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역학의 발달사(1) 재료역학이란?재료역학은 여러 가지 형태의 하중을 받는 고체의 거동을 취급하는 응용역학의 한 부분이다. 이 분야의 다른 이름은 재료의 강도와 변형체 역학이다. 재료역학에서 고려되는 강체는 축하 중을 받는 봉, 비틀림을 받는 축, 굽힘을 받는 보와 압축을 받는 기둥이 포함된다.재료역학의 주목적은 구조물에 작용하는 하중에 대한 구조물과 구 부품들의 응력, 변형률 및 변위를 구하는 것이다. 파괴에 도달하는 하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하중 값에 대하여 이 양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러한 구조물들의 기계적 거동에 대한 완전한 윤곽을 얻을 수 있다. 이 기계적 거동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은, 비행기나 안테나, 다리, 자동차 등의 모든 구조물의 안전설계에 매우 긴요한 요인이 된다.이론해석과 실험결과는 재료역학에 있어서 독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계적 거동을 예측하기 위한 공식이나 방정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재료의 물리적 성질을 알지 못한다면 이런 표현들은 실제 설계에 있어서는 사용될 수 없다. 재료역학의 발전은 이론과 실험 두 가지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왔다. 어떤 경우에는 이론을 통하여 유용한 결과를 얻었고, 어떠한 경우에는 실험을 통하여 유용한 결과를 얻어왔다.(2) 재료역학의 발달사고대의 많은 인공물들은 현대의 기준으로도 인상적인 건축물들이 많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로마의 수도교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재료역학과 힘의 전달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건축이 불가능하다. 이를 통하여 고대시절부터 재료역학에 관한 지식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1. 고대의 재료역학고대인들의 건축물들은 신화를 바탕으로 건축되어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건축되었으며, BS 4000~3500년경에 조성된 세계최초의 사원지대모두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신전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에서도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건축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1) 메소포타미아 문명(BS 320것으로 추정된다.우르의 지구라트-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고대도시 우르는 기원2jo 2800년에서 2300년 사이에 수메르의 수도였다. 이 지역에서는 무수한 고대의 기념 건축물들이 발연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지구라트이다.지구라트는 일종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신이나 성인의 유골을 모신 맨 꼭대기의 사당을 향해 점차 좁아지는 거대한 계단형상을 하고 있다.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우르의 수호신인 달의 여신 나나(Canna) 또는 신(Sin)을 모신 지구라트였다. 그 건축물은 너비 64 64 미터에 높이가 12미터나 되었다. 삼면은 수직 벽으로 이루어져있고, 네 번째 면에는 3개의 거대한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각기 10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이 건축물은 기원전 3000년 격에 이미 수메르인 들이 건축물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원기둥, 아치, 돔, 둥근 천장 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친숙하게 사용하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각각의 거대한 벽들은 기부에서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모두 바깥쪽으로 약간 불룩한 곡선은 이루고 있어서 강한 인사를 준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기법을 엔타시스 라고 하는데 이 기법은 15세기 후에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다시 발견된다. 이를 통하여 수메르인 들이 고도화되고 정교한 건축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기록은 이 지구라트를 전설화한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수메르인 들은 거대한 사원만 지은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벽돌로 성을 쌓았다. 그중에서 어떤 것은 폭2.6m과 높이 6.3m의 것도 있다. 그리고 홍수조절과 농업을 위해 댐을 쌓기도 하였고, 수송수단을 위해 운하를 만들기도 하였다.2) 이집트 문명(BS 3400~ AD 600)고대 이집트 문명은 BS 3400~ AD 600년에 걸쳐 발달하였다. 원래는 나일 강 연안의 위아래로 두 나라로 분할되어 있었으나, 메네스 왕이 후에 통일하였다.의 최소의 원형은 걸살 모양의 평평한 마스타바(Malabar)였고, 그 위 이것을 몇 개 포개어 놓은 계단 모양의 것이었다. 이어서 피라미드형이 자리 잡았고 점점 더 대형화하였다.이집트의 피라미드중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가로 세로 230m, 높이가 146m, 경사면의 기울기가 51 50 의 정사모뿔이다. 네 모서리는 동서남북을 정확히 가르치고 있으며 사용된 석제는 화강암으로 평균 2.5톤짜리 200만개를 쌓아올린 것으로 추산된다.고대문명에서 보여준 건축물들의 역학 기술들은 많은 부분에서 독창적이고 뛰어난 발명력을 보여주었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신화에 기초한 것이어서 , 역학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밝히기 보다는 하나의 종교적인 도구로만 이용되어졌다.2. 근대 재료역학1) 레오나오르도 다빈 치의 가상변위 원리(A. D. 1452~1529)근대의 재료역학으로 이끄는 주제들의 체계적인 연구는 르네상스 시대의 처음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이다.