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론 기말 과제『숙 향 전 』 작 품 연 구Ⅰ. 서론Ⅱ. 본론1.『숙향전』의 형성시기2.『숙향전』의 향유와 유통양상3.『숙향전』 이본연구4.『숙향전』의 세계관5. 수용자(受容者)의 확인욕망(確認慾望)과담화구조(談話構造)6.『숙향전』의 시혜(施惠)-보은(報恩)구조7.『숙향전』의 소설사적(小說史的) 의의(意義)Ⅲ. 결론Ⅰ.서론『숙향전』의 다양한 이본들과, 후대 소설에서 보여 지는 『숙향전』관련내용 그리고, 전기수들의 구연(口演)시 첫째순위가 『숙향전』란 사실은 『숙향전』에 대한 당시 세간의 관심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숙향전』에 대한 이상의 관심은 남녀노소, 신분차이를 막논 하고『숙향전』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많았고, 또한 작품의 수준 또한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숙향전』의 형성시기에 대한 논의와 『숙향전』의 이본에 대한 연구, 그리고 숙향전에 나타나있는 독특한 세계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또한『숙향전』의 수용자)의 수용방식인 ‘확인에 대한 욕망’과 『숙향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모티프와 시혜(施惠)-보은(報恩)구조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숙향전』이 지니는 소설사적인 의의를 짚어보기로 한다.Ⅱ. 본론1.『숙향전』의 형성시기『숙향전』의 형성시기에 대해서는 김태준(金台俊)이 그의 『증보조선소설사 (增補朝鮮小說史)』에 막연히 영정조(英正朝) 시대로 추정한 이래) 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있었는데 이위응은 자신이 직접 日本 九州에서 발견한 임란유민(壬亂遺民) 침수관씨가(沈壽官氏家) 세전본(世傳本)) 를 대상으로 음운학적 분석을 통해 그 필사(筆寫) 및 창작(創作年代)를 추정했는데, 그는 심씨 A본의 음운 표기가 16C~18C사이 인 것인바, 이로 볼 때 『숙향전』의 창작연대는 임란전 (壬亂前) 까지 소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희웅에 의해 일차로 비판되고) 그 후 이상구에 의해서도 거듭비판되었다. 최근 이상구와 조희웅은 새로운 자료를 구하여 『숙향전』의 형성시기를 좀더 끌어올렸는데 이상구는 『숙소설을 구연(口演)할 때,그들의 주요 레파토리 중에 이 『숙향전』이 첫째 품목이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숙향전』이 작품을 직접 대할 수 없는 일반 대중들에게 가지도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 해 주는 것이다. 넷째,『숙향전』은 임란(壬亂)이 후 우리나라에 들어 왔던 일본인 독관(讀官)들이 우리말을 학습할 때 사용할 때 우리말 학습교본(學習敎本)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최근에 발견된 자료를 보면 일본인 역관 우삼방주(雨森芳洲, 1668~1755)가 1703년에 이 『숙향전』을 가지고 우리말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숙향전』의 수용범위와 양상이 매우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숙향전』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작품이 자기는 소설적인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처럼 『숙향전』이 우리말 학습교본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향유양상을 볼 수 있다.『숙향전』에 대한 이상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숙향전』에 공감을 불러 일으킬수 있는 요인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작품의 질적인 수준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숙향전의 어떠한 측면이 『숙향전』을 그토록 지속적으로 향유하게 했으며, 작품의 질적인 수준에 대한 점은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는지 『숙향전』의 구조와 세계관을 통해 그 해답을 알아보기로 하자.3.『숙향전』의 이본연구현전하는 이본들의 계열과 계통을 알아보자. 우리는 현전 국문본 이본들이 대략 세계열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각 계열의 특징을 약술하기 전에 먼저 가상선본(假想先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여기서 설정한 가상선본은 『숙향전』의 祖本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선본(先本)을 말한다. 현전 이본의 선본(先本) 단계에는 많은 이본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들 중에는 祖本과 거의 같은 이본뿐만이 아니라 변개가 많이 이루어진 이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다 고려해서 개열, 계통을 논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祖本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가상선본을 전제한원리가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게 된다. 『숙향전』은 ‘천정원리의 지상적 실현’이라는 인식태도가 서사구조와 긴밀히 결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숙향전』에는 지상과 천상의 경계는 물론이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 인간과 자연, 이성과 광기등 모든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를 초극하고 세계를 기본적으로 유기체적(有機體的) 전일체(全一體)로 인식했던 세계관이 담겨 있는 것이다.