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신이 사람을 볼 때 외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무엇입니까?①얼굴- ②몸매③스타일 ④키 ⑤분위기⑥기타-(쇄골,복숭아뼈,느낌등)2.당신이 사람을 볼 때 내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무엇입니까?①배려심- ②자신감- ③지식수준-④성격- ⑤인간관계- ⑥기타-(느낌)3.성형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①매우 긍정적이다- ②긍정적이다- ③잘 모르겠다-④부정적이다- ⑤매우 부정적이다-?4-1.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얼짱, 몸짱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①긍정적이다 ②부정적이다- ③잘모르겠다-4-2.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긍정 : · 자기 만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가치 있는 투자, 좋은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신드롬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잘 이용하면 이익이 될 수 있다.· 외모도 능력이다.· 대중문화 현상일 뿐이다.-자기개발의기회, 자신있는 것은 드러내는 것이 좋다.건강할 수 있다.등* 부정 : · 외모지상주의를 초래한다.·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상품화, 획일화를 불러 일으킨다.· 최고만을 바라는 세태가 부담된다.-자연스러운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미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소외된사람들이 생겨 좌절하게 된다.외모에만 신경쓰다보면 정식적인측면이 나태해질 우려가 있다.상술이다.가식적이다5.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은?①멋진 몸매에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②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 ????③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 ??????????????????????????④편안하게 미소짓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⑤남몰래 선행을 베푸는 사람⑥인류를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⑦해탈을 위해 수도하는 수도승6.미(美)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자면?·자연스러움, 순수함, 영원, 즐거움.·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닌 정식적인 면과도 조화가 잘되는 모습.·보기 편한 것, 자꾸 보고 싶은 것.·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우아함.·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것.·남에 대한 배려와 자기성찰.·항상,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것.·인간을 기분 좋게 하는 유형, 무형의 모든 것.·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자신과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것.·누군가를 몰입 시킬수 있는 것.-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사랑. 선행. 끌리는 무언가. 정신적 여유마음이 따스해 지는 것7.현대의 미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외모, 건강미, 자신감, 개성, 능력, 조화등-타인의잣대. 다양하다. 기준없음. 중성성(양성성). 평범. 인공미
1.센노리큐와 남방록센노 리큐는 십육 세기 무렵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지던 차 마시는 풍습을 다듬고 체계화해서 다도의 경지를 개척한 사람으로 "다성"이라고 일컬어진다. 그이는 다실을 만드는 법, 다도구를 만드는 법, 다도구를 배치하는 법, 차를 대접하는 법 들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이라는 책으로 남겼다.그 책의 들머리에 실려 있는 한 일화에는 다도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미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어느 날 센노 리큐의 제자가 스승에게, 다회를 열 때 주의해야 할 점과 스승이 여는 다회의 비결을 물었다. 센노 리큐는 제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다회를 여는 데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다. 그저 차를 마시는 자리는 여름에는 서늘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야 좋다. 숯불의 세기는 물이 끓을 정도면 좋고, 찻물은 마시기 좋을 정도로 따뜻하면 좋다."무언가 충격적인 말씀을 기대했던 제자는 너무나도 평범한 대답에 성이 안 차서 볼멘소리를 했다. "그 정도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입니다."이에 스승은 다시 말했다. "네 말이 옳다. 그러나 그런 다회를 진행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야. 자네가 내게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게. 나야말로 진정 그런 다회에 참석해 보고 싶네."좋은 다회란 지극히 자연스럽게 소박한 공간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차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도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일 같지만, 정작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다실에서는 찻물을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는데, 계절에 따라 붙박이식 화덕과 이동식 풍로를 구별하여 쓴다. 