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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학개론] 무역 결제 방식 평가B괜찮아요
    Ⅰ. 무신용장 결제방식1. 송금방식송금방식은 채무자인 수입업자가 은행 등을 통하여 채권자인 수출업자에게 채무를 변제하는 형태로써 무역거래에서는 소액거래나 또는 비 상품거래에 주로 이용된다. 송금방식(remittance)의 수단에는 송금수표(demand draft), 은행수표(bank check) 등이 있다.송금방식은 채무자인 수입업자가 은행에 지급을 위탁하여 채권자인 수출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한다고 하여 순환(順換)방식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1) 보통송금송금수표(Demand Draft : D/D)는 채무자인 송금인이 은행에서 받은 수표를 송금인의 책임하에 우편 봉투에 넣어 수령인에게 보내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우송 도중에 분실의 위험이 있으므로 대량금액의 취급이나, 무역결제 방식으로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이 방식은 물품의 소량금액을 취급하거나 친인척간의 일방적인 소액을 우송할 때 많이 이용된다.2) 우편송금우편환(Mail Transfer : M/T)은 채무자(수입업자)인 송금인이 은행에 송금을 하기 위한 금액을 위탁하면 은행의 책임하에 수령인 소재지의 은행으로 지급지시서(payment order)를 송부하는 방법으로서 별로 급하지 않은 송금과 소액송금 등의 경우에 많이 이용된다.이때 지급지시서의 도난 및 분실과 같은 위험은 은행에 전가된다. 그러나 은행은 지급지시서가 분실되었다 할 지라도 부본(副本)에 의하여 지급할 수 있으므로 송금수표에 의한 보통송금방식보다 더 안전한 방식이다. 이 우편송금방식은 송금기간이 길어서 유송 도중에 환율의 변동에 따른 위험이 존재한다.3) 전신송금전신환(Telegraphic Transfer : T/T)은 채무자(수입업자)인 송금인의 의뢰에 따라 은행이 은행의 책임하에 지급지 은행에 지급지시서를 보내는 것이 우편송금과 같지만 지시방법이 우편이 아닌 전신이라는 점이 우편송금과 다르다.전신송금 방식은 전신료 부담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지만, 신속·정확·안전이라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과 같이 시간을 중요시 여지급·인수·매입한 금액에 대해서는 수출업자에 대한 소구권의 행사가 제한된다.(3) 지급은행신용장은 모든 은행에서 자유롭게 매입할 수 있는 자유매입신용장(freely negotiable credit)을 제외하고는 지급·인수·매입에 관한 조건을 기재하여야 하고, 지급·인수·매입은행을 지정하여야 한다고 신용장통일규칙에 규정되어 있다.신용장의 내용에서 매입은행에 의한 환어음의 매입을 인정하지 않고, 개설은행이 지정한 특정은행으로 하여금 수출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라고 명시하고 있는 신용장을 지급신용장(payment credit)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지급신용장에 의하여 지급을 위탁받는 은행을 지급은행(paying bank)이라고 한다.지급은행은 수출국에 있는 개설은행의 지점이나 개설은행의 환거래은행이 대금의 결제를 위하여 미리 금액을 위탁시켜둔 은행만이 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신용장 통지은행이 지급은행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급은행으로 지정되어 행동하는 은행은 신용장에서 요구된 서류와 상환으로 전 금액을 지급하거나 자신 앞으로 발행된 환어음의 액면금액을 할인함이 없이 전부 지급하게 된다.(4) 인수은행신용장에서는 지급·인수·매입에 관한 조건을 기재하여야 하고, 지급·인수·매입은행을 지정하여야 한다.신용장의 내용에서 개설은행이 지정한 특정은행으로 하여금 수출업자가 발행한 기한부 환어음을 인수하도록 하고, 환어음의 만기일에 수출업자에게 환어음의 대금을 지급하라고 명시하고 있는 신용장을 인수신용장(acceptance credit)이라고 한다. 또한 인수신용장에 의하여 기한부 환어음을 인수하는 은행을 인수은행(accepting bank)이라고 한다. 인수은행은 자기 앞으로 발행되어진 기한부 환어음을 인수함으로써 그 어음의 만기일에 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게 된다.다라서 인수은행은 자기 은행 앞으로 발행된 기한부 환어음을 인수한 경우에는 그 어음의 만기일에 반드시 지급할 의무를 지게 되므로 인수은행은 어음의 만기일에 가서는 지급은행이 된다. 인수은행의뢰는 수출국에 때문에 일종의 외상거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입업자는 주어진 기간 동안 물품을 판매하여 개설은행에게 대금을 지급한다.(4) 상환청구가능여부에 따른 분류1 상환청구가능신용장지급·인수·매입은행이 수익자로부터 신용장에 규정된 서류를 매입하였으나 어떤 이유로 인하여 개설은행으로부터 지급을 받지 못할 경우, 지급·인수·매입은행이 수익자에게 신용장대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상환청구(recourse)라 한다. 이와 같이 상환청구는 개설은행의 파산으로 인하여 지급·인수·매입은행이 다시 환어음의 발행인에게 환어음을 반려하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상환청구가능신용장(with recourse L/C)은 지급·인수·매입은행이 수익자에게 상환청구를 할 수 있는 신용장이다. 