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퀼트의 정의{퀼트란 조각잇기(Piecing)를 한 겉천(quilt top)또는(top)과 안천(backing) 사이에 솜(batting)이나 융같은 두꺼운 천을 대고 세장을 한꺼번에 누빔작업 즉, 퀼팅(quilting) 하여 만든 tapestry, mat, bed-cover 등의 완성된 작품을 말한다.즉, 천을 조각작업(퀼팅) 한 후에 솜과 뒷감을 대고 도안대로 누벼 완성된 형태를 퀼트라고 한다. 사전적의미를 보면 퀼트는 울과 면, 솜털을 끼 운 두 장의 천을 디자인에 따라 바느질한, 침대커버인 '누비이불' 로 설명되어 있다.보온성이 뛰어났기에 오래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침대커버, 쟈켓, 조끼, 치마속에 입는 패티코트등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 이용되곤 하였다.퀼트라하면 대표적으로 아메리칸퀼트를 들 수 있는데 잠깐 언급하자면 1620년경 미국의 이민 생활 초기엔 물자부족과 함께 추위, 바람등의 유럽의 환경과는 다른 자연환경의 극복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선 퀼트가 필요하게 되었다.헌옷 조각등을 모아두는 주머니를(스크랩 백) 걸어두어 일정량의 조각이 모이면 이것을 연결하여 생활용품,침대커버,커튼등을 만들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초기 퀼트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단순히 여러 조각을 연결한 것으로 스크랩퀼트(Scrap Quilt)라 불리웠다.완전히 재활용이라 할 수 있는 퀼트는 여성들에겐 퀼팅 비(Quilting Bee)와 패치워크 파티(Patchwork Party)라는 모임을 만들게 하였으며 이후 차츰 색의 조화, 패턴의 디자인을 구성하게 되었다.또한 각국의 이민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퀼트 기법이 전해지게 되었고 미국적인 개성이 강한 아메리칸퀼트로 발전하게 되었다.퀼트는 미국의 경제공황시대에는 정책적으로 장려하였으며 꾸준히 발전하여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퀼팅의 기본은 천을 평평하게 2장 겹쳐서 안에 솜 등을 끼어 넣어 연결한 후 새로운 천을 대어 만드는 것이다. 초기의 퀼팅은 2장의 천 사이에 부드러운 패드를 넣어 간단하게 실로 마무리지어 완성하였다.른 기원과 발생지는 12C에 몽고나 중국농민들이 고비사막의 찬바람을 막기 위해 누비옷을 입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데, 17C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많은 사람들은 개척시대에 옷감이 매우 모자라서 헝겊도 소중히 여겼기에 낡은 옷의 성한 부분을 오려 삼각, 사각, 마름모 또는 육각형으로 짝지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이용하고 보존해 왔다고 한다.미국 실용퀼트의 기원은 궁핍했던 시절, 오랫동안 사용하여 낡아진 헌옷 조각들을 이용해 덮을 것과 입을 것을 만든 것이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산업화의 바람이 불던 19세기 무렵부터 퀼트는 화려해지고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다.대량의 천이 만들어지고 싼 가격의 원단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디자인에 맞춰서 천을 자르는 것으로 발전했다. 시대에 따라 유행이나 필요에 의해 퀼트는 다양하게 변화하기도 했다. 퀼트가 가장 성행했고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눈부시게 발전한 19세기에 '퀼트비'라는 퀼트 작업을 위한 사교 모임이 성행했다.혼자서 하면 힘든 퀼팅도 여럿이 하면 진행이 쉽기에 이 모임을 통해서 개척시대의 협력하는 관습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퀼트비는 교회를 세우거나 결혼, 약혼의 발표, 의사소통의 장이 되었다. 모임이 크면 23일씩 지속되기도 해서 퀼트가 완성되면 남자들까지 합세하여 성대한 저녁식사와 댄싱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우리나라의 규방 풍속에서도 조각보, 조각이불, 조각베게잇 등에서 조각헝겊을 네 귀 맞춰 만든 패치워크나 퀼팅을 발견할 수 있다. 누비이불, 또는 누빔이라는 이름으로 퀼트의 형태가 계속 이어져왔다.조각잇기는 주로 비단 헝겊을 소재로 하였다. 