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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자원] 울릉도&독도
    목차【1】울릉도 개관…………………………… 2p1) 울릉도 개요2) 울릉도 역사3) 울릉도 자연4) 울릉도 산업5) 울릉도 특색【2】울릉도 자원…………………………… 7p1) 울릉도 관광명소(10가지)2) 울릉도 천연기념물 및 희귀종3) 울릉도 문화재 및 유물【3】울릉도 특산물………………………… 15p1) 울릉도 오징어2) 울릉도 돌미역3) 울릉도 산나물4) 울릉도 향나무 목공예품5) 울릉도 호박엿6) 울릉 약소【4】울릉도 레저 스포츠………………… 18p낚시암벽등반스쿠버다이빙【5】울릉도 교통 및 숙박 ……………… 19p울릉도 가는 길울릉도 내 교통숙박업소【6】울릉도 관광코스 ………………………22p해상코스육로코스등산코스【7】독도…………………………………………24p………31p【1】울릉도1) 울릉도 개요우리나라 동해안에 있는 유일한 섬인 울릉도는 동경 130° 54' 북위 37° 29'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내려보면 5각형태로 형성되어있다. 울릉도는 화산이 두번 분출하여 형성된 2중분출 화산섬으로 나리분지가 첫번째 분화구이고, 알봉분지가 두번째 분출한 분화구 이다. 울릉도의 분화구는 천지와 백록담 등과 달리 세계에서도 드물게 칼데라 호수가 없다.행정구역은 본디 강원도에 속해 있다가, 1907년 경상남도 관할에 있었으며, 1914년에는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울릉도의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이며 두개의 면과 (북면, 서면) 하나의 읍 (울릉읍)을 가지고 있다. 본토와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로부터 137km이며 경북 포항에서는 217km 떨어져 있다.울릉도의 전체면적은 73.0이며 행정 구역상 울릉읍에 속해 있는 우리땅 독도와는 92km 거리에 있으며, 독도의 면적은 0.18이다. 또한 섬의 주위에는 또 하나의 울릉도라 불리우는 유인도 대섬과 옛날에 사람이 산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인도로 남아있는 관음도와 공암, 삼선암, 북저암 등의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다.울릉도는 제3기~4기초에 형성되었는데, 깊은 바다 속에서 해상으로 분승할 수 있다. 망향봉에서는 도동, 사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날씨가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독도가 관측된다. 휴게실, 매점, 대합실, 플랫홈, 선물코너 등 각종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95년부터 총46억원이 투입, 98년 완공되었다.◎ 성인봉성인봉은 울릉도의 중심에 우뚝 솟은 산이다. 해발 983.6m인 성인봉은 울릉도 최고봉으로 일년 300일 이상 안개에 싸여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성인봉이라는 이름은 산의 생김새가 성스러운 사람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성인봉 주위에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많아 그 자태를 보기 힘들지만 나리 분지에서 보면 잘 보인다. 정상은 제단처럼 된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움푹 패인 틈에는 장군 발자국이라고 불리는 족적이 있다. 이 발자국은 왼발 것으로 본토 어딘가에 오른쪽 족적이 있을 거라고 한다. 성인봉은 형제봉, 미륵산, 나리령 등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거느리며 사방으로 펼쳐지고 있다. 성인봉의 가장 큰 볼거리는 군락을 이룬 갖가지 수목들이다. 섬피 나무, 너도밤나무, 삼나무 등의 희귀수목들이 군락을 이루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천연 기념물 189호로 지정된 성인 봉 원시림도 있다. 이밖에도 성인봉 곳곳에는 고비, 미역취, 부지갱이, 다래, 마가목 등 진귀한 산나물과 열매가 자라고 있다. 봄에서 가을까지의 등반은 산 나물과 열매를 채취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또 설경이 절경을 이루는 겨울의 성인봉은 색다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대원사, 관모봉을 거치는 도동길을 택하면 3시간 안에 성인봉 정상에 당도할 수 있다. 정상에서는 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날씨 좋은 날 꼭 대기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천부리와 죽암, 삼선암, 관음도, 원시림으 로 덮인 나리 분지를 내려다 볼수 있고 동으로는 저동항과 촛대바위, 죽도, 서쪽으로는 태하령, 동남으로는 도동항을 내려다볼 수 있다.◎ 죽암 해수욕장삼선암, 관음도로 이어지는 죽암은 울릉도 해상관광의 백미로 뽑히고 있다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은 일반 문틀과는 달리 대나무로 엮었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초창기까지 각 마을에 몇채씩 있었으나 지붕개량, 주택개량으로 인하여 원형대로 보존된 것은 나리동에서나 2 ~ 3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나 아직도 내부구조는 투막인채로 있는 집은 다소 있다. 울릉도 투막집은 육지의 귀틀집,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전혀 못을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와 나무껍질로만 지었다. 