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러시아는 광복이라는 역사적 시점속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광복과 함께 조국 분단을 맞았고, 북에는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남한에는 미국이라는 자유주의 국가가 들어왔다.그에 따라서 나로서는 아무래도 소련이라는 나라에 대해 객관적인 이해가 많이 불가능했었다.북한. 소련을 묶어 반공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던 교육상황에 처해있었으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직도 일부의 대학생들은 스탈린주의나, 마르크스, 레닌 등에 대해서 반공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토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책에서 보면 그러한 상황들을 정치적 편의에 따라서 역사의 내용을 조작하고 정보를 통제하고자 하는 우리 나라의 정치적 성향이 반공이라는 기치 아래서 작용해 왔으며, 그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던 반작용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조건 신뢰하는 역몽매주의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솔직히 나는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며, 또한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 대한것들은 더더욱 모른다.그러나 무조건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역몽매주의적으로 보아서는 안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소련의 붕괴이후, 사실상 그러한 사상을 추종해왔던 학생운동세력은 많이 약해졌다.자신들이 믿었던 사상의 확인체였던 소련이 붕괴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으리라.하지만 그러함에도 그 사상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상자체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사상의 적용시기에 문제점들이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자본주의의 성숙도가 익기 이전인, 초기 경제 발전기 그리고 민주화를 향한 사회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의 무리한 사상 적용은 당연한 역반응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아주 아주 짧고 무지한 나의 생각을 감히 말해본다면, 역사적으로 그러한 흐름이 다시 한번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마르크스의 이론 그대로 말해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들을 단순히 뒤집어 엎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혁명이 아닌, 필연적 흐름으로써...아무튼 러시아는 그 광활한 땅덩어리 만큼이나 정말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20세기 초의 러시아는 세계를 크게 변화시킨 사건을 무려 2차례나 나타내었다.언제나 세계의 먼지같은 존재로 기억되는 약소국가에 사는 나로서는 더욱더 놀랄 수 밖에 없다.혁명을 성공시켜 세계를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두 진영으로 갈라놓고 세기말에는 커다란 역사적 실패의 기록도 낳았다.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임을 만천하에 보이고, 다시 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아직은 건재함을 드러낸 사건들을...러시아에서는 1917년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후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전승국인 소련이 등장함으로써 사회주의권은 세계의 한 축을 이루었다.이후 사회주의 경제는 저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소련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은 다시 국가의 뿌리를 뒤짚는 대변혁을 일으켰다.그 결과 많은 옛소련 구성국은 탈소 독립을 외치며, 독립해 나갔고, 자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이제 러시아에 남은 것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핵 이라는 거대한 무기를 가진 것을 빼고는... 하지만 러시아는 지금 낙후되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굉장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소련의 붕괴이후, 러시아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소용돌이처럼 논쟁에 휘말렸다.자본주의 체제가 인류 최후의 사회체제인가?또는 앞에서 말한 나의 생각처럼,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분석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점들을 지적하여 다시금 사회주의로의 길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약간 바꾼 제 3의 길을 찾아야 하는가?? 등등의 여러 논쟁이 있다.그러나 지금까지도 이러한 고민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곳은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바로 러시아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러시아는 전세계적 발전의 획을 그을수 있는 고민들을 국가적 고민으로 받아 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현재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러시아는, 사회주의가 아닌 완전한 서방자본주의속에서 과연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러시아에 현재 발생하고있는 현상적 문제점들, 그에 대한 우려들이 나타내 주고 있다.