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리포트1. 한국 전통사회와 문화한국 전통 사회와 문화동신제(洞神祭)목 차0.목차.1.1.서론.2.2.동신제란 무엇인가1) 동신제의 정의.3.2) 동신제의 명칭.3.3) 동신제의 특징.4.4) 동신제의 시기.4.5) 동신제의 유형.4.3.동신제의 진행절차.5.4.동신제 현지 답사.6.5.타지역의 동신제 조사1) 부산광역시 연제구의 거평당산과 당산제.10.2) 송지면 소죽마을의 중구제.11.3) 유가면 양 1리 양지마을의 동제.11.6.타 제의와의 비교 자료1) 제사.12.2) 당고사.13.3) 당제사.13.7.분석 및 토의.14.8.동신제의 의의.15.9.결론 및 소감.16.참고자료.17.1. 서론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서 붙여진 명칭일 뿐, 민간에서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명칭은 '동제' 또는 '동신제'이며, 지역에 따라 동신의 구체적인 명칭을 들어 '산신제', '서낭제', '용신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호남지방에서는 '당산제', '당제'라고도 하는가 하면, 중부지방에서는 '도당굿', 제주지방에서는 '당굿'이라고도 한다.) http://chang256.new21.net/, 이창호의 역사교육동제는 '산고사', '동고사', '별신굿', '장승제', '용궁맞이', '풍어제', '배서낭굿' 등 그 지역의 생태적인 조건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치러진다. 그 제의 방법 역시 마을 사람이 제관이 되어 행해지는 경우와 무당과 같은 전문적인 사제자가 참여하여 행해지는 굿 형태가 있다. 중부 지역의 도당굿, 서해안의 풍어제는 무당이 주재하고, 그 밖에 제주도의 당굿 역시 전문적인 사제자인 심방이 주재한다. 내륙에서는 주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풍농제를, 어촌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낸다. 별신굿만 하더라도 풍어제로서의 별신굿과 풍농제로서의 별신굿이 각기 있다.우리 경북 지방에서 동제당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제당(祭堂), 동제당(洞祭堂), 당산(堂山) 등으로 불리며 지역에 따라 산신당(山神堂 : 송라면 대전리 산령전 마을), 용왕당(龍王堂 : 구룡포읍 구룡포리), 천제단(天祭壇 : 죽장면 두마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명(祭名)은 동제(洞祭), 당제(堂祭) 등이 일반적이다. 마을의 조상신 혹은 수호신(골매기)에게 풍농 풍어와 제액(除厄)을 청원하는 동제는 포항 지역의 경우 1990년 현재 235개 마을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내지 않는 마을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지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조만간 주민의 고령화로 전승의 단절 또는 원형의 훼손이 예상되고 있다.) http://cyber.ipohang.org, 디지털시티 포항3) 동신제의 특징동제는 혈연중심의 다례(茶澧)나 기제(基祭), 묘제(墓祭minjok.net:8080/contents/con01/kor-svc/CON01020103_001.HTM, 한국과 한국인3. 동신제의 진행절차) http://chang256.new21.net/, 이창호의 역사교육① 제일(祭日):2월, 10월에 동제를 지내는 곳도 있으나 대체로 정월 14일 밤에 동제를 지낸다.② 제관(祭官) 선출:동제를 지낼 때는 제를 지내기 3일 또는 7일이나 15일 전에 동회(洞會)를 열어서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제관을 선출한다. 제관은 정결하고 나이가 많은 원로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2 4명을 뽑는다. 간략하게 지내는 당제에서는 제관을 한 사람만 뽑는 예도 있으나, 제관의 수는 대체로 제주(祭主, 화주 제만 굿장모라고도 함.) 1인, 축관 1인, 집사(執事) 1인으로 모두 3인을 뽑는다. 2인의 제관을 뽑을 때는 제주 1인과 집사 1인을 선출하여 제주가 축관까지 겸하게 한다.③금기(禁忌):제관으로 뽑힌 사람들은 그날부터 금기에 들어가 집밖의 출입을 제한하고 언행을 조심한다. 어류와 육류를 먹지 않고, 술과 담배를 끊으며,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면서 부부가 한방에 들지 않으며, 출입문 밖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외부 사람들의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한편으로는 제관의 선출이 끝난 즉시 마을의 원로들이 동제당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잡인들의 출입을 막는다. 마을 입구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이 있는 다른 마을의 사람들이나 외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한한다.④ 제물(祭物):제주의 집을 도가(都家), 또는 당주(堂主)라 부르기도 하는데, 제수(祭需)는 제주 집에서 장만하여 집사가 운반하고 제비(祭費)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추렴한다. 제물은 메 주(酒) 과(果) 포(脯) 탕(湯) 떡(백설기)에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쓰며, 제물을 살 때에는 절대로 값을 깎지 않는다. 제주(祭酒)로 쓰는 술을 '조라'라 하는데, 동제를 지내는 신당 부근에 땅을 파고 묻었다가 술을 빚어서 사용한다.⑤ 제의(祭儀):동젯날이 되면 제관들식적으로 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위패가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서 동제를 지낸다.- 내부 건물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목제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대략 2.5 평 정도의 넓이에 50cm 정도로 상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 할아버지 제단과 할머니 제단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3년 전에 동제의 편의와 주변 건물의 이유로 합장을 했다.- 그해 동제를 담당하는 반 아주머니들이 함께 한다. 