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평가주제 : 동성애, 청소년에게 유해한가?올해 2월에 방영되었던 ‘100인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제 생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제에 대한 의견을 보면 청소년 보호위원회에서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기준에서 제외를 하는 문제에 관한 찬반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하였는데 청소년 보호법 7조에 보면,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적 음란증 등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문제를 조장하는 것을 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기에서 동성애를 빼자고 하는데서 이 문제가 생겨났다.각 의견의 대표자 두 명과 100명의 패널들로 구성된 이 토론에서 청소년이 동성애라는 문제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초점이 맞춰졌다. 이것은 예전의 숨겨만 왔던 성문제를 밖으로 드러내고 청소년들도 올바른 성의식을 갖고 스스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삭제찬성 의견과 아직 자라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성 대상 도착증이라고 불리는 동성애를 무제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허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삭제반대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였다.연예인 커밍아웃 1호였던 탤런트 홍석천이 출연하여 삭제에 대한 강한 찬성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학창시절 느꼈던 소외감과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느꼈던 고통들을 사실감 있게 드러내면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성교육이나 동성애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을 느끼며 힘들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런 청소년을 위해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동성애자가 늘어갈 것을 우려하여 숨기려하고 가두어두려고만 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삭제반대 측에서는 동성애를 혼음 근친상간 등과 함께 병렬적으로 나열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으로 분류하고 있는 동성애를 청소년들에게 무제한적으로 공개한다면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였다.동성애는 인류 역사에서 계속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동성애가 폭력이나 음란성으로 이어진다면 통제되어야 마땅하지만 단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그 자체를 비판하고 막고 숨기려 한다는 것은 소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 같다.나는 이 토론 중 삭제찬성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네덜란드나 캐나다의 경우를 들어서, 빨리 우리도 외국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치관을 외면한 채 무조건적으로 외국문화를 쫓아야 한다는 의견에서 아직은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성적 가치관에 대한 교육에 너무 치중해서 말을 하여 자주 사회자가 묻는 말에 대해 벗어난 대답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삭제 반대의견에서 내놓은 선천적인 동성애자의 경우는 두더라도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내 놓았을 때, 후천적으로 동성애자가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였던 점이 후에 삭제찬성입장의 표가 4표 줄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4.19혁명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열사의 자료가 눈에 띄어 김주열열사에 대해 조사해보고 김주열열사의 기념관에 답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또, 김주열열사로 인해 일어나게 된 4.19혁명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해보았습니다.한국근현대사 과목을 재수강하게 되었다. 2000년도에 수강을 하였지만 점수가 좋지 못해 재수강을 하게 되었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수업도 듣고 레포트도 잘 해가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답사 레포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어서 같은 과 우일이형과 형 여자친구와 함께 어떤 주제로 답사를 갈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교수님께 여쭈어보니 이미 다른팀들은 동학이나 5.18등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근현대사의 발자취를 찾아 답사를 나선 뒤였기 때문에 우린 4.19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고 그 중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기념관이 있다는 남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출발하면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들뜬 기분으로 남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만큼 남원 금지면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출발 전에 미리 지도도 뽑고 가면서 다른 선배에게 길도 물어보았지만 이미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해가면서 두 시간여 만에 남원에 도착하였다. 