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전에 대한 경제적 고찰학 과 : 이 름 : 학 번 : 지도교수 :目 次★ 프롤로그 = 동학농민혁전의 전개과정 Ⅰ. 교리에 나타난 경제이념의 추상성 Ⅱ. 평등주의 경제이념 Ⅲ. 인간주의 경제이념 Ⅳ. 경제적 미래상 Ⅴ. 천직과 노동권 Ⅵ. 천록설(天祿說)과 사회복지동학농민혁전의 전개과정동학농민운동은 반 봉건, 반 외세투쟁의 민족운동이었으며, 그 전개과정에서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1) 고부 민란(1894) ㄱ. 원인 :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 ※만석보 건립과 수세(水 稅) 징수 ㄴ. 경과 : 농민과 동학 교도 봉기 ※녹두장군 전봉준 → 관청 습격, 저수지 파괴→ 정부의 편파적 조사와 수습 조치 (2) 제 1차 봉기 (1894년 4월,반 봉건 투쟁) ㄱ. 원인 : 고부 봉기 수습에 대한 불만 ㄴ. 전개과정 : 전봉준 지도 하에 농민들 봉기→황토현 전투 승리 →장성 전투 승리→ 전주 점령→정부의 청군 파견 요청 →청일 양국군 파병→전주 화약→농민군 해산→집강소 설치동학농민혁전의 전개과정◆ 4대 행동 강령 ◆ 첫째, 사람을 죽이지 않고 백성의 가축을 손상하지 않는다.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 셋째, 일본놈을 쫓아내고 성인의 도를 깨끗이 한다. 넷째, 서울로 진격하여 나라를 망치는 간신배를 처단한다.◐ 폐정 개혁 12조1 .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 한다. 2 . 탐관 오리는 그 진상을 조사 , 엄정한다. 3 .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4 .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 노비 문서를 소각 한다. 6 . 7종의 천인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7 . 청상 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8 .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 한다. 9 . 관리 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을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 한다.동학농민혁전의 전개과정(3) 집강소의 설치 1) 개혁의 추진 ㄱ.집강소 설치: 자치적 행정 기구, 전라도 각지에 설치- 개혁 추진 ㄴ.결과:정부의 비협조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함 (4) 제 2차 봉기 (1894년 10월,반 외세 투쟁) ㄱ.원인: 일본의 경보궁 불법 점려,강제 개혁 압력 행사, 정부의 약속 불이행 ㄴ.경과: 재봉기→공주 우금치 전투 패배( -일본군을 앞세운 관군에게)동학농민혁전의 의의ㄱ.근대국가로 전진하는 계기를 만든 민족 개혁 운동 ㄴ.반봉건,반 외세적 최대 규모의 농민 전쟁 ㄷ.청일 전쟁, 갑오개혁의 계기가 됨. ㄹ. 계승:3대 교주 손병희등에 의해 3.1운동에 계승 됨.동학농민혁전에 대한 경제적 고찰Ⅰ. 교리에 나타난 경제이념의 추상성 Ⅱ. 평등주의 경제이념 Ⅲ. 인간주의 경제이념 Ⅳ. 경제적 미래상 Ⅴ. 천직과 노동권 Ⅵ. 천록설(天祿說)과 사회복지{nameOfApplication=Show}
電子決濟論商去來時 發生하는온·오프라인 決濟手段{과 목 명 :학 과 :학 번 :199이 름 :제 출 일 :200. 6. 23.E-mail :담당교수 :수님目 次序論本論1. 오프라인 지급결제수단1.1 현금1.2 어음1.3 수표1.4 신용ㆍ선불ㆍ직불카드2. 전자상거래와 인터넷무역2.1 전자상거래(EC:Electronic Commerce)의 개념2.2 인터넷과 무역의 개념2.3 전자무역(Electronic Trade)의 개념2.4. 인터넷 무역의 등장2.5. 인터넷 무역의 동향3. 전자상거래의 형태 분석3.1 인터넷 전자상거래3.2 폐쇄형 네트워크 기반 전자상거래3.3 무역에서의 전자상거래4. 전자상거래의 대금결제 방식4.1 전자결제 시스템의 의의 및 요건4.2 전자결제 시스템의 요건5. 전자결제 시스템의 유형5.1 신용카드 결제시스템5.2 전자화폐 결제시스템5.3 전자수표 결제시스템5.4 전자자금이체 시스템6. 전자결재시스템의 종류6.1 그룹웨어(groupware)6.2 인트라넷(intranet)6.3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7. TradeCard시스템과 Bolero프로젝트7.1 인토넷 네고7.2 TradeCard시스템에 의한 결제방법7.3 Bolero프로젝트7.4 TradeCard시스템과 Bolero프로젝트의 비교8. 전자결제 시스템의 장단점8.1 전자결제 시스템의 장점8.2 전자결제시스템의 단점 및 문제점9. 온ㆍ오프라인 지급결제수단 비교結論序 論지급결제(payment)는 실물거래 및 금융거래 등 각종 경제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거래당사자간의 채권·채무관계를 화폐적 가치의 이전을 통하여 청산하는 행위를 말한다.지급결제는 시장경제 하에서 각종 경제활동이 실행되는 회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안전한 지급결제수단은 경제발전과 신용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근간이 되고 있다.지급결제수단에 있어서 지급(payment)과 결제(settlement)라는 말은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지급이라 함은 경제주체 상호간 채거래에 있어서 상당한 불이익 및 어려움을 당한다.ㆍ카드를 이용한 불법 사채놀이 발생 가능ㆍ분실, 도난, 위조, 변조의 위험 발생 가능선불카드는 사전에 전자적 또는 자기적 방법에 의해 일정한 금액이 저장된 카드를 이용자가 카드 발행자로부터 구입한 후, 물품 구매 또는 서비스 이용 시마다 카드의 잔액 범위 내에서 이용 대금이 자동 차감 지급되도록 한 카드이다.{장점단점ㆍ단말기를 사용하여 재충전할 수 있다.ㆍ지하철 정액권과 같이 구매금액에 비해 일정량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ㆍ특정한 장소에서만 이용되는 제한적 용도의 폐쇄시스템이다.ㆍ개인간의 자금이체나 구매 행위를 할 수 없다.직불카드는 고객이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시 구매대금이 판매점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를 통하여 즉시 고객의 예금 계좌에서 판매인의 예금계좌로 자동 이체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는 은행간 차액결제 전에 대고객 자금 지급이 이루어지는 타행환 송금 이용이나 CD 계좌이체와는 달리 은행간 신용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다.