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로서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뭉크는 아버지의 우울한 성격, 다섯 살 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 좋지 못한 뭉크 자신의 건강 상태, 두 살 위의 누이 소피의 죽음 등 뭉크의 유년시절을 가득 채운 죽음의 공포와 불안은 평생 동안 뭉크를 사로잡았고, 뭉크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항상 되돌아가는 '불행했던 기억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기억들'과 자신의 병적인 상태는 오히려 그의 수많은 걸작들을 생산해내는 밑바탕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여자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의 이미지 '팜므파탈'을 표현하고 있다.Edvard Munch(1863~1944)종류 : 템페라화크기 : 83.5x66cm제작연도 : 1893년소장 : 오슬로 뭉크미술관"나는 두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일몰을 보고 있었다.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빨갛게 바뀌었다.나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다리 난간 가까이 갔다.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검푸른 피오르드와 도시 위에서는 피와 혀같은 노을이 물들어 있었다.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나는 남았다.공포에 떨면서...그리고, 나는 풍경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큰 외침을 들은 것이다."뭉크 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번째 그림이 있을 것이다.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 다리 위로 그로테스크한 하늘과 산이 누글거리는 '절규'. (뭉크는 화가이며 판화가이다.)뭉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절규는 흐르는 듯한 붓놀림과 어둡고 강렬한 색채, 뒤에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으로 인한 묘한 공포함이 어우려져 있는 작품이다.다들 알다시피 뭉크는 정신 분열증을 겪고 있었는데 그러한 자기 고백이 바로 이 작품에서 묻어 나오고 있다.‘절규’는 1893년 그려졌는데 뭉크는 어느날 산책을 하던 중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영원한 외침을 느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그림으로 남긴 것이 ‘절규’이다.이 그림의 특이한 점은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영원한 외침’을 듣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림 속 인물이 귀를 막고 있으며 들려오는 소리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Edvard Munch(1863~1944) - 사춘기내가 좋아하는 뭉크의 '사춘기'란 작품이다. 갑자기 눈을 뜬 소녀가 시트의 붉은 자국을 발견하고는 놀랍고 부끄럽고 불안한 나머지 떨고 있다. 바로 초경의 두려움이다.뭉크는 사춘기 여성의 애뜻하면서도 무언가 움츠려 들어있는 이제 막 성에 눈을 뜬 불안함까지 이 작품에 쏟아 붓고 있다.앞에 가지런히 모은 손은 자신감 없고 무언가를 감추고 싶어 하는 사춘기의 여성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고 뭉뚱그려진 그림자를 통해 이 시기의 불안함 감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찌 이렇게 여성의 감성을 적나라하게 나타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여성이라면 한번쯤 겪게 되는 모습의 내가 바로 이 작품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어쩌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내 자신처럼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Edvard Munch(1863~1944) - 마돈나내가 좋아하는 뭉크의 또 다른 작품.. 마돈나(석판)이다. 그가 "여자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죽음과 동등시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뭉크에게 있어서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이란 수태하여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바탕을 발전시킨 모티브가 이 마돈나이다.뭉크는 석판 작업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 또한 유화가 있으나 석판으로도 작업을 하였다. 난 유화보단 이 작품이 더욱 끌린다. 유화작품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색채와 마돈나 주위의 테두리 그리고 태아의 모습일 것이다.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는 두가지라고 한다.어머니 같은 자애로움의 따뜻한 이미지와 창녀에서 느낄수 있는 타락적인 이미지로서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단다.성교를 통해 느껴지는 성적인 절정은 죽음과 결부되어있고 절정에 다다를수록 이성이 희미해지고 무의식에 가까워지면서 남자들은 죽음을 느낀다고 한다.