그러나 육지와는 달리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고 바람과 눈이 많은 섬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집수리 한번 하지 않았으나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집 둘레에는 싸리나 옥수수대로 울타리를 만들어 겨울의 바람을 막아주고 있으며 내부의 방은 대개 3칸인데 부엌이 헛간과 장독을 겸하고 있어 지붕 위에 까지 눈이 쌓여 통행이 되지 않아도 집안에서 식생활을 하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을 만큼 규모가 큰 편이다. 방은 지름 20 ~ 30Cm 길이 3M 가량의 통나무를 정방형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2개의 방을 먼저 만든 뒤 가운데의 공간 양측을 또다시 통나무를 쌓아 올려 막으므로서 3칸의 방이 된다. 통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은 진흙에 억새풀을 섞어 물에 반죽하여 메우며 방바닥엔 대나무를 엮은 돗자리를 깔아 장판을 대용한다. 방이 완성되면 5 ~6평쯤 되는 커다란 부엌을 달아내며 마루가 없는 대신 울타리를 집에 바짝 붙여 놓는데 이것은 찬바람이 방벽에 직접 와 닿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벽을 쌓는 재료는 횡경피나무, 단풍나무, 너도밤나무를 주로 사용하였고 굴뚝은 질이 단단한 주목둥치를 잘라 속을 파낸 뒤 세웠으며 지붕은 고래쇠 나무나 솔송나무 등을 기와 모양으로 빚어 얹었는데 비가 새거나 눈무게로 내려앉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지어져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따뜻한 것이 특색이다. 당시 집을 지을 수 잇는 도구로는 도끼와 보레(쐐기의 일종) 뿐이었으며 통나무를 멀리 가지고 갈 수 없어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집을 지었다 한다.3) 이 쿠로시오 난류의 강력한 영향권에 들어 다양하게 발달된 바다생태를 만날 수 있으며, 해류를 타고 북상하는 열대생물 또한 볼 수 있다.◎ 울릉도 다이빙의 주의점강한 조류와 해변과 조금만 떨어져도 급경사를 만들어 내는 깊은 수심등 언제나 잠재적인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현지 다이버의 가이드를 받거나 사전에 충분한 정보수집을 하여야 한다. 충분한 다이빙 경험이 없는 다이버는 비취다이빙을 권하고, 맑은 시야로 수심감각을 잃을 수 있으므로 수심계, 다이브 컴퓨터, 다이빙 소시지가 큰 도움이 된다. 울릉군 어촌계에서 불법 수산물 채취를 막고 있으므로, 불가피한 마찰방지를 위하여 출발전 미리 울릉군청 수산과에 일정을 연락해 두어야 한다.【5】울릉도 교통 및 숙박1) 울릉도 가는 길◎ 선박여객선 정기운항 시간표(년중)항 로선 명승선인원육지출항울릉출항운행횟수소요시간포항 - 울릉(도동)썬플라워호815명10:0016:001일 1왕복3시간후포 - 울릉(저동)오션플라워호341명14:006:30부정기5시간묵호 - 울릉(도동)카타마란호392명11:3015:001일 1왕복2시간50울릉(도동) - 독도썬플라워호815명14:0015:40부정기1시간(울릉출)(독도출)※ 여름성수기에는 1일 2왕복으로 운행횟수가 늘어난다.선박별 요금표구 분썬플라워오션플라워카타마란포항-울릉포항-울릉후포-울릉묵호-울릉속초-울릉우 등54,00043,50040,000--일 반49,00040,50036,50034,00043,000주 민38,50032,00028,50027,00036,000◎ 항공운항구간편명요 금전 화 번 호울릉강릉씨티항공126,500(031)652-7626울릉포항삼성항공130,000(051) 747-0482강릉공항 -> 울릉도출발- 09:40, 12:40, 15:40시티헬기장소요시간 : 50분정원 :11명요금 : 편도 126,500054-791-11462) 울릉도 내 교통 (시내버스)◎ 운행구간- 도동발 ⇒ 사동(5.6㎞) ⇒ 통구미(8.7㎞) ⇒ 남양(10.9㎞) ⇒ 구암(14㎞)- 도동발 ⇒ 저고봉이 88m로 경사가 급하며 북쪽에 2개의 화구 흔적이 있는 반면, 서도는 최고봉이 174m로 산정이 비교적 뾰족하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가파른 해식애와 넓은 파식대지, 점점이 산재한 암도가 발달되어 있다.독도의 동남쪽에는 많은 해식동과 수중아치가 있으며 서도의 북쪽과 서쪽에는 파식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동도의 동쪽 절벽에는 영해를 지키는 초병의 모습을 한 얼굴바위가 있어 비장한 느낌마저 준다. 동도 한가운데에는 차별침식으로 생긴 직경 15m, 깊이 80여 m의 수직구멍이 있고 천장굴을 통해 바다와 연결된 이 구멍의 바닥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다.반면 서도 북쪽과 서쪽으로는 외딴바위, 지네바위, 물개바위 등 부속섬과 암초가 밀집해 있고 수심 2-3m에서 출발해 경사 1-2도로 뻗어가는 파식대가 발달해 있다. 동도와 서도는 토양층의 형성이 불량해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암회색, 암갈색 화산섬으로 이뤄져 있고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기엔 적합치 않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평균 강수량 연1,324mm로, 1,400mm인 육지와 거의 비슷한 편이나 연중 85%가 흐린 날이거나 눈비가 내려 비교적 습한 지역이다. 또한 강한 해풍과 암석류의 척박한 토질로 인하여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특수한 독도의 기후는 주로 섬 주변에서 교차하는 난류와 한류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독도는 난류의 영향으로 온난다습하고, 연중 비와 눈이 내리는 날이 많아 강수량이 많으며, 해무가 자주 끼어 맑은 날씨를 보기 어렵다. 연 평균 강수량은 1,324mm인데 연중 고루 분포하여 일년중 맑은 날이 겨우 57일에 불과하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월 평균 기온이 연중 영상으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다. 독도 및 울릉도 주변 해역은 겨울철에는 강한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에서 일본을 향해 바람이 불고, 여름철에는 약한 남풍 계열의 바람이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독도 근해에는 동중국해에서 시작