{장점단점ㆍ거래내역서를 통한 과세자료 확보가 가능해 가맹점의 위장매출전표 작성, 카드깡 등의 탈법행위를 줄일 수 있다.ㆍ분실, 도난 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다.ㆍ자신의 계좌에 있는 금액 한도에서만 구매 할 수 있다.ㆍ전자화폐처럼 화폐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까지는 되지 못한다.2. 전자상거래와 인터넷무역2.1 전자상거래(EC:Electronic Commerce)의 개념'제3의 산업혁명'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전자상거래는 이미 유통 구조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전자상거래는 말 그대로 전자적으로 물건을 사고 팔고 ,대금을 지불하는 등의 일반 상거래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기업 간 문서교환을 위한 EDI, PC 통신에서의 홈쇼핑, 홈뱅킹, 또는 텔레마케팅, 여론조사 및 각종 예약, 팩스, 광고 등 다양한 통신매체를 이용하고 있다. 이것들 역시 초보적인 개념의 전자상거래고 볼 수 있다.전자출판 및 업체 제품의 홍·입 승인 신청(필요한 품목의 경우), 선적과 보험에 관한 사항 등 많은 절차가 발생하게 되는 동시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에 반하여 인터넷 무역은 훨씬 빠르고 쉽게 거래 계약이 이루어진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검색하여 찾은 후, 이 회사가 자사의 홈페이지나 거래알선 사이트를 통해서 올려놓은 정보 즉,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원하는 제품의 규격과 소재, 디자인을 선택한 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간단하게 거래를 끝낼 수 있다. 물론 보안문제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메일로 계약을 체결하고 특송편으로 물품을 받아 보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이러한 무역 방식은 대규모 무역거래에는 적당하지 않으며, 미화 1만불 이하의 소액 무역 거래에 적당하다.)2.3 전자무역(Electronic Trade)의 개념전자 상거래는 단순한 EDI가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의 추진과정을 전자화함으로써 디지털 통신망으로 자동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CALS의 개념이 포함된 총체적인 차원의 개념이 '전자 상거래(Electronic Commerce)'라고 한다면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시장에 있어서의 상품과 서비스거래를 `전자 무역(ET:Electronic Trade)'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비즈니스 세계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안방에 앉아 새로 개발된 볼보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즉석에서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국가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시장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인프라에 의해 사이버마켓(One World One Cyber Market)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세계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단일 세계시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모든 기업이 개방된 EDI에 의해 경영 시스템을 변형시키면서 칼스에 참가하게 될 경우 세계시장에서의 자재와 원료조달 가격은 점차 일원화되어갈 것이다. 즉, 생산 면에서의 가격구조가 국경을 넘어 평준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소비자의 정보네트워크가 국경을 초월해 전개될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전자상거래를 위한 환경조성 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정한 세계적 전자상거래 기본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무역기구(WTO)차원에서 다자간 합의사항으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인터넷 상거래가 신용장과 오퍼상으로 대변되는 기존 무역관행을 전자화폐와 직접 거래방식으로 바꾸면서 지구촌에 새로운 전자 무역 전쟁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터넷 라운드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3. 전자상거래의 형태 분석3.1 인터넷 전자상거래(1) 특성■ 장 점 : 개방형 네트워크로써 전 세계 각지의 수많은 정보 제공, WWW과 HTML에 의 한 멀티미디어형 표현 가능, 데이터베이스와의 연결에 의한 실시간 조회 검색 가능, TCP/IP에 의한 이기종 통신 및 이질적 네트워크간 접속 가능.■ 단 점 : EDI에 비해 보안성이 떨어지며, 비정형 문서를 사용함으로써 구조적인 업무의 자동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결방안 : Open EDI, Interactive EDI, 인터넷 EDI위의 EDI는 국내 업무 또는 특정 산업내의 업무 또는 기업대개인간의 거래에서는 적용하기가 용이할 것이나, 기업 간의 무역거래에서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우며, 새로운 EDI의 개발 추이와 기존 EDI 네트워크와의 연계성을 감안하여 발전방향을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2) 한계■ 보안성과 자료의 신뢰성 부족.(인터넷의 일반적인 가장 큰 문제점)- 전자상거래 하에서 전자문서의 위조, 변조 가능■ 인터넷 대금 결제방식은 소액 거래에 적용- 인터넷 전자상거래는 기업 간 거래에서 기업 및 제품에 대한 홍보와 조회에 한정됨.