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인물묘사를 통한 등장인물의 분석 2-(1) 시점인물 ‘僕’의 역할 나레이터로서의 ‘나’는 1장에서 자기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직접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단지 친구 오카타(岡田)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오카타와 산책을 함께 하면서 여주인공 오타마를 바라보고 그 내력을 오카타보다도 더욱 자세히 알며, 게다가 오카타가 독일로 유학을 떠난 후 오타마와 직접 아는 사이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2-(2) 외형상의 주인공 오카타(岡田) 오카타는 오타마의 사랑의 대상으로, 이야기의 구도상 외형상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나레이터 ‘나’에 의해 묘사되는 오카타의 인물묘사를 통해서도 오오가이의 학창 시절과 당시의 문학 취미 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오타마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오카타 자신은 우선 신분적으로 오타마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 오타마에게는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행동을 보이지만,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오타마에 대해 싹틀 수도 있는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억제하고 결단성 있게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살펴볼 때, 오오가이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와 『인간실격』1. 작가 소개 :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 - 1948){명치42년(1909)-소화23년(1948) 소설가. 아오모리현 출생. 생가가 쓰가루(津輕)의 대지주라는 것이 생애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친은 귀족원 의원. 고교시절 좌익사상을 접하고, 동경대 입학후 비합법적 운동에 가담하였으나 후에 탈퇴. 이 즈음 애인과 동거. 애인을 귀향시킨 사이에, 여급과 동반자살을 감행하였으나 여자만 죽는다. 이 것이 비합법운동 탈퇴와 함께 평생 깊은 상처가 된다. 소화8년 『魚服記』, 『추억』으로 주목받고, 이부세마스지등과 교류, 동인지 『靑の花』에 『로마네스크』를 게재, 10년 호타요주로등의 [일본낭만파]에 합류. 『道化の 華』,『다스게마이네』등 착란된 정신 그대로의 생생한 고백체가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익사미수, 마약중독, 정신병원 입원, 애인과의 약물사 미수와 이별등의 청춘의 방황 가운데에서, 유서의 각오로 쓴 작품집 『晩年』(10년)을 간행, 『虛構의 春』(11년), 『20세기의 기수』(12년)을 거처, 14년 이시하라미치코와 결혼, 이윽고 살아 가려는 의지가 생겨, 『富岳百景』(14년) 『女生徒』(동)『가케코미우타에』(15년),『달려라 메로스』(동)등의 좋은 단편을 쓴다. 전시통제가 강하여 짐에 따라 고전의 새로운 해석에도 관심을 가져, 『右大臣實朝』(18년),『伽草紙』(20년)등외로, 명작 『津輕』(19년)에서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서의 자기확인 여행을 그렸다. 패전후, 희곡『의 花火』(21년)등으로 전후의 편승사상에 대한 위화감을, 『비욘의 처』(22년),『櫻桃』(23년)에 기성모델에의 반역을, 『斜陽』(22년)으로 고귀한 것의 멸망의 만가를 쓰며 유행작가가 되나, 『인간실격』(23년)으로는 인간공포를 그렸다. 전후의 [해방]은, 이 작가의 눈에는 타락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과로와 음주의 끝에 결국 입수자살하였다. 다자이오사무 전집 전 12권(소화53년-54년. 치쿠바서방)이 있다.순수와 환락 사이의 방황, 다자이 고리대금업으로 성장한 가문을 보는 일본에서의 시선이 어떠했는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리대금업'에 대한 동서고금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고려해보면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 시기 일본의 국내 상황은 그리 좋은 것이 못되어서 몰락하는 귀족 계급과 새롭게 일어나는 신흥 자본 계급, 쇠락해버린 농민 계급 등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본은 '정한론'을 비롯하여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내가 태어났을 때 가장 출세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귀족원 의원이었다. 아버지는 우유로 세수를 했다." 토지를 수탈당한 농민의 원한이 깊어갈수록 쌓여가는 집안의 부를 바라보면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것을 자신의 치부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여러 습작들에서 이런 자신의 부친을 모델로 대지주를 고발한 자서전적 작품들이 쓰여지게 되었다. 서구의 부르주아 형성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랫동안 문화와 예술은 기득권층이었던 귀족계급의 전유물이었고, 창작자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패트런)들도 역시 그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귀족계급의 몰락 혹은 신흥 부르주아들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창작자들은 새로운 소비계층인 부르주아들의 천박한(?) 취향에 맞추기 위해 고생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우리 속담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오랫동안 문화를 향유해 온 귀족 계층에 비해 신흥 부르주아들의 취향은 속물(댄디)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기 쉬웠다.우리가 흔히 시쳇말로 부자는 3대가 가야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창업자는 자수성가이기 때문에 문화나 예술을 알기 어렵고, 2대는 창업자의 생활을 어려서부터 지켜보았기 때문에 수성과 함께 더 키우려 하는데 비해서 손자뻘인 3대에 이르러서는 태어나면서 부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집안에 젖어든 부르주아의 풍토가 몸에 배게 된다는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런 댄디즘('댄디즘'이란, 19세기 초 영국의 상류한 명으로 그중에서 다자이는 육남(실제로는 큰형과 둘째형이 요절했으므로 사남)이었다. '오즈카스'란 말은 이런 삼남이나 사남을 업신여기는 쓰가루 지방어로 생활의 근거를 갖지 못한 유한 계급의 자식들을 일컫는 말이다. 대지주의 자식이지만 가업을 물려받거나 할 입장이 아니었던(스스로 물려받을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던) 다자이로서는 일부러 생활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지위에 놓여 있었다.“가정의 행복은 모든 악의 근본이다.”위의 말은 다자이 오사무가 그의 소설 「가정의 행복」(1948)에서 말한 것이다.