohepatitis, NASH)염증과 섬유화 소견을 보이는 NAFLD의 한 유형으로 일부에서는 간경변증으로 진행.[원인에 따른 분류]①원발성 비알코올성 지방간염(Primary NASH)NASH중 비만, 제2형 당뇨병, 고지혈증 등과 연관이 있는 경우②이차성 비알코올성 지방간염(Secondary NASH)원발성 원인 배제되고 약물, 수술 또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에 의해 유발된 NASH The spectrum of NAFLD유병률최근 서구화된 생활 패턴의 변화(영양섭취, 영양소구성, 신체활동 등)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포화지방 혹은 탄수화물의 과다 섭취와의 관련성도 보고된 doplastic reticulum)에서 지방산은 에스테르화하여 트리글리세라이드, 인지질, 콜레스테롤 에스테르 등으로 변한 후 VLDL(very low density lipiprotein)같은 아포단백질과 결합하여 혈중으로 방출된다. 한편 지방산은 간세포 미토콘드리아에서 산화과정(β-oxidation)을 겪어 ATP생산에 이용되며 일부는 ATP대신 H2O2를 생산하는 peroxisome β-oxidation에 이용된다. 간세포에서 지방산은 활성화된 형태인 fatty acyl coenzyme A로서 미토콘드리아나 내형질세망 등에서 이용된다. Hepatic fatty acid metabolism이러한 간세포 지방산 대사과정인 산화와 배출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혈중 지방산의 농도가 높거나 간세포의 지방상의 생성이 증가하면 간세포내에 지방산이 축적되고 또한 증가된 혈중 지방산에 의해 인슐린 저항성이 유발된다. 인슐린 저항성은 단순 지방증과 NASH에서 다 관찰되는데 이러한 단순 지방증에서 지방간염 그리고 간경변으로의 진행에는 다른 기전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어지는데 Day등에 의해 제기된 2 hits 가설(참고)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일차 손상은 간세포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으로 인슐린 저항성에 의해 유발되며 이러한 상태에서 이차 손상이 가해지면 단순 지방증에서 지방간염, 간경변증으로 진행된다.이 과정에 관여 하는 것이 산화스트레스와 지질과산화이다. 산화스트레스는 마이크로좀의 cytochrome P450E1(CYP2E1), 미토콘드리아에서 반응성 산소기(reactive oxygen species, ROS)의 분비, 페록시좀에서의 H2O2 분비, 활성화된 염증세포들에서 분비된 사이토카인들에 의해 유발된다. 이러한 산화성 스트레스는 세포막의 지방을 과산화 시켜 MDA(malonic dialdehyde)와 4-HNE(4-hydroxnonenal)가 생성되고 이들에 의해 염증 관련 사이토카인이 유도되고, 성상세포가 활성화되어 간세포 손상 및 섬유화가 초래된다. TWO H은 마이크로좀, 페록시좀에서도 산화되면서 ROS(ractive oxigen species, 반응성 산소기)를 생성한다. 증가된 유리지방산은 CYP2E1, CYP3A4의 발현을 증가시켜 지방과산화를 더욱 촉진한다. 미토콘드리아에서의 β산화: short-, medium-, long-chain 지방산, 페록시좀: very long chain 지방산 산화, CYP2E1/CYP4A: long-, very long-chain 지방산의 w-산화 등의 과정에서 유리 electron, H2O2, ROS가 과잉 생성되고 이러한 만성적인 산화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항산화 역할을 하는 글루타치온과 비타민 E는 고갈시킨다.과다한 철분의 축적도 세포 내에서의 산화 스트레스 증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과잉의 유리지방산은 페록시좀에서 β산화가 되어 H2O2가 생성되고 철의 존재하에서 활성화된 hydroxyl기가 된다. 산화스트레스는 사이토카인의 생성도 자극하는데 NF-KB에 의한 transcription의 증가, 지방과산화 산물이 malondialdehyde, 4-hydroxynonenal을 통해 이루어진다. ROS는 세포막의 과산화를 유도하는 것 외에도 간세포, 쿠퍼세포, 지방조직에서의 TNF-α분비를 촉진시킨다. 이로 인해 IKK-β가 활성화되고 이어서 NF-KB의 발현이 증가, 다른 염증유발 관련 경로의 발현이 증가하고 인슐린 저항성도 심해진다. NF-KB는 다시 TNF-α의 발현을 더욱 증가시킨다.TNF-α는 NASH로 진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이토카인일 것으로 추측된다. 즉 유리지방산 생산,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 간손상과 관련된 여러 경로들의 유발 혹은 영향을 통해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이토카인들의 분비, 중성구의 집합, 세포사멸의 활성화 등을 촉발한다. 산화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NASH 환자에서는 미토콘드리아의 미세구조에도 변화가 초래되고 ATP를 생산해 내는 능력도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방이 축적된 간에 문맥을 통한 간독성물질의 유독, 임신성 급성지방간, 약화성 지방간 등에서 발견거대수포성 지방간의 현미경 소견-주로 만성적 문제들과 연관되는데, 즉 알코올 중독증, 비만, 당뇨증, 단백질 칼로리 결핍증, 만성적 약물남용, 공회장 우회술 등이 원인NASH에서 발견되는 지방침윤의 형태는 대부분 거대수포성으로 세포질 내에 하나의 큰 수포형태로 나타나며 핵을 바깥으로 밀고 있는 형태학적인 특징을 가진다. 