서구에서 전래된 패치워크는 cotton(면)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무늬에 비롯된 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1 고대 이집트의 퀼트Averil Colby의 고전책인 "Quilting"에서는 최초의 퀼팅의 예는 이집트 첫번째 왕조(B.C3400년경)의 파라오가 퀼트로 만들어진 망토를 걸치고 있는 벽화"가 역사적 자료로 볼 때 최초라고 주의 이동이 시작되면서 미국적 특징이 생겨나던 1850년경의 서부 개척 시대와 남북전쟁 시대를 이야기 할 수 있다.이후 1870년경을 절정으로 한 독립 100년 시대는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퀼트가 가장 많이 만들어졌던 시기이며, 1930년대 경제공황 시대 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때 쇠퇴했던 퀼트가 다시 부활하게 된 시기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는 잊혀져 갔던 퀼트의 가치가 재인식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대 퀼트의 시대라 할 수 있다.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퀼트1620년 11월 19일, 영국으로부터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는 65일의 항해 끝에 메사추세츠의 프리모스에 도착하였다. 180톤의 메이플라워호는 102명이 겨우 탈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배였다. 그들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당시엔 불모지인데다 추위와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의복이나 퀼트도 많이 낡았고 새로운 천이 들어왔어도 소량이었기 때문에 이들 이주민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조그만 천을 모아 퀼트를 만들어 창문 틈새로 부는 바람을 막기도 하고, 마른풀과 동물의 털, 날개, 옥수수 털 등을 넣어 퀼트 이불과 매트를 만들어 침대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시 유럽으로부터 신대륙에 건너온 이주민들은 낡은 옷에서 사용이 가능한 부분만을 남기고 일정한 크기로 가지런하게 연결하여 패치워크 퀼트를 만들기 시작했다.이 때 신대륙에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주해 왔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수법이 합쳐진 아메리칸 패치워크 퀼트가 시작된 것이다.퀼트를 만들기 위한 모든 자투리 천은 '스크랩 백'이라고 불리 우는 자루 속에 모아졌다고 한다.식민지 시대의 퀼트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은 주로 오늘날의 뉴잉글랜드에 터를 잡게 되었고 그 후에 미국으로 건너온 스웨덴인, 독일인은 펜실바니아에 거주하게 되었다.네덜란드인과 영국인은 뉴욕에, 프랑스인은 주로 남부로 모여들었지만 퀼트는 그들 모국의 각각 다른 영향을 받으면서도 점차 미국적인 것으로 그 모습을 갖추어 가게 그 퀼트 안에는 패턴 종이로 사용된 1701년 하버드 대학 요람이 그대로 배접 되어 있다고 한다.6. 현대의 퀼트퀼트의 시작은 추위에 따른 자연 환경의 극복에서 시작되었으며 물자가 풍부하지 못했을 때 자투리천을 모아 그것을 재활용하여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후 산업이 발달하여 원단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부터는 조각천의 의미가 남은 원단 조각이라기보다 작은 조각으로 잘라놓은 천을 뜻하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1930년 경제공황시대를 거쳐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때 쇠퇴되었다 다시부활하게 되면서 그 가치가 재인식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까지는 퀼트 기법의 하나인 아플리케가 팔꿈치나 무릎부분의 옷에 사용된 경우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였다. 현재는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조각보가 있으며 핸드퀼트 중심에서 머쉰퀼트의 보급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오늘날의 퀼팅은 생활의 필요에 의한 실용품 중심의 퀼트에서 차츰 기교와 기법이 다양해지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아트퀼트로 승화되고 있다. 