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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준 소설연구
    ‘우리 시대의 황수건은 누구인가?’목차1. 소외된 사람의 순수성2. 바보 ‘황수건’의 힘3. 달밤4. 우리시대의 ‘황수건’은 누구인가?줄거리작중 인물 이선생은 성북동으로 이사 와서 황수건이라는 못난이를 만난다. 황수건은 비록못난이지만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러운 눈을 가지고 있으며 순박하다. 그는 신문을 돌리러 이선생 집에 와서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이선생은 그의 순수함에 귀찮아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신문 보조 배달원으로 있는데, 그의 꿈은 원배달이 되는 것이다. 그는 그 꿈이 곧 실현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이선생은 황수건에게 삼산 학교 앞에서라도 장사라도 해 보라고 돈 삼원을 주나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도망을 간다. 달포만에 찾아온 황수건은 포도를 이선생에게 준다. 훔쳐온 것을 알고 포도값을 물어주나 , 이선생은 그의 순정을 소중히 여김에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그 후 황수건을 만나지만 그의 모습은 애처로울 뿐이다. 작중화자인 이선생은 그를 그런 상태로 만든 세상을 원망한다.)1. 소외된 사람의 순수성상허의 초기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정상적인 삶과 시대로부터 소외된 인물의 설정으로 드러난다.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에 대한 관심의 한 양상으로서 드러나고 있는 하층민에 대한 관심은 현실세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들 내면에 자리 잡은 훼손되지 않은 순수성이 주목되어 있다. 즉 작가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고 좌절당하는 인물상들을 통해 희미한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간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실 인식적 측면은 작가의 독특한 문학적 형상화 방식에 따라 짙은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은밀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은 그의 문학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줄기로써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하층 계급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소외 계급에 대한 공감을 단일하고 밀도 높은 형식적 기교로 뛰어나니를 사용하여 그런 현실을 빚어내는 삶의 우연성과 운명적인 힘을 그림으로써 삶에 대한 우수를 자아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태준 소설의 초기 소설들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현실의 모습은 이런 측면으로만 한정되어 있으며, 이태준 소설들에서 비판적으로 그려지는 현실의 형상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태준의 「달밤」에서 등장인물 ‘황수건’을 중심으로 하여 위와 같은 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2. 바보 ‘황수건’의 힘「달밤」은 ‘황수건’이라는 모자라는 인물의 천진스러운 성격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적인 사람의 고통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성북동으로 이사 온 화자인 ‘나’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황수건’은 이곳 성북동이 자연 경관에 의해서보다 더욱 시골임을 느끼게 하는 인물로서, 우둔하고 모자란 성격으로 말미암아 주위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결국엔 신문 보조 배달직마저도 쫓겨나고 어떠한 현실적 가치도 지니지 못한 ‘못난이’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선량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수건이라는 인물은 나에게 긍정적 가치로 받아들여진다.‘신문사 옷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는 원배달’이 평생소원인 그의 어리숙하고 천진한 심성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인 물질적 가치에 경도되어 있는 혼탁한 현실에서 온전한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건의 반응은 생활의 터전에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실의에 빠지거나 현실의 비정성을 원망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또 다시 엉뚱한 방식으로나마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는 건강한 삶을 보여준다.그러나 수건이 보여준 삶에의 진지한 태도는 ‘나’의 도움으로 시작한 장사의 실패와 금슬 좋던 아내의 가출로써 또 다시 현실적 삶에서의 패배를 맛보게 된다. 현실은 수건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냉혹하지만 수건이 지닌 순박함이나 따뜻한 인간미는 이러한 현실의 비정성에 비례하여 긍정적 가치로 승화되고, 비정한 현실은 작품 전체에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또는 착하게 살았지만 희귀병에 걸려서 힘든 병마와 싸우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날 때면 역시나 ‘사람사는게 무엇인가’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현실은 살기 힘들고 매몰차고 비정하지만 그 속에서 그것을 헤쳐 나가고 때로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기 나름대로의 삶인데, 너무나 물질적인 것에 욕심에 사로잡혀서 진정한 세상살이가 무엇인가를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또한 달밤은 이처럼 ‘황수건’이라는 못난이를 등장시킴으로써 바보마저 제대로 살 수 없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보통 소설 속의 바보들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은 겉모습과 다른 은유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속의 바보들은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들 중의 하나가 모든 종류의 인습을 폭로하는 것, 즉 인간관계들 속에서 잘못 인식되고 그릇되게 상투화된 모든 