일반적인 헤마톡실린-에오진 염색에서는 지방성분이 슬라이드 제작 과정 중에서 제거되므로 빈 공간으로 나타난다. 세포질 내 수포가 더욱 커져 낭성구조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런 소견을 지방낭(fatty cyst)라고 한다. 또한 지방을 함유한 간세포가 파괴되어 흘러나온 지방에 의해 육아종(lipogranuloma)이 생기기도 한다. 특징적으로 NASH의 경우 지방침윤이 중심정맥 주위의 소엽에 국한되어 생기며 진행시 전 소엽으로 퍼진다.②소엽염증(lobular infammation)NASH의 또 다른 중요한 조직학적 소견은 소엽의 염증세포 침윤이다. 대게 염증 세포들은 만성염증 세포와 다형성 백혈구들이 혼재되어 침윤되는 양상이다. 다형성 백혈구가 세포질에 Mallory 체가 있는 간세포 주위로 침윤되는 양상은 NASH에서 비교적 특징적인 소견으로 다른 질환과의 감별진단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NASH에서 문맥역의 염증은 대게 약한 정도로 만성 염증세포의 침윤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문맥역의 염증이 심하다고 한다면 NASH보다는 다른 만성 간질환(바이러스성, 자가면역성, 약물성)을 생각하여야 한다.③간세포 변화(non-steatotic hepatocellular alteration)NASH에서 발견되는 간세포의 변화는 크게 풍선양 변성(ballooning degeneration)과 호산성 변성(acidophillic degeneration)으로 대별할 수 있다. 간세포의 풍선양 변성은 세포질내 액체의 증가로 세포질이 부풀어 있고 세포질 내 물질이 띠모양의 배열로 농축되어 있으며 나머지며 진행된 상태에서는 소양증,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수도 있으며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경우에서는 복수, 식도 정맥류 출혈 등 문맥압 항진으로 인한 증상을 호소할 수도 있다. 진찰 소견으로는 대부분에서 비만이 관찰되며 특징적인 소견은 없으나 간 비대가 약 50%에서 관찰되고 일부에서는 흉부에 거미상 혈관종, 수장 홍반 등을 볼 수 있으며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경우에서는 황달, 부종 등의 소견도 볼 수 있다.2. 검사실 소견대부분의 환자에서 간기능 이상 소견을 보이는데 transaminase수치는 정상의 1-4배정도 증가하는데 대개는 약 2배 정도의 증가 소견을 많이 보인다. ALT가 AST보다 더 많이 증가된 소견을 보이며, NASH의 경우에는 ALT/AST 비가 정상의 2-5배까지 상승할 수 있다.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경우에는 AST가 더 증가된 소견을 보이기도 한다. ALT가 증가된 수치와 NASH의 진행 정도와는 비례하지 않으나 일부에서는 AST/ALT 비가 1이상인 경우 섬유화가 동반된 소견으로 보기도 하나 간 기능 소견 단독으로는 정확한 질병의 정도를 알기 어렵다. GGT와 ALP도 증가하나 특징적인 소견은 아니다. 약 30-50%에서는 당뇨소견 또는 당 내성 소견을 보이며 20-80%에서는 중성지방의 증가 소견을 보인다. Symtoms, Signs, Laboratory features진단1. 병력청취 및 생화학적 간기능 검사우연히 발견된 생화학적 간기능 수치의 이상이 있거나 또는 증상이 있는 경우에 의심할 수 있다. 약물, 알코올성 간질환, 간염바이러스 감염, 자가면역 질환이나 철분 또는 구리에 의한 대사질환, 갑상선 질환 및 동반질환 등을 감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알코올성 간질환과의 감별 : 병리학적으로 알코올성 간질환과 감별하기 어려우므로 현재까지도 음주력 청취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특히 여러 의료인이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서 여러 번에 걸쳐 이러한 정보를 얻은 것이라면 매우 유용하다. Carbohydrate-deficient .
    의/약학| 2010.03.23| 9페이지| 1,5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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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 ] 네덜란드 회화 평가A+최고예요
    우선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나타난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해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전후하여 개괄적으로 알아보겠다. 그리고 나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회화에 나타난 특성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그 당시의 시대정신과 예술양식을 알아보겠다.1. 네덜란드의 정치·사회적 변화1)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중세 이후 네덜란드 지방은 모직물공업과 중계무역으로 번영하여 도시는 광범한 자치권을 소유하며 자유의 바람이 넘쳐 있었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북부 여러 주에 칼뱅파의 신교도가 급증하였다. 