상환청구가능신용장이 되려면 그 신용장상에 with recourse"라는 명시적인 문언이 있거나 이를 금지하는 문언이 없어야 한다.2 상환청구불능신용장상환청구불능신용장(without recourse L/C)은 환어음의 지급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설은행이 환어음의 인수 및 지급을 거절한 경우에도 환어음을 소지하고 있는 지급·인수·매입은행이 다시 수익자에게 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신용장을 말한다. 따라서 상환청구불능신용장은 지급·인수·매입은행이 수익자에게 상환청구를 위해 소구할 수 없는 신용장이다.신용장상에 상환청구를 금지하는 별도의 문언이나 약정이 없으면 상환청구가능신용장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단순히 취소불능신용장이 개설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상환청구불능신용장이 되는 것은 아니고, 신용장상에 반드시 without recourse"라는 문언을 기재하여야 상환청구불능신용장이 될 수 있다.(5) 신용장의 사용은행이 지정되었는가의 여부에 따른 분류1 지정신용장신용장의 사용방법, 즉, 지급, 인수, 매입, 연지급 등이 특정은행에 지정된 신용장을 말한다. 신용장은 자유매입신용장을 제외하고는 지급, 인수, 매입, 연지급에 관한 지정은행을 규정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자유매입신용장을 제외한 모든 신용장은 지정신용장 매입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한 매입신용장(negotiation credit : credit available by negotiation)2 지급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한 지급신용장(payment credit : credit available by payment)3 인수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한 인수신용장(acceptance credit : credit available by acceptance)1) 매입신용장 결제방식이 결제방식은 수입업자가 자기의 거래은행으로 하여금 매입신용장 을 개설하도록 조치하면 그 매입신용장에 의거하여 수출업자가 수출대금을 수령하는 결재방식이다. 매입신용장에 의거한 무역대금의 결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1) 선적서류의 구비 및 환어음의 발행매입신용장의 수익자인 수출업자는 개별신용장에서 요구하는 선적서류를 구비한 후에, 신용장상의 어음발행조건에 합치하는 환어음을 발행한다.그 환어음은 일람불어음(sight draft)과 기한부어음(usance draft) 중의 하나이며, 어음상의 지급인은 반드시 신용장상에 명시되어 있는 지급인과 일치하여야 한다.(2) 선적서류의 제시 및 환어음의 매입의뢰수익자(수출업자)는 선적서류와 환어음을 매입은행에 제시하고 매입을 의뢰한다. 제한매입신용장의 경우에는 지정은행인 매입은행에 매입을 의뢰하지만, 자유매입신용장의 경우에는 지정된 매입은행이 없고 불특정 다수의 은행에 매입이 수건되어 있으므로 수익자는 임의로 매입은행으로 선택하여 매입을 의뢰한다.(3) 선적서류의 심사 및 매입조치매입의뢰를 받은 매입은행은 선적서류를 심사한 후, 제시된 선적서류가 신용장의 제조간과 일치하는 경우에는 매입을 실행한다. 매입이란 매입을 행하도록 수권된 은행이 환어음 및 서류에 대하여 그 가액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므로, 매입은행의 매입조치는 바로 수익자에 대한 수출대금의 지급이 되는 것이다.이처럼 매입은행에 의한 매입으로 수출업자인 수익자는 사실상 수출대금을 회수하게 되지만, 아직 신용장거래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수익자 발 추심에 의한 무역결제에 있어서는 선적을 마친 수출업자가 추심의뢰인의 자격으로 자기의 거래은행에 추심업무를 위탁한다.추심요청은행은 추심의뢰인으로부터 추심업무를 위탁받은 은행으로서, 주로 수출업자의 거래은행인 수출국의 은행이다.추심은행은 추심과정에 참여하는 추심요청은행 이외의 모든 은행으로서, 주로 추심요청은행의 환거래은행이 외국은행이다.제시은행은 지급인에게 제시를 행하는 추심은행으로서, 주로 수입국에 제시하는 은행이다.지급인은 추심지시서에 따라 제시가 행해지는 상대방의 당사자로서, 제시은행이 제시를 행하는 상대방인 수입업자이다.3. 추심에 의한 무역대금의 결제1) 추심의뢰인의 추심의뢰(추심업무의 위탁)추심결제방식의 무역거래, 즉 선수출계약게 의한 무역거래에 있어서 선적을 마친 수출업자는 상업송장·운송서류·보험서류·포장명세서 등과 같은 상업서류를 구비하고 또한 수입업자를 어음지급인으로 한 환어음을 발행한 후에, 추심의뢰인의 자격으로 그 상업서류와 환어음의 추심을 자기의 거래은행에 의뢰한다.2) 추심요청은행의 추심지시(추심의 요청)수출업자로부터 추심의뢰를 받은 수출국 은행은 추심요청은행의 자격으로, 추심지시서를 작성하고서 그 지시서를 추심서류와 함께 추심은행 앞으로 송부하고 추심을 지시한다.3) 추심은행의 추심업무추심요청은행으로부터 추심의 지시를 받은 추심은행은 추심지시에 따라 추심업무를 수행한다. 즉, 제시은행으로서의 임무를 담당할 수 있는 추심은행인 경우에는 제시은행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고 지세은행으로서의 임무를 담당할 수 없는 추심은행인 경우에는 제시은행을 선정하여 그 은행으로 하여금 제시은행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토록 조치한다.4) 제시은행의 제시 및 서류인도수입국 소재지의 제시은행(presenting bank)은 지급인에게 지급을 위한 제시 또는 인수를 위한 제시를 행한다.현행의 추심통일규칙의 규정에 의하면, 제시는 제시은행이 지시받은 대로, 그리고 국내의 은행관행에 따라 지급인으로 하여금 서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절차이다.환어음에 첨부된 상업서류의 같다.