한편 세계관과 관련해서 『숙향전』의 고유한 수용미학(受容美學)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주지하듯이 『숙향전』은 전기수(傳奇?)에 의해 길거리에서 구연(口演)되는 등 당대 대중들의 폭넓은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따라서 『숙향전』의 수용미학은『숙향전』의 세계관과 당대 대중들의 생활세계 혹은 당대 대중들의 심층의식과의 연관성에 대한 규명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앞선 살펴본 것처럼, 옥황상제는 숙향의 삶의 성격과 지향성을 결정하는 근원성에 해당하는 절대신(絶對神)이다. 그리고 숙향은 그 절대신(絶對神)의 신성성을 후광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지속시켜 갔던 인물이다. 그러면 수용자들은 옥황상제와 숙향의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파악했는가. 수용자들은 먼저 숙향의 삶을 통해 절대신의 현현(顯現), 즉 절대신의 지리(指理), 음성(音聲)을 친숙하게 목도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불안하고 지향없는 자신들의 삶 뒤에는 항상 절대신(絶對神)이 실재한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결국 수용자들은 절대신(絶對神)혹은 절대가치(絶對價値)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믿음과확신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열어갔던 것이다.즉, 정리하자면 숙명이란 일반적으로 타고난 운명,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을 뜻하는 말이다. 즉 인간의 운명은 어떤 절대자에 의해 정해진 것이고, 우리 인간들은 그 운명을 거역함이 없이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숙명론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숙명을 단순히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 정도로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말 것이 아니라 삶의 원리 혹은 순리로 받팔일의 긔이? 향? 진동?며 오색 구롬이 집을 두로거날 일가 상? 다 경동?더니 밤즁은 ?여 고온 게집 아? 두리 옥등의 불을 들고 드러와 긤젼다려 일너 왈 이제 부인니 오시니 그? ?비 나와 집안을 소쇄?라 ?고 장시 방으로 드러가거날 긤젼니 아모란 쥴 모르고 밧게나와 집 ?외를 소쇄?더니 문득 긔이? 향내 진동 ?거날 긤젼니 크게 의심?여 가만니 ?틈으로 엿보니 장시 잘셔 ?긔를 나흔지라 그 게집이 향물의 ?긔를 싯쳐 부인 겻? 뉘이고 밧그로 나가거날 긤젼니 가난 곳을 보려 ?고 ?라나가니 발셔 간? 업더라 (이대본, 전집 1.135)앞서 숙향이 여러 징조를 함축한 채로 등장한다고 했거니와 그 징조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존재의 비범성이다. 인용 대목의 ‘오색 구름’, ‘진동하는 향내’, ‘옥등을 든 계집 둘’, ‘부인 온다’는 말등이 그 존재의 비범성을 표상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점이 수용자들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그들을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했다. 숙향과 숙향의 생로에 대한 수용자들의 본격적인 관심은 단락 ④에서 형성된다. 단락④는 왕균의 예언 부분인데 예언의 구체적 내용은 (a)5세에 부모와 헤어진다는 것, (b)5~15세 사이에 다섯 번의 죽을 사를 겪는다는 것, (c)17세에 부인에 해진다는 것, (d) 20세에 부모와 재회한다는 것, (e) 태평영화를 누리다가 70세에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왕균이 『숙향전』의 이야기선을 미리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2). 분리(分離)-재회(再會)의 수용자의 확인(確認)수용자들의 관심과 확인에의 욕망이 놓여있는 두 번째 축은 숙향과 부모와의 분리-재회 구조이다. 숙향이 부모와 분리되는 장면은 왕균의 예언 부분에 전개되어 있는데, 우선 주목되는 것은 분리의 현장이 매우 사실적으로 전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물이 탄생한 후 부모와 분리되는 것은 우리 고소설의 공식적인 형식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에 부모와의 분리 단락이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분리는 사건의 열림을 알리는 징표이자 인물이 일생에(異界)를 탐험 할 때, 남해용왕과 그 아들 용자(龍子)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데, 여기서의 남해용왕은 거북의 동생이다. 이처럼 작품 초반에 나타났던 거북이 자신의 본체(本體)를 드러내면서 또 전가족적인 차원에서 김전의 은혜에 보답하였던 것이다.