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 연구현대 문학사 연구 reportE28008 김지영- 목차-Ⅰ.빛과 어둠의 이야기-김영하 『빛의 제국』1. 이념의 허구2. 빛과 어둠, 삶과 죽음3. 삶이라는 연극Ⅱ.미성숙한 소녀의 여정-강영숙 『리나』1. 태양과 달2. 끝없는 여정Ⅰ.빛과 어둠의 이야기-김영하 『빛의 제국』1. 이념의 허구이 소설은 주인공 ‘김기영’이 오전 7시에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영의 일상은 그가 오전 8시 반, 일터에서 북에서의 귀환명령을 받게 되기 전까지 평범한 중년 남성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에게 “모든 것을 청산하고 즉시 귀환하라.”의 명령은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왔었다(39쪽 김영하, 『빛의 제국』, 문학동네, 2006년).’ 그 명령으로 인해 그의 삶의 뿌리는 송두리째 흔들린다. 다음날 새벽까지 귀환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남을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의 기로 속에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에서 한걸음 물러나 20여년 전 이방인의 입장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처한 상황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나 매한가지로 절박한 것이다. 그러나 죄수나 시한부 환자의 경우, 결론은 ‘죽음’ 하나이다.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와 이미 답이 내려진 문제의 마무리 차원 같은 것이다. 명령을 받고 기영은 무작정 서울 시내를 헤맨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도착지는 결국 그의 서울 집이다.그의 나이는 42살이며, 그의 인생은 북에서 21년과 남에서의 21년으로 정확히 나누어져 있다. 그는 ‘옮겨다 심은 사람(103쪽)’이기 때문에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귀환과 정착사이에서, 처음 그는 이념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그것은 북에서 어릴 적 가치 판단 이전부터 당위적으로 주입되어 를 위한 최소한의 보루(185쪽)’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을 비웃듯이 기영의 아내 마리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교통사고를 당할 뻔 한다. 하지만 실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고, 운전자가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경찰관에 의한 처벌을 면하게 된다. 남한의 이념과 논리는 완벽할지 몰라도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본능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우선적으로 지배를 받는 것이다. 또한 남한은 과잉으로 인해 ‘권태와 허무(80쪽)’를 특질로 지닌 사회이기도하다. 북에서는 우울증마저도 ‘부조리한 병’이라 일컫지만 남한은 먹고 권태와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 중독, 불륜과 퇴폐적인 섹스 등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이렇듯 기영의 이념적 의문들과 그것에 대한 성찰은 남한 북한 모두 온전치 못한 체제라는 생각으로 미치게 되고, 그것은 현재 그의 선택을 돕거나 그가 처한 상황을 해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2.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소설의 제목은 초현실주의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빛의 제국」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의 표지이기도 한 이 그림은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에서 하늘은 맑고 푸르다. 하늘을 보면 분명히 낮일텐데, 세상은 가로등이 주변만 겨우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어둡다. 머리 위의 밝은 하늘도 세상과는 별개의 것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것과 무관한 것이다. 어둠은 기영에게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그는 북에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105쪽) 아파트에서 세상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전으로 인해 어둠으로 덮혔을 때 그는 어머니의 자살을 눈이 아닌 몸으로 경험한다. 그는 두려움에 빛을 향해 달린다. 그에게 빛은 삶이고 어둠은 죽음을 의미한다. 남한 역시 등화관제 훈련으로 인해 북과 마찬가지로 ‘몇 달에 한번은 캄캄한 암흑세상으로 변해버리곤(198쪽)’한다. 기영은 작품의 결말에서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 강렬한 등대의 불빛, 조명탄들의 불빛을 본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하늘은 검은데 세상을 밝았다.(384쪽)’ 인간은강한 욕구일 것이다. 기영은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심리적 축을 두려움과 욕망(83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려움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것이고, 욕망은 삶에 대한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들을 작품 곳곳에서 보여준다. 빛과 어둠의 혼재처럼 911테러 현장에서의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의 현재와 닮아 있다. 광장에서 종말을 외치는 옛 동료 공작원, 영생을 믿는 아영의 부모, 오래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여기는 박철수 등은 죽음의 공포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는 ‘침대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322쪽)’. 그랬던 그는 귀환 명령을 받고 시간이 흐르자 결국에는 사람들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사는 것(362쪽)’이라는 실존적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적 욕구, 본능적 욕구가 그를 지배하게 된다. 결국은 실존적 문제인 것이다. 