현재 러시아를 보면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점들을 단순히 자본주의가 뒤엎을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등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러시아외의 옛 소련 구성국들과 동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경제파괴, 극심한 빈부격차, 대량실업... 사회주의를 대체한 자본주의가 안겨준 것들의 현상적 모습들이다.즉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가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해 준 것은 아니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옛 소련 구성국들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국가간 재결속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옛 공산당 계열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정권에 재진입을 하고 있다.물론 이들이 이전처럼 완전한 사회주의를 꿈꾸며, 정치로 재진입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지지하는 국민들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우리가 현재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면서,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 좋았지... 하지만 실제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큰일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러시아 국민들과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과거 시대상황이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아무튼 러시아에선 지금까지 세계 그 어떤 나라도 겪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전환을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숱한 문제점들속에서 러시아는 어떤 방법으로 어떤 결과로 그것들을 극복하고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든다.러시아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기에 충분히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비록 물질적으로는 적어 보일지 몰라도 학술이나 문화등의 깊이는 하루 아침에 얻어질 수 없을 것들이기 때문이다.푸슈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솔체니친등을 배출했으며, 세계 정상의 볼쇼이 발레와 음악인들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의 시련의 역사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인간의 위신을 지켜나갈 줄 아는 정신자세를 역사적으로 거듭 보여주었다.혹독한 기후속에서 인내심을 길러 왔으며, 역사적으로 민족구성이 아주 복잡한 다민족 사회로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민족끼리 서로 협조하고, 때로는 반복, 대립하면서 지금까지 러시아를 이끌어왔다.러시아가 또한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있다면, 많은 외세침입속에서도 견디어왔다는 것이다.외부의 침략에 대한 강한 경계심. 안전 보장에의 강한 집착을 가지고 견디어 내왔다.이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강력한 국가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키워왔다.모든 이질점들을 러시아는 제국, 국가란 관념으로 묶어 올라가며 성장했다.병합한 나라의 옛 지배자들을 자기네 지배계급, 귀족의 반열에 편입시켜 융화시켰으며 종교를 통해 견고화시켜왔다.또한 이런점들에 대해 언급할때는 러시아 정교에 대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토론에서도 보았지만, 러시아에서는 정교 가 단순한 신앙의 역할외의 국가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초기에도 정교는 단순한 종교적 역할이 아닌, 야만적 관습을 순화시키고, 문화를 전파하여 법률의 역할까지도 해가며 사회발전에 공헌해왔으며, 그 결과 나라통합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동시에 기독교 세계 전체와의 유대를 강조하는 이념적 기반까지 제공하여 건축과 회화에도 괄목할 만한 결과를 남기었다.
어쩌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는....아니 정말로 있었으면 하는 그들의 이야기-공동경비구역을 보고나서'공동경비구역' 나에게는 참으로 낯선 단어이다. 분단국가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온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나에게 관광지 이상도 이하의 느낌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얼마전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물론 그것도 내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내가 굳이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공동경비구역'을 인상깊게 보았다고 해서 별 감동을 못느꼈던 이산가족상봉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지, 가족들을 만나고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분단상황이던 아니던 충분히 감격스러운 상황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하지만 영화를 봄으로 해서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왔던 북한이 정겨운 느낌으로 우리랑 다른 사람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긴 했다.