단, 제사는 남자들만 하게 되며, 아이들과 여성은 참석만 할 수 없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제사상 차림은 일반 가정에서의 기제사와 비슷하다. 단, 어촌 마을의 특성상 내륙 지방보다 어물과 건어물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제단의 출입을 옛날에는 여자들이 못했었지만 근래에는 그런 거는 사라진 상태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제부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다.- 제단은 매우 좁기 때문에 제를 지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 서서 하기도 한다.- 우리들도 밖에서 제부를 제외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소지(소원지)를 태워서 소원을 빌고 있다.- 동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신기하기도 했으며 놀라기도 했던 부분이다. 일반적인 제사와는 다르게 미리 준비해 간 소지를 제사 중간에 태우면서 '할배'에게 마을의 평안과 개개인의 번영을 바라는 말을 했다. 이 동영상은 따로 첨부하였다.- 제사가 끝난 후, 악귀를 막으려는 의도로 제사때 사용된 음식을 뒤편의 소나무에 약간 담아서 둔다. 실제로는 짐승이 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 나무 위에 걸거나 땅 속에 묻어 두기도 하고 또는 제단을 따로 만들어 음식을 두기도 한다.< 9. 제사를 마친 후 제부들과의 간담>- 제사를 마친 후 견학생의 질문에 제부들이 답변을 해주고 있다.- 제사의 진행과정을 직접 보고 궁금했던 점, 예를 들어 소지를 태우는 장면이나 악귀밥을 주는 이유, 등을 물어 보고 그에 답해 주시는 장면이다.-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마산리의 실정과 동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제일에 상가가 생기거나 개가 죽으면 제사를 다음날로 미루며 8일 해 뜨기 전 마을 전체주민들은 안길, 길가, 집안, 우물 등을 청소하고 우물에 금줄을 치고 대문에 황토를 뿌리며 우물에 채일(遮日)을 씌우고 제장에 영(令)을 꽂는다. 또 해 뜨기 전 각 가정에서 미리 우물물을 기르고 이후에는 제주만 우물을 사용한다. 제물은 민어1수, 조기7수, 군고기7수, 감7개, 떡3되, 돌갓, 고사리, 듬북 등을 남자제주가 장만한다. 민아1수는 제가 끝난 후 제를 지낸 자리에 묻고 7수의 조기와 군고기는 일곱 상에 각각 1마리씩 놓는다.음력 9월 초아흐렛날 새벽3시가 되면 마을 뒷산중턱에 제주2명과 심부름 하는 5명의 바리채만이 산에 올라가 새벽 5시까지 제를 거행한다. 음식이 마련되고 상차림이 끝나면 상차림 굿으로 나팔과 북, 꽹과리로 제의의 시작을 알리고 남자제주가 절3번하고 제주가 술을 헌작하면 농악을 다시 울리고 불지 20장, 창호지 1장을 가지고 소지(燒紙)를 올린다. 소지는 맨 먼저 액운방지 소지를 올리고 중구할머니께 마을의 안녕과 농사병충해방제 가축의 무병, 마을어르신의 장수를 기원하는 소지를 차례로 올린다. 제를 지낸 후에는 굿물을 치며 제주 집에 마을전체 주민이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마을단합을 다진다.3) 유가면 양 1리 양지마을의 동제) ''산간 신앙 II(경북.경남 편)', 국립 문화재 연구소, 1999, 122p~135p제당은 마을 입구에 있는 '골맥이 당산'과 마을 뒷산의 정상 부분에 위치한 '산 당산' 두 곳이다. '산 당산'은 산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지만, 이것은 또한 본래부터 있었다는 의미인 '원 당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상 신은 당산의 겨우 '당산' 또는 '서낭님'이라고 하며, 이 곳에는 산신과 당산의 서낭님을 모시고 있으며 위계적으로 산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한다. 제의는 '동제' 또는 '당산제'라고 한다. 제관은 '주관'과 '제관'으로 나누어지며, 대동회를 개최한 가운데에서 마을 어른이 주관하여 정월 초아흐렛날이나 초린다.'
-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어제와 오늘 -박정희 대통령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토대로 이어나가던 응용과학의 발전은 이후 정책 적인 지원의 부재와 경재적인 과학 발전 지원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그 발전 속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급기야 이공계 기피라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당면하게 되었다. 세계의 역사가 항상 그렇듯이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이 있었 고 훌륭한 인물, 훌륭한 제도, 그리고 대중적인 협력을 뒷받침으로 하여 슬기롭게 극복을 하면서 현재에 와 있다. 과학발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위기는 쉽게 극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와 많은 정책 결정인들이 수많은 해결안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문제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봉책만을 체시하 고 있다. 왜 이런 위기가 닥쳐오게 되었으며 이런 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현재 과학발전의 선두주자로서 미국의 과학발전에 밑거름이 된 요인들을 살펴보고 미국의 경우 이런 요인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미국의 과학발전 위기를 해결한 방법들을 살펴보고, 이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현재 위 기의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미국의 과학 발전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들은 무수히 많다. 따라서 여기서 모든 부 분을 살펴 볼 수는 없으며 이들 요소들을 제도, 교육, 국제 관계, 인물의 요소들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우선 미국 과학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 대표적인 제도 장치로는 과학기술진흥협회, 미국 지질학서베이, 국립과학재단, 그리고 정부 주도의 국방과학연구를 들 수 있다. 