그의 옛 연인 소지현은 언제나 일상을 벗어나 짜릿한 삶을 꿈꾸나 막상 함께 북에 가자는 기영의 권유를 거절한다. 아내 마리 역시 자신을 위해 15년간 가족으로 살아온 기영의 월북 권유를 매몰차게 뿌리친다. 여러 가지 선택들이 누적된 것이 자신의 삶이다. 때문에 그것은 한순간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대상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이 곧 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여태 쌓아온 나의 삶, 곧 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영역시 북으로 떠나려 하지만 결국 자기에게 현재 익숙한 남한을 선택하고 만다. 또한 이는 누구나 평범한 삶 속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느끼지만 결국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좌절되기 마련임을 깨닫게 한다.3. 삶이라는 연극기영은 평양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지만, 삶의 후반부 20년은 본래 남한 태생인 것처럼 가장하며 살아왔다. 말하자면 ‘남한’이라는 큰 연극무대에서 배우 노릇을 하며 살아왔던 셈이다. 그는 남으로 오기 전에 남한처럼 꾸며진 세트장에서 적응 훈 의식한 연극이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남한에서 20년을 살아오며 기영은 자신의 삶이 연극인지, 현실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오랫동안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는 연극에서의 삶과 현실의 삶을 혼동한다는데, 기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느 것이 자신의 본모습인지, 진정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어디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는 ‘이제 배역과 구별이 안되는 지경(290)’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북에서 온 간첩 기영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과 연극이 분리되어 있다면, 연극은 인위적 허구이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연극의 구분 역시 기영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기영이 게임방에서 들여다 본 모니터 속 ‘스타크래프트’는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현실이다. 유혈이 낭자하고 죽고 사는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모니터 바깥쪽으로 50센티만 떨어져도 그것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그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현실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서 다행’인 공포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사회와 자본주의가 빚어낸 개인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개인주의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작가는 공동체 윤리라는 것은 집단이익을 위한 허구이며,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 인간 하나하나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부지런히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장철수는 피의자로 오인 받게 되는 과정에서 ‘난생처음으로 피의자의 피로에 대해 생각(257쪽)’한다. 그들은 기영을 붙잡았을 때도 피의자에게 ‘고대의 제사장들처럼 희생자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그리하여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375쪽)’한다. 그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악착같이 매달리는 현실이 타인에게는 영화나 연극 속 허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기영 역시 아내의 불륜 고백을 듣지만 자신이 직면한 ‘리나’는 국경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16세 소녀이다. 리나는 아버지로부터 이 나라를 탈출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밤마다 국경을 꿈꾼다(11쪽 강영숙, 『리나』, 랜덤하우스, 2006년). 그것은 탄광촌에서 평생을 사는 익숙하고 안정된 삶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리나의 친척 할머니는 “살아 있는 동안 세 번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전이라는 걸 하게 된다(12쪽)”라고 한다.『빛의 제국』의 기영은 떠나는가, 남는가의 문제로 고민하지만, 리나는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 그리고 결국 자신도 그것을 원해 떠나도록 되어 있다. 욕망과 두려움의 수직선 위에서 리나는 욕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리나의 첫 번째 탈출은 밤에 이루어진다. 밤과 어둠은 그녀의 존재를 숨겨주는 보호막이다. 기영에게 빛은 삶에 대한 욕구이며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지만, 리나에게 빛은 탈출의 장애물이다. 때문에 리나는 소형트럭을 보며 겁에 질려 “불빛이다!(12쪽)”라고 소리친다.두 번째 탈출은 화학공장에서 이루어진다.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한 뒤 리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사막을 지나간다. ‘이곳의 주인은 홀로 뜨겁게 땅과 하늘을 달구는 태양(72쪽)’이다. 태양은 바닷물을 증발 시켜 소금을 만든다. 때문에 리나가 걷고 있는 굵은 소금을 닮은 모래밭을 ‘소금밭’이라 여긴다. 리나는 긴 여정 중간에 땅에 가만히 누워 몸을 말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녀에게 죽음은 빛과 맞닿아 있다.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걷는 것은 삶의 욕구이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며 땅에 누워버리는 행위는 타나토스의 충동이다. ‘햇볕아래 앉아 있으면 온몸이 물컹하게 허물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리나는 죽지않겠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 대신 드러누운 채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83쪽)’라는 대목에서처럼 리나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 때때로 죽음의 욕망을 느낀다.