아무튼 '공동경비구역'이 시대상황을 잘타고난 영화라는 생각은 든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인한 김정일 주석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없었다면, 이산가족상봉이라는 역사적인 일이 없었다면은 이정도로 순탄하게 개봉할수 있었을까? 요새 조성모 뮤직비디오를 가지고 모 부대에서 난리를 치는 것을 볼때, 비록 영화가 픽션이지만 한국군이 몰래 북한군 초소에 들어가서 술마시고 놀고 게다가 북한군에게 먼저 총질을 한다는 부분, 북한군을 이제까지와 다르게 미화시킨 부분 등 보수주의 일간지라든가 하는 것들에 의해서 흠씬 얻어맞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이 영화를 택한 이유굳이 리포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보고싶다는 느낌이 들었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한달전쯤부터 유난히 눈에 띄였었다. 유명한 배우들의 캐스팅도 그렇고 명대사(?) 부분만 콕 찝어 정말로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 광고 때문에...헌데 신문을 보니 충무로에서는 이 영화 별 재미못보겠는걸... 하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비록 의외의 결과를 낳았지만... 아무튼 와호장룡은 윤발씨가 맘에 안들고 아이즈 와이드 셧은 그걸 본 내친구의 평가가 죽음이라고 하길래 '공동경비구역'을 보게되었다.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가 중 하나가 ' 이영애 miss캐스팅'이다. 나도 공감하는 부분인데 이영애는 그냥 얼굴마담여군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건을 파헤쳐가는 좀 강인한 모습을 기대했었는데...이미지가 영 아니었다. 게다가 발음도 한국에 처음 온 교포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웬지 외국 개봉하면 이영애 발음 때문에 장난 아니겠다.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김태우의 어벙한 대사 (변비 환자의 자세에 대한...) 이병헌이 지뢰밟고 질질 짜는 장면등 영화는 점점 재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영화 중반쯤인가...이병헌, 김태우 남한군 2명과 신하균 송강호 북한군 2명 모두 2명의 대화와 놀이 (?)속에서 정말로 즐겁게 웃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무슨 이야길 하고자 하느냐면 '북한군'이란 사람들을 보고(비록 영화지만) 전혀 이질적인 느낌없이 웃고 있는 나 자신을 새삼스럽게 느꼈기 때문이다.공동경비구역에서의 남한 병사가 북한군과 쪽지도 주고받고 노래 TAPE도 보내주고, 같이 과자도 나눠먹고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정을 나누는 것...웬지 정말로 있을 법한 아니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본 군 고위 관계자들은 공동경비구역 초소를 더욱 엄중히 감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갑자기 쉬리 가 생각난다. 공동경비구역과 같이 남북관계를 소재로 사용하고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영화. 나도 쉬리를 보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쉬리 평가와 달리 나름대로 저평가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저 뻔한 이야기이고, 액션도 별볼일 없고 하는 등등등..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쉬리에 대한 또다른 저평가를 내리게 되었다.과연 쉬리 를 본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동포로, 함께 정을 나누며 살고 싶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쉬리에서도 남북사람들간의 사랑이 있긴 있다. 성형수술한 북한 여첩자가 한석규한테 잠입해서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어설픈 사랑 이야기...아마 쉬리를 본 사람들이 통일은 꼭 해야한다고 말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북한군이 너무 무서워서라도 통일해야지...갑자기 쉬리 얘기가 엄청나게 길어졌는데... 이런 부분에서 공동경비구역은 나에게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실어 넣어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영화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느껴졌던 부분이 있다면 이념이나 체재에 대해 남북군이 대화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병헌이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송강호에게 남한에 가서 맛있는 초코파이 먹으면서 살자고 할 때 송강호 아니 오경필 중사가 초코파이를 뱉어내는 부분이나 영화 막바지에 이병헌 등이 총을 겨누고 있을 때 등등..같은 동포끼리 우정을 나누는 게 뭐가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세기 주요사상과학사상뉴튼은 스스로를 진실이라는 거대한 대양이 탐험되지 않은 채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안에서 아름다운 조개 껍데기를 찾으며 즐거워하는 아이 로 비유하고 있는 데 그가 말하는 조개 껍데기는 미적분법, 광학 그리고 프린키피아로 바꾸어 얘기 할 수 있다. 포우프가 하느님께서 뉴튼이 있으라! 하시매 세상만물이 빛 속에서 환해지도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뉴튼의 과학적 발견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이 형성되게 되었으며 18세기의 우주관은 뉴튼으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반적으로 뉴튼은 자연 안에서의 모든 운동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역학원리도 수학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결국 모든 자연 현상들은 수리 역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판명되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피력하였고 그의 희망은 세계의 역학적 해석을 강력하게 촉진했다.