화덕은 찻물을 끓일 뿐 아니라 난방의 구실을 겸하기 때문에 겨울 동안에만 쓰고, 풍로는 화덕과는 달리 가마솥에만 열을 집중시킬 수 있어서 방안 전체의 온도를 높이지는 않기 때문에 여름에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찻잔이나 꽃꽂이나 벽에 거는 족자를 선택할 때도 계절에 맞추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연장되어 조화를 이루는 곳에 다도의 이상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이 이야기는 오늘날 일본 다도의 기본 규율인 "사규"의 밑바탕이 되는 귀중한 정신이기도 하다.2. 차 문화의 태동과 형성일본 차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기원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신농시대 이전부터 차나무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5천년 이전부터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있다. 춘추시대인 B.C 59년경 전한(前漢)시대의 사천 일대에서는 차가 사대부들의 생활 필수품으로 시장에서 상품화되어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그러나 민간인들에게까지 널리 음용 되기 시작한 것은 당대에 들어서 비로소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송대에서는 생활 필수품으로서 쌀, 소금과 더불어 중요한 물품이 되었다.3. 일본에의 전파와 발전헤이안시대 초기에 들어온 중국의 차 마시는 풍속은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대부분 소멸해 버렸다. 그러나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이르러 당시에 성행하던 송나라와의 교류 때 차는 다시 일본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차나무가 들어온 후, 규슈와 교토로 차는 급속히 퍼져 나갔다. 초기의 차는 대부분 약용이었다. 그것이 기호음료로 바뀐 것은 가마쿠라시대 후기의 일이다. 일본의 남북조 시대에는 투차라는 차 모임이 시민사이에 퍼졌다.오늘날 차를 끊여서 대접하는 예절이나 다도라고 불리는 예도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차를 마시는 문화의 보급과 뒤를 이어서 무로마치 시대로부터 모모야마 시대에 걸친 일이었다. 차와 더불어 중국의 물건을 즐기는 문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거칠고 투박한 중국의 물건보다 따뜻함이 있는 일본물건과 한반도의 도자기와 은둔문화로 연결되는 암자의 풍치에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중세 문화의 요소를 모아서 차를 대접하는 예절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었다. 그것은 와비차, 즉 다도에서 예법보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다도 방식의 탄생이었다.와비차는 일상의 잡기나 한반도의 기물이 뽑혀 와비차의 도구가 되었다. 마침내 와비차는 도구뿐만 아니라 다실, 작업, 가이세키 즉 다도에서 차를 대접하기 전에 내는 간단한 음식인 회석요리 등을 동반하는 여러 형식을 갖춘 문화로 완성되었다.4. 다도의 마음'화경청적(和敬淸寂)'화(和)는 평화(平和)의 和, 인화(仁和)의 和를 나타내고 있다. 和의 마음이 온화한 분위기와 마음의 교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和는 조화(調和)의 和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물 여러가지 요소의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은 감성과 미의식의 원점이다. 다도의 도구에 숨겨진 예술성과 세세한 테마 형식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은 '和의 정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경(敬)은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를 존경함으로서 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생기고 온화한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청(淸)은 청정, 청결을 의미한다. 겉모습은 물론 마음의 아름다움도 중요하다. 또 다도 예법의 여러가지 동작, 도구 취급 방법도 청결해야 한다. 청은 더욱이 정(靜)으로도 통하고 정적(靜寂)이며 고요함 속에서도 침착하게 안정된 모습을 가리킨다.적(寂)은 다도의 미의식을 지탱하는 와비,사비를 가리킨다. 더욱 자신을 알고 만족함을 아는 마음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선(禪)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사려깊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5.다도(茶道)의 다양한 형식일본의 다도는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형식을 띄고 있는데 그 기준은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의 기후이며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시간이 된다.다도의 종류는 쇼고노다(正午の茶), 구치기리(口切り), 요바나시(夜), 유키미(雪見), 하츠가마(初釜), 세츠분가마(節分釜), 하나미(花見), 츠키미(月見), 아사다(朝茶), 나고리(名殘り), 하츠후로(初風爐) 등이 있다.이 중 쇼고노다(正の午) 다도는 낮 12시에 시작하는 행사로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초빙된 손님들은 차실(茶室)로 들어가 손님 좌석에 가서 주인과 인사를 정중히 나눈다.겨울 같으면 난로에 첫 석탄을 넣는 의식(쇼즈미初炭라고 함)이 있으며, 끝난 후 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간단한 따뜻한 음식이나 차를 마시는 의식(가이세키懷石라고함)이 이어진다. 그후 식사를 하게 되며 식사가 끝나면 과자(菓子)를 먹게 된다.과자를 먹은 후 손님은 자리를 떠나 거실로 옮겨 의자에 앉아 쉰다. 이것을 나까타치(中立)라고 한다. 쉬는 동안 차실에는 진한차(濃茶)가 준비된다. 또한 차실에 걸려 있는 장식물 대신 생화가 준비된다. 작은 종소리에 맞춰 손님이 차실로 다시 들어온다. 차실에 걸려있던 장식이나 덧문 등이 치워져 차실은 한층 밝게 된다. 자리에 앉은 후 진한차(濃茶)를 마신다. 진한차는 한 팔로 저어 마시기 때문에 격식을 갖춘 분위기 속에 행해지게 된다. 말수도 적어진다. 다음 난로에 석탄을 넣는 의식(아도즈미 後炭라고 함)이 행해진다. 마지막으로 엷은 차(薄茶)를 마신다. 엷은 차는 느긋한 마음으로 환담하며 즐기면서 마신다.이와 같은 다도가 행해지는 차실의 분위기는 매우 일본적이며 사용하는 찻잔 등의 모든 기구는 하나하나 모양과 색깔이 다르며 매우 일본적이다. 참가자들은 이들을 감상하면서 사비와 와비의 마음을 강화하며 강화할수록 일본인은 하나로 통합되는 단결심이 고조된다.
