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하나로 구입하게 된 해변의 카프카. 다수의 학생들이 그러하였듯이 나 역시도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간만에 들게 된 책이 해변의 카프카(海?のカフカ)였다.《해변의 카프카》는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김춘미 역,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것이었다. 유일하게 카프카의 책 중에서는 상실의 시대만을 읽었던 지라 리얼리즘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전개로 진행되었다. ‘어! 이게 뭐지!’하는 느낌은 오히려 책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써나간 글이라고 평들을 하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닌 듯! 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는 "현재-과거-현재&기이한 일" 순으로 한 단락 한 단락에 두 주인공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그래서 한 단락이 끝나면 다음에 만나질 인물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 묘미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카타의 생활을 엿보다가 다음에는 카프카. 그리고 나카타-카프카! 나름 스릴 있는 설정이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무라 카프카이면서 나카타 노인이었다. 두 권의 책은 전개 내내 둘의 행방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까 기대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보여 지는 글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는 같은 존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인간에게는 육체와 정신(엄밀히 따지면 영혼과도 분리해줘야 하겠지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둘이 그것들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카프카는 생각을 놓지 않는 정신의 표상이요. 나카타는 그런 정신의 실현제인 육체였던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Sigmond Freud)의 정신분석학까지 끌어 들이면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싶지만 프로이드가 설명하는 마음속의 독립된 두 영역, 즉 의식의 영역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무의식의 영역이 카프카라고 봐도 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의식하고는 있지만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며 현실을 이겨나가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의식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이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무의식에서 만들어지는 느낌은 사람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의식이 혼자서 알아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의 지배을 받고 있다는 것이 프로이드의 주장이었는데 카프카 역시 아버지의 예언을 의식하고 멀리 도망쳐 그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는 예언의 상황에 끌리게 된다. 의식하고 피하고 싶었던 끔찍한 미래가 무의식중에 행해져버리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바꾸어 생각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으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그 느낌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대로 느낌의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인지하고 글을 읽었던지라 읽는 내내 나는 카프카의 심리상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피하고자 했던 그 예언이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나카타, 그는 전개 내내 껍질에 불과하며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주변사람을 변화시킬 만큼의 힘을 가진 아주 강력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되었다. 프로이드 역시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의식보다 더 강한 무의식이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의식을 알게 모르게 조종하고 있으며 그 권위는 절대적이라고 했다. 나카타는 그렇게 무의식인 카프카의 다른 한명으로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굳은 심지로 어딘가로 향하고 또 향한다. 그에게 의식적으로 그것은 꼭 해야 할 무엇이지만 그 무엇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끝내 독립적으로 남겨두려는 작가의 심도 깊은 생각에서가 아닐까 싶다. 조니워커상을 죽인 것이 카프카인지 나카타인지 애매한 상황으로 이끈 것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이상하게도 나카타가 조니워커상을 죽였지만 실제적인 피는 카프카에게 묻어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같은 공간으로 모였으면서도 절대 만나지지 않으며 모든 일이 마무리 지어졌을 때 나카타가 죽음으로써 완성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카프카가 초현실에서의 깨달음으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카타는 완전히 없어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 둘이 융화되어 버렸다면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 두 경계의 붕괴로 더 혹독한 혼란을 야기했을 것이다.위와 같이, 내용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이러하였는데이 책에서, 나는 추가적으로 메타포라는 단어에 심취하게 되었다.