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을 읽고월의 어느 날, 학교 ‘숲 속 교실’에서 야외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쪽 모둠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남자아이들 몇 명이서 벌레를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고, 그것을 본 지영이가 울고 있는 거였다.지영이는 학습 부진아이다. 생김새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눈에 띄게 다르다.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몇몇 여자아이들에게까지 늘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받아서 몹시 내 맘을 아프게 하는 아이였다. 지영이는 무척이나 마음이 여리다.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잘 운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또 지영이를 괴롭혀서 운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죽은 벌레가 불쌍하기 때문에 우는 거란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난 그 아이를 오래 안아 주고 괜찮다고 하며 등을 다독여 주었지만 그만 나도 눈물이 나고 말았다.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잔인하게 벌레를 죽이는 아이들과, 또 다른 한쪽에서 죽은 벌레가 불쌍해서 우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원래 선한데 살아가면서 악을 배우는 것일까?아님 원래는 악한데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서 악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흰 도화지처럼 깨끗한 상태로 태어났는데 살아가면서 선이나 악을 배워 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면서, 오래 전에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그러나 난 영화도 보지 못했고, 책도 이제야 접했다. 비행기의 추락으로 무인도에 불시착한 아이들은 그 곳에서 나름대로 규율을 만들고 대장을 뽑아 살아갈 방도를 마련한다. 대장 랠프는 권위와 문명을 상징하는 소라를 갖고서 모임이 필요할 때면 소라를 불어 그 집단을 이끌어 나간다. 랠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그 곳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린다.하지만 잭은 랠프와는 달리 야만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봉화보다는 사냥에 더 열을 냈고, 잔인하게 멧돼지를 사냥하면서 쾌감을 느끼며 그의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그 섬에 불시착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바깥 세상에서의 규율과 도덕에 젖어 있어서 쉽게 살생을 하지 못했고,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양심이 그들을 일깨워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잭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친구 사이먼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까지 감행한다.합리와 질서와 도리가 우선시 되었던 집단은 잭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파괴와 타락과 야만으로 변해갔다. 천둥 번개와 폭우가 거세게 몰아치던 밤, 아프리카의 원주민이 어떤 의식을 치르듯 그들은 광기에 몸을 맡기고, 결국 폭발하고 만다.그들이 얼굴에 칠한 푸르거나 희거나 검은 색칠은 곧 가면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의 광기를 억눌러 왔던 이성이나 질서를 마비시키고 해체하며 야만을 불러들이는 것이다.물론 사이먼은 한밤중에 멧돼지 사냥 후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을 때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그들은 사이먼이 괴물이라고, 혹은 멧돼지라고 여겨서 죽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성은 이미 그가 그들의 친구 사이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집단적 광기는 더 이상 이성이 자리잡을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간다. 두 개의 세계,즉 “한 쪽에는 사냥과 술책과 신나는 흥겨움과 솜씨의 멋있는 세계가 있었고, 다른 한쪽엔 동경과 좌절된 상식의 세계가 있었다”(103쪽) 그 두 세계는 화합할 수 없는 세계로 경험도 감정도 판이하게 달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Ⅰ. 중국고대 사학의 특징1. 역사인식중국 역사서술의 특징은 첫째, 현존하는 방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중국인들은 갑골, 죽간, 목간에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기록은 곧 중국 고대인들의 활동을 그대로 전하는 역사이다.둘째, 중국인들은 역사기록을 중요한 임무라고 인식했다. 기록자들은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여 後世에 그 是非를 판단, 가치평가를 내리고자 했다. 