남원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들어가다가 ‘김주열로’를 찾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밥도 못먹고 기념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오후를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늦게까지 있을 수 없어서 사진을 찍고 캠코더로 촬영을 해가며 김주열 열사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처음에 ‘김주열로’라고 적힌 비를 보면서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김주열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조그만 집처럼 기념관이 하나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문은 잠겨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밖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관련된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김주열 열사가 쓰셨던 물품이나 그 당시 신문들 김주열 열사 추모시 등이 남원 금지중학(金池中學)을 졸업하고, 1960년 마산상고(馬山商高)에 입학하였다. 그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 한 달 후인 4월 10일 최루탄(催淚彈)이 눈에 박힌 채 유기(遺棄)되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발견되고, 이것이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학생과 시민의 분노가 또다시 폭발하여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김주열열사기념관 [金朱烈烈士記念館]설립연도 2001년 4월 19일소재지 전북 남원시 금지면 용정리규모 약 50㎡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주요소장품 김주열 열사 책상과 옷 등 유품2001년 4월 19일 김주열의 고향인 전라북도남원시 금지면 용정리에 개관하였다. 김주열 열사 묘역 앞에 건립된 기념관에는 약 50㎡ 규모로 김주열 열사가 사용하던 책상과 옷, 학용품 등의 유품과 학창시절 사진 10여 점, 학적부 등 93점의 전시물이 있다. 이 전시품들은 유족과 3·15의거기념사업회, 김주열 열사 친구, 모교인 마산상업고등학교 등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다. 이 밖에도 3·15의거기념사업회가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정에 세운 김주열 열사 동상을 복원한 흉상, 마산상업고등학교 명예졸업장, 김주열 열사에 대한 기사가 실린 각종 신문과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김주열 열사는 1960년 3월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자유당정권의 3·15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된 후 4월 11일 마산시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를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남원시는 이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남원시에서 전라남도곡성군 경계에 이르는 국도 17호선 17.5㎞를 '김주열로'로 이름붙이고 선포식을 가졌다.요약1960년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룬 한국 학생의 일련의 반부정(反不正)·반정부(反政府) 항쟁.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시키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해갔다. 그는 6 ·25전쟁 발발 직후 서울 사수(死守)를 공언하고도 자신과 정부는 피난감으로써 국민을 배신하였다. 또한 '국민방위군사건(國民防衛軍事件)'으로 많은 청년들을 희생시켰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집권을 위해 일대 정치파동을 일으켜 국민의 원성을 사기 시작하였다.1952년 대통령직선제(直選制) 개헌을 위한 정치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 연금(軟禁)하여 위협하는가 하면, '백골단(白骨團)' '민족자결단(民族自決團)'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나타나 국회의원들을 협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개헌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출신구에서는 난데없이 국회의원 소환을 외치는 성토군민대회(聲討郡民大會)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소위 '부산정치파동(釜山政治波動)'으로 불리는 일련의 정치테러 사건과 이때 통과된 '발췌개헌(拔萃改憲)'으로 이승만에 대한 국민의 신망은 더욱 떨어졌다.1954년 11월 이승만은 재차 자신의 종신집권을 위해 헌법의 중임제한(重任制限)조항을 없애는 개헌안을 국회에 상정시켜 소위 '사사오입개헌(四捨五入改憲)'이라는 기상천외한 개헌을 단행하였다. 