メタファ― 라는 단어는 나오기 시작하면서 몇 번이나 반복되어 씌여져 있는데 이 때문에 나의 관심이 된 대상이다. 그 의미는 이렇다.직유법과 대조되며, 원관념은 숨기고 보조관념만 드러내어 표현하려는 대상을 설명하거나 그 특질을 묘사하는 표현법이다. 원관념과 비유되는 보조관념을 같은 것으로 본다.EX)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김동명 《내 마음》)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김동명 《파초》)고독은 나의 광장(조병화 《고독》)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유치환 《깃발》)이는 해변의 카프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어렵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듯 했다.메타포=은유는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보조관념들만을 간단하게 제시하는데, 은근한 비유로 직유보다 더 인상적은 표현을 할 수는 있지만 남용하면 문맥이 어지럽거나 문장의 뜻이 모호해져서 아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갈 수 있다. 실제로 나와 같은 시기에 이 책을 읽은 친구는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이게 뭐야!”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것은 글을 있는 그대로만 읽으려고 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 글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 그리고 카프카와 나카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모든 행동들과 말들을 했는지 본뜻을 생각해보라는 뜻이 이 단어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수수께끼의 힌트 같은 이 단어가 나의 의식을 깨워준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이 책에서 사에키상이 불렀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이다.당신의 세계가 끝나는 그곳에 있을 때나는 사화산의 분화구에 있고방문 뒤에 서 있는 것은문자를 잃어버린 말.잠이 들면 그림자를 달이 비추고하늘에선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내리고창밖에는 굳게 마음을 가다듬은병사들이 서 있네.(후렴)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세계를 움직이는 흔들이 추를 생각하네.마음의 둥근 원이 닫힐 때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핑크스의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그대의 꿈을 꿰뚫었네.물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네.푸른 옷자락을 쳐들고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네.이 노래가 주목받을 이유는 노래가사 하나하나가 이 책의 내용을 축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하늘에선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내리고->정어리와 전갱이가 하늘에서 쏟아진 일.창밖에는 굳게 마음을 가다듬은 병사들이 서 있네->시간이 멈춘 마을로 안내한 문지기 병사 두 명.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 그대의 꿈을 꿰뚫었네->나카타가 칼로 살해한 카프카의 아버지에 대한 사건.
김화영의 지중해 내 푸른 영혼 작가 김화영이라고 하면 불문학 작품을 번역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우리학교 도서관 장서질의 불문학 코너에 가면 그의 이름을 쉽게 발견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의 프로방스에 대한 기억이 위의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작가는 한 적이 있었다. 행복의 충격은 프로방스에 대한 작가의 찬양으로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는 알베르까뮈의 연구로 학위를 받은 것을 이어 아직가의 그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알아두면 좋은 작가일 것 같아서 대략적으로 적어보았다. 동기 중에 한명이 고려대에 편입을 하였기에 이분을 만날 기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 잘 안 나오신단다. 프랑스 까뮈 학회 이사까지 맡고 계시니 바쁘신가보다. 알베르 까뮈에 관심이 있는 학우가 있다면 그의 24편에 달하는 까뮈전집을 읽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김화영의 산문집 은 그가 1969년 가을, 지중해를 찾아 떠나면서 시작한다. 그는 여행의 참다운 비밀을 맛보지 못하고 '효율'과 '시간과 경비의 절약'을 추구하는 관광객들에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서론을 시작한다. 그가 정의한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를 인정하는 바이나, 카라반(=이동하는 집)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카라반 여행자가 새로운 위험, 새로운 두려움, 새로운 놀라움이 기다리는 여행과는 멀다고 했는데, 그건 오히려 숙식을 위해 돈내고 여관을 잡고, 밥을 사먹는 이들과는 다르게 직접 밥을 해 먹고, 빨래하고, 혼자서 지내면서 고독을 맛보는 카라반의 여행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한 말 같다. 카라반에 대해 긍정적인(부러움에 근접한) 나에게 좀 언짢은 부분이었다.이 곳에서 에서와 같이 K가 나온다. 그는 작가와는 형·동생의 관계로 나와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된 바는 없다. 예술의 성에서는 동행자로도 나오는 이 K라는 인물은 그가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처럼 내면 속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그는 아름다운 도시·다정한 도시인 엑상프로방스에 당도했고, 지중해의 따뜻한 가슴인 프로방스를 찬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로방스는 완전한 절망한 사람이 올 곳이 아니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알프레드 드 비니나 알베르 까뮈의 생각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덧 붙인다. 