시마자키 토손(島崎藤村)시마자키토손(島崎藤村)의 생애시마자키토손(島崎藤村)은 1872년 키소(きそ)지방의 대부분을 소유하던 유서 깊은 시마자키 집안에서 태어났다. 토손의 아버지 마사키(まさき)는 학문을 대단히 좋아하던 사람으로 그가 지닌 학문에 대한 열정은 자연스럽게 토손에게도 전해져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경(東京)으로 상경한 그는 집에서 시경(詩經)등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소학교 졸업 후 토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 교사가 많은 기독교 학교를 택해 그곳에서 이국 적정서나 문학적 세계를 배웠다. 그즈음 선배이자 지도자로서 존경하던 키타무라토코쿠(北村透谷)의 자살은 토손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어 사상보다 현실을, 관념보다도 육체를 중요시하는 문학가로서의 길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였다. 그 뒤 새 출발을 위해 기독교 학교인 (東北學院)의 영어와 작문교사로 센다이(仙臺)로 떠났다. 센다이에서의 1년 남짓한 생활은 시인으로서 토손의 위치를 확립시켜 주었다. 최초의 시집인 와카나슈(若菜集)에 수록된 시 대부분이 이 지방에서 지어진 것이며, 이 시집의 출판을 계기로 그의 문학적 세계가 화려한 출발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인이라는 낮은 위치와 경제적 이유로 고모로의숙에서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모로(こもろ)에서의 시기는 토손의 작가의 생애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낭만주의 시인에서 자연주의 소설가로 변하게 하였다. 작가의 단조로운 생활과 문학에만 향하는 그를 이해 못하는 가족으로 인해 그의 가정생활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강한 인내심으로 ‘사물을 바르게 바라보는 일’로서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산문작가로서의 변신을 시도함으로서, 구름을 정교하게 관찰한 그 모습과 다양한 색의 변화를 그리고 있는 라는 산문을 탄생시켰다. 경제고와 교사와 문학가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도우손이 다시 동경으로 돌아와 1905년 가 완성될 때까지는 많은 비극적 사건들과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의 고민이 있었다. 결국 토손은 예술을 택하게 되고 대단한 호평 속에 초판 된지 5일 만에 품절이 되고 관심의 초점이 된 파계는 이제까지 발표된 작품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이 당시의 일본 문단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되었고, 문학사적인 큰 사건으로 취급되어 일본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토손은 조카딸과 맺은 불륜의 관계로부터의 도피로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프랑스 체재에,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문학자들이 보인 애국적인 태도는 그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어 고국을 그리게 되고 모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고뇌 끝에 돌아와 자신이 저지른 불륜의 관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라는 고백체 소설을 발표해 많은 파문을 일으킨다. 말년의 토손은 1936년 국제 펜 클럽대회에 참가한 여행기 를 발표하고, 1943년에는의 모티브를 바꾼 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기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뇌일혈로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시마자키토손(島崎藤村)의 작품세계일본 근대문학의 초기의 대표적인 작가인 토손은 1897년 처녀시집인 를 펴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 작품은 문학계(文學界)에 발표된 것으로 토손 자신의 절실한 체험을 정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연과 방랑을 되풀이하다 마침내 봄을 맞이하는 토손의 청춘에 대한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외에 와 네 권의 시집을 합본한 을 발표한 낭만주의 시인 토손은 첫 장편소설인 를 발표해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는 차별받는 지역 출신인 청년 교사의 고뇌와 재생, 그 비극적인 운명을 전근대적인 메이지(明治)사회와 긴밀한 연관을 두고 묘사한 작품이다. 통렬한 비판과 정확한 현실 파악의 측면에서 사실주의의 정착을 보여주는 선구자적인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받았으며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에서는 지나간 연애와 방랑의 청춘시대를 되새겨 보려는 뜻에서 문학계 시절의 자신과 그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자전체 소설을 만들어냈다. 에서는 세 가지의 봄이 기획되었는데 이상에 버림받고 죽는 청년을 그린 “이상의 봄”과 “예술의 봄”을 찾아다니다 실패하는 청년을, 마지막으로 “인생의 봄”에 이른 청년을 그리려고 했다. 실제로 에서는 “이상의 봄”에 버림받는 청년 작가 키타무라 도코쿠의 일생을 그리고 있고, “예술의 봄”에는 문학계의 동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고, 여러 인생 편력을 거쳐 “인생의 봄”에 도달한 청년의 가정과 아버지의 모습에는 토손의 자전적인 사실이 짙게 나타나 있다. 