당시의 개헌안 가결정족수(可決定足數)는 재적 국회의원 203명의 2/3인 136표 이상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투표결과 135표를 얻었기 때문에 203의 3분의 2는 135.333…으로 사사오입하면 135이므로 개헌안은 부결된 것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전날의 표결결과를 뒤집어 136표로 사사오입하여 가결된 것으로 정정 선포함으로써 사사오입개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간접적원인1956년 5·15정부통령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신익희(申翼熙)의 급사(急死)로 그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자유당은 선거법에 언론규제규정을 삽입한 ‘협상선거법(協商選擧法)’을 통과시켜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언론을 봉쇄해놓고 관권에 의한 부정선거를 공공연히 자행하였으나, 신익희에 대한 추모표(追慕票)가 20%에 달하.내무부장관 최인규(崔仁圭)를 중심으로 공무원을 총동원한 부정선거 음모의 내용은, ① 4할 사전투표(事前投票), ② 3인조에 의한 반공개(半公開) 투표, ③ 자유당의 완장부대 동원으로 유권자위협, ④ 야당참관인 축출, ⑤ 유령 유권자의 조작과 기권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 투표, ⑥ 내통식(內通式) 기표소의 설치, ⑦ 투표함 바꿔치기, ⑧ 개표 때의 혼표(混票)와 환표(換票), ⑨ 득표수의 조작 발표 등이었다.이러한 음모는 정의감에 불타는 한 말단 경찰관이 '부정선거지령서'의 사본을 민주당에 공개함으로써 백일하(白日下)에 폭로되었다. 그러한 때 조병옥이 미국에서 급사(急死)함으로써, 이승만의 4선(四選)은 거의 확실하게 되었다. 3월 17일 이승만 ·이기붕 후보가 80%가 넘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음을 발표하였으나, 국민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선거가 아니라 선거라는 미명(美名) 아래 행해진 국민주권의 유린행위였고,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도화선4 ·19혁명의 최초의 도화선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불붙여졌다. 민주당 정부통령후보의 대구 유세일(遊說日)인 28일은 일요일이었는데 대구시내 모든 초 ·중 ·고교 학생은 당국의 지시로 등교를 강요당했다. 그것은 야당의 선거유세장에 학생들이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대구고교와 경북고교 학생이 “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마침내 데모를 벌였다. 이어 3월 1일 서울 ·대전 ·수원에서, 8일 대전, 12일 ·13일 부산 ·서울에서 계속적인 학생데모가 일어났다. 학생들의 구호도 처음에는 “구속학생 석방하라”,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마라”는 등이었으나, 점차 정치적인 구호로 바뀌어 “학생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뭉치자”, “부정선거를 묵인하는 자는 자유로운 조국에서 삶을 포기한 자다”라는 등의 부정선거 규탄의 방향으로 바뀌어갔다.3월 15일 선거 당일에는 마산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벌였고, 자유당의 작태를 목격한 시민들도 선거포기선언을 한 민주당 당사 주변에 모여들이 미리 약속했던 계획에 따라 각 대학에서 총궐기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중앙청을 향해 행진하였다. 그 선언문도 4 ·18 고려대 선언문과 맥락(脈絡)을 같이하는 것으로 “학생들은 더 이상 현실을 좌시할 수만은 없으며 정의와 민주수호를 위해 궐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자극된 수많은 고등학생들도 데모에 참가하였다.경찰이 경무대(景武臺)로 통하는 효자동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승만과의 면담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무차별 발포를 하여 사상자가 늘어가자, 데모 군중은 더욱 흥분하여 경찰 지프차를 탈취하여 불사르고, 경찰서와 파출소를 파괴 ·방화하였다. 또 일부 시위군중은 자유당정권의 전위부대의 하나였던 서울 신문사와 반공청년단(反共靑年團) 본부, 그리고 자유당 본부 등을 습격하여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서대문경무대'로 알려진 이기붕의 집도 습격하였으나 이 곳에서는 정치폭력배들이 데모 학생들을 몽둥이로 살상까지 하였다.서울 시내는 완전히 무정부상태였고, 모든 질서는 회복할 수 없는 수라장이 되었다. 이 날의 구호는 “3 ·15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이 대통령은 하야하라” 등 독재규탄과 민주수호 및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오후 3시를 기해서 서울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을 진주시켰다. 사망자 약 100명에 부상자 약 450명에 달한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 데모는 계엄군의 진주로 다음날부터 일단 멈췄다.그러나 4월 23일 서울시 주관으로 4 ·19희생자에 대한 합동위령제(合同慰靈祭)를 올리자 일제히 이에 반발, “어용(御用) 위령제는 4 ·19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다. 학생들이 주최하는 위령제를 다시 거행해야한다”고 요구하였다. 한편, 23일 부통령 장면이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사퇴하자, 이기붕도 자신의 부통령당선을 사퇴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고, 이승만도 자유당총재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결코 정부통령선거를 다시 한다거나, 대통령직을 사퇴한다는 의사는 였다.
