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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합리주의 철학자중 스피노자에 대한 개론
    합리주의 철학자중 스피노자에 대한 개론{목차들어가는 말- 왜 지금 스피노자인가?기하학적 방법스피노자의 철학에 영향을 미친 다른 철학 사조들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해석들나가는 말- 스피노자가 남긴 것들어가는 말- 왜 지금 스피노자인가?합리론, 합리주의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데카르트 때로부터라는 것을 부정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합리론은 영국의 경험론과 함께 17∼18세기를 통하는 하나의 코드였다. 인성 중심의 사고가 아닌 이성 중심의 사고{) 경험론과 합리론에 대한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부적합한 용어일 수도 있겠으나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정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와 철학을 이끌어 내는데 대한 데카르트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소위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륙철학 에 있어서 데카르트는 그 당시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고, 누구나 한 번쯤은 다루어야 하는 주제가 되었다. 위대한 사상은 시간에 의하여 빛을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도 데카르트를 다루는 많은 철학도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데카르트가 아닌 스피노자이다. 데카르트의 경우, 철저한 이원론자 였다. 이성과 신체를 분리하고, 神과 人間을 분리하여 궁극적인 이성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를 정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반면, 스피노자의 경우 이러한 이원론을 따르지 않고 궁극적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즉, 그는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적인 사유를 위한 사유보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 합리론의 맹점이다. 이성적 사유만이 인간의 궁극적 목표로 이 를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스피노자의 실천을 위한 사유가 더 타당한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지금 스피노자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유이다.기하학적 방법{) 이후 몸 말에서 다루는 소제목은 F. 코플스톤 지음, 『합리론』, 김성호 옮김, 서광사, 1998. 에 나와있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할 소제목과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스피노자의 철학에 있어서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실체이며 이는 곧 자연과 동일하다는 주장, 즉 이 실체는 신 또는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주장이다.”{) 몸 말의 주된 내용은 F. 코플스톤 지음, 『합리론』, 김성호 옮김, 서광사, 1998.의 요약과 거 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스피노자의 경우 유태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유태인식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을 펴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신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인 신을 찾는다면 오직 전체로서의 자연 그 자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상봉, 『호모 에티쿠스- 윤리적 인간의 탄생』, 한길사, 1999, P.199.그의 대표적인 저작 《에티카》를 보게 되면 정의와 공리로 증명하려고 하였고 각각의 공리마다 (Q.E.D.){) “이 점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었다”라는 뜻의 Quod erat demonstrandum의 약자.라는 문자를 사용하여 증명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사실 철학적 용법이라고 하기보다는 기하학적 표현기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절에서 다루기로 한다.스피노자의 철학에 영향을 미친 다른 철학 사조들데카르트 주의가 스피노자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으며 최소한 스피노자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도구의 역할을 하였음은 거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맹목적인 수용이 아닌 도 구적 선택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우선 데카르트주의는 그에게 이상적인 방법론을 제공하였고 두 번째로 스피노자가 사용한 거의 모든 전문용어들은 데카르트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 번째로 몇몇 특정한 논점들을 다루는 것에 비추어 보아도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로부터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네 번째로 데카르트주의는 스피노자가 자신이 다룰 문제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그러나 스피노자가 아무리 데카르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할 지라도 스피노자의 일원론이 데카르트의 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다. 데카르트는 결코 일원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일원론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히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스피노자주의가 데카르트주의를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재해석한 결과로 받아들여졌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여기에서 주지해야할 점은 이론적인 관점에서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의 철학을 반영하여 발전시켰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타당하게 보일지라도 그의 모든 사상이 데카르트만을 참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스피노자가 최소한 데카르트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기 이전부터 몇몇 유태교 철학자들의 저술을 연구함으로써 범신론적 일원론의 경향을 보다 앞서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다. 사실 그가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유태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피노자는 유태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유태인이 라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했으며 결국 그는 파문 당한다. 유태인 사회에서 파문이란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말하는 것으로 그를 만약 죽이더라도 살인이 아닌 가축을 죽인 것과 같 이 취급된다. 즉, 그는 자신을 버림으로써 자기 사유의 날개를 얻은 셈이다.그러나 그는 마이모니데스{) 유태계(系)의 철학자 ·신학자 ·의학자 ·천문학자.에 반대하여 성서에서 철학적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몇몇 단순한 진리를 제외하고는 철학적 진리들은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진정한 철학과 성서사이에는 어떤 중요한 모순점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이다.