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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과 사회] 내부고발자 평가A+최고예요
    Ⅰ. 서론한국의 기업경영자가 들으면 등골이 오싹할 얘기가 있다. 주인공은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에블린 눕(여·54세)이라는 여인이다. 눕은 의료보험회사 ‘Blue Cross and Blue Shield”의 지사직원이었다. 93년 그녀는 우연히 보스가 한 뭉치의 서류를 파쇄기에 넣는 것을 보았다. 상관은 대신 가짜 서류를 만들어 연방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더 타내려 한 것이다. 보스는 “이 일을 발설하면 당신이 한 일로 만들 것이며 그러면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된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전직 상관들도 “연방정부가 알게 되면 우리 회사는 문을 닫게 되며 결국 당신 때문에 3백5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라는 강변으로 그녀에게 침묵을 강요했다.눕여인은 94년 폭로를 결심하고 변호사를 찾아갔다. 미국에는 ‘내부고발자법’이란 연방법이 있다. 정부나 기업의 불법행위를 고발해 사회에 기여했을 때 그 사람에게 돈으로 보상해 주는 법률적 장치다.98년 여름 회사는 결국 1억4천만 달러(약 1천7백50억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눕과 변호사는 연방정부로부터 물경 2천9백10만 달러(약 3백63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 지사는 없어지지 않고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전직 상관들의 협박과는 달리 동료직원 대부분의 고용이 유지된 것이다.내부고발자는 영어로 whistle-blower, 즉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 불린다. 눕의 호루라기는 인류탄생 이래 가장 비싼 호루라기가 된 셈이다. 그녀가 호루라기를 불어 연방정부는 세금이 회사의 사악한 금고로 흘러가는 것을 막았고 이는 미국민 전체의 이익에 봉사한 것이다.만약 눕이 한국인이었다면 눕의 고민은 훨씬 컸을 것이다. 호루라기로 보자면 한국사회는 그 동안 미국 같은 나라와는 딴판이었다. 호루라기를 불라치면 우선 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배반하는 사람, 상사를 치받는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기 일쑤일 것이다. “내부에서 교정(矯正)하는 노력부터 해야지 왜 창문을 열고 길거리를 향해 호루라기를 부는가”라는 논리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고발자는 포상을 받는다.”원래 이 법안은 96년 11월 참여연대의 ‘맑은 사회 만들기 본부’가 야당이었던 국민회의에 청원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국가나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부서 또는 집단의 부정을 고발해 오는 공익정보제공자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부패를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비호하는 공직사회의 관행을 깨뜨리는데 관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물론 호루라기보호’론에 대해 반론도 적지 않았다. 반대론자들은 “하급자가 상급자의 비리를 마구 폭로함으로써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더 나아가 공직사회의 기밀사항이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논지를 편다.참여연대는 “공직사회의 위계질서는 지시나 명령이 공정하고 합법적일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지 불법적인 지시·명령에 대해 승복과 침묵을 강요한다면 이는 동네 깡패들의 조직”이라고 반박한다. 참여연대는 “제보자가 고발에 앞서 조직의 내부방식에 따라 일차적으로 비리를 시정하는 노력을 하도록 하고 고발하는 곳도 감사원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면 고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국회에 제출되기는 했지만 이 법안이 언제 통과돼 국가의 보상을 받는 호루라기들이 등장할지는 알 수 없다. 국민회의의 의욕에 아직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지 않은데다가 법안이 호루라기 말고도 돈세탁 금지 등 복잡하고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심의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한국사회가 호루라기 문제에 일단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호루라기 하나가 수많은 제도와 예산이 해내지 못하는 역사발전을 단번에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언제든 한국에도 눕과 같은 여인이 나타나 부패한 기업들의 가슴에 양심의 칼을 겨눌지도 모를 일이다.Ⅱ. 본론1. 내부고발의 정의내부고발은 이미 1960년대부터 하나의 조직문제로 인지되어왔으며, 70년대에 들어가면 연구대상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사례가 갖는 특성상, 실증적 연구나 연구 결과의 일반화에 어려움이 있어 대부분의 체계적인 연구는 80년대 이후에나 가능하게 되었다.{장한다.셋째, 내부고발은 외부적 행위이다. 내부고발은 조직 내부 비리의 대외적인 폭로이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내부의 동료나 다른 상급자, 또는 계선을 우회하여 직접 고위 관리층이나 인사부처 등의 조직 내부의 제도적인 경로를 통한 비리 사실의 고지 또는 보고 도 내부고발로 보고 있다.{ 박흥식(1991). 내부고발 (whistle-blowing):이론, 실제, 그리고 함축적 의미. 한국행정학보 ,25,770-71.특히 우리의 경우 조직 내부의 문제를 조직 밖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크므로 이러한 논리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ㄴ 성격내부고발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먼저 내부고발은 말 그대로 내부인에 의한 행위다. 즉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는 개인은 현재 해당조직의 구성원이거나 또는 과거 어느 시점에 조직의 일원이었던 사람인 것이다.