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연금목차 머리말 보수 공무원 보수의 특성과 보수제도 운영 기본급에 대한 이론적 분류 보수수준 관리 한국 공무원의 보수제도 호봉 획정 및 승급 현행 공무원 보수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연금 연금제도의 의의 연금기금의 조성 연금급여와 후생복지혜택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맺음말머릿말 공무원의 근무의욕 ( 사기 ) 과 직무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경제적 요인인 보수와 연금을 들 수 있다 . 이하에서 공무원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수와 연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알아본 다음 한국의 보수 및 연금 현황문제점 및 개선방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공무원 보수의 정의와 그 특징 공무원 보수의 정의 우리나라의 공무원 보수규정 제 4 조에 의하면 보수는 “봉급과 그 밖의 각종수단을 합산한 금액을 말한다” 고 정의되어 있다 . 봉급 (base pay) 은 “직무의 곤란성 및 책임의 정도에 따라 직책별로 지급되는 기본 급여 또는 직무의 곤란성 및 책임의 정도와 재직 기간 등에 따라 계급 ( 직무등급이나 직위포함 ) 별 및 호봉별로 지급되는 기본급여”를 말한다 . 수당은 “직무 여건 및 생활여건 등에 따라 지급되는 부가급여”공무원 보수의 정의와 그 특징 공무원 보수의 특성 공익 우선 , 사회적 ․ 윤리적 성격 민간분야 처럼 이윤극대화가 아닌 공익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제약 기업의 임금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결정되나 공무원의 보수는 국민에 대한 봉사적 입장 때문에 사회적 ․ 윤리적 성향이 강함 경직성 사기업의 임금은 경영실적이나 단체교섭의 동향 혹은 노동시장의 수급 에 따라 연중 탄력적인 증가가 가능하나 공무원 보수는 법정화 인건비 예산에 미리 반영되어야 함 중앙예산기관과의 협의 , 당정협의 등 관계기관과의 여러 단계 협의를 거침 단결권 제약 공무원은 노동삼권의 제약으로 처우개선 등 스스로의 권익 증진 곤란 ( 최근 공무원 노조 활성화로 공직사회에도 노사문제가 쟁점으로 부각 )공무원 보수 수준의 적정성 여부 공무원 보수가 비현실적이란 비판은 오수 ) 등을 기준으로 하는 임금체계 폐쇄적인 노동시장이나 계급제하에서 강조되며 동양적 정서에 적합 연령에 따른 인간의 능력변화를 반영 , 중간계층의 근로의욕을 증대 직무급 ‘ 동일직무에 대한 동일보수’의 원칙에 입각하여 공무원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직무의 상대적인 곤란도나 책임도를 ( 노동 , 일만을 ) 기준으로 하여 보수를 결정하는 방식 직위분류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등지에서 적용되며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공평한 보수로 알려져 있음 . 직무급 제도가 우리나라에 정착되기 위해선 직무분석을 확대하고 직무평가가 이루어져야 함 직능급 ( 능력급 ) 직무수행능력 ( 노동력의 가치 ) 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 한국의 기본급 연공급 ( 의 구성요소로는 ) : 기본급 , 기말수당 , 정근수당 , 장기근속 수당 , 대우 공무원 수당등 직무급 : 관리 업무 수당 , 직급 보조비 생활급 : 가족수당 , 체력단련비 , 정액급식비 , 가계보조비 , 명절휴가비 등기본급에 대한 이론적 분류 보수형태에 따른 분류 고정급 일급 , 주급 , 월급 , 연봉제 등 우리나라에서는 월급제가 일반적 보수형태 , 미국은 연봉제가 일반적 (2 주단위 ) 고정급적 연봉제 구분 적용대상 비고 고정급적 연봉제 정무직 공무원 ( 외무공무원의 14 등급 포함 ) 직위별로 고정액 지금 성과급적 연봉제 1 급 ( 상당 )~4 급 ( 상당 ) 공무원 및 이에 준하는 공무원 ( 외무공무원의 7~13 등급 포함 ) 계약직 공무원 ( 한시 계약직 공무원은 제외 ) 경력 등에 따라 최초 연봉을 설정하고 , 성과에 따라 연봉 조정 직무성과급적 연봉제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경력 , 직무값 , 성과 등에 따라 연봉설정기본급에 대한 이론적 분류 성과급 의의 : 실적 ․ 성과 ․ 능률중심의 보수로서 구성원의 동기부여에 가장 유용하나 종전에는 공무원의 근로의 성과는 화폐적 가치로 표현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유 때문에 공무원의 보수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왔다 . 그러나 최근 성과중심의 인사행정체계 구축을 위하여 각국에서 적불능력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은 민간기업에서나 정부기관에서나 마찬가지이다 . 사회적 · 윤리적 요인 ( 생계비 ) 정부에서 공무원 보수의 일반수준을 결정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공무원들이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생계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 보수결정에 있어서 먼저 일반의 표준생계비를 고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 공무원의 생계유지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정부가 모범적 고용주로서 준수해야 할 사회적 · 윤리적 의무인 것이다 . 부가적 요인 부가적 요인이란 공무원이 보수 이외에 받는 부수적인 각종 혜택을 말하는 것으로서 연금제도 , 신분보장 , 승진제도 . 휴가기간 등이 그것이다 .공무원 보수의 결정과정 공무원 보수규정 중앙인사기관이 보수 자료조사 , 중앙인사기관은 예산 담당 부처장관과 협의해 공무원 처우 개선계획 수립 ㅡ 관련 자문위원회의 심의와 조정 ㅡ 개선안이 정리되면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의회에서 심의 · 의결 ㅡ 당정협의 , 총리실 · 대통령실 등 관련기관과 정치 · 행정적 의견 조율 ㅡ 대통령 재가를 얻어 정부안 확정 ㅡ 국회에 제출 ㅡ 국회의 심의 · 의결을 거쳐 인건비 예산 확정 ㅡ 공무원 보수규정 및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반영시켜 시행한국 공무원의 보수제도 보수체계 보수체계란 보수지급항목 또는 보수종류의 구성을 말한다 .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여러 가지 금전적 보상의 종류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는 보수행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제 중의 하나인데 이것이 곧 보수체계의 문제이다 . 보수체계를 가리켜 보수구성이라고도 한다 .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보수체계의 요건은 공무원의 생활안정이 보장되고 , 근무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으며 , 단순하여 이해가 쉬운 것이라야 한다 . 