    경영/경제| 2005.01.20| 39페이지| 1,000원| 조회(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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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교류론] 음식문화를 통한 한국문화의 세계화 평가A좋아요
    음식문화를 통한 한국문화의 세계화대 학 : 사회과학대학학 과 : 국제관계학과학 번 : 20220267이 름 : 서 윤 미과 목 : 문화교류론교 수 : 하 영 수{Ⅰ. 서 론Ⅱ. 본 론1. 전통 음식문화의 지구촌화2. 음식문화의 사회성3. 세계에서 주목받는 김치문화1) 세계 음식문화에 있어서 김치문화의 등장2) 해외 한국 교민과 김치문화의 전파3) 국제행사와 김치문화의 교류4. 오늘날 식생활의 상황과 김치 종주국의 책무1) 반 서구적 식생활의 권장과 김치2) 김치 종주국의 책무5. 전통음식의 문제점6. 한국음식의 세계화 방안7. 전통 음식문화의 세계화Ⅲ. 결 론Ⅰ. 서 론세계화는 여러 국가와 민족이 지구촌에서 더불어 살아감을 의미한다. 세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언어와 생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음식 섭취는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알고 인정한다면 개인이나 국가간에 친밀한 관계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일상생활 속에서 섭취하는 식품과 음식은 오랜 역사의 산물이므로, 각 나라의 기호식품이나 대표적 음식을 살펴보면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다.각 나라의 기호식품은 평균 100-299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정착한다. 오랜 역사적 배경을 통해 형성된 각 나라의 기호식품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 국가의 국민들이 즐겨먹는 기호식품이 바로 그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각 국가의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한 국가를 상징하는 음식문화도 국가간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에 따라 서서히 변화한다.즉, 국가마다 국민들이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물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대표적인 음식들도 변화할 수 있다. 외국 농산물 수입과 외국 음식점의 증가로 국가마다 식생활의 세계화가 진행된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다른 문화는 물론 음식문화도 동양과 서양이 퓨전화되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음식의 재료, 각종 양념, 조리법, 상차림, 식기류 등에서 동·서양의 퓨전이 이루어지는 현 시점에서 세계시장에 내보내는 일과 같다. 이를 위해 그 맛과 멋스러움을 밝혀내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국가명대표적인 식품과 음식한 국김치, 떡, 불고기일 본스시, 우메보시, 소바, 사시미중 국교자, 마파두부, 북경통오리구이태 국톰양쿵(tom yum kung), 솜탐(som tam)베 트 남포(pho), 짜조(cha gio)인 도커리(curry), 난(nan), 차파티(chpati), 달(dhal)터 키케밥(kebab), 아이란(ayran)미 국핫도그(hot dog), 햄버거멕 시 코타코(taco), 토르티야(tortilla), 데킬라(tequila)아르헨티나아사도(asado), 마테 차브 라 질페이조아다(feijoada), 추라스코(churasco)프 랑 스에스카르고(escargo), 프아그라(foie gras), 바게트, 포도주이 탈 리 아스파게티, 피자스 페 인파에야(paella)영 국피시 앤 칩스(fish &chipps), 로스트 비프(roast beef)독 일맥주, 소시지스 위 스퐁듀(fondue)2. 음식문화의 사회성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쾌락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적 욕구에 속하는 쾌락성에 대해 가치를 두는 사회와 그렇하 않은 사회가 있다.전자는 서구의 합리적 사회의 관습이고, 후자는 동양의 전통적 관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먹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또 가정에서도 먹는 일에 대해 말이 많으면 남자답지 못하느니 주는 대로 먹어야지 웬 말이 많냐는 식으로 좁쌀 영감 취급을 받아왔다.이러한 음식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차이는 민족의 생존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에서도 라틴계의 영향을 박은 여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음식의 쾌락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고.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신교)의 세례를 받은 나라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은 나라는 고소득층이 많은 나라보다 음식문화나 음식의 즐거움, 음의 쾌락 같은에 음식문의 발전이 이루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즉, 불평등 속에 음식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져왔다. 바로 이것이 음식문화의 사회성이라고 할 수 있다.3.세계에서 주목받는 김치문화1) 세계 음식문화에 있어서 김치문화의 등장최근 수십년간 세상이 보는 김치문화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로스엔젤레스나 뉴욕 그리고 동경 등 큰 도시에서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다른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우리는 김치를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음식점에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슈퍼마켓에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김치가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이제 미국의 경우, 김치는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계 사람들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들까지도 잘 찾는 식품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현상은 일본으로 가면 더 야단스럽고 화려하다. 일본에 있어서의 김치는 성인병을 예방하는 건강식품이요 미용식으로 더 명성을 날리고 있다. 먹는 양도 많아지고 먹는 횟수도 늘어가고 있다. 김치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가고 있으며, TV에서도 각종 잡지에서도 화려하게 이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치 담금 강습회, 김치 종주국인 한국으로의 김치여행 등 실로 그 열의가대단하다. 그들은 김치를 기무치(キムチ) 로 부르고 있으며 한국에서 직수입한 기무치 도 슈퍼마켓에서 즐겨 찾는다.미국이나 일본 뿐만이 아니다. 주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중국의 연변과 만주지역, 그리고 중앙아시아 카자흐 공화국 등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도 김치, 그리고 김치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유럽,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도 김치가 선을 보이고 있어 이제 김치는 명실공히 세계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 나라 김치가 드디어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2) 해외 한국 교민과 김치문화의 전파{문화인류학에서는 한 문화권의 독특한 음식이 다른 문화권으로의 이동 즉, 음식문화의 전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음식문화의 전전개되었다. 우선 식단의 국제화, 서구인을 위한 전통음식의 개발, 관광객용 한식점 지정, 한국요리강좌 및 전시회, 홍보책자의 보급 등 다각적인 노력이 관계 당국에 의해서나 개인사업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4. 오늘날 식생활의 상황과 김치 종주국의 책무1) 반 서구적 식생활의 권장과 김치최근에 일어난 놀라운 사실의 하나는 소위 선진국 그룹의 여러 나라에서 발생되고 있는 성인병 증가와 그에 의한 사망률의 급증이다,{이들 서구지역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을 보면 심장병을 필두로 하여 암과 뇌 질환 등의 소위 성인병에 의한 것이다. 