이처럼 그는 카발라 철학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인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준 또다른 사상적 근원은 그가 범신론적인 경향을 지닌 르네상스기의 철학자들에 대하여 연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의 서가에 있었던 책들의 목록에서 조르다노 브루노{) 르네상스 사상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의 저술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논문집》의 몇몇 대목들을 보면 그가 브루노의 철학을 알고 있었으며 브루노의 철학이 젊은 시절의 스피노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브루노는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중요한 특성으로 등장하는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 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所産的 自然, natura naturata){) 능산적 자연관은 자연을 역동적이고 합목적적인 것으로 본 아리스트텔레스에서 유래한 관점 이다. 현대생물학에서 목적론적 의미를 가진 진화론은 능산적 자연관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소산적 자연관은 자연을 조물주가 이데아, 즉 수학적 조화의 원리에 따라 만든 완성품이라고 본 플라톤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자연관이나 기계적 결정론은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능산적 자연은 창조자로서의 신을, 소산적 자 연관은 창조되는 자로서의 자연을 의미했지만, 스피노자는 이 두 개념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더 밀접하게 연관시켜서 범신론적 의미를 부여한다. 능산적 자연은 자 기자신 안에 있고 자기자신에 의해 생각되는 실체, 즉 신을 의미하고, 소산적 자연은 신적 본 성의 필연성에 의해 생기는 실체의 여러 변화상태, 즉 양태를 의미한다.『서양근대철학』(서양근대철학회, 창작과비평사)의 용어해설 중에서사이의 구별을 이미 제시하고 사용하였다.스피노자가 유태교 철학자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자연 철학자들을 탐구함으로써 어느 쪽에 더 큰 영향을 받았는지는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단지 데카르트의 사상에 대한 반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단 한번도 데카르트 주의자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한다.스피노자는 분명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철학자들이 스피노자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분명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가 그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역사적으로 탐구한다고 해서 그의 사상이 지니고 있는 강한 독창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해석들스피노자가 데카르트 철학의 일부를 더욱 기하학적으로 해석하였음을 우리는 그의 저서 《에티카》를 통하여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의 외부적인 형식에 그리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음은 거의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참된 철학은 기하학적 장식물이나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릇된 철학이 기하학적인 형식으로 제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단지 기하학 적인 방법의 외형만을 고려할 때 스피노자가 이를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은 사실이다.
    인문/어학| 2005.01.26| 6페이지| 1,000원| 조회(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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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콘트라베이스 에 나타나는 소수의 특징
    『콘트라베이스』에 나타나는 소수의 특징들어가면서......우리는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현대는 디지털의 시대로써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과거보다 손쉽게 접하며 그 정보를 나름의 기준에 의하여 취사 선택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대에 문학작품 또한 과거와는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인터넷 소설이라는 것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텍스트로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지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텍스트 문학에도 신경향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소수문학」이라는 장르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문학에 대한 정의와는 사뭇 다른 글쓰기, 즉, 샤르트르가 말하는 통의적 글쓰기{) 김현/金柱演 編, 『文學이란 무엇인가』, 문학과 지성사, 1995.의 내용 中 샤르트르의「作品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35p.∼53p.)를 참고할 것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것에 대해 수많은 작품 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콘트라베이스』를 중심으로 그 작품에 나타난 소수문학적 특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왜 콘트라베이스인가?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콘트라베이스』, 이 작품은 나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려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어눌하다고 하기에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듯한 글쓰기 방법{) 이 글이 모노 드라마를 위한 시나리오라는 장르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 실이지만, 그 보다 작가의 개인적인 성격과 성향이 작용했다고 보여진다.은 여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는 어느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 이하 콘트라베이스는 베이스 라 표기한다.를 연주하는 한 연주자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주지하다시피 베이스 는 어떤 악단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파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것을 연주하는 사람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워 부각시킨다. 잠시『콘트라베이스』의 내용을 살펴보자.오케스트라는 정기적으로 같은 단체에 속한 오페라단의 반주를 맡고 있다. 그 오페라단에 '세라'라는 이십대 중반의 소프라노가 들어왔다. 이미 30을 넘긴지 오래이며 크기만 하고 아무런 특징이 없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그로써는 그 여인과 눈길조차 마주칠 기회를 갖지 못한다.아무리 생각해도 울림이 둔탁하고 볼품없이 크기만 한 콘트라베이스와 항상 높은 음역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와는 어울릴 수가 없다. 그는 언제나 첼로와 화음을 맞추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연주해도 보아주는 사람은 없다. 청중은 지휘자나 독주자에게는 시선을 주지만 콘트라베이스 주자에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지휘자도 콘트라베이스는 관심 밖이고 심지어 옆에 앉은 동료조차 자신의 진지한 연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콘트라베이스와 소프라노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맨 앞에 서는 소프라노와 맨 뒤편에 앉은 콘트라베이스는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콘트라베이스와 소프라노가 함께 연주할 음악도 없었다. 