1556년 에스파냐 왕위에 오른 펠리페 2세가 카톨릭 교회의 수호자임을 호언하면서 네덜란드 지방에 대한 신교의 탄압을 강행하였으며, 도시에 대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상업을 제한하며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본국의 재정수입의 증대만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가혹한 통치에 대항하여 북부는 물론 남부 여러 주의 카톨릭교를 신봉하는 시민계급까지 참여한 항거운동이 1566년부터 전개되었다. 이때의 지도자급은 봉건적 대 귀족 출신인 에그몬트 백작과 호른 백작 등이었다.이럴 즈음 1567년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부임해온 「알바」공은 신교도에 대해 잔악한 탄압을 가하였다. 「지옥의 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무시무시한 「알바」공은 지도자인 에그몬트와 호른 등을 비롯한 8,000명 이상을 종교재판으로 사형 선고를 내리고 목을 잘랐다.1568년 오렌지공 빌헬름은 네덜란드의 자주 독립을 요구하며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하였다. 에스파냐의 지배층으로부터 고이젠이라 불린 신교도(칼뱅파)를 중심으로 하여 오렌지공 빌헬름을 지도자로 하여 다수의 귀족과 상공업자, 농민들이 합세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576년에는 남북 여러 주가 브뤼셀동맹을 성립시킴으로써 독립전쟁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본래부터 종교적으로 대립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이해관계를 달리한 남 ·북 양주의 불일치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새로 부임해 온 총독 파르마공의 이간책이 주효하여 1578년 남부는 에스파냐에게 굴복하였다. 그러나598),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은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펠리페 3세가 즉위한 이후 1609년 에스파냐와 12년간의 휴전조약을 체결하였다. 휴전이 만료된 이후 전쟁은 재개되었으나, 결국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서 국제적 승인을 얻음으로써 80년 간의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종식되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의 대혁명에 선행한 시민혁명의 승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2) 황금의 17세기네덜란드는 1609년 에스파냐와 휴전이 된 다음부터 불과 20∼30년도 안되어 유럽에서 제일 가는 실력과 재력을 가진 강대국으로 자랄 수 있었으며 이른바 네덜란드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기(Golden Age)를 맞게 된다. 국민들은 자신감과 긍지에 차고 실력으로 자유를 싸워 얻었다는데 온 유럽 사람들에게 자유의 기수로서 부러움과 존경을 받게 된다. 이 때 네덜란드는 기라성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많이 낳고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때 네덜란드에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들은 수없이 많아서 신약성서 와 우신예찬 을 쓴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같은 훌륭한 철학자,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 베르메르 같은 대 화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에스파냐의 통치를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친 네덜란드는 억압받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자유의 나라」였으며, 특히 카톨릭 교도들의 발해를 받던 신교도들에게는 네덜란드야말로 믿음과 행동과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신교도들(위그노)이 생명과 믿음의 자유를 찾아 무더기로 네덜란드로 도망쳐 왔고 이 가운데엔 데카르트 같은 위대한 학자도 끼어있었다.2. 17 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특성네덜란드의 도시들은 서로 근접해 있으면서 쉽게 교통하였기 때문에 지역의 화파를 개별적으로 구분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지역별 분류 대신에 장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전문화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장르에 풍경을 재현하기를 즐겼다. 살로몬 반 로이스달은 얀 반 고이엔(Jan van Goyen)에게서 하늘과 수평선만이 등장하는 대지와 물의 풍경화를 배웠다. 반사하는 수면과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이 두 무한한 공간들은 서로를 반영하며 흑갈색으로 포위된 진흙 투성이의 제방과 혹은 낡은 집들을 막아서는데, 바로 이것이 반 고이엔의 모티프이다.