현대문학사 연구리나는 항상 운동화를 신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쁜 신발을 사고 싶어 한다. 그런 신발은 ‘탈출하는 주제에 신고 나섰다가는 한.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시점 분석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는 제목에서 보듯이, ‘4년 동안 오빠는 집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다가 스무살이 다 되어서’ 열일곱의 ‘못생긴 여자애’를 집에 데리고 오면서 일어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서사 전개는 오빠와 가족들의 대립과 갈등이 큰 흐름을 이끌고 있지만, 이 소설의 화자는 14살 오빠의 여동생인 ‘경선’이다.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서 시점은 텍스트 내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제에 있어서 작가에 의해 설정된 양식 또는 관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과 관련된 용어가 아니라 작가가 허구적 중재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태도와 가치를 전달하는 문제와 관련된 용어이다. 때문에 작가에 의한 시점의 선택은 소설의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화자로 ‘경선’을 선택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경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자신의 시각으로 보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한다. 성(性)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사춘기 여중생의 삐딱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에서 1인칭 서술의 특징이다. 일인칭 서술은 고백적, 체험적 성격 때문에 독자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 때, 극화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의 서술의 경우라면 서사적 상황에 대한 진실과 리얼리티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모방적 서사(mimetic narrative)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극화되고 인격화된 일인칭 서술자의 진술은 그 신빙성 여부를 타진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인칭 서술의 경우는 순전히 주관적 개성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신빙성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er)’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신빙성의 주요한 근거로는 서술자의 제한된 지식, 개인적 연루관계, 문제성 있는 가치기준, 서술자가 소유한 특이한 정신상태 등을 들 수 있다.「오빠가 돌아왔다」의 경우에는, 1인칭 화자인 ‘경선’의 서술이 14세 사춘기 소녀의 가치관에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독자는 표면에 드러난 ‘경선’의 서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실제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경선’이의 태도라는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오빠가 아버지를 때리는 반인륜적 장면에서 ‘오빠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와 같은 해학적 표현과 아버지를 ‘구제불능’이라 부르는 것, 돈을 벌어다 주는 오빠가 ‘우리집의 기둥’ 이고 아빠는 무능력한 ‘식충’이라는 물질주의적 가치관 등이 그러하다. ‘경선’은 ‘평범한 부모’라도 되어야 한다면 ‘돈’과 ‘멀쩡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경선’의 눈에 의하면 ‘무일푼의 고발꾼’으로 떳떳치 못한 직업을 가진 아빠는 ‘식충’이고 ‘똥개보다 지능지수가 낮은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이 같은 화자의 서술과 독자의 생각은 ‘거리’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적인 화자와 독자간 공감의 거리 조정이 ‘신빙성 없는 서술자’ 유형의 특징이다.김영하 「비상구」시점 분석이 소설은 20살 청년의 일탈적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우현’의 시점을 따라 서술한다. ‘우현’은 함께 동거하는 여자를 목적성 없는 인생의 ‘비상구’라 여기지만, 그녀를 단지 ‘여자애’라고만 칭할 뿐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익명성은 그에게서 개성을 빼앗고, 결국은 교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현’은 ‘왜 나이를 먹으면 뭐든 다 구겨질까? 그럼 나는 어디가 구겨졌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자신도 대답을 알지는 못한다. 그의 이렇게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은 목적성도 없고 돌파구도 없다. 때문에 자신의 미래조차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현’은 ‘종식’이 퍽치기를 꼬드기자 거절을 한다. ‘종식’의 ‘넌 뭐 먹고 살거야?’ 라는 질문에 ‘순간 흔들렸지만 참기로 한다.’에서 보듯 생계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우현은 카페의 아들이 열다섯에 집을 나간 ‘충청도 아줌마’를 보며 연민을 느끼며 ‘죽어라 학교 다녀봐야 대학 갈 팔자도 아니고, …(중략)…다 지 갈 곳을 알고 그쪽으로 흘러가면서 구겨지는 거다’라고 생각한다. 1인칭 ‘나’라는 주관적 의식 속에서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 것이다. 이는 1인칭 화자의 제한된 인식지평으로 인해 외부세계와 타인을 내면으로 굴절시켜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여자애’는 일하러 나가고, 우현은 홀로 여관방에서 지루한 에로 영화를 보다 생각에 잠긴다. 