이야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중해에서는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는다.」였다. 지중해는 사람이 만나는 땅이며, 떠날 때도 어깨를 툭툭치며 악수하고 그냥 돌아서 간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어떤 까페의 테라스에서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까지도 만났던 사이처럼 정답게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사랑하는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항상 새로이 시작하는 바다'라고 노래한 발레리가 지중해 사람이라는 것이 당연한 듯 했다.역시나 그는 까뮈의 묘지가 있는 루르마렝에 갔고, 짧게나마 알베르 까뮈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까뮈를 연구중인 그에게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끝에 그는 까뮈의 부인 프랑신 까뮈를 만났다고 했는데, 자신이 연구하는 작가의 혈육을 만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설레임과 영광이 뒤섞였을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위인인 이외수님을 뵈러갔을 때, 그 분의 집 대문앞에서 느낀 그 감정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때 내가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 위인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작품만을 접할 때는 어떤 신비로움에 사로 잡혔었는데 실제에 있어서는 그 또한 이세상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단지 영혼이 아름답기에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쓸 수 있었고, 그 초인간적인 경지에 오르려 하던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 뒤 그는 프로방스의 대시인 마스필리프 델라부에게서 시집 두 권을 받으며 '늙은 나무가 젊은 태양에게 바침'이라는 그의 서명에서 받은 감명을 표하며, 레 보 드 프로방스에 당도한다. 그곳의 무거고 균열 없는 침묵을 얘기했고, 작품 '별'에 나온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끌어왔다. 스무 살 목동이 들려주는 별들의 기나긴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즐겁기만 하다. 그러던 그가 미지속의 인물 '푸시'를 만나며 글 수게 따뜻함을 불어넣는다. 달밤이면 프로방스 산의 정기가 온뭄에 가득차 트랑스(=무아지경)에 드는 푸시와의 작별이후 마르세유에 간다. 그곳에서는 세자르 영감네의 아들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죽음의 본질성을 생각해 볼만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지중해의 새벽빛과 청춘을 찬양하는데, . 이렇게 끝은 맺는 것은 '젊을 때 떠나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들어가기에 앞서 있던 시인의 말처럼 능률적이고 경제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불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아름다운 서술이었음을 인정하는 바이며, 간간히 들어간 작가·작품여행도 좋은 인상이 되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기에는 부적절한 책인 것 같아서 예술의 성을 찾아 나섰다.
저는 레포트에 대해서 『중세 후기 스콜라철학은 사변적인 토의와 해석을 면할 수 없는 그리스의 관찰결과, 이론 및 처방들의 반복에 불과하였는데, 이런 사상을 이어받은 사변의학을 소재로 한 몰리에르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견해를 밝혀라』로 주제를 정했거든요. 부디 샛길로 빠진 주제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을 학생들 앞에서 발표한다고 생각하면서 써내려 갈 생각입니다. 좀 구체적이어서 교수님께는 식상할까봐 걱정입니다.그럼 들어가기에 앞서 스콜라철학과, 사변의학이라고 했을 때의 「사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있겠습니다.스콜라(schola)란 말은 라틴어로 학교의 뜻을 가집니다. 즉 서기 4세기부터 서유럽 기독교의 모든 수도원과 주교좌 성당에 마련된 부속 학교를 가리키는 것이죠. 중세 초기에 샤를 대제는 유럽 각지에 신학원(神學院)을 설립하고 학문 육성에 진력하였습니다. 스콜라학의 명칭은 이 신학원 교수(doctores scholastici)에서 유래하며, 그 후 중세의 신학원과 대학에서 연구되는 학문을 널리 스콜라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은 그 가운데 한 부문인 철학 분야인 것이죠. 스콜라철학이라고 하면 오래 전부터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공리공론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요. 철학 중에서도 스콜라철학을 확실히 구별해 주는 특징은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신학에 봉사하는 과학, 즉 『신학의 시녀』로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당시의 철학은 성직자들의 교육지도를 목적으로 성당부속으로 생겨났다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죠. 그들은 기독교 교리의 탐구방법으로 변증법) 변증법 [辨證法, dialectic] ― 백과사전에는 「동일률(同一律)을 근본원리로 하는 형식논리에 대하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리」라고 나와있는데 이것보다는 칸트의 정의를 빌리는 것이 나을 듯 싶네요. 「변증법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빠지기 쉬운, 일견 옳은 듯 하지만 실은 잘못된 추론 즉, ‘선험적 가상’의 잘못을 폭로의 책을 증거로 들 수 있겠습니다.그리고 「사변」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지는 않는데요.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이 단어는 근세 이후에 철학에서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 공론(空論)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주된 뜻은①깊이 생각하여 시비를 가림.②철학의 관념론에서, 경험이나 실증에 의하지 아니하고 순수한 사유(思惟)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려는 일.