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가족들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관료들을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지만 그 비아냥거림 안에는 자신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순수를 동경한 그로서는 이렇게 돼지같이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다자이 자신에게 있어 가족(가정)의 행복이라고 할만한 기억들이 별로 없었던 개인적 체험도 작용하고 있다. 그는 「나의 유년 시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는 늘 예의바르게 행동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머니가 병약했던 탓에 태어나자마자 숙모 기에와 보모 다케의 손에 성장하게 되었는데, 숙모와 다케의 존재는 다자이에게 있어 모성애 결핌의 보상을 갈구하는 대상이기도 했다.“숙모는 자주 여름밤 모기장 안에서 나를 옆에 눕히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나는 얌전하게 숙모의 나오지 않는 젖꼭지를 문 채 듣고 있었다." “나는 향락을 위해서 매춘부를 산 적이 하룻밤도 없다. 어머니를 찾으러 간 것이다. 젖가슴을 찾으러 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다양한 여성 편력의 원천이자 그의 작품 세계에서 드러나는 모성 희구의 여성관은 그의 어린 시절에 결여되었던 이런 어머니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공포는 그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증오와자의 뒤를 따라 또다시 바다에 뛰어들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듯, 저의 외출을 엄중하게 단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술도 마시지 못하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다만 아침부터 밤까지 2층 방의 고타쓰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낡은 잡지나 읽으며 멍청하게 지내는 저에게는 자살할 기력도 없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한 못난 사내의 최후다자이 오사무는 1929년 히로사키 고교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출신 계급에 대한 혐오를 더해간다. 그가 최초로 자살을 시도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0년 동경제국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부세 마스지(1898 - 1993, 보통 사람들이 지닌 약점을 날카롭지만 따뜻하며 간결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있었으나 풍자적인 날카로운 안목과 미묘한 유머감각을 통해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작품의 정조를 통제하는 데 능했다.)를 만나 이후로 평생 동안 사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유머감각과 풍자적인 어조를 다듬어 나가게 된다. 이 해에 그는 긴자 카페의 호스티스인 다나베 아쓰미와 투신자살을 기도하여 여자만 죽고 자신만 살아 남게 된다.이 사건은 후일 반제국주의 학생 동맹에 가담하여 비합법 운동에 투신하나 자수한 일과 함께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된다. 1935년 「역행」으로 제1회 아쿠다가와상 차석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1939년엔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하였고, 1947년 12월엔 『사양(斜陽)』을 발표하며 전후 일본 작가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지만 1948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인간실격(人間失格)』을 집필하고 그해 6월 13일(혹은 14일 새벽)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 자살함(애인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죽음으로 끝맺는 것을 일본에서는 신쥬(心中)라고 한다)으로써 생을 마감한다.몇 차례의 약물 중독과 네 차례의 자살 미수만에 성공한 죽음이었다. 이 시기 그는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동거 중이었던 면서도 독립할 자신이 없어 파멸해 가는, 즉 인간으로서 실격해 가는 과정을 수기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요조는 도쿄[東京]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서양화 학원에 다니면서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사상을 알게 되고 그것들이 일시적으로나마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수단임을 배운다. 자신이 가진 모든 물건을 팔아가며 그런 생활에 탐닉하던 중 조금의 의심도 없는 순수한 내연의 처가 강간당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마침내 인간실격자, 폐인이 되고 만다.☆제1수기요조의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공복의 절실한 괴로움을 모르고 자라나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가 이해가 안되지만, 그래도 세상이 주는 괴로움에 대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6쪽) 거짓웃음이나마 지으며 대항하려는 가여운 노력이 엿보인다.☆제2수기청소년기에 들어서서 요조는 인간에 대한 불안을 없애는 새로운 방법으로 술, 담배, 매춘부등을 알게 되어 그야말로 도덕적 견지에서 보아 방황, 방탕,소비적 생활을 보낸다. 막시즘-비합법운동에도 한때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만, 그것은 사상의 실천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좌익이 갖는 어둠, 소외의 모습이 자신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타고난 외모와 수련된 익살로 여자를 홀리는 능력이 있어, 불행히도 그 세계의 유혹에서 더욱 더 벗어나기 힘들다. 즉 '인간실격' 적인 삶인 것이다. 더욱이 부유한 집안 출생인 그의 관심은 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 있다. 학비는 당연히 집에서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은 돈은 흥청망청 써 버린다. 그는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간다. 이 시기에 자기가 위안을 찾던 술집여자와 동반자살을 하나, 그것은 반 장난과도 같다.자살하자는 여자의 권유에 반 농담으로 대답한다. 나중에는 다방에서 찻값을 계산할 돈조차 없다는 것이 굴욕감으로 이어져, 진짜로 동반자살을 감행하였으나 여자만 죽고 만다. 이 사건은 자살방조죄의 기소유예로 끝나나 그의 일생에 치명적인 죄의식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제3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