특히 심장병은 미국의 경우, 전체 사망원인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인병은 일단 앓게 되면 완쾌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치료된다고 라더라도 긴 시간을 요하며 그만큼 고생을 치러야 하는 질병이다. 이러한 성인병 만연의 경향은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그들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는 것에 대하여 한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성인병에 의한 사망률이 1950년도의 26%가 1981년에는 67.5%로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도 최근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 문제는 결코 남의 얘기만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선진국의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그들의 식사내용에 있다. 선진국의 식사내용을 보면 동물성 단백질비가 너무 높고 지방질 에너지비 특히, 포화지방산의 비율이 너무 높다. 즉, 동물성 식물과 지방질 식품을 너무 많이 먹고 채소·과실·곡류를 너무 적게 먹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병은 잘못된 식생활에서 오는 식원병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은 이에 대한 면밀한 연구 검토 끝에 1977년 드디어 미국의 식사목표 라는 것을 발표하였는데 그 요지는 육류·우유류·지방질·당류 등의 섭취를 줄이고 채소·과실·곡류를 늘이며 적절한 열량을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도 1985년 건강을 위한 식생활 지침 을 발표하기되어 판매되고 있다.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김치 종주국 인 우리는 그 명예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분명히 김치는 우리 민족 문화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자존심이다. 그러한 우리의 음식을 다른 나라에서 더욱 발전시키고 그래서 더 높은 수준의 음식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그런 음식을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국제 사회의 조류 속에서 김치를 우리의 울타리 속에만 머물도록 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의 전통식품은 오히려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더욱 계승 발전시켜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속에 우뚝 솟은 국적 있는 김치의 재창출은 김치종주국인 우리들의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과제는 김치문화에 대한 애정과 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우리들이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김치종주국의 명예를 우리는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또한 나라 안팎으로 김치문화의 홍보사업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관련 축제·전시회·세미나·경연대회 또는 시식회·박물관의 운영·관련 홍보자료의 제작과 보급 등이 추진되어야 하고 이와 같은 일은 김치종주국인 우리가 주관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홍보 사업이나 문화사업은 새로운 형태의 김치에만 한정하여 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모습의 김치는 물론이거니와 전통의 맛과 솜씨가 깃들어 있는 원형의 김치를 보존하고 또 이들의 계승·보급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5. 전통음식의 문제점한국의 음식문화는 여러 세대의 가족이 모여 웃어른들을 섬기며 예의 규범을 지키는 식생활을 하던 대가족제도에서, 궁핍한 일제시대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게 다행인 식생활이 되면서 잘 갖추어 먹던 우리 전통 음식문화가 상실되어 갔다. 분식장려, 우유보급, 급식제도로 빵, 국수, 간단한 서양요리가 일반화되고 생활이 나아지자 육식만을 즐기는 풍조로 바뀌어 갔다.문화가
    사회과학| 2005.01.20| 11페이지| 2,000원| 조회(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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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관계론] 다문화의 다양한 현상들 평가A+최고예요
    다문화사회의 다양한 현상들대 학 : 사회과학대학학 과 : 국제관계학과학 번 : 20220267이 름 : 서 윤 미Ⅰ. 서 론문화라고 하면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구미풍(歐美風)의 요소나 현대적 편리성(문화생활 ·문화주택 등),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풍의 요소(문화인 ·문화재 ·문화국가 등)이다. 그리고 인류의 가치적 소산으로서의 철학 ·종교 ·예술 ·과학 등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독일의 철학이나 사회학에 전통적인 것이며, 인류의 물질적인 소산을 문명이라 부르고 문화와 문명을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문화가 없는 인류가 과거에 존재하였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사회과학, 특히 문화인류학에서는 미개(未開)와 문명(文明:高文化)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가 문화를 소유하며 인류만이 문화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다.Ⅱ. 본 론다양한 문화들이 나타남으로 인해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반면, 문화적 충돌로 인한 국가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 자국에 좋은 문화들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실로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른 문화제국주의 문화종속이 알게 모르게 속속들이 일어나고 있다.1. 가치의 보편성과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문화적 상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겐 발전이라는 개념은 아주 수상한 것이다. 그들은 모든 문화가 저마다의 목표와 윤리를 갖고 있으며 다 큰 문화의 그것을 가지고 고유의 목표와 윤리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발전이란 결국 서구가 다른 문화권에 강제로 부과하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본다. 극단적인 경우, 문화 상대주의자와 문화 다원론자들은 서구인들이 여성, 성기 훼손, 사티(남편이 죽었을 때 본인의 의너는 자국의 가나느 권위주의, 불공정 등이 문화적 원인 때문이라고 판단하면서, 리처드 쉬웨더의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쉬웨더는 그의 논문 말미에서 이 세사람이 과연 소속 사회의 진정한 대변자인가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의 반박을 일축했다. 쉬웨더는 그들이 "사헤동포작인 지식인"이며, "자신들의 전통이나 과거보다는 해외 여행 계획이 더 중요한 국제인들" 이고 또 " 미국만 쳐다보면서 지지거이고 도덕적인 지침이나 물질적 원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이러한 지적에 대한 대니얼 에퉁가-망겔. 마리아노 그론도나. 카를로스 알베르토 몬타너의 반응은 쉬웨더의 논문 말미에 첨부되어 있다. 또 쉬웨더의 추가 발언도 함께 붙어 있다.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일부 인류학자들은 쉬웨더사 문화를 차가운 얼음 속에다 가두려는 인류학적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 쉬웨더는 " 나는 해외의 비판에도 옹호받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진정한' 문화, 평가받을 만한 문화라고 정의하겠다"라고 말했는데, 쉬웨더는 이 말에 포함된 위험성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평가받을 만한' 문화가 있다면 평가받지 못할 문화도 있다는 뜻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쉬웨더는 로버트 에저튼의 견해에 동의하는 셈이다.이렇게 볼 때, 자기자신을 가리켜 "부흥회의 이단자"라고 했던 쉬웨더는 그런 노릇을 충실히 해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2. 