교육 측면을 살펴보면 19세기 중반의 대학 설립 붐과 연구중심 대학의 출연, 20세기 초의 대학 개혁, 그리고 대학-정부간의 협동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한편 과학 발전에 관계된 20세 기까지의 국제 사회의 상황은 주로 전쟁과 냉전으로 인한 경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제1 차 세계대전 후의 공황으로 인해 나타난 science던 V. Bush, 맨하탄 계획에서 Oppenheimer, 그 외에도 칼텍의 성공을 이룩한 헤일, 노이즈, 밀 리컨, MIT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칼 컴프턴 등 미국의 과학 발전에 중요한 제도나 단체, 대학 등에는 모두 훌륭한 인물들의 지도와 경영이 숨어 있다.위에서 나열한 미국 과학발전의 요인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특정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대적으로 분석을 해 보면 아래와 같이 연대기를 작성 할 수 있다.{초기 미국은 기초 과학 기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실용적, 경험적 기술(Baconian science)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전문적으로 과학에 종사하지 않고 아마추어 과학 자들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다가 과학의 전문화 과정에 들어가면서 미국과학진흥협회 (AAAS)와 같은 단체들의 역할에 힘입어 과학의 전문화, 추상화가 이루어 졌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내란 동안 군사연구와 의학 분야의 필요성에 따라 정부는 과학 진흥을 장려하 게 되고 정부과학의 인프라가 조성되었다. 19세기 초반부터 진행되던 지질학서베이를 통 합하여 USGS를 설립하는 한편, 전후 정부는 첨단 과학의 육성의 필요성으로 미국국립아 카데미를 설립하게 되고 Morrill Land Grant Act의 통과로 인해 많은 대학들이 19세기 후반에 들어 생겨나게 된다. 전후 첨단 과학 분야인 지질학을 중심으로 지질학서베이를 위해 USGS를 설립하여 과학진흥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대학은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변화 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농업분야에서 Hatch 법안, Adams 법안으로 정부의 기초 과학투자가 이루어져 많은 연구소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에 불어 닥친 경재공황으로 정부의 관료화, 과학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때 Bush의 과학연 구개발국(OSRD)이 생겨나게 되고 수요 창출을 위한 정부의 거대 프로젝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대학들은 산업체의 수탁과제 격감으로 연방정부에 의존하게 되면서 정부와 대학의 계약혁의 반복을 통해 미국 과학이 발 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음 AAAS를 통한 과학의 전문화, 남북전쟁중의 과학진흥정책, 경재공항 후의 science bureau, 대학 위기 이후의 대학 개혁, 2차 대전 후의 NSF 등을 살 펴볼 때 과학의 위기는 때로는 공황으로, 때로는 전쟁, 냉전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개혁 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들은 이를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의 힘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위의 내용을 토대로 미국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된 미국과학정책들의 방향을 살펴보면 첫째로 응용과학과 기초과학의 균형을 들 수 있다.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과학발전에 가 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 V. Bush의 “과학: 끝없는 프론 티어를 향하여” 라는 보고서는 이런 정책의 방향을 잘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초과학의 투자를 통해 연구 인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둘째로 첨단 과학기술의 육성이다. 미국 과 학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첨단 과학이 되는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함으로써 과학발전의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산학연 협동 연구를 적절히 이용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정부가 투자를 하는 과학기술분야는 대부분이 대학이나 산업체 연 구소를 통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투자 역시 science bureau, 맨하탄 프로젝트 나 테네시 유역 개발 등의 예에서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 주도의 거대과학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이나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부 주도의 과학은 주로 국 방과학기술 분야에 치중되어 있는데 이러한 과학기술은 연구 후에 원자력 발전 등 정부 사업이나 산업체에서 재사용되어 나타났다. 즉 거대과학을 추구함으로써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다방면의 과학발전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제 미국에서의 과학발전 과정을 살펴본 것을 우리나라에 적용해서 살펴보기로 하자.해방이후 우리는 이미 세계 과학 수준에 아주 낙후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에는이다.