이러한 중국인의 역사서술은 역사기록에 褒貶을 담아 후대게 敎訓과 鑑戒의 뜻을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셋째, 중국 고대의 방대한 역사기록은 통치자, 관료가 읽어야할 필독서였다. 통치자뿐만 아니라 말단 행정관료에 이르기까지 전대의 기록은 모두 유익한 자료였다. 통치자들이 교양으로 읽어야 할 참고도서, 행정관리의 필독서는 모두 고대의 기록, 즉 역사기록이 그 역할을 했다.넷째, 尙古主義가 특징이다. 중국인들은 정치질서의 붕괴,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른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할 때 그 해결방법은 고대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했다는 성현의 통치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즉, 이러한 상고주의 정치는 후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어 역사서술에 있어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2. 고대 史學의 기원1) 史官의 출현아주 오랜 시기부터 등장했다. 견해차는 있지만 중국 사관의 출현은 이미 夏, 殷, 周(三代)에 출현했다고 본다. 초기 사관의 임무는 상당히 중요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봉건제후들은 사관을 두어 기록을 관장하도록 했다. 아직까지 이 시기 사관조직에 대해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제후왕들은 기록을 관장하는 사관을 일찍부터 두어 기록을 남긴 것이 사실이다. 또 사관과 이 당시 사관은 권력층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 사관의 직책은 모두 세습되었다.사관의 관직에 太史(태사), 內史(내사), 御史(어사)라는 명칭이 고대기록과 청동명문에 보인다. 이들의 임무는 천문, 역법, 재이(災異)를 관찰하여 기록하고, 국가의 주요 사건을 기록하고 관장하며 왕명을 받드는 일을 했다. 周代에 사관의 임무는 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조천을 벌하지 않은 것은 군주를 시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고 했다. 둘째, 齊나라 대부 최저가 장공을 죽이고 경공을 세워 재상이 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 때 사관에게 이 사실을 기록하지 못하게 했으나 史官이 사실대로 기록하자 그를 죽였다. 둘째가 다시 직필하자 죽임을 당하고 셋째가 다시 이 사실을 기록하자 최저 역시 저지할 수 없었다는 일화는 사관이 기록자로서의 임무를 분명하게 시사해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3. 孔子의 《春秋》와 ‘춘추필법’1) 공자(B.C 551-479)중국 고대 사상가, 교육가. 儒家의 창시자이다. 春秋末 魯國에서 출생했다. 조상은 宋國의 귀족으로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린 시절은 가난하게 자랐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인 혼란의 시대였다. 노나라의 昭公 (노의 제후왕)이 그의 신하인 季氏에게 쫓겨서 제나라에 망명하자 공자 역시 제나라로 갔다. 당시 제나라는 경공의 통치였다. 공자는 경공에게 정치견해를 설파했으나 쓰임을 받지 못했다. 이때부터 10여년 동안 각 나라를 주유하면 자신의 정치이념을 제후왕에게 전했다.당시 정치는 변화의 과정을 겪는 시기이다. 공자는 이러한 변화는 신분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를 극도로 혼란에 빠뜨리는 것으로 여겼다. 정치는 서주시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군주와 신하의 신분질서가 확립되어야 천하가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종교 사상에는 천명을 강조했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仁 , 義 , 禮를 깨우치고, 신분질서를 지키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그가 편찬했다고 하는 역사서《春秋》에 그대로 반영되었다.2)《春秋》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편년체 史書이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年代記이며 BC.722-481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노나라의 상황을 중심으로 각 국의 사정을 기록했다. 기록 내용은 정치에서부터 군사, 사회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다.왜 공자는《春秋》를 편찬했는가. 노나라를 중심으로 기록한 내용을 공자가 《春秋》라는 책으로 편찬하게 된上下, 內外의 명분을 가리고 亂臣賊子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하는 즉, 교훈의 역사서술, 상고주의 역사관은 이후 중국인들의 역사인식, 역사서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춘추필법‘을 제시한 《春秋》저작의 의의는 개인 사서편찬에 영향을 주게 되어 이후 사마천, 반고 등에 계승되었다.Ⅱ. 양한시대의 력사학1. 漢代 歷史敍述의 특징1) 활발한 편찬사업한 왕조에 이르러 중국인의 기록에 대한 열의가 더욱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王朝의 정치기반이 확립되고 유학이 크게 장려되어 역사학에도 새로운 동향이 출현한 것이다.2) 通史, 斷代史 등의 완결된 중국역사서의 출현3) 왕조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기전체 중심의 正史편찬 시작2. 