손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아름다운 디자인에 많은 퀼터들이 개인적인 설명과 생각을 곁들여서 새로운 퀼트 패턴을 창조하고 있으며, 그림 퀼트, 추상 퀼트, 그리고 워터칼라 퀼트 등은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퀼터들이 면이 아닌 다른 재질의 직물을 이용하거나 염색을 통한 자신만의 색상과 디자인을 창조하고 있으므로 이제 퀼트는 단순한 바느질의 과정을 넘어서 한분야의 예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할수 있다.7. 퀼트의 종류(1) 고대퀼트 (antique quilt)퀼트의 연대는 천의 패턴과 염료로 알 수 있는데 19세기 중반, 화학염료가 나타나기 이전까지 천연염료의 한정된 색으로 만든 작품을 앤틱 퀼트라고 한다. 천연염료로 만들어진 앤틱 작품은 소박한 퀼트의 원뜻을 진실되게 표현하고 있다.(2) 로그캐빈 퀼트(log cabin quilt)고향의 집 굴뚝과 벽난로의 불꽃을 연상하게 하는 로그캐빈은 미국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패턴이다. 로그캐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23) 조각퀼트 (pieced quilt)가장 미국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피스드 퀼트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패치워크된 침대 커버이다. 3각형, 4각형, 6각형, 8각형, 다이아몬드 등의 조각을 잇대어 붙이는 블록 구성이며, 1750년 아플리케 퀼트가 나타나기 전에 미국의 퀼트는 대부분이 피스드 퀼트였다.(24) 크레이지 퀼트(Crazy quilt)패치워크 중 가장 오래된 스타일로 퍼즐처럼 기본적인 삼각, 사각의 천조각이나 불규칙한 형태의 천조각들을 모슬린, 면, 명주 등의 넓은 천위에 자수를 사용하여 연결한 것이다. 뒷면을 붙이고 나서 퀼팅을 하지않고 시침을 한다(25) 커메머레이티브 퀼트(Commemorative Quilt)나라의 기념일에 만들어진 퀼트를 말한다.(26) 컨템프러리 퀼트 (Contemporary quilt)현대 감각에 의해 디자인 된 퀼트 기법이나 소재도 트래디셔널 퀼트에 구애되지 않고 여러가지 모양이 있다. 전체의 구도도 종래의 퀼트처럼 모티브의 반복에 의한 것 보다는 회화적인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27) 쿼테이션 퀼트(Quotation Quilt)좋아하는 싯구나 속담등을 블록으로 자수하고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쓰여 있는 퀼트를 말한다.(28) 크리브 퀼트(crib quilt)유아용 침대하는 의미를 가진 '크리브 퀼트'는 유아용이기 때문에 퀼트의 크기가 다른 것에 비해 작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침대로부터 독립하여 아이 몸집에 맞는 작은 침대로 옮겨 지면서 귀엽고 앙증맞은 베이비 퀼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29) 트라푼토 (Trapunto)화이트 퀼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누비고 난 다음 뒤에서 솜, 모사등을 넣어서 모양을 입체적으로 나타낸 퀼트.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퀼트로 이탈리아 퀼트라고도 불리운다.(30) 트레디셔널 퀼트 (Traditional quilt)전통적인 패턴이나 기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퀼트 종류는 몇천 종류나 되며 자연이나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31) 퍼프드 퀼
? 19세기의 복식사- 엠파이어스타일 시대 : 약 1800-1820년 대- 로맨틱스타일 시대 : 약 1820-1850년 대- 크리놀린스타일 시대 : 약 1850-1870년 대- 벗슬스타일 시대 : 약 1870-1890년 대- S자형 스타일 시대 : 약 1890-1910년 대1. 엠파이어스타일(Empire style, 1789 - 1815년)1) 개요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815년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의 제 1제정까지 30년간은 복식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귀족풍이 무너지고 새로운 뱡향이 모색되었던 시기였다.즉, 자유,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시민사회는 권력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에서 발생되는 순수한 것에 생의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장식된 화려함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을 중요시 여겼다.