문화 상대주의의 장·단점문화 상대주의의 원칙은 역사적 가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민족 중심주의와 인종 차별주의를 반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모든 사회가 동일한 '진보'의 단계를 거쳐 중국에는 서구 유럽의 '문명'과 같은 완성된 형태에 도달한다고 추정하는 단선적 진화의 개념에 하나의 개선책을 제공한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가치에 대해 더 많은 혜택을 안겨 줄 수 있다. 소위 인식론적인 상대주의자들의 과열된 논쟁조차 유용할 수 있다.문화 상대주의는 또한 어떤 문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모든 사회.문화 시스템이하고 영향력 있는 자들과 상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3.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21세기는 문화가 국운을 좌우하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너무 자주, 여러 곳에서 진부하게 이용되는 데 대해 식상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품격이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그 품격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문화라는 말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화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자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해서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를 하고 있는 듯 하다.세계화 시대를 맞아 국가간 개방과 경쟁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국제사회를 선도하고 있는 국가는 물론 신흥개도국까지도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 하고 , 이를 바탕으로 타문화와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우리 정부는 70 초반부터 정보내에 해외공보관이라는 정보기관을 두고 우리 문화를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사업을 전개해 왔으며, 70 후반에는 해외공보관 산하에 민간단체인 한국국제문화협회(발족 당시 이름은 한국홍보협회)를 두어 정부의 문화홍보사업을 지원케 했다. 해외공보관이나 한국국제문화협회는 모두 당시 문화공보부의 지휘, 감독을 받도 있었으며, 때문에 문화공보가정권홍보와 확연히 분리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그간 정부조직 개편에 다라 해외공보관은 98년초 "해외문화홍보원"으로 문화관광부 소속기관이 되었다. 해외문화 홍보원은 명칭만 변경된 것이 아니고, 문화홍보기능을 집중적으로 강화함으로써 21세기와 New Millennium 에 대비하여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성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이제 우리는 체제홍보나 정권홍보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경쟁력을 높여, 국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홍보를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좋은 환경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전환해야만 한다.문화 홍보 전략이나 문화홍보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과 글을 접할 때,리를 알리는 것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지난 1980년 4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에는 "하멜 표류기 기념비"가 건립되었으며. 이곳은 네덜란드인들에게 관광명소가 되오 있다. 최근 남제주군은 하멜 후손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160네덜란드의 상선을 복원하는 한편, 풍차를 만들고 하멜유적을 보존하는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우리에게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세워준 미국의 호레이스 알렌, 서양음악을 전해준 독일의 프란츠 에케르트 등 우리과 관계가 있는 역사상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 여러나라와 좀 더 친숙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셋째, 한국어의 해외보급에 관한 문제이다. 영국의 Britisch Council,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프랑스의 알리앙즈 프랑세스 등 선진국의 문화홍보전위기구들의 가장 중요한 홍보목표는 자국어 보급이다. 이들이 자국어 보급을 대외 문화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최우선 목표로 두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자연스레 문화가 보급된다는 전제에 바탕을 깔고 있다.반면 우리는 국가홍보 차원에서 한국어의 해외 보급에 크게 신경을 쓴 적이 별로 없다. 이는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영어, 불어, 독어에 비해 떨어지는 원인도 있지만 국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그러나 최근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의 청소년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국을 알자는 수요가 크게 일고 있다. 우선 이들 지역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보급하는 것이 급선무이다.중요한 것은 "언어를 통해서 우리 문화를 알리다."는 기본 목표 아래 한국어를 보급한다는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홍보를 접목시킨 영상교재 개발, 외국 대학 내 한국어 강좌 개설 및 개설대학에 대한 지원, 국내 어학교육기관과 연계하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강좌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 등은 구체적인 사업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넷째, 해외의 중요 홍보거점 지역에 문화원을 설치하여 한국 문화를 체계적이고 으며, 국제방송교류재단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위성방송을 실시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직접 위성방송을 실시하는 방안과 함께 외국의 공중파 및 위성TV에 체계적으로 우리 고유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4. 문화교류문화교류(cultural exchange)란 이질문화(異質文化)의 상호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한 제반활을 말한다. 이는 현대 국제사회 정세의 추이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역사적으로 이질문화의 상호접촉 ·전파는 주로 국가 간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배와 피지배관계의 확대에 수반되는 수직확산적(垂直擴散的)인 형태를 취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교류는 다양한 인류문화에 기본적인 평등성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적 발전을 위하여 문화간의 상호이해를 보다 깊게 하는 제반 활동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미래의 국제적인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이념 ·조직의 연구를 비롯하여 인물교류, 유학생제도의 확충, 각국 문화의 상호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한 학교 및 사회교육계획의 입안 ·실천 등이 포함된다.5. 문화전파문화전파 (culture diffusion)란 한 사회의 문화요소가 다른 사회로 전해져서 그 사회의 문화과정에 정착되는 현상으로 어떤 문화권 또는 민족 속에서 구성된 문화요소의 일부가 다른 문화권 또는 민족의 문화 속에 받아들여진 것을 가리킨다. 문화적 발전유형은 각 문화유형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각각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교차되고 상호작용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어떤 사회집단의 문화변용의 원인은 집단 내부의 독자적인 힘에 의한 것, 즉 발명이나 전통의 개혁 등에 의한 경우와 외부로부터의 이입에 의한 경우가 있는데, 후자가 곧 문화전파로 일반적으로 내부적 요인보다 문화발전에서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문화전파의 경로는 직접전파, 간접전파, 자극전파에 의한다. 직접전파는 두 문화 체계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전파로, 교역으로 새 물질이나 새로운 지식을 전하거나 부족간의 통혼으로 풍속는 '문
