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떠나자!!]-프랑스 관광 정보-프랑스까지는 어떻게 갈까??프랑스의 파리로 직항하는 항공편은 프랑스 항공(Air France)과 대한항공(Korean Air) 등 두 개의 항공사가 각 주 3회씩 6회 운항하고 있다. 직항편으로 11시간은 족히 걸리는 장거리 여행에 맞게 기내 생활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항공사비행기요일출발시간도착시간에어 프랑스AF267월,수,금,토,일12:5017:40에어 프랑스/대한항공AF261/KE5901화,목13:3018:25대한항공KE901월,화,목,금,토13:3018:25표서울에서 파리로~~~파리에서 서울로~~~{항공사비행기요일출발시간도착시간에어 프랑스AF264화,목,금,토,일16:2510:20+1에어 프랑스/대한항공AF262/KE5902월21:5016:05+1대한항공KE902월,화,목,금,토21:5016:05+1기타 유럽으로 취항하는 네덜란드 항공(KLM), 독일항공(Lufuthansa)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네덜란드 항공(KLM)은 주 5회 암스텔담에서, 독일항공(LuftHansa)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고 파리나 기타 프랑스 도시로 입국할 수 있다. 유럽계 항공사 이외에 우리나라에 취항하는 다른 항공사들을 이용해서 한 번 정도 갈아타고 파리로 입국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항공료가 직항하는 항공사들 보다 약간 저렴할 수 있다.샤를르 드 골 공항에 도착해서...표지판을 따라 도착장으로11시간의 긴긴 비행이 끝나고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즈음이면 샤를르 드 골 공항 2청사 A홀에 도착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도착(Arrivee혹은 Sortie) 혹은 짐(Baggage)이라고 적힌 푯말을 보고 따라간다. 대열이 끝나는 즈음에 입국 심사대가 있다.입국수속프랑스의 입국수속은 간단하다. 그래도 여권을 내밀면서 간단하게 인사 정도는 하자. "봉주르(Bonjour!)"하고. 가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불어에 자신이 있다면 대답을 하고 아니면 그냥 있어도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다.짐은 어디서?여권을 돌려 받으면 '바가쥬(Bag은행수표(Cheque Bancaire)를 이용한다. 이렇게 계산된 카드나 수표는 1달에 한 번씩 자신의 은행구좌 에서 결재된다. 여행자가 아닌 프랑스 은행에 구좌가 있는 유학생이면 누구나 카드나 수표를 이용할 수 있다. 수표는 일정한 금액이 적혀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직접 구입 한 물건의 가격을 적어 상인에게 주는 방식이다.화물 만드는 방법유럽지역은 화물을 20kg 밖에는 가지고 갈 수 없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 순으로 간추려 최소화시켜야 한다. 화물 초과시에는 kg당 2만원이상의 초과료를 물게 되므로 현지에서 살 수 있는 것까지 욕심을 내어 챙기다 보 면 오히려 더 비경제적이다. 우리가 그 곳에서 살 수 없는 것만 특별히 신 경써서 챙기고 의류는 새로 사지 않는 것이 좋다. 웬만한 크기의 여행 가방에 의류를 주로하여 화물을 거의 한가득 채우면 약 20kg이다. 가방 모퉁이에 양말류나 바지를 말아서 접으면 꽤 들어가므로 활용하도록하고, 작고 무거운 것은 기내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고 책 이나 타 계절 옷등은 나중에 배편으로 보내는 것이 경제적이다. 가방의 수는 핸드백을 포함해 3개이내가 좋다. 가지수가 많으면 분실의 가능성이 증가할 8뿐 아니라 혼자서 동시에 운반해야 하므로 도난당할 우려도 있다. 출국전 공항까지는 가족과 함께 운반되지만 이 후의 모든 화물은 항상 혼자서 모든 것을 운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사 비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비자 신청시 필요한 서류....1. 동의서2. 여권3. 입학허가서4. 신청서 1부. 사진 1장5. 재정보증6. 수수료 325프랑****동의서****동의서는 프랑스 문화원 유학과에서 발급해 줍니다...(서울역쪽에서 대각선 방면 남대문 대한 상공 회의소 건너편에 위치한 우리빌딩 18층)..신청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로는...프랑스에서 입학하고자 하는 학교 입학 허가서 원본,사본 1매와 최종 학력 증명서나 프랑스에서 유효한 학력증명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여권****설명을 드 숙박시설대학의 숙박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대학(혹은 대학과 유사한 교육기관)의 학생으로 등록이 되어있어야 한다. CROUS에 문의하라. 파리에서는 국제대학기숙사(Cite Internationale de I'Universite)에 자국의 학생관이 있는 나라의 학생은 대학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Fondation Nationale de la Cite Intermatiionale19, Boulevard Jourdan 75690 Paris cedex 14프랑스식 삶의 방식 - 카페프랑스의 카페 문화는 좀 특별난 데가 있다. 다양한 문필가, 화가, 철학자, 정치가들이 이 카페에서 다양한 인간군상과의 토론과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파리의 카페 몇 군데를 순례하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세계사에서 한 부분을 장식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곳들일수록 가격은 엄청나게 비싼 경향이 있다.프랑스 전체를 통하여 현지의 카페들은 어떤 곳에 있던 그 도시, 마을의 최고 명물이 된다. 외따로 떨어진 지역일수록 하나밖에 없는 상점이 카페이기도 하다. 이런 카페에는 차양있고 이 차양은 간판 구실을 한다. Cafe, Boulangerie, 야채상, 신문가판대 등등의 간판글씨가 차양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프랑스 카페는 복잡한 사교 관계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주로 그 카페를 찾는 단골들이 무슨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카페에 현재의 사회상이 반영된다.