司馬遷과《史記》1) 역사의 의미오늘날 우리는 사마천을 “위대한 역사가”라고 하고, 그의 저서 “사기”는 불후의 역사서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에는 ‘역사가’ 라는 말은 없었다. 이 시기 “史官”은 기록을 주관하는 관리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史”가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분류되는 시기는 위진남북조시대 부터다. 이때부터 역사는 유교경전, 제자백가서, 문학작품류 등과 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다.2) 사마천의 생애(卷130, 太史公自序)에 그의 가계를 기록하고 있다.사마천의 가계는 대대로 사관을 역임했다. 아버지 司馬談(사마담) 역시 武帝시기 太史令을 역임, 天文과 曆法을 관장하고 황실의 도서를 관리하면서 고금의 통사를 언젠가는 편찬할 뜻을 갖고 있었다.3) 사마담의 유언기원전 110년 漢武帝는 천자의 위엄을 상징하는 封禪(봉선)의식을 泰山에서 거행했는데 이 의식에 司馬談은 참여하지 못했다. 봉선의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마담은 울분을 품고 병석에 눕게 된다. 그때 천하를 여행하고 있던 사마천은 황하유역에서 아버지를 만나는데 사마담은 아들에게 太史의 직을 계승하여 자신이 이루지 못한 유업을 완성하도록 간곡히 부탁했다. “공자는 옛 전통을 복구하고 무너진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春秋》(722-481년까지 242년간의 노나라의고 돌아오는 길에 흉노에 포위당해 항복했는데 흉노지역에서 20여년을 벼슬하며 살았다.이 사건으로 사마천은 극형을 받았다. 궁형을 겪은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가슴속에 담고 《사기》저술에 심혈을 쏟았다. 그의 나이 50이 되어 저작을 완성한 후 친구 임소경에게 보낸 글에서 궁형을 겪으면서까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보임소경서》에서 사마천은 “천하에 흩어진 기록과 옛 문헌을 정리하고, 역사에서 활동했던 인간의 행동을 성찰하여 그 사실 여부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또 왕조의 흥망성쇠를 대국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이치를 구명하여 황제에서 지금까지의 사건을 1백 30권으로 완성했습니다. 이 저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은 오로지 아깝고 억울하다는 마음뿐이어서 궁형이라는 극형을 감수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5) 구성본기: 12권(제왕의 기록)표:10권(年表, 공신들의 년표, 제후왕국 년표 )서:8권(역서, 약서, 율서 등 河渠書(하거서), 봉선서, 평준서 등 전장제도)세가:30권(제후왕국의 흥망성쇠)열전:70권(인물들의 행적 및 주변민족에 대한 기록)6) 書名선제 통치시기 외손자 楊?(양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원래 “사기”란 사료의 총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마천의 기록은 당시 사람들은 《太史公書》, 《太史公記》로 불려졌다. 위진남북조시기에 와서 《史記》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7) 意義①중국 역사서 중 최초로 가장 완비된 통사이며, 기전체 역사서술이라는 서술방법을 창조했다. 기전체 방법은 이후 2000년 동안 중국역사 서술에 영향을 주고 있다(班固의 《漢書》에서 청의 역사인《淸史稿》까지). 《사기》는 황제에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무제까지 중국역사(약 2500여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②내용을 보면, 각 시대의 정치제도,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의식형태, 천문역법, 수리시설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 통치자 중심의 역사서술을 하적인 삶을 현재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자신이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부분은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기록자로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사마천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⑥마지막으로 《사기》는 歷史書로써 뿐만 아니라 漢代 문학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물전기를 위주로 한 구성방법은 인간의 활동에서 심리묘사에 뛰어난 표현을 했다. 근대작가 루쉰(魯迅)은 《사기》를 “史家의 絶唱이며, 無韻의 離騷”라고 절찬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기》를 불후의 명저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역사에서 인간의 활동을 섬세한 필체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사마천의 문학적인 재능과 객관적인 기록자의 입장에서 중국최초의 통사를 기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3. 班固와 《漢書》1) 생애(32-92)東漢의 정치가, 陝西省(섬서성) 함양에서 출생했다. 9세부터 古文에 능통하여 아버지 班彪(반표)로부터 영향을 받아 역사기록에 관심을 갖고 《漢書》를 저술하게 된다. 반고는 章帝시기 入官하여 관료가 되었다. 詩, 賦(시, 부)에 뛰어난 재능을 갖춘 반고는 특히 장제가 그의 문학을 좋아하여 총애했다고 한다. 