서론갑신정변은 개화파 인사들이 그들이 구상한 국정개혁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1884년 12월 4일 밤 정변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갑신정변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키고자한 정변의 동기 및 경위에 비중을 두어왔다. 그러나 동기와 경위 못지않게 그 사건이 후세에 끼친 영향이나 결과도 중요하기에 필자는 갑신정변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과 결과에 중점을 두고 갑신정변을 재평가하고자 한다.본론 118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는 명치유신이후의 일본처럼 내정을 개혁하고 서구의 기술문명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개화당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 세력은 개화사상을 적극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화파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또한 청나라가 대원군을 납치하고 군대를 서울에 주둔시키며 조선의 내정에 마구 간섭하고 있었는데 이는 개화당 인사들에게 매우 치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개화파지도자들은 조선 내정을 혁신하고 조선이 대외적으로 완전히 자주독립할 수 있는 정책을 구상하였다.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원군의 송환과 중국에 대한 조공의 의례를 폐지. 문벌폐지와 백성들의 평등권을 인정. 지조법의 개혁과 탐관오리를 처벌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여 나라의 재정을 안정케 함. 지방의 환상의 영구한 면제. 근대적인 경찰제도 도입시켜 법질서 확립. 군대를 재조직하여 근대화 함. 모든 재정을 호조에서 단독으로 관장케 하고 궁실 등 다른 모든 재정관청 폐지. 모든 법령은 내각의 의결로써 결정 반포할 것. 모든 정책은 의정부와 육조가 맡아서 하며 그 밖에 필요 없는 관청은 폐지함. 등이다.그러나 그들이 구상한 정강은 당시의 보수 세력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어서 그들은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그들이 구상한 개혁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1884년 12월 4일 밤 정변주모자들은 우정국 건물 낙성을 축하하는 만찬회를 이용해 부근 민가에 불을 지르고 창덕궁 안팎에 폭약을 폭파시켜 위험분위기를 조성하고 이 모든 난동이 청나라 군대가 일으킨 거라고 국왕을 속여 고종을 자신들의 포로로 만드는 한편 정적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상해를 입혔다.그들의 계획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이는 청의 세력을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개혁파들은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키 위해 일본군대에 의존했는데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은 10대 1 이상의 비율로 중국이 우세하였던 것이다. 정변 3일째 되는 날 청의 군대가 개화파와 일본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일본이 패배를 시인하고 도망침에 따라 갑신정변은 종말을 맞이했다. 겨우 지도자 몇 명만이 일본에 망명해 목숨을 건졌고 거의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본론 2어떻게 보면 갑신정변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있던 것이지만 그러한 갑신정변이 지금까지 높이 평가된 이유는 개화파들이 의도한 목적이 고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갑신정변이 불러온 결과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 갑신정변이 빗어낸 결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첫째, 개화파의 목적이 고귀하였다 하더라도 개화의 과정으로서 폭력의 수단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처참하였기에 그 폭력이라는 방법과 개화라는 목적이 동일시되어 개화사상마저 백성들에게 참혹한 것으로 비치게 되었다. 개화파들은 정변을 일으킴과 동시에 고종을 끌고 다녔고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국왕을 놓고 피신해 버렸다. 이는 개화사상이라는 것은 삼강오륜을 저버린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증명시킨 셈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갑신정변은 백성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개화사상을 왜곡하고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정변은 극악무도의 죄악으로 단정되고 자연히 그들의 사상마저도 역적의 사상이 되었다. 따라서 아무도 개화사상을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둘째, 개화운동이 성공하려면 고종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지만 갑신정변은 정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개화운동에 동조하고 있던 고종을 개화사상에 반감을 갖고 개화파 인사들을 불신하고 개화운동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개화운동에 가장 요긴한 동조자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셋째, 우리나라는 근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가장 긴요한 개화파 인사들을 잃었다. 정변의 지도자 중 겨우 9명만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개화파 지도자들은 모두 좋은 문벌 가문에서 나왔으며 개개인이 모두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내외의 문제를 옳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대책도 구상하고 있던 젊은 층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1880년대와 1890년대의 귀중한 시기에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외국세력들이 우리나라를 넘겨다 볼 때 왕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대신들이 없게 되어 갑신정변의 1884년부터 갑오개혁의 1894년까지의 10년 동안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넷째,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의 감정이 악화되어 일본은 우리나라가 근대화하는데 적합한 본보기가 될 수 없게 되었다. 19세기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이 동아시아에 침범해 왔을 때 