사람들은 커피 한잔이나 적포도주 한잔 혹은 레모네이드같은 음료를 먹기위해서만 이곳을 찾지는 않는다. 하다못해 여행자들이라고 해도 카페밖의 현실적인 삶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그리고 전체 마을이나 도시의 한부분으로 뛰어들려고 이곳에 모이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에 모여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웨이터가 주문을 불러주는 것을 들어가면서 사람들과 섞이게 되는 것이다.파리같은 곳을 보면 프랑스에서는 카페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는 물론이며 전세계에서 모여든 극단이나 예술인들이 아비뇽 시민극장 외에도 도시 어느 곳에서나 매시간 쉬지 않고 축제라는 이름하에 각종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이 축제는 발레와 드라마 및 고전적인 콘서트 등으로 꾸며진다. '오프(Off)' '페스티벌은 노천극장에서 행해지며 민속 음악에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음악들이 선보인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연극을 비롯한 음악, 무대장식 미술 등 모든 몌술인과 방문객들로 도시 전체가 설레이는 술렁임을 가지고 살아 숨쉰다. 매일 한편 이상 씩을 관람한다 하더라도 행사기간 중 공연되는 모든 작품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행사가 크고 다양하다.'온(On)' 공연은 일류 극단의 무대로 당일 티켓을 구하기 힘들지만 실험극단의 표는 당일 구할 수 있으며 상영 1시간 전 정도부터 줄을 서면 구한다. 공통 티켓도 있는데 3개이상 보면 이득이다.아비뇽은 구 교황청(Palais des Papes)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로 가득찬 곳이다. 구 교황청은 50m가 넘는 10개의 탑이 벽으로 세워져 있는 방어용 요새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웅장하고 방대하게 만들어져 있다.또한 생 베네제 다리 종루에서 바라보는 론 강의 모습은 어스름 해질녁이 일품으로 꼽힌다.더구나 이곳에서 갖가지 조명에 비추인 공연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겨워지고 즐거워지는 기분은 페스티발 기간에 맞추어 힘들게 찾아온 값어치를 한다.▶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축제 :레 사르망뗄(Les Samentelles)프랑스 전역이 포도주의 산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론 지방의 보졸레(Beaujolais) 는 해마다 출시를 축하하는 축제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졸레는 550m의 포도밭과 평균 고도 300m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고장이다.마꽁(Macon) 과 리용(Lyon) 사이에 위치한 보졸레는 22,000헥타르에 달하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생산해내고 있다.보졸레 포도주는 세가지로 분류되는데, 보졸레(Beaujolais)와 보졸레 빌라쥬 (Beaujolais Vil Mode et du Costume Palais Gaillera 의상 장식 박물관18c에서 현대까지의 의상 발달과정을 전시. 현재는 유명인, 유명 디자인들이 기증한의상들로 현대의상을 전시하고 있다.가는 길 : Mareau 역= 사이요 도보관광 =트로카데로 역 ▶ Place du Trocadero (페르디낭 포크 제독 동상. 1878년 기계박람회 개최위해 건설)▶ Ave Paul Doumer▶ Rue Franklin ▶ 트로카데로 정원(트로카데로분수)▶사이요 궁전 (해양 박물관, 인류 박물관, 앙리 랑글루아 영화박물관,문화재박물관,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국립 사이요 극장)Avenue de Champs Elysees(상점가)와Rue St-Honore(궁전, 대사관, 호화 주택가)로 나뉨Arc de Triomphe 개선문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에 서 있는 높이 49m,폭45m의거대한문으로 나폴레옹1세가 전승 기념으로 1806∼1836년 건립.나폴레옹은 유배지에서 죽은 후 이 문을 통과 앵발리드묘지에 묻힘.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미술관과 비디오 시청은 free.주위의 Place Charles de Gaulle 샤를 드골 광장은12개의 거리로 뻗어 있다.가는 길 : Charles de Gaulle Etoile 역 (Champs Elysees 거리 출구)Avenue de Champs Elysees 샹젤리제 거리개선문 바로 앞쪽에 뻗어 있는 아름답고 화려한 거리. 고급 부티크의 천국이기도...Place de la Concorde 콩코드 광장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등 1343명이 처형된 곳.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여기서 보는 에펠 탑은 한 폭의 그림.가는 길 : Concorde 역La Madeleine 마들렌느 사원나폴레옹의 명령으로 1806∼1842년에 건립된 높이 19.5m, 안길이 180m, 52개의 코린트 기둥이 특색인 그리스 양식의 신전 (부르봉 궁전과 건축학적 측면에서 대조).그리스도의 세계와 승천하는 막달라역
파슬리 버터 소스를 곁들인 달팽이 요리{재료달팽이 40 g 양파 (0.5cm 사각 썰기) 20 g청/홍피망 5 g씩 호박 5 g마늘 (다진 것) 2 g 토마토 (씨 제거 후 1cm 사각) 20 g토마토 페이스트 5 g 모짜렐라 치즈 5 g신선한 배질 (Basil) 조금 소금, 후추 적당량파슬리 버터 소스 30 g-파슬리-백포도주-버터-소금 후추조리법1. 마늘은 다지고 호박, 양파, 청/홍피망, 양송이는 0.5cm 사각으로 썬다.2. 1을 볶다가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조금 더 볶는다.3. 2에 달팽이, 닭 육수, 토마토를 넣고 은근히 볶다가 배질을 넣고 조금 더 볶는다.4. 완성되면 불을 끄고 조금 식혔다가 모짜렐라 치즈를 넣고 잘 섞는다.5. 기름종이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모양틀을 놓고 속에 아주 얇게 썬 호박을 깔고 4를2cm정도의 두께로 넣고 홀랜다이스 소스를 뿌려 모양 틀을 제거하고 오븐에서 굽는다.6. 완성된 요리를 접시 중앙에 담고 파슬리 버터 소스를 뿌려준다.파슬리 버터 소스 (Parsley Butter Sauce)1. 