- 기업대 개인간의 전자상거래만이 활성화되고 있음.3.2 폐쇄형 네트워크 기반 전자상거래(1) 특성1 특수 목적 VAN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로서 현재 EDI를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음2 조직간, 기업간, 기관간, 기업과 기관간의 거래 전반에 걸친 정형적인 업무 처리에 중가능Proton선불형이나 제3자에게는 이전을 불가능전자수표형FSTC카드에 내장된 전자수표와 전자서명방식을 이용한 네트워크상의 수표신용카드형네트워크형Cyber CashPC에 내장된 전용소프트웨어가 미리 크드번호를 기억, 암호화된 크드 정보는 Cyber Cash의 중개로 네트워크상에서 결제에 이용카드형First Virtual일종의 회원등록과 같이 카드정보를 사전에 등록, 전용회원번호로 네트워크상에서 결제전자자금이체형SFNBQuick Pay서비스를 제공, 지불대상과 금액만 입력하면 자금이체가 일어남5.1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전자결제시스템은 정보 전송 중에 발생되어질 수 있는 정보의 유출 및 도난 등 보안상의 이유가 결제 수단으로서의 장애가 되었으나 앞에서 고찰한 SET의 전송표준과 신용카드를 결제의 기반으로 하는 각 사의 우수한 암호보완기술이 보안상의 결함을 극복하여 주고 있음에 따라 현재 전자결제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선호되고 있다.전자결제 수단으로서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은 전통적 신용카드를 이용한 결제과정과 유사하나, 다만 네트워크상에서 결제정보가 이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결제의 안전과 관련한 보안 및 제한적인 사용, 수수료 부과에 따른 소액결제의 부적합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은 신용카드 정보의 전송 유형에 딸라 네트워크형과 카드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이용수단으로는 네트워크형의 경우 Cyber Cash 및 카드형으로 First Virtual 시스템이 있다.5.2 전자화폐 결제시스템전자화폐는 은행 기타 전자화폐 발행자가 카드 또는 컴퓨터 시스템을 통하여 일정한 화폐가치를 전자기호로 저장하고 그 지급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정보통신회선을 통하여 자금결제가 이루어지는 화폐라고 할 수 있다.전자화폐에 의한 전자결제는 일반적인 전자자금이체와 구별되는데, 즉 전자화폐시스템의 경우 금전적인 가치가 사용자가 전자화폐를 사용하기 전에 미리 소비자의 IC카드(IC: Integ있다.
목 차1.19세기 말 국내외의 정세2.동학농민운동의 배경3.동학농민운동의 경과--동학농민운동의 경과 (1)--갑오농민운동의 경과 (2)4. 동학농민운동의 봉기--경군의 남하와 전주설 함락--전주 화약과 집강소 설치--제 2차 봉기--공주우금치전투5.동학농민운동의 교훈6.동학농민운동의 총정리 (결론)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1894년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이 운동은 처음 교조 최제우의 신원운동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민란과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황현이 동학이 난민과 합쳐졌다. 라고 표현한 것은 이 경우를 가리킨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에 있어서 동학은 농민의 요구를 횡적으로 연결시킨 조직적 매개체 역할 또는 단순한 종교적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사상적 계기 또는 농민운동의 지도원리로서의 동학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데서 나온 학설에 지나지 않다. 동학은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내면적 구제에서 구하려고 하는 종교적 성격과 국가의 보위와 농민구제활동을 철저화 하려는 정치운동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면서 역사적으로 전개시켜 나간 것이다.1. 19세기말의 국내외의 정세1830년대까지 근대자본주의는 전 유럽을 지배하고 4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중국의 개방, 캘리포니아와 호주의 금광 개발 및 급격한 식민, 일본의 개국 등이 연이어 일어나고 세계 시장을 대략적으로 완성하였다. 1860년대는 자유 경쟁의 발전의 최고 한계였고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근대적 독점의 발생기이며,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지구상의 대 분할이 19세기 말까지 진행되었다.80년대 이후 서구자본주의 제국(諸國)은 국내에 있어서의 경제공황, 그 밖의 경제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하여 새로운 상품시장을 바라고 있었으며 또한 저하하기 시작한 이윤을 보충하기 위하여 풍부한 원료 자원과 새로운 자본투하 시장을 정열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은 아시아, 특히 봉건중국과 봉 민란은 하나의 행사거리가 되고 있었고 드디어 갑오년(1894)의 농민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2. 동학농민운동의 배경동학농민운동은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로 국가재정도 이 지역에서 크게 의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전시대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어 농민들은 항상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었다.1894년 2월 10일 고부군 군수 조병갑의 지나친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광범한 농민층의 분노가 폭발하여 민란이 일어났다. 민란의 직접적인 불씨가 된 것은 만석보이 개수 문제에 따르는 수세징수사건에서 비롯되었다.1892년 말 고부군수로 부임해온 조병갑은 탐관오리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기회있는 대로 갖가지 명목으로 수탈을 자행하였는데 농민에게 면세를 약속하고 황무지 개간을 허가하여주고도 추수기에 강제로 수세하고 부민을 체포하여 불효., .불목, 음행, 잡기 등의 죄명을 씌워 그들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은 것만도 2만여냥에 달하였으며 자기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강제로 거둔 돈이 1000여냥이나 되었고, 대동미를 정미로 받는 대신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질이 나쁜 쌀을 사서 상납하여 그 차액을 착복하기도 하였다.1893년 12월 농민들은 우선 억울한 사정을 민소의 형식으로 군수에게 진정하기로 하고, 동학접주 전봉준을 장두로 삼아 군수 조병갑에게 보내는 사발통문을 작성하여 봉기를 맹약함과 동시에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의 집에 도소를 정하고 1)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것.2)군기창과 화약을 점령할 것.3)군수에게 아유하여 인민을 침어한 탐리를 격징할 것.4)전주영을 함락하고 경사로 직향할 것 등의 4개항을 결의하였다.