사실주의에 뿌리를 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특징은 정물화 장르와 가장 생활을 그린 장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사실 이 두 가지 장르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물화에서 강조되는 친숙한 사물들에 대한 애정은 15세기부터 나타나고 있었으며 16세기 말엽에는 정물화는 세속화나 종교화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어 플로리스 반 스호텐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물이나 그 밖의 물건들은 마치 물품 목록을 작성하기 위한 것처럼 늘어놓아져 있거나 쌓아올려져 있다.네덜란드의 여러 화가들 중에서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1)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네덜란드의 고유의 양식은 초상화가이자 장르화였던 프란스 할스에 의해 하를렘에서 형성되었다. 프란스 할스는 시의원이나 조합 동업자들을 그렸던 16세기의 초상화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할스에 이르러 그룹 초상화의 형태는 인물을 단지 병렬하는 것에서 떠나 인물들 사이에 심리적 교류가 흐르는 군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할스는 루벤스처럼 인물들의 동작과 붓의 활달한 움직임을 통해 구성에 동세를 부여하였다. 루벤스, 벨라스케스와 함께 할스 역시 붓 터치를 작가의 주된 표현 수단으로 삼은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이는 할스가 네덜란드 회화의 전통인 정적인 분위기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작업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는 1616년과 1672년에 그려진 에서 에 이르기까지, 젊은 시절에는 유쾌하고 감각적인 작업을 하였으나 후기에는 인간 운명에 대해 진지한 명상을 보여주었던 렘브란트와 유사한 발전 단계를 거치고 있다.{프란스 할화에 대한 의존도가 적었던 관계로 개인적 감성을 훨씬 더 불어넣을 수 있었다.렘브란트의 경력은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1631년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자마자 그는 곧 초상화가로서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결혼을 했고 좋은 저택을 구입했으며 수집가로 활동하였던 그의 생활은 루벤스와 비교될 만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이 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주문된 작품을 통해 개인적 관심을 좀더 깊이 탐구하려 하였지만 그의 이러한 태도는 주문자들을 떠나게 했다. 한 예로 야경꾼을 들 수 있다. 1642년에 부인 사스키아의 죽음으로 렘브란트는 고독에 빠지게 되었고 점차로 내적 성찰의 작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그에게 화가로서의 인기의 하락과 경제적인 몰락을 가져왔다. 렘브란트가 1650년부터 죽을 때까지 사용한 작업실은 연금술사의 실험실과 비교될 만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줄 회화의 마술적인 방법들을 탐구하였다. 그리스도의 형상에 심취했던 렘브란트는 복음 안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당시와 같은 종교적인 시대에 유럽의 다른 카톨릭 국가에서는 종교적 도상이 흘러 넘쳤던 것에 비하여 오히려 모든 경배의 대상을 거부했던 신교도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에 의해 심오한 기독교 신앙의 표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칼뱅주의는 화가의 영감과 본연의 종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기존의 도상 전통이나 종교적인 가르침으로부터 화가들을 자유롭게 하여 복음의 가장 진실된 모습과 대면할 수 있게 해주어서, 진실로 신을 갈구했던 렘브란트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였다.{렘브란트, 이 작품은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해부학을 강의하는 툴프 박사와 그 강의를 청강하는 일곱 사람의 초상화이다. 이와 같이 많은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을 각 사람의 초상화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 그려내는, 일종의 집단 초상화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특유한 초상화 형식이었다. 렘브란트로서는 이 작품이 이 분야에 있어서의 최초의 작품이 취하고 앉아 있는 인물들을 표현했다. 이러한 초상화에서는 그것의 배경이 연회용 탁자이든 회의 탁자이든 혹은 해부학 극장이든 인물을 그리는 방법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경직되어 있는 인물들의 자세는 실제상황에 구애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튈프 교수를 중심으로 둘러서 있는 인물들은 실제로 해부학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들은 조용히 집중하며 시체 위로 몸을 숙이고 절개된 팔에 드러난 힘줄을 바라본다. 