이를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본보기는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 중 우리나라가 따를 수 있는 본보기는 일본의 근대화 모형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일본을 따르자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사라져버린 상태여서 더 이상 일본은 우리나라가 배울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갑신정변을 도와준 일본은 처음부터 조선을 침략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보수파대신들의 주장에 힘을 주어 일본에 대한 인상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정변이후 일본은 우리나라와 한성조약을 맺어 피해자인 조선이 사과하고 보상하게끔 하여 일본을 한층 더 의심케 하였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UNESCO로부터 수원화성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이 잘 표현. 보존되어 있는 궁궐이다. 태종5년(1405)에 별궁으로 조성한 궁궐으로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 하였다. 그 후 증.개축이 있었으나 다른 궁궐처럼 임진년 전쟁으로 모두 불 타 없어지게 된다. 1606년 경복궁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풍수적 결함과 불길한 궁궐이라는 심리적 요인으로 경복궁을 포기하고 창덕궁 재건을 시작하여 광해군초 1609년에 완공되고 1865년 경복궁이 복원될 때까지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된다. 창덕궁은 정변과 화재로 인해 수 차례의 재건공사와 대대적 수리를 거듭하게 되며, 1862년 제작된 동궐도와 궁궐지(1836연간)가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소상히 알 수 있다창덕궁은 종묘의 주산이며 남산과 마주보고 있는 '응봉'을 주산으로 삼아 조성되었다. 태종 때 공사를 주관한 박자청은 무관 출신으로 경직된 유학자에 비하여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직선과 철저한 대칭적 구조가 아닌 자연지세(평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경복궁과는 달리 굴곡이 많고 불규칙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를 따라 건물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생활의 편의성을 높였다. 이러한 토착적 풍수관의 실현은 자칫 무질서하고 통일성이 없어 보이지만 자연에 인위적인 가공을 하여 더욱더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넘치게 하는 기법으로 현대 건축에서 '유기적 질서'라 부르는 매우 고난도의 목표이다. 마치 여러 개의 작은 군이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한 복합체 같은 창덕궁은 궁궐의 정문인 돈화문이 궁궐 서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인정전)의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편전인 선정전도 정전의 바로 북쪽에 있지 않고 동북쪽으로 빗겨 있으며 침전을 비롯한 그 밖의 많은 부속 전각들이 무질서하게 복도와 담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언덕을 넘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토착적 풍수사상이 반영된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후원이 있다.장락문 앞으로 걸어들어가려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연경당 서북쪽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을 일단 서쪽 행랑마당 밑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서쪽 행랑채 밑에서 작은 개천으로 끌어내어 행랑채 앞쪽으로 돌아 흐르게 한 개천 위에 있다. 이 작은 개천은 연경당 남쪽 넓은 터로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나간다.[사진] 돌다리한국의 전통정원에서 석단, 화계, 기단 등 직선적인 구성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정원의 주체가 되는 정자 ,누 그리고 집들의 모든 건축이 직선적인 구성을 하기 때문에 이와 조화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의 흐름은 직선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물은 유연하여야 한다. 때문에 물을 흘러보내는 작은 도랑, 개천등은 유연하게 흐르도록하고 그 가장자리를 마감하는 장대석들도 필요한 곳에서는 휘어지게 다듬는 것이다.연경당 대문 앞에는 개울에 물이 흐르고, 그 위를 건너는 작은 돌다리가 놓여있다.어김없는 풍수지리 사상이다건축의 향은 정남향으로 하고, 북동서 삼면이 산으로 둘러 막힌 곳에 북서쪽에서 흘러나온 물이 남쪽, 즉 집 앞을 거쳐 동쪽으로 빠져나가도록 물길을 내어 풍수적 명당을 형성한 다음 방위에 맞추어 직각으로 건물군을 배치하였다.->집은 남향으로 지어야 한다.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 볕이 잘 든다. 이런 터전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바람기가 있어 시원하다. 산의 능선 중 어느한쪽이 낮아 바람이 휘몰아치면 나쁘다. 바람기도 온화해야 한다. 이런 터전을 바람기 머금었다고 말한다.산은 고정되어 있지만 계곡의 물은 늘 흐르고 있다. 산이 조건을 만족스럽게 구성하였는데도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물도 좋아야 한다. 이렇게 고루 갖추어진 터전을 우리는 좋은 집터라고 부른다.이런 집터 중에서 아늑한 골짜기의 서편쪽 능선 아래로 맑은 물이 알맞은 양으로 흐르면 으뜸이라 손꼽았다. 그 물줄기는 집의 앞면에 이르면 동쪽으로 곧게 흘러 남향한 대문 앞을 지난다. 대문 앞을 지난 물줄기는 집의 동쪽에 만든 연못으로 흘러든다. 연못에 모였다가 넘처 흘러야 수덕(水德)을 충분히 받았다고 믿었다.연경당은 순조 28년(1828) 사대부의 저택을 본 떠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안채?사랑채 등 모든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합리적인 생활공간을 연출하고 있다.연경당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이 나온다. 