    경영/경제| 2003.07.03| 31페이지| 2,000원| 조회(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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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힙합 평가A+최고예요
    힙합!요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헐렁한 NBA티셔츠와 골반에 걸친 통 큰 바지는 십대들에게 가장 환영받는 패션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통해, 또는 TV나 라디오의 음악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힙합(Hip-Hop)이란 단어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힙합을 표방하고 나오는 가수들이나, 클럽에서의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들의 공연, 신문잡지에서 떠들어대는 힙합세상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유행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관심이 힙합에 쏠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소수 매니아들만의 문화로 인식되었던 힙합이 이제는 주류문화의 한 줄기를 이루며 독자적 문화영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기류이다. 그렇다면 힙합이란 대체 무엇일까?힙합은 하나의 문화다. 보통 '힙합'하면 힙합음악과 힙합춤이 떠오르지만 현대 미국도시의 하류층 흑인들이 삶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들과 그들의 생활방식까지도 힙합의 범주내에 포함된다. 그래서 힙합을 ‘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 ’라고 평하기도 한다. 힙합의 대표적 문화요소로는 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랩(MCing)과 DJing행위(turntablism)가 결합한 힙합음악 , 랩에 맞춰 곡예 같은 춤을 추는 B-Boying이라고 일컷는 힙합춤, 그리고 주로 전철이나 건축물의 벽면, 교각 등에 에어스프레이 페인트로 극채색의 거대한 그림 등을 그리는 낙서예술(graffiti art)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들만의 속어, 옷차림, 그리고 걸음걸이까지도 힙합의 요소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힙합문화의 발상지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주 전통적인 힙합의 정의이고 힙합문화가 전세계와 전문화권으로 퍼져 나가고 있고 힙합음악이 여러 쟝르의 음악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힙합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세계의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힙합스타일’ 이라고 하여, 보다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형태의 패션 음악 댄스 노래, 나아가 의식까지도 지배하는 문화 현상이 되었다.그럼 힙합은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을까? 몇몇 사람들은 힙합의 기원을 과거 미국 농장에서 흑인노예들이 읊조리던 노래에서 찾는가하면, 힙합을 단어 그대로 해석하여 엉덩이를(hip) 들썩거리는(hop) 것이 그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 나름대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음악적 장르로서의 힙합은 1970년대 초 DJ들에 의해 탄생되었다.1970년대 초,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는 한창 Disco음악이 인기여서 많은 DJ들은 파티나 클럽에서 디스코음악을 틀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자메이카 출신의 Kool DJ Herc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R&B나 Funk음반을 자주 틀어주었는데, 그는 때때로 이 음악들의 간주부분(break)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하였다. 즉, 가사가 없는 비트만 계속하여 틀어준 것인데, 이 동안에 춤을 추는 사람들은 중앙으로 나와서 춤을 추곤 했고, 이들을 Kool DJ Herc는 "B-Boy(Break-Boy)"라고 부르고 그들의 춤은 "Break Dancing"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또 Kool DJ Herc는 이 간주부분에 흥을 돋구기 위하여 소리를 지르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랩의 시작이었으나, 그 내용은 관중들 중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미 없는 두어 마디 정도였다.