이듬해인 1894년 2월 10일 전봉준은 김도삼, 정익서, 최경선 등과 함께 봉기하여 고부군아를 습격하고 불법으로 수탈되었던 수세미를 되찾아 농민에게 돌려주는 동시에 일단 해산하였다. 거부군수 조병갑은 간신히 난을 피해 전주에 이르러 전라감사 김문현에게 보고하고 다시 그문은 크나큰 감동을 일으켰다. 장흥의 이 아무개는 80살의 늙은 몸으로 군민을 고무하였으며 순천의 이복룡은 14세의 소년으로 4만 의병의 의표가 된 것으로 보아도 당시 인민 대중이 얼마나 열광적이었나를 알 수 있다. 농민군은 단시일에 태인, 금구, 정읍, 부안 일대를 소탕하고 4월 7일(양력 5월 11일)에는 고부 우덕면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의 별초군과 보부상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23일에는 중앙에서 급파한 홍계훈 휘하의 경군을 장성군 월평황룡시에서 궤멸시키고 28일에는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전주성을 점령하였다.사태의 중대화에 놀란 중앙 관부에서는 원세개를 통하여 청병의 파병을 요청하는 동시에---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그들의 상투적인 외세 의존의 좋은 실례이다---삼남 초무사 엄세영과 신임 전라 감사 김학진으로 하여금 기만적인 호도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그 양보조건은 (1) 탐관오리를 징벌할 것, (2) 채권을 파기할 것, (3) 횡포한 양반과 토호를 엄단할 것, (4) 천민의 대우를 개선할 것, (5) 토지를 공평하게 분작할 것, (6) 동학을 용인하고 동학인의 자유를 보장할 것 등 이었다.전봉준은 병사를 쉬게 하고 그 동안 내외 정세를 살피기 위하여 초무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5월 8일에 평온하게 전주성을 퇴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전봉준 장군의 크나 큰 실수의 하나였다. 이것은 단지 갑오동란에 있어서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농민군이 범함 치명적인 과오였다. 삼남의 요지 전주를 적에게 넘겨준 것은 투쟁의 중단과 무장 해제를 의미한다. 때여 때여 다시 오지 않으리 라는 동학 군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회는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성공에 도취하여 언약상의 성과만으로 투쟁을 중단하는 것은 과거의 모든 혁명 투쟁을 용두사미로 만들었던 것이다.* 갑오농민운동의 경과(2)전주성을 퇴거한 전봉준 장군의 직속 부대는 순창, 남원 지역에 포진하여 북상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비록 전주성은 관군에 양도하였으나 호 수 없게 되었다. 동학농민군은 금구, 태인, 일대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였으나 우세한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공주 공격 때 합류하였던 손병희 통솔하의 북접군(동학교인은 北接과 南接으로 갈려 있어, 북접은 호서를 기반으로 남접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였다)도 남접군과 운명을 같이하게 되어 전라도에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반혁명군은 일본군, 관군, 수성군(양반과 부호의 자위단)으로 구성되어 뿔뿔히 흩어진 농민군을 각처에서 소탕하게 되었다. 갑오농민운동은 1년 동안 계속된 후 진압되았으며 전봉준 장군은 적에게 체포되어 을미년(1895) 3월 17일 서울 감옥에서 동지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등과 더불어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그때 나이 41세였다.4. 동학농민운동의 봉기1894년 4월 전봉준은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에 모여 민간에 포고하여 이번의 거사는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에 있음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창의문에서 과감히 봉기할 것을 요청하자 근방의 10여읍에서 이에 호응하였고,10여일 만에 1만여명이 동원되었다. 동학교도와 농민과의 결합은 이때부터 비롯되었고,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봉기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 전봉준은 창의의 뜻을 천명하는 4개의 행동강령인 1)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손상하지 말 것.2)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것.3)일본오랑캐를 내쫓아 성도를 밝힐 것.4)군사를 거느리고 입경하여 권귀를 모두 죽일 것 등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창의의 뜻을 표하는 또 다른 격문을 작성하여 농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요청하였다 무장.백산에서의 봉기는 외세와 집권층에 대한 도전이면 개혁운동으로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5월에 들어서면서 부안 관아를 점거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라감사 김문현은 영장 이광양과 초군 이재섭 등에게 명하여 별초군 250명과 보부상으로 편성된 관군을 이끌고 부안방면의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게 하였다. 관군은 5월 10일에서 11일 새벽에 걸쳐 도교산에 근바 아래로부터의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한 개혁요구는 사태의 진전에 따라 보충되고 또한 수정되어 주장된 것이다.*전주화약과 집강소의 설치 *한편 초토사 홍계훈이 거느린 경군은 동학농민군의 뒤를 따라 6월 1일에는 전주성 밖에 이르러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들어갔다. 