파슬리를 잎만 따서 믹서에 곱게 간다.2. 팬에 백포도주를 넣고 조리다가 파슬리를 넣고 조금 더 볶다가 소금, 후추로 밑 간을조금 하고 버터를 넣어 농도를 조절한다.주의사항1. Tartlette는 Pie를 말한다.2. 달팽이는 1인당 4개정도면 된다.3. 기름종이에 버터를 바르지 않으면 종이가 탄다. 그 위에 호박을 놓는 건 종이와 파이가 잘 분리되라고 놓는거다.4. 모짜렐라 치즈를 너무 빨리 넣으면 처음부터 다 녹아버린다.5. 내용물이 다 익은 것 이므로 홀랜다이스 소스가 갈색빛이 나면 오븐에서 빼면 된다.6. 파슬리를 믹서에 갈 때 물을 조금 넣어주면 더 잘 갈린다.프랑스식 양파 스프{2재료양파 (얇게 썰기) 150 g 그레어 치즈 또는 모짜렐라 치즈 20 g마늘 (다진 것) 5 g 바게트 빵 1 PC파슬리 (다진것)적당량 쇠고기 육수 200 ml식용유 5 ml 백포도주 20 ml버터 5 g 소금, 후추 적당량조리법1 양파를 얇게 채 썬다.2 팬에 식용유를 조금 넣고 양파를 볶는다.(중불)3 갈색이 나면 버터를 넣고 조금 더 볶아준다.4 다른 냄비에 마늘을 버터와 함께 볶다가 완성된 양파와 백포도주, 쇠고기 육수, 소금,후추를 넣고 끓인다.5 완성되면 승볼에 담고 바게트 빵(또는 마늘빵)을 올려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뿌리고 살라만더(Salamander)나 오븐에 살짝 구워 파슬리를 뿌려준다.주의사항1 식용유와 버터를 너무 많이 넣으면 완성 후 기름기가 위에 뜨므로 조금만 사용한다.{오렌지, 닭 가슴살로 맛을 낸 시금치 샐러드재료닭 가슴살 30 g 오렌지 쥬스 10 ml시금치 잎 80 g 양파 (다진것) 5 g오렌지 (과육만 썰기) ½ PC 마늘 (다진것) 5 g블랙 올리브 (얇게 썰기) 4 PC 베이컨 1 PC꿀 30 ml 토마토 (씨 제거 후 1cm사각) 1/8 EA양송이 2 PC 소금, 후추 적당량레몬 쥬스 10 ml 검은 통후추 부순것 약간조리법1. 베이컨을 팬에 구워서 베이컨 기름을 받아낸다.2. 닭 가슴살에 소금, 후추를 뿌려 절여두었다가 바짝 구워서 길게 찢는다.3. 양파, 마늘, 베이컨 기름, 꿀을 섞어 소스를 만들어준다.4. 오렌지, 양송이, 닭 가슴살, 시금치잎, 레몬 쥬스, 오렌지 쥬스, 3의 소스를 뿌려무치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5. 접시에 담고 토마토, 검은 통 후추로 장식한다.주의사항1. 양송이는 약간 두툼하게 썬다.2. 야채와 소스를 섞으면 야채가 숨이 죽으므로 서브 직전에 무쳐서 낸다.3. 소스는 약간 새콤 달콤해야 한다.홀랜다이스 소스를 곁들인 바다 가재 요리{재료바닷가재 꼬리부분 1 PC 생크림 70 ml양파 (다진것) 10 g 굵게 갈은 양겨자 (Pommery Mustard) 8 g마늘 (다진것) 5 g 그레어 치즈 (Gruyere Cheese) 10 g백포도주 10 ml 홀랜다이스 소스 20 ml브랜디 10 ml 토마토 (씨 제거 후 1cm사각형 썰기) ¼ EA양송이 버섯 (4등분) 20 g 청경채 2 PC버터 20 g 소금, 후추 적당량조리법1. 바다가재 꼬리는 껍질을 제거하고 1cm 주사위모양으로 썰어놓는다.2. 버터를 두른 팬에 양파, 마늘을 볶다가 양송이를 볶고 1을 넣어 소금, 후추로 간을한다.3. 2에 백포도주, 브랜디를 넣고 불을 붙여 비린 맛을 날려주고 생크림을 넣고 조린다.4. 굵게 간 양겨자, 그레어 치즈를 넣고 마지막 간을 하고 불에서 내려 홀랜다이스소스 를 넣어 잘 버무린다.5. 청경채를 데쳐서 버터를 두른 약간 볶다가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6. 접시에 4, 5를 담고 바다가재 머리(껍질)로 장식하고 살라만더(또는 생선굽는 그릴)에넣어 색을 낸다.7. 완성 후 토마토를 뿌려준다.가재 손질법1. 100℃ 끓는 물에 데쳐서(약 20초정도) 바닷가재가 붉은색을 띄면 꺼내어 찬 물에살짝 식힌다.2. 몸통과 꼬리를 분리하고 큰 집게 다리도 분리한다.3. 머리는 잠수함 헤치를 열 듯이 몸통 쪽의 머리를 까고 골(Corail)을 빼내고 모든 내장을빼낸다. 그리고 남은 머리의 껍질은 장식으로 쓴다.4. 꼬리는 배 쪽에 얇은 껍질을 가위로 도려내어서 고기를 빼내고 등 쪽 껍질은 장식으로쓴다.5. 큰 집게 다리는 칼등으로 쳐서 껍질을 제거하고 고기만 빼낸다.주의사항1. 굵게 간 양겨자는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어 일반 양겨자를 사용해도 된다그레어 치즈도 모짜렐라 치즈로 대체해서 사용한다.2. 생크림을 넣고 조릴 때 너무 오랫동안 조려서 바다가재 고기가 완전히 익어버리면안된다.3. 홀랜다이스 소스를 넣을 때 꼭 불에서 내려 버무려야 한다. 소스는 살라만더에서약간의 색만 나면 된다.4. 바다가재 꼬리(껍질)속에 내용물을 넣고 바다가재 모양을 만들어 접시에 담아 서브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고객의 편리함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빼고 위와 같은조리 방식으로 많이 한다.5. 홀랜다이스 소스 조리법은 소스류 부분에 가면 있습니다.{카라멜라이즈한 사과와 허니 무스재료(3인분)허니 무스 구운 사과- 생크림 130 ml - 사과 1 EA- 꿀 70 g - 설탕 40 g- 우유 130 ml - 정제 버터(Clearifled Butter) 20 g- 계란 노른자 2 EA - 종이형 젤라틴 2.5 PC사과 소스- 사과 쥬스 100 ml- 설탕 50 g- 옥수수 전분 조금허니 무스 (Honey Mousse)1. 찬물에 젤라틴을 넣고 불린다.2. 믹싱볼에 계란 노른자, 꿀을 넣고 색이 밖은 빛을 낼 때까지 거품기로 쳐주고 뜨거운우유를 넣고 잘 섞어 불린 젤라틴도 넣고 완전히 섞은 후 빨리 식힌다.3. 다른 믹싱볼에 생크림을 넣고 거품기로 쳐서 휘핑 크림을 만든다.4. 2와 3을 섞어 모양틀에 담고 냉장 보관해서 굳힌다.구운 사과 (Caramelised Apple)1. 사과와 설탕을 팬에 넣고 은근히 익히다가 정제 버터를 넣고 약간 색을 내준다.사과 소스 (Apple Sauce)1. 냄비에 설탕을 넣어 녹이고 사과 쥬스를 넣고 끓인다.2. 옥수수 전분(물에 푼 것)을 조금 넣어 농도를 맞춘다.카라멜라이즈한 사과와 허니 무스(Honey Mousse With Apple Sauce And Caramelised Apple)1. 접시에 사과를 2∼3 PC정도 놓고 그 위에 무스를 담고 소스를 뿌려준다.주의사항1. 휘핑 크림을 만들 때 90%정도만 친다.2. 단걸 싫어하면 꿀의 양을 줄여도 된다.3. 허니 무스의 재료양은 공식이므로 암기 할것.4. 모양틀에 있는 무스를 뺄 때는 억지로 빼지 말고 모양틀을 양손으로 살짝 비비면서돌리면 모양틀 표면의 젤라틴이 약간 녹아 잘 빠진다.5. 대부분 계란 노른자만 넣지만 흰자도 거품기로 쳐서 쓴다.6. 정제 버터는 버터를 약 불에 올려서 녹이면 거품이 뜬다. 거품을 제거하고 투명한버터를 건진다.{케이준 스파이스로 맛을 낸 닭고기 샌드위치재료닭 가슴살 1 PC 양파 (둥글게 썰기) 3 PC케이준 스파이스 (Cajon Spice) 10 g 양상추 2 PC아메리칸 치즈 (일반 치즈) 2 PC 마요네즈 조금토마토 (얇게 썬것) 2 PC 바게트 빵 4∼6 cm피클 (얇게 썬것) 2 PC조리법1. 닭 가슴살은 껍질을 벗겨 반으로 포를 떠서 케이준 스파이스에 묻혀 약 불에 구워서색이 나면 오븐에 넣고 굽는다.2. 바게트 빵은 4∼5cm 정도로 잘라 반을 갈라(2장을 만듬) 마요네즈를 발라둔다.3, 빵에 양상추를 깔고 닭고기, 토마토, 양파, 치즈를 올려 오븐에 넣어 치즈가 살짝 흘러