잉여시간 속에서 서술의 초점은 ‘우현’의 내면으로 향한다. ‘우현’은 ‘돈을 빨리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오나’라며 절망한다. ‘우현’은 세탁소에서 옷을 찾으며 ‘세탁소에서 일하는 건 정말 지루할 것이다. 하루종일 그 좁은 곳에 갇혀 다림질을 하며 살다니 말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삶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걸로 저녁값 하고 맥주나 몇 병 까면 하루는 지난다’ 며 좁은 여관방에서 시간 때우기 식의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여관에 틀어박혀 있지만 밖을 나가서도 여관에 갇혀 있게 되기는 매한가지이다. ‘우현’은 ‘여자애’가 당한 봉변에 대해 복수를 하러 나갔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에 쫓기며 ‘한동안 업소도 못 나갈텐데 뭘 먹고 살지?’ 라며 ‘여자애’걱정을 한다. 그런 그가 돌아온 곳은 다시 여관방이다. 그 여관방에는 비상구인 ‘여자애’가 있다. ‘여자애’는 돼지꿈을 꾸었고 ‘우현’은 복권을 사지만 역시 꽝이다. 경찰이 여관에 들이닥쳤고 이제는 ‘비상구’조차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우현은 도망을 가며 ‘다행히도 타넘을 지붕은 얼마든지 있었다.’라고 한다. 아직도 그에게는 ‘비상구’가 존재하는 것이다.김영하 「당신의 나무」시점 분석쥬네뜨는 보는 역할과 이야기하는 역할을 분리하지 못한 전통 시학의 시점 논의를 비판한 바 있다. 구조시학은 보는 역할과 이야기하는 역할이 하나의 작품 속에서 겹치는 수도 있지만 어긋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소설의 담화 주체가 수행하는 서술 행위와 이야기 세계 내의 지각 주체에 의해 수행되는 지각행위 간의 엄격한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쥬네뜨는 시점 대신 초점화(Focalization)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안한다. 여기서 자신의 지각, 인식, 감정 등이 대상을 지향하는 초점화의 주제를 ‘초점 화자’라고 하고, 그 지각 대상을 ‘초점 대상’이라 한다.
문학과 다매체 텍스트(동화 신데렐라의 여성 의존성 변용 양상을 중심으로)모둠 : 야간비행Ⅰ. 들어가며시간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정 서사구조나 이야기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재생산되고 확산되는 경향의 문학작품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동화 신데렐라를 선택하였다. 신데렐라는 서사구조가 비교적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다양한 매체와 층위를 거쳐 배열되고 선택되며 변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여성을 바라보는 현대적인 시선이나 여권신장과 같은 새로운 통찰 등과 관련되어 신데렐라는 작품 자체의 의미를 넘어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측면 등에서도 여성을 둘러싼 중요한 인식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신데렐라의 기본 서사구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일지 몇 가지 층위를 고찰해보고 그것들이 현대 다매체를 통해 어떻게 변용되고 수용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동화 신데렐라1. 신데렐라의 서사구조동화 신데렐라는 프랑스의 동화작가 C.페로의 《거위 아주머니 이야기:Contes de ma mere l’oye》(1697)에 있는 《상드리용:Cendrillon》을 번역한 것이지만 그 안에 내재해 있는 기본적인 서사구조는 유럽에서만도 500가지가 넘으며 예컨대 ≪콩쥐팥쥐≫, ≪춘향전≫과 같이 우리나라 및 아시아에서도 이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는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이 있지만 불변하는 신데렐라의 조건들이 있다. 첫째, 착하고 마음씨가 예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필요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배려할 것, 둘째, 사회적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것, 그러나 자신의 환경을 좀더 나은 것으로 스스로 바꾸려는 의지가 없거나 능력을 갖추지 않을 것, 셋째는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일 것 등이 신데렐라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건들이다. 이러한 요건을 지닌 ‘신데렐라’의 서사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신데렐라의 고난-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계모와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다른 매체에서 보여 지는 변이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중점적으로 다루어야할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때문에 야간비행 모둠에서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 줄 왕자와 같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신데렐라의 서사구조를 비판적으로 논의하였고, 그것을 여성의 의존성이라는 맥락에서 일반화하여 살펴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신데렐라 서사구조가 동서고금은 막론하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판타지를 심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힘들고 고단할수록 판타지는 사랑을 받는다. 