그 뒤, Kool DJ Herc는 DJ일에만 전념하고 간주부분 랩을 하기 위해 따로 사람을 두었는데 그들이 Coke La Rock과 Clark Kent로 이루어진 Herculoids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emceeing"(후에는 rapping)이라고 불렀다. 즉 이들이 바로 첫 힙합그룹이었던 것이다. Herculoids는 두어 마디 정도였던 랩을 몇 문장으로 늘려 가사에 라임(rhyme)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Kool DJ Herc이후 많은 DJ들은 그와 같은 스타일로 힙합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DJ Hollywood, Afrika Bambaataa, DJ Grandmaster Flash, Grand Wizard Theodore등이 그들인데, DJ Hollywood의 경우 그가 자주 이용하던 랩 가사 중에 "hip, hop"이란 부분이 있었고, 이때부터 힙합음악, 힙합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emceeing(MCing)은 더 이상 DJ들이 틀던 간주부분에 관중들의 흥을 돋구기 위한 한정적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음악장르로 정착되는데, 이때 Mele-Mel과 같은 많은 MC들은 파티 같은 곳에서 몇 시간 동안이라도 계속하여 DJ가 틀어주는 비트에 맞추어 자신이 쓰고 외운 가사를 들려주곤 했다. 이 때, MC들은 서로 가사에서의 라임, 은유라든가 비트에 맞추어 얼마나 잘 가사를 전달하는가에 따라 평가받았으며, 서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합(battle)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1978년 첫 힙합앨범인 Sugerhill Gang의 "Rapper's Delight"가 발매되었으며, 이때부터 힙합은 그 본격적 발전을 시작한 것이다.그렇다면 한국에선 언제부터 힙합이 도입되었고 지금은 어디까지 발전되었을까? 다음으로 힙합문화의 중심인 음악의 관점에서 힙합수용 과정과 발전을 말해보겠다. 한국에서 힙합은 처음 댄스음악에 랩을 가미하는 정도로 소개되었다. 현진영과 와와가 야한 여자같은 곡에서 Bobby Brown식의 랩을 선보였으며, 신해철은 안녕에서 영어랩을, 이현우도 그의 꿈이란 곡에 랩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힙합이란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등장으로 비롯되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발라드가 지배하던 한국 가요계에 난 알아요란 댄스음악을 선보이면서 랩을 알리기 시작했고, 듀스 역시 나를 돌아봐 같은 곡으로 랩을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힙합은 소위 정통힙합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었으며, 가요에 랩을 조금씩 가미하는 정도여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댄스음악에, 그리고 듀스의 음악은 뉴잭스윙 (New Jack Swing)에 가까운 것이었다.90년대 초반의 도입기를 지나, 힙합은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것에 대한 요구가 풍미하던 가요계에 힙합은 가수와 대중 모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너도나도 힙합을 표방하고 나섰는데, 이로 인해 많은 혼란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아직 힙합이란 장르에 익숙지 않았던 대중들에게 많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힙합을 한다던 가수들의 특징은 두 분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제대로 된 힙합을 하기는 하나 그런 곡이 앨범에 한곡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 경우와, 힙합과는 거리가 먼 댄스음악에 랩을 조금씩 집어넣어 그것을 힙합으로 포장하는 경우이다. 당시 솔리드는 Party People과 같은 곡에서 Funk에 기반을 둔 미국적 랩을 앨범마다 한곡 정도씩 선보였고, 그룹 허니, DJ DOC 도 그들만의 한국적인 힙합을 소개했다. 이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들의 4집에서 Come Back Home이란 곡을 들고 돌아와 소위 갱스터랩을 한국에 소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갱스터랩은 아니어서 오히려 모든 힙합이 갱스터랩으로 생각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힙합을 한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갱스터랩을 표방하고 나왔으며, 국내가수들의 표절의혹으로 Cypress Hill과 같은 미국의 힙합그룹들이 국내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90년대 말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룹들이 힙합을 표방하고 가요계에 등장했다. 미국의 교포들로 구성된 업타운은 기존의 가요와는 차별되는 본토힙합에 비교적 가까운 곡들을 선보였고, 이현도도 자신의 솔로앨범의 몇 곡에서 힙합곡들을 시도했으며, 지누션도 한국적인 힙합을 통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김진표는 국내 최초로 랩으로만 구성된 열외앨범을 내놓았고, 특히 그는 자신의 가사에서 라임(rhyme)의 중요성을 강조해 화제를 끌었다. 