것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 더욱 특별한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 이유는 “탐욕스러운 허위와 위선에 대해서는 바보의 이기적이지 않은 단순성과 건강한 몰이해가”)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작중 인물인 바보가 “힘에 있어서도 지성에 있어서도 우리들보다 낮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굴욕, 좌절, 부조리의 정경을 멸시에 찬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그의 행위를 통해 받게 될 경우, 이 주인공은 아이러니 양식에”) 속한다고 본다면, 「달밤」에 등장한 황수건은 바로 그의 행위를 통해서 시대의 잘못되고 그릇된 모든 것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허위와 위선이 무엇이고 여기에 대항하는 바보의 단순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황수건이 삼산 학교 급사로 있을 때 있었던 일화를 보면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그 일화를 살펴보자면 한번은 도학무국에서 시학관이 나왔는데, 황수건은 시학관 앞에서 자구 일본말을 되풀이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시학관은 처음에 그냥 웃어넘기고 마나 이런 말을 계속 되풀이 하자 드디어 화를 내고 만다. 바로 여기에 겉모습과 다른 황수건의 은유적 의미가 있다. 그 당시 도학무국 시학관이라고 하면 오늘날 도교육부 장학관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일인임에 틀림없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은 모두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수건은 도학무국 시학관에게 말도 안 되는 일어로 그를 놀리고 있다. 작가는 황수건이라는 바보 인물을 내세워 바보라는 가면을 씌우고 일상인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제에 대한 야유와 비판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 시학관 앞에서 행한 황수건의 이 같은 행위는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즉 황수건의 행위는 이제 식민지 정책의 허위와 위선에 대항한 바보의 몰이해성이다.나는 가까운 친구를 먼 곳에 보낸 것처럼 , 아니 친구가 큰 사업에나 실패하는 것처럼, 못 만나는섭섭뿐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그 당자와 함께 세상의 야박함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그래서 황수건을 바라보는 ‘나’ 이선생은 황수건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좌절의 근원인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어리 숙한 인물의 등장은 그가 이 시대와 협력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이런 권리 하에 이 시대의 모순을 비웃고 야유하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바보조차도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회는 이미 시대적 정당성을 저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이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비교한다면 여러 가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너도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어린 아이들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바로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어린아이의 등장이라는 것은 소설에서 보면 순순한 사람을 통해 어른들의 이기심이나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나 타락함을 나달하는 분위기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자의 정서는 감상적 동정이다. 즉 화자는 황수건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객관화시켜서 그의 가난을 탐색하려는 지적인 태도는 전혀 보여주지 않지만 , 황수건처럼 모자란 듯이 평가되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고 그런 삶이 좌절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슬퍼한다. 그리고 이런 희망과 슬픔이 이태준 소설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된다.)3. 달밤이와 더불어 분위기와 작중인물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이태준은 자신의 소설 속에 유난히 ‘달’, ‘밤’의 이미지 혹은 ‘달밤’ 이라는 배경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달밤」에 나타난 ‘달밤’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 주제의식과도 연결이 된다.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이라는 인물을 통해 식민지의 우울한 상황을 드러내는데 , 소설 결말에 보여 주는 ‘달밤’ 은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어우러져 그 우울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학교 급사에서 쫓겨난 황수건. 신문 보조배달원인 그의 유일한 꿈은 방울소리 울리며 달리는 원배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북동이 따로 한 구역이 되었음에도 원배달은커녕 보조 자리마저 떨어진다. 그의 처지가 하도 딱해 장사라도 해보라고 내가 돈을 주며 권했으나 그 일도 실패하고 아내마저 달아난다.각박한 세상살이에 부딪혀 고통을 겪는 천진한 사나이 황수건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힘없는 민중의 모습니다. 순진하지만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아내마저 도망갔다. 그런 그가 휘적거리며 부르는 노랫소리 ‘술은 눈물이냐 한숨이냐’는 바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눈물과 한숨이다. 그 눈물과 한숨을 달밤이 덮고 있다. ) 또한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인 듯하였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로 작용한다. 눈물과 한숨의 노래 소리 그리고 달빛은 황수건과 달밤이 하나로 용해되어 있는 모습인 것이다.황수건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힘없는 민중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다.