☆신고전주의☆신고전주의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하여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에 반발하고 회화, 조각, 건축 전반에서 고전 양식을 부활시킨 사조이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본보기로 내용보다 형식을,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한 이 사조는 낭만주의의 출현과 함께 19세기 초에 막을 내렸다.1738년 로마 시대의 마을인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이 발굴된 데 이어, 1748년에 폼페이(Pompeii)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계기로 고전적 또는 고전적으로 보이는 물건들에 대한 유행이 시작되었다. 또한 동방으로의 여행이 잦아지면서 그리스 문화에 대해 높아진 관심도 고전주의의 부활을 부추겼다. 이러한 고대에 대한 애호의 분위기 속에서 학자들은 저술 활동을 통해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독일의 미술사가 빈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68)은 『그리스 회화와 조각에 있어서의 모방에 관한 연구(Gedanken uber Nachahmung der Griechischen Werke)』(1755)와 『고대 미술사(Geschichte der Kunst des Alterthums)』(1764)를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미 자연의 이상화를 이뤄낸 그리스 미술을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전 유럽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혁명 전후 프랑스 사회 전반에는 고대에 대한 동경이 풍미하였다.고전주의는 본래 이탈리아 토양에서 자란 것이었지만, 신고전주의의 영향은 주로 프랑스에 집중되었다. 신고전주의의 질서와 고귀함이 당시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개진한 이성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가치들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은 주제에 있어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교훈적인 역사, 신화를 채택하였으며, 구성에 있어서는 고전 양식과 마찬가지로 겹겹이 단계가 있어야 하며,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간격에도 질서가 있어야 했다. 색채보다는 구성, 선을 중시하였으므로 묘사력과 데생력이 강조되었다. 마무리의 처리가 중요하게 여겨대혁명적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를 발표하였다.이 작품은 고전주의의 이상을 형식적과 내용면에서, 순수하게 실현한 최초의 작품이었다.다비드는 자코뱅당원으로서 프랑스 혁명운동에 적극참여하고 마라의 죽음 등 혁명사건을 취재한 작품도 그렸다.혁명이 끝난 후 나폴레옹의 궁정화가로 나폴레옹 대관식을 비롯한 영웅을 찬미한 작품을 남겼으나,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왕조가 부활하자 앞서의 혁명때 국왕의 사형에 투표한 책임을 추궁당해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가서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다.다비드는 고대의 제재와 내용을 이상으로 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구성 뚜렷한 윤곽 조각과 같은 찬 느낌의 색조 등을 추구하였으며, 앵그르에 의해 그 완성을 보았다.●작품감상{아들들의 시신을 브루투스에게 인도하는 하급 관리들[Les Licteurs Rapportent a Brutus le Corps de Ses Fils]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89회화 / 캔버스에 유채323 x 422 cm루브르 박물관 , 파리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1789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특별히 정치적인 선전을 계산하고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혁명 정신에 입각한 도덕적인 의식을 계몽하려는 회화로 읽혀질 수 있는 작품이다.타르퀸 왕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로마에 공화정을 세웠던 브루투스는, 아들들이 자신이 세운 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 그림은 브루투스의 관리들이 처형된 브루투스의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오고 그 가족들이 이에 슬픔에 빠져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자식들을 죽이라고 명한 브루투스는 화면 왼쪽에 그늘에 가려져 있다. 한 팔을 괸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은 죄의식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브루투스의 감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특히, 브루투스가 머리 쪽으로 손을 가져간 포즈는 감정보다는 머리의 이성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이 그림은 다비드가 1784년에 제작한 다른 작품인 와 매우 흡사한 구도를 지니고 있다. 고대 로마 이 작품은 사실감, 힘찬 형식의 단순성, 영웅적인 주제 강조 등으로 이후 미술사에 위대한 전환점이 되었다.