그는 도서관을 뒤져 콘트라베이스와 소프라노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두 곡의 가곡을 찾아낸다. 물론 작곡가는 알려지지 않은 요한 슈페르거라는 사람이다.그러나 오페라단의 신입 소프라노인 세라는 항상 자신과 떨어져 있다. 세라는 구내 식당에 들리지도 않으며, 들렸다 하더라도 항상 사람들에 둘려 쌓여 그가 접근할 틈은 없다. 세라는 항상 값비싼 음식점에 초대되어 50이 넘은 테너와 식사를 한다.콘트라베이스 주자는 `파르지팔'에서 꽃파는 소녀를 보며, `나비부인'에서 시녀를 바라보며 점점 짓눌리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라는 연주가 끝나고 그를 초청한 아무개와 함께 유유히 고급 음식점으로 사라져버리고,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방음장치가 된 방에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한 음조차 반주해주지도 못하는 볼품없이 커다란 악기를 손에 잡고 가슴저린 밤을 보낸다.이제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힘겨운 결심을 한다. 평생 보장된 직장도 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터져오르는 심장을 붙잡아 둘 수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독백을 한다." ... 모두들 잔뜩 긴장을 하고 무대의 커튼 박스 뒤에서 '라인의 황금'에 등장할 세 아가씨들이 말뚝처럼 굳은 채 부동자세로 서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오케스트라 맨 뒷 줄에서, 정확히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순간에,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사나이의 심장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외침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세 -- 라!!! "{)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콘트라베이스』, 유혜자 옮김, 도서출판 열린책들, 1996, 87p.∼88p.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엄청난 반응이 있을 것에 다소 흥분을 하며, 그 다음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갈 꿈에 젖는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그나마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용기가 있을지 망설인다.이제 연주 시간이 다가온다. 그는 슈베르트의 오중주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연주회장으로 향한다.{) http://user.chollian.net/~flumen/602.htm어찌 보면 참으로 단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스 연주자의 생각과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녀를 향한 모험의 결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작품에서 무엇이 그의 글쓰기를, 그의 작품을 특징지어 주는가? 그것을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했다시피 베이스 연주자를 통한 그의 삶을 보여 주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오케스트라에서도 그는 소외된 사람이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우리는 이 것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이 소수 문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싶다.-『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에게서 나타나는 소수적 특징이 작품의 주인공은 베이스 연주자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그리 만족하지는 않지만, 베이스 를 연주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한 해의 전 연주기간 동안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다 합해도 그렇게 많은 숫자의 인원은 되지 못할 겁니다. {) Ibid., p.63"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졌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얻으려면-지금 단어의 정의에 입각해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만 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제1바이올린이 없거나, 북이 없거나, 트럼펫이 없거나, 그밖에 다른 악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있습니다. 그러나 베이스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 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 Ibid., p.9위의 대사처럼 그는 베이스 를 연주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만 그 직업에는 그리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것이 소수문학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극중 화자의 대사야말로 우리네 소시민의 일상과 친밀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영 오케스트라의 정식 단원인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자신이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 데에 항상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지휘자나 독주자는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다른 악기들도 독주 부분이 나올 때면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는 아무도 그 중요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사실 그가 콘트라베이스를 택한 것도 우연이었고,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다.그는 콘트라베이스의 중요성을 항변한다. 브람스 교향곡2번에서나 슈베르트 교향곡 8번에서 처럼 콘트라베이스의 활약이 두드러진 역할을 얘기하지만 자신이 처한 위치는 변함없이 오케스트라의 뒷자리이고, 어쩌다 콘트라베이스가 초대되는 드보르작 5중주나 베토벤 8중주 등과 같은 실내악에서도 자신이 차지할 위치는 없었다. 그 보다 더 뛰어난 몇 명의 연주자가 독점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콘트라베이스 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슈베르트 5중주도 그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그는 다만 일개 오케스트라의 평범한 단원일 뿐이다.그의 방은 방음이 되어 있다. 콘트라베이스의 크고 둔탁한 소리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방음 잘된 방에서 홀로 연습할 뿐이다. 그러한 방에서 그는 새로 입단한 오페라단의 소프라노 세라를 생각한다.확실히 세라는 그에게서 너무 먼 존재이다. 그는 세라가 바라볼 수 없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데다, 세라는 지휘자의 얼굴과 관중만을 바라본다. 수석 바이올린 주자를 바라볼 때도,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베이스를 힘차게 연주하여도 세라도 지휘자도 관중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옆의 동료조차 자신의 열정적인 연주에 관심이 없다.그는 관습과 인습에 억눌려 콘트라베이스의 위치가 그렇게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항변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며, 자신이 처한 생활이 변화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가 세라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저항할 만한 실력과 부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세라는 스타들의 식사에 초대되어 값비싼 음식점에 간다.