그림의 모델이 된 인물들은 그들의 지명도와 학식을 렘브란트가 잘 표현해 주기를 원했고, 렘브란트는 그들의 바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이 집단의 중심 인물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그려 넣어 그의 중요성을 표현했다.렘브란트, 1642년 렘브란트는 반닝 코크 대장이 지휘하는 부대 장교들의 단체 초상화를 주문 받았다. 렘브란트는 호화로운 연회에 둘러앉은 장교들의 모습이 아니라 한낮의 성벽 근무를 위해 막 부대를 나서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이 그림에서 명암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천에 뜬 태양이 조명등처럼 비쳐 이미 건물을 나선 장교들 특히 프란츠 반닝 코크 대장과 그의 부관 윌리엄 반 로이텐 부르크는 강한 빛을 받고 있지만 아직 커다란 문간에 있는 장교들은 흐릿한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이 그림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원형 그대로는 아니다. 걸어놓은 홀에 비해 그림이 너무 커서 이 용감한 군인들이 그림의 일부를 잘라서 태워버렸다. 화가와 상의도 하지 않고 저지를 짓이어서 남은 그림은 전혀 균형이 맞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토탄을 때는 커다란 벽난로로 난방하는 홀에 그림을 걸었다. 토탄 연기가 그림에 두꺼운 그을음 층을 만들었고 마침내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18세기에는 그 그림을 한밤중의 출병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대낮을 그린 이 그림에 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3)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베르메르는 상류층 시민들이 살고 있는 델프트에였다.
    예체능| 2003.12.15| 10페이지| 1,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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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제
    신경제(New Economy)'라는 단어는 1980년대 초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엔 제조업보다 서비스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 를 일컬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비즈니스 위크 파이낸셜타임즈 등이 신경제를 기술 주도의 고성장 저인플레 경제'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인터넷 등 컴퓨터 분야를 비롯한 정보통신산업 기술혁신이 생산성 향상을 초래해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이론이 신경제이론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 스탠퍼드 대학의 폴 로머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레스 터 서로 교수다.로머와 서로 교수는 80년대 중반부터 기술발전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성장이론을 주창해 왔다. 기존 신고전파 경제이론이 경제성장이 이뤄짐에 따라 성장률이 점차 떨어져 결국은 0으로 수렴한다고 가정하고 있는 데 반해 정반대의 이론을 펼친 것이다. 신경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규모수익체증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 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규모수익체증 현상이란 특정 상품을 추가로 생산할 경우 이에 대한 단위당 비용(한계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생산을 늘릴수록 수익 규모가 점차 커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소프트웨어를 처음 고안, 생산할 때는 거액의 연구개발비가 필요하지만 추가 생산의 경우에는 소액으로도 대 규모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미국에서는 지난 1990년대 정보기술(IT)의 혁신에 따라 생산성 향상이라는 신경제(New Economy)"가 발전됐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은 대부분 데이터 처리 및 데이터 통신 부문에서 나타난 기술적 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그 동안의 고도성장과 노동시장의 안정, 그리고 낮은 실업률 등은 급격한 생산성 향상 없이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처럼 신경제의 핵심은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이 성장을 주도함으로써 전통 경제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낮은 실업률과 물가 안정 하에서의 성장이 가능했다.그러나 이러한 신경제 호황은 거품 소득에 의한 소비 과열이 밑천이 됐다. 