『숙향전』 에 드러나는 시혜-보은 구조는 김전-거북과 그 가족들 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숙향은 이화정의 마고할미를 만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때까지 구원자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숙향이 구원을 받는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일일이 보은한다는 점이다, 구원자가 주인공을 구원하고 주인공이 그 구원자나 구원자의 집에서 의탁하는 사건 설정은 우리 고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구원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사례하는 행위는 여타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숙향이 받은 도움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수은(受恩)이며, 숙향의 사례행위는 보은(報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한편 거북이 김전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후 김전에게 구슬 두개를 주는데, 이 구슬은 옥지환(玉指環)등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인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주된 기능을 수행했다. 즉 김전으로 하여금 혼인할 수 있게 했고, 숙향과 이성으로 하여금 결연할 수 있게 했으며, 숙향과 김전부부로 하여금 재회할 수 있게 하는 등 서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이 구슬은 황태후의 병을 고치는데도 기여 했다. 이러한 현상 역시 시혜-보은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시혜-보은의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변신(變身)모티프를 지적 할 수 있다.『숙향전』에는 용녀가 거북으로 변신하여 반하수에서 놀기도 하고 용왕이 이인적(異人的) 풍모(風貌)의 노인으로 변신하여 김전을 골려주기도 하는 등 변신모티프가 많이 나타난다. 마고할미 역시 변신에 능한데, 청조(靑鳥)가 되어 편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숙향을 천상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특히 이선의 이계체험(異界體驗)부분에.
◆고전시가 과제【당쟁기의 士의 실존과 栗里遺曲】Ⅰ.서론Ⅱ.본론1.문화적 배경2.김광욱의 生涯3.栗里遺曲의 田家적 특징4.『栗里遺曲』의 분석1)강호가2)풍자가3)안빈가4)무상가Ⅲ.결론Ⅰ서론17세기의 혼란한 사회와 혼탁한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소외된 士大夫들이 정계진출이 좌절 되었을때 대안적으로 선택하는 田家의 삶과, 그 삶이 작품 속에 어떻게 녹아 들어 있는가를 당시에 누구보다도 실존의 문제와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죽소 김광욱의 『율리유곡』을 통해 살펴보고자한다.Ⅱ본론1.문학사적배경시조는 이미 조선 전기에 사대부 문학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완성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정신적인 자세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변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조는 예사 노래가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마땅한 자세를 가다듬고 되돌아보는 틀이다. 물러나 강호에 은거 한다고 자처할 때 정신적인 위안을 얻게 하는 것을 가장 두드러진 구실로 하며, 임금을 생각하고, 나라를 근심하고, 윤리적 교화를 펴고자 하는 의지도 감당해야만 했다. 이 몇 가지 성향이 선택되고 복합되는 양상은 작자에 따라 시대적인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조선후기 사대부 시조 또한 사대부 의식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이미 마련된 가능성을 발휘하게 마련이었다.그런데 조선후기에는 시조가 이상으로 하는 조화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지배질서가 안으로부터 흔들리고 있을 때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까지의 전락이 닥쳐왔다. 농촌이 피폐해서 은거를 해도 편안할 수 가 없었으며, 정권 다툼에서 밀려나 다시 진출할 길이 막혔다.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대북세력이 집권하면서 정국은 혼란에 휩싸인다. 특히 광해군의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대북세력들이 계축옥사를 서인들이 제거 수단으로 사용함에 따라 신흠 등의 적지 않은 서인들이 방축되었다. 당시는 “西人이 이를 갈고 南人이 원망을 품으며 小北이 비웃는 형세”로 표현 될 정도로 서인들에게는 암흑기였다.17세기는 사족들이 당쟁이나 전쟁을 체험하 형상화의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쟁기의 불안한 士의 실존을 노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2.김광욱의 生涯김광욱은 1580년 형조판서 金尙寯(1561~1635)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安東이고 자는 誨而, 시호는 文貞이다.죽소는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章陵誌狀』을 ? 했으며 또 저서로 『竹所集』이 있다.김광욱의 청소년 시절은 국가적으로 매우 다사다난한 시기였다.13세에는 壬辰倭亂이 일어나 전락에 휩싸였었다. 그는 27세때 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섰으나, 34세때 부친이 관직에서 쫏겨나고, 36세때에는 그마저 ?母論에 동조하지 않았다 하여 삭직되었다.