{마라의 죽음[Marat Assassine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93회화 / 캔버스에 유채165.1 x 128.3 cm왕립미술관 , 브뤼셀다비드의 작품 는 회화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희생과 명예로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정치적 선전 도구로 발전하였고, 이 그림이 완성된 후 10년이 못되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게 된다. 이 그림을 주문한 왕과 왕비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다비드의 혁명 동지였던 장 폴 마라는 목욕탕에서 샤를로트 코르테라는 여인에게 암살을 당했다.이 그림은 다비드가 마라를 추모하며 그렸던 작품이다. 무엇을 쓰고 있던 중에 살해당한 모습으로 한 손에는 펜이 그대로 들려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코르테가 면회를 요청할 때 가지고 온 청원서가 피묻은 채 쥐여 있다. 가슴을 난자 당해 피가 흐르는 마라의 시체와 음울한 색채의 벽은 살인의 비극성을 폭로하며, 혁명을 완수하려다가 죽은 영웅적인 자세가 연상될 만큼 비장한 구도를 지니고 있다.나무 궤짝에는 "마라에게 바친다(A Marat David)" 라는 글이 비문처럼 새겨져 있으며, 가슴과 손에 난 상처, 길게 늘어진 팔, 그리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마라의 방은 혁명가의 순수한 모습을 상징하는 도구처럼 사용되었다. 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의 나 라파엘로의 에서 보여지는 순교자의 고통과 아픔, 희생을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다비드는 화려하고 사치스런 로코코풍을 벗어나 강하고 남성적인 영웅을 선택하면서, 마라를 통해 시민적인 헌신과 자기 희생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시키고 있다.{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L'Empereur Napoleon I et Couronnement de l'Imperatrice]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회화 / 캔버스에 유채621 x 979 cm루브르 박물관 , 파리18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쳤다.긴 의자에 앉아 있는 레카미에 부인은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다. 낮은 의자, 의자의 형태와 합치된 여인의 자세, 그리고 왼쪽으로 보이는 길고 가는 스탠드 등, 모델의 자세와 모든 소품들이 엄격하고 고요한 신고전주의 양식에 잘 부합되고 있다. 정면을 향해 시선을 향한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부인의 얼굴은 앵그르의 흐르는 듯 유려한 선을 연상시킨다. 보통 대작에서는 보기 드문 반짝거리는 붓터치, 섬세하고 정확한 기법 등이 다소 건조한 고전 양식에도 불구하고 인물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수직과 수평의 구도가 사물들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조가 독특한 이 그림은, 그의 다른 작품들 , 과 더불어 다비드 회화의 주요한 특징과 화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정작 주문자였던 레카미에 부인은 이 작품에 불만을 느껴 2년 후 제라르에게 다시 초상화를 주문하였다고 한다.장 오귀스트 D. 앵그르Jean-Auguste-D.Ingres(1780-1867)앵그르가 화단에 입문하던 시기의 프랑스 회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삼는 고전주의가 성행했다.이 같은 시대적인 배경과 맞물려 앵그르는 고전주의 화풍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고, 다비드의 뒤를 잇는 고전주의의 대표 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젊은 시절부터 44세가 되던 해까지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층 성숙하고 고조시킬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얻었다.당시의 고전주의 회화 양식은 형식에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인간적인 감성이 싸늘히 식어 있었다. 하지만 앵그르에게는 현실에 대한 집착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 또한 놓치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특히 여인들의 초상이나 나체를 통해 드러나는 명쾌한 형식과 우아한 자태. 이는 그만이 가질 수 있었던 독특한 표현의 영역이었다.소묘 부분에서 앵그르는 미술의 역사상 최고의 화가로 손꼽힌다. 정확한 소묘를 바탕으로 한 앵그르의 예술에는 비례와 균형, 조화라는 고전적크 앵그르[Jean-Auguste-D. Ingres]1814회화 / 캔버스에 유채91 x 162 cm루브르 박물관 , 파리이 작품은 1819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같은 유파인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혹독한 평가를 받았는데, 에 그려진 인물의 왜곡된 인체 묘사가 그 원인이었다. 해부학적인 정확한 소묘의 추구는 르네상스 시대의 다 빈치 이래 계속 이어져 왔는데, 앵그르의 인체는 매너리즘 화풍을 연상할 만큼 길게 늘어진 척추와 좁은 어깨, 커다란 골반과 작은 발로 묘사된 기형적인 것이었다. 후에 이 그림은 현대적 양식에 고전적 전통이 잘 결합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오달리스크"라는 말은 터키 궁의 궁녀를 뜻하는 용어로, 앵그르는 2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란 작품을 만들 정도로 "오달리스크"에 대해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여인의 주변에는 매트리스에 깔린 두터운 갈색 모피, 무겁게 늘어진 짙은 청색 커튼, 화려한 빛깔의 긴 담뱃대, 수증기를 뿜어내는 실내용 스토브, 황금색 담요 등이 둘러싸여 있다.후궁들의 방을 뜻하는 하렘은 엄중한 감시와 금기의 장소로서 외부로부터 닫힌 공간인데, 이 공간에서 벗은 몸을 틀어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의 유혹적인 표정은 밀실로부터 개방된 바깥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신비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당시는 프랑스가 근동 지방으로 세력을 뻗어나가는 시기였으며, 앵그르는 이 그림을 통해 터키 풍물에 대한 관심과 취미를 반영하는 소도구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La Baigneuse Valpincon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 Ingres]146 x 97 cm회화 / 캔버스에 유채1808루브르 박물관 , 파리이 그림은 앵그르가 로마로 유학을 떠난 후 2년이 지나 완성한 작품이다. 앵그르의 회화 기술은 로마에서 기초가 다져지고 신고전주의 화풍의 골격이 완성되는데, 세밀한 고전적 묘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를 보는 다.