작품의 후반부터는 그를 둘러싼 가정과 아버지의 문제로 옮겨간다. 은 의 서곡이 되었다고 하는데. 은 1898년부터 1910년까지 만 12년간의 토손의 가정과 그를 둘러싼 생활의 기록을 제재로 삼고 있다. 은 전통과 서양의 물결 사이에서 무너져 가는 가족사를 그린 소설이다. 에서 그린 표면적인 주제는 아버지를 통하여 “고이즈미가”의 몰락사를 그리는 일이었고, 숨겨진 주제로서는 광사(狂死)한 아버지(고이즈미의 아버지)를 매개로 한 동서 문명의 갈등의 역사를 그리는 데 있었다. 여기서의 동서 문명의 갈등에 대해 알려면 “흑선(서양의 배(船))”에 대해 알아야 되는데, 아버지의 광사에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것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아버지를 미치게 한 이상한 정체가 바로 “흑선”이라는 얘기다. 아버지는 국학(國學)과 신도(神道)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인데 서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흑선 그림이 유령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고이즈미가“의 아버지는 밀려오는 서양과의 대결에서 쓰러진 전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토손은 동화집도 발표하였는데, 프랑스에서의 여행체험을 쓴 , 프랑TM 체재 중에 잊지 않고 그리워 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에서 나타내고, 도쿄를 배경으로 작가의 소년 시절을 회상한 등이 있다. 은 토손이 와성한 마지막 장편소설로, 1853년부터 1886년 말까지의 사회 변천을 교토와 에도를 잇는 기소 가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고, 19세가 후반의 과도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선명하게 그린 역사소설이다. 은 ”아오야마가”를 중심 가계로 작품을 전개해 가는데, 토손은 이 가족사를 생생하게 그려 내기 위해 3대에 걸친 인물들을 설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중간세대인 제 2대가 중요시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가족사 소설에는 제1대와 제2대는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다. 제1대는 보수적이고, 제3대는 진보적인 경우가 많은데, 제2대의 인물은 중간 세대의 성격을 띄기 마련이다. “아오야마가”의 “한조“가 이런 인물이다. 토손은 ”한조“를 통해 번민하는 일생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고, 이로써 ”한조“가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일 수 없는 제2대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된다. ”한조“는 그의 가문과 그의 이상인 국학 사상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명문 집안을 이은 처지를 굴레로 생각했으며, 그로부터의 탈출을 꾀하기도 했다. 토손은 시대 변화에 따른 ”아오야마가“의 붕괴 과정 속에서 아버지상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말년에 이르러 동양의 발견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와 에서 토손의 정신 세계가 잘 나타난다. 토손은 에서 동양적인 것이라고 하면 언제나 중국을 바탕으로 깔던 생각에 불만을 품고, 그로부터 탈피를 시도하여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이제까지 보였던 국수적인 면과는 달리, 외래문화 수용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외래 문명에 대한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노트에서는 동서 문화의 접촉과 교통, 혹은 그 교섭에 관계했던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이 나타나 있는데, 특히 동방으로부터 온 이주자들과 ”도조신“)에 대한 흥미가 강하게 보여진다. 도조신은 악령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토손은 길의 악령을 막아서 여행을 지켜주는 이 도조신에게 강한 친밀감을 가졌다. 그래서 현대 문명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 들렸을 때 여행자를 위로하는 도조신이 눈에 띄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고, 그런 미국과는 다른 일본의 도조신을 오랜 문화 축적의 산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토손은 말년에 ”자국적인 세계“의 추구와 자기 문화의 원천으로서의 ”동양“에 대한 열성적 관심의 세계에 도달하여 가장 자국적인 것을 구하는 과정에서 외국 문화와의 접촉을 긍정하게 된다. 동양이란 것은 중국이 아닌 에 그려진 동양적 분위기가 감도는 곳으로 말년의 토손이 도달한 정신의 귀착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층 성숙한 자기 전통의 원천으로서 동아시아적 시야로의 확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파계(破戒) - 혈육의 아버지와 이념의 아버지는 토손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며, 그를 소설가로 세상에 알린 명작이다. 는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아버지의 계율을 어기고 마는 백정 출신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계”라는 말은 원래 종교적인 의미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종교적인 뜻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엄한 훈계를 파계하는 이야기가 중심이고, 아버지의 훈계를 마치 종교의 계율처럼 알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고민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훈계를 둘러싼 부자관계가 중요한 주제가 되어 있다. 에는 세 사람의 아버지와 세 종류의 교사가 등장한다. 세 사람의 아버지는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쓰의 아버지, 딸을 절에 양녀로 맡긴 가난한 아버지 가자마 게이노신, 그리고 양녀로 맡은 처녀를 욕심내는 양아버지 렌게사의 주지이다. 세 아버지는 제각기 다른 성격이며, 얼핏 보기에는 전혀 관계없이 보이지만 천한 계층과 무사와 스님이라는 세 신분이 메이지 유신으로 커다란 충격을 입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시대 변천의 조류를 타지 못하고 점점 “무용의 인간”으로 되어가는데 이들의 이미지는 이제까지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모두 사회적인 실행력을 가지지 못한 존재였다.