    사회과학| 2005.01.20| 8페이지| 1,000원| 조회(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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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개론] 한국정부정치개혁
    Ⅰ. 서 론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국민의 선출하에 5년간 나라를 돌봄으로써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외교 등 다방면에 힘을 쓰며 국민들이 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끔 하고 있다. 권력욕에 물든 그런 대통령이 아니라 도덕성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대통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의 역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모든 일에 있어서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며 일에 대한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두환, 노태우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그들이 했던 실수로 인하여 처벌을 받았다.전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IMF시대에 접어들게 하여 그 문제를 다 해결하지도 못한 채 임기가 끝났고 전 김대중 대통령은 IMF위기를 극복하고 여러 다방면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여 노벨 평화상도 받고 하였지만 임기가 끝난 후 언론과 여러 정치가들은 그의 정치가 그렇게 훌륭하다고 평하지는 않고 있다. 올바르고 훌륭한 정치는 과연 어떤 정치일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정치개혁들을 알아보면서 한국 정치 개혁의 변천과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지 알아보자.Ⅱ. 본 론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1961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군부권위주의체제가 시작된 이래 32년 만에 부활된 문민 정부이다. 이 점에서 김영삼 정부의 개막은 김영삼 자신과 모든 국민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고, 국민들이 문민정부에 기대하는 변화와 개혁은 실로 컸다.김영삼 대통령은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적응하고 신한국 건설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한국병 이란 지난 30여 년 동안 누적되어온 개발독재의 비정상적인 유산 - 군부권위주의의 잔재, 정경유착, 부정부패 -을 지칭하였다.(1) 권위주의 유산의 청산권위주의의 청산은 비정상적이고 정당성이 결여된 군부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치된 사무실의 영내 철수를 시행하였다.(2) 부정부패의 척결깨끗한 정부 그리고 깨끗한 정치 의 실현을 위한 정치개혁이 시도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에 자신의 직계가족의 재산을 전격적으로 공개하였고, 이어 3월 4일 기지간담회의에서 임기중 단 1정치 자금도 수수하지 않겠다 고 선언하였다.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대통령의 선례에 다라 장·차관 및 청와대 비서진들이 재산을 공개하였고, 이어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가 뒤따랐다. 이를 계길 1993년 5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 을 개정하여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및 공공기관 종사자 9만여명이 의무적으로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였다. 이 가운데 정무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 1급 공무원 고등법원 이상의 법관등의 재산을 공개하도록 하였다.재산공개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재산형성과정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박준규 국회의장의 의장직 사퇴, 민자당의원 4명의 의원직 사퇴, 박양실 보사부장관과 김상철 서울시장 그리고 차관급 인사 5명이 사임하였다.이와 함께 깨끗한 정치의 실천을 제도적 차원에서 공고히 하기 위해 일련의 개혁조치가 취해졌다. 첫째,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 명령 을 토해 금융실명제 를 전격적으로 도입하였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자금흐름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음성소득과 불건전 자금거래를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는 까닭에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정경유착, 부정부패, 부동산에 대한 등기는 반드시 실소유자의 명의로만 하게 하는 부동산실명제 가 1995년 7월 1일 기해 실시되었다. 즉 부동산 투기와 조세포탈 그리고 재산은닉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명의신탁 제도를 금함으로서 경제정의를 실현코자 하였다. 셋째, 1994년 3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과 정치자금법 이 제·개정되었다. 통합선거법은 기존의 각종 선거법을 단일법률로 체계화하여 각종 공직선거의 효율적인 관리를 시도하였다.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음성적 정치자금의 정치권청산, 억압적 국가권력기관의 개혁 등은 분명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고하는 데 그 초첨이 맞춰져 있다. 반면,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사회계층에 대한 정책적 고려는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노동관계법, 전교조 문제 등 대 민중부문 정책은 과거 권위주의정권과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보적 사회세력은 여전히 용공주의 혹은 좌파 급진주의와 동일시되어, 이념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정치참여의 허용 폭을 매우 협애한 상태로 방치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이들의 사회운동은 강력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점에서 문민정부의 정치개혁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보수저인 것이었으며, 절차적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진 개혁이었다.또한 개혁정책의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문민정부의 개혁 스타일은 정치 세력간의 타협과 조정을 우회하는 위임주의적 성향이 강하였다. 예컨대, 정치인과 재산공개에서부터 금융실명제의 전격적인 실시, 5·18특별법 제정, 그리고 그 이후 1996년의 노동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정치적 활동과 정책은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단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사회와 국가를 매개하는 정당과 의회정치과정이 자주 생략되거나 무시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문민정부는 권위주의적 유산을 개혁하기보다는 이를 오히려 안정화시키는 결과 를 초래하여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을 후퇴시키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4) 정책실패와 외환위기1997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대체로 충격론, 구조론, 정책실패론으로 요약되어지는데, 이는 외환위기 발생요인의 일면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아진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3가지 요인들의 복합적 상승작용의 결과였다. 