정추문이 있는 담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사랑채 공간이, 왼쪽으로는 안채 공간이 펼쳐져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한 지붕 아래에 있다. 사랑채 공간은 남성들의 공간이므로 트여 있어야 하지만, 여성 전용인 안채 공간은 열려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담장을 쌓고 작은 일각문인 정추문을 세웠다.건물 남쪽에 주작(朱雀)을 상징한 연못이 있고, 서쪽에 백호(白虎)를 상징한 개울이 흘러 장락문 앞을 지나간다.-> 자그마한 연당은 네모 반듯하게 장대석으로 호안을 하였다. 연당 중앙에는 작은 섬을 만든다. 당주(當州)라 부른다. 이런 섬이 있으면 부귀공명하고 자손들이 번창한다고 하였다. 섬은 연못의 물이 썩지 않게하는 기능도 지녔다. 정자와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이 만들어져 손님을 맞아들이고 공부중에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대문간채에는 장락문(長樂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오래오래 즐겁게 살고자하는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연경당에서도 개천 양쪽 벽의 장대석들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심은 나무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둥글게 마무리한 것도 볼 수 있다연경당 주위에는 석분에 심어져 있는 괴석을 볼 수 있는데 괴석은 정원을 꾸미는데 필수적 요소로 즐겨 사용하였으며 회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괴석은 인위적인 가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 속에서 음양의 조화와 우주의 질서를 찾았으며 자연을 관조하였다.대문 앞에는 명당수가 흐르기 때문에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연히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런 도랑과 돌다리는 좋은 터 고른 고급집에는 으레 있게 되고 궁궐등에도 구조된다.
도입??최근 우리 사회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용어 중에 '페미니즘 (feminism)'이란 것이 있다. 이 용어는 보통 여성해방 또는 남녀평등주의라 해석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라 정의된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느 드 보봐르의 말은 여성의 삶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으로 길러지고 그것에 길들여져 자신의 가치관이며 성격 행동들까지 사회에 의하여 사회에서 정의된 여성스러움을 강요당한다.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성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던 숙명 혼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종속적인 삶에 대한 자각을 해야 된다.그렇지만 이렇게 여성이 그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기 시작하기 위해 걸린 시간과 많은 노력은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의 주체인 여성은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집단으로 실존하는 것이 아닐, 인종 ? 민족 ? 계급에 따라 다양하게 분열되어 있어왔다. 또한 페미니즘은 한 시대가 제기한 새로운 도전이나 그 해결책에 상응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이념과 결합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사상으로 형성되어 연구되기 이전부터의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적 배경과 개념, 그리고 그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페미니즘의 역사적 배경페미니즘이란 용어는 약간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지만, 그것이 본격적인 운동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하나의 이즘으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된 때를 1960년대 후반으로 볼 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그 이전부터 여성운동의 움직임은 있어 왔고, 그 원류를 1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여성이 미비하나마 정당한 권리의 여부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페미니즘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서양은 근대 이후 인간 평등사상이 널리 퍼짐으로써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봉건적 절대주의를 붕괴시켰는데 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민혁명의 한계는 그 해방된 자들은 소유권에 대한 불가침의 신성권의 주장으로 인해 무산자인 여성은 그 해방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회가 해방한 인간이란 일부 시민계급인 남성일 뿐이었고, 봉건적 압제로부터의 해방이란 남성에게 가장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했다.그것은 여성을 토대로 한 남성의 해방일 뿐, 본격적으로 여성해방이 시작된 시기, 즉 여성해방의 사회적 계기가 된 때는 "산업혁명"때 였다. 19세기 초까지 여성들은 선거권, 피선거권을 물론이고 공직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정치단체 가입이나 집회 참여도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또한 경제적 제한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재산을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속받은 재산은 남편에게 양도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직업을 갖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는 여성이 여전히 법률상 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여성은 교육에서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 19세기 초까지 중등 교육은 소년에게만 개방되었다. 