    인문/어학| 2008.10.28| 6페이지| 2,000원| 조회(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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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세덕의 동승 평가A좋아요
    희곡 함세덕의 ‘동승’ 감상문-동승을 통해서 본 어머니의 존재동승이라는 이름은 희곡에서 뿐만이 아니라 책 제목으로도 들어 본 것이기 때문에 낯익은 제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읽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동승’은 어린아이가 중이 되기 위해서 수련하는 과정에 있는 아이를 동승이라고 한다.이렇게 이 희곡이 지어질 당시인 1930년대에 동승을 주인공으로 하는 희곡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라기보다 그 시대에는 주로 사실주의 작품들이 많이 성행 되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는 낯설었는지 모른다. 또한 희곡의 특성상 극으로 사람들에게 보여 져야 했는데, 어린 아이를 등장시켜서 주인공을 하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동승은 주된 이야기는 어린 동자승이 절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다 한 미망인을 만나 그 사람의 수양아들로 들어가려 하지만, 주지승의 반대로 수양아들이 되지 못하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어느 날 절을 몰래 빠져나간다는 이야기 이다. 줄거리는 너무 단순하지만 이것을 읽음으로 해서 우리가 얼마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가슴속에 지니고 사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이 희곡은 다른 작품에 비해서 사회현실을 그린 사실성 있는 작품이 아니어서 큰 특징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가 희곡의 구성원리에 따라서 비교적 짜임새 있게 전개되어 있는 것 같다.아이가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절에 들어오게 된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작부터 절에서의 생활과 그 와중에 미망인을 만나는 과정, 가장 극의 절정인 주지승의 반대로 미망인의 아들이 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절을 떠나는 결말까지 비교적 짜임새 있는 구성이다.이 작품의 주인공인 도념은 어머니를 절실히 그리워하는 어린 동자승으로 나온다.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간지 수많은 세월이 지났지만은 아직까지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꼭 찾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 순수한 어린아이로 등장한다.이런 도념과 가장 극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주지스님은 이 절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으로 속세에 대해서는 아주 미련이 없으며, 도념이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미망인의 수양아들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린다. 부처의 자비가 가장 큰 자비이며 이렇게 속세에 가서 사는 것은 세상에 대한 업보가 큰 것으로 생각하여 도념을 결국 못 가게 하는 고집 강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그리고 도념의 어머니를 닮은 미망인으로 나오는 여자는 그 이전 자신의 남편을 잃고 이번에 마지막 하나 있는 자신의 아들을 잃게 되자 어린 도념을 보고서 그 속에서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려 한다. 그래서 서슴없이 도념을 자신보고 어머니라 부르게 하며 수양아들로 삼으로 하지만 친정어미의 반대와 주지스님의 반대로 아이를 결국 포기하게 된다.이런 등장인물등과 극의 기본을 바탕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속세와 떨어져 생활을 하는 아이. 재를 올리러 사람들이 절에 올 때 마다 부모를 따라 오는 아이들이 가장 유복하다면서 부러워하는 동자승 도념의 이야기는 엄마 없는 아이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 한 것 같다.지금의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것이 있어야 행복하고 유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이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갖고 있을 때 가장 유복하다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서 단지 잠깐 몇 줄로 제시된 도념의 말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다.부모님 밑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즐거이 사는 모습에서 이렇게 가장 평범한 삶의 모습을 가장 유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항상 같이 있는 가족이기에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그들이 다치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불행한 일이 있어야지만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이런 일상의 평범함이 가장 유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가장 필요한 생각이 아닌 듯싶다. 살기에 바빠서 더 많은 물질적인 것으로 나를 채우기 위해서 가족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인 것이다.지금 우리는 어머니가 있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를 예전만큼 소중히 생각하지는 못한다. 보다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일을 하러 다니는 바쁜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해주어야 할일을 다른 것들이 대신해 주는 경우가 늘어나 그래서 결국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도 어머니라는 소중한 존재를 잊고 살게 되는 것이다.