이후 힙합은 단순히 댄스음악의 중간중간에 가미되는 용구적 성격을 벗고, 독자적 장르로 인식되어 힙합만을 추구하는 가수들이 늘어났고 그들의 음악도 본토의 정통 힙합에 가까워졌을 뿐 아니라 이를 한국적으로 수용하려는 독창적 시도도 활발하다.한국에서는 음악이건 패션이건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유행에 크게 의존하는 면이 있다. 수 년전 유행했던 장르의 음악이나 지금은 보기 힘든 것이나, 새로운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도 유행에 민감한 영향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힙합은 현재 유행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존재하던 국내 힙합 문화에 침묵하던 대중매체도 유행을 타고 앞다투어 특집으로 힙합을 다루고, 여기저기서 정통힙합을 추구하는 그룹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국본토의 힙합을 추구하는 사람이든 한국적으로 변형된 주체적 수용을 주장하는 사람이든 이러한 현상은 우리 나라에 힙합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이지만, 모든 거품이 걷히고 유행이 가라앉은 후에도 계속되는 힙합문화가 국내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힙합에 대한 소란이 가라앉으면 진정으로 힙합을 계속하고 한국힙합을 발전시킬 자들만 남으리라 본다. 지금 힙합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가 더 정통이다, 랩을 한국말로 해야한다 영어로 해야한다는 따위의 논쟁이 오고 가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힙합이 더 정착이 되어 가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스타일의 세분화이며, 이런 세분화 속에 힙합은 다양한 모습을 띄면서 진정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 힙합의 미래에 필요한 것은 자신과는 다른 부분에 대한 관용이고, 한국적인 힙합을 추구하든, 영어로 미국적 랩을 하든 힙합이란 문화 속에 서로에 대한 포용이다.
    사회과학| 2002.12.14| 4페이지| 1,000원| 조회(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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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문화] 마을신앙 현지조사
    ◈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가천리 (가천마을)◈ 조사일시 : 2002년 11월 16일 토요일◈ 조사자 :◈ 조사지 개관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을 빠져나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넌다. 남해읍소재지를 지나 해안으로 빠지는 1024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신전리 삼거리에서 우회전, 월포해수욕장을 지나 해안도로를 타면 남해도 서부 최남단에 자리잡은 가천마을에 이르게 된다. 부산에서 남해행 고속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있고 소요시간은 2시간전도 걸린다. 남해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남면행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소요시간은 50분 정도 된다.가천의 옛 이름은 '간천'인데 마을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두 개의 냇물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더할 가(加), 내 천(川)자를 써서 가천리가 되었다.바다를 끼고 있지만 남해에서 유일하게 선착장이 없는 마을로 배 한척이 없이 마늘과 쌀이 주소득이다. 남해는 비교적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띠는데, 한 해에 한 번 눈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그런 데다 남해 땅이 산이 많고 내가 별로 없어 예부터 논 농사보다는 밭 농사가 성했다. 남해에 계단식 밭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가천마을 양 옆으로는 계단식 논, 일명 '다랑이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거의 전부가 마늘밭이다. 다랑밭이란 것이 농사 짓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우선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농기계 대신 소가 유용하게 쓰이며, 거름을 지고 나를 때도 순전히 지게에 의존한다.가천마을이 최근에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인디안 섬머'의 로케지이였던 가천분교 때문이다. 가천마을은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해안가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잘생겼다는암수 미륵바위가 있어 더더욱 여행자 들의 흥미를 돋군다. 암미륵바위는 아기를 밴 여인의 형상, 숫미륵바위는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다. 58가구, 1백50여명의 마을 사람 들은 해마다 음력 10월23일에 바위 앞에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 제사를 지낸다. 