황제의 순시, 조정의 공경대신의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이 시기 외척 竇憲(두헌)과 친분을 맺고 그를 따라 흉노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장제 사후 和帝가 즉위하여 외척 양씨, 등씨가 득세하면서 두씨일족은 정쟁에 휘말리게 되고, 두헌이 그 와중에서 자살했는데 이때 반고도 두헌과 친분관계를 맺었던 탓에 주위의 모함으로 옥에 갇혀 결국 옥중에서 사망했다.2) 구성《漢書》는 4명의 편찬자에 의해 저술되었다. 전체 편찬은 반고의 저술이라고 하지만 그의 아버지 반표가 이미 생전에 집필한 《後傳》을 이어서 반고가 완성하고 있다. 그리고 《漢書》를 저술하는 동안에 옥사하여 8표와 天文志(천문지)는 그의 여동생 班昭와 馬續에 의해 완성되었다.體制는 기전체 단대사로 한 고조 유방부터 왕망에 이르기 까지 230년간의 역사를 기록했다. 구성은 모두 100 된다.
중국에서의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에 대한 재평가.1. 서론-역사해석의 변동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양무(洋務)운동과 변법(變法)운동은 19세기 후반 청왕조의 대표적인 개혁운동으로서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전국적 규모에 걸쳐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로 규정되어 있다.양무운동과 변법운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모택동시대의 반제 반봉건 사관에 서는 한 19세기의 혁명적 운동은 태평천국이나 의화단 운동 같은 농민 중심의 하층민 운동만이 역사의 강력한 추동력으로 찬미될 수 밖에 없고, 20세기 초의 신해혁명에 와서야 비로소 미숙하지만 정치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민족자본계급 중심의 초기 브르주아 민주혁명이 인정된다는 것이다.더욱이 1860년대에 시작된 양무운동은 바로 “봉건지주 , 관료” 계급이 태평천국 농민 서구 제국주의에 굴복, 지원을 받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므로 바로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의 주된 협력자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술(戊戌)변법운동은 연약한 자산계급 개혁운동으로서 청일 전쟁 패배에 따른 망국위지에 대응한 애국적 민주적 성격을 인정 받기는 해도 강대한 제국주의 봉건세력 앞에 너무나 무력하게 압살당하고 말았던 일막의 비극으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이와 같은 해석에 대응하는 두 갈래의 대립세력이 나타는데 하나는 대내적으로 민중을 진압하고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반동적, 매국적 노선이며, 또 하나는 대내외적으로 반제 반봉건 투쟁을 벌이는 혁명적 애국적 노선으로 규정되었다.2. 뒤집힌 양무운동의 성격 평가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중국의 경제개방이 확대됨에 따라 역사연구에서 계급투쟁 보다는 생산력을 역사동력으로서 우위에 두는 새로운 접근법이 각광을 받게 마련이었는데 양무운동 연구는 1980년대 이후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받고 논쟁적인 분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1980년 초에 나온 양무운동의 연구 평가 가운데 과거의 통설과 가장 거리가 있는 이시악과 그와 근접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견해를 관통하는 대체적 논지는 다음과 같다.양무운동은 제국주의 침략 및 중국 봉건세력과 결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두 세력과의 모순관계에서 출현한 것이며, 양무운동의 결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인 근대 기계공업이 서구로부터 이식되기 시작한 것이라 했다. 따라서 양무운동은 제국주의 세력에 투항하여 반식민지화를 조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의 침략을 억제하거나 적어도 완화시키는 군사적 경제적 물질역량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이런 양무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는 개방 이전의 부정적 견해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도록 먼저 비중을 두어 소개한 견해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중국 학계의 지배적 입장은 아닐지라도 학문적 사고에 광범한 개방화의 경향성이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은 될 것이다. 개방 전의 이념적 통설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 아주 드문 일이겠으나 부분적으로 그것을 수정한 절충적 입장도 흔히 있다.부정적인 견해는 양무운동은 처음부터 농민혁명을 진압하고 제국주의 열강과 타협함으로써 형성되었는데, 비록 양무관료에 의한 서양 자본주의 요소의 도입이 있더라도 그들의 양무운동은 결국 반식민지 반봉건 체제에 타협 적응 하면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중국과 달리 자본주의 독립국을 성취한 일본과의 청일 전쟁에서 양무운동이 철저히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앞의 상반되는 두 갈래 견해에 비해 중간입장에 있는 것이 하동원 등의 견해로 양무운동은 1860, 70년대의 발전단계에서는 경제적으로 봉건세력에 대항하여 역사발전의 조류에 부합했으나 그 뒤 서양의 민주제를 받아들여 봉건적 정치체제를 개혁해야 할 과제는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했다.3. 