이 밖에 도념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장면들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지스님을 따라 다니면서 틈만 나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보고, 재를 올리러 온 미망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레 괜스레 그 미망인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고 하는 모습에서 어미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미망인의 새하얀 목도리를 보고 자신도 나중에 어머니를 만나며 그것을 해 주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절에서 금기되어 있는 살생으로 토끼를 잡아 그것으로 새하얀 목도리를 만들고 싶어 했던 아이의 마음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이렇게 단순히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지만 이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도념이 주지승의 반대로 미망인의 수양아들이 되지 못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눈이 내리는 날 절을 떠나가는 장면이다.자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으러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포기 한 채 알 수 없는 길을 떠나야만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누구나 가슴 뭉쿨하게 한다. 주지스님이 도념이 수양아들이 되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야속할 정도로 까지, 그 어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업이고 죄라면서 나무라는 것이 야속하게 까지 생각 될 정도로 동승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인문/어학| 2004.12.07| 3페이지| 1,000원| 조회(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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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 이영녀 평가B괜찮아요
    희곡 김우진의 ‘이영녀’ 감상문- 이영녀를 통해 본 우리시대의 여성김우진의 ‘이영녀’라는 작품을 내가 선택한 이유는 교재의 수많은 희곡 작품 중에서 희곡에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작품을 택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러한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우선은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흥미를 갖게 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희곡 등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 이러한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흔한지 않게 생각되기 때문이다.이 작품은 희곡으로 쓰여 진 것을 고려했을 때 이영녀를 중심으로 하는 것과, 그 당시의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통해서 작품을 파악 할 수 있다. 이렇게 희곡이라는 점 때문에 등장인물간의 대화나 배경설명만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소설보다 작품파악에 있어 힘든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소설에 없는 대화의 기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희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간의 대화에서 또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있다는 것이다.등장인물의 사투리 섞인 말투나 극적인 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마치 그녀를 보면서 마치 내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도 들것이다. 이런 것들이 희곡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장점이 아닌가 싶다. 극을 통해서 작품을 느끼고 파악하는 것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극으로서 파악하는 작품의 주제는 한 것 더 우리에게 잘 전달 될 것이다.이영녀라는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적으로는 1920년대이며 주인공은 이영녀라는 여자이다. 총 3막동안 서로 다른 곳에서 이영녀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가며, 이 여성을 통해서 그 당시의 일반적인 여자들의 생활모습을 나타내려고 한 작품 이라고 할 수 있다.등장인물은 이영녀를 중심으로 이영녀가 살아가는 곳의 사람들과 이영녀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총 3막으로 구성 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1막에서는 안숙이네에서 이영녀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2막에서는 친일 자본 예속자본가를 통해서 본 이영녀의 삶과 마지막 3막에서는 이영녀가 노동자 유서방과의 관계에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희곡은 주로 대화체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등장인물간의 대화만큼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도 없다. 이영녀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성격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총 3막으로 이루어진 이 희곡에 대해서 간단하게 각 막에 따른 이야기의 줄거리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막에서는 등장하는 아이들간의 대화나 안숙이와 이영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1막에서는 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돈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2막에서는 장소를 옮겨서 강영원이라는 사람의 집이다. 이 사람은 친일 자본 예속가로서 이 집을 중심으로 모여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의 이영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당시 공장에 나가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과 이영녀를 통해 자본가들의 횡포나 돈을 버는 것의 어려움 등을 나타내주고 있다.