이 미륵바위는 1751 년(조서 그 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마을 중앙에 세 갈래의 길이 나 있다. 그 중앙에 터가 닦여 있고 3층석탑으로 된 밥무덤이 서 있다. 마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밥무덤으로 크기 또한 제일 크다. 그 길에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만 가면 낮은 돌담 사이에 아주 작은 밥무덤이 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서 오른쪽 위로 난 길을 향해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담 사이에 또 하나의 밥무덤이 나온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보면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공터 안쪽에 암수바위가 있다. 입구의 정면으로 숫바위가 솟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암바위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외형◦ 밥무덤 : 마을의 중심이 되는 밥무덤은 3층석탑처럼 되어있고 맨위에 넓적한 돌을 얹어 놓고 그 밑에 젯밥을 묻는다. 밥을 짓는 아궁이에 가마솥을 얹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두번째 밥무덤은 돌담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층은 없으나 역시 옆으로 돌을 궤어 맨위에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았다. 세번째는 밭주변에 쌓아놓은 작은 돌 틈에 있어 마을 사람이 아니고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크기면에서는 세 개의 밥무덤 중 제일 작고 구조는 두번째 밥무덤과 비슷하다. 밥을 묻는 양도 크기순이라고 한다.◦ 암수바위 : 암수바위의 숫바위는 높이 580cm 둘레 150cm 이고 남자의 발기된 성기를 닮았는데 띠 모양의 도드라진 돌대띠가 둘러져 있다.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여져 하늘로 솟구쳐 있다. 그 오른쪽으로 비스듬이 누워있는 암바위는 높이 390cm 둘레250cm의 참외모양같이 생겼는데 이것이 아기를 잉태한 것과 같이 배가 불룩한 여인의 형상이라 암바위라 부른다. 흰베를 감아 둔 흔적이 있다.◈ 제작 연대 및 유래마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언덕 위에 지은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자연석이 두 개 있다. 공터 같은 터에 누가 앉아 설명을 듣다 간 듯한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고바위 근처에 나무도 몇 그루 심어져 있다. 이 바위 두개는 전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녀 성기전해지고 있으며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이 미륵불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이 바위에 빌면 아들을 못 낳는 사람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으니, 대개 아들 낳게 해 달라고 비는 사람들일 것이다.그리고 이 마을엔 밥무덤이라는 것이 있다. 돌탑 위나 돌담 사이 공간에 한지로 싼 밥을 묻고 동네 평안을 빈다. 다른 마을 당산나무 동제를 대신하는 의례다. 밥무덤에 관한 연대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고 원래가 남해 지방의 일반적 풍습이었으나 여지껏 제의가 행해지는 곳은 흔치 않다고 한다. 이 제사는 조상신을 따라 온 잡신들을 위로하는 제사라 할 수 있다.◈ 관련 의례가천의 마을제사에는 ‘동제’와 ‘미륵제’가 있다. 동제는 매년 음력 10월 보름에 열리는데 마을로 드는 세 길목에서 잡신을 막는 밥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그 곳에 밥을 묻는 것이다. 제관은 마을 사람들이 의논하여 결정하는데 근자에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가족 중 임산부나 병자가 없고, 사망 또는 출산이 없었으며 지난 일년동안 재난을 입지 않은 자여야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그 때부터 부정한 곳에 갈 수 없으며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궂은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아야 한다. 제관의 집에서는 3일전부터 집안을 청소하고 문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한 자의 출입을 막고 제사 당일에 제물을 조리한다.미륵제는 같은 달 23일에 열린다. 미륵제의 경우도 마을에서 의논하여 제관을 선정한다. 미륵제사날이 다가오면 제관은 뒷산 계곡물에 목욕재계하고 집에 금줄을 쳐 잡인을 금하고 정성을 드린다.동제를 지낼 때는 밥무덤 주변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제의 시간인 밤 12시가 되면 제관부부는 제물을 가지고 밥무덤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지낸다. 일반가정의 기제사와 같은 형식으로 제물을 진설하고 유가식으로 거행하며 제의가 끝나면 제주는 간단히 음복하고 밥을 밥무덤에 묻는다. 제를 지낼 때 제주는 한복을 차려입는다.미륵제에서는 과일, 산나물, 술, 백설기, 소뼈를 올리며 제관은 축관과 는 집은 어떻게 정해요? 돌아가면서 하나요?A : 아니오.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우환이 없는 좋은 집안을 정합니다. 