양무기업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던가양무기업에는 중국번 이홍장 좌종당등 상군 회군 지방 군청 대관료들에 의해 1860년대에 시작된 총포 함선 중심의 관변 군용공업이 있고 1870년대 이후에는 직예 총득 이홍장의 압도적 주도하에 관독 상판으로 운영된 민용공업이 있으며 1880년대 청불전쟁 시기 이후에는 양무운동 말기의 양무 관료로서 호광 총독 장지동이 제철 광산 방직에서 관영공업을 추진하여 이홍장과 경쟁하고 있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과거 학계에서 관영 군수공업은 자본주의 성질이 없는 순전한 봉건기업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과거의 비판은 계속되어 장국휘 등도 양무파의 관영 군수기업은 자본주의 국민 경제의 발전이나 제국주의에의 저항에는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것의 매판 봉건성을 강조한 이시악 호빈의 견해는 어느 정도 제국주의 침략을 억제하고 그 경영의 파급효과로서 민용공업과 서구 과학기술의 도입이 가능했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양무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학계에는 관독상판 기업은 부패한 봉건관료의 사적 소유가 아니고 그것을 관료자본이 아니라 국가자본으로 보거나 혹은 민족자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양무기업은 상인경영에 대해 기대되었던 관료의 보호기능보다는 상인자본을 봉건주의 속에 흡수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양무기업의 양상에 대한 이권 경쟁도 국민 경제가 아니라 재정적 수준에서 양상의 이익을 관료가 분할하려는 것이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4. 무술변법운동의 성격 평가과거 무술 변법운동에 대한 중국 역사학계의 평가는 봉건 매판관료에 의해 추진된 양무운동이 파산한 다음 절박한 민족위기에 대응하여 일어난 자산계급 최초의 애국적 국무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에서 봉건 수구파, 제국주의 세력의 거대한 압력에 항거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했던 자산계급의 연약성으로 인해 개량주의에 흘러 대중과 유리된 채 맥없이 실패하고 말았지만, 자산계급 혁명운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유신파의 개량주의 운동이 갖는 애국적, 진보적 성격이 인정되었다. 한편 이 애국적 개량주의 운동은 지주, 관료로부터 전화된 자산계급 민주헌정운동이기도 했다.이처럼 과거의 반제 반봉건 역사관에서는 이 개혁운동에 대해 최초의 자산계급 정치운동의 등장이란 점에서 그 객관적 역사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다가올 중국혁명의 대중폭력혁명 방식의 경험적 정당성에 비추어볼 때 그 타협적 ‘개량주의’ 운동의 실패는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무술변법운동은 아래로 신해혁명과의 관계뿐이 아니라 위로 양무운동과의 사이에서도 과거의 학계에서는 아무런 연속적 계승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요즈음에는 이미 소개한 대로 양무운동에서 자본주의 도입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력 성장이라는 진보적 역할을 찾으려는 견해가 상당히 보급됨으로써 양무와 변법의 연관성이 주목 받게 되었다. 또 양무운동의 서양 학습범위가 단순한 군사경제, 과학기술 중심의 제한된 물질영역을 벗어나 정치영역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도록 중국의 통치, 지식계층은 당시 강력한 국내외 현실의 압력에 위태롭게 노출되어 있었는데, 근래의 중국학계에서는 정치제도 영역의 변혁사상과 관련하여 양무파내부에서 초기 변법사상을 대두하고, 심지어 양무운동 대표자인 이홍장마저 정치적 실천은 불가능했을지라도 정치구조의 변혁관념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처럼 무력한 정치상황이나 자본주의 사회경제의 미숙성을 전체로 할 때 강유위등 유신파의 입헌군주제, 민권이념이 과연 이 개혁주체의 정치권력이 전혀 확보되지 못한 개혁과정에서 서구적 의미의 온건한 입헌민주주의 형태마저 추진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무술변법운동의 개혁이 실천단계로 들어갔던 막바지 위기의 기간 중 강유위가 광서황제에게 올린 상주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의 원문에는 사실은 입헌· 의회· 민권 등의 자구가 들어있지 않았는데, 후일 세상에 간포된 그의 “무술주고”에는 들어있는 것으로 개작되었다는 사실이 1980년대 이후 중국학계의 한 연구과제가 되었다는 것도 무술변법운동의 성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알 것이다.
