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시와 그 역사인식 연구< 차 례 >Ⅰ. 서론1. 연구 목적과 방법2. 연구사 개관Ⅱ. 이육사의 삶과 사상1. 시대상황과 육사의 삶1) 시대상황2) 육사의 삶2. 육사의 산문과 사상Ⅲ. 이육사의 시세계1. 육사 시의 내용1) 고향상실과 유랑2) 비극적 현실인식3) 교향회복의 의지2. 육사 시의 내용1) 형식적 특징2) 시어의 상징성Ⅳ. 이육사의 시와 역사인식Ⅴ. 결론◆참고문헌Ⅰ. 서론1. 연구 목적육사 이원록은 우리의 근대사를 치열하게 살다 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1930년대 민족의 시인, 지절(志節)의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처음부터 남다른 시인이었다. 첫 출발이 문학이 아니고 독립운동이었다. 짧은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다가 결국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이다. '육사'라는 호는 그가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그가 불굴의 투사이면서도 시인일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죄수 번호를 아호로 삼는 풍류(風流)와 정신의 여유를 이념 및 의지와 함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는 뚜렷한 습작기가 없었다. 원래 목표가 문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창작을 위한 수업이 거의 없었다. 대개 중학교 과정에서 뚜렷이 알려진 것이라고는 독립군 양성의 군관학교의 북경대학 사회학과 수업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연령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면 문학 수업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육사의 문학 수업은 그의 독립운동과 더불어 그때 그때 감회를 시로 적지 안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무렵의 시는 애국을 향한 현실의 고발이었다. 남들처럼 조용한 시간에 명상의 시를 쓸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의 문학은 순수문학이라기 보다 행동의 문학이었다. 육사시가 처음 시단에 보여진 것은 그의 나이 30세 이후였다. 1933년 『신조선(新朝鮮)』에 「황혼」이 발표된 것을 필두로 『개혁』, 『조광』, 『풍림』, 『인문평론』, 『문장』등에 많은 시가 발표되었다. 이 무렵에 쓴 시가 20여편이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황혼」, 「청 1920년대의 독립군 활동을 계승한 1930년대 이후의 무장투쟁은 보다 올바른 조직, 정치노선과 물적, 대중적, 토대를 마련해 가면서 만주와 연해주 등지의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싸워 나갔다. 이들은 주로 사회주의를 이론적 토대로 하면서도 민족해방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제와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만년에 육사도 이러한 어느 무장투쟁조직에 가담하여 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2) 육사의 삶육사의 시 세계와 시 정신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또한 앞에서 파악한 시대상황에 맞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육사의 40년 삶을 살펴 보아야 한다.육사는 1904년 음력으로 4월 4일에 태어나서 1944년 양력으로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운명했으니 그의 생애는 39년 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일생의 후반을 그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중국을 왕래하고 형무소와 유치장을 드나들며 보냈다. 그러나 그가 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이었으니 육사는 시인이기에 앞서 투사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생애와 사상 등은 주로 가까운 친지나 친우의 회고담을 바탕으로 정리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정확한 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고, 그가 남긴 글을 검토하여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널리 인정되는 육사의 삶을 그의 성장과 행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① 전기 (출생-20세) : 1904-1924② 중기 (21세-30세) : 1925-1934③ 후기 (31세-40세) : 1935-1944전기는 성장 교육기로서, 육사는 1904년 음력 4월 4일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동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3대 손인 이가호(李家鎬)와 의병장 허형(許衡)의 딸인 허길(許吉)사이에서 5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유복하게 보낸다. 처음 이름이 원록(源錄) 또는 원삼(源三)이고, 뒤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며,에서 기득권을 가졌던 그가 속한 계층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육사에 있어서 반외세, 반제국주의적 입장은 뚜렷하나, 반봉건적 입장은 약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산문들을 검토해 보면 육사의 정신과 사상의 모습과 변모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Ⅲ. 이육사의 시 세계1. 육사 시의 내용이제까지 육사가 살았던 시대상황, 육사의 생애, 산문을 통해 드러난 육사의 정신과 사상의 변모과정 등을 살펴보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육사의 시적 인식과 대응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 있는지 알아보자. 그의 시 속에 드러난 내용이나 의미 등을 종합하여 고향상실과 유랑, 비극적 현실인식, 고향회복의 의지,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1) 고향상실과 유랑육사의 시에서는 고향의 상실과 그로 인한 유랑의 모습이 중심주제로서 자주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 문화적 양식이란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동양적이고 유교적인 지배질서의 규범과 경험이다. 