마지막 3막에서는 노동자인 유서방을 만나서 이영녀가 다시 재혼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이영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애 대한 불행한 결말을 앞두고 있는 것이 이 3막의 마지막 이야기로서 이영녀의 불행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이영녀의 삶이 그다지 평탄하거나 편하지 못하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이렇게 김우진의 이영녀라는 작품에서는 총 3막의 다른 이야기를 통해서 여성이 그 당시 사회에서 홀로 살아가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단 이영녀라는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좀더 자세히 이영녀를 통해서 작품을 감상해 보자면, 이영녀는 남편과 헤어진 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그 이전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일에 대해서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이렇게 살아가는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등장인물인 이영녀처럼, 여자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어려움 때문에, 그 일 밖에 할일이 없다는 것, 여성들이 그 일을 선택 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이것은 그러나 이 당시의 이야기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까지 연장되어 가고 있는 일이다. 사회가 변하고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우리가 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도덕적, 윤리적인 입장에서의 이해하려고 하는 입장의 시선과 그렇지 못한 원래 이런 여자들이라는 두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다.그러나 어떤 눈으로 이것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서 하루라도 발리 여성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찾아서 자신의 위치를 굳혀가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이 밖에 이 작품을 통해서 또 생각해 볼 문제는 사람과 돈의 문제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에게 공짜를 바라며 알짱거려 달라붙었다 떨어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우리는 살펴 볼 필요가 있다.돈이 있는 자본가 밑에서 공장에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남자들보다 힘든 일이다.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이영녀의 모습에서 하기 싫지만은 해야 하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 그것을 당해야만 하는 것 등에서 노동자의 힘든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돈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서 조금이라도 돈을 얻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자존심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모습을 통해서, 작품에서는 혼자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영녀의 모습을 통해서 여성 노동자들이 그 당시의 어려운 현실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지금 이 시대애도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돈을 꼭 벌어야 하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들에 대해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하는데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 혹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 하는 여성들에게 좀더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이나 제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여성들이 혼자 살아갈 수 없어서 선택하는 재혼의 문제이다. 이 작품에서도 마지막장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이다. 이영녀가 어렵게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이미 이영녀는 그동안의 여려운 삶 속에서 지치고 많이 힘들어서 병들어 있다. 하지만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이영녀의 새로운 남편과 아이들의 새로운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또 한번의 쉽지 않은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문/어학| 2004.12.07| 4페이지| 1,000원| 조회(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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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 불모지 작품분석
    희곡 차범석의 ‘불모지’ 작품분석- 등장인물의 성격과 공간을 통해서 본 작품분석과 감상‘불모지’ 라는 뜻은 식물이 자라지 않고 거칠고 메마른 땅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읽기 전 이 제목을 보고서 이 작품이 이미 비극임을 알 수 있었다. 희곡은 크게 비극과 희곡으로 나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희곡에서는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 더 나에게는 감동적이고 의미 있게 남는 것 같다.불모지라는 작품은 정확히 어느 시대를 가르키고 있지는 않다. 단지 현대 서울의 낡은 기와집이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은 ‘최노인’ 을 중심으로 한 그의 가족들이다. 이렇게 등장인물과 배경을 통해서 희곡은 그 기본적인 틀을 갖추게 된다. 