그 동안 6월 일과 6월 6일의 두 차례에 걸친 양군의 접전은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나와 선제 공격한 출격전이었는데, 이번에는 동학농민측에 큰 피해를 준 패전으로 그쳐 도리어 전의를 상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초토사 홍계훈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학농민군에 대한 선무공작에 착수함으로써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그는 고종의 윤음과 자신의 효유문을 성내의 동학농민군에게 전하고 탐관오리는 법으로 다스릴 것을 약속하면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본업에 종사할 것을 종용하였다.이에 전봉준은 원정서를 두 차례에 걸쳐 양호순변사 이원희에게 제시하였다. 동학농민군이 두 차례에 걸친 패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전의를 상실한 아래서 전봉준은 폐정개혁안을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면 해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강화안을 제시하였다.여기에 초토사 홍계훈도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6월 11일 전주화약이 성립되고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거한 지 10여일 만에 철수하고 모두 해사하여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전봉준은 20여명의 동지와 함께 전주와 인접해있는 순창, 남원에 남아 있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관군도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지 며칠 뒤 강화병 200명만 남겨 전주성을 지키게 하고 대부분은 철수하여 서울로 돌아갔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휩쓸고 지나간 전라도일대에는 치안과 행정이 거의 마비상태에 있었고 어떻게든지 복구되어야 할 형편이었다.양호순변사 이원희는 6월 22일에 효유문을 내려 민폐의 근절과 관리의 탐학을 엄금할 뜻을 밝히는 한편 각자 면리에 집강을 두어 민간에 억울한 일이 있으면 집강을 통해 영문에 호소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전라감사 김확진은 전봉준을 그의 감영으로 초치하여 치안의 복구와 관민의 화굳혔다.
- 目 次 -序論本論1. OECD의 성격2. OECD의 기능3. OECD의 연혁4. 목적 조직 및 운영방식5. 신규회원국 가입관련 규정6. 회원국의 의무7. OECD 가입 절차8. 활동 방법9. 주요 활동 분야10. OECD의 주요 분야별 활동 연혁11. 조직 일반12. OECD의 확대 발전13. 최근 OECD 현황 (OECD개혁)14. 우리나라의 OECD 가입추진 배경과 전망15. 한국의 OECD가입의 의의16. OECD 가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17. OECD와의 협력증진 방안結論『OECD』에 관하여「국제경제기구론」- 서갑성 교수님序 論■ OECD의 탄생배경OECD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이름 그대로 회원국간의 경제협력 및 경제 정책의 조정을 취지로 하는 국제 협력기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OECD의 역사는 그 전신인 OEEC로부터 시작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동구 공산권으로부터 서구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서유럽 경제부흥 정책일 마샬 계획(Marshall plan)을 세워 대규모 원조자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1948년 4월 탄생한 OEEC(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nc Cooperation :유럽경제협력기구)는 마샬 계획을 바탕으로 경제부흥 정책을 실행하는 서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체였다. 그러나 이후 서유럽의 경제 회복이 이뤄지고, 또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단독으로 감당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서유럽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며, 이에 따라 OEEC의 성격의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더구나 서유럽내의 새로운 경제 공동체인 EEC(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 유럽경제 공동체)와 이를 견제하는 EFTA(European Free Trade Area : 유럽자유무역지역)가 양립하게 되었으며, 또한 유럽과 북미 선진국들과의 보다 긴밀한 경제협력을 위해 복합적이고 개방적인 형태의 OEEC 개편이 필요하게 되었다.이에 따라 1960년 12월에 오고 있다.이상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OECD가 필요한 경우에 구체적으로 취할 수 있는 법적 수단으로는 규범의 성격을 갖는 결정(Decision), 권고(Recommendation), 협정(Agreement) 등이 있다.그 이외의 각료선언(Ministerial declaration), 약정(Arrangement), 지침(Guide-line) 등은 규범은 아니며 단지 도덕적, 정치적으로 준수해야 할 의무를 내포하고 있다.3. OECD의 연혁□ 1948. 4. 16"유럽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OEEC)라는 이름으 로 발족.- 16개 서유럽국가들을 회원으로 발족하고, 독일과 스페인이 추후 가입함.□ 1961. 9. 30"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로 확대 개 편됨.- 18개 OEEC 회원국 및 미국, 캐나다 등 총 20개국으로 구성됨.□ 유럽공동체(현 EU)가 투표권이 없는 회원으로 참여.□ 일본(1964), 핀랜드(1969), 호주(1971) 및 뉴질랜드(1973)의 추가가입으로 선진국들이 총 집 결함.- 90년대초까지 24개 회원국으로 구성됨.□ 그리스 및 터키이외에는 모두 선진국들임.□ 90년대에 비선진국권으로 회원국 및 대화를 확대함.- 아시아와 중남미의 중진국들 및 구소련권의 영향력있는 비회원국들과 각종 정책지원프로그 램(outreach programme)을 추진함.□ 1998년 [비회원국협력위원회](Committee for Cooperation with Non-Members(CCN) 및 이 를 지원하는 [비회원국협력센타(Center for Cooperation with Non-Members](CCNM)를 설 치하여 이들 정책대화를 총괄케함.