정보기술(IT)의 발전은 이 거품 확산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이 기술만 믿고 수익 기반조차 점검하지 않은 채 일어난 닷컴 열풍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우리는 이러한 인터넷 거품에서 몇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즉, 인터넷 신경제가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느꼈지만 경제학의 법칙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미국 경제는 IT분야에 대한 투자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장기호황을 지속할 수 있었다. 맥킨지는 인터넷을 축으로 하는 IT에 대한 투자가 생산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한 분석을 한 결과, 거의 상관관계가 없으며 특히 일부 기업들이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투자(Me too investment)는 오히려 해악을 끼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IT를 이용해 생산성을 높인 분야, 예를 들면 서비스 사업 등이 미국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영/경제| 2002.12.24| 2페이지| 1,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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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분쟁]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와 민족분쟁 평가A+최고예요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와 민족분쟁1. 세계의 민족 분쟁 현황2. 세계화 시대의 민족 해체론과 반론 논쟁(1) 세계화 시대와 변화상(2) 민족 및 민족국가 해체론(3) 민족 및 민족국가 해체론에 대한 반론3. 지역별, 민족별 민족 갈등 개요(1) 러시아(2) 구유고연방(3) 중국(4) 동남아시아(5) 아프리카(6) 유럽1. 세계의 민족 분쟁 현황현대는 종전의 이데올로기적 긴장이 민족적 긴장으로 옮겨간듯한 새로운 긴장의 시대이다. 구소련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계속적인 민족 갈등, 중국의 개혁과정에서 가장 실질적인 위협 요소로 대두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민족 자각의 확대, 일본이나 동남아 여러 국가들에서 국제화의 진전과 더불어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 이민족 집단과의 교류 증대에 따른 다민족 공존체제의 형성과 유지 등 민족적 과제들이 전 세계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전 세계에서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경우는 한국인이나 아이슬랜드인 정도이다. 이에 비해 티모르인, 에리트리아인, 독일내 터어키인들은 ‘심리적 공동체’, 또는‘정체성집단(identity groups)’이라는 개념을 써야 할 정도이다. 물론 많은 인종적 소수들은 기존 국가의 국경내에서 타인종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핀랜드내 스웨덴인들의 경우가 그 예이다. 그리고 이처럼 평화적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아이리쉬-아메리칸들 처럼 각각의 정체성들이 약화되어갈 수도 있다.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이러한 평화적 공존관계 보다는 민족간 갈등 양상이 더 현저하다. 1980년대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민족집단과 인종 소수에 관한 Ted Rovert Gurr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인종집단의 지역적 분포 (1990년도)는 소비에트진영 32개, 아시아 43개, 중동 31개, 아프리카 74개, 남미 29개, 서구 24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역별로 계속되고 있는 갈등 사례 수는 (1945년-1989년) 소비에트진영 1건, 아시아 16건, 중동 11건, 아프리카 12건, 남미 1건, 서구 8건이다야기되거나 재형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민족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체계와 인종 정체성간의 긴장관계, 둘째, 냉전체제 종식의 민족 갈등에 대한 영향, 세째, 인종갈등에 대한 국제적 대응 양상 및 정책 제시 등을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그동안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기본 단위는 국가체계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체계내의 우세한 이념 및 정치적 운동들은 인종 갈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독일 및 여타 유럽국가들에서의 反셈족(유대인, 아라비아어, 헤브라이어권 종족) 교리,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반제국주의, 1970년대 유럽이 지배하던 식민 영토들이 독립 후 인종적 의식이 나타난 것들이 그 예이다. 