홀랜드 오퍼스 ( Mr. Hollands Opus )1. 줄거리스티븐 헤렉 감독이 만든 영화로 리차드 드레이퓌스, 글렌 헤들리, 올림피아 듀카키스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1996년 3월 23일 출시되었다. 이 영화에서 교사는 시간적 여유와 인연이 없는 직업이다. 이 영화는 한 음악교사의 30여년에 걸친 교육 인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거대한 서사시 같은 영화이다. 2시간 20분이나 되는 긴 상영시간을 걸쳐 수많은 에피소드를 서로 엮어가면서 “교사의 일생”이라는 주제를 변화하는 시대배경과 함께 표출해내고 있다. 영화 제목의 “오퍼스”는 주로 교향곡 같은 음악작품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 홀랜드의 교육자적 삶을 통해 여물게 된 교육적 성취와 업적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1) Episode 1 - 교사가 되기까지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이 꿈인 홀랜드는 자신의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음악교사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 동안 그는 고정된 직업이 없이 술집이나 결혼식 등에서의 임시적인 연주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위대한 작곡가를 꿈꿔왔다. 그러나 생활이 여의치 않자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4년 동안 교사로 일해서 돈을 모아 작곡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포트랜드에 있는 “J.K. 케네디 고등학교"에 음악교사로 부임한다. 그에게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나 학생들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임시직 직업생활로부터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정규직 직업생활로 전환하여 경제적 안정을 기대했을 뿐이다.그러나 홀랜드의 생각은 출근 첫날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는 음악교과서를 읽어 내려가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학생들은 그러한 수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지도하고 지휘해야 할 교내 교향악단은 수준 이하로 엉망이고 단원들은 의욕조차 보이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사이에 의욕과 생동감을 찾기가 어렵다. 홀랜드는 교직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며 진부한 선생 노릇을 그만두었으면 하지만 예기치 못하는 신세가 학생들의 인생에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질책한다. 교육은 정해진 교과내용의 전달로 끝나지 않으며, 수업에서는 겨우 교육을 시작하는 계기를 얻게 될 뿐이라고 말이다.2) Episode 2 - 수업방식의 변화무수한 고민 끝에 그는 수업방식을 바꿔 학생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친숙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지고 홀랜드 자신은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발견한다.3) Episode 3 - 거츄드 랭그는 자신감을 잃어 클라리넷을 연주를 포기하려는 여학생 거츄드 랭을 따로 개인지도 하면서 그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한다.4) Episode 4 - 밴드부에 러스 합류학생들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신념에서 홀랜드는 밴드부를 신설하여 지도한다. 그 과정에서 박자감각이 전혀 없는 흑인 학생 하나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성껏 지도한 끝에 밴드부의 일원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도록 변화시킨다.5) Episode 5 - 아들 콜의 청력상실그러던 어느 날 아들 콜이 청력의 90%를 상실한 귀머거리로 밝혀지게 된다. 아들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려던 그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으며 장애아 양육과 교육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학교에서의 성공이나 만족과는 딴판으로 가정의 상황은 그를 몹시 괴롭게 한다.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하겠다는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그로서는 당혹스런 상황일 수밖에 없다1980년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의 죽음은 교사 홀랜드와 그의 장애인 아들 콜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준다. 