이로부터 죽소는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도 高揚郡 辛州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행주산성 건너편 밤마을에서의 은둔 생활은 그런대로 의의가 있었으니, 곧 그곳은 竹所시가의 산실이었고, 시조창작의 촉매작용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44세때 仁祖反正이 성공하자, 그의 부친 상준이 과거에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한 일로 해서 함북 吉州로 귀양을 가는 비운을 맞게된다. 48세 때에 丁卯胡亂이 일어났고, 그 후, 丙子胡亂이 발발, 급기야 仁祖가 淸國에 항복하는 최악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동년 10월에 죽소도 解禁되어 비로소 復官, 점차로 승진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한창 나이인 36세때부터 20여년간 실의와 고독과 빈궁 속에서 겨우 生存을 지탱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연작시조 『율리유곡』은 바로 이때의 소산인 것이다. 竹所의 時調作品으로는 흔히 聯詩調라 부르는 『율리유곡』과 單時調 5수가 각종 詩歌集에 전하고 있다.3.栗里遺曲의 전가적 특성의 전가 모티프에 대해서 조동일은 을 전원시조라고 규정하고 농촌 생활의 즐거움을 형사화 했다고 보았다. 박연호는 竹所潗 의 기록을 통해 김광욱의 삶을 재구하고 도연명과 같은 삶의 표방을 은거 명분의 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감덩의 다양한 진폭들을 감정의 절제나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16세기의 시조와는 다르다고상원은 김광욱이 도연명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시련을 받아 들임으로써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이나 부정을 토로하지 않았다고 하고 전가적 삶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4.율리유곡의 분석율리유곡에 포함된 시조 17수는 형식상 全篇의 구조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내용 면에서도 그 주제가 어긋난 것이 뒤섞여있다. 이는 아마도 작가가 은둔생활을 할때 틈틈이 지어놓은 것을, 후일 그의 유족 혹은 시가집 편찬자가 적당히 배열해 좋은 탓이 아닐까 추측을 낳게 한다.)죽소의 작품 『율리유곡』은 수록된 문집에 따라 그 편수가 상이하나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靑丘永言에 죽소의 시조가 『율리유곡』이란 제목아래 17수 기록되어있다.(歌番146~162)靑丘永言(珍本)에 수록된 율리유곡은 그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다.)江湖歌....1, 2, 4, 8, 9, 10, 14, 15諷刺歌....6安貧歌....3, 5, 7, 17無常歌....11, 12, 13, 16위에서 보듯이 강호가는 8수로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무상가와 안빈가는 각각4수 인데, 풍자가는 1수뿐이다.1)강호가죽손은 고산 尹善道보다 조금 앞서서 田園調를 창작했다. 이 自然愛好의 강호가는 『율리유곡』17수중 8수를 차지하여 그 비중이 만만치 않다. 김광욱은 관직에서 물러나고 재 임용 될 때까지 오랜 기간 가난하고 고독한 생활을 했다. 불우한 가운데서나마 자연과 벗하여 유유자적하는 심성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이 중에서 언어 조탁이 소홀했고 계절감각이 뚜렷이 나타낸 것이 적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陶淵明 주근 後에 도 淵明이 나닷 말이밤?을 녜 일흠이 마초아 ?틀시고.도라와 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 (1)公明도 니젓노라 富貴도 니젓노라世上 번우(煩憂)? 일 다 주어 니젓노라내 몸을 내?자 니즈니 ?이 아니 니즈랴 (2)헛글고 싯근 文書 다 주어 후리치고匹馬 秋風에 채를 쳐 도라오니아므리 ?인 새 노히마 이대도록 싀훤?랴 (10)위의 시조 3수는 죽소의 自然觀이 좀 관념적으로 점층법 반복법을 써서 세상과 짝하지 않으려는 심정을 십분 나타내고 있어, 그의 고독한 자세를 읽어 낼 수 있다.江山 단雅한 風景 다 주어 맛다 이셔내 혼자 님자여니 뉘라셔 ?톨소니.?이야 숨수지 너긴들 ?화볼 줄 이시랴. (4)三公이 貴타 ?들 이 江山과 밧골소냐扁舟에 ?을 싯고 낙대를 훗더질 제이 몸이 이 淸興 가지고 萬戶侯인들 부르랴(8)秋江 ?근 ?에 一葉舟혼자 저어 낙대를 덜쳐드니 잔?白鷗 다 놀란다.어듸셔 一聲漁笛은 조차 興을 돕?니 (9)셰버들 柯枝 것거 낙근 고기 궈여 들고酒家를 ?즈려 斷橋로 건너가니왼 골에 枯花져 사히니 갈길 몰라 ?노라(15)작품(9)는 가을 (15)는 봄날의 시골전경이다. 모두 낚시질의 흥취를 노래하고, 自然耽溺의 사상을 표출하고 있다. (4) (8)에서는 자신이 자연의 임자임을 자처하면서 삶의 구김살이나 그늘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隱居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특히 살구꽃이 풀풀 날리는 시골마을이 눈앞에 선하고, 손수 낚은 물고기를 꿰어들고 술집을 찾아가는 것은 멋진 광경이요 뛰어난 솜씨다.이 강호가 4수는 자연의 美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자연과 인간이 體感을 나타내고 있어 생활의 궁생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무리 부귀영화라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는 즐거움과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표현 일 수도 있다. 속세에서 벗어나 쉽사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가리란 쉽지 않다. 당시 우리나라는 내우 외환에 시달릴 때였다. 또한 일국의 왕이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광욱은 20여년의 은거 생활이후 정계에 뜻을 두고 말년까지 중요 관직을 역임한 것은 이를 뒷받침 해준다.