또한 객관적이어야 하며 , 안정성이 있어 잦은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 우리나라 공무원 보수체계의 특징 수당을 계속적으로 신설함으로써 기본급 보다는 수당조정에 치우치게 됨 ( 수당중심 보수체계 ) 직종별 특성을 고치부되었다 . - 그간 공무원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노조활동이 제한되어 보수 수준을 결정하는 공무원의 참여가 제한되었다 . -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지나친 평등의식으로 하여 공무원의 보수를 인상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인 동의를 얻어내기 용이하지 않았다 .현행 공무원 보수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보수관리 차원의 문제점 - 합리적인 보수관리를 추진하지 못함 - 특정 직종의 보수표 작성시 그 직종이 수행하는 고유한 일의 성격과 곤란도 , 책임도 등을 고려한 결정이 아닌 단순비교하여 보수표를 작성해 차별화에 실패 - 근속연한에 따라 보상하는 임금체계이므로 개인의 능력과 실적에 따른 보수 지급 차등화가 어렵고 , 이에 따라 우수 인력 확보 및 개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 - 공무원 보수는 기본급 인상보다는 각종 수단을 신설함으로써 기본급 본래의 의미와 기능를 상실현행 공무원 보수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개선방향 - 하위직 공무원의 보수는 생계비에 미달하여 제반 경제사정에 수반되는 보수의 적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그러므로 하위직 공무원의 보수가 적어도 표준생계비를 상회하도록 책정되어야 할 것이다 . - 공무원에 대한 보수의 일반적 수준이 정부부문 이외의 임금 수준과 대외적으로 형평성을 유지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 - 우수한 인재를 공직에 유치하기 위해서는 사기업과의 현저한 보수격차를 완화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처우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 연봉제와 성과상여금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 - 우리나라에서는 노무에 종사하는 몇 개 직종의 공무원들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공무원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 앞으로 사정이 허락한 다면 공무원의 단결권을 인정하여 그들이 공무원 단체를 통해서 적정 보수조건을 제시토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개선방법이 될 수 있다 . - 불합리한 정부기구의 확대를 막고 공무원 수의 증가를 억제하는 것도 공무원 처우개선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 이러한 작업은 정부기능이 확대될수록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연금제도의 의의 연금제도 : 하는 것이 보통이다 . 그러나 우리 정부의 연금제도는 연금급여의 범위를 상당히 넓히고 있다 . 어느 나라 제도에서나 널리 볼 수 있는 퇴직 및 사망급여를 지급하는 외에 공무원이 재직하는 동안에 받을 수 있는 각종의 후생복지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 급여의 종류 : 총 17 종에 달하는 연금급여를 ' 단기급여 ' 와 ' 장기급여 ' 로 대분류하고 있다 . 장기급여에는 퇴직 후의 생계보장을 위한 퇴직급여 ( 퇴직연금 등 ) 와 퇴직수당 , 장해급여 ( 장해연금 등 ), 그리고 유족의 보호를 위한 유족급여 ( 유족연금 등 ) 등이 있다 . 단기급여에는 공무상 요양비 , 공무상 요양일시금 , 재해부조금과 사망조위금 ( 공무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속의 사망 시 지급 ) 이 포함되어 있다 .후생복지혜택 : 우리 정부에서는 연금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공제조직의 사업과 비슷한 후생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 따라서 공무원은 연금급여를 받는 외에 후생복지사업의 혜택을 받게 된다 . 현재연금기금에 의한 후생복지사업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각종 대부사업이다 . 학자금대부 , 수해복구비대부 , 요양비와 치료비의 대부 등이 그 예이다 . 이 밖에 무주택공무원에 대한 주택분양사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지급방식 연금급여의 지금에 있어서 연금보다 일시불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 재테크의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퇴직공무원이 일시불로 받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따라서 지급방식에 있어 신중함이 요구된다 . 실질 가치 확보 세계적으로 연금이 인플레이션화 됨에 따라 연금급여의 실질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 전통적인 연금급여 조정의 방법은 연금법을 개정하는 것이나 입법 절차가 경직적이기 때문에 적시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 우리 정부에서는 연금구조에 내장된 방법의 조치를 취하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첫째 , 퇴직연금일시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 앞서 언급한 대로 연금의 본래취지에 어긋ow}
다른 목소리로 를 읽고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 중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라는 말이 있다. 무조건 큰소리를 쳐야만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적으로도 어떤 타당한 논리보다도 큰 목소리는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해온 것이 사실이다.그리고 역사적으로 그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항상 여성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남성 만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는 이 남성의 목소리에 묻혀왔고, 그로 인해 침묵은 금이다. 라는 말은 여성에게 가장 큰 미덕으로 자리 잡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은 항상 남성보다는 열등한 존재로, 여성이 갖고 있는 특질 역시 저능한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왔었다.