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 설립과 포항과학기술원 POSTECH의 설립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에 가장 특징적인 요인으로 들 수 있는 국제관계로는 주로 미러중일의 4대 강국에 의한 개입과 간 섭을 들 수가 있다. 과학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과거 우리나라의 여건으로 볼 때 과학전문 경영인에 의한 영향은 그다지 없고 주로 과학발전에 생각을 가지고 있던 박 정희 대통령 등과 같은 전문 정치인들을 들 수가 있겠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 은 과거 한국의 과학발전은 표면적으로 볼 때 정부의 역할이 아주 크게 작용을 했다. 미 국에서의 경우와 같이 자유방임에 가까운 산업, 대학, 연구 구조에 정부가 지원, 보조하는 형태가 아니라 정부가 모든 부분에 있어 통제와 주도를 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이제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을 해왔는지 알아보자.{한국전쟁 이후 몇몇 과학단제가 있었고 협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 활동은 미비했다. 그리 고 낙후된 경제적 기반으로 인해 정부의 과학발전에 대한 투자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교 육 여건도 서울대학의 전신인 경성대학에 공과대학이 있었으나 교육의 질적, 양적인 면에 서 많이 부족했었다. 60년대 중반까지 자체 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제반 여건 조성이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선진 기술의 도입과 모방에 치중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63 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영향으로 외국자본의 유입 과 중화학공업 위주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응용과학 분야의 기술도입과 연구가 급속히 진 행되었다. 이와 함께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상품가치가 있는 응용과학기술 위주 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과학기술원이 60년대 중반에 설립되 면서 과학기술의 정부 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들어 과학기술진흥정책이 실 시되면서 대덕연구단지에 대규모의 산업체의 연구소,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설립되기 시작 했으며 연구인력 인프라의 구축을 했다. POSTECH은 칼텍을 모델로 86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이다. 현재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과학기술대학으로 많은 부분에서 세계적인 수 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 후 2000년대에 들어서 과학대중화, 체계적인 과학정책 필 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에서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여 현재 진행 중에 있다.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에 의해서 현재의 과학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와 대 비해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기초과학 의 부실 및 낙후라는 점이다. 소위 돈 되는 학문을 위주로 발전시키는 정책으로 인해 현 재 우리나라는 몇몇 최첨단 과학기술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6T 분야의 투자를 계속하면 서도 정작 기초과학 분야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돈 안 되는 학문의 기피 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추구한 결과로 인해 나타났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볼 때, 그리 고 미국의 기초과학 육성정책을 살펴 볼 때 기초과학의 소홀은 장기적으로 응용과학 역시 발전의 한계를 가져오게 된다. 두 번째 문제로 정책 결정을 하는 인물들의 과학기반 경영 마인드를 들 수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이공계기 피라는 과학발전의 위기에 당면해 있 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위기 후의 제도나 단체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모두 과학기 술 기반의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이끌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우리나라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인들은 문제의 심 각성과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정책을 체시하지만 이러한 과학기술의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세 번 째로 대중적인 과학발전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 과학기술 교육 의 부재로 인해 현재 집권 세대 및 기성세대에서의 과학에 대한 무지는 과학발전의 초석 이 될 수 있는 정책결정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의 대중적인 지다.