결혼은 두 남녀가 서로 만나 함께 살아갈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사회는 두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결혼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인륜적 책임 내지는 규범, 도덕, 등의 이행을 두 사람에게 요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결혼은 한 쌍의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부과하는 모든 규범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와 같이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지극히 사회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결혼에 관련된 다양한 의식이나 제도들은 사회적 풍토나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가 변화 ? 발전하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결혼 풍속도는 그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륜지대사 결혼. 결혼이라는 문화가 일본인에게는 과연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그들의 결혼 풍속도를 살펴봄으로써 일본이라는 사회를 다시 한번 조망해 보고자 한다.1.결혼 대상일본의 헌법에서는 3촌 이내의 친족혼은 금하고 있다. 따라서 4촌간의 결혼은 간혹 있으며 물론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결혼 시기는 중매 결혼의 경우 남자 32세 여자 28세 연애 결혼의 경우 남자 28.2세 여자 25,4세가 평균연령이다. 1945년(쇼와 20년)까지는 남편과 아내는 4살 차이가 보통이었지만, 그 이후는 남편과 아내의 연령이 가까워져서 세 살 차이나 두 살 차이의 부부가 보통이 되었다.2. 결혼 절차일본의 중매 결혼의 경우 맞선에 해당되는 말에 미아이(見合い : 맞선)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중매쟁이와는 다른 의미의 나코도(仲人)라는 역할이 있는데, 나코도는 중매의 역할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중매쟁이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본에서 나코도는 혈연, 학연, 혹은 지연이 있는 주변의 덕망 있는 인사로서, 두 사람의 결혼을 보증하고 상담 역할까지 하는 것으로 우리의 주례와 같은 기능까지 포함한다. 중매인이 되면 두 남녀의 결혼 전반적인 문제뿐만이 아닌 결혼 이후의 생활도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맞선은 나코도의 집에서 양가 부모와 신랑 신부 후보가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애 결혼의 경우 맞선은 볼 필요가 없지만 나코도를 부탁하여 정해두어야 한다. 결혼 대상이 정해지면 유이노(結納) 를 주고 받는다. 유이노의 방식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관동 지방은 남녀 쪽에서 서로 주고받는 와복형이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는 남자 쪽에서만 보낸다. 유이노는 나코도가 예물을 상대방 쪽을 방문하여 전해주게 된다. 한국의 함과 비슷하나 나코도가 정중하게 예를 갖춰 쌍방 모두 전달하는 것이 다르며 내용 또한 다르다. 유이노 비용은 월급의 2, 3배 정도를 적당한 선으로 본다. 돈과 예물과 함께 장수, 백년해로, 발전, 건강 등을 상징하는 장식품을 함께 보내게 된다. 유이노를 위한 전문 상점에서 판매하는데 값은 결코 싸지 않다. 목록과 함께 보내면 받는 쪽에서는 받았다는 수령서를 보낸다. 여자 쪽의 경우 남자 쪽의 반 또는 1할 정도 선에서 답례를 한다.결혼식 당일에는 집에서 신랑, 신부 예복을 차려 입고 각자의 부모에게 그 동안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한 뒤 식장으로 향한다. 결혼식에는 신전 결혼식이나 불교식, 기독교식을 막론하고 식장에 참여하는 것은 양가 가족만 참가한다. 식이 끝난 다음에 피로연석으로 향하는데 일반 하객은 피로연회장에 축의금을 들고 모이게 된다. 단, 피로연장에는 좌석에 이름이 모두 적혀 있어서 미리 통보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피로연석에는 본인의 회사 직원이나 가까운 친지 친구들만 초청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50명에서 100명 선이 일반적이다. 피로연석에서는 나코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인사와 연회가 중심이고 도중에 이로나오시(お色直し)라고 하여 신부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전통의상으로 식을 올린 다음 나중에 서양식 드레스로 갈아입고 등장하는 것이다.◎미아이(見合い : 맞선)자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맞선사진을 찍게 한다. 사진을 친지에게 돌려 좋은 배우자를 부탁하는데 이 때 이력서와 가족내역서, 건강진단서 등을 첨부한다. 부탁받은 사람은 주위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결과 서로 마음이 있으면 맞선을 보게 된다. 맞선 장소로서는 오늘날은 호텔 커피숍이나 조용한 레스토랑을 이용하는데, 메이지시대에는 극장이나 음악회를 이용하는 것이 성행했었으며, 에도시대에는 여자 쪽 집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나코도(仲人)중매인으로서 문중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리하여 문중에서는 배우자를 찾아 상대 집안과의 교제, 맞선 ,약혼 ,유이노(結納) ,혼례식 등을 비롯하여 이후의 부부문제, 고부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역할을 나코도에게 의뢰하는 형식을 취한다.