여기에서 사대(事大)의 대상은 군(君), 부(父), 부(夫)는 동격에 놓여지는데, 우리시의 전통이 하나로 이야기되는 여성주의는 군(君)을 부(夫), 곧 님으로 자리바꿈하여 님의 상실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용운, 김소월 같은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 시인들도 님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시의 여성주의라는 전통의 흐름에 잇닿아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육사의 시는 군(君)이 부(父)로 자리바꿈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 주면서 남성적이고 웅장한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다음의 시를 보자너는 돌다리목에 쥐왔다.」든할머니 핀잔이 참니라고하자나는 진정 강(江)언덕 그마을에버려진 문바지였은지몰라?그러기에 열여덟 새봄은버들피리 곡조에 부러보내고첫사랑이 흘러간 항구(港口)의 밤눈물섞어 마신술 피보다 달드라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했나?바람에부처 도라온 고장도 비고서리밟고 걸어간 새벽길우에간(肝)입만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해도쇠사슬을 잡어맨듯 무거워졌다눈우에 걸어 비추어 보여 주는데, 특히 백조의 자유로운 날개짓은 갇히고 멈추어진 상태의 호수를 더욱 뚜렷이 대비시켜 준다. 흐름을 빼앗기고 어둠에 뒤덮여 '이중으로 갇힘 상황'에 대한 인식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무력한 자신과 이의 극복의 어려움을 깨닫는 비극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매운 계절(季節)의 챗죽에 갈겨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빨 칼날진 그우에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하나?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 -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비극성'의 개념으로 접근되고 평가된 시다. 특히 육사의 시 가운데서도 형식과 내용의 특징이 잘 조화된 대표작 중의 하나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시의 흐름을 보면, 1·2·3연은 화자가 처한 상황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함께 점층적으로 드러나 있고, 4연에는 상황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대응이 나타나 있다. 이 시의 4연으로 이루어진 4단 구조가 한시의 기승전결의 구조와 비슷한 점이 있음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1연에서 화자의 상황이 '쳇죽에 갈겨', '휩쓸려오다'라는 수동적 피동형으로 표현된 것은 밖의 세계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괴롭기 때문에 자신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화자가 처한 현실은 한계상황 즉 '하늘도 지쳐 끝난 고원'이다. 모든 이상과 진리와 희망의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화자는 3연에서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고 한탄한다.이러한 한계상황 아래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행위는 눈을 감고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의 내용이 곧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이다. 여기에서 '겨울'은 바로 1·2·3연의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한계상황을 상징하는 시어이다. 그렇다면 그 시어와 동격으로 놓여 내용이 되는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찾고자 하는 고 관복'이라고 적혀 있다. 그 사전적인 뜻풀이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평자들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많은 답안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 중의 한 답안에는 '내 고장 칠월을 양력으로 치면 8월이 되니까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바다에서 온 청포 입은 손님은 우리에게 광복을 가져다 준 미군 병사들'이라고 한 어느 국문학자의 예언설까지 있다.하늘과 전설이 청포도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처럼 청포 입은 손님은 내게로 오는 것이다. 그것을 우선 음운적 층위에서 보면 '청포'는 '청포도'와 음이 같다. 글자 하나가 틀릴뿐인 것이다. 그리고 색채 이미지 역시 같은 청색 계열이다.이 시의 전체 기조색이 청색인 것이다. 하늘도 바다도 전설도 모두가 청포도와 같은 푸른 색조이므로 그 손님의 옷이 청포라는 것은 조금도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청색은 흰 돛이나 마지막의 은쟁반, 그리고 모시수건 같은 백색 계열과 대응하는 중요한 색채적 이미지를 자아낸다.이를테면 음성이나 영상으로 보면 왜 하필 청포인지 금세 납득이 간다. 다만 소리나 영상의 감각적 기능과 어울리게 되는 관념(이미지)의 부분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의 구조를 결정하는 삼각형의 꼭지점들의 변화를 보면 된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삼각형의 구조를 앞의 것과 비교하는 청포 입은 사람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저절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에서 우리는 보는 포도, 상상하는 포도가 마지막에는 따먹는 포도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 1의 삼각형은 내고장 칠월의 청포도이고, 제 2의 삼각형은 하늘과 전설로서의 우주적 청포도, 그리고 제 3의 삼각형은 따먹는 청포도.'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의 마지막 시행을 놓고 생각해 보자. 공간의 꼭지점은 마을→하늘→바다에서 식탁→은쟁반으로 응축되었다. 시간은 아득한 옛날의 전설에서 '마련해 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