그런데 여성이 갖고 있는 특질이 남성의 것과 같이 똑같이 도덕적으로도 우월한 것이라는 캐롤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 는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정체성 을 이야기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먼저 길리건은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의 논의를 통해 남성의 삶에 토대를 둔 발달관에서 독립, 자율, 개인화, 자연권 등이 강조되어 오면서 이것들이 사회적으로 타당한 도덕적 가치이며 우월하다는 것을 표면화 해왔고 그리고 그에 반해 여성의 삶에 토대를 둔 발달관인 친밀성, 인간관계 및 보살핌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이며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도 여성은 신체 구조 및 생식 기능에서 필연적으로 비롯되는 직관적 또는 본능적 인 것이라면서 사실 이것에 대한 연구도 방치해온 사실에 문제점을 느끼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여기에서 길리건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별은 솔직히 나에게 처음엔 회의적으로 다가 온 것이 사실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에 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하나의 방법으로 나 스스로 여성성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또 그것을 무시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일부러 여성답지 않게 행동하려고 했었던 적도 많았다. 일부러 크게 웃었던 적도 있었고, 옷도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가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성성에 편입하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인다. 처음 대학생 연구 부분에 자아와 도덕성의 딜레마를 보면서부터 길리건과의 동감대를 얻었다.이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 는 여성성을 구별 지으면서 여성의 정체성를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목소리라는 것, 보편적인 대세에 역론하면서 길이 아닌 곳을 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길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통로를 제시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임신 중절 결정 연구 단락에 들어가면서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 연구로 여성성을 가장 크게 대변해 주고 있지만 낙태 라는 것이 책임과 이해라는 측면을 떠나서 평소 태아는 수정됨과 동시에 인간이고, 또 모든 권리보다 생명권이 우선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도덕성이 계속 나의 뇌리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길리건은 그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떤 판단 을 하고 어떤 행위 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길리건이 말하는 여성의 도덕적 성숙기인 첫 번째 단계인 생존권 확보라는 것에서 연장선인 도덕이 논의 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낙태를 생각했을 때 책임감 이전에 주변의 시선이 우선시 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여성의 발달 5단계가 상호간의 타협을 통해 조화를 이루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당연히 인정은 하지만 바로 수긍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리고 이 보살핌의 원리를 이해할 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이 특질이 여성성으로 고착화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요즘 주변에서 보살핌 안에 포함되어져 있는 이해와 배려를 남성들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고 여성 역시 그것이 당연히 자신의 특질인양 받아들이게 됨을 볼 수 있다. 얼마전 친구와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 여자아이가 먼저 타려고 하자 뒤에 있던 동생으로 보이던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밀치며 먼저 타면서 이런 말을 한것을 들은 적이 있다.내가 남자니까 누나보다 먼저 타야지!하지만 그 남자아이 반응보다 그것을 보고 여자아이에게 말하는 부모의 반응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네가 누나니까 이해하지?어쩌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어릴 때 형성된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볼 때 너무도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대학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입생 때 술자리에서 느낀 일인데, 고학번의 남자 선배들 옆에는 항상 예쁜 여학생을 옆에 앉히고 은근히 술을 따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여자 선배들도 술자리의 분위기를 위해서 묵시하거나 네가 이해해라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당연히 이해와 배려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게 착한 여자 콤플렉스 를 유발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전문직의 자신감에 찬 여성이라도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잡지에서 나쁜 여자 신드롬이라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어쩌면 여성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나쁜 이라는 것에서 아직도 사회에서 이런 여성들을 보는 시각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것이 '신드롬'이란 명칭이 붙은 것에서 씁쓸함을 함께 느꼈다.