홀랜드는 콜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악회를 기획하고 존 레논의 “Beautiful Boy"를 수화로 부른다. 이제 그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인생의 교사“가 되었다.6) Episode 6 - 예능과목 폐지, 조기 퇴임식시간이던 날 그에게서 음악을 배웠던 졸업생들이 교향악단을 구성하여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아메리카 교향곡” 즉 홀랜드의 작품을 그의 지휘 하에 연주하면서 영화가 끝난다.2. 홀랜드라는 교사얼떨결에 시작된 홀랜드의 교직생활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교사인 자신 스스로가 교육학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오른다. 가르치는 일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교사는 진정한 교사가 아니다.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정성을 들이는 만큼 자신의 작곡활동은 소홀해지고 부인에게서는 친자식보다 학생들에게 더 관심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제야 그는 교직생활 초기에 시간을 벌기 위해 교사가 되었다는 자신의 말을 듣고 체육교사 빌 마이스터가 “교사는 시간적 여유와 인연이 없는 직업”이라고 했던 대답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그는 음악교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지닌 교사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의욕을 지닐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서 기쁨을 느낀다.교내 교향악단을 지도하는 일 외에도 홀랜드는 밴드부를 창설하여 학생들과 함께 호흡한다. 학생들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기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교육자적 사명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1980년의 졸업식장에서 제이콥스 교장은 그에게 다가와 자신이 곧 은퇴하게 된다면서 언젠가 그에게 강조했던 교사의 역할을 주지키시려는 듯 나침반을 은퇴선물로 준다.그 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학교 당국은 재정부족을 이유로 하여 졸업행사인 연극의 폐지를 논의하게 되는데 체육교사 빌 마이스터는 입장수익을 올릴 수 있는 뮤지컬을 기획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연기자들 가운데에는 로위나 모건이라는 음악적 자질이 뛰어난 학생이 있었다. 홀랜드는 출연진 모두와 열심히 노력하여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로위나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조언하고 격려한다. 이렇듯 그는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교육을 통해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활동, 즉 성장세대와 함께 진취적으로 노력함으로써 교사와 학생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학생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이란 교사가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일 수 도 있다. 교사 홀랜드는 30여년의 교직 생활을 통한 자기성장을 깨닫고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사랑함으로써 가르치는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교사는 지식전달의 차원을 넘어 학생의 고유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성장세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교사이다. 음악교사 홀랜드는 바로 그러한 교사상을 보여준다.3. 홀랜드의 교육 방식1) 외재적 동기에 의해 시작처음에 홀랜드의 교육의 동기는 외적인(생계유지) 동기에 의해서였기 때문에 홀랜드는 수업에 열의를 보이지 못했고 , 그의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반응 역시 그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었다.또 위대한 심포니를 작곡해야 한다는 마음의 조급함은 그가 음악을 가르친다는 ‘사소한’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했을 것이다.2) 문제 상황 인식해 수업 방법 개선그러나 홀랜드는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인식하여 학생들이 음악을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도록 수업 운영의 방법을 개선해 나간다.①음악에 대한 흥미 유발 - 학생들의 관심 없는 음악을 대중음악과 연결학생들의 관심 밖에 있는 바하의 고전음악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기보다는 대중음악과 연결하여 흥미를 유발하고, 음악 수업의 궁극적 목표는 음악에 대한 지식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음악을 사랑하도록 이끄는데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로써 학생들은 교사 홀랜드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시간에 임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홀랜드는 교사와 학생사이의 관계 형성과 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②학생과의 대화홀랜드가 지도하던 교내 교향악단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거츄드 랭이 연주가 서툴러 계속해서 전체의 화음을 망치자 그는 랭을 불러 대화를 나눈다. 