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남자의복은 간소화되었으며, 무릎 길이의 바지는 점차 사라지고 발목길이의 긴바지로 전환 되었다.여자의복은 혁명직후 고대 그리스풍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인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 가는 허리, 부풀린 스커트, 높은머리 등의 귀족적인 의상형태가 사라지고 전체적인 통일성 있는 실루엣을 형성하여 자연적인 인체미를 강조하였다. 머리 장식도 축소되었으며, 남자들은 거의 단발(cropped hair)을 하고 여자들은 머리다발을 뒤편에 높이 올리고 머리둘레에는 장식용의 가는 밴드를 둘러 정돈하고 머리위는 평평하고 이마는 드러내고 짧게 컬한 머리를 양쪽 귀 뒤로 늘어뜨린 형태였다.2) 문화적 배경과 복식의 특징산업혁명의 완성기로서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산업의 기계화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된 시대로 왕실과 귀족중심의 패션에서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인 패션으로 전환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직물생산의 기계화로 의복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고 19세기 중기에 재봉틀이 발명되면서 복식 사상 처음으로 기성복의 생산과 보급이 추진되었다.3) 의복의 종류 및 패션 경향(1) 남자복식① 코트허리선 아래의 앞자락을 잘라 낸 것 같은 모양의 테일 코트. 앞판 다문 윗입술, 남성다운 참회의 짧은 머리, 흰색 수갑처럼 높게 풀 먹인 칼라의 시대였다.남성다움의 찬미는 여성참정권운동가들의 여성선거권캠페인에 불을 당겼다. 여성 운동가들은 철로에 몸을 묶기도 하고, 경주마 아래로 뛰어들거나, 투옥과 강제단식을 견디어내기도 했다. 존경스럽게 혹은 경멸적으로 알려진 '신여성'은 담배를 피우고, 니커보커즈를 입고 자전거를 타거나, 여유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며 수리할 수도 있었다.더 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사이클링, 테니스, 골프와 같은 활동적인 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실제적이고 덜 화려하며 프릴장식이 적은 의상으로 반영되고 있었다.1890년대에는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된 남성의 양복과 같은 테일러드 자켓들이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아직 몸매를 드러낼 정도로 맞기는 해도 드레스보다는 덜 과장되었다.실루엣이 점점 가늘고 직선적으로 되었으므로 모자는 더 커졌고 머리카락은 앞에서 더 낮고 덜 부풀려졌다. 1900년대 초기의 S-자형에서 T-자형으로 되었다. 당시 Merry Widow 오페라에 영향을 받은 '메리 위도우'모자가 유행했고, 비단 스타킹, 루이스힐을 착용했다. 유행을 따르는 여성들은 많은 종류의 장갑을 필요로 했다. 장갑은 여름과 겨울에 항상 외출복과 같이 착용하였다.장갑은 스웨이드, 실크, 염소가죽으로 만들어졌다. 핸드백은 작고 장식적이었으며, 털 머프는 겨울 옷차림을 완성시키는 용품이었다. 여름에는 프릴이나 레이스로 장식된 파라솔을 들었고, 저녁에는 부채를 들고 다녔다.남성들은 1900년대 동안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1890년대 댄디의 부활은 계속되었다. 톱 배츠(top bats)와 비스듬히 재단하거나 더블 여밈의 긴 프록코트는 모든 공식적 의례에 착용되었다. 조끼는 여름 슈트에까지 착용되었고 타이와 함께 셔츠는 늘 착용되었다. 남성들의 자켓과 코트는 직선 라인으로 재단되었고, 바지는 다리가 매우 좁았으나 약간 팽이모양의 효과를 주기 위해서 힙은 여유를 두었는 미국 증권 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세계의 경제 대공황으로 경기가 매우 침체되었다.3) 문화적 배경아르데코(Art-Deco)의 예술사조와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의한 기능주의 추구가 더욱 성숙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아르데코는 입체주의와 러시아 발레단의 형상과 색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24년에는 예술에 있어 초현실주의 도입되었으며, 이국적 정취(Exoticism)가 유행하였다.