이제 좀 더 희곡의 특징에 따라서 불모지라는 작품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희곡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등장인물간의 대사와 극중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통해서 각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들에 의해서 극이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극에서 등장하는 배경을 통해서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불모지’라는 작품에서의 각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해 본다면 각자 뚜렷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최노인은 가족의 가장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며 변화하는 세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어려운 형편에 집을 팔자는 것에 반대하며 대대로 내려오는 집을 소중히 여기고 전통적인 것을 지키려하는 다소 보수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최노인의 아내로 나오는 어머니라는 인물은 그리 큰 특징은 없지만 남편의 말에 순종하며 아이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경수라는 인물은 한 가족의 가장 맏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위치적으로 가족의 대들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와 반대로 제대군인으로서 아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결국 나중에는 극의 결정적요소로서 이 작품을 비극으로 이끄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제대하고서 성격이 많이 변하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길까지 가야만하는 상황을 단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으며 그 시대의 대부분 청년의 모습을 대표해서 나타내고 있다.경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로서 그다지 큰 인물의 성격은 없지만 최노인과의 대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깨어져 있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최노인의 구세대적인 생각에 맞서서 신세대들의 생각을 갖고 있어 세대간의 생각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경애라는 인물은 영화배우를 꿈꾸는 처녀로서 이 인물 또한 이 작품을 비극으로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서 영화배우가 되 보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실패하게 되자 세상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자살을 선택하는 극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마지막으로 경운은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착한 딸로 나온다. 때로는 경수에게 동생으로서 질책도하고 의젓하게 어머니의 마음까지 이해하며 가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희생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이렇게 이 작품은 한 가족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그 사회의 단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각 등장인물이 사회의 특정 계층 등을 대변하고 있으며 이들이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 밖에 등장인물의 성격이외에 이 작품의 배경적인 면과 공간적인 면을 살펴보겠다. 희곡에서의 공간으로 지칭되는 곳은 곳 무대로서 관객들이 보고 그 속으로 빠져 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공간과 배경을 통해서 그 당시의 사회적인 모습을 단편적으로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갖고 있다.이 작품에서 가장 그 공간의 역할로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최노인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집은 번화한 상가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기와집이다. 비록 낡은 기와집이기는 하지만 이 집이 최노인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 주신 것으로 전통적인 것을 지키며 주변의 최신식 건물들의 모습에 더욱 대조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어머니의 권유와 가족들의 어려운 생계를 생각할 때에 이 집을 팔아서 더 나은 곳을 옮기고 그 돈으로 생계를 어느 정도 꾸려나갈 수 있지만, 옛것에 대한 향수와 아버지가 사주신 것이라는 것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고집을 부려서 더욱 보수적인 최노인의 성격까지 형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낡은 기와집이다.이렇게 최노인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시대상을 잘 이야기 해주고 있다. 변화하는 세대에 발맞추어 나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낡은 집 그늘에서 화초를 가꾸고 살아가는 최노인의 모습에서 보수적인 그 시대의 노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또한 그 시대에 제대 군인으로서 아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며 일자리 또한 구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경수의 모습에서 , 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오랜 실직자로 집안에서 장남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사회에서 방황만 하다, 결국 군에서 가져온 권총을 팔아서 생계수단으로 이어보려다 도둑이 되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삶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이것이 더욱 비극적이고 가슴이 아픈 것은 경수에게 취직이 되었다고 연락이 오던 그날 경수가 아이러니하게 경찰에게 잡혀 오는 것에서 그 비극의 더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이것에서는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이 생각나기도 했다. 운이 따르려하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서 그 좋은 일이 더욱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것에서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었다.경수 이외에 그 시대의 특징을 대변해 주는 인물로 또한 등장하는 사람은 영화배우를 꿈꾸는 경애이다. 