매체의 수용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주인공이 부유하고 고귀한 남성의 선택으로 인해 순식간에 신분 격상과도 같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대부분은 대리만족에서 그치기도 하지만 일부는 그것을 판타지가 아닌 실현 가능한 ‘부러운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문에 여성들이 무리를 해 상류층의 사교모임에 참석한다거나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거나 성형수술을 하는 등의 사회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더불어 여성의 의존성은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욕망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신데렐라가 교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동화적인 착한 마음씨를 가진 내면이 아니라 신데렐라와 같이 우연과 허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이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삶에 자립적인 태도는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필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양과 단련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신데렐라의 서사구조가 주는 결핍된 자립성의 실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소년과 소녀, 혹은 남성과 여성들이 관습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양상은 왕자라는 남성이 수단화되어 여성이 현실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는 모습으로 동화에는 그려졌지만 그것을 현대적으로 일반화시킬 땐 여성만의 문제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러한 양상이 전달되고, 때로 교육적인 상디드라마의 요소 중 특히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여 드라마 제작자들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는 신데렐라의 서사 구조는 비평가들로부터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왔다. 그 이유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남성에게 의존적이며 무능하며 주체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여성상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남성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가부장제와 공모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판을 뒷받침하는 것은 콜레트 다울링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이론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폐기해야 마땅할 요목이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가부장적 사회에 아부하면서 주체적이지는 않지만 편안한 삶을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여성이 현실에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는 현실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신데렐라형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트렌디 드라마는 대게 16부작, 8주 분량으로 만들어 진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지만, 드라마는 약 두 달 여를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젋은 여성들이 흔히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주제 중 하나는 드라마의 전개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 편의 엔딩에 절묘하게 잘라 버리는 기술은 사람들에게 궁금증과 기대를 낳도록 한다. 일주일 내내 드라마의 환상에 사로잡혀 그것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드라마와 현실을 착각한다거나, 시청자들이 압력을 넣어 드라마의 결말을 바꾸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힘은 시청률을 중시하는 드라마 제작자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2. 현대판 신데렐라 - 파리의 연인(SBS, 2004년 6월 12일~2004년 8월 15일 방송종료)그동안 신데렐라 서사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10여년 전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에서부터 최근 ‘황태자의 첫사랑’, ‘풀하우스’, ‘파리의 연인’에 이르기까지다. 방세는 석 달치나 밀려 있으며, 아르바이트에서는 계속해서 해고되고, 하숙집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어 우연히 기주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 하지만 가정부로서의 태영은 실수투성이다. 더욱이 그녀는 일해야 하는 시간에 주인의 목욕탕에서 함부로 거품목욕을 하고 영화를 보는 무모함까지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녀의 경제적 무능력을 비판적으로 그리지 않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남성의 도움이 개입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면서 사랑 이야기로 낭만화하고 있다. 또한, 태영의 솔직함과 덤벙댐은 드라마에서 오히려 성격상의 매력으로 그려진다. 귀국한 이후로도 태영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는데, 이는 태영이 어떤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태영이 사보팀 직원, 메이크업 아티스트, 나레이터 모델, 세차장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것에서 그녀가 사회적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녀가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곳은 비숙련 노동을 요구하는 세차장이었을 뿐이다. 태영은 기주와 기주의 전처 승경이 직장을 주선해 주지 않으면 그나마 변변한 직업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력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신데렐라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낮은 지위를 떨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데, 태영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태영이 친구 같은 수혁보다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와 경제력을 지닌 기주를 택하는 것은 그녀의 의존적인 성격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기주가 아버지와 같은 존재임은 그가 태영을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호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수혁은 한 번도 태영에게 애기라는 호칭을 쓰지 않으며 항상 수평적 호칭 ‘태영아’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수혁은 태영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데 기주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점이 태영이 기주를 선택하게 되는 무의식적 이유 가여줌으로써 남성의존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Ⅳ. 