(1) 째즈, 아르데코, 러시아발레단① 째즈1920년대 이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는 째즈, 아르데코, 러시아 발레단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대 초 서구 세계는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회복기에 있었다. 수백만이 죽고 또 수백만 이상이 정신적 타격을 받았던 전쟁이라는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당시 사람들은 완전하게 회복 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회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했던 것은 공포와 고통에 대한 해독제로서 즐거움, 가볍게 들뜨기, 흥청대기 등 속박에서의 해방감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째즈이다.째즈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지만,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 째즈의 이러한 즉흥성은 당시 자유를 갈망하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광란*이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표현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춤에 대한 이같은 광기는 그 시대의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는데, 바로 이레네 케슬(Irene Castle:1893-1969)과 남편인 Vernon Blythe Castle 로 이루어진 댄스 팀이 바로 그것이다. 케슬은 *Castle bob*라 불려진 짧은 헤어스타일과 진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가는 Head-band로써 패션리더가 되었으며, 디자이너 Callot자매는 춤추는 이레네 케슬을 위해 특별히 Hoop Skirt를 디자인 하기도 했다.이같이 째즈의 유행은 복식의 변화를 초래했는데, 춤을 추기 위해 짧은 스커트와 운동감을 위해 장식용 드레이프와 여러 줄의 긴 목걸이를 착용하게 되었다. 또 뒤를 강조하기 위하여 다.1928년부터 나타난 인체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강조하는 경향은 30년대 초에 등이 노출된 이브닝 드레스라는 하나의 대담하고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낸다. 등은 거의 허리선까지 잘려나갔다. 이브닝 드레스에는 홀터 네크라인(halter neckline)과 카울 네크라인(cowl neckline)이 주로 사용되었고 Vionnet의 바이어스 재단으로 몸에 부드럽게 늘어지는 모양을 이루었다. 이제 양성적이던 광기의 시대인 가르송느 스타일은 차츰 사라지고 부드러운 니트와 레이스 그리고 리본으로 만들어진 옷에 의해 인체를 부드럽게 드러내 보였다. 이로써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출현하게 된다. 탄력 있는 망사로 된 콜셋은 배를 평평하게 하고 힘을 축소시켰다. 이러한 자연으로의 복귀는 20년대에 풍미했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비록 대부분 여성들이 더 극단적인 스타일을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브닝 드레스 패션은 매우 인기 있었고 여성들은 늘어나는 다양한 디자인을 즐길 수 있었다.20년대의 활동적인 옷차림에 익숙해진 플래퍼들에게 있어서는 이 뉴 스타일은 매우 입기 불편한 것이었다. 또「불황에의 긴 드레스」는 일면의 모순이다. 20년대의 짧은 드레스는 2미터 안팎의 옷감으로 할 수 있었지만 뉴 스타일에서는 5미터 가까이나 필요했다. 이 모순에 대해 「불안한 시대의 도래와 함께 "여자다움"을 강조하고 싶다는 여성 본능이 소생한 것이다」라는 설도 있다. 또한, 뉴 스타일에는 시즌마다의 극단적인 라인의 변화가 없고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어쨋든 어제까지의 가르손느들은 지금까지 억압되어 있던 자기 속의 "성숙한 여성"을 위해 모든 연구를 집중하게 된다.1934년, 마르세르 로샤가 그때까지 3, 4년간 계속된 몸에 꼭 달라붙는 바이어스 재단의 드레스를 대신해서 웨이스트라인을 두드러지게 한 보다 느긋한 스커트를 내놓아 의상의 행동성을 회복한다. 이 시절부터 각 꾸뛰리에마다 실루엣이 다양화하기 시작한다.평상복과 이브닝복에의 독립된 발달만큼이나 패션의 다른 분야는 더look)이 등장하여 유행하게 되었다. 