◎유이노(結納)유이노는 결혼의 최종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함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서양식으로 약혼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 전통적인 것은 유이노를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된다. 이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 일본에 전래된 것이다. 약혼 통지를 하는 것이 통상의 관례이지만 최근에는 간략화되는 경향이다. 유이노는 새롭게 인척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같이 먹고 마시는 술과 안주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차차 신부의 액세서리나 돈을 첨가시켜 현재의 유이노는 금봉과 함께 장식하는 것이 되어버렸다.1. 목록2. 나가노시(전복 말린 것을 얹는 종이)건조식품 중에서도 최고의 진미.비린내 나는 것이 경사날에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코소데료『小袖料』약혼을 증거로 주는 돈을 의미한다. 칸토 지방에서는 기모노를 입을 때 쓰는 띠인 오비 에다가 돈을 넣기도 하기 때문에 [오비료]라고도 한다.4. 토모시라가(마로된 실)부부가 흰머리가 될 때까지 살라는 뜻5. 수루메옛날에 장시간 보존 식품이므로 귀중하게 여겨짐6. 콘부(子生婦다시마)자식 운이 있으라는 뜻7. 카츠오부시(勝男節 가다랑이를 짜개 말리어 쪄서 말린 포)축하할 일이 있을 때 많이 썼음8. 스에 비로(末?)하얀 부채-끝이 퍼져나간다고 해서 운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나 헤이안초 시대에남자가 부채에 와카(일본 고유형식의 시)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줬다고 한다.9. 야나기다루버드나무로 만든 통으로 술을 담아 2통을 보냈지만 너무나 고가였기 때문에 돈을 넣어 보내게 되어 현재에도 그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모두 홍백이나 금은색으로 된 끈을 걸 쳐 1~9개를 상위에 올려놓는다.3.일본의 결혼식 유형①신젠식결혼식신젠식 결혼식은 일본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무가에서 행해지던 것으로 339도의 잔을 교환해서 부부의 맹세를 올리게 된 것은 메이지 33년부터이다. 신젠마에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339도의 잔을 교환하는 것이다. 신랑에게 술을 따라주면 신랑은 3번에 나눠 마셔야 한다. 삼삼구도의 잔 교환은 몇번이고 술잔을 교환함으로써 신랑과 신부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부츠젠식 결혼식에서 향을 피우는 대신 타마구시호텐(玉串奉奠)이라 하여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의 가지에 시데(紙垂)라고 하는 하얀 종이를 얇고 길게 자른 것으로 고인의 영을 달랜다고 한다. 타마구시를 올리는 것도 혈연이 짙은 친척순으로 올린다.②부츠젠식결혼식부츠젠식은 불상 앞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선약하면서 선조에게 결혼을 보고 한다. 특별한 예식은 승려가 식의 주례를 본다는 것. 그리고 신랑. 신부가 향을 피우며, 염주를 주고 받는 의식이 있다는 것. 불상 앞에 꽃을 헌화하는 식순이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③진젠식 결혼식진젠식 결혼식은 특정한 신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다. 양가의 종교나 딱딱한 결혼의식에서 벗어나 간단하게 올리는 형태로 친지 앞에서 결혼증명서에 서로 서명하기도 한다. 서약서를 같이 낭독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다지기도 한다. 간단한 식순이므로 10~15분 정도면 끝난다. 피로연 파티장에서 결혼식이 대부분 올려지므로 이동할 번거로움이 없고 천천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④교회식결혼식크리스토교식이라고해도 프로테스탄트, 카톨릭등 다른 종파들도 있지만 원래 신자만이 교회에서의 결혼이 허락되어 있고 특히 카톨릭은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신자가 아닌 경우는 미리 강습을 받거나 교회의 신자중의 소개를 받고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4.피 로 연①유래결혼식이 끝나면 피로연장으로 옮긴다. 피로연장에는 친척 외에 친구나 관계자를 초대 한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 집을 다닌 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밋카요노모치라 하여 두 남녀가 요 위에 정좌로 앉아 떡을 먹고 술을 마시며 식을 올렸다. 식이 올려지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가베시로(璧代)라는 휘장을 연다. 그리고 주위에 가득 모여 있던 사람들이 축사를 보낸다. 이를 도코로아라와시(露顯)라 하는데, 이는 부부가 함께 자는 것을 제 3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자고 일어나 부부를 위한 술잔을 나눈다. 이것이 오늘날의 결혼피로연이 되었다. 오늘날 피로연의 평균 출석자는 80명 정도가 보통이다.②순서1.피로연은 나코도의 인사로 시작되는데 이 때 참석한 이들에게 신랑, 신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다.2.주빈들의 축사, 건배 후 웨딩케이크를 자른다.3.식사가 시작되면서 친구들의 테이블 스피치가 이어진다.4.피로연은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피로연 도중에 신부가 자리를 떠나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다. 이를 오이로나오시(お色直し)라 하는데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다. 최근에는 한창때에 비하면 오이로나오시를 덜 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렇다 해도 신부가 결혼식과 피로연에서 입는 의상은 평균 2.8벌이 된다. 대여임에도 불구하고 요금이 60만엔 가까이 든다.5.마지막으로 친족 대표가 하례객에게 답례인사를 함으로써 결혼식은 끝난다. 이 때 결혼식이 「끝났다.(終わり)」라고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미래가)「열렸다(お開け)」라고 표현한다. 이는 경사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에 끝(終わり), 자른다(切る),다시(再び)등 파국, 종말, 끊어짐, 반복 등과 관련된 말이나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삼간다.