즉 한국경제의 구조적 부실이 외환위기의 배경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면,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은 외환위기를 부추기는 상황적 요인으로 작동하였으며, 그리고 정부의 정책실패는 구조적·상황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외환위기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1997년 8∼10월의 기간은 정박할 정도로 경제부문의 전반적인 환경은 확실히 건강해졌다.그러나 정치면에서의 김대중 정부는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구조개혁은 IMF위기를 계기로 확연하게 드러난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따라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이른바 4대개혁 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4대개혁에 대한 강한 집념은 우리 경제의 기초와 작동시스템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제2의 환란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 산물이기도 하다.그 가운데서도 공공부문의 개혁, 특히 정부개혁은 다른 부문의 구조개혁을 이끄는 선도적인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개혁정책의 전형을 보여야 하는 핵심부문이다. 따라서 정부부문을 먼저 개혁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라는 국정 추진의 3대 중심축도 흔들릴 수 있는 문제다.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정부개혁의 기본 방향은 중앙정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조직 및 인사관리에 기업경영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구감축이 이뤄짐으로써 1·2차 개편을 통해 모두 16실·74국·136과가 줄어들고 공무원 수도 순차적으로 약 2만6천여명이 감축된다.조직개편만 보더라도 정부 나름대로의 의지와 고통분담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제2차 정부조직개편 때는 중앙행정기관의 경영진단에 최초로 민간 컨설팅회사가 참여함으로써 정부개혁의 의지를 반영했으며, 이에 따라 조직개편보다 기능통합에 역점을 두는 등 1차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특히 2차 때에는 정부 개혁의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운영체계 혁신을 위해 개방형 임용제 가 도입됨으로써 철밥통이라는 관료사회의 분위기를 쇄신시켰다.그러나 정부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와 달리 실제로 이뤄진 기구 축소와 인원 감축의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대부분 부처간 통·폐합을 포함한 이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현실이며, 홍보의 위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위기인 것이다. 적어도 정치개혁과 관련해 볼 때 김대중 정부가 처한 현실은 다른 어떤 부문의 개혁보다 시급했고 또 어려운 일이었다. 해방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지지를 원천으로 삼고 있지만, 소수당 정부에다 그나마 공동정부를 구성함으로써 국정운영에 관한 중층 결정구조(overdetermination structure)를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공동정부의 구성도 개혁과는 정반대에 있는 지역연합이라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이 정치의제로 제시되기만 하면 대부분 그 성격이 왜곡되거나 추동력이 분산되기 일쑤였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개혁이 처음부터 자민련과의 공동정부 구성 틀을 해치지 않겠다는 대전제 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개혁의 방향과 방법에서 설득력이 취약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체 형성도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연합에 기초해 보수성 강한 정치세력을 끌어안고 김대중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정치개혁은 사실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여기에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불거지는 내각제 개헌론 은 김대중 대통령과 현재의 민주당을 궁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책추진 과정에서 표출된 공동정부 내부의 갈등과 불협화음 등은 결국 김대중 정부가 감내해야 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계개편론이나 야당의원 영입 같은 예민한 사항은 여야관계를 더욱 악화시켰고, 정치인 사정마저 야당탄압 이라는 명분에 밀리게 됨으로써 정치개혁은 사실상 더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공동여당간 및 여·야간 3각 구도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힘겨루기, 이른바 기싸움이 2년간의 정치개혁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던 주범이었다고 하겠다.이제 16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선거 결과 정치지형이 어떻게 변할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가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5.01.20| 9페이지| 1,500원| 조회(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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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교류론] 실크로드 둔황의 역할과 예술
    REPORT실크로드둔황의 역할과 예술단 대 : 사회과학대학학 과 : 국제관계학과학 번 : 20220267이 름 : 서 윤 미과 목 : 문화교류론교 수 : 하 영 수* 목 차 *Ⅰ. 들어가는 말Ⅱ. 본 론1. 실크로드2. 동서통로요 전초기지인 둔황3. 둔황예술4. 둔황석굴5. 둔황예술의 힘Ⅲ. 맺음말Ⅰ. 들어가는 말아시와와 유럽이 하나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커다란 대륙에서는 일찍부터 지역간 통로가 만들어지고 이 통로를 따라 재화와 사람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다르면 일찍이 기원전 7세기에 흑해 북녘의 스키타이족은 그들의 발달된 금속문명이 중국의 천산 기슭의 사카족에게 가지 전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에는 고대 페르시아는 서쪽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토리아 반도를 횡단하여 에게 바다에 이르는 총 2,500㎞의 제왕의 길이 조성되었던 것이다.근세에 들어 19세기 말 중국과 유럽을 잇는 고대통로를 실크로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대 동서양의 교역통로의 대명사인 실크로드를 오아시스 길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편협적이다. 고대 유라시아 대륙에는 장건이 드나들었던 길보다 천산북로나 초원의 길이 이미 활발했었다.이런 크나큰 길을 통하여 아주 오랫동안 많은 나라들 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다루어 볼 주제는 옛날이는 사주(沙州)로 불렸으며 고대 실크로드의 주요한 길목에 해당하는 요충으로서 중국과 서역의 무역, 문화교류의 주요한 국경도시였던 둔황에 대해서 이다. 우선 먼저 실크로드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실크로드{실크로드란 내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 동서통상로서 비단길이라는 뜻이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하는데 서방으로부터도 보석 ·옥 ·직물 등의 산물이나 불교 ·이슬람교 등도 이 길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전하여졌다. 이 통상로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북변을 통과하는 서역북도와, 남변을 경유하는 서역남도가 있다. 똑같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투르키스탄의 시장에 이르며 실크로드 둔황의 위치>한편 로브노르의 남안을 서쪽으로 향하여 우전에 이르는 남도는 점차 이용도가 낮아졌다. 