*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근대 과학 사상의 완성작으로 평가되는 책.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진공속의 물질의 운동, 저항이 있는 공간에서의 물질의 운동 그리고 태양과 다른 행성의 질량, 그리고 조수의 운동을 설명하고 있다.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물리학의 개념들과 인식의 혼돈을 제거하고 그 자체로서 완성되고 논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주를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이 책의 1권에서는 물체의 사이에 만유인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느며, 이 책의 3권에서 귀납법을 강조하여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사용하지 않도록 언급하고 있는 데 이는 그의 과학적 방법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뉴튼은 프린키피아를 통해서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 법칙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수학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그 법칙에 접근할 수 있었다. 뉴튼에 따르면 과학은 자연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신의 뜻을 밝히는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뉴튼은 프린키피아를 통해서 입증된 자연의 엄밀성과 보편성을 신의 은총으로 돌렸다. 뉴튼에게 있어서 신은 자연의 경의 하나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보일은 자연 발생에 관한 폭넓고 광범위한 가설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감각적 자료의 개별적인 분석들에 흥미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실험과학을 중요시했던 과학자들 중의 한 명으로 대조실험에 의한 검증 또는 확증이 따르지 않는 이론화의 부적절함을 스스로의 작업에 의해서 명백하게 하는데 공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그는 검증될 수 없는 광범한 철학체계를 세우는 것보다는 실험에 단단히 기초한 약간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 지식의 한계들, 그리고 특히 과학적 설명의 가설적이고 잠정적인 특성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일이 끌어내는 하나의 이론은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확장시켜주는 기독교에 더욱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신에 대한 봉사로 여겼으며 그의 저작들에서 일반적으로 우주 체계와 특별한 인간 영혼의 기능과 작용에 관한 고찰은 성서에서도 자신을 드러냈던 최고로 강력하고 현명하며 선한 조물주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철학사상18세기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친 것은 역학적인 모델, 즉 뉴튼 체계의 모델이었다. 철학적 문제는 사실상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학과 닮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수학적 모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감각과 이성의 속성들에 수학적 방법과 언어를 적용하는 방법의 발견, 설명이 당시 철학자들의 유일하고도 올바른 목표, 방법이 되었다.홉스 이후의 경험론자들은 그들의 논증을 수학적인 구조와 비슷한 명료한 형태로 진술하려 노력하였는데 정확하지 못한 언어는 오류와 불명료성, 다량의 혼돈된 미신과 편견을 은폐하는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강력했던 뉴튼의 영향과 더불어 18세기까지 유지되었다.이전 세대에 언어와 혼란속에 의해 지배되던 인간과 인간의 사회에 관련된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같은 학문은 뉴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인간 정신의 중요한 신성한 목적 그리고 그밖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대신하게 되었다.홉스는 사실상 17세기에 해당하는 철학가이나 그의 사상이 18세기의 철학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기에 언급한다.리바이어던《교회 및 시민 공동체의 내용·형태 ·권력: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e》이라는 부제를 붙여 1651년 출간되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4부 47장으로 되어 있다. 리바이어던이란 구약성서 《욥기(記)》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永生)동물의 이름인데, 이 책에서는 교회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가리키며 그러한 국가의 성립을 논하고 있다.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되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만인은 만인에 대해서 싸우는 상태’에 있다. 이 자연권의 자기부정(自己否定)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성이 스스로 발견하는 자연법에 의해서 자연권을 제한하고 절대주권 설립의 사회계약에 의하여 국가가 성립한다고 하였다. 홉스는 전제군주제를 이상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 주권의 기초를 국민의 자기보존권에 두고 있으며, 바로 거기서 자연주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홉즈가 리바이어던을 집필했던 동기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이를 만났을 때 그가 이룩한 자연과학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고 그의 자연과학을 인문과학에서 이루어 보려는 생각을 하게된 것에 기인한다. 