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②번째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 정도면 스콜라철학, 사변의학이 도출될 것으로 믿습니다. 도움을 위해 제가 짧게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즉, 교회의 권위를 벗어날 수 없는 편협한 관념과 의학의 중심점이 실험실이나 병원이 아닌 도서실이나 탁상공론에 두었던 중세의 의학에 대한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해 놓은 것이 스콜라철학적 사변의학이라는 것이죠. 그럼, 몰리에르가 왜 우리가 배운 바도 있는 「Le M decin Malgr Lui」,「L'amour M decin」, 「Le M decin Volant」에 의료행위를 해학적으로 그려놓고 있을까요? 그 주제를 풀어보겠습니다. 교수님도 이야기하셨지만, 어쩌면 그의 인척 중에 한명이 무능한 의사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거기에 반감을 산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몇 편이나 되는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몰리에르가 1622.1.15에 태어나서 1673.2.17에 생을 마쳤으니까,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쓴 시기가 1660년경이니까 그의 나이로는 인생을 한번 돌아볼 줄 아는 시기라서 생각도 많아졌을 것이고 16세기를 앞뒤로 의학의 발달이 미미했던 시기입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병원의 조직과 편재는 환자의 치료보다는 오히려 신에 대한 봉사라는 교회 본연의 역할) 병상은 교회의 본당 안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이 이용하기에 가장 넓은 장소였다는 점보다도 환자가 성찬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에 따로 주로 결정이 되었고 몸하는 것과 불순한 액체를 밖으로 뽑아내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을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발상은 사람의 몸에 대한 해부생리 지식이 없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맞는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의학지식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심하게는 병이라는 것은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나아지려면 한없이 기도를 드려야하며 병이 나아진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을 지경이었으니 당시 의학에 회의적이던 몰리에르가 얼마나 한심한 노릇이었을 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당시 의학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몰리에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은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가 병을 앓고 있던 교황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의사들이 교황성사의 침실로 몰려들 것을 잘 아는 저로서는 바로 그 사실이 매우 두렵사옵니다,. 그들의 의견은 항상 뒤죽박죽이옵니다. ...... 의사들은 우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의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성자이시여, 저들을 주의 종인 우리의 핍박하는 적의 무리로 생각하시옵소서. 불행한 한 인간이 자신의 묘석에 적어 넣었던, 경고로 가득한 묘비명의 구절을 상기하옵소서. '나는 의사가 너무 많은 덕분에 죽게 된 것이지.' "페트라르카는 14세기의 시인입니다. 몰리에르와는 전혀 다른 세기의 사람이지만 의학의 발달이 미비했던 당시로 보면 의료행위 형태가 고만고만했을 것이다. 14세기나 15세기에 의사가 진료하는 그림들을 보면 같은 방법으로 사혈요법(혈관을 절개해서 피를 흘리게 하는 치료법)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의학의 세기로 말하자면 17세기에 르네상스를 겪으면서 의학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한 세기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만 달라지거나 고급스러워졌을 뿐 괄목할 만한 발전이나 보고서, 실험서가 없었던 것이죠. 앗 오해를 할 소지가 있겠네요. 그 많은 세기를 거젊은 의학도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1514-1564))중세에는 해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시체에 칼을 대는 것은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죠. 그러한 상황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인체 해부 실험을 강행하여 근대 해부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은 베살리우스입니다. 그는 해부학 교수였는데, 인체 해부를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험을 강행하기고 했어요. 사형수의 시체를 몰래 훔쳐오기로 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고 정밀히 관찰해 노트에 기록했어요. 날이 밝자 그는 시체를 원상 복구한 후, 보통의 다른 시신과 함께 관에 넣어서 처리했죠. 인체 해부 실험을 경험해 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강의는 아주 유명해저서, 대학에서 이내 탁월한 해부학자라는 평을 들었어요. 라는 학생들의 말에, 교수대에서 없어진 시신의 행방을 찾던 경찰은 베살리우스에게 시체 도둑 혐의를 두기 시작했어요. 동료 교수의 귀띔을 전해들은 그는, 그날로 짐을 꾸려서 도망쳐나와 학문의 자유가 있는 이탈리아로 향했고, 뛰어난 해부학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용되었구요. 