랭이 혼자 열심히 연습을 하지만 소교사의 자세, 즉 학생 하나 하나에게 인격적으로 성실히 관여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③수준별 교육홀랜드는 체육교사 빌 마이스터의 권유로 박자감이 전혀 없는 운동부 학생 러스를 밴드부에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사실 러스가 잘 하는 일이라고는 운동뿐이었는데 성적불량으로 인해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학생에게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지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홀랜드가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려 하자 체육교사는 “당신의 가르치는 방법이 틀렸어”라고 하면서 학생이 노력을 해도 변호가 없을 경우에는 교사의 교육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 말에 홀랜드는 충격을 받고 러스에게 맞는 교육방법을 개발해낸다. 그는 러스가 손과 발을 박자감을 느끼게 해주면서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큰북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홀랜드는 러스를 가르치면서 교사란 학생을 신뢰하고 사랑하면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④학교에서의 교육방법을 아들에게도홀랜드가 학생들 개개인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하면서 교육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일은 결국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아들 콜의 교육과 지도에서도 그 빛을 발하게 된다. 그동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보호만 하려던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아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수화를 배워 수화로 노래하는 음악회를 개최하게 됨으로써 아들 콜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자신의 독창적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힘을 주게 된다. 이제 그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관여를 통해 함께 호흡하는 교사와 아버지 홀랜드가 된 것이다.4. 영화속과 현실에서의 교육 - 예술교과목의 필요성 간과‘홀랜드 오퍼스’ 는 내용상 지식교육에 편중하는 학교현실을 비판하려는 관점에서 에피소드들을 전개하고 있다. 음악교사 홀랜드는 학생에게 음악적 지식이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즐거움을 전달함으로써 학교에서 예술교과 수업을 한다는 것이 인생을 이해하고 준비하는데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다.
The Red Pony Stories비평가들은 “The Gift.", “The Great Mountains.", “The Promise.", “The Leader of the People."으로 구성되어진 The Red Pony 이야기에 대해서 거의 모두 만장일치로 환호했다. Mienner는 “성공적인 이야기”와 더불어서 스타인벡이 다시는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성실, 경험의 책임과 표면적이고 상징적인 결과의 객체”로 이 모음집을 믿었다. Barbour는 “성공적인 이야기”와 더불어서 “스타인벡의 최대로 깊은 감정이 표출된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이 시리즈를 “형식과 내용이 가장 완벽하게 통합된 작품”이라고 칭송 하였다. 스타인벡의 넓은 지식적 고찰은 빨간 망아지 기교로 성공하였다. 그는 그의 첫 만남으로 죽을 때까지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네 가지 이야기를 처음으로 쓸 때만 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작가의 어머니인 올리브 헤밀턴 스타인벡은 1933년 여름 근래에 광범위하게 퍼져버린 뇌졸중을 겪게 되었다. 그는 George Albee에게 글을 썼다. 나는 너에게 어머니께서 지금 무능력해지셨고 아마 한해 정도 명을 이어 가실 거라고 말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힘든 시간 이였다. 나는 우울한 안개의 처음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두껍고 끝이 없는 분위기와 싸우고 있다. 이런 표현을 상기한 후 스타인벡은 “남녀 누구도 첫 청소년기”에 죽음에 직면한 것은 그의 작품인 Red Pony에서 이런 아픈 과정을 묘사하도록 시도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네 가지 구성의 이야기는 자선전적 주인공의 인생경로가 성숙해지는 연대기적 교양서적이다. Arnold l. Goldsmitch는 이 이야기의 다소 소박한 아이인 Jody Tiflin을 새로운 삶의 기쁨뿐만 아니라 죽음의 진실성을 처음 겪게 되는 것을 지적하였다. “The Gift"에서 조디는 그의 기분 좋은 말인 gabilan이 일찍 죽게 됨을 겪게 된다. "The Great Moun이 이야기의 많은 동물들인 망아지 gabilan, 암말 nellie smasher 와 doubletree mutt, jody의 사나운 개들 의해서 균등하게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harry thornton moor는 The long velly 모음집에서 ”최고“로 말할 정도로 이야기는 비평가들 사이에 칭찬받았다. 