삼국지를 읽고삼국지를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갈 공명이라는 인물에게 호감을 가질 것이다. 나 또한 그에게 가장 많이 끌렸고 많은 인물들 중 그를 가장 존경한다 앞날을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었던 밝은 지혜, 평등과 사랑으로 백성들을 돌보던 인간애 부와 권력에 대해 욕심이 없는 검소함 과로로 인해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에서 제갈공명의 완벽함을 볼 수 있었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 더라면 삼국의 운명이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쟀든 공명의 지혜와 인품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제갈 공명은 내인생의 목표와 같은 인물이자 절대로 잊지 못할 인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그다음으로 생각나는 사람은 조자룡이다 비록 나에게는 제갈공명에 관련되는 사건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지만 조자룡 역시 많은 면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혼자서 적의 백만 대군 속을 주군의 후손을 안고 헤쳐나가는 의리와 용맹은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번 섬긴 이를 절대 배신하지 않고 임정무퇴의 정신으로 사움에 임하는 모습에서 나는 내 자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그처럼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 최고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상산의 조자룡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내 미래도 밝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주인공인 유비에게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유비의 장수들도 그랬을 것이다. 단호함이나 판단력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도 근거지 하나를 잡지 못하고 여색을 밝히는 것들을 보면 어떻게 그런 지도자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 혼란의 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유비가 결코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면의 부드러움 속에 무서운 야심과 밝은 생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비는 겉모습의 온화함 속에 사람의 성품을 올바로 꿰둘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그의 인품에서 녹아 사라지고 심지어 장점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유비밑의 장수들과 백성들이 그의 흐지부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지 않고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유였던것 같다. 또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유비처럼 그 부하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삼국지에서 조조 또한 빠질 수 없다 조조는 지나친 야심과 냉정함으로 그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다. 그러나 요즘은 조조가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영원한 악인이나 영원한 의인이 없는 것이 삼국지의 매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말에 주목하여 유비가 선 조조가 악에 대응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면 선과 악의 대립은 무너진다. 그래서 간웅으로만 여겨졌던 조조가 조금만 더 너그러웠더라면 또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과 그들의 삶을 위하여 선을 베풀엇다면 사람들은 이분법의 해체가 없었어도 훌륭한 능력가지 갖춘 조조를 유비보다 더 존경했을지도 모른다.삼국지에 나오는 부하들의 놀라운 충성심 또한 요즘 보기드문 모습이다. 어리석고 순진한 군주 유장에게 옳은 말을 하다가 성에서 떨어져 죽은 왕루와ㅏ 이미 쇠퇴해버린 한나라의 부흥을 위하여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입을 굳게 다문채로 죽은 이들의 모습은 정말 가슴을 징하게 해주는 광경이었다 반면에 그런 이들응 고발해 버린 약삭빠른 자들도 두 번이나 나와 정말 안타깝기도 했다. 삼국지는 전쟁이 기둥 줄거리인 만큼 전쟁을 이끄는 전략가들의 갖가지 지략과 긴박한 상황의 대처 능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유비의 갖은 노력으로 얻은 공명뿐 아니라 조조의 순욱 순유 곽가와 공명과 필적하던 사마의 , 그리고 어느 누구편에도 들지 않았던 방통에 이르기 까지 그들이 펼친 지략은 전쟁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속에 살아가야하는 바로 이 사회의 전략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드는 집요함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예지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임에 틀림없다.고전은 정말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더 하는 것 같다. 벌서 엄청나게 오래된 책인 데도 이렇게 느끼는 바가 많으니 말이다. 삼국지는 그중에서도 인물의 특징이 가장 생생했던것 같다. 삼국지의 모든 인물에 대해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생략하지만 그 속의 모든 인물각자의 매력을 갖고 오늘날을 사는 나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이 꾸준히 베스트 셀러로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 여성학 -{외 모 지 상 주 의{목 차{- -{서 론(기획)-------2설문지-------3표본설계-------6조사-------6실사규칙-------6결과분석-------6애 로 사 항-------12결론-------121. 