감시와 처벌 을 읽고정보화 사회가 되어갈수록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은행에서 친구와 돈을 찾는데 우연히 앞에 놓인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은행에서 돈을 찾는 일도 매우 조심스러워 짐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행동을 위축시킨다. 이렇게 하루에 참 많은 시간들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 에 노출된다. 오래전 한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으로 몰래 카메라 가 굉장히 이슈화가 된 일이 있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이젠 진정 사회 문제가 되어 있다.그리고 이런 사회 현상에서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이란 책은 좋은 지식의 보고가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쉽게 소화하기는 많이 힘이 들었다. 하지만 감시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을 경우 죄수들이 스스로 감시자의 감시를 내면화하여 감시자의 뜻대로 길들여지게 하는 원형 감독의 의미인 펜옵티콘의 효과에서 나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레포트를 쓰지 않으면 학점을 받을 수 없는 처벌 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학생 신분으로 내제된 감시 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이 감시와 처벌 에서 푸코는 각 시대의 형벌 제도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감시, 통제하고 또 권력의 작용에 따라 개인은 수용되어 갔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먼저 이 책의 첫 부분을 접했을 땐 절대 군주의 위력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사실적이고 세세한 고문의 묘사는 실로 너무도 섬뜩했다. 그리고 18세기까지의 가혹한 신체형은 개몽주의 시대에 와서 범죄의 경중을 따져서 형벌의 개월 수로 따진다. 이렇게 바뀐 것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라는 말처럼 처참한 사형제도가 사라져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형벌까지도 물상화 시킨 것으로 이성이 낳은 자본주의의 폐단이 형벌에까지 영향을 미친 걸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감옥제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형벌제도가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서 발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 차이로도 볼 수 있겠지만 다른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형벌제도가 예전보다 더욱 치밀한 권력 수단이 되기도 한다.파놉티콘 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요기서 푸코는 파놉티콘 원형 건물에 구현된 감시의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스며들면서 규율 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톱티시즘 으로 탈바꿈 했음을 지적했다. 푸코는 원형 감옥에 나타난 감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감시는 보편적이었고, 영구했으며, 포괄적이었고 , 이러한 의미에서 파놉티콘은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자동기계 이다. 따라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렇게나 선택된 누구라도 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파톱티콘은 감옥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것의 적용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병원이나 학교, 군대 등에서도 적용가능하다. 환자들은 서로의 병에 따라 격리되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방식에 따라 배우고, 군인들은 상부 명령 통제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검시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병원의 감시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것이고, 학교의 감시는 성적 향상을 위한 감시, 군대의 감시는 치안을 위한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의 권력은 사람들에게 일반화와 자기 규율화 방식을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우리 ** 대학교의 교시를 보자. 진리, 창조, 봉사 이다.자세히 보면 대학 본연의 사명과 기능인 진리탐구, 전통문화의 계승과 새로운 문화의 창조,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선도적인 봉사를 **대생 전체에게 강조하고 있다. 입학과 동시에 학생들은 이 교시를 따라야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의 권력행사는 성적처리로 가장 크게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생이란 위치에서 규율에 결코 자유로워 질 수 없고 또 그것을 어겼을 경우 처벌 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권력은 신체를 길들이게 되고 모든 제도에 투입되어 일탈 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려 하는 것이다.푸코의 견해처럼 사실상 감시와 처벌의 사회로 변하는 것은 권력의 개입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감옥과 형사 처벌 등 역시 정치, 경제적인 권력을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이다. 그리고 감시 체제 역시 더욱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 문명의 발달 과정으로 카메라 폰, 디지털 카메라, CCTV 등은 이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의 사생활은 너무도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자 화장실 몰래 카메라 사건이나 사진의 인터넷 무단 유포, 수백건의 쏟아지는 스팸메일 등은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들이라고 하겠다.