게다가 초등 교육의 수준 미달로 여성의 문맹률은 남성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자신도 당연히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에 참여할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미국 등지에서 폭발적 투쟁이 있었고 이를 통해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 후반의 미국 내 반체제 운동(인종차별 반대운동, 히피문화, 공허반대운동)의 커다란 흐름을 배경으로 여성해방운동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사회에서의 계급이라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이외에도 인종에 의한 억압과 차별의 관계가 있으며, 또한 성에 의한 차별들도 있다는 것을 여성자신이 자각하고 전면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즉 여성해방운동은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여성의 전면적인 해방, 성차별 사회의 철폐라는 인류사적 전망을 지닌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지속되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불평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페미니즘은 그 현상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과 방법을 연구하며 이를 위해 남녀불평등의 본질과 기원, 변천과정을 연구하였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여러 입장이 나타난다.초기 페미니즘페미니즘 (Feminism)이란 여성주의 또는 여성해방주의로 번역되며 기존의 성별 관계를 불평등하게 파악하고 사회 내의 여성의 위치를 재정립하며 동등한 성 (gender)으로서의 여성성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은 사라진다고 한다. 즉, 인간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한다는 도덕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자아 실현적 요소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든, 없든 간에 여성에게도 모든 가능성을 갖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현대 페미니즘페미니즘이라 함은 인류의 역사가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남여가 더불어 가는 역사의 발전을 꾀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페미니즘은 단순한 여권신장이나 여성주의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성 평등주의나 성 평등운동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근대의 여성운동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남성화를 통해 동등권을 얻으려는 특성을 보였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은 엄연히 신체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고 여성이 남성화가 된다는 것은 진실한 의미에서의 여성해방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의 구속을 뜻한다. 여성을 주장하기보다 차라리 남성과 동일해지는 길을 택했던 근대의 여성운동은 여성적 자각의 미숙성을 보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이 남성과 구별되는 자신의 ‘성’을 주장하게 된다.현대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제 이론들을 수렴하여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을 수립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니는 모더니즘 즉, 기존 남성체제와 엘리트체제에 대응한 지역주의, 파편적 성향은 페미니즘의 심화와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이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된 구축물, 즉 의미 체계에서의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호주의에서 출발한다. 여성은 기호의 자의성(自義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기호에 의하여 언제가 변화가 가능한 것이기에 여성을 구축한 구조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여성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이들이 현실 세계와는 분리된 채 상아탑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성의 가치를 남성 우위에 둠으로써 파시스트적인 가부장제 대신에 파시스트적 여가장제를 만들려는 시도가 아닌가라는 비판과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특정 공동체 (예컨데 여성공동체)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비판 등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배제와 이로 인한 황폐화를 극복하기위해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부각시킨 측면을 인정받아야한다. 그러나 물론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각의 관점들은 여러 가지 결함들을 지니며, 이들 관점과 주장들이 포괄성과 타당성을 지닌 정당한 이론적 틀을 확립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각각의 주장들은 부분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들을 정당하게 설명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데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서론 - § 실내공기의 중요성 §공기와 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의 필수 요소이다. 