그 때문에 당나라의 서역경영은 제2차의 서역북도에 따라 행하여졌으며, 후대에 톈산남로의 호칭이 생기게 된 것도 같은 서역북도였다. 실크로드는 타클라마칸사막의 주변에 산재한 다수의 오아시스 나라들의 대상활동으로 유지되었으며, 그 무역의 이익은 동방에서 중국인을, 북방에서 유목민을, 또 남방에서는 티베트인을 끌어들여 그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러나 한편 이와 같은 외부세력에 의하여 시장이나 상로를 독점하려는 군사적 진출이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형세를 좌우할 만큼 되어 있었다. 이 길의 동방과의 연결은 BC 2세기 후반의 한무제 때라고 하지만, 그보다 2세기 앞서서 이미 동서의 교섭이 있었던 증거가 지적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한대 초기에 걸쳐 간쑤성 서부를 점거하고 있던 월지가 비단의 중계무역에 종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서역의 옥이 월지의 중계로써 활발히 중국으로 수입되었고 이것을 중국인이 우씨의 옥이라고 부른 데에서 추측된다. 그 옥의 대가로서 당연히 비단의 수출을 생각하게되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동서무역은, 한무제 때에 이르러 크게 조정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장건이 서역으로 특파(BC 139∼BC 126)된 것을 계기로 하여 처음으로 서방의 사정이 공적 기록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역대의 왕조는 동서의 무역에 열의를 나타내어 실크로드를 통과하는 여러 오아시스 나라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였다. 이와 같은 정세하에서 서방의 물건이 활발히 중국으로 도래하였으며 서방의 문물, 특히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및 로마에서 이단시되었던 그리스도교의 한 파인 네스토리우스파도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7세기 중엽 당나라가 타림 분지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한 무렵은 실크로드의 최성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755), 티베트군의 진출로 당나라와 서역과의 직접적인 교섭이 단절되자, 서역 동부는 위구르인이 점거방의 남해제국을 매개로 하는 해상교역로(시 루트)를 포함해야 한다.2. 동서통로요 전초기지인 둔황벽화에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1년, 한무제가 서역의 부족들을 규합하여 흉노를 방어하기 위한 한사군 , 그 최서단이 둔황일진대, 둔황은 국방, 외교, 행정, 무역, 문화리 동서통로요, 전초기지요, 방어선이었다.둔황의 역사는 찬란했다. 우선 그 지명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즉, 돈(敦)은 크다 요, 황(惶)은 성하다 의 뜻이다. 한무제가 둔황을 군현으로 정할 때 그 당시의 둔황대성(敦惶大城) 의 유적은 오늘의 둔황보다도 넓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둔황시 서문에서 서족으로 5백m쯤 나가 당하를 건너면, 또 한자락의 오아시스가 있는데, 거기에 아직도 6m 높이의 토성 한 귀퉁이가 고목처럼 버티고 서 있다.그 쇠잔한 성터를 따라 복원하면 동서 7백여m, 남북 1천 1백여m 쯤의 훤칠한 사각형이 어렵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록에 따르면, 한평제(漢平帝) 때 둔황군의 인구가 3만 8천, 호구가 6천 3백여명에 이르었다니, 과연 둔황은 크고 번성한 도시였다.둔황은 동서의 통로에 위치한지라 한·호 간의 전쟁이 톱질하던 곳이었다. 서기 400년 서량국이 여기서 도읍을 정해다가, 412년에 북량의 저거몽손(沮渠蒙遜)에게 파멸되었고, 당나라 무덕(武德) 2년엔 여기를 사주로 개칭, 역시 군현을 설치 했었다. 그도 얼마되지 않아 당 건중(建中) 1년(780)엔 토번의 침략을, 다시 송 경우(景 ) 1년(1034)에는 서하의 침략을, 원세조 지원(至元)(1278)엔 원의 침략을 무릅써야 했다.그러나 원세조는 여기다 사주로총관부(沙州路總管府)를, 명의 성조(成祖)는 영락(永樂) 3년(1405) 여기에 사주위를 설치하여 국방, 행정상의 지위를 넓힘으로써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3. 둔황예술둔황의 지위는 문학과 예술에서도 아주 뛰어났다.중국문학사에서 사(詞) 와 변문(變文) , 곧 가사문학과 민간의 설창문학의 중요성은 바로 시나 산문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 의 내원.특히, 『운요집』이나 『둔황곡지사』등의 이름으로 수집, 정리된 곡자사는 어림잡아 1천 2백여 편 정도가 유전되고 있다.그 가운데 당대 둔황지역에서 널리 유행했던 민가 두편으로서 1천년전 그 당시 고을 사람의 사는 모습을 살피기로 한다.절 짓고 장생 빌고, 꽃 숲에서 임을 만났네.다정한 이 합화에 잔잔한 독요초.얼시구 절시구 풀을 잡게나, 갈래는 적지 말게나.- 鬪百草소록소록 연못에 비, 쌍쌍이 원앙새 울음.무르익은 들꽃의 향기, 한들한들 금실이 누렇다.강 위엔 풍만한 계집, 냇가로 나란히 춤.휘영청 비단, 살포시 구름빛 분칠.민당, 오대 무렵 둔황지방의 민가로 보이는 위의 두 편은 족히 천년의 나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뜯어볼수록 흥미진진하다. 먼저, 모래펄에서는 투초나 투화란 놀이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들은 더구나 임을 만나서 즐기고 있다. 또 이합화나 독요초의 정체를 고증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뿌리가 토란 같은 이합화요, 머리가 탄자 같고 꼬리가 새꼬리 같아서, 사람을 보면 저절로 흔들린다는 독요초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막에 돋는 들꽃이나 잡초, 그것들을 성로 비비면서 비틀대거나 댕겨서 끊기지 않아야 승수를 따내는 놀이로 짐작된다.그런가 하면 사막답지 않게 연못과 원앙새, 춤 추는 아가씨 옷의 화장, 꽃내음과 산수풍광, 모두가 넉넉하고 곱다.이른바 둔황예술이란 둔황의 미술, 건축, 음악, 무용 등을 망라한다. 그 중 미술과 건축은 둔황석굴에 보관중이거나 출토된 벽화, 조소, 문물, 건축물을 말한다. 그런데 흔히 둔황의 음악과 무용은 간과하기 쉽다. 석굴에서 출토된 문물 중 악보나 안무, 기타 음악, 무용에 관한 기록과 벽화 속에 나오는 음악, 무용의 자료들이 그렇다. 벽화에 나오는 그토록 많은 비천 이나 행락도 에 나오는 모두가 그렇고, 실제로 출토된 비파보 , 남가자 같은 악보나 무보(舞潽)가 그를 입증한다.더구나 사로화우(絲路花雨) 라는 감숙 오페라단은 중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단으로서, 6백 회의 국내공연을 기록하고 1979년부터 해외로 순회공한 후 원대에 이르기까지 약 1천년간 계속 조성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석굴은 550여 개인데, 그 중 소조상과 벽화가 있는 석굴은 474개이다. 전체 석굴 안에는 2천 수백개의 소조상과 연면적 5만 ㎡에 이르는 벽화가 소장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에 이른 동안 이곳을 찾은 스타인(A.Stein)과 펠리오(P.Pelliot) 등 서구 탐험가들에 의해 이 보물창고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후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무모한 편취자들에 의해 동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막고굴에 소장된 문화제 유물은 대체로 남북조시다부터 송대에 이르는 시기의 유교·도교·불교의 경전, 각종 필사본 문서, 서역이나 인도·페르시아·아랍 등 여러나라의 문자, 기타 불화, 판화, 탁본, 자수품, 염직포 등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문물을 포함하여 둔황석굴 의 건축, 소조상, 벽화, 문서 등은 그 어느것 하나 문명교류와 무관한 것이 없다.5. 둔황예술의 힘막고굴에서 가장 많은 것이 벽화이다 그것은 총면적이 4만 5천㎡, 높이 1m로 전시하면 그 길이가 22.5km까지 뻗는다는 것이다. 그 유형을 보면, 첫째, 석가모니, 보살, 제자 등을 포함한 불상화, 둘째, 석가의 일생을 그란 불교설화화, 셋째, 불경을 회화의 방식으로 표현한 경변화(經邊畵), 넷째, 복희, 여왜를 비롯 청룡, 백호, 우인, 주작, 서왕모 등 중국 전통신화화, 다서번째, 천정, 깃발, 복식, 주단, 비천 등의 장식화, 여섯 번째, 장건출사서역국(張騫出使西域國) , 손호영강승회도(孫皓迎康僧會圖) 등의 불교 사적화, 일곱 번째, 석굴을 시주한 고양주의 초상화이다.{그 대부분이 불교와 불교사적을 선양한 내용이지만, 당시의 사회와 풍속, 예술을 반영한 것도 적지 않아 관람객들의 각별한 흥미는 물론 불후의 가치도 느끼게 된다. 특히 257호석굴의 구색록도 는 북위 때의 불교본생도, 곧 석가모니 전생의 선행을 풀이한 것인데, 인과응보란 주제에 그 구성이 설화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재밌다. 또 220호 석굴의 제왕출행도 는 한족.
    사회과학| 2005.01.20| 8페이지| 1,000원| 조회(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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