광기의 역사 를 읽고인간은 본질적으로 광기에 걸려있다. 따라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미쳤다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이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파스칼 의 구절은 딱딱하고 고지식하게만 보이던 이 책속에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사람들은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새 그 속엔 정상인 과 비정상인 으로 구분을 짓고, 그리고 자신들은 정상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렇게 구분 짓는 일이 이 구절에 의하면 또 다른 미침의 형태인 것이라니 솔직히 암암리에 구분 짓기에 익숙해져 버린 나 역시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그리고 이 광기의 역사 란 책 안의 푸코는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광인이라 쉽게 규정짓고 정신병원이란 곳에 치료를 한다는 명목아래 감금시키는 일에 관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사유를 던지면서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사회의 권력, 지배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틀에 박힌 사고를 해왔는지 깨닫게 해주었다.먼저 권력과 억압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푸코는 광기를 바탕으로 지식과 권력이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광기의 통제는 권력의 탄생인 것이다. 우리는 중, 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사회로부터 머리를 길거나 물들이지 마라, 지각하지 마라, 유흥업소에 출입하지 마라 등의 많은 통제를 받는다.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와 억압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적 사회인을 우리는 어느 순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억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르게 되고 그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사회 소수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성적 인간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면서 이에 반하는 인간은 비이성적 인간으로 규정되어 진다. 그럼 여기에서 기준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성 이란 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푸코는 이성 이란 단어가 정말로 이성적인지 고찰하였다. 그리고 광기 는 정의 불가능한 것 이라고 정의하였다. 정의라는 것은 언어를 이용한 이성적 활동이다. 하지만 이성적과 반대의 개념에 놓인 광기 는 이성이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결국 광기 에 정의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지극히 주관적으로 정의된 것이다.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광기의 모습은 시대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중세는 광기를 일종의 예지적 재능으로 여겼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한편으로는 광기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이상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신적인 것에 통하는 즉 이성을 넘어선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고전시대에 들어와 합리주의 가 등장하면서 부터는 광기는 죄 가 되며 광인들은 감금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병 으로 간주되고 정신질환으로 취급하여 정신병원에 안치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광인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하고 있지만, 그의 의미는 달라져 왔다.그리고 보편적인 의미는 아직도 19세기의 담론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재에서도 그 의미는 조금씩 변화를 보인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말이 있다. 보통 일 때가 가장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속담은 점점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쓰이지 않는다. 그 대신 미쳐야 한다. 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 한다. 요즘 종종 영화나 예술방식은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보면 미쳤다 라고 할 수도 있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방법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다름에서 광기를 열광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요즘 들어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첫 문장에 말했던 파스칼의 구절에 너무도 잘 들어맞고 있다는 것을 사유하게 해준다.그럼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열광하는 광기와 우리가 구분 짓고 되지 않기 위해 몸서리치는 광기는 왜 다른 위치에 있게 되는가이다. 어떤 광기는 오히려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인가.여기서 또 한번 이성이 만들어 낸 권력 이 또 다른 광기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가 기계화되면서 이성을 갖고 있는 인간 역시 물화되어가면서, 사람들은 발달된 분업사회, 고도의 기술문명 사회에 염증과 반발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소외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소외감은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광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시대가 변화해 갈수록 우울증 환자나 정신 분열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통계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였는가?