다음은 행위의 의외성이다. 내부고발은 대부분 이례적인 성격을 띤다. 그 결과 특히 폭로에 의한 내부고발일 경우 조직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내부고발은 공동체 보호적 의미를 갖는다. 내부고발은 조직 내부에서는 조직규범의 일탈행위이지만, 사회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조직의 부패, 불법, 사기, 또는 기타 유해한 활동에 항거함으로써 일반 시민의 안위를 도모하는 행위이다.{ 앞글,pp.771-72.2) 유형내부고발의 유형은 크게 시기와 경로, 그리고 방법에 의해 분류될 수 있다.먼저 시기에 의해 구분할 경우, 재직형과 이직형으로 나뉜다. 재직형은 내부고발의 행위가 조직의 구성원으로 있는 동안 이루어진 것이며 이직형은 사퇴 또는 해고 뒤에 행해진 경우이다. 특히 이직형의 경우 재직 중 목격한 내부비리를 조직을 떠난 뒤 폭로하는 것이므로 많은 경우 고백이나 체험기 또는 회고록 형태를 띠게된다.두 번째 분류 방법은 경로에 의한 분류로 의사표시의 채널이 대내적인가 대외적인가에 따라 내부형과 외부형으로 나눌 수 있다. 내부형은 상급자에게 조직비리에 대해 고지하는 형식이다. 반면 외 준비되고, 은밀하게 진행되며 그 내용은 절대적으로 통제되고 위장된다. 따라서 부정부패의 당사자들이나 내부의 속사정을 잘 아는 소수의 몇몇 사람이 아니면 그러한 사실을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이 신고나 제보를 해주지 않는다면 부패 사실의 발생을 밝혀내기란 매우 어려우며, 부패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자들의 고발은 부패와 관련한 이와 같은 부담을 덜어준다. 내부자들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권한의 남용, 불법, 관리상의 실수, 낭비, 공공의 건강이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 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 따라서 이들의 비리 고발은 부패의 본질적 성격에 기인한 정보의 빈곤 문제 를 가장 확실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 이들은 외부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부패의 물증 뿐 아니라 구체적 정보를 폭넓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패통제의 수단으로서 내부고발이 갖는 최대의 장점이며, 다른 어떠한 대안들 보다 통제기제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앞글,pp.254-55.또한 내부고발은 조직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부패에 대해 감시의 효과를 갖는다. 내부고발의 가능성은 조직으로 하여금 부정부패 행위를 어렵게 하고 이는 부패의 사전 방지를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특히 내부고발에 의한 부패억제는 과거의 부패 통제 방법과 달리 내부인의 자율적, 자발적 의지에 의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내부고발은 조직 구성원들의 자율적 의지실현에 바탕을 둔 부패통제의 노력 이므로 다른 어떤 제도보다 구성원들의 고발정신을 필요로 한다. 이는 곧 민주적 참여나 비판의 중요성에 기초 하여 조직내 구성원들을 부패통제의 실천적 행위주체 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앞글,pp.263-64.이처럼 내부고발제도는 부패의 사전예방과 통제를 위해 매우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수단이다. 따라서 내부고발의 이러한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보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논의가 어떻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시민의식의 성장과 개인권리의 자각이 나타나게 된다. 민주, 학생 또는 노동운동 등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던 많은 민주화 노력들은 단계적, 지속적으로 국민의 권리의식의 자각과 분출의 형태로 수렴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그 동안 개인의 자유와 인권 가치의 부단한 평가절상이 이루어져 왔음을 뜻한다. '관민'에서 '민관'으로의 표현변화 등에서도 이 점은 뚜렷이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결국 국민 일반 대 정부 관료제, 조직 내의 상하계층간의 '권력 의존적 역학관계'의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둘째, 내부고발의 등장은 보복에 따른 불이익의 완화를 전제로 한다. 국민 또는 고용인 권리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내부고발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호응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곧 내부고발자의 보복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낸다. 내부고발의 등장은 그 배경에 바로 이러한 일련의 변호를 함축하고 있는 조직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내부고발 등장의 또 다른 하나의 조건은 탈법과 부정의 존재이다. 내부고발은 먼저 정부와 군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당성과 도덕성을 결여한 정권에서 비롯한 심각한 부정부패로 인하여 내부고발이라는 제도의 확립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새로이 정권을 담당하는 통치자들마다 사정과 개혁을 표방하였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성적인 부정과 부패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화의 과정에서 관료제 주도의 공업화와 냉전구도라는 틀의 공시적 경험은 관과 군의 자신들의 역할 한계에 대한 망각과 탈법의 여지를 제공했다. 이러한 부문에서 권력남용이나 부정에 대한 내부고발의 등장은 한국의 이와 같은 경험에서 부분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내부고발의 발생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부고발의 의지와 그 대상의 존재외에도 환경적 여건, 즉 경제적·제도적·사회적 상황의 충족을 요구한다. 발전시대의 과실인 경제적인 풍요는 대부분의 고용인들에게 물질적인 여유를 주고 있다. 또 있다.