젊은 여성이었으면 그 당시 이런 꿈을 한번쯤은 누구나 갖고 있었을 것을 경애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경애는 자신을 꾸미기에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꼭 영화배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다 버리지만 그것은 결국 헛되이 자신만 버리는 일이 되고 만다. 이렇게 허황된 꿈으로서 하루빨리 성공해서 돈을 벌고 유명인이 되어보려고 하는 그 시대의 한갓 젊은 여성들의 경애가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이 극에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가장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경운은 그새대의 삶의 보습을 단적으로 제시 해주고 있다. 돈이 없어서 대학 같은 곳은 가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모습에서 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이렇게 ‘불모지’ 에서는 등장인물의 개성 있는 성격과 공간적인 특징으로 인해서 이 작품이 한 시대의 사회상을 가족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개인이 아닌 가족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그 시대의 각 계층을 또한 대변해주고 있다.이러한 한 가족의 어려운 삶과 극적인 등장 인물등의 결말을 통해서 이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또한 빠르게 변화해 가는 주변의 공간적 이미지들과 크게 대조되어서 이 작품의 비극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최노인네의 낡은 기와집과 주변의 높아지는 건물들 때문에 어느덧 최노인네의 마당에는 햇볕조차 잘 들지 않아서 그늘에서 화초를 키워야만 하는 현실이 어찌 보면 이 작품에서의 비극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또한 마지막의 비극적인 작품의 결말을 통해서 현실적인 모습이 더욱 극대화 되서 나타나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빼 노을 수 없는 가족의 끈끈한 연대 속에서 그들의 어려운 삶의 모습은 이 작품을 보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마 가슴 한 구석에 각각 절실히 와 닿는 부분이 있게 만들 것이다.이렇게 한국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끈끈한 점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사실적이면서도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등장인물의 개개인의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모습을 대화로서 사실감 있게 섬세하게 표현해 보는 사람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주었다.‘불모지’라는 작품은 이렇게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을 우리에게 잘 말해 주고 있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풀조차 살 수 없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최노인의 모습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구시대적인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그 시대뿐만이 아니라 지금과도 많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어학| 2004.12.07| 5페이지| 1,000원| 조회(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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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인의 이슬람인식
    유럽인의 이슬람 인식1. 유럽인의 동양 순례- 영국인의 입장영국인에게 동양이란 현실적으로 영국의 영토였던 인도를 가리켰다. 따라서 근동을 통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식민지 인도에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상상력을 발동 시 킬 수 있는 여지는 , 행정이나 영토보유의 합법성 및 통치 권력이라고 하는 현실에 이미 제약을 받았다. 이렇게 동양이란 물질적인 영토소유에 의해 곧 소위 물질적 상상력에 의해 규정 되었다.- 프랑스인의 입장프랑스인은 주로 영국인들과는 달리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장소를 목표를 계획하고 프로젝트화하며 상상하고 묵상에 잠겼다. 곧 그들은 동양에서 전형적으로 유럽적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만할 것을 계획하였다. 즉 동양이란, 추억, 연상을 북돋우는 폐허, 망각의 늪에 빠진 여러 가지 비밀 , 숨겨진 교신으로 이루어진 동야이었고, 그것은 하나의 거의 대예술가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존재양식이었다. 곧 모두 공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차원에서 고정된 것들이었다.- 샤또브리앙샤또브리앙이 동양에 오게 된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기를 완성시킨다고 하는 동기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종교적 정신의 중요성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이것 중에서 가장 강하게 작용했던 종교적 정신의 중요성을 확인한다는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종교는 모든 인간에게 이해되는 일종의 보편언어인데” 이것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동양이라고 하는 , 바로 이슬람과 같은 비교적 저급의 종교가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만큼 적절한 장소는 없었다.샤또브리앙이 본 동양은 그이 노력에 의해 재생되는 것을 기다려 사용한 낡은 캔버스와 같은 것이었다. 동양인인 아랍인은 ‘다시 야만 상태에 빠진 문명인’이었다.2. 이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인식- 휴그로니에휴그로니에는 ‘이슬람법’과 같이 추상적이 것이 자주 역사와 사회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임을 인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러한 추상개념을 지적으로 이용하고 유지하는 점에 향해진다. 