뉴룩은 여성스러운미를 나타낸 드롭숄더(drop shoulder)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의 뉴룩은 귀족적 취향의 부르조아적 패션의 재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현대 여성의 착장미가 정착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에는 스커트의 길이가 길어져 발목길이의 주름이 많이 잡힌 발레리나 스커트가 나타났고, 허리가 꼭 맞고 스커트 부분이 플레어지는 형태와 뒤에 주름이 많고 품이 넓은 코트 등이 유행하였다. 구두는 전쟁 중에는 낮고 뭉뚝한 모양이 유행하여 그 시대에는 죠이스슈즈가 매우 인기 있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접어들어 굽이 다시 높아지고 구두코도 다시 뾰족한 형태로 변하였다. 미국에서도 실크 스타킹의 부족함을 대신하기 위해 발목길이의 목양말인 바비 삭스(bobby sox)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 여성들 사이에는 맨다리에 스타킹의 솔기처럼 보이는 선을 그엇는데 이 다리화장(leg make-up)은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또 헤어스타일은 초기 여성들은 턱아래에서 매거나 머리둘레를 감싸는 머리 스카프를 썼으며, 그후 신에드워드의 폼파두르 스타일이나 부드럽게 어꺠위로 내리는 형태, '승리의 타래'로 불린 머리카락을 머리둘레를 계속해서 도는 모양을 만드는 형태도 여러해 유행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헤어스타일은 짧아지게되고 이에따라 과감한 형태의 귀걸이, 긴줄의 진주가 매우 유행하게 된다.(2) 남성복남성복에서 디자이너들은 의복디자인의 영감을 군대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었고 아이젠하워재킷(Eisenhower jacket), 몽고메리 베레모(Montgomery beret)와 같은 시대적인 모티브들이 일반화되기도 했다. 또한 체스터필드 코트(chesterfield coat)나 레인코트를 입었고 터틀 네크 스웨터나 가디건이 인기가 있었다. 1940년대 초에는 전쟁시의 군복에서 영향을 받아 어깨를 각지게 강조하고 라펠이 넓은 슈트를 착용했다. 그리고 종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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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복식정(淨) - 부정(不淨)의 의복이 개념은 카스트에서 나온 개념이다. 정은 깨끗하다는 뜻이며, 부정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표현된다. 카스트의 경우 정한 직업, 즉 깨끗한 직업을 가지는 계층이 높은 카스트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높은 카스트들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부정한 카스트와 접촉을 꺼린다. 그래서 인도에 불가촉 천민이라는 계급도 생기게 된 것이다.이 정-부정의 개념은 음식에 특히 까다롭게 적용이 되는데 자기보다 낮은 계급이 만든 음식은 먹지 않으며 식기 또한 자신의 것만을 사용한다. 인도인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는 이유도 이 정-부정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부정한 수저를 사용하면 오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한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의복에서의 정-부정의 기준은 바느질의 유무인데, 바느질하지 않은 옷을 정(淨)으로 간주하고 바느질한 옷을 부정(不淨)의 옷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바느질하지 않은 옷으로는 여성들이 입는 사리(sari)와 남성들이 입는 도띠(doti)를 들 수 있는데 , 이것은 또한 입는 방법에 따라 정-부정의 의미가 달라진다.사리를 입을 때는 원칙적으로 맨살에 입는 것이 정의 방법이다. 따라서 여성이 사리를 입는 경우, 과거에 벵갈 등지에서는 상반신 특히 가슴을 가리는 것을 격이 낮고 실례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맨살 위에 두르는 것을 정결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바느질하지 않은 옷을 입는 형태로는 허리에 매는 형과 매듭으로 거는 형이 있는데 사리는 허리에 메는 형의 의복이고 도띠는 매듭으로 거는 형의 의복이다.인도사람 특히 여성들은 양장을 착용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양장은 앞가슴과 종아리를 드러내기 때문에 힌두 전통의 예의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어릴 때는 종아리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개의치 않기 때문에 치마를 많이 입고 다니다가 초경이 시작되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리나 삐자마로 발목까지 감싸서 입는다.