의심할 여지없는 the red pony는 스타인벡의 단편 소설들 중 최고로 손꼽힌다."The Gift"(1933)원제로 칭해지는 “The Red Pony”에서 “The Gift"는 조디의 첫 성장에서 시작되어진다. 그 이야기는 10살인 조디는 칼 티플린 선물인 망아지를 어려운 훈련과정을 그에게 가르치면서 이야기를 한다. 조디의 훈련받지 않은 망아지는 가빌란은 그 태양이 비추는 동쪽산인 티플린 목장에 인접하였다. 빌리 벅의 말 길잡이로써 그 소년이 가빌란의 고삐 연습을 늦은 여름부터 시작해서 경루비가 내리기 전까지 그를 길에서 깡충깡충 뛰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결코 실체가 아니다. 어느 날 가축우리를 떠나 가빌란은 소낙비에 젖었고 빌리 벅은 그를 피난처로 이끄는데 소홀히 하였다. 그 망아지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고 죄책감의 말 길잡이는 그를 되살리려고 했다. 죽음에 다다른 이른 아침에 가빌란은 비틀거리며 티플린 헛간에 나왔고 조디는 독수리가 원을 돌며 나는 것에 의해 그를 발견하였다. 비록 그 소년이 몽둥이로 거대한 검은 새를 쳤지만 가빌란은 살 수 없었다. 조디의 공격에 독수리는 가빌란의 죽음으로부터 되돌려 받으려는 그의 시도로 보여 진다. 그 소년의 성장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그의 성숙에 대한 중요한 발걸음이다. 하지만 그의 망아지의 죽음은 조디 또한 새로운 삶에 대한 표현이다. 그가 티플린 목장의 숲 목을 내려올 때 조디는 종종 ”삼나무 아래 큰 검은 솥 돼지를 도살하던“내려다보고 그때 다시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는”이끼가 난 물통“을 보곤 한다. 그의 운둔과 묵상의 장소인 숲 목은 그의 몇몇 여행에서 그의 성장과 변화를 그 이야기를여름에서 시작되고 (가빌란이 티플린의 목장에 도착할 때 )그루터기와 길어진 그림자를 통해서 가을을 알게 되고 어둠과 겨울비를 통해 결말짓는다. (망아지가 죽을 때) 가빌란이 죽은 어느 날, 새 삶 (새로운 녹색 작물인 자생 식물)이 벌써 표면에 나옴으로써 봄이 다가옴을 지적하고 그의 불멸의 삶을 암시해 주었다. 단지 봄 새싹이 새 삶을 보이고 독수리들은 명백히 죽음을 상징한다. 일찍이 스타인 벡의 이야기에서 ”두개의 큰 날개를 가진 독수리들이 땅위로 낮게 난다.“ 이때, 이런 어둠과 반갑지 않은 방문자를 소개하고 ”동물의 죽음이 인접해있다.“ 지적해 준다. 조디는 이런 육식동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그는 그들을 싫어했다.) 그의 망아지가 죽을 때 공중을 맴돌던 ”높이 원을 돌며 나는 검은 독수리“에 의해서 그 장소를 가게 되었을 때 명백히 결론지어진다. 비록 소년은 그의 망아지의 죽음을 독수리를 통해 이해했다. 그는 날개 달린 이 약탈자들이 자연의 섭리인 죽음이라는 것을 추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날아가기 전에 그가 붙잡았을 때 그를 응시하던 ”두려움 없는 빨간 눈“는 ”비인격적이고 두려워하지 않고 초연하였다. “ 죽음은 조디가 독수리의 빨간 눈들을 보았을 때 공허한 냉담의 희생자 먹이가 될 뿐이다."The Great Mountains"(1933)다음 이야기에서도 죽음의 주제는 계속되어진다. “The Great Mountains" 존경할만한 인디언 기타노와 티플린의 노쇠한 말 easter의 죽음의 접근에 관찰하게 된다. 조디는 이런 유사한 경험에서 그에게 도움을 준 넘쳐흐르는 시원한 샘물인 ”이끼 낀 물통“이 있는 잡목 숲에 다시 은거한다. 게다가 red pony이야기의 두 번째 요소는 조디의 매혹적인 태평양에서부터 티플린 목장의 분리된 위대한 종류의 산이다. 조디의 매혹은 구성되어지는데 오웬의 말에서 ”충동적인 물음의 번영과 그의 욕망인 알고 싶은 것 과 비밀세계의 초월이다.“ 어둠과 미스테리에서의 위대한 것은 바위 투성의 산타 루시아 산을 말한다.쪽 가장자리에서 조디는 ”거의 반대하지 않아“ 추위에 떨었다. 이스터와 기타노처럼 이 산들이 심오한 죽음의 신비를 일깨워 주었고, 그가 "The Gift"에서처럼 이 이야기도 역시 조디가 신비에 직면하게 된다. 30살인 이스터는 기타노는 알아보았다. "늙어서도 일하지 않을 수 없다."와 ”단지 먹고 곧 죽는다. “라는 인디언의 말이 있다. 티플린 목장에서 ”언덕 꼭대기를 먹어 가면“ 별개의 유사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그들의 가죽아래 얇은 만이 남아있고 절뚝거리거나 혹은 어렵게 걸어 다녔다. 칼 티플린은 이들의 유사성을 예고하였다. ”이스터가 불쌍해서 쏴 죽이지 않는다면 그를 고통과 류마티스로 보다 고통 받을 것이다.“라고 그가 말할 때 칼은 ”비밀스러운 기타노를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보았다. 놀라지 않을 만큼 늙은 인디언과 이스터사이는 밀접한 관계이다. 기타노가 거의 입술소리를 날카롭게 만들 때 이스터는 느릿느릿 걸어서 목 아래 갈기 부분을 기대어 그에게 비벼댄다. 반면에 이스터의 이름은 부활과 삶의 영원함으로 암시되어지지만 기타노는 오직 죽음을 표현하며 보인다. 따라서 그는 티플린 목장에서 반갑지 않은 방문 인으로 취급받는다. 칼 티플린은 ”죽음과 함께 하는 이방인은 오지마라“라고 기타노에게 말했다. 그러나 자연의 순화에서 인디언들의 삶과 죽음은 그가 태어난 곳에 다시 태어나고 심지어 티플린은 그의 편의까지 거절했다. 반면에 늙은 티플린은 키타노가 문제 있다고 보았고 조디는 그의 오래 지속되는 위엄과 그의 미광이 넘치는 칼을 깨달았다. 피터슨은 ”젊은 탐구자에게도 불구한 상처난 왕은 그의 망한 왕국을 제건하였다“ 라고 기타노는 보고 말하였다. 따라서 이스터처럼 기타노는 그 스스로 부활을 암시했다. 부활이 아닌 영원한 삶을,, 이야기의 끝은 조디가 중대한 만남 후 기타노의 믿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잡목숲을 다시내려온다. 