만화 매체짧은 컷 만화는 우선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고 정보의 전달이 빠르다. 더불어 그것을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예컨대 수업에서 어떠한 맥락을 강조하고 유도하느냐에 따라 만화는 수용자의 비판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상징성은 주로 은유, 풍자, 비유 등의 방법이 동원되지만 결정적으로 시사적인 만화나 풍자성을 강하게 지닌 만화는 인물의 모습, 글자체 등 매우 세세한 부분에서 까지 메세지가 반영되어 표출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이 있는 해석이 요구되기도 한다. 물론 도상기호 자체에 대한 효과적인 읽기가 필요하지만 만화의 매력은 컷과 맥락 속에 생략된 의미를 추론하며 읽을 수 있다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만화 텍스트는 독자의 능동적인 읽기를 필요로 하며 주어진 텍스트의 메세지에 따라 학생들의 언어 활용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매체이기도 하다.우선 본문의 10컷 만화를 살펴보면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몇 컷의 만화로 함축하는 과정 중에 많은 부분 동화 신데렐라의 내용이 생략되거나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유머러스한 반전을 꾀하기 위해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무도회를 즐기고 자정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원래의 내용은 유지하고 있으나 이미지는 극단적인 단순화와 더불어 상당히 과장된 편이다. 이것은 주어진 짧은 컷과 몇 안 되는 그림 묘사를 통해 독자와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는 만화 매체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흔히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타인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개인적 또는 심리적 의존상태가 오늘날의 여성들을 억압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만화매체에 나타나는 여성의 의존성 구조는 그러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반영이며, 나아가 거의 대부분의 독자가 인정하는 일반화된 담론으로 전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신데렐라의 서사구조가 담고 있는 여성의 의존
유한한 존재의 영원성의 열망-유치환의 국어교육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1)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2)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3)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4)맨 처음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1. ‘깃발’이 지닌 의미소텍스트 전문을 읽어보면 미메시스적 차원에서 이 시의 깃발에 대한 정보는 오직 두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바다를 향해 날리고 있으며(‘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높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는 것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그것이 바다를 향하여 높이 매달려 있는 깃발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차적 해석에서 보면 깃발의 위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1. 이 시의 깃발이 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정적인 상태로 꽂혀 있으리라는 것→ 떠나고자 하는 것과 붙잡혀 있는 것2. 바다 위의 어떤 곳이라기보다는 바다와 접해 있는 곳(바닷가)→ 무한한 것에 대한 동경과 유한한 것에의 피체(被逮)∴두 모순된 행위를 ‘깃발’을 통해서 은유화.※정리. 깃발이 지닌 의미소1. 무한한 공간을 지향한다.2. 유한한 공간에 얽매여 있다.3. 무한과 유한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2. 의 구조주의적 분석(1)은 깃발에 관한 총체적 느낌을 드러낸 표현이다. 그러나 보다 차분히 보면 그것은 (2)손수건 같기도 하고, (3)날개를 펼친 백로 같기도 하다. 전자는 수평적 차원으로서 바다에 관련된 비유요, 후자는 수직적 차원으로서 하늘에 관련된 비유라 할 수 있다. 즉 깃발은 바다에서 손수건처럼 흔들리고 있으며 하늘에서는 백로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한편(4)는 깃발에 대한 시인의 총체적 인식이다. 이는 (1)의 깃발에 대한 ‘총체적 느낌’과 대비되는, 그것의 해석 혹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깃발에 대한 시인의 총체적 느낌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았으나 그것의 총체적인 해석은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손수건’과 ‘백로’는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의 수평적, 수직적 공간의 비유에 해당하므로 이 작품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서의 깃발이 어떻게 ‘손수건’과 ‘백로’로 변용되어 드디어 ‘애닯고 슬픈 마음’으로 해석되는가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깃발 : 수평적으로는 바닷가에 서 있으면서 먼 바다를(‘해원’) 향해 휘날리고 수직적으로 는 깃대 끝(‘이념의 푯대 끝’)에 매달려 있다. 즉 깃발은 바다와 육지, 그리고 땅과 하늘의 경계선에 있는 것이다.