요즘 들어 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생수를 사먹거나 정수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는 데에 비하여 공기에 대한 인식은 그에 못 미친다. 특히 국내·외의 연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반인은 하루에 약 80%이상을 실내(가정, 자동차 안, 일 반사무실, 실내작업장, 공공건물, 상점, 병원, 지하 등)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시간들을 보내는 실내공기의 오염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한 편이다. 나 역시 비디오를 보기 전까지는 실내공기 오염에 대하여 안좋다고 생각만 했을 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과학자들이 가정과 건물 내의 공기가 산업화된 대도시의 대기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오염될 수 있음을 지적해 왔고 우리들 또한 실내의 오염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산업도시와 대도시의 대기 공해가 심각해져 왔는데 그렇다면 실외공기가 실내공기보다 더 오염되어 있을까? 일반적으로 실외공기는 대류와 기압차에 의한 바람으로 순환되고 있으며, 또한 자연 정화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반면 순환하지 못하는 실내 공간에서는 실내의 공기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5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에는 홍콩의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최근호를 인용 "집안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공해, 공장보다 더 심각하다." 라는 기사를 게재해 실내 공기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렇듯 실내 공기 오염의 심각성은 보도 매체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쾌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실내공기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 비디오에서 나온 내용으로는 미국은 일년에 실내공기를 위해 1천억$을 기꺼이 지불하고 프랑스는 석면과의 전쟁 중이라고 나타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실내 공기환경에 대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소류, 냄새보행 등의 동작모래먼지, 섬유류, 세균, 곰팡이연소기기CO2, CO, NO, NO2, SO3, 탄화수소류, 매연, 냄새사무기기NH3, O3, 유기용제류건축자재합판류, 내화재, 단열재포름알데히드, 석면섬유, 유리섬유, 라돈,접착제, 곰팡이, 세균, 진드기, 유기용제류작업 재료모래먼지, 분진세제, 유기용제, 세균, 곰팡이살충제분사분사제, 살충제, 소독제, 방충제살충제, 살균제, 살서제더욱이 실내공간은 갇힌 공간이고 이는 오염의 가속화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비디오에서는 사무실의 주요 오염원으로 난방용 연소시설, 에어컨, 카펫, 소파, 흡연등을 꼽았고 건축현장에서는 라돈, 지하도에서는 많은 먼지와 라돈, 석면, 자동차 배기가스등을 들고 있었다.- § 주요 실내공기오염물질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실내공기 오염원에 대하여 알아봤으니 그럼 다음으로 그러한 실내 오염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짚어보자.오염물질주요발생원인체에 미치는 영향먼지환기에 따른 대기중의 먼지 유입내부에서 발생규폐증, 진폐증, 탄폐증등담배연기직, 간접 흡연암, 호흡기계통이나 심혈관계에의 영향, 감염저항성의 감소두통, 피로감, 기관지염, 폐렴 기관지천식, 폐암연소가스(CO,NOx,SOx)각종 난방기구, 자동차 배기가스만성 폐질환, 기도저항증가 중추신경영향끼침라돈콘크리트, 흙, 지하수, 화감암라돈은 희귀가스로서, 흡입되는 라돈으로부터 배출되는 α입자가 기도상피(氣道上皮)에 침입하여 기저세포의 유전물질을 손상시킬 위험이 높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계산으로는 매년 라돈방치에 의해 5천∼2만명이 암에 걸려 사망포름알데히드각종 합판 및 가구,단열재,화장품동물실험에서 발암성이 나타나고 있고, 사람에 대해서도 발암의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서 분류되고 있다. 민감한 사람에 있어서는 냄새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물질. 의학조사로는 두통, 피로감, 기억상실, 안면장해 등의 발병율이 높음. 그 외에 눈, 코, 목 등에 자극증상, 어지러움, 기침, 정서불안, 기억력저하, 설사, 피부질환석면절연재.78.617.911.75.84.411.641.742.832.738.035.041.429.225.928.829.228.233.038.318.829.426.733.822.019.116.132.38.419.131.238.343.041.461.343.856.852.055.148.336.470.245.256.032.361.171.277.150.891.680.968.861.757.058.638.756.243.248.044.951.763.629.654.343.867.738.928.822.949.28.419.131.238.843.041.461.343.856.852.055.148.336.469.744.856.332.361.171.277.150.8한양대에서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21개 항목을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91.6% 가 피로증상을 느끼고 있으며 두통80.9%, 호흡기계층의 질환인 코막힘, 목의 충혈, 기침 등의 증상을 호소한 사람은 각각 57.0%, 61.7%, 58.6%등으로 55%이상이 호흡기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또한 조사건물에 근무하는 다수가 빌딩증후군 ( S.B.S )의 증상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빌딩의 사무실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 증세 없이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것이나 백화점, 상가 등을 다니면서 눈이 따갑고 쉽게 피로함을 느껴진 것들이 모두 우리가 몸으로 체험하는 실내공기 오염의 피해이다.