제주는 일주일 전부터 목욕제계하고 초상집도 안갑니다.Q : 제사 경비는 어떻게 하나요?A : 미륵제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미륵계에서 주관을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고… 지금은 동제나 미륵제나 마을 경비로 충당을 합니다.Q : 절은 누가 하나요?A : 그냥 제주랑 몇몇 사람들만 합니다. 구경하는 건 아무나 와도 상관없습니다.Q : 풍악 같은 건 없나요?A : 초창기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Q : 제사 음식은 어떤 것을 하나요?A : 미륵제에는 깨끗한 과일만 올립니다.Q : 미륵제와 동제의 차이점은 뭔가요?A : 미륵제는 성기 숭배 사상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수호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외침이 있을 때 마다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 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사실상 진짜 전투를 한 곳은 이곳 남쪽 앞바다인데 그 때 미륵이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밥무덤은 마을의 전통신앙인데 남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매년 제사를 지내는 곳이 이곳 가천입니다. 바다와 가장 근접한 곳이기 때문에 가장 큰 신, 그러니까 남쪽에 제사를 지냅니다. 동제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입니다. 해풍을 통해 오는 질병 같은 것을 막아주는…Q : 암수바위나 밥무덤이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어떤것이죠?A : 말했듯이, 오래전부터 신성시 되어온 마을 신앙입니다. 많이 변하긴 했지만… 예전에는 암수바위에 손가락질만 해도 손가락이 썩는다고 했지만 요즘은 만져도 보고 하지않습니까… 미륵불은 풍어와 득남을 염원하는 바위입니다.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도 빌러 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미륵이니까요. 자리도 좋은데 앉아 있지않습니까… 밥무덤도 굉장히 신성시 됩니다. 여기는 거의 농사를 지으니까 풍농을 비는…Q : 미륵불 같은 경우에는 다른 지방에서도 유명하잖아요. 문화재로서의 가치나 보존방법이나 그런 것은의 원리는 새해맞이 세시 의례이다. 음력관행으로 새해가 열리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한다. 세시의례는 불확실한 세계를 확실한 세계로 만드는 신앙적 장치이다. 새해 첫날 정월 초하루에 가제(家濟)로서 집안을 열고 정월 보름날 촌제로서 마을을 여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은 가졌었다. 마음을 여고 대문을 열고 마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촌의 마을제사는 조상제사와 같은 경건한 제사도 있지만 축제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대부분 정월 대보름 마을 제사는 축제적이라서 마을 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굿은 신인동체(神人同體)하여 집단 적으로 축원하는 제사, 즉 축제 방식이다. 이처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마을제사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행해지는 시간적 통과 의례이다. 이때를 의례로 통과한 이후부터 1년 내내 현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의식을 강화시키는 원동력은 마을수호신이 가진 집단적인 구속력일 것이다. 현대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마을제사에 임하는 마을도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지내는 마을신앙의 사례도 조사되었다. 그만큼 마을신앙은 각 마을의 질서유지에 필수적인 종교적 장치였으며 단지 신앙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생활을 영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촌락구조상 통과 의례인 것이다. 마을 신앙은 음력으로 해가 바뀌면 마을을 새롭게 장식하려는 주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세시의례로 정월 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마을마다 섬기는 신앙의 대상들이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성상 마을을 수호하는 영신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시의례가 추구하는 목적은 일치한다.마을신앙은 공동체신앙의 대상들이 포함된다. 엄밀하게 구분한다면 마을신앙은 개인신앙과 공동체신앙으로 나눌 수 있다. 제사도 가제와 동제, 촌제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동제는 한 씨족이 문중을 이루는 신분적 위계질서가 강한 집성촌에서 이뤄지는 성향이 큰 반면, 촌제는 서로 각기 다른 문중들이 모여 사는 평등 지향적인 신분질서가 유지되는 각성촌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가제는 가족의 안녕과다.
    인문/어학| 2002.12.14| 8페이지| 2,000원| 조회(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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