서 론(기 획)1) 개 요: 최근 현대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얼짱, 몸짱 신드롬" 으로 인해 외국에서 한국을 보는 한 가지 관점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어서 저희 서원대학교 2005년도 재학생들의 견해를 알아보고자 선정하였음.2) 주제 선정 과정1 여러 개의 주제 중 조회의를 통해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상에 초점을 두었다.3) 논의된 내용1 오늘날 대두된 퀸카, 킹카의 개념!!2 은연중 보여지는 외모지상주의 실태3 기타 다각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회적 현상4) 조사방법 : 설문조사1 표본집단 : 대학교 2005년도 재학생2 모 집 단 : 남 / 녀 각각 100명씩 총 200명 조사3 방 법 : 대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유동이 많은 장소를 무작위로 추출5) 조사일정1 설문기간 : 2005. 4. 25(월) - 29(금) (4박 5일간)2 자료종합 / 결과분석 : 5. 2(월) - 5. 13(금)2. 설문지2005년 00대 재학생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의식도 조사{안녕하십니까?저희는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교양과목으로 여성학 수업의 팀 프로젝트로인하여 본 설문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저희 조는 최근 짱 문화로 대두되는 외모지상주의에 관하여 대학교 학우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설문지 작성 시간은 3분정도 소요될 것이오니바쁘시더라도 성심 성의껏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설문지는 팀내의 자료로 사용하는 것 이외의 다른 용도로는 절대 사용되지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이번 설문 조사의 대상은 대학교내 학우 분들의 남 · 녀 학년별 학생수비율에 따라서 선정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해당란에 표시를 해 주십시오.1. 본 설문에 응하시는 분은 남성분 이십니까? 여성분 이십니까?남성 ( ) 여성 ( )2. 남성분 이라면, 군필자 이십니까? 미필자 이십니까?군필 ( ) 미필 ( )3. 현재 몇 학년에 재학 중이십니까?( )학년4. 현재 몇 살 이십니까?( 만 )세5. 현재 어느 학과/학부에 재학 중이십니까?( )학과/학부 설문이 시작 됩니다. 해당란에 표시를 해 주십시오.Ⅰ. 외모지상주의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에 대한 서원대 학우분들의 의견에 관한 설문입니다.1.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2. 얼짱/몸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3. 최근 얼짱/몸짱 신드롬을 한국의 새로운 문화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4. 한국 사회가 외국에 비해 외모지상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5. 얼짱/몸짱 콘테스트나 관련 사이트에 자신의 사진을 올려본 적이 있으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Ⅱ. 외모지상주의와 언론/대중매체와의 관계에 관한 설문입니다.6. 언론/대중매체(TV, 신문, 인터넷 등)가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조장한다고생각하십니까?1 예 ( ) 2 아니오 ( )7. 어제 하루동안 언론/대중매체를 통하여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적 방송 또는기사를 몇 번이나 접하셨습니까?1 없다. 2 1~3회 3 4~6회 4 7회 이상8. 특히, 어떠한 매체가 이러한 부분을 자주 다룬다고 생각하십니까?1 TV (쇼프로, 뉴스 등) 2 신 문 3 잡 지4 인터넷 5 기타 ( )Ⅲ.외모지상주의가 취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서원대 학우 분들의의견에 관한 설문입니다.9. 지난 일주일 동안 외모와 관련하여 자기 개발을 어느 정도 하셨습니까?1 1~2일 2 3~4일3 5~6일 4 7일5 전혀 하지 않는다.10. 현대 사회에서 취업을 하는 데에 있어 외모가 얼마나 중요 하다고생각하십니까?1 매우 중요하다. 2 중요하다.3 보통이다. 4 중요하지 않다.5 전혀 중요하지 않다.11. 여성의 성공과 외모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1 매우 관련 있다. 2 관련 있다.3 보통이다. 4 관련 없다.5 매우 관련 없다.12. 취업 하는 데에 있어서 성형이 필요 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1 하겠다. 2 잘 모르겠다. 3 하지 않겠다.13. 취업에 미치는 영향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번호대로 나열하시오.{1 외모 2 성격 3 지적능력(전문성) 4 학연(지연,혈연, 경제적 능력)( )■■■■■■■■■■■■ 설문에 응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3. 표본설계 및 표본오차1) 표본 설계1 조사 대상 : 2005년 대 재학중인 학생2 표본 규모 : 2005년 대학교 재학생 100명 (남자 : 45명, 여자 : 55명)3 표본 오차 :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0.0984. 