왜냐하면 ‘이슬람법’은 동양과 서양의 격차를 광범한 틀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휴그로니에게 동양과 서양의 차이란, 단순히 학술적이고 통속적인 상투문자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것과 정반대로 양자 사이의 본질적이고 역사적인 힘의 과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우에르바하이슬람의 연구 분야에서 오리엔탈리즘과, 소외감의 필요성 이라고 하는 아우에르비하의 사고방식에서 어떤 유효성을 갖고 있는, 다른 모든 인문과학분야와의 사이에는 , 현저한 상위가 나타난다.그 상위란 이슬람을 연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경우, 이슬람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건전한 것이라고 인정하거나, 자기의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태도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결코 불가능 했다는 하는 점이다. 그들의 이슬람으로부터의 소외감은, 도리어 유럽문화의 우월성이라소 하는 감각을 단순히 강화하는 결과가 되었고, 그 반감은 모든 동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은 타락한(유해하고 위험한) 모든 동양의 대표로 인정되었다.- 이슬람 연구에 관한 오리엔탈리즘이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처음부터 그것이 그 내부에 저장된 지극히 논쟁적인 ‘종교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에 , 소위 일정한 방법론적인 제도 위에 고정된 그대로 유지 되었다.첫째, 오리엔탈리즘은 현대사와 사회적 및 정치적인 여러 조건, 또는 새로운 데이터가 이론적 및 역사적인 ‘유형’ 에 부과하는 필요한 개정 따위로부터 문화적으로 단절되어야 했다.둘째, 오리엔탈리즘이 부여하는 추상개념은, 이슬람문명의 경우 새로운 유효성을 확보했다고 생각되었다. 이슬람은 오리엔탈리스트가 서술한 그대로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상정되었으며, 그것으로부터 현대 이슬람이 낡은 이슬람의 재확인된 변형에 불과하다고 상정되었다. 특히 이슬람의 현대성이란 도전이라고 하기보다도 하나의 모욕이라고 하는 가정이 수립되었기 때문이다.셋째, 문헌학에서 종합의 야망이 학자의 의식을 확대시켜, 사람들이 모두 형제라고 하는 감각과 인간행동의 어떤 종류의 원리가 갖는 보편성의 감각을 증대시켰다고 한다면, 이슬람 연구에 관한 오리엔탈리즘의 경우에는 , 종합적이라고 하는 것이 이슬람에 반영되어 있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기브동양인은 자연에 대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오직 관심을 품고 있고, 필경 이슬람은 그러한 관심을 최종적으로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적인 동양의 모든 생활에 절대적으로 우선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이슬람이란 이슬람 정통파의 ‘것이고’, 신도의 공동체이고, 생활, 통일성, 명료성, 가치이다. 나아가 그것은 지하드주의자나 공산주의의 선동에 의한 불쾌한 분단에도 불구하고, 법과 질서라고 말한다.또한 ‘이슬람’이란 일종의 상부구조이고, 정치역학(민족주의, 공산주의의 선동, 서양화)에 의해 위험하게 됨과 동시에, 그 지적 지배력에 간섭하고자 하는 이슬람교도의 위험한 시도에 의해서도 위험에 빠진다 하였다.그리고 이슬람에 내재하는 주된 약점은 “종교집단과 이슬람교도의 중간계급, 상층계급 사이의 유대가 분단되어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이 결코 다른 세계에 고립된 것은 아니며 그것이 자기와 세계 사이의 일련의 외적 단층, 결락, 괴리 소에 머물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충분히 인식했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면 현대 이슬람이란, 고전적인 종교가 낭만파적인 서양의 관념과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결과 생겼다는 것이 된다.이밖에 기브는 현대 이슬람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에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민족주의에 의해 이슬람을 동양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내적 구조가 유진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세속적인 민족주의의 최종적인 결과로서 동양이 서양과 무엇이 다른 점이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대를 표명하는 경우에, 자신이 이슬람 정통파 공동체를 ‘대변’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취했다.이렇게 기브의 이슬람은 동양에서 실천되고, 연구되고, 주장된 이슬람에 ‘앞서서’존재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예기된 이슬람은, 그의 관념으로부터 방출된 단순한 오리엔탈리즘적인 허구는 아니다. 그것은-실제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신도의 공동체 전체에 ‘호소하는’ 힘을 가진 ‘이슬람’이라고 하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이슬람’ 이 본래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정식화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동양에서 공동체 정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종교적 지도자들의 언어가 이슬람을 강탈하고 중상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슬람이 그 호소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 이슬람은 안전하다. 그러나 개혁을 뜻하는 종교지도자가 이슬람을 현대 세계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이슬람 재정식화의(정당한) 역할을 떠맡는 순간, 문제가 생겨난다. 그 문제란 물론 단층이라 하였다.- 마시뇽마시뇽이 생각하는 ‘동양’은 ,7인의 잠자는 사람이나 아브라함의 기도의 세계와 완전히 조화되는 것이었다. 그의 동양은 , 색다르고, 약간의 기이하며, 그가 그곳에 포함시킨, 눈을 어지럽히는 정도의 해석의 재능과 완전히 대응하는 것이었다.마시뇽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은 이슬람은 저항의 종교이고, 하가르의 눈물로 시작된 슬픔을 그 안에 안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아라비아어는 눈물의 언어 그 자체가 되었고, 동시에 이슬람의 ‘지하드’ 개념 전체가 중요한 지적 차원을 확보한다.
    인문/어학| 2004.12.07| 4페이지| 1,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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