또한 20세기에는 공유된 대의명분을 매개로 연합 움직임이 대두했는데 범이슬람권, 범아랍권의 형성 등이 그것이다. 물론 1990년대의 인종갈등 폭발은 냉전 종식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은 아니다. 1950-1989년간에도 세계적으로 소수인종과 국가간의 갈등 빈도는 점증해 왔다. 1950-55년과 1985-89년간의 인종문제로 인한 반란 수가 거의 4배나 증가한 것이 한 근거이다. 그러나 그 후 국제체제가 냉전체제에서 느슨한 양극체제를 거쳐 인종적으로 분절화된 다극체제로 변화하자 기존 국가들의 지도자들간에는 불안감이 제고되었다. 왜냐하면 한 예로 현존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우에는 집단적 책임의식을 주입시키는 수단으로서의 공산주의가 이념적 공백 상태에 처하고 과거의 적대감이 재연되면서 사회주의 사회의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소외와 고립감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은 집단들의 자기 이익 추구 경향이 노정되었는데 민족문제 재연은 이의 대표적 양상이다.2. 세계화 시대의 민족 해체론과 반론 논쟁(1) 세계화 시대와 변화상오늘날은 세계화 시대로 불린다. 실제로 세계는 몇가지의 큰 혁명적 물결로 지구촌이 하나의 단위로 묶이어 가고 있다. 그 혁명적 흐름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는 전자혁명이다. 인류는원자력 수송기까지 등장하면서 지구촌은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모두 초월할 수 있는 超時空 사회가 되었다.(2) 민족 및 민족국가 해체론세계가 이렇게 급변하자 민족문제를 연구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세계화 시대에는 과거의 민족국가가 해체되고 지구촌이 하나의 단위로 재편되리라는 예견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홉스봄(E. J. Habsbawm)은 20세기 말의 민족 및 민족주의는 19세기 또는 20세기 초의 민족 및 민족주의와는 기능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전개한다. 즉, 19세기에 민족국가와 산업경제를 둘러싼 민족의 형성과 20세기 중엽의 민족해방을 표방한 반식민주의 운동은 역사 발전에 중심적인 것으로 해방 및 통합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면 20세기 후반의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며 분열적이므로 시대적 배경과 이에 따른 필요성이 서로 다르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세계의 상호의존 현상 증가로 보다 큰 경제단위가 공동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지금은 민족국가가 예전의 경제적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이제 더 이상 19세기나 20세기 초와 같은 세계적인 정치강령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뿐이라는 주장이다.이와 같은 주장은 이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도 강조되었던 것이고 카아 (E, H, Carr), 한스 콘 (H. Kohn)과 같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비평가들도 제기했다. 이들의 시각은 첫째, 민족국가를 탈정치화된 형태로 보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즉, 민족을 정치적 중요성이 제거된 순수한 문화적, 민속학적 현상으로 환원시켜 보는 것이다. 민족국가를 탈정치화된 것으로 본다는 것은 민족을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분리해서 문화와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살펴 보는 것이다. 결국 민족국가의 문화적 차원을 정치적 차원이나 경제적 차원으로 부터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시각이다.둘째, 이들은 오늘날 민족국가가 탈군사화 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민족국가는 독자적으로 방위정책이나 대외정책을 수행할 수 없고 유엔헌장 등 국제어 갔다는 것이다.둘째, 문화란 어떠한 유형과 단계의 경제적 구조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며 세계 경제와 정치의 추세 역시 문화적 단위의 규모, 조직, 유형에 상응하는 변화와 조화를 이룬다고 가정하는 경제환원론적 가정이다.