우리가 일찍이 이야기에서 무더운 여름계절동안 푸른풀이 자라나고 물통주위에 샘물 파이프와 물통이 가득차 히고 설명했다. ”그것은 너의 망아지다. 내가 약속한다. 살수 있도록, 나는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 건강한 망아지는 암컷의 말과 바꿔 태어났다. 그리고 다시 스타인벡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주요한 밀접한 관계를 삼나무와 이낀 낀 물통을 통해 암시해준다. 전의 두 이야기에서 검은 삼나무와 죽음을 나타내주는 아래 죽음을 당한다. 검은 삼나무 아래 서서 그의 약속된 망아지를 심사숙고 했는데 조디는 훈련하기 시작했다. ”도살장에서 그의 망아지를 도살하는 장소에서 생각해서 불행이 찾아온 것 같아 보인다.. 나쁜 결과가 동시에 발생해서 좌절 시키자 그는 재빨리 걸었다. 잡목 숲으로 녹색 풀이 자란 곳 까지 그리고 시원한 물이 있는 오래된 물 통속에 도달했다. 이것은 얇은 샘물이 오래된 이끼가 낀 물통에 그것 삶 스스로 서있다. (건조 여름의 날에도)영원히 시원하고 푸른 주위는 이끼가 낀 물통은 조디의 피난처로 다시 되었다. 변화와 비판의 시간동안 “시원한 이끼와 그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하는 물이다.” 검은 삼나무와 이끼 낀 물통은 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조디는 빨간 망아지 이야기 일찍부터 성숙기함에 다가가는 것이다. 비록 조디가 죽음의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을 때 자연의 출산을 신비하게 남겨놓았다. 그러나 “약속”에서 그는 닐의 망아지 탄생 뿐 아니라 썬 도그에 의해 닐이 태어난 것 까지 목격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그는 죽음의 징후에 사나워졌고 새로운 삶에 창조였다. 조디는 성적인 결합의 흥미를 종마인 닐의 커플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닐에 대한 생각과 오래된 임신 동안 조디는 아버지의 대신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닐이 말이 낳을 시간이 나가오자, 조디는 신경질적이고 걱정스러움이 증폭되었다. 그가 그의 새로 태어난 망아지에 관한 꿈을 꿨을 때 연판의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그는 따스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따라서 그의 성적 지식이 그의 유아기적으로 불 완정하게 남았고 조디는 삶의 기초에서 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성적 주체가 증가된 스타인벡은만큼”
예전에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이 지루해보여서 그리 자세히 보지는 않았었다. 근데 이번에 다시 보게 되면서 이 작품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이 책에서 주드는 메리그린으로 돌아온 어느날 돼지곱창을 씻고 있는 여자 셋을 만나게 되는데 이 중에서 한명의 여자가 아라벨라이다. 그 여자는 주드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을 하고 주드는 아라벨라의 육체의 유혹에 빠져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주드는 곧 아라벨라가 천박한 시골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후에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서 사촌인 수를 만나게 되고 정신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주드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고 수는 그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한 phillotson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후에 수가 주드에게 몇 차례 도움을 청하게 되고 함께 있게 되면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촌이고 서로 다른사람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수는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후에 아라벨라와 주드가 이혼을 하고 아라벨라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데 아라벨라에게 생긴 아이가 주드의 아이라고 밝히면서 그 아이는 주드와 수와 함께 살게 됩니다. 수는 아라벨라에게 질투를 하면서 주드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나서 주드와 수는 함께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곳으로 살 곳을 찾아 이사를 몇 차례 하면서 그들에게 아이들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세 아이와 그들에게 방을 빌려주려고 하질 않습니다. 주드와 수가 밖에 나갔다 집으로 들어왔을때 주드와 아라벨라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부양해야할 입을 줄여드린다”는 편지를 남긴 채 두 어린 아이를 목졸라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죽어있게 됩니다. 수는 주드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거라며 그들은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주드가 한 번 더 수를 찾아오지만 수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사랑을 이우려 했던 자신의 과거의 죄값이라며 주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