목 차{1. 흡연 현황(1) WHO 의 통계자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2) 우리나라의 통계자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2. 담배의 주요 유해 물질(1) 니코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2) 타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3) 일산화탄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3. 흡연의 생리적 피해(1) 담배와 약의 관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2) 흡연으로 인한 직장피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3) 간접흡연의 피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4) 간접흡연의 어린이의 피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5) 흡연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4. 금연 실패의 생리적 원인(1) 니코틴 중독· · · · 인다. 이러한 폐암의 증가는 흡연이 주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사람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흡연자가 금연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개인 과 국민의 건강 증진에서 금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래는 우리나라 내에서 조사된 담배에 관한 통계자료들이다.< 담배에 대한 통계 및 연구 보고자료들 >·전국 남자고교생 흡연율은 88년의 23,9%에서 97년 35.3%로 증가, 여고생 흡연율은 1.3% 에서 9.9%로 증가, 남자고교 2~3 년생은 40% 이상이 흡연.(한국금연운동협의회)·담배를 피우지 않는 고교생의 59.4%는 가장 친한 친구 3명 중 담배를 피우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의 57.8%는 가장 친한 친구 3명 모두 담배를 피운다 고 각각 응답.(영남대 가정의학과)·15세 이상의 한국 남성 중 73 % 가 흡연자로 베트남. 중국과 함께 세계 최고수준.·담배를 피우는 남편과 함께 사는 여성이 폐암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여성의 1.2~3.1 배. 아버지가 흡연하는 가정의 자녀가 급성호흡기질환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 다 5.7배. 부모가 흡연하면 자녀는 1년에 80개비 이상담배를 피우는 효과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은 비 흡연자보다 15~25배 더 높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나이 가 어릴수록 폐암발병률은 더욱 높은 경향.2. 담배의 주요 유해 물질일반적으로 흡연 시 약 4,000여 종의 화학적 성분이 담배에서 생산되어 인체로 흡입된다. 담 배연기는 기체 성분과 미립자 성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인체에 유해한 주요 기체 성분으로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니트로사민, 질소화합물, 시안화수소, 암모니아 등이 있으며 미립자 성 분의 유해 주요 물질은 니코틴, 타르, 석탄산, 폴로늄210(방사선 물질), 비소, 크레졸, 싸이나, 벤 조피렌, 아크롤레인 등이 있다. 한번 흡입 시 대개 50mg의 담배연기가 인체로 흡입되는데 이때 미립자 성분 18mg과 기체내 페인트 공사를 실시해야 한다.(3) 간접흡연의 피해간접흡연만으로도 건강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간접흡연에 대한 피해가 정식으로 언급된 것은 1972년으로 이후에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미국에서는1986년 간접흡연의 피해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통해 간접흡연의 피해를 공식화 하게 되었다. 이 보고서가 내린 중요한 결론은1 간접흡연은 비 흡연자들에게도 폐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된다.2 흡연자들 가정의 아이들에게 상기도 감염이나 증상의 빈도가 증가하는 동시에 이들 의 폐 기능 증가 속도가 더디다3 단지 비 흡연자를 흡연자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일만으로는 비 흡연자들이 간접흡연 의 위험에서 아주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담배 연기는 흡연자가 들이 마신 후 내뿜는 주류 담배 연기(mainstream smoke)와 타고 있 는 담배 끝에서 나오는 생담배 연기인 비주류 담배 연기(sidestream smoke)로 구분할 수 있다. 흡연자와 함께 있을 때, 공기 중에 섞이는 담배 연기 중에는 85%가 비주류 담배 연기 이고, 15%가 주류 담배 연기이다. 문제는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사람이 주로 마시게 되는 비주류 담배 연기이다. 담배 끝에서 나오는 생담배 연기는 담배 속의 모든 독성 물질, 발암 물질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외부로 내보내기 때문에 그 독성이 대단히 강하다. 또한 담배 연기 입자가 작아서 폐의 더 깊은 부분에 침착된다. 실제로 비주류 담배 연기와 주류 담배 연기를 분석해 보면, 모든 연기 내 독성 성분이 비주류 담배 연기에 2~3배 정도 더 많다. 따라서 간접흡연은 직접 흡연 못지않게 인체에 해가 된다.(4) 간접흡연으로 인한 어린이의 피해간접흡연의 영향이 가장 예민하게 나타나는 집단은 어린이들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린이는 성인보다 생활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유독 물질의 영향에 더욱 민감하다. 특히 간접 흡연은 자녀의 출생 전부터 영향을 끼치며, 저 체중 출생아나 영아 돌연사 증후군 등 신생아 와 영유아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사라진다.7 소화 장애소화가 잘 안되고 변비가 생기고 가스가 찰 수 있는데, 보통 1~2주 정도 지속된다.8 기침니코틴 금단증상과는 관련이 없으며, 그동안 쌓였던 타르 등을 제거하기 위한 신체의 정상 적인 방어 과정으로 가래가 늘면서 나타나는데, 수일 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진다.9 공복감, 배고픔평소에 먹던 양보다 더 많이 먹으려는 경향이 생기고 음식물에 대한 적응이 잘 이루어지 면서 체중이 증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한 체중증가로 금연에 실패할 수 있 으므로 주의해야 한다.