다빈 치는 그의 노트에서 수학적 과학이 적용되지 않는 곳, 또는 수학과 결합하지 않은 곳에는 아무런 확실설도 없다. 공학은 수학적 과학의 낙원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수학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 관계는 모든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이성과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다빈치는 자연연구에서 경험이나 실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험과 실험은 이성에 의해서 인도되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확실성이 없는 참된 지식의 획득을 기대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성을 신뢰 할 수 있는 도구가 수학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사고도구를 이용함으로써 확실한 지식이 얻어진다고 믿었다. 그는 이러한 확신과 함께 실제로 역학적 연구에 수학을 도입하고 수학을 도구삼아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것이 바로 가상변위의 원리인데 역학계(力學系)의 힘의 평형을 논할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서 더욱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 주장은 피사의 사탑 실험으로 증명되었고 모든 물체는 종류나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법칙을 얻어냈다. 또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의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수정했다. 그것은 물체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고 상대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1600년을 전후 갈릴 레오는 운동의 원인이나 목적보다는 운동 자체의 정확한 기술에 주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무엇이 물체를 떨어지게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떨어지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전환은 갈릴 레오로 하여금 '물체의 낙하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s t2)는 널리 알려진 법칙을 얻게 해주었다. 그러나 갈릴레이 역학의 한계점은 중력에 의한 낙하운동을 '자연스럽게 가속되는 운동'(naturally accelerated motion)이라고 해서 다른 일반적인 가속운동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시간에 비례해서 속도가 증가하는 경우에 대해서 (s t2)라는 법칙을 얻어내었으면서도 이것이 속도가 시간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등가속도운동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적용을 낙하운동에만 한정시켰다.3)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A. D 1642~1727)고전물리학을 완성시킨 아이작 뉴턴은 1642년 영국의 울즈솝(Woolsthorp)이라는 마을에서 팔삭둥이 유복자로 태어났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으나 그는 85세까지 장수하였다.1665년 영국에 페스트가 유행해 전 국민의 10%가 죽었다. 이로 인하여 케임브리지 대학도 문을 닫았고의하여 사실상 거의 모든 물체의 운동의 원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4) Robert Hooke's Law(A. D. 1635~1703)로버트 후크는 뉴턴과 같은 시대인 1635년 영국의 와이트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또한 뉴턴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탄성에 관한 법칙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후크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법칙은 어떤 의미로 고체물리학의 시작이며 기계공학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물체에 가해진 하중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형 량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법칙이다. 어떤 임의의 물체에 하중이 가해지면 어느 한계에 이르기까지는 변형 량이 하중에 선형적으로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응력(Stress)이 , 변형률(Strain)이 , 탄성계수(Elastic Modules)가 로 표시될 때 후크의 법칙을 수식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배운 용수철에 의해 물체에 작용하는 힘 F=ks를 이미 알고 있다. k:탄성계수, x:평형 점에서 물체까지의 거리)= ·{5) Jacob Bernoulli(A. D. 1654~1705)스위스의 수학자인 야곱 베르누이는 동생 장 베르누이와 함께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팝아 미적분법을 발전시켰다.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교수가 된 야곱은 평생을 수학연구에 보냈다. 등시성곡선, 현수선(catenary)의 문제를 연구하였고, 탄성곡선의 방정식을 발견하여 대포의 포신이나 망원경의 통 모양을 수학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하였다. 야곱 베르누이는 변분법을 연구한 최초의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수학적 확률을 최초로 공부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베르누이 분포'와 베르누이 정리 베르누이 정리 적분'(integral, 1690년)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베르누이는 보(棒이 외력에 의하여 굽힘 작용을 받는 경우, 이것을 보 라고 한다)의 곡선은 Moment에 비례한다는 개념(전단력과 모멘트는 보의 길이에 비례한다)을 밝혀 물리학에 대한 공헌도 크다.6) Leonard Euler 기둥 좌굴이론(A. D.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