黃河水 ?단 말가 聖人이 나셔도다)草野 群賢이 다 니러나닷 말가.어즈버 강산풍월을 눌을 주고 갈소니) (14)예로부터 어진 사람은 어진 임금을 택한다고 했다. 난세에 主를 만나면 초야로 물러가고 성주성세를 당하면 임금과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2)풍자가어와 져 白鷗야 므슴 슈고 ??슨다?숩흐공명을 탐내는 것의 비유인 것이다. 이때 가지만 해도 과거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죽소는 이미 벼슬을 단념한지 오래임으로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3)안빈가죽소는 농촌생활은 명분과 격식을 떨쳐 버릴 때 참으로 즐겁다 하면서, 투박한 말을 써서 노래하였다.뒷집의 술?을 수니 거츤 보리 말 못 ?다즈는것 마고 지허 쥐비저 괴아내니여러 날 주렷? 입이니 ?나 스나 어이리 (3)초장은 이웃과 어울려 술을 담글 곡식을 거두는 장면이다. 시적자아는 아쉬운데로 자족한 다. 중장에서는 거친 보리로 술을 빚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노래하고 있다. 이어 종장에 서 “여러날 ? 입이니 ?나 브ㅅ나 어이리”라고 하며 모처럼 만에 대하는 탁주 한잔에서 느끼는 흥취를 표출한다.딜가마 조히 싯고 바희 아래 샘물 기러?쥭 ?게 수고 저리지이 그어내니世上에 이두 마시야 ?이 알가 ?노라이웃들과 어울려 천렵을 즐기는 광경이 포착되었다. 초장과 중장을 통해 가마솥을 씻고 팥죽을 쑤고 겉절이를 담그는 과정에서 野趣가 부각된다. 종장에서 시적자아는 “이런 맛은 세상 어느 것에도 비길 수가 없다”고 하며 팥죽 한 그릇과 겉절이 한 보시기로 상징되는 소박한 생활에 자족감을 표하고 있다.여름 기나김 ?ㅣ예 ?ㅣ올일이 아조 업서蒲圖에 낫? 드러 夕陽에 지자 기니問 밧긔 뉘 ?함 ?며 낙시 가쟈 ??니여름에 낮잠을 자다 해질 무렵에 깨어나니 마을 사람이 밤에 낚시 가자는 것을 담담하게 노래했다. 인간미 풍기는 순박함이 엿보여진다. 그리고 對話의 대답한 도입이 눈에 띈다.崔行首 ?달힘 ?새 趙同甲 곳달힘 ?새게? 오려 點心 날 시기소每日에 이렁셩 굴면 므슴 시름 이시랴(17)이웃, 혹은 동료들과 어울려 놀이를 준비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崔行首나 趙同申 등 구성 인물로 보아 그 지역 鄕任들과 어울려 야외에서 화전놀이 등을 즐기며 노니는 정경을 노래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촌민들의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흥취가 넘친다. 시적 자아는 사족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다.
< 유희의 언문지『諺文志』>Ⅰ. 여는 글유희(柳憘, 영조 49, 서기 1773~헌종 3, 서기1837)는 호는 방편(方便子), 혹은 서피(西陂)라 한다. 이 책은 순조(純祖) 24년 (서기1824)에 된 것이지만 사본으로만 전하다가 「조선어학회」에서 활자판으로 낸 것이 있다. 아마 우리 국어학사상 대서특필할 권위자를 들려면 음운학(音韻學)상 제일인자로 유씨를 들어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 제정의 권위자 뒤에 나타난 권위자는 음운학의 신경준, 유희와 문법학의 주시경 세 사람을 들 수 있다.유희의 언문지『諺文志』지는 훈민정음을 초성례(初聲例) 중성례 종성례 전자례(全字例)의 4부로 나누어, 그 원리 및 중국 음과의 관계를 논한 것으로써, 우리글 전반에 걸친 최초의 연구서이자 조선시대의 국어 연구에 대한 논저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유희(柳憘)의 생애와 그의 저술 「언문지」와「언문지」에 나오는 초성례에 대해서 요약해 보고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문유희의 생애조선 후기의 한글학자. 자 계신(戒伸). 호 서파(西) 방편자(方便子) 남악(南嶽). 경기 용인(龍仁) 출생. 현감 한규(漢奎)의 아들. 어머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사주당(師朱堂) 이씨. 어려서 부친을 여읜 그는 모친에게서 교육을 받아 4세에 한자(漢字)의 뜻을 알고, 7세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통독하였으며, 이어 《서전(書傳)》 《사기(史記)》 및 경학(經學)을 연구하였다. 또한 실학파의 언어학자인 정동유(鄭東愈)의 문하에 들어가 한글을 독창적으로 연구하고, 훈민정음의 자모를 분류하여 이를 그의 저서 《문통(文通)》의 에 수록하였다. 《문통》에 수록된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천문 지리 의약 농정(農政) 충어(蟲魚) 종수(種樹) 조류(鳥類) 및 풍수(風水) 등 자연과학 분야에까지 정통하였다. 또한 《시물명고(詩物名攷)》 《물명고(物名考)》 등 국어학 연구에 귀중한 저서도 남겼다.언문지(諺文志)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 방편자(方便子) 유희(柳僖)가 지은 한글 연구서. 이 책은 저자의 총서(叢書)인 《문통(文通)》 제19권 중 《소학집주보설(小學集註補說)》과 《상서고금문송의(尙書古今文訟疑)》 사이에 끼이는 것으로, 1824년(순조 24)에 된 유희의 친필 고본(親筆稿本)을 고(故) 정인보(鄭寅普)가 소장하고 있었으며, 1938년 이래 여러 차례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서문(序文)을 비롯하여 훈민정음의 자모를 초성례(初聲例) 중성례(中聲例) 종성례(終聲例) 전자례(全字例)의 4가지 대목으로 분류, 해설하고 있다. 각 부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① 서문: 스승인 정동유(鄭東愈)의 권유에 따라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는 것과 언어 전달 및 이해에 있어 한 줄의 정확성과 탁월성을 당시에 이미 갈파한 내용이다.