☆프랑스 회화의 역사☆엄밀한 의미에서 프랑스 회화의 역사는 중세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회화의 본격적인 기초는 한편으로 비잔틴 미술,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로부터의 고대 화풍을 동시에 섭취하면서도 고대 고전양식에 기울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고전적 그리스도교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 회화는 고대풍(古代風)의 인간상을 인간감정이나 사상의 전달자로서 종교적 설화나 교조를 그 속에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인간, 기타 자연의 모습에 대한 관심을 높임과 아울러 회화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그러나 중세의 회화는 거의 대부분 그림들이 ‘사본(寫本:miniature)’에 국한되었으며, 중세 말기에 와서 그 화풍은 고딕 말기의 국제우아양식(style international courtois)이 되었다.프랑스 회화는 15세기까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푸케의 회화는 이 양식의 마지막 개화(開化)라고 할 수 있다. 중세적인 양식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근세 프랑스 회화가 정립된 시기는 프랑수아 1세와 그 후계자들에 의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적극적인 도입과 때를 같이한다.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마니에리슴(manirisme) 화가 프리마티치오와 로소를 초빙하여 퐁텐블로성을 장식하게 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파가 퐁텐블로파(Ecole de Fontainebleau)이다.이 파의 화가들은 그들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주제나 관능적인 주제에 심취하였으며,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미와는 또다른 감각적이고도 우아한 양식을 창출해냈다. 17세기의 회화는 우선 퐁텐블로파의 관능적이고 이교적인 마니에리슴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며, G.de 라투르, P.de 샹페뉴, 루이 르냉 등 일군의 ‘현실의 화가’들이 등장한다.그러나 17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고대 숭상의 기운이 풍미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성과를 동화시키면서 프랑스 고전회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주로 로마에서 활동한 푸생과 C.로랭으로서, 그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찬연히 빛나고 있다. 이 두 거장 외에도 르 쉬외르, 르 브룅, 미냐르 등이 배출되어 왕후(王侯)의 궁전 ·저택을 장식하는 대작의 신화화(神話畵)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등을 그려 역시 고전적 회화양식의 달성에 힘썼다.17세기는 유럽 전역에 걸쳐 바로크 양식이 팽배한 시대였으나, 유독 프랑스만은 1648년에 창설된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가 중심이 되어 보다 합리적인 미술신조를 추구하면서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죽음과 함께 17세기의 지나치게 엄격하고 교조적인 고전주의 회화신조에 대한 반동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여 18세기 초에 이미 와토의 ‘사랑의 향연화(響宴畵)’의 향기 높은 시정(詩情)에 의해 감각적인 환락을 구가하는 로코코 회화 시대의 막이 열린다. 부셰는 그 향락적인 감각성에다 귀족취미를 가미하여 신화적인 주제의 나체 여신군상들을 다루었고, 프라고나르는 자유분방한 필치로 감미로운 정경을 그려냈다.이와 함께 서민의 일상적 생활 정경과 취미를 그대로 회화에 반영하는 작품도 나타났으며, 그 대표적인 화가 샤르댕은 깊은 관조(觀照)와 애정으로 격조 높은 정물화와 실내화(室內畵) 등을 그렸다. 그러나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시대를 맞이하면서 회화도 크게 전환하였다. 신고전주의의 탄생이 그것이다. 로마에서 고대 고전의 풍토 속에서 자란 L.다비드는 고대 로마의 영웅주의를 칭송한 작품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와 함께 귀국하여 명실공히 신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었다.다비드는 로코코 회화의 무절제를 절대적으로 배격하고 고대 고전의 규범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혁명 시대에는 그 역사적 정경을 화폭에 옮겼고, 제정시대에는 나폴레옹의 수석 화가로서 황제의 업적을 대화면에 담았다. 일반적으로 신고전주의 회화는 고대 조각을 본보기로 삼아 데생과 형태 위주의 차가운 형식주의에 빠질 위험이 다분히 있었으며 그것이 결국은 아카데미즘을 낳게 하였다.그러나 다비드는 투철한 사실주의 정신에 의해 그것을 극복하였다. 다비드의 문하생으로서 신고전주의의 대를 이은 앵그르는 보다 유연한 선의 율동과 색채의 조화를 통해 순수한 조형미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같은 다비드의 문하생 가운데 A.J.그로는 전쟁화(戰爭畵)와 같은 극적인 소재를 강렬한 색채 효과와 함께 다루어 다음 세대의 낭만주의를 예고하였다.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는 제리코, 들라크루아의 출현으로 개화한다. 