조 사1) 조사 기간 : 2005년 4월 25일 ∼ 2005년 4월 29일 (4박 5일간)2) 조사자 :5. 실사규칙1) 조사자의 설문조사문항 완벽히 파악.2) 각 학과 당 조사해야할 표본이 남/녀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2인 1조로 하여 조사 실시.3) 위압감을 덜기 위해 조사자의 신원을 분명히 밝힘.4) 설문조사에 대한 설명.5) 거절시 재차 설문조사 권유.6) 응답자의 질문 시 성심성의껏 답변.6. 결과 분석분석 결과 중에서 유의성이 있는 부분만을 분석함.1) 성별에 따른 분석1 8번 문항 특히, 어떠한 매체가 이러한 부분을 자주 다룬다고 생각하십니까?{{{외모에 대해 자주 다루는 매체에 대해 묻는 8번 문항에서는 서원대학생 즉, 20대의 사람들을 조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잡지나 신문이라고 응답한 결과 보다는 TV와 인터넷에서 이러한 것을 자주 접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남성의 경우는 TV, 신문, 인터넷 등에서 자주 다룬다고 답변한 반면, 여성의 경우는 TV, 인터넷 두 부분에서만 보여지고 있다. 이것은 남성, 여성이 어떠한 언론매체를 자주 접하는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2 11번 문항 여성의 성공과 외모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성공과 외모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 남성의 경우에는 관련이 없다 에 응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10%가 관련이 없다 라고 응답을 했다. 이 조사 결과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남/녀 평등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녀의 능력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성의 경우는 여성의 성공과 외모가 관련이 있다는 쪽으로 편중되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성의 경우는 관련이 없다는 의견도 남성의 경우에 비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여성은 자신들의 외모로 평가받기보다는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3 13번 문항취업에 미치는 영향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번호대로 나열하십시오.{1 외모 2 성격 3 지적능력(전문성) 4 학연(지연,혈연, 경제적 능력){{{취업에 있어서 지적능력(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옴.13번 문항에서 중요한 순서대로 작성한 결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선택된 부분이다.서원대 재학생들의 의식 즉, 20대 연령의 남·녀들은 외모보다는 지적능력,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로 인해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기본적으로 지적능력(전문성)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하고 외모, 학연 등은 부수적으로 선택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2) 학년에 따른 분석1 2번 문항 얼짱/몸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교차표의 결과와 같이 1∼3학년들은 74%의 찬성률을 보인 반면 흥미롭게도 4학년은 해보았다 에 39%, 해본적이 없다 에 61%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4학년이 취업에 가장 밀접해 있기 때문에 신체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얼짱·몸짱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취업에 대비하여, 지적인 자기개발과 실력향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2 11번 문항 여성의 성공과 외모가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조사결과를 보면 1∼4학년 전체 중 관련이 있다고 보는 쪽이 90%, 관련이 없다고 보는 쪽이 10%이다. 여기서 각 학년별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쪽의 결과를 분석해보면 1학년 87%, 2학년 100%, 3학년 96%, 4학년 78%이다. 표를 보면 알수있듯이 4학년의 반대의견이 22%로 타학년보다 월등히 높다. 이것은 취업을 앞둔 4학년들은 외모보다는 자신의 실력으로 검증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하며, 또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의 외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나 신체적인 장점보다는 인간의 내적인 부분들인 지적능력이나 성격 등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조사시 문제점 및 애로사항1) 처음해보는 설문지 조사기 때문에 적극적이지 못함.2) 실사규칙을 세부적으로 정하지 않아서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함.3) 응답자들의 무성의한 설문지 작성태도.4)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여 적극적인 설문조사를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