② 초성례: 초성의 수를 25개로 잡아 '유씨 교정 초성 25모(柳氏校正初聲二十五母)'라는 도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몇 가지 문제점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의 통합 문제, 'ㅎ'과 'ㆅ ' 청탁(淸濁) 문제, 한자음에 된소리를 표기해야 하는 문제,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整齒音) 등의 구별이 불필요한 문제 등을 설명하였다.③ 중성례: 중성의 수를 15개로 잡아 '유씨 교정 중성 정례 15형(中聲正例十五形)'이라 하고, 훈민정음보다 4개가 더 많은 수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문제점으로 중국 북방계와 남방계 음의 차이, 째 중국 음을 우리말로 읽어야 할 때의 문제, 한자음에 적용되는 사성(四聲)이 우리말에는 불필요하다는 문제 등을 제시하였다.④ 종성례: 종성을 7개로 잡고 이에 대하여 종성에는 3평(三平) 3입(三入),이 서로 대응(對應)하는 문제, 'ㄹ' 받침은 'ㄷ' 받침에서 온 것이므로 'ㄹ'은 입성(入聲)이 될 수 없는 문제, 'ㅇ' 받침의 불필요성과 ' ' 받침의 불필요성과 'ㅎ' 받침의 가능성, '사이ㅅ'에 대한 해명과 'ㅅ' 받침의 불필요성 문제, 그리고 종성 변례인 'ㄹ'의 성격 구명에 대한 문제 등이 논술되어 있다⑤ 전자례: 초성 25자, 중성 15자, 종성 7자를 설정한 데 대한 저자의 학설이 요약, 집성되어 있다. 이는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의 합자해(合字解)나 《훈몽자회(訓蒙字會)》 범례의 작자례(作字例)와 같이 초성 중성 종성이 합쳐 한 음절을 이루는 보기를 설명한 것이다. 이상의 서문 초성례 중성례 종성례 전자례 등 5가지 대목을 통하여 본 바와 같이 《언문지》는 종래 한자음 위주의 연구 방법을 지양, 우리말 위주로 문제에 접근한 첫 연구서로서 조선시대를 통해서도 우리말 연구에 관한 논저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언문지(諺文志) 초성례의 내용초성례 광운36자모, 집운36자모 운회35자모, 홍무정운31자모로 변천하였는데 훈민정음에서는 15초성이고 정음통석에는 17초성 이었다. 유희는 이를 인증하는 한편, 유씨 교정 초성 25모(「우리말 연구사」- 김석득 P142/표 참조) 를 정립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정립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1.설(舌), 순(脣), 치(齒)의 각각 두 가지로 나뉜 것을 거이(擧 )와 안이(案 )라 하고 이 둘은 같은 초성인데 중성에 따라 갈리게 된 것이다. 곧, 설, 순. 치음이 ㅏ,ㅘ,ㅝ,ㅗ,ㅡ.ㆍ와 합한 경우가 "거이" 며 또, 나,ㅕ, 가 , ㅛ,ㅠ.ㅣ와 합한 경우가 "안이"다 그러므로 안이(案 )는 거이(擧 )에 합한다. 다시 말하면 설단, 설상, 순중, 순경, 치두, 정치음은 본래 같은 초성인데 만나는 중성의 다름으로 딸라진 것을 각각 딴 자모를 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장마윤흥길의 장마는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전후소설의 대표작이다. 초등학생인 '동만'의 친삼촌은 빨치산이고 외삼촌은 육군 장교이다 .6.25 사변의 전란으로 주인공 친할머니 댁으로 외할머니가 피난와 계시는 상황은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다른 두 이데올로기라는 가치가 대립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한 지붕 즉,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전쟁의 쓰린 아픔을 초등학생인 '동만'의 시각을 통해 작중인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가를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나(동만)'의 외가 식구들은 6.25 사변으로 '나'의 집으로 피난 와 친가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된다. 사돈댁에서 신세를 지는 처지에 있는 외할머니와 베푸는 입장인 친할머니는 삼촌이 빨치산, 외삼촌이 국군 소위라는 거북한 상황 속에서도 말다툼 없이 의좋게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낯선 사람의 꾐에 빠져 빨치산인 삼촌이 밤에 몰래 집에 왔다고 실토한 일로 '나'의 아버지가 읍내에 잡혀가 고초를 겪는 사건이 발생한다. 초콜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삼촌의 일을 낯선 사람에게 말해버린 동만은무엇 때문에 내가 망설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받아서 좋을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받아서는 안될 것인가를 결정짓지 못해서였으까. 혹은 그런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그 나이의 시골애답게모르는 사람에 대한 낯가림 때문에 그랬을까. 확실한 것은 별로 기억에 없다. 아무튼 나는 꽤 오래 시간을 끌었던 것 같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소설 맨 첫머리에서 알수 있듯이 이 소설은 초등학교 3학년인 동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관점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 당시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동만이 자라서 성인이 된 이후에 당시의 일을 회상 하고 있음을 위의 대목을 통해 알 수 있다. 장마처럼 소설속의 화자를 어린이로 하여 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봄으로 인해 6.25에 관련된 인물들, 그들의 복잡관계가 빚어낸 상황들을 되도록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그려낼 수 있다. 