- § 실내공기의 현황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실내공기 오염현황을 알아보도록 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18일 실내·외 공기오염 때문에 매년 300만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WHO는 9월호 관보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공기오염에 의한 사망자수는 최대 6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면서 특히 실내 공기오염에 의한 사망자는 280만 명이라고 분석했다. 또 실내공기 오염은 개도국 영·유아 사망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천식환자의 30∼40%와 기관지 환자의 20∼30%가 공기오염과 관련이 관련해 아파트의 경우는 80년대 이후 공동주택의 고층화와 대량보급으로 인해 주거환경이 크게 변화하면서 주택의 단열 규정이 제정돼 건물은 기밀성능과 단열성능이 향상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최소 환기량의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또한, 고기밀 알루미늄 새시와 플라스틱 새시의 보급으로 주거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소 환기량 개념이 정착되면서 실내의 환기량이 부족한 건물에서는 푹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가 무거운 이른바 현대식 건물증후군과 결로의 피해가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또 90년대에는 고층아파트의 전국적인 확산은 물론 30층 이상의 초고층아파트도 등장했는데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건축자재들이 등장하면서 고기밀, 고단열의 주거형태가 계속돼 실내의 오염물질이 증가하게 됐다.- § Sick Building Syndome 과 공조설비 (덕트) §그렇다면 여기에서 실내 환경오염의 피해로 대표적인 발병빌딩 증후군(Sick Building Syndome)에 대해 알아보자.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빌딩과 연관된 새로운 증세를 통틀어 빌딩증후군이라고 처음으로 명명했다. 발병(發病)빌딩 증후군이란 말 그대로 아파트나 사무실·지하시설물·자동차 안 등 상대적으로 실내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이상증상을 말한다. 오염된 공기에는 먼지, 담배연기, 곰팡이, 각종 조리기구 사용시 발생하는 연소가스, 각종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라돈가스,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휘발성 화학물질 등이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바로 호전되지만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거나 각종 만성병이 있을 경우에는 또다른 합병증을 부르게 된다. 발병빌딩 증후군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걸리는, 실내 공기 오염에서 비롯되는 대표적인 현대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발병빌딩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코, 눈, 목의 건조, 통증, 재채기, 코막힘. 피로 또는 무기력, 두통, 현기증, 구토, 성마름, 건망증 등의 증상들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호소한다.순 위증상 및 호소1점막자극증거이다. Sick Building Syndrome은 잘못된 환기시설에서 비롯한다. 환기시설이 나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은 환기가 잘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무원들보다 Sick Building Syndrome(발병빌딩증후군) 증상을 겪을 확률이 2배정도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코넬 대학의 연구원들은 발병빌딩증후군 증상이 유발되는 원인으로 지적돼왔던 나이, 교육, 성별, 일반적 스트레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 혹은 다양한 심리학적 요인들은 발병빌딩증후군 증세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발병빌딩증후군 증상이 냄새에 대한 민감성, 과로로 인한 피곤함, 편두통, 알레르기, 근육골격 문제 등 다양한 물리적인 작업환경상의 문제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발견은 인간 환경공학적인 요소가 발병빌딩증후군 증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넬 대학의 환경공학자 Alan Hedge는 "이번 연구결과는 이전의 연구에서 지적된 것처럼 SBS 증상이 주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말했다. 즉, 발병빌딩 증후군은 심리적 요인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에 원인을 둔다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발병빌딩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채광이나 온도 습도 등의 근무환경을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깝게 맞추는 것이 최선책이다. 2∼3시간마다 자주 실내를 환기시키고 온도를 16∼20도 정도로 약간 서늘한 상태를 유지한다. 습도는 가습기를 사용해 40∼60% 수준을 유지한다. 증세가 심한 사람은 우선 실내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청소를 자주 한다. 이와 함께 물을 자주 마시고 틈틈이 몸 기지개를 펴는 스트레칭과 맨손체조 등 간단한 운동으로 피로를 푼다. 또 1∼2시간마다 실외 공기가 직접 통하고 채광이 잘 되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그렇지만 실내에 있거나 특히 지하공간의 경우 이와 같은 조건을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기 조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조 시스템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