자신이 기록한 노트에 한 화가의 도움으로 정확한 그림을 곁들여 1538년에 이라는 책을 펴냈고, 강의와 아울러 해부 실험도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1543년 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곧장 기독교회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주된 비판은 라는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베살리우스도 갈릴레이 등 근대 과학의 선구자들이 고난을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서 싸워야 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펴려고 온갖 험난한 일들을 겪은 끝에 1564년 10월, 50살의 나이로 그리스의 한 섬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쳤습니다. [과학사 X파일]중에서가 1543년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펴냈을 때도 선배교수와 의사들이 베살리우스의 견해에 반대했을 뿐만이 우스의 길을 따랐고 베살리우스 덕분에 짧은 기간동안 많은 해부학적 지식이 밝혀진 것을 보면 사변의학에 목을 달고 있던 의사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 지금까지 의학에 흠뻑 빠져 보았는데요. 이쯤에서 저의 의견이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몰리에르가 이런 소재를 잡게 된 이유는 실제적으로 너무 터무니없는 당시의 의술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희극인이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약한 계급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즉,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잘못된 줄 알면서도 권위로 눌러잡던 시기였던 만큼 왕의 입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층이라고 하면 모조리 쓸어버리기를 원했던 17세기 루이14세는 왕실극단의 연출자 몰리에르와 왕실악단 지휘자 륄리가 만든 음악과 연극을 통해 절대권력인 태양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면서 기존 권력에 대해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지요. 그들의 작품은 바로 왕의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한 왕의 은밀한 야심을 대변하던 몰리에르와 륄리는 지나치게 신랄한 풍자극으로 마침내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미움을 사게 될 정도였다니까 어쩌면 이런 소재를 삼은 이유는 왕에 대한 복종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왕의 춤 (Le Roi danse, 2001)」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그럼 저의 사변의학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비판받아 마땅하구요. 권위에 앞서는 모든 사상· 논리라는 것에 회의감을 생깁니다. 그것은 옳은 것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는 현대의 부도덕자·범죄자와도 같은 레벨에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의학이나 과학이라는 것은 실증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을 너무나 존경하는 저명인사가 말했다고 한들 믿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가설을 가설일 뿐 언젠가는 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말처럼 사변적인 의학에 치중했었다.
〈정보광장Ⅰ〉프랑스의 새로운커플 계약, PACS(le pacte civil de soliarit )최근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커플 계약 형태를 일컫는 '팍스(PACS)'가 결혼을 앞둔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도 생소한 팍스. 팍스란 작년 11월부터 시행된 법률로, 혼인이나 동거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커플의 형태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결혼은 하지 않고 공동 생활을 하는 커플에게 세금 공제를 비롯, 유산 상속, 연금·보험 등을 일반 부부처럼 그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자는 제도를 말한다.팍스의 성립 배경프랑스에서는 80년대부터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중인 커플이라도 시청에 신고를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90년대 들어오면서 여권이 신장되고, 혼인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동거 형태를 선택하는 커플들 또한 더욱 늘어났다. 그 결과 동거 커플은 동거와 혼인을 포함한 전체 커플의 20%에 육박했고, 신생아 중 40%정도가 사생아였다. 그러나 동거 관계에서는 각종 사회적인 보호는 보장받을 수 있는데 반해, 커플 상호의 법적, 사회 복지적인 권리와 의무는 수반되지 않았다. 이렇게 커플의 형태가 다양화되는 가운데 기존의 법률만으로는 그들의 원만한 사회 생활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을 시작으로, 모든 커플의 법적, 사회 복지적인 권리를 인정하자는 차원에서 팍스 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획기적인 법률, PACS팍스는 단순히 계약이 아니라 동거 커플의 제도적인 혜택을 보장하고, 새로운 커플의 형태를 제안하는 혁명적인 법률이다. 더욱이 성을 불문하고 누구나 팍스 계약을 체결할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동성애자들에도 합법적인 커플의 장을 마련할 수 있게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선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PACS의 장, 단점팍스와 동거를 비교하면 동거 커플은 세금 신고를 개별적으로 하는 데 반해 팍스 계약자는 공동 과세를 부과하게 된다. 또한 팍스를 계약한 커플은 상대방의 보험으로도 사회 보장의 급부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혼인한 커플이 받게 되는 각종 사회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 또한 적지 않다. 상속, 증여와 관련해서는 그 적용이 계약 시점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야 하고, 세금 공제액 또한 혼인 커플보다 훨씬 적은 등이 바로 그것.일본에서도 남·녀 초혼 연령의 상승, 독신을 선택하는 여성의 증가와 같은 사회 현상에 수반해 기존의 민법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커플의 스타일이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머지 않아 어떠한 커플 형태가 도입될 지 자뭇 궁금해진다.