어린이의 천진한 시선을 통해 그 사건을 중립적으로 어른들의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을수 있는 어린이의 시점은 전쟁의 비극을 서술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 현상만을 그려내고 설명하는데 그치게 되어 사건이 당시의 상황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거나 정의 내리 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방법이다.동만의 이런 행위를 할머니는 '과자 한 조각에 삼촌을 팔아 먹은 천하의 무지막지한 사람 백정'으로 여기는 데 반해 외할머니는 은근히 나를 감싸면서 두 분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장마 비와 빗속을 뚫고 동네 개들이 무슨 군호나 되는 듯이 짖기 시작하는 소리를 동반하며 건넌방 외할머니에게 아들의 전사 통지서가 전해진다. 외삼촌의 전사 소식이 날아들자, 상심한 외할머니는 장마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빨갱이를 다 쓸어가 버리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빨치산으로 나간 삼촌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는 이것을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말로 받아들여 외할머니와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이게 된다.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숨은 삼촌이 몰래 집에 왔던 그 날 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고모의 설득에 자수를 결심하려던 삼촌은 문 밖의 발소리에 놀라 다시 산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나'는 그 발소리가 외할머니의 기척이었음을 눈치 챈다. 그 뒤로 빨치산과 국군의 전투가 벌어지고, 빨치산들의 처참한 주검들이 읍내에 전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의 가족들은 삼촌이 죽었거나, 곧 죽을 것이라는 체념에 빠진다. 그러나 할머니만은 소경 점쟁이에게서 삼촌이 '아무 날 아무 시'에 살아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그 예언을 신앙처럼 믿으면서 삼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고 잠도 끼니도 거른 채 몇 날 며칠 동안 가족들을 들볶는다. 그 '아무 날 아무 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할머니는 밤새도록 등을 환하게 밝혀 놓으라고 명하는데, 그 날 밤 '나'는 구렁이 우는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린다.예언한 날이 되어도 삼촌은 돌아지않고 점심이나 다름없는 아침을 먹고 있을때, 쪼무레기 패들에 쫑기어서 우리 집 대문 안으로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한 마리의 구렁이가 들어오게 된다. 할머니는 구렁이를 보자 마루에서 고꾸라지시고,난데없는 구렁이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 집은 삽시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향해 몰려든 사람들은 내쫑고 나서는 구렁이에게 마치 산사람인양 말을 건다.「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어 왔능가?」「자네 보다시피 노친께서는 기력이 여전허시고 따른 식구덜도 모다덜 잘 지내고 있네. 그러니께 집 안 일일랑 아모 염려 말고 어서어서 자네 가야 헐 디로 가소」「가야 헐 디가 보통 먼 질이 아닌디 여그서 이러고 충그리고만 있어서야 되겄능가. 자꼬 이러면은 못쓰네, 못써. 자네 심정은 내 짐작을 허겄네만 집안 식구덜 생각도 혀야지. 자네 노친 양반께서 자네 가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면 얼매나 가슴이 미어지겄능가」「자네 오면 줄라고 노친께서 여러 날 들여 장만헌 것일세. 먹지는 못헐 망정 눈요구라도 허고 가소. 다아 자네 노친 정성 아닌가. 내가 자네를 쫓을라고 이러는 건 아니네. 그것만은 자네도 알어야 되네. 냄새가 나드라도 너무 섭섭타 생각 말고, 집안 일일랑 아모 걱정 말고 머언 걸음 부데 펜안히 가소」
변신줄거리 및 감상상점의 판매원으로 일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벌레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가족들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을 나무라며 문을 두두린다. 그레고르 잠자가 변한 몸 에 적응되어 갈 즈음, 밖에서는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주인공이 안으로 잠긴 문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려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 겨우 문을 열고 나간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당황해 한다. 아버지의 위협적인 동작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벌레가 된 주인공은 문틈으로 가족들을 관찰한다. 그의 모습에서 질린 누이동생은 공포를 느끼며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었고, 어머니는 벌레가 된 아들의 모습에 놀라 실신한다..그 이후 벌레로서의 비참한 생활의 시작된다. 