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릭터 분석의 필요성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데 있어 구성이나 시나리오도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작가 사상을 충분히 담는데 구성은 창작의 방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품 속에서 살아있는 케릭터’인데 이러한 발상은 공각기동대의 인형사처럼 창작된 케릭터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단어에 불과하다. 결국 ‘작품 속에 살아있는 케릭터’)란 작가의 의식체계를 그대로 작품에 투영한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역으로 케릭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분석하면 그 작가, 더 나아가 그 작가가 숙해있는 문화를 애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그 사람을 분석하고 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사람을 찾아가면 좀더 쉽게 문화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몇 십 년을 산 사람의 발자취를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을 연구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그중에 애니메이션의 케릭터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편의상 문화의 색체가 비교적 뚜렷이 구별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교해서 그 특성을 살펴보고 그 케릭터가 속해있는 문화까지 유추해 볼 것이다. 혹자는 흔히 비교되는 양 문화를 토대로 케릭터에 각 문화를 입힘으로써 논리를 역전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신화를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기타 여러 장르의 예술 작품을 통해서 도출된 문화의 분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기존의 문화를 애니메이션의 케릭터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도한다 해도 부자연 스러울 것이 뻔하다. 다만 작가의 의식체계가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가, 작가의 의식체계가 그와 속한 문화의 일맥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는 캐릭터의 특성을 다루는 문제 자체만으로도 자료의 부재 때문에 힘든 일임을 감안하여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기로 하자.2. 주연 캐릭터와 조연 캐릭터의 등장스토리를 끌어가기 위한 캐릭터를 굳이 구분한다면에서 부터 청소년에 이르기 까지 무수히 많은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대상을 상대로 캐릭터를 개발하느냐'인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의 타겟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정하고 그들의 기호와 문화적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는 것이다. 단지 예쁘고 귀엽다고 해서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중에 포켓몬스터 스티커, 연필, 필통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의 경우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잘만든 캐릭터 하나가 자동차 1,000만대 수출 보다도 더 큰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다.)하지만 낮은 연령층과 중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효과가 광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업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를 올바로 전달하고 예술적 가치를 극대화 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3.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디즈니의 캐릭터들은 100% 순수한 창작에 의해 탄생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진 클래식의 계보) 뿐만 아니라, 거대 제작비에 따른 부담이 제작자에게 흥행성공이라는 짐을 캐릭터에게 지워준 탓이다. 그렇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각 캐릭터는 무엇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 왔는지 몇가지 애니메이션을 통해 살펴보자.)의 길동무 집단의 경우 결코 뭉칠 수 없는 캐릭터들의 조합이지만 삐걱거리고 어긋나 있는 것들 속에 뭔가를 담고자 하는 의도 아래 한 배를 탄다. 하루의 반은 도토리 묻을 곳을 찾기 위해 보내고 나머지 반은 자기가 방금 어디다 도토리를 쿧었나 찾으러 다니는 한심한 스크랫)은 빙하기를 만드러 내고야 마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이런 천재지변에도 자신의 길을 걷는 매머드 맨프레드와 자신에게조차 무책임한 나무늘보 시드, 그리고 아기 로산, 호랑이 디에고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같이 있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하지만 이들 앞에는 물건인고’라는 물음에 작은 답을 얻었다. 즉, 디즈니의 캐릭터는 어느 캐릭터는 어느 캐릭터로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알라딘을 뮬란으로 대체해보자. 몸단장을 하고 얼굴의 눈초리를 좀 올리고 머리를 길케 늘어뜨려만 놓는다면 무슈와 귀똘이 등의 도움으로 임무를 성실히 완수해 의 명성에 전혀 흠집을 내지 않을 것이다.)여기서 디즈니 캐릭터의 특징을 짐작하겠지만 그 전에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더 예로 들어보자. 의 경우 심바와 스카의 대립이라기보다는 불의와 정의의 대결로 바라보자. 그렇다면 심바는 관객의 몰입을 위한 영웅 캐릭터일 뿐이고 무파사, 나라, 티몬, 품바,등은 영웅을 빛내는 척 하면서 주제의 부각에 초점을 맞추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것을 거꾸로 본다면 주제가 각 캐릭터를 만들어 자신, 즉 주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우리는 환타지의 눈가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럴듯한 모양새로 환타지를 찬양하는 것은 실제로 개성을 무너뜨리는 획일주의)인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조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그들의 문화 속에는 흥행의 기치아래 권선징악과 인간애의 물결을 강요하는 의도된 구속이 숨어있는 것이다.