요권의1) 요권의의 정의드레이퍼리하고도 하는 형식으로, 천, 때로는 가죽류 상의(bodice)인 쵸리(choli)와 가그라(ghagra, 넓고 긴 스커트), 스커트(skirt), 오드니(odhni, 쓰개),샬와(shalwa, 바지), 쥬디다르(chudidar, 바지), 구르다(kurta, 튜닉형상의), 사리(sari)등이 있다. 여성에게서 꼭 보이는 이마에 하는 홍점의 화장은 샌더(sander, 폼페이 지방명)라고 하며, 쿰쿰(kum-kum), 디카, 디라크등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2) 의복의 종류(1) 사 리(sari, saree라고도 씀)사리는 인도 여성의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의상으로, 많은 민속복중에서 가장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다. 폭 0.9~1.2m, 길이 4.5~11m의 한 장의 천으로 되어 있다.기후, 환경,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지방, 신분 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원단의 끝을 감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어, 보통은 왼쪽어깨에서 늘어뜨리는데, 예불시에나 외출시에는 머리에 두리기도 하고 기혼여성이 웃사람과 만날 때나 절등에서는 옷단을 숄처럼 오른족 어깨에 둘러 쵸리를 감춰서 입는 등의 풍속이 있다. 또 일할 때에는 늘어뜨린 원단을 뒤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서 앞으로 둘러 왼쪽 겨드랑이에 끼워 넣기도 한다. 남성의복인 도띠와 사리의 뿌리는 같다고 하는데 이 착용방법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도티의 변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리는 어는 한곳도 재단이나 봉제를 하지 않은 채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이 중단됨이 없이 이어져왔다. 단순히 아름답다든가 기후풍토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종교라는 커다란 배경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로 힌두교의 여성들이 입으며 힌두교에서는 재봉솔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옷을 정의(淨衣)라 하여 현재까지도 종교적 행사같은 특별한 행사에는 재봉하지 않은 옷을 사용한다.사리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로는 목장식, 귀고리, 반지, 발찌, 허리장식, 코장식, 머리장식(Mang Tika 또는 Tiki)등이 있다.(그림 2)(그 착용한다. 유행에 따라 네크라인과 길이가 변하지만, 일반적으로 명치가 보일 정도의 짧은 것이 많다. 원래 쫄리는 앞부분만 가리고 등쪽은 가리지 않는데 아직도 그런 형태의 쵸리를 라자스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매는 그다지 유행을 타지 않아 반소매, 기모노 슬리브, 소매 없는 것 등이 널리 사용되며, 긴 소매는 드물다. 색은 사리와 조화되는 것이 선택된다. 실크로 된 사리 중에는 옷단에 쵸리용 원단을 미리 준비한 것도 있어서 앙상블로 입는다.페티코트는 보통 목면이지만, 고급스러운 것은 타페타나 새틴에 수놓기도 하고 레이스를 달기도 한다. 마무리에서는 6장과 이은 것이 많고 발목까지 오며 웨이스트는 면테이로 맨다. 색은 흰색이 많지만, 사리와 유사한 색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11)코트(coat)의 종류* 쟈마(jama)- 초기형태의 코트로서 기념복으로 입었던 것.* 앙가르카(angarkha)- 아래에 주름이 없고 가슴부분에서 열려져 있는 것 으로 키르크(khirk)나 키르키다(khirkidar)라고도 함.* 아치칸(achikan)- 목에서 허리까지 단추로 꼭 맞게 한 긴 코트로 아래는 무릎길이이며 트임이 있다.* 아바(aba)- 소매 없는 느슨한 외투로 항상 중앙아래 트임이 있다.* 카바(qaba)- 가슴부분이 열리거나 겨드랑이를 튼 가운(gawn).* 두르바(durbar)- 두꺼운 브로케이드로 된 것.* 미르쟈(mirza)- 누빈 외투.* 포스틴(postin)- 털이 많은 가죽 외투.* 포르갈(forgal)- 헐렁하게 솜을 넣은 외투.(3) 가그라(Ghaghra ; "a"ra)북인도에서 많이 입는 스커트로서 가그라(ghagara), 가가리(ghagari), 사야(saya)라고도 한다. 