⑩ 불면수면장애가 발생하거나 두통, 신경과민, 기침 등의 증상에 의해서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⑪ 피로감금연후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⑫ 따끔따끔 쑤시는 느낌팔다리 등이 쑤시는 느낌은 산소 공급이 정상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걱정할 것이 못 된다.5. 금연 실패의 심리적 원인담배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니코틴을 체내에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 으며, 이들의 흡연속도는 소변 내의 산성-알칼리 수준을 결정하는 수소이온 농도지표에 의해 통 제가 된다고 한다. 흡연자들은 장기간 지속하던 흡연을 중단함으로서 오는 불쾌한 경험을 가지 는 것보다는 흡연을 계속함으로서 즐거운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한다. 흡연을 계속하게 되면 의 존이 되기 쉬운데 흡연자는 흡연과 연관되는 의학적 문제점을 알면서도 흡연을 계속하는데 이 는 중요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며 니코틴 의존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러한 습관성 의존을 야기하는 약리학적, 심리적인 기전은 다른 남용물질에서도 유사하다. 또한 흡연의 심리는 다른 물질사용과의 심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흡연을 하게 되는 심리적인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1) 정신분석학초기 이론에서는 담배의 남용은 강한 우울 또는 충동조절의 장애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이론에서는 담배(약물도 포함됨)의 남용 및 의존을 자아의 결함으로 설명하 고 있다. 즉, 고통스러운 감정 남용이란, 그 결과 때문에 유지(반복)되는 행동일 것이라는 것이다. 니코틴이 주성분인 담배는 담배만이 가진 효과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점, 담배의 의존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회적인 인식 등 때문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담배를 처음 피게 되면 첫 흡연시의 심리적인 경험이 쾌감을 나타내는 긍정적 재강화를 통한 학습이 진행되어 흡연을 반복하게 되며, 흡연을 반복하게 되면 끊었을 때의 불편감으 로 인해 계속 흡연을 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담배가 쾌감을 나타낸다면 이는 긍정적 재강화제(positive reinforcement)이다. 부정적 재강화제(negative reinforcement) 역 시 나타난다. 담배에 의한 체중감소가 그 예인데, 담배를 끊으면 원치 않는 체중 증가가 나 타나기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한다. 치료에 있어서도 담배의 사용 중단에 대한 보상이 아주 좋으면 재사용이 억제된다. 그러나 담배의 경우에는 당장은 건강을 위협하지 않으므로 금연 을 시도하는 일은 드물다.담배의 경우에는 당장의 쾌감보다는 금연을 함으로서 생기는 불편감을 견디지 못해 계속 담배를 피우게 된다는 주장이 현재 더욱 지배적이다. 그러나 강박적 흡연은 금단상태나 통 증, 불쾌감 같은 부작용내지 혐오상태를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긍정적 재강화 효 과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많으며, 또한 흡연에 대한 갈구행동(craving)은 금단상태 를 야기하는 사건보다 다행감 같은 긍정적재강화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사건에 관련하여 나 타난다고 한다.이차적 재강화 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이는 흡연이 파티, 음주, 식사, 성행위 등 유쾌한 일 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단서(cue)가 되며, 맹렬한 광고도 흡연을 조장하는 요인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약리적인 이차적 사회적 재강화제(secondary social reinforcer)라는 개념도 있다. 이는 약물사용이 사회적 위상(social status membership)이나 친구들의 인정을 확보하다.
Ⅰ. 서론공리주의의 개념틀은경제 윤리공리주의에 대하여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있어 왔으며,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형태와 내용을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벤담(Jeremy Benthem)과 제임스 밀(James Mill)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에 의해서다. 이 원칙에 의하면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며 행복은 쾌락의 合이다.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는 행위, 규칙, 관행이나 제도는 좋은(good)것이고, 좋은 것을 하는 것은 옳다(right)고 공리주의자는 생각한다. 반면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행동은 나쁜(bad)것이고, 나쁜 것을 하는 것은 그르다(wrong)라고 공리주의자는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좋고 나쁜(good or bad) 것이나 쾌락 혹은 고통이란 것은 행위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공리주의자는 어떠한 행동이나 사회제도가 사람들에게 쾌락이나 만족 혹은 행복을 가져다 주면 공리(功利)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리가 있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가장 옳은 행동은 공리를 최대화하는 행위이다. 즉 인간적인 善을 최대화하는 것이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이다.