그레고르가 더 이상 부양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자, 그동안 놀고 있던 가족들은 스스로 생활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이제 그레고르는 없어져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그 며칠 뒤 누이동생이 하숙생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러 나갔던 그레고르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놀랍게 높은 것을 발견하지만, 벌레의 존재를 하숙생에게 감추고 싶어하는 가족들에 의해 방에 감금된다. 그 이튿날 청소를 하러 왔던 가정부는 그레고르가 죽었음을 알고 가족들에게 알린다.카프카의 고독은 그의 소설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집에서도 외톨이였고 유대 사회에서도 잘 어울릴수 없었으며 가장 가까운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 고독감의 원천이 였다.게다가 작가로써의 발판이 다져지려고 할때 카프카는 폐병에 걸렸고 요양생활에서 찾아드는 고독감과 불안감, 절망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은 이런 그의 삶을 반영이자 이런 상황 속에서의 유일한 탈출구 였던 것이다. 그의 이 변신이라느 소설은 아마도 실제의 사건에서 그기원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실지로 카프카는 1911년 2월 어느날 아침 실제로 잠자리에서 일어 날수 없는 마비상태를 경험 했다고 한다.그의 소설 변신에 있어서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는 극히 평범하게 전개된다. 사람이 벌레로 변해버린 상황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그렇게 적어 내려가고 있는 이 소설은 어느 날 아침 무엇인가 꺼림직한 꿈에서 깨어나보니까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놀라기는 하지만 단순히 당황하는 정도이며 기관지염에 걸렸을 때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이 같은 어이 없는 상황에 예전의 자기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비탄에 빠져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족들에게 외판원인 자신이 몸이 자유롭지 못하여 이웃마을의 소매상을 찾아갈수도, 일해오던 상점에서 계속 일을 하지 못하게 됨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아울러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뺀다.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가의 여부는 이 소설 속에서 어떠한 언급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그는 남의 이목을 의식하며 그의 시선들을 피하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일단 보통의 우리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변해야 했으며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가 원망하며 울음을 쏟아낼 것 이다. 그러나 그러고르 잠자는 남의 일인양 너무나도 태연하다그는 마음데로 움직여 지지 않는 그의 몸과 딱딱한 껫데기를 가지고 어떻게 몸을 움직일수 있을지 만을 생각 한다. 그는 등으로 평행을 잡으면서 침대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동생마져도 냉정해 지고 어머니도 신경질을 내지만 아버지는 이웃사람들이 알까봐 너무나 조마조마하다. 마치 자신의 숙명인 것처럼 그렇게 가족들은 달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결국 이야기는 그레고르 잠자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고르 잠자가 벌레 모양으로 그대로 자신의 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것을 일꾼들이 손이 아닌 막대기로 찌른다. 그레고르 잠자의 어머니가 그 같은 행위를 막을 듯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대로 보고만 있다.이 소설 속에는 카프카의 고독이 묻어 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하나의 의식으로써 벨레가된 육체속에 갇혀있다. 카프카는 우화같은 이야기인 변신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가 그리고 있는 주제는 편견속에 갇혀 사는 인간의 의식세계를 그리고 있는게 아닐까? 자신의 냄세안에서 자신의 체온을 느끼며 웅크리고 있는 고독감과 늘 항상 함께하는 인간이라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성찰일 것이다. 인간의 고독은 인간이란 존재가 있기까지 영원히 함께 할 동반자와도 같다. 인간은 그 사회가 정의 지워준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이해관계를 토대로 집착과 소유욕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집착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레고르 잠자의 벌레와 같은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어놓고 고독해하며 그로인해 필연적으로따르는 외부와의 단절에도 괴로워하는 이중고를 치루고 있다. 허한 듯이 허덕이고만 있는 현대인의 삶을 정말 예언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카프카(franz Kaf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