이 글을 시작하려고 하는 나 역시 여자이다. 그런데 이 여자 라는 단어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나에게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sex 를 구별하는 개념을 넘어서 보다 더 무거운,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굴레로 느껴진다.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말 아래 하늘이 물주는 대로, 햇빛이 비춰주는 대로 변모해야만 하는 땅이었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말 아래 조신하여야 한다는 속박에 사로잡혀 목소리가 있지만 소리 낼 수 없는 집안의 돌부처.이것이 한국 사회가 요구한 여성상 이었기 때문이다.그럼 위의 여자라는 사실은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보봐르의 성찰이 현대의 여성의 현실에서 갖는 의미를 글이 아닌 영상으로써 현대 여성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있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를 예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갈려고 한다.먼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라는 본질적인 개념은 제 2의 성으로써 제 1의 성에게 길들여지며 종속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체 이자 본질 로써 절대적인 남자앞에서 여성은 타자 일 수 밖에 없다는 발견인 것이다. History 라는 단어가 보여주고 있듯 역사는 남성의 이야기이다. 역사속에 여성의 위치를 찾아보면 그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그 단어가 존재하고 있듯 우리 인식속에도 깊숙이 그 틀이 밝혀 이 History를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위인하면 대부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떠 올리고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보면 유관순 누나가 나온다. 그런데 왜 여기서 유관순 열사가 아니고 누나가 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속에는 이미 여성비하가 숨어 있는 것이며 또 역사를 History로 응원하고 있는 우리의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은 남자들에게 예속된 어쩌면 당연한 전유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가부장 사회에서 역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상속의 역사 는 타자의 역사 를 만들어 내면서 이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이 예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 찾아보면 태희의 남동생이 태희의 방에 들어와 잔심부름을 시키는 모습에서 남성은 당연히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 그리고 늦은 밤 태희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의 보약을 전자렌지에 넣고 데우는 장면, 주인공 태희가 여상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일하는 모습에서 여성이 집안에서 일하는 것은 대가를 바라는 일이 아니라 당연한 봉사라고 여기는 가부장제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여성성 이 규정되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봐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성 은 본질도 천성도 아니며, 몇몇의 생리적인 조건에서 인류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여기서 남성들은 이 여성다움을 신화화함으로써 자신의 타자성을 비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신비 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어느새 너무도 오랜 세월 이 타자성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신비 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의 혜주는 화장실에서 렌즈를 잃어버리고 안경을 쓰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이때 남성상사는 혜주에게 안경을 쓰니 전혀 다른 사람 같다며 기분 나쁜 말과 웃음을 흘리고 지나간다. 이에 혜주는 자신의 안경 쓴 모습을 직장에서 보이게 되는 일이 없도록 라식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에는 눈도 좀 찢고, 코도 좀 세울까봐. 나를 바꿀 수 있는 데까지 바꿔 볼 거야. 라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나를 바꿀 수 있는 데까지 라는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혜주의 라식 수술을 받고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분명히 남성에 의해 보여진 자신의 미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나를 바꿀 수 있는 데까지 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포장해버린다. 보봐르는 옷치장이나 가사에 주로 시간이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어디까지나 여성다운 여성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 라는 말을 남기고 있는데, 사실 너무도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그 기준을 잡는 것이 너무도 모호함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척오빠에게서 여자애가 화장 좀 하고 다니지...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오빠 앞에 붙은 여자애 라는 말이 무척 거슬렸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갈 때 마다 화장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후, 과연 여성인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위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었다. 