바다 : ‘광막함과 그 끝에 펼쳐지는 긴 수평선 때문에 수평축의 끝에 자리 잡고 있을 피안 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영원성의 상징이다.하늘 : 수직의 최정상임으로 피안이 되듯 바다는 수평의 최극단임으로 또한 피안이 된다. 그런데 하늘 가는 배라는 관념이 나타내듯이 수직과 수평의 두 피안은 상호 중복되 기도 한다.기 : 언제나 사물의 상단에 놓인다는 점에서 하늘이 표상하는 정신세계로의 상승 의지를 나타낸다.그러므로 이 시에서 깃발이 먼 바다와 하늘을 향해 휘날린다는 것은 존재가 땅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공간에 서서 바다 그리고 하늘로 상징되는 무한 혹은 영원의 절대 공간으로 초월 혹은 상승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이루어 질 수가 없는데, 그것은 끝없이 푸른 하늘과 바다 건너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떠날 수 없는 숙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깃대에서 풀려난 깃발은 일상 세계인 땅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깃발이 지닌 조건은 끝없이 먼 절대 혹은 영원의 세계로 초월하기를 꿈꾸면서도 일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데 있으며 이는 바로 존재가 지닌 근원적 모순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손수건’이란 덧없고 무상한 일상세계에서 절대 무한의 공간을 지향하고자 하는 이념의 고결성을 표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3)에서 깃대에 매달린 깃발은 ‘백로’로 은유화되어 있다. 그것은 (2)에서 ‘손수건’으로 은유화된 것과 대비된다. (2)의 손수건이 깃발을 수평적(바다를 향해 휘날림)으로 비유시킨 것에 비해 (3)의 백로는 수직적인 차원(하늘로의 비상)에서 비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로가 지닌 의미망과 손수건의 그것은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 그것은 동양의 백로에 해당하는 서양의 ‘백조’가 신화적으로는 ‘저 너머의 세계로 가는 신비한 여행’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백로 혹은 백조는 그 흰 색깔과 지닌 바 고향 혹은 낙원상실이라는 의미에서 앞에서 언급한 ‘손수건’의 상징적인 의미와 일치하기 때문이다.이 시의 핵심 은유라 할 ‘깃발’은 설명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감각적 구도에서 묘사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푸른색과 흰색의 적절한 대립을 통하여 시인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늘은 초월적인 공간 혹은 무한 절대의 공간으로 푸른색으로 상징된다. 푸른색은 무한한 공간의 영원성, 근본적이며 일반적이고 순수한 그 어떤 것, 언어에 선행하는 것의 이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은 순결성과 변하지 않는 마음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이념의 고결성 혹은 불변성을 상징한다. 때문에 흰색의 백로나 손수건이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을 꿈꾼다는 것은 곧 순결하고 일관된 이념이 무한 절대의 순수한 공간을 지향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시인은 (4)와 같은 시행의 진술을 통해 깃대에 매달린 까닭에 저 푸른 하늘과 바다 건너 피안의 세계로 비상할 수 없는 깃발을 통해서 존재의 모순성을 형상화시키고자 했다.→ 결국 깃발은 유한과 무한의 경계선에서 허무성을 자각한 존재가 무한으로의 초월을 꿈꾸다가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정신의 아픔을 시로 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3. 의 기호학적 접근 - 등가성의 반복은 기호학에서 시의 본질이라 일컫는 바 반복의 원리가 전형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이미 로망 야콥슨에 의해 ‘언어의 등가성(equivalence)이 선택(selection)의 축에서 결합(combination)의 축으로 투영된 것’으로 규정된 시의 원리를 오늘날 대부분의 구조주의 계열의 시론이 동의하고 이를 확장 체계화시키고 있다. 선택의 축은 문장을 구성하는 각개 단어로 선택될 수 있는 질서를, 결합의 축은 단어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통사구문-문장을 만드는 질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전자가 반복의 원리를 따른다면 후자는 전개 발전의 원리를 따른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로망 야콥슨은 시와 산문의 언어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시란 원래 선택의 축에만 있는 등가성의 언어를 비정상적이게 결합의 축으로 전이시킨 것이고 산문이란 선택과 결합을 정상적인 원리 그대로 운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경우 선택의 축에만 있을 수 있는 등가성을 결합의 축으로 옮기게 되면 필연적으로 언어는 결합의 축이 지닌 전개 발전의 원리를 깨트리고 반복의 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의 첫행은 이와 같은 등가성의 반복을 분명히 보여준다. 시인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 문장은 의미적으로 동의어의 반복만 있을 뿐 어떤 새로운 사태로의 진전을 찾아 볼 수 없다. 이 시행에서는 ‘이것’도 깃발을 가리키고 ‘아우성’도 깃발을 가리키므로 결국 원관념의 차원에서 볼 경우 ‘깃발은 깃발이다’라는 동의어의 반복 이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의 첫행에서 보여준 이와 같은 등가성의 반복은 9행으로 구성된 이 시의 전체 진술에서도 드러난다.1.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유법. 청각적.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2.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은유법. 시각적. 수평적. 깃발은 손수건3.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직유법. 시각적. 수평적. 깃발은 순정4.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직유법. 시각적. 수직적. 깃발은 백로5.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 은유법. 관념적. 