사리와는 달리 바느질을 한 옷이며 대개 주름이 있고 길이는 발목이나 정강이 중간까지 오며 페티코트와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끈으로 허리에 묶거나 벨트를 하기도 함.)보통 가그라에는 화려한 자수를 놓는 경우가 많으며 구자라뜨와 라자스탄에서의 홀치기 염색발달로 인ma;pajama)라고도함, 헐렁하게 입음)라고 하는 바지처럼 헐렁하게 입는다. 그리고 오르니(Orhni)라고 하는 일종의 스카프와 함께 입기도 한다. 오르니는 어깨에 늘어뜨리기도 하며, 머리에 쓰기도 한다.착용방법a. 허리의 여유분을 양 옆에서 모아 쥐고 쥐어진 분량을 앞쪽으로 가져와 양쪽이 서로 마주보게 놓는다. 이것을 배꼽 주위에 끼워 넣거나 벨트로 고정한다.b. 허리의 여유분을 양 옆에서 모아 쥐고 모아진 양쪽 중 한쪽은 양쪽 허벅지 사이를 통과시켜 뒤로 돌려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앞으로 돌려 고정한다. 허리에 생기는 여분의 폭은 앞으로 가져갈 때에 그 여유분을 적절히 주름으로 잡아 배치하면 된다.(6) 쥬디다르(chudidar)위는 넓고 아래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바지로서 허리에서 무릎까지는 넓고 아래는 종아리에 타이트하게 붙어 복사뼈(chudis : 쥬디스) 부분에서 수평으로 주름이 잡혀있다. 쥬디다르(chudidar)라는 명칭은 바로 이 복사뼈에서 나왔는데 재단은 사선으로 하고 순서대로 박음질 한다. 주로 힌두교, 이슬람교인의 상류계층의 의복으로 이용된다.(7) 쭈리다르 꾸르따 (Churidar Kurta)남녀 공용으로서 쭈리다르 꾸르따(Churidar Kurta)는 살와르 까미즈(Salwar Kamiz ; slvar kmIj)와 거의 유사하지만 쭈리다르 꾸르따(Churidar Kurta)가 살와르 까미즈(Salwar Kamiz ; slvar kmIj)보다 엉덩이부분이 좀더 타이트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살와르가 까미즈와 한 짝이라면 쭈리다르는 꾸르따(kurta)와 짝이다.(8) 구르다(kurdha)길고 느슨한 튜닉형 겉옷. 형태는 왼쪽 겨드랑이에 단추나 고리를 사용하여 잠그게 되어 있고, 허리에는 2개의 다아트가 있어 몸에 알맞게 맞는 옷이다. 길이는 무릎길이로 아래 양옆 30cm 정도 트임을 두어 활동에 여유를 주었고, 목부분은 대개 둥글거나 네모진 것이 많다.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것도 있다.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겉옷상의로서 바지인 saree)보다는 짧고 남성의 또 다른 의복인 룽기(Lungi ; lu"I qaepI) 보다는 길다. 또한 흰색을 입는 것이 대부분이다. 입는 방법도 사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사리는 한쪽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입는 반면 도띠는 가운데서 부터 입는 것이 그 차이이다. 도띠는 한끝을 다리안에서 다리 밖으로(결국 다리 사이로) 걷어올려 허리춤에 고정시켜 입는다. 도띠는 그 위에 보통 꾸르따(kurdha)를 많이 입는다. 현재의 인도남자들은 양장을 하거나 와이셔츠 밑에 룽기(Lungi ; lu"I qaepI)나 도띠로 양장과 혼합하여 입기도 한다.착용방법 - 카챠식① 왼쪽에서 정도 지점을 허리 뒤에 맞춘다. 사람과의 크기를 비교한다. (그림 12)② 옆에서 앞으로 감아 앞 중심에서 A와 B를 묶는다.(그림 13)③ 왼쪽 짧은 원단은 넓적다리 사이로 집어넣어 뒤로 뺀다. (그림 14)④ 뒤로 나온 원단에 턱을 잡아, 원단 끝은 웨이스 뒷중앙에 집어 넣는다.⑤ 오른쪽 긴 부분의 앞중심에서 주름을 5개 잡는다. (그림 15)⑥ 잡은 주름단을 앞 웨이스트에 집어넣고, 주름잡지 않은 앞부분을 왼쪽으로 두려 뒤로 감는다.(그림 16)⑦ 이 원단 끝을 오른쪽 옆선에서 좌측으로 감고 주름진 아래를 통과해 몸통둘레는 단단히 묶어서 완성(그림 17)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수행중인 사람의 의복은 최소한 필요한 것만을 입는데, 그 하나가 란고티(Langoti)이다. 란고티는 영어의 로인 클로스(Loin cloth), 브리치클로스(Breechcloth), 브리클로트(Breeclout)로, 로인(Loin), 브리치(Breech)는 허리, 힙을 가리키며, 클로스(Cloth), 클로트(Clout)는 원단을 표시한다. 원래 허벅지 사이를 통과하는 것이 금욕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수행중에 입도록 한다. 힌두교에서는 나체를 정의라 보는데, 봉제선이 없는 도티도 정의의 일종이다.종류* 마드라스(Madras)지방의 도티- 단순한 형태로 의복의 한끝은 허리에 걸치고 다른 쪽은 반대편에 놓아 주름 이 생기는 ; 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