프랑스의 공동체의식‘솔리다리테(solidarit )’솔리다리테의 역사적 기원은 멀리 지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뿌리가 깊은 솔리다리테 정신을 프랑스인의 일상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프랑스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일자리 늘리기 운동의 일환인‘주당 35시간 근무제’나 지난해 말부터 실시중인 동성부부까지에게도 합법적인 가족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시민연대협정(PACS)’도 더불어 사는 솔리다리테의 발현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실업자들이 부족하나마 일자리를 나눠 갖게 됐고, 그 동안 소외돼왔던 동성부부 등 비혼인 동거부부들이 가족 및 주택 수당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50년 역사의 프랑스판 노사정위원회인‘사회보장 협의체’의 합의와 사회 저변의 이해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시민들의 솔리다리테 정신은 그 역사만큼이나 깊고 두텁다. 파리 중심가의 뤽상부르공원 인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불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을 위해 하루종일 말상대를 해주는 곳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지성과 경륜을 겸비, 외국인 유학생들의 논문을 교정해 주기도 한다. 그 중 '카트린느'라는 할머니는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이어리에 봉사활동의 스케줄이 빼곡이 적어 놓았다.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이유1964년 스웨덴의 문학 아카데미가 사르트르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상을 주는 이유는 '상상력으로 넘치는 그의 작품은 자유의 정신과 진리의 탐구에 의해서 우리의 시대에 끝없는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사르트르의 수많은 소설·희곡·철학적논문·평론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읽혀지고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절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지요. 만약 그의 입장이 바른 것이라면 그동안 노벨상을 받은 문학가들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버릴지도 모르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지경이었지요 하여간 그 당시 사람들의 논평을 크게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①사르트르는 노벨상을 거부함으로써 자기의 이름을 팔려고 하는 것이다.②노벨상이 부르주아적인 것이므로 사르트르는 거부한 것이다.③노벨상을 받으면 자기가 이미 최고의 작품을 써 버린 것이 되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스스로 완성된 노대가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이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의견은 ①번째 것인데요. 어디까지나 타자로써의 논평이니까 그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바른 길이겠지요. 이런 핫 이슈를 가지고 스웨덴의 한 신문기자가 사르트르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그가 들은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①개인적인 이유⇒그는 일체의 공식적인 상은 받지 않는 것이 그 자신의 방침이라고 합니다. 그는 작가는 고유한 수단인 '저작'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었던 것이죠. 공식적인 상을 받는 작가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서 문학을 등급화하고 독자에게는 압력을 가하고 제도권에 편입된다는 것이라는 겁니다.②객관적인 이유⇒동서 문화의 평화공존을 위한 싸움은 인간 상호간 또는 문화의 상호간에서 행해져야 하며, 공공단체나 제도가 거기에 개입해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문학자는 문학활동을 통해서만 상호이해나 문화교류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노벨상이라는 것은 한쪽으로 편향된 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레닌상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거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그리고 스웨덴 아카데미의 수상 이유의 발표문 속에는 '자유의 정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사르트르는 거기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보통 서구에서는 일반적 자유로 해석하지만, 내가 자유라는 말을 통해서 의미하는 것은 한 켤레 이상의 구두를 가질 권리,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더욱 구체적인 자유이다."즉, 사르트르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해결을 자유의 기본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스위덴 아카데미에 대해서 아무래도 자신이 의도하는 바와는 다른 해석으로써 자유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사르트르는 상금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일부에서 이 상금을 타서 자기가 공명하는 이념운동을 위하여 유용하게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공격세례를 하여 사르트르를 무척 괴롭힌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그는 '그 돈을 자기가 운영할 수는 없고, 어느 단체에 기부할 수밖에 없는데, 그 단체가 과연 사르트르가 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개인의 자유와 이념이 공공단체의 방형과 일치될 수는 없기 때문일테지요.그러나 사르트르는 지나치게 이론적이라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일을 범합니다.그것을 잘 보여주는 그의 말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