- 회원국의 확대 : 현재 회원국 총 30개국.□ 멕시코(94.5), 체코(95.12), 헝가리(96.5), 폴란드(96.11), 한국(96.12) 고 있음.8.1 정보교환 및 제공o 회원국 상호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OECD 활동과 과제수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함.o OECD 각 회원국들은 자국 및 여타 회원국의 경제 및 사회정책에 관하여 관련 위원회에서 의 토의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일방 국가의 정책이 타방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식을 제고시킴.8.2 정책 협의 및 연구o WTO 또는 IMF 연차회의에 앞선 협의의 전 단계로 회원국간 의견교류 및 협의를 진행하고, 가능한 경우 공동 해결책 및 전략을 수립함.o 보다 심층적인 경제 사회정책의 효과분석이 요구되는 문제에 관해 사무국의 전문요원으로 하여금 조사작업을 수행케 하여, 관련 위원회 사무총장 및 이사회에 그 결과를 보고토록 하 고 그중 일부를 공개 발간함.8.3 권고, 지침 등 공동 규범의 마련o 주요 사항에 대한 OECD 이사회의 합의를 통하여 회원국들에 대한 권고 지침 및 의무사항 을 공표, 시행함.8.4 협력 및 공동 조치o 주요 사항에 대한 OECD 이사회의 합의를 통하여 회원국들에 대한 권고, 지침 및 의무사항 을 공표 시행함.o 회원국 또는 비회원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의 정책검토(review)를 실시하여 문제점을 파악하 고 발전적인 정책방향 수립을 위해 필요한 자료 및 여타국의 경험을 제공하며,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협조를 제공함.9. 주요 활동 분야9.1 회원국 경제의 상호 의존성에 입각한 활동(예 : 통화 산업 거시경제정책협의 및 조정)9.2 OECD 회원국간 입장조정을 위한 활동(예: UNCTAD와 관련한 대개도국 관계, OPEC 산유국과의 관계조정)9.3 세계경제체제 개선을 위한 OECD의 선도적 역할(예 : GSP 제도의 채택, IAEA에서의 원자력 책임에 대해 헌장채택 유도, 경상무역외거래 및 자본이동 자유화, 투자확대, 수출신용지침 제정, 다국적 기업활동의 규제, 국제투자규범 마 련 등)o OECD의 활동은 경제 무역 환경 등 24개 위원회를 중심으로 약 170개의 규범(Acts)을 채택 하였고, 매년 요 경제현안 및 정책에 대하여 협의하는 능동적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국 별항 목OECD 평균(A)한 국1(B)상대비율(%)(B/A)1인당 전력생산컴퓨터보유대수(1,000명당)인터넷 가입수(1,000명당)해외직접투자/GDP외국인의 해당국 투자비중소비자물가상승률노동생산성(1인당 시간당 부가가치)해외특허건수(10만명당)3대 교역상대국과의 수출 비중경제성장률('91-'95)투자율(총투자/GDP)8,485KWh('92)188('95)11개선('95)1.6%('94)1.1%('94)3.0%('95)28.5$('94)46.3('93)41.8%('94)1.8%18.3%('94)2,996KWh770.7개선0.7%0.2%4.5%8.3$3.143.8%7.1%37.2%35.341.06.443.818.2150.029.16.7104.8390203< 표 > 한국의 경제력 비교주 1) 비교 수치는 OECD와 동년 기준임.자료:「한국의 국가경쟁력 현황」대우경제연구소현재 우리나라 경제력은 24개 OECD 회원국('94년 이후 가입국 제외)들에 비하여 경제성장률, 투자율 등 성장부문을 제외하고는 주요 경제지표에서 회원국들의 평균수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경제의 불안정성을 표시하는 물가상승률과 특정 3국에의 수출의존도는 각각 회원국 평균보다 1.5배와 105%정도 높게 나타났고 여타 7개 항목들은 6%대에서 40%대의 저조한 수준을 보였다.또 '95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GNP와 교역규모도 각각 29위와 12위로 1만 76달러와 2천 602억 달러를 기록해 평균을 밑돌았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및 성장잠재력을 표시하는 투자율에서는 우리나라가 OECD회원국 평균보다 각각 4배와 2배 만큼 높았다.항목국별1인당 GDP ($)외채부담률(%)(외채상환/수출)경상수지적자비율,%(경상수지적자/GDP)무역의존도,%(수출+수입)/GDP한 국('96)10,076('95)5.64.554.3멕시코('94)3,896('93)26.97.536일 본('64)920('65)1)-0.5414.6< 표 > 3국의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준수해야 된다는 점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끝으로 OECD가입에 따라 GSP활용과 같은 과거 개발도상국으로서 누리던 수혜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리라는 비판론도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 양자는 반드시 상호 연결된 하나의 등식은 아니라고 보며, 따라서 분리하여 교섭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덧붙여 한국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재정립됨에 따라 항상 개발도상국 편에서 혜택을 향유하던 과거의 습성에서 점차 탈피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음을 지적해둔다.15. 한국의 OECD가입의 의의이미 우리는 지난 96년 OECD에 가입하여 현재 회원국으로 다른 29개 나라들과 함께 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OECD가입논의가 대두된 이래 단계별로 내실을 충분히 다져오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당시 정부는 다분히 명분만을 앞세워 ' OECD가입이 곧 선진국을 의미한다'는 식의 여론을 오도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국경제가 성장의 기반을 확립하고 대외개방에 대비하여 각 부문에 있어서 경쟁력을 갖도록 정부가 유인책을 전개했어야만 했다. 그 중요한 과정이 바로 규제의 완화와 함께 경제정책 및 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확고한 방향과 원칙의 수립을 전제로 자율성을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이른바 '선 대내 개방 후 대외 개방' 기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시기적으로 적절한 조정과정의 기회를 놓치기는 했지만 이미 OECD에 가입한 지금 한국경제의 운영에 새로운 개혁시도의 실현이 시급하다.OECD가 비록 구속력을 가진 기구는 아니라 하더라도, 회원국으로서 공식적으로 약속하면 그 내용을 지켜야만 하는 도덕적, 심리적 의무를 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OECD회원국이 된다면 그 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정책의 투명성, 일관성, 신뢰성 및 예측가능성을 국제적으로 보장해야 함을 물론이다.이와 같이 한국경제의 발전단계에 비추어 국내적 요청 및 과제가 OECD의 기능이나 취지와 연계될 수 있다는 점 이외에도 국제 경제적 추세 역시 비슷한 방향을 있다.