즉, 자연과학 연구의 원리와 방법을 인간행동과 관계에 적용함으로서 정치, 도덕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기하학적인 정확성을 갖는 사회과학을 창시해보고자 한 것이다.자연법이란 ? 역사적으로 형성되거나 실정법에 의하여 창설된 여러 권리와 대응되는데, 근대 자연법론에 의하여 형성 ·확립된 개념으로서 인간의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의 권리라고 일컬어진다. 실정법론(법실정주의)에서는 권리란 법률로써 인정되는 경우에만 성립되므로 법률 이전의 자연권의 개념이 인정되지 않으나, 자연법론에서는 인간의 자연권은 법률 이전의 천부의 권리라고 하며, 국가가 법률로써도 이를 그 존재가 좌우되는 인공적 가구물(假構物)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종래의 지배질서는 모두가 비판을 당하게 된다.따라서 사회계약설의 혁명적 성격도 이 점에 있지만 동시에 그 이론적 결함도 또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치사회 성립의 실증성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의 윤리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가치는 간과할 수 없다.이 이론의 전형적 전개론자로는 T.홉스, J.로크, J.J.루소 등을 들 수 있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연권을 지배자에게 위양함으로써 평화적인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17세기 절대왕정제 이론을 성립시켰다.로크는 계약에 의해서도 생명 ·자유 ·재산 등의 자연권은 지배자에게 위양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입헌군주제의 이론을 선도하였다.그리고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 원인을 사유재산에 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회계약에 입각하여 각인이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자연상태를 구상하였다. 즉 인민의 일반의지로서의 국가가 자유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프랑스혁명의 이론적인 근거를 세웠다.로크는 베이컨과 홉즈의 경험론 그리고 기계적 유물론을 계승 발전시켜 인식론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천부인권설, 사회계약론같은 주장으로 근대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상가이다. 로크가 살았던 시대는 국왕의 처형과 공화국의 선포, 신교의 자유와 시민층의 성장이라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거쳤던 혁명기였다.법 ·정치 사상에서는 사회계약설을 취하지만, 홉스의 전제주의(專制主義)를 자연상태보다도 더 나쁘다고 생각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하여 대표제에 의한 민주주의, 3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따른 통치와 개인의 자유 ·인권과의 양립 등을 강조하여 종교적 관용을 역설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명예혁명을 대변하고 프랑스혁명이나 아메리카 독립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서유럽 민주주의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인간오성론서론(序論) 및 제 1권에서는 본유 개념(이성에는 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양상을 경시하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흄은 경험론의 중요한 근간을 제공한 18세기 영국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자중의 한 명이다. 그는 인간과학의 발전을 통해서만 인간 지식의 범위와 한계를 정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에게 인간과학은 인간이 지닌 추리 능력의 작용과 관념의 본성을 드러내는 학문이었다.흄이 활동하던 시기는 입헌군주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안정기였다. 그는 인간과 권력의 문제를 가족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태어나며 공통의 감정. 이해를 갖게 된다. 따라서 사회란 공통의 이해에 입각한 묵시적 협약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고 정부의 발생과 함께 사회는 국가로 바뀌어진다. 이러한 국가에 있어서 법은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불가결한 것이다. 로크와 홉즈는 법 이전의 자연상태를 주장하지만 흄은 이것보다는 국가의 형태, 즉 귀족과 군주와 국민이 결합한 정체를 언급한다. 이는 귀족과 시민의 타협형태이며 영국의 시민혁명을 이상적 형태로 언급하고 있다. 흄의 정치이론은 사회 계약적 인권론을 부정하고 명예혁명에 의한 결과를 인정하는 현실적인 것이다. 흄은 로크나 홉즈가 주장하는 법 이전의 자연상태와 사회 계약론의 혁명적 요소대신 정치의 현실적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군주제를 주장했다. 그에게 군주제는 귀족과 시민의 타협에 근거한 입헌군주제를 의미한다.*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 : 근대 영국 경험론을 완성한 저서로 세 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 《오성에 관하여》와 2권 《정념에 관하여》는 1739년에 출판되었고, 3권 《도덕에 관하여》는 그 이듬해에 출판되었다. 잘 알려진 제목인 《인간 오성 연구》는 1권의 재판으로 1751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흄은 오성, 정념, 도덕의 문제들을 통해 모든 학의 토대인 인간학을 경험적으로 관찰하여 그 위에 안전한 학의 체계를 세울 것을 의도한다. 이를 위해 흄은 뉴턴의 과학적 방법론을 인간 본성의 연구에까지 확장시키고, 로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