125세까지 걱정 없이 살아라!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과연 사람이 125살까지 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 인간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이 책을 펼치게 했다.사람은 왜 늙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없을까. 인간의 생로병사의 비밀을 연구하는 미국 텍사스 주립대 보건과학센터 한국인 교수 유병팔 박사는 그 대학이 자랑하는 세계적 노화연구소 팀장을 맡고 있으면서 평생 동안 노화연구를 해오고 있는 학자다. 유 박사는 각종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인간은 절식과 운동을 통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매년 1백2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는 세계적 노화연구가인 유 박사는 '사각형의 죽음'을 말한다. 즉 인간의 생리학적 최절정기인 25세 때의 젊음을 죽을 때까지 수평으로 유지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 것. 그는 125세를 보편적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생물학적 천수라고 쓰면서 70, 80세에 죽는 것은 불찰과 노력부족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각형의 죽음' 속에서 살고 있다. 즉 최절정기(삼각형의 꼭지점)에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죽음의 징조(질병, 노화)를 해마다 알리면서 죽어간다는 것. 유 박사는 이 책에서 병 없이 125세까지 사는 비결을 세계 노화 연구학계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나는 지금까지 노화라는 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몸도 늙어가는, 그런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더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었다.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몸의 생리적 기능이 쇠퇴하고, 그에 따라 질병이 생기며, 마침내 죽음을 초래한다. 이것이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인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노화란 결코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노화는 스스로의 불찰과 노력 부족이 빚은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몸의 생리적 기능은 노화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다.그렇다면 몸의 노화를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생리적 기능이 쇠퇴하기 직전의 시기. 즉 성장 절정기의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죽음이란 일정하게 유지되던 생리적 기능이 한순간에 뚝 떨어져 죽음으로 곤두박질치는 때이다. 서서히 노화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25세 청년처럼 125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한순간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노화가 이런 것이라면 사람은 노화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인가. 몸의 생리적 기능이 노화되지 않으며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지 궁금해졌다.이 책에는 또 자신의 생리적 노화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 알아보는 테스트가 있었는데, 테스트 결과 나의 생리적 노화 정도는 세 가지 중 두 번째로 ‘당신의 생리적 나이는 호적의 나이 수준이며 결코 안심할 정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정도로 계속 살아간다면 당신은 결국 일반적인 노화 과정을 밟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라고 써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세 번째 단계와도 별로 점수차이가 나지 않아 나의 생활 습관과 식사 습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솔직히 나는 건강을 위해 따로 운동을 하고 있지도 않고, 음식에 대한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현재 나의 몸에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지만 나의 몸 곳곳에서 활발한 노화가 일어나고 있다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노화를 줄이는 방법 중 인상 깊게 본 방법 중에는 먼저 ‘적게 먹어야 젊어진다.’라는 소식을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소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적게 먹으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소식은 그보다 칼로리를 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또 소식은 성장기가 멈춘 시기부터 실시하는 게 좋다. 어릴 때부터 소식하면 성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얼마나 소식해야 될까.