    사회과학| 2003.11.08| 7페이지| 1,000원| 조회(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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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 윤선도 평가A좋아요
    《孤山 尹善道》1. 서언국문학상 고산 윤선도를 시가시인의 대표적 인물이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는 훌륭한 시적 재능을 발휘하여 주옥같은 시작을 다수 이룸으로써 조선조 시가문학을 크게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가시인일 뿐만 아니라 학자요, 정치인이며, 또 造景人이며, 實學的인 면까지 추구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크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발자취는 海南 및 莞島의 甫吉島, 경기도의 南楊州 등에 아직까지 남아 있어, 그에 대한 학계에서의 연구는 다원적인 면에서 어느 누구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직접 윤선도와 그의 문학연구로서 단행본의 간행은 8권이다. 그 중 李在秀·朴晟義·文永午·元容文 등의 저술은) 李在秀, 『尹孤山硏究』(學友社, 1955).朴晟義, 『松江·蘆溪·孤山의 詩歌文學』(玄岩社, 1968).文永午, 『孤山尹善道硏究』(太學社, 1983).元容文, 『尹善道文學硏究』(國文資料院, 1989).더욱 흥미있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윤선도를 주제로 한 논문은 130편이 넘는다. 이들의 연구는 대충 작가론으로서의 고찰과 작품론의 입장에서 「山中新曲」 「漁父四時詞」, 아울러 이에 나타난 自然觀 등의 연구가 주를 이룬다.여기서는 윤선도의 전기적 이해와 함께 그의 사상, 작품을 살펴보면서 그가 가지는 문학사적 위치를 조명해보기로 한다.2. 孤山의 전기적 이해(1) 시대적 배경宣祖 8년경부터 시작된 東西分黨은 점차로 발전되어, 東人은 南人·北人으로 갈리고, 倭亂이 수습된 뒤에는 북인이 다시 大北·小北으로 갈리게 되었다. 동인에는 대체로 李滉과 曺植의 문인이 많고, 서인에는 李珥와 成渾의 계통이 많아서 당쟁은 學派의 대립과 밀접한 관렴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동인의 퇴계학파는 와 를 중시하는 반면, 서인의 율곡학파는 經世의 術을 강조하며 를 중시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와 의 대립 양상으로 본다면 퇴계학파는 비교적 보수적이었다 할 수 있고, 율곡학파는 대체로 진보적인 면을 지녔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후정부 우참찬에 이르렀다. 의중에게는 唯深과 唯幾, 唯順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윤선도는 유심의 세 아들 중 둘째이다. 한편, 숙부 유기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백부 弘中에게 입양하였다. 그런데 유기 역시 아들이 없어 윤선도를 양자로 삼았다. 윤선도는 결국 고조 이래로 명문으로 알려진 사대부 집안의 종가 후손으로 자라게 된 것이다. 그는 선조 20년(1587) 漢京(지금의 서울) 연화방에서 태어났다. 종손의 승계를 위해 입양한 것은 8세의 일이다. 한동안은 종가가 있는 해남 고향에서 자랐을 것으로 보인다. 해남 蓮洞에는 지금도 고조 때부터 터를 잡은 옛집이 남아 있고, 주위의 자연 경관은 고래의 아름다운 승경을 짐작케 하여 윤선도의 한때 생활환경을 상상케 한다.年譜에 의하면 한창 어버이의 정을 그릴 여덟의 나이에 친부모의 곁을 떠나 사는 처지에 놓이고, 11세에는 또 山寺에 들어 修學하였고, 15세에는 양부를 따라 安邊에까지 갔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성장기는 자주 거처를 달리한 탓으로 오래 사귈 친구도 없이 외로움을 달래며, 일정한 스승이 없이 수학하던 유년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윤선도를 고독을 싫어하지 않는 선비, 혹은 비사교직 선비로 여겨지던 까닭은 이 같은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기질의 한 단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그는 특히 經史의 이해가 깊어서 大儒가 될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20세에는 己卯士禍 이후 금지되어 보기 어려웠던 『小學』을 구하여 이에 심취하고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같은 청소년 시절의 수학과정에서 우리는 또 그의 학문적 기질의 형성이 어떠했는가 짐작할 수 있다.