제리코의 대작 《메두사호의 뗏목》(1819)은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가 극적이거니와 그것을 격한 명암의 대비 아래 동세(動勢)에 넘치는 구도로 화폭에 담고 있다. 아깝게도 요절한 제리코의 뒤를 이어 낭만주의 회화를 대성시킨 사람이 들라크루아이다.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 고도의 교양으로 중세와 동방(東方)세계, 또는 문학작품에서 영감의 원천을 즐겨 찾았고, 데생이나 형태보다는 색채 자체의 표현력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였다.여기에서 신고전주의 대 낭만주의와의 숙명적인 대치는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실질적인 봉화라 할 수 있는 《키오스섬의 학살》은 고전파에 의해 ‘회화의 학살’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고, 그 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낭만주의 정신은 일종의 고전적 경지를 느끼게 하는 원숙성을 보여주었다.이와 같은 낭만주의적 성향은 다시 일련의 풍경화로 이어졌다. 1830년대부터 파리 근교 바르비종 마을에 일군의 풍경화가들이 정착하여 그들은 ‘바르비종파(cole de Barbizon)’를 형성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화가는 T.루소, 뒤프레, 도비니, 코로, 밀레 등이며, 특히 코로의 풍경화는 사실주의를 반영하면서도 그 풍경을 낭만적인 시정의 세계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밀레는 가난한 농민의 전원생활을 경건한 종교적 감정으로 묘출하였다. 한편, 도미에는 당시의 정치 ·사회상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석판희화(石版戱畵)와 함께 현실에 대한 냉철한 통찰과 예리한 사실적 묘사에 의해 이미 사실주의의 기틀을 잡아놓았다.그리고 고전주의적 이상과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다같이 거부하고, 또 이에 도전한 화가가 쿠르베였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주의는 “자기가 사는 시대의 풍습 ·풍속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사실주의는 보다 선명한 색도(色度)를 화면에 도입한 마네로 이어지고 다시 인상주의로 전개된다.모네, 피사로, 시슬레, 르누아르, 세잔 등에 의해 대표되는 인상파들 중에서 특히 모네는 날카로운 색채 감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순수한 광선의 현상으로 포착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쿠르베까지 지켜져 왔던 자연의 물질적 실재성이 사라지고 르네상스 이래의 자연관이 마침내 붕괴되었다. 사물 고유의 물체감마저 증발시키는 광선과 색채의 신기루로부터 회화에서의 견고한 형태와 구도를 되찾게 한 화가가 세잔이었다. 그는 인상파의 시각적 감각주의에 불만을 품고 자연을 자신의 엄격한 조형의지로 통어(統御)하였다. 즉, 자연에서 가장 본질적인 구성의 골격을 추출해내고 그것을 하나의 엄연한 조형질서 속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화수분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이 소설 역시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난 후 내 생각은 달라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소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제목이 화수분 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화수분이란 단어의 뜻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래서 이번을 계기로 해서 뜻을 찾아보니 「화수분 :재물이 자꾸 생겨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라고 되었었다. 분명 이 뜻은 소설 내용은 정반대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뜻을 알고 나서 비로소 작가가 소설 속의 상황과는 대조되는 상황을 통해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 당시 시대상이 반영돼 소설인 만큼 반어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서민들의 욕망이 불가능하다고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소설 속에 나타나있는 가족간의 사랑, 휴머니즘, 가난으로 인한 역경, 고통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나의 눈물샘을 자극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나를 그 상황 속으로 빨아들인다 고나 할까...아마도 소설 속의 비극적 상황이 연민을 느끼게 해서 그런 것 같다.죽어 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희생 해서라도 아이를 지키겠다는 의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이 비참한 사람들을 소재로 사용해 이 글을 쓰지만 그들에게서 인간애란 휴머니즘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 이 부분에서 작가의 인도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이 소설은 소설 속에 하나의 소설이 더 있는 액자구성으로 되어있으며 화수분가족들이 살고있는 집의 주인인 나 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1인칭 관찰자시점과 부분적으로 화수분이 보여주는 1인칭 주인공시점 ,어멈과 여동생 S의 시선을 빌리는 전지적 작가시점, 이렇게 3개의 시점이 잘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먼저 주인공인 화수분은 가난하지만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 한 다기보다는 그 가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던 것일까? 