유 박사는 하루 필요한 칼로리의 30% 절식이 가장 효과적인 수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 유념해야 할 것은 갑자기 식사량을 줄이면 무리가 되므로 오랜 시간을 두고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보통 2주 정도면 위가 음식 양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그런데 소식을 위한 적당한 칼로리를 알았다 해도 사실 일일이 칼로리 양을 계산하면서 식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유 교수는 이에 준하는 식사의 한 방법으로 옛날 우리 서민들의 밥상을 권했다. 잡곡밥에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몇가지 나물, 생선 반찬이 곁들여진 소박한 밥상 말이다. 결코 고기나 기름진 음식이 없는 옛날 우리네 밥상이야말로 건강식의 표본이라는 것.“우리 전통식은 칼로리도 낮을 뿐더러 채소나 두부 된장 등이 주류를 이루는 측면에서 건강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식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더 이상 우리의 식탁이 서구 음식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전통식을 즐기는데 있어서도 너무 짜고 매운 음식습관은 나쁘다는 것을 꼭 지적하는 바입니다.”유 박사는 전통식 밥상과 더불어 노화 예방과 장수를 위한 효과적인 소식의 필수조건으로 몇 가지를 지적했는데 대표적인 것을 보면1.과일과 채소는 젊음을 지켜주는 보약우리 몸을 늙고 병들게 하는 독성 산소로부터 보호하기위해선 비타민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즐겨먹는 것이 곧 최장수건강법이다.2.남성은 철분이 많은 음식은 피한다.보통 철분은 몸에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이와 달리 성장기 이후엔 철분이 독성 산소의 반응을 촉진해 장수를 저해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남성은 생리로 매월 철분을 배출하는 여성과 달리 철분이 지속적으로 몸속에 쌓이게 되므로 우유 등 철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도록 한다.3.생선을 통해 불포화지방산을 먹는다.지방의 과다섭취는 노화를 촉진하고 수명을 단축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방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그 가운데는 꼭 섭취해야 할 필수 지방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양도 줄여야 하고 포화지방산보다는 불포화지방산을 먹도록 해야 한다. 불포화지방산은 등푸른 생선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하지만 생선을 튀겨 먹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4.육식주의자는 닭고기를 즐겨라야외에 나가 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삼겹살은 어찌보면 독성 산소로 인한 노화를 촉진하고 동맥경화의 유발요인인 포화지방산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유박사는 만약 고기가 먹고 싶다면 닭고기를 먹을 것을 권한다. 닭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단백질 양은 비슷하면서 닭껍질만 피하면 지방은 적기 때문이다. 이때 닭고기는 튀김보다는 조림 요리로 해 먹으면 더욱 지방을 줄일 수 있다.5.요리엔 올리브 기름을 사용한다.요즘 주부들 중엔 서구 식습관을 쫓아 요리에 버터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못된다. 따라서 기름을 사용할 경우엔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을 쓰도록 한다. 또 올리브 기름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데 어떤 식물성 기름보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고 보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외 올리브 기름은 심장병 예방과 항암효과도 증명된 바 있다.6.샐러드를 먹을 때 드레싱을 첨가하지 않는다.셀러리나 양상추 등을 먹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요네즈나 아일랜드 드레싱 등을 찍어 먹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채소를 먹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드레싱엔 지방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채소는 그냥 먹는 것이 가장 좋으며, 맛이 없어 먹기가 힘들 때는 식초를 곁들여 먹거나 고추장 등을 찍어먹는 것이 좋다.7.튀김음식은 절대 피한다.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단을 보면 생선이나 채소, 고기 등을 튀겨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건강에 극히 안 좋은 요리법이다. 따라서 오늘부터라도 주부들은 되도록 식탁에 기름을 이용한 요리는 안올리는 것이 가족건강을 지키는 일이다.이런 몇 가지만 봐도 나의 평소 생활이랑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육식을 좋아하고 생선은 별로 안 먹는다. 올리브유보다는 버터를 즐겨먹고 샐러드에 드레싱을 듬뿍 얹으며, 튀김 음식 또한 좋아하기 때문이다. 신경을 쓰지 않는 사이에 나의 몸은 얼마나 노화됐단 말인가.‘소식’에 이어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오래 산다.’였다.유 박사는 적당한 운동방법의 하나로 몸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운동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걷기’를 권장한다. 먼저 시작 단계에는 한달 정도 걷기를 해 어느 정도 몸이 적응되면 빨리 걷는 ‘속보’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속보’는 그냥 걷는 것보다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이 많아져 체중조절에도 도움이 되고 근육도 단단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