-目 次 -序論本論1. 경제협력이란 무엇인가2. 경제협력의 형태3. 지역별 대표적 경제협력체4. 동북아 지역의 경제 현황5. 동북아지역 경제협력 현황6. 동북아 각국의 경제통합 논의의 현황7. 이론적 논의와 모델들8. 동북아 경제협력의 가능성 및 구상9. 동북아 경제협력의 구상結論참고문헌동북아협력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안「국제경제법」 - 윤주한 교수님序 論세계화 현상이 전세계 차원에서 확산·심화되어가는 와중에서 역설적으로 지역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경제의 모습이다. 유럽연합에서는 2002년 1월 1일부터 유로화의 일상적인 통용이 시작되었다. 유럽은 지역경제협력의 최고 단계인 통화통합을 거쳐 이제 명실공히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발라사(B. Balassa)는 경제단위간의 차별제거의 정도에 따라 경제통합을 자유뮤역지대(Free Trade Area), 관세동맹(Custom Union), 공동시장(Common Market), 경제동맹(Economic Union), 완전경제통합(Complete Economic Integration)으로 분류하였다.최근 세계는 한편으로는 WTO 체제의 출범을 계기로 자유주의를 추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지역적, 문화적, 경제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지역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1993년에는 이미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ssociation : NAFTA)이 체결된 바 있으며, 1994년에는 유럽공동체가 확대된 유럽연맹(European Union : EU)이 출범한 바 있다. 이러한 경제통합의 형태를 나타내는 지역주의 경향이 비가맹국인 우리나라에 직접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원심력이 커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주의의 구심력이 강해지는 세계경제의 동학(dynamics) 뒤에는 정치와 전략이 자리잡고 있에너지와 비료등이 부족하며,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에 편중농작물과 목재의 공급원, 물류기지(훈춘 등)의 가능성요녕성중국의 중화학공업 기지로서 중공업의 비중이 3/4 정도이며, 철강, 금속공업이 중공업의 1/3 정도를 차지자본과 에너지가 부족하고, 설비가 노후되어 있으며,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에 편중석유(요하), 석탄, 철광석, 몰리브덴 등 지하자원과 노동력북한산업구조는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되어 있으나, 군수공업의 비중이 높고, 수출은 비철금속과 위탁가공에 의한 섬유제품 위주자본 부족과 에너지 및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설비 노후화로 산업생산이 부진하고, 정치적 불안정 요소가 존재마그네사이트를 위시한 각종 광물자원, 양질의 노동력, 관광자원(금강산 등), 물류기지(나진·선봉)의 가능성한국제철, 자동차, 조선, 전기, 전자, 섬유산업 등이 고도로 발전무역마찰의 문제를 안고 있고, 에너지자원과 광물자원이 부족기술수준이 비교적 높고, 각종 산업 발달일본제철, 자동차, 조선, 전기, 전자, 정밀기계, 정보산업 등이 고도로 발전무역마찰의 문제를 안고 있고, 에너지자원과 광물자원이 부족하며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음풍부한 자본과 높은 기술수준 보유, 고도정보산업등 각종 산업이 발달자료 : マクロエンジニアリング조사연구グル-ブ 편(1994), pp.148∼149의 내용을 수정 및 보완.으나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산업설비가 노후화하여 기술 및 자본의 도입을 필요로 하며, 동북아 일대의 물류유통기지로 적합한 입지를 갖추고 있으나, 이에 관련한 사회간접자본은 정비되어 있지 않다.5. 동북아지역 경제협력 현황5.1 대외무역남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지역 5개국의 무역의 흐름을 행렬형식으로 나타내어 보면 [표 2]와 같다. 이를 보면 동북아 5개국의 전세계에 대한 수출액은 6,767억 달러, 수입액은 5,327억 달러에 이른다. 동북아 5개국이 전세계에 대해 기록한 무역흑자는 대부분 일본의 대규모 무역흑자에 기인한 것이다. 동북아 5개국 사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다.6.1 중국1978년 등소평 체제의 등장과 함께, 경제개혁 및 개방화 정책에 나선 중국은 정치적으로 비록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면서도, 경제는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양면적인 과정을 밟아왔다. 스스로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있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초급단계에서는 계획경제방식보다는 시장경제방식이 우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내세웠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에서 중국은 지난날의 계획경제적 요소를 과감히 청산하고, 대외적으로는 경제를 완전히 개방하는 이른바 개혁-개방정책으로 방향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우선 농업에서 지난날의 인민공사제도를 해체하고 자유경작과 상업생산을 부분적으로 허용한 다음, 점차 공업 부문에서도 지방공업에서부터 사적소유의 허용 및 경영의 자율성 보장을 과감히 추구해 왔다. 또한 남쪽의 광동성과 복건성을 중심으로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선진자본주의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상호합작, 합작투자사업을 벌이는, 이른바 중국식의 외향적 개발전략을 채택해 오고 있다.