② 유배와 出仕, 은둔전하기를, 윤선도는 과거 보기 위한 공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儒家에서의 수학은 흔히 立身揚名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에 있어 이 점은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그는 20세에 陞補試 또는 鄕試에 들고, 26세에는 진사에 합격했다. 그런데 당시는 광해혼정으로 어지러운 때였다. 결국 충정을 이기지 못하여 대북세력의 죄를 묻는 상간을 머물렀다. 그는 74세 때 함경도 三水로 유배당하면서 3차에 걸쳐 14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윤선도는 그때마다 林泉에서의 은둔과 풍류생활의 즐거움으로 자족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일생은 출사와 유배, 그리고 은둔을 거듭하면서 겪는 희비가 교차되는 생애였다. 다시 말하여 시련과 극복, 득의와 풍류, 고난과 개척 등으로 교직된 평생이었다 할 수 있다.③ 交遊人物謚狀에 의하면 윤선도는 천성적으로 강직하고 바르며, 곧은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고독을 극복하면서 성장하였고, 부당함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감추지 못하여 바른말을 잘하는 선비였다. 그는 또 師友의 지도도 없이 성현의 유훈을 받들어 믿어 왔다고 하니,) 『孤山遺稿』 권6, 附錄 「謚狀」, 張18.이러한 사람에게 사우관계나 교유인물이 많았을 리 없다. 詩書 등에 의해 인연을 가진 사람을 가려 보면 그 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반면에 다정했던 인물이 많지 않았음은 이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 교유인물을 가려보면 다음과 같다.ㄱ. 洪茂績 - 윤선도의 시에 그와 관계된 것으로 9수가 있다. 모두 병진소를 올렸던 시기 의 작품이다. 거제도로 귀양가는 홍무적을 두고 탄식하면서 고 한 것은 그들의 정분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ㄴ. 趙絅 - 윤선도가 함경도의 삼수로 귀양갈 때에 적극적으로 변호하다가 三司의 집중적 공격을 받고 파면된 사람. 귀양지에서도 서신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펴는 데 서슴지 않았던 사이였다.ㄷ. 李海昌 - 윤선도가 2차 귀양으로 영덕에 있을 때 시적 교류를 가장 활발히 한 인물. 그와 유배지에서의 인연으로 계작한 시는 10여 편이 넘는다.ㄹ. 鄭進士 - 학술적 문답을 활발히 한 인물. 이름은 吉甫인데 그의 진지한 질문에 대해 윤선도는 주로 『大學』이나 『중용』의 내용에 근거하여 깊이 있는 논리로 해답해 주었다. 정진사는 윤선도의 하교를 받았다고 전하니, 두 사람 사이는 사제지간의 정으로 가까워진 것이다.이 밖에 거문고의 명수 權海, 죽마고우인 장자호 등과史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고산의 경우 불교사상이 그의 작품에 스며들었다고 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고산 자신은 불교사상에 깊은 이해가 있는 듯하며 미약하기는 하지만 불교의 誓願思想 같은 것이 표출된 한시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고산이 철저한 儒者였기에 孝의 실천 과정에서 불교의 誓願思想에 접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상에서 고찰한 바 儒者인 고산은 儒佛道 三敎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생활하였으며 문학하였음을 알 수 있다.4. 