물론 권선징악과 끈끈한 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야 세기를 넘어서서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관객은 제작자의 의도에 의해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미심쩍어하던 이라크 전쟁도 그들의 흥행 성공과 함께 악은 추방되어야 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세계속에 심어주고 있지 않은가? 다시말해 인간본위라는 진리대신 세계속에 전파된 미국 나름의 가치관)에 의해 악의 징벌이라는 새로운 진리가 그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4.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처음 본다면 ‘뭐하자는 걸까?’라는 의문은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특히 각 캐릭터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여기고 감상하자면 숟가락 잡을 시간도 없이 보고 또 보고를 외쳐야 한다. 그만큼 주제 잡기도 힘드로 캐릭터의 특성을충실한다.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는 결론이 아닌 과정일 뿐이다.) 기계공으로 일하는 파즈,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운명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타, 야망에 불탄 무스카, 원하는 것은 얻어야 하는 도라.) 각 캐릭터들은 자연 파괴를 막아야하는 전사가 아닌 비행석의 주위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인 것이다.)과 같은 순정 애니메이션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구분되는 캐릭터의 특성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애초의 질문을 되새겨 본다면 그 차이는 의외로 쉽게 관찰된다.‘의 각 캐릭터들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청순한 사랑을 위한 도구라고 보기에는 그 존재의 아름다움이 무색할 지경이다. 물론 사랑의 과정에 이용되지 않은 캐릭터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각 캐릭터의 아름답고 잔잔한 모습들이 일본식 소나기라는 평을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즈쿠와 세이지의 사랑이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벅찬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아름답고 순수한 본성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일상에 혹은 추억에 있는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 아닐까?)마지막으로 를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변화가 일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명해진 선의 느낌이 캐릭터를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 지경이다. 이미지에 대한 분석은 차우에 미루더라도 캐릭터의 특성 역시 변화된 모습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만들려는 의도에 의해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과 자신의 의지를 잃은채 주제에 얽매인 캐릭터의 표현은 다소 식상한 면을 보인다.)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몸은 좁은 통속에 갖혀 잇지만 지향하는 곳 만큼은 넓은 하늘인 한 그루 나무와 같다. 목표를 향해 서로 엉켜 나아가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있고 의지가 있는 생명체로 존재하는 것이다.)5. 캐릭터 분석의 결론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릭터가 사용되는 것을 보류하고 흥행을 위한 이미지 묘사와 캐릭터의 표현에 보다 많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지게 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작룸의 완성도를 위해 각 캐릭터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진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제에 부합됨에 따라 움음과 감동보다는 생각에 잠기고 의미를 가져다주는 작품이 탄생된 것이다. 물론 흥행성이 이러한 캐릭터의 성질을 결정짓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제작자의 가치관이 캐릭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디즈니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누가 보아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우리는 그 차이를 통해 애이메이션이 지향해야할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특히 게임으로 갈수록 그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지금, 급속히 파고들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고려할때 한 번쯤 상업성에 너무 조급해 관객을 단순화시키고 애니메이션의 본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의 기운이 맴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에 대한 감상평이 그저 ‘좋다’라는 말로 일관하는 청소년의 니리 속에 자연 파괴의 안타까움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제작국가의 정서가 어더한 모습으로 표출될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한 예로 한때 풍미하던 엽기토기류의 캐릭터가 있다. 의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 캐릭터는 저작권 침해 소송가지 벌여가며 팔을 걷어 부치고 돈벌러 나섰다.)영화적 특성을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무조건 흥행에 성공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지만 의미를 잊은채 인기 몰이에만 몰두한다면 우리의 청소년은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과 함께, 혹은 왜곡된 일본 교과서와 함께 서서히 타성에 젖어갈 것이 분명하다.‘케릭터는 나‘라는 감정 이입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흥행을 위한 캐릭터의 창작보다는 가치관 정립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를 연구하는 제작진의 노력과 올바른 작품을 구분하는 관객의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목 차1. 캐릭터 분석의 필요성2. 캐릭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