이러한 공리주의는 18세기 영국에서 발전한 도덕·사회철학으로서 당시 영국사회의 개혁을 추구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고, 고전경제학의 자유주의적 경제학을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공리주의는 19세기말에 나타난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후생경제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공리주의는 경제학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방법론적 모순은 주요 장애로 남아 있고 영원한 과제일 수 있으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개인이익의 자유로운 추구와 극대화에 있고 이러한 이념은 경제이론에 실체화 되었다. 공리주의는 당시의 사상사적 맥락에서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취e), 즉 일종의 자연적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은 도덕판단이 이성의 직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던 종래의 주장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善이란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보았다.허치슨은 사프츠베리의 영향을 받아 도덕판단이 도덕감각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도덕감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도덕감각이란 視力처럼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만 사람에 따라 시력의 차이가 있은 것처럼 도덕감각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도덕감각은 도덕적 행위의 동기가 되기도 하는데 사람이 덕을 추구하는 것은 유덕한 행위가 그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동기를 자기 이익으로 환원시키는 견해에 반대하고 인간성 속에 보편적으로 자비로운 성향이 있다고 하였다.허치슨과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출신인 흄은 공리주의 철학의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흄은 자연현상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인간행동에도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행동에 의외성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측되는 것이 바로 인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행동이 이루어짐에 있어서 이성은 인과관계를 판단하고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을 발견하는 기능을 할 뿐, 아무리 이성이 인과관계를 인식해도 대상물에 대한 욕망이나 혐오가 없다면 비록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다하더라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성향이나 혐오가 모든 행동의 원인이며, 이성은 정념(passions)에 봉사하는 도구인 것이다. 또한 인간행동의 궁극적인 원인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흄은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도 이성이 무력하고 도덕감각 혹은 도덕감정이 중요함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악덕과 미덕을 구별하는 것은 인상(impression)에 의해서이고, 인상이란 감정 혹은 정념이다. 그러므로 도덕판단의 원천은 이성의 추론이 아니고 감정이다. 흄은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사회문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벤담은 여러 종류의 쾌락과 고통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며 단지 양적으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벤담의 양적 쾌락 공리주의는 후에 밀의 비판을 받게 된다. 벤담은 여기서 두가지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는 심리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인은 쾌락추구와 고통회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명제고, 둘째는 첫째 명제로부터 바로 고통이 유일한 악이요, 쾌락은 유일한 선이라는 가치판단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벤담은 첫째 명제를 당연시하여 이 심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예외적인 존재는 없다고 단정하였다. 만일 이 주장이 심리적 이기주의를 의미한다면 규범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의문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기적으로밖에 행동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이들에게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공리성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고려되는 당사자 전체의 행복의 증진에 관련되어 있다. 이것이 공리성의 또다른 원리인 최대행복의 원리이다. ‘어떤 행위가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그것을 감소시키는 경향보다도 큰 경우에는-사회전체에 대하여-공리성의 원리에 합당하다고 말한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설』에서는 최대행복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단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벤담이 사회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최대행복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의 量이 측정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合算이 가능해야 한다. 