(3) 민족 및 민족국가 해체론에 대한 반론그러나 이러한 민족 및 민족주의 해체론에 대해 앤서니 스미스(Anthony Smith)와 같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첫째,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민족을 분리해서 문화와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환원시켜 보고자 하는 해체론자들의 시각은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가 서로 연관되지 않는 별개의 현상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에 있어 문화적 단위가 정치적 단위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둘째, 해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민족국가의 탈군사화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세계에는 핵무장을 한 초강대국, 핵확산의 위협, 분쟁지역의 국방비 지출 증대, 많은 국가들의 독자적 방위정책과 대외정책 유지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세째, 세계 도처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가 재연되고 있다. 특정 지역의 민족을 경제적, 정치적 결사 속에 묶어내므로써 민족주의를 억제하려는 시도들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인종적 분리주의의 분출을 저지해 내지도 못했다.이러한 반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시각은 해체론자들이 내세우는 2가지 가정에 대한 반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즉, 첫째, 중공업 중심의 19세기 자본주의와 달리 오늘날의 선진자본주의(혹은 후기산업주의)는 대규모의 서비스산업, 고도의 숙련노동과 복잡한 정보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탄력적인 전문화와 다양화 및 상호의존적 네트워크만 정립되어 있다면 작은 규모의 국가도 얼마든지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유지해 낼 수 있다.둘째, 경제조직을 운영하는 규모나 예산, 기술, 사람 및 범위는 그동안 크게 변화했으나 문화적 차원이나 정치적 차원의 변화는 그만큼 크지 않았다. 즉, 문화적 차원이나 정치적 차원은 각기 나름의 영역에서 특유한 독자적 과정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당국간의 분쟁 처럼 기존의 해묵은 민족간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도 남아있다. 현재 구소련 지역에서 가장 고질적인 민족분쟁은 코카서스와 러시아의 체첸공화국이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르지아와 러시아의 일부를 포괄하고 있는 코카서스 지역의 민족 갈등은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아프리카지역 문제를 둘러싼 그루지아당국과 아브카지아공화국간의 분쟁, 역시 독립을 요구하는 남 오세티아 당국과 그루지아, 러시아간의 대립, 그리고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독립을 둘러싸고 대립중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분규가 진행중이다.(2) 구유고연방민족 갈등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다민족국가 구유고연방은 “형제애와 단합”을 표방하며 민족간 갈등을 아우르는 정책을 구사하던 티토가 사망하자 잠재되어 있던 민족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1990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탈퇴로 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도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은 알바니아계의 자치권과 언어 사용권을 박탈했고 이는 코소보의 분리 독립 운동을 촉발하여 코소보해방군 등 무장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유혈 충돌이 계속되었다. 알바니아 해방군의 무장 독립 운동에 대해 1998년 2월 말 세르비아군이 소탕작전을 전개하면서 시작된 코소보사태는 2,000여명이 숨지고 27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관심과 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재앙을 진화시키려는 노력은 NATO 및 국제사회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그러나 NATO 등 국제사회가 코소보사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마땅한 중재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봉된 코소보내 알바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간의 민족 분쟁은 양측 모두에게 어떠한 타협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분쟁의 역사가 뿌리 깊고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다는 점, 국제사회가 코소보 사태에 대한 통일된 의견을 도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코소보의 독립 움직임에 대한 신유고연방내 강경 분위기가 더욱 결속력을 강화시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다.
    사회과학| 2002.12.21| 8페이지| 1,000원| 조회(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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