윤선도의 詩歌(1) 國文詩歌윤선도의 국문시가는 『孤山遺稿』에 전하는 시조 75수다. 성장 이후의 생활을 유배, 은둔, 출사의 세 가지로 나눈다면 시조의 제작은 전 2자의 생활에서 이루어진 것이요, 그것도 대부분이 은둔생활에서의 유산이다. 이를 다시 제작의 시기로 보면 30대와 50대, 그리고 60대의 시조로 나누어진다. 주제의식 및 소재인식에서 보면 또 비극적 인식의 표출과 친화적 인식의 표출로 양분할 수 있는데, 유배생활에서 지은 시조는 주로 전자의 계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예를 들어 30대의 경원에서 지은 「遣懷謠」 5수와 60대에 楊州의 고산에 물러나 있을 때 제작한 「夢天謠」 3수 등이 비극적 현실인식의 주제성이 농후한 작품이다.「견회요」는 즉 충과 효를 주제로 하고 있다. 우국에서 나온 일편단심의 忠君과 애틋한 그리움에서 나온 오매불망의 思親, 이것이 곧 시에 나타난 비극적 인식의 시정이다. 「몽천요」는 또 꿈의 형식을 빌려 비극적 현실인식을 내용으로 한 노래이다. 윤선도가 당시 고산에 머문 일이 유배는 아니지만, 효종의 부름으로 조정에 나아갔다가 정쟁에서의 패배로 물러선 것이니, 그때의 상황은 유배나 다름이 없다.「몽천요」에 나타난 시적 자아의 서정은 이러한 유배 정서의 표출인 것이다. 영덕의 귀양지에서 한시로 제작한 「補天二首」는 주제 및 소재면에서 「몽천요」와 동일한 것이니 이를 더욱 뒷받침한다. 때문에 우시연군을 주제로 한 「몽천요」 역시 현실을 개탄하는 비극적 인식에서 은연중 자신의 권력의지까지 표출한 시적한 표백이다.그는 이 「오우가」에서 객관적 존재의 자연을 주관적 樣相, 곧 관념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는 '水·石·松·竹·月'에서 자아를 망각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이해관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水·石·松·竹·月'에서 인간의 발자국을 그려 넣어 修身으로 교묘하게 通路를 마련하고 있다.그래서 그는 그의 마음을 '水·石·松·竹·月'에 移入시켰으니, 이는 그것들의 長處를 극히 일반적인 특성에서 취하면서 《水》에서는 그치지 않는 不斷을, 《石》에서는 不變을, 《松》에서는 不屈하는 傲然한 자세를, 《竹》에서는 不染과 높은 節槪를, 《月》에서는 무언을 취해 수신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자연에 애정을 느끼고 하층과 중층, 그리고 상층의 三元空間에서 발견한 수석, 송죽, 월을 질서있게 배치한점,) 朴焌圭, 「尹善道의 五友歌 硏究」, 『古詩歌硏究』 제 4집, 137∼187쪽.一丘一壑에 관심을 두고 심미의식에서 이름을 붙이되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한 점 등은 윤선도의 자연관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③ 漁父四時詞「어부사시사」의 배경이 된 보길도에서의 은둔생활 역시 자연과의 친화면에서는 금쇄동 생활과 유사하다. 그 곳의 수려한 산수에 깊은 정을 느끼고 이름을 짓되 格紫峯·小隱屛·赫曦臺라 함이 있는데 이 모두 유교적 발상에서 나온 명명이다. 그러나 이 곳은 海路를 통한 발견이었다. 때문에 바다를 접하는 새로운 체험은 자연애의 취향이 섬세한 그에게 또 다른 생활공간의 확보를 의미한다. 비록 부용동이 해변 산중이라고 하나 이곳의 생활은 금쇄동에서와 같은 山中隱士의 모습으로만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漁翁이 된 강호은사의 생활, 이 점이 윤선도의 보길도생활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핵이 된다.「어부사시사」는 작자가 네 번째 입도하여 지내던 65세에 이 같은 어옹의 생활 흥취를 짜임새있게 엮은 장편(40수)의 노래이다. 이는 곧 춘·하·추·동 각각 10장으로 된 4편의 구성이다. 각 편은 또, 出帆으로 시작하는 앞부분(1-5장)과 歸帆으로 시작하는 뒷부분(6-10.
    인문/어학| 2000.12.08| 9페이지| 1,000원| 조회(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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