남성이 만들어 놓은 신비 라는 덫은 너무도 깊숙이 그리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교묘히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하지만 어떤 모습이었던 간에 남성들이 만든 이 신화를 내면화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여성들이 공모한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보봐르는 여기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묻고 여성연대 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한번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를 살펴보면 혜주의 여상사가 혜주가 잡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야간 대학에 다니기를 권하며 그렇지 않으면 평생 저부가가치 인간 으로 살 것 이라는 말을 남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여성 스스로가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삶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로 성공한 여성일수록 여성 스스로 자신의 집단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성들이 혜주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통하여 남성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에 합승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점에서 여성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자기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라는 보봐르의 일침은 나 역시에게도 강한 자극을 주었다. 우리 여성 스스로 타자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강한 여성적 유대감과 함께 무작정 사회와 인식이 변화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여성들의 변화에 선봉에 서야 한다는 사실의 시작 자체가 여성 스스로의 삶속에서도 떳떳할 수 없었고 타자의 위치에 놓여야 했던 삶을 주체적인 위치로 되돌려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보봐르가 19세기의 여성 해방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가 바로 당시 지식인 여성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다고 분석한 예를 거울삼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사회에 참여를 하며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지금까지 보봐르의 논점을 살펴보았는데 이 보봐르의 성찰이 아직도 여성 운동의 지침서가 되며 이어져 오고 있는 사실처럼 현대에서 갖는 의미를 찾자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 보인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의 여성은 주민 등록본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숫자 2로 시작하며, 또 여성이란 이유로 인해 타자 이며 제 2의 성 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시대가 다른 매체인데도 보봐르가 던진 성찰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로 되짚어 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고양이 같은 스무살 이란 부제를 띄고 있는데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놓여 있어 불안하고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대한 불안감과 세상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힘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스무 살의 삶과 야생동물과 애완 동물의 경계에 있고 자기 공간에 집착이 강한 동물 고양이의 모습이 여성의 역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보봐르가 던졌던 질문을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던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서 어쩌면 여성 해방의 역사는 너무도 슬픈 역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경계선에 있는 지금 우린 성적 경험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경험 자체가 인간의 운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심리적인 생활 체험의 총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그녀의 논의 속에 여성은 단순히 그 생리적인 구조나 연약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볼 수 없으며 불행할 수 도 없다는 것을 알아온 만큼 많은 변화를 조금씩이긴 하지만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보봐르의 논점에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은 그녀가 내놓은 결말에 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가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배격해서는 안되며,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역사는 특권층이었던 남성의 손으로 만들어진 면이 많지만 그런 공존 관계에 볼 때 여성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위에서 상기했다. 따라서 여성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책임도 여성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으로 보봐르는 대안으로 자립하여 살아가는 여성인 자유로운 여성 을 강조하고 하고 있다. 물론 이점은 사회 구조적으로 그리고 남성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겠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체화의 시발점이 보이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