화수분은 참을성이 많고 강한 희생정신과가족에 대한 사랑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가난 때문에 자식마저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고통이었지만 참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화수분은 잘 견디었고 또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했다. 이런 희생정신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참고 견디는 우리 민족들의 모습을 화수분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 는 화수분 가족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듯 하고, 그래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입장임에도 그들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은, 작가의 자연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막연한 연민과 동정심만을 가지고는 현실적인 해결은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이 소설에는 가난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서술될 뿐이며 그것도 '나'에 의해서 거리감을 두고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난 때문에 화수분이 괴로워한다거나 더 타락한 상황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에게 있어 가난은 그의 모습이 초라하듯이 늘 숙명처럼 붙어 다니는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가난이 삶의 양상을 바꾸어 놓는다는 식의 환경 결정론적 해석은 이 작품에 적용하기 힘들다. 부분적으로 두 딸의 성격적 결함이 가난 때문임이 암시되지만, 그 딸들이 이 작품의 주요인물은 아니고 '철부지'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므로 환경에 의한 인간적 손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부부가 살려낸 옥분이(둘째딸)의 생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두 부부의 희생의 결과로써 비극의 절정을 표현 함으로써 연민을 자아내는데 그것은 이 아이가 살아남으로써 다시 시작될 또 다른 세상에서의 가난을 의미 하기도하고, 또는 부부가 죽기까지는 고난의 시대 였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옥분이가 살아남으로써 새 세대의 희망을 키워 갈 수 있다는 2가지로 해석할 수 가있다.이 소설이 문학사에 끼친 영향이 크다. 먼저 자연주의 경향의 확립했다. '화수분'은 1920 연대 소설의 사실주의가 정착되던 1925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경험적인 사실에 대한 관련과 계급적인 현실에 대한 관심이 가난한 생활의 문제에 모아지던 우리의 사실주의 문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주의 소설을 본격화 시켰다. 둘째는 단편 소설의 특징 완성시켰다. 통일된 인상, 단일한 효과, 경이적인 모멘트, 적확한 묘사, 치밀한 구성 등 단편 소설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인도주의 사상의 기조이다. 전영택의 작품 속에는 인간 사이의 따뜻한 인정과 동정 어린 손길이 언제나 들어 있어, 부정적이고 힘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내용 전환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화수분에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설 속에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으로 인해 독자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처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화수분 은 작가의 주관적 개입이 없이 객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작품의 비극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또 이 소설은 일제시대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짐작할만한 단서가 별로 없다..오직 나의 상상으로서만 짐작할 뿐...그러나 자식까지 남의 손에 넘겨주어야 할만큼 가난하고, 일자리를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보아서 일제에 의하여 극도의 피해를 입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으며 암담한 사회적 환경을 암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배경인 극심한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밤은 단순히 풍경으로 그치지 않고 날카롭고 차가운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비극적인 결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또이들 부부가 줘어간 고개라는 장소는 이들의 가난과 시련의 절정을 나타내기 위한 장소인것같다.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화수분 일가의 모습이 가난에만 초점이 맞취져서 항상 불행하고, 처량하게만 비춰지는점,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항상 불행한 것은 아닌데 웃는다는 표현은 단 한번도 나오질 않고, 우는 모습이나 아픈 모습, 가족간의 불화만을 표현하여 화수분가족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려고만 하고 어떤 사건의 전환점 같은 것이 없는것같다. 두번째는 강화사람의 집으로 간 귀동이(큰애)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지 않아서 좀 궁금했다. 가난한 화수분 가족과 함께 살아 갈 때는 못생긴 데다 마음씨마저 고약하고 고집불통 이었던 아이가 부자집에 가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정말 아이의 성격 때문이 아니고 가난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인지 알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