그 결과 중국경제는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실적을 나타내었다. 무엇보다도 80년대 후반(1985∼89)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9%에 달하여 같은 기간의 한국(10.5%), 대만(9.9%)에 버금가는 고도성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무역 면에서도 80년대 연평균수출 13%, 수입 10.6%씩이라는 급속한 증대를 가져왔다.(이상 유엔 통계연보) 그 후, 90년대 들어서는 거의 매년 12%수준의 두 자리수 GNP성장률을 나타냄으로써, 지금까지 ASEAN 제국의 성장실적을 앞지르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고도성장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경제는 급속한 수출증대에 힘입어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기조로부터 벗어남은 물론, 오늘날 외환보유액이 일본 다음으로 세계 제 2위를 마크하고 있으며, 경제 제도적으로도 주식회사 제도를 도입하고 국유 기업을 민간에게 불하하며 가격기구를 부동산시장에까지 확대하는 등 시장경로 이전시켜, 일본의 기술 및 경영지도 아래 현지노동력을 동원하여 생산한 제품을 제3국으로 수출하거나 또는 일본으로 반입시키고자 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해외에서 구입하고 싶은 상품을 스스로 기업진출을 통하여 해외에서 직접 만들어 조달하는 생산방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제 일본은 이들 지역으로부터 종전처럼 원재료나 저급의 소비재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전기제품 등 내구소비재 또는 부품, 중간재 등 고급의 생산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해외조달형 수입을 크게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해외조달형 직접투자의 증대를 통하여 우선 막대한 국제수지 흑자를 줄이고단계적 대책의 일환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이들 지역의 산업구조를 일본의 산업구조에 대한 보완적 성격으로 개편시키는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후자의 이 지역 산업구조개편의 문제는 결국 일본이 주축이 되는 동아시아 경제권 형성을 위한 제1단계 기반 조성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이상의 해외조달형 수입의 증대만으로 과연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구매자 또는 수요흡수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은 공급자로서의 역할과 함께 수요자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 나라들의 대외수지관계는 일본에 대하여 적자, 미국에 대하여 흑자구조였다. 기계시설이나 원자료 등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그를 통하여 생산된 제품을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것이 하나의 기본적 패턴이었다. 그동안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성장 메케니즘을 이른바 성장의 트라이앵글 구조로 특징지우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일본은 그동안 이들 지역에 대하여 흡수자로서의 역할보다는 공급자로서의 역할에만 치우쳐왔다.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에 있어 일본은 항상 수입대상으로는 1위, 수출대상으로는 2위의 자리에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과의 경제관계를 떠나서는 이 지역의 경제는 그 지역을 선정하여 역내제국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공동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지역내 제국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공동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지역내 상공업 및 교통의 중심지역에 국제공동의 다국적 보세가공구역 내지, 다국적 관리하의 자유무역구역을 설치함으로써 형성될 수 있다. '국제분업형 경제권'은 제한된 지역, 제한된 산업에 국한하여 각국간 무역 및 자본이동사의 자유화 조치를 취하는 도시간 부분적 자유무역지대(Partial Free Trade Zone based on Inter-City Cooperation)를 의미한다. 그는 전국경을 자유무역지대화하는 구미형 면형자유무역지대와 구별하여 역내제국의 연안지역을 연결하는 선형자유무역지대(Linear Free Trade Zone)라 명명하고 있다.「동북아경제협력모형이 총점검」이라는 주제하에서 개최된 한국동북아경제학회 할술회의에서는 총 4개의 모델이 제시되었다. 중앙대 김성훈 교수는 황해경영모델로서 소위 '장보고'모델을 제시하면서 "탈정치로 민족의 경제(실리)를 최우선시한 장보고형 해외경영철학을 되새기는 것만이 대망의 동북아 경영권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모델은 정경분리 모델이며 서해안시대의 개막에 호응하는 사실상의 환황해경제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동북아 경제협력에서 남북관계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 경북대 김영호 교수에 의해 제기된 연띄우기 모델이다. 동 모델은 한·미·일 삼각관계와 북·중·러 삼각관계가 탈냉전과정에 서로 엉켜 일종의 다중삼각관계를 이루면서 형상화된다. 마치 연의 한복판의 텅빈 구멍과 같이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면서 전체의 구심점이 되고 조정역할을 할 나라가 필요한데, 이러한 연심에 해당하는 국가가 남북한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동북아 경제협력은 연을 띄우게 하는 평화의 바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동북아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상호협력의 지역적 긴밀성과 접근의 용이성에 따라 동북아 경제협력권을 구분하고 그 범위를 점차로 넓혀 나간다는 단계적 협력확대론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