깃발은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시는 비유적으로 서로 다른 진술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깃발’이라는 단어의 의미적 등가성을 다양하게 반복한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언어의 특징을 야콥슨은 산문과 구분되는 시어의 본질로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복은 물론 단순하지만은 않다. 예컨대 리파떼르가 언급한 확장(Expansion)) 또는 전도(Conversion))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에서도 반복은 여러 다양한 형태의 확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첫째 깃발이 주거하는 공간의 축소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1)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은 간접적으로 넓은 공간을 암시한다. 아우성이란 말은 적어도 군중이, 음성이라는 말에는 널리 확산될 수 있는 공간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2)역시 넓은 공간이다. 왜냐하면 손수건을 흔드는 행위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 사이 에 상당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의 ‘순정’은 ‘손수건’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2)와 공간이 같다.(4)의 공간은 그보다 더 축소된 공간이다. 깃발은 ‘푯대의 끝’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5)에 이르러 깃발은 표대 끝의 한 점에 자리한다.이렇듯 이 시에서 깃발이 처한 공간, 상황은 넓은 곳에서부터 좁은 곳으로 종내는 푯대 끝의 한 점으로 모아지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화자가 초월하고자 하는 무한의 세계 즉 하늘과 바다에 대조할 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깃발로 상징되는 존재의 유한성과 하늘, 바다로 상징되는 무한성의 긴장이 의식공간의 축소에 따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학교문법에서의 피동문 처리 방식국어교육영어 문법을 배울 때 가장 많이 연습하는 것 중 하나는 ‘다음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어 보아라’ 일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의 순서를 바꾸고 동사는 다시 be+pp(과거 완료)로 바꾸는 것이다. 이 때 수동태를 만드는 문장이 수동문이고, 국어에서는 이를 ‘피동문’으로 불러왔다. 피동문의 특징은 항상 이에 대응되는 문장, 즉 능동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능동이 주어가 제 힘으로 행하는 동작을 뜻한다면, 피동은 그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국어의 피동문도 영어와 마찬가지로 목적어가 주어가 되지만, 영어의 be+pp(과거 완료)대신에 피동 접사‘-이- ,-히- ,-리-, -기-’가 동사 어간에 붙어서 피동사를 만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보다-보이다’ ‘잡다-잡히다’ 등이 그것이다. 이것을 어휘적 피동이라고 한다. 또한 국어에서는 ‘(아/어)지다’가 붙어서 피동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막아지다, 좁혀지다 등), 이를 통사적 피동이라 한다. 학교문법에서의 자세한 분류는 다음과 같다.능동(能動)은 주어가 제 힘으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문법기능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쥐를 잡았다.’라는 문장이 있을 때, 이는 주어인 ‘고양이’가 제 힘으로 행하는 동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피동(被動)은 주어가 남의 행동에 의해 행해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문법적 기능이다. 예를 들어 ‘쥐가 고양이에게 잡혔다.’ 라는 문장은 주어인 ‘쥐’가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해지는 동작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학교문법에서는, 능동과 이에 대응하는 피동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같지만, 말하는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보통 대상을 더 부각시키고자 할 때에는 피동문을 쓴다고 본다.다음은 피동 변형 규칙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능동문이 피동문으로 바뀔 때에는 일정한 문법적 변화를 거쳐야 한다.고양이가 (주어) 쥐를(목적어) 잡았다. (타동사)쥐가 (주어) 고양이에게 (부사어) 잡혔다. (피동사)타동사(능동사)는 피동사로 바뀌고 능동문의 목적어가 능동문의 주어로 이동하였다. 또한 능동문의 주어도 조사 ‘에게’가 붙는 피동문의 부사어로 바뀌었다. 학교문법에서는 이러한 이동에 의해 능동문이 피동문으로 바뀐다고 말하고 있다.피동문의 갈래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피동사에 의한 사동문, ‘-어지다’에 의한 피동문, ‘어휘에 의한 피동문’이 그것이다. 피동사에 의한 피동문은 파생적 피동문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타동사에 접미사 ‘-이- ,-히- ,-리-, -기-’가 동사 어간에 붙어 만들어진 피동사에 의해 실현된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ex)기적 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했다.경찰이 추격하던 범인이 드디어 잡혔다.오랫동안 소식이 끊기었던 친구가 전화를 했다.하지만 모든 타동사가 접사에 의해서 피동사가 되지는 않는다. 가령 ‘넣이다. 깊이다. 만들이다’ 등은 잘못된 만들어진 동사형태이다.다음은 ‘-어지다’에 의한 피동문이다. 동사 어간에 ‘-어지다’를 붙여 피동문을 만드는 유형이다. 이 규칙은 큰 제약이 없이 거의 모든 동사가 가능하다.ex) 속상했던 마음이 이제 다 풀어졌다.오늘은 붓글씨가 잘 써진다.학술 조사단에 의해 역사의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형용사의 경우는 ‘깊어지다, 높아지다, 흐려지다’처럼 ‘-어지다’가 결합될 때 일차적으로 상태의 변화를 나타낸다. 피동의 의미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수에 의해 방이 깨끗해졌다.’처럼 ‘-에 의해’가 문장에 들어있거나, 의미상 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