벤담은 쾌락의 계산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쾌락의 크기는 강력성·지속성·확실성·遠近性·多産性·순수성 등을 고려하여 측정할 수 있고, 이러한 쾌락측정방법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적용하여 산출한 후 합산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쾌락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개인의 행동선택에 있어서 쾌락 계산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주관적인 감정에 의하여 도덕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외적 기준이 없다. 벤담은 샤프츠베리. 허치슨, 흄 등을 이 부류에 집어 넣고, 자연법 사상도 동감과 반감의 원리에 속하는 것이므로, 사실은 자신의 감정을 자연법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벤담은 동감과 반감의 원리에 대해 가장 많은 비판을 하였는데, 그것은 당시에 이 사상의 영향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넷째, 신학적 원리(선악의 기준으로서 신의 의지에 호소하는 원리)는 사실은 공리의 원리, 금욕주의, 동감과 반감의 원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독립적인 원리가 아니라고 벤담은 주장한다. 신의 계시를 실제로 적용할 때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해석의 원리로서 앞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벤담은 공리성의 원리를 비판하는 도덕원리를 비판하였으나 공리성의 원리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원리는 그것 자체로서 증명 불가능한 것이며, 증명의 연쇄는 그 출발점을 다른 곳에 갖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즉, 이 증명은 불가능하며 동시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Ⅳ. 밀의 질적 공리주의밀(1806-1873)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행동들이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에 비례하여 옳고, 행복의 반대(불행)를 산출하는 경향에 비례하여 그르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벤담의 주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벤담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돼지에게나 합당한 철학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응하여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였다. 어떤 종류의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고상하다는 것이다. 즉 소량의 고급쾌락이 다량의 저급쾌락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고급쾌락이란 양자를 다 아는 자가 선호하는 쾌락이고, 쾌락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면 다수의 선호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쪽을 다 경험한 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슷한 선호를 나타내지도 않을 뿐더러 쾌락 인정하지만 벤담과는 상이하다. 밀에 따르면 제재는 크게 外的 제재와 內的 제재로 구분된다. 외적 제재란 다른 사람이나 신으로부터 호의를 기대하거나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이기적인 존재일지라도 이러한 외적 제재 때문에 공리의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내적 제재는 의무감 혹은 양심인데 의무를 위반했을 때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밀에 의하면 이것 이외에 공리주의에 강력한 자연적 감정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감정은 대부분의 개인들의 경우에 이기적 감정보다 약하지만 외적 제재와 더불어 타인들을 배려하도록 이끄는 궁극적인 제재이다.밀은 벤담과 마찬가지로 ‘궁극적 목적에 관한 문제는 통상적인 의미의 증명은 불가능하다. 추론에 의한 증명이 불가능한 것은 모든 제일 원리에 공통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리원리의 증거를 제시하려 하였고, 각 개인이 자기의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로부터 행복이 바람직스러운 것이라고 추론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모든 사람은 모두의 행복을 원해야 한다고 추론한다.밀은 행복이 목적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궁극적 목적이라는 공리주의의 주장을 행복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들-예컨대 덕성, 권력, 명예 등-이 궁극적인 면에서는 행복의 수단이므로 행복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논리로 입증하려고 하였다.인간이 행복의 수단이거나 행복의 일부가 아닌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사실이라면 행복이 인간행동의 유일한 목적이고, 행복의 증진이 모든 인간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Ⅴ. 공리주의의 의의와 한계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철학의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공리주의가 규범윤리학으로서 과연 얼마만큼의 타당성이 있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쾌락주의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이든 밀의 질적 공리주의든 공리주의는 공통적으로 쾌락주의적 속성을 지닌다. 직관적으로 쾌락 혹은 행복이 바람직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행복이 유일한 본래적 선이라는 주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