    인문/어학| 2005.01.26| 5페이지| 1,000원| 조회(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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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 중국적 사유의 원형
    『중국적 사유의 원형』으로 중국 철학 엿보기{목차들어가면서- 중국, 중국?주역중용나가면서- 중국, 중국!들어가면서- 중국, 중국?“한 처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은 깊은 물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대한 성서 공회 번역, 『공동 번역 성서 (가톨릭용)』, 대한 성서 공회, 1989.창세기 제 1장 1절∼2절까지의 기록이다. 이처럼 기독교 적인 서구 사상에서는 천지 만물의 생성이 神적인 존재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동양의 사상에서는 어떠한가? 동양이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다. 중국으로 압축해 보자. 중국에서는 천지 만물의 시초를 무엇으로 보았는가? 우주의 운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엄청난 양의 서적을 봐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우리 삶에 존재 하지만 그 존재 가치의 시초를 살펴보는 일에 지금 우리 자신이 너무 등안시 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철학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 그러니까 천지 만물의 行을 다루고, 인간 삶의 가치를 알려고 무던히 노력한 흔적이 고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중 우리는 周易과 中庸이라는 두 가지 텍스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역은 앞에서 말한 우주의 근본 원리를 밝혀 보고자 하는 서적이고, 중용은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도리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 원문을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보고 싶고, 풀어헤치고 싶지만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더욱이 중국 철학과 같은 학문은{) 중국 철학뿐만이 아니라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과 달리 구체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닌 매우 추 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이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 깊이가 나 같은 淺學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이러한 때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이 두 서적의 맥을 짚어 나가는 길잡이와 같은 책을 만났으니 그 것이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어야 할『중국적 사유의 원형- 주역과 중용을 중심으로』{) 박정근, 『중국적 사유의 원형- 주역과 중용을 중심으로』, 살림, 2004.라는 책이다. 이 책을 중심으로, 나아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주요 과제인 주역과 중용으로의 여행을 잠시나마 떠나 보자.주역주역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ㅡ. 이 두 가지의 爻로써 우주 만물의 모든 이치를 파악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爻 들로 이루어진 卦를 풀이한 말들을 보면 어찌 그리도 혼란스러운 말들로만 이루어져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찌하여 꼭 뜬구름 잡는 듯한 말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책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담을 수 없고, 말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다 펴지 못한다. 그러면 성인의 뜻을 알 길이 없는가? 공자가 이르기를 ‘성인은 상을 통해 그 뜻을 나타내신다’고 하였다.”{) Ibid., P.14. 原註 3) 재인용.이 우주의 원리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책이나 말로써는 온전히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공자와 같은 성인도 이렇게 판단할 진데 나 같은 사람은 그럼 이 卦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한 영원히 이 의문점을 풀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답은‘그렇다’가 될 것이다. 우주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오만이고 광오한 것이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알아야 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듯 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어려울 수도 있다. 주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개념을 파악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爻나 卦를 풀이하는 것만이 주역을 이해하는 능사가 아니다.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 이 주역이 다루고자 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겠다.太極이라는 개념이 있다. 無極而太極이라는 말로 주돈이는 道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道의 개념은 儒家적 개념이라기 보다 道家적 개념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물 론 주돈이는 유학자이지만 그 역시 도가의 道의 개념을 유가적으로 풀어 보고자 했던 학자이 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가적 道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주역에서 가지는 太極의 의미가 더욱 명 확해 질 것이라고 본다.태극의 개념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老子가 설명하는 道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인데 어찌 말로써 다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간단히 이야기 할 요량이면 더 없이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도 또 이런 太極의 개념이다. 만물이 서로 相生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相剋이면서 相生한다는 개념은 이 太極의 개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이 또 이지러지면 차는 것이 자연의 본분이자 숙명이라는 말이 이 太極이라는 것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無極而太極 이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단어의 조합으로만 본다면 이처럼 모순이 되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극이 없는 것이 태극이다’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無極과 太極이 가지는 함의적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太極은 相生한다. 또한 相剋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太極의 始原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며 있다가도 없어지고,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없으므로 太極과 無極은 동일하다고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이 수많은 시간 동안 연구한 바가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 다. 다만 여기에서는 필자가 느끼기에 그리고 필자 생각에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적은 것이다. 수많은 현인들이 다루었던 문제를 필자가 또다시 다룰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 냥 이런 이론도 있구나 하는 선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자세한 고증은 이 문제를 다루었던, 또 다루게 될 학자들에게 무책임하게 전가한다.이 책에서는‘달’을 인용하여 주역의 爻와 卦에 접근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역에 대한 가장 중요한 말은 주역에 대한 개념의 정리나 그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에 주어진 명제가 더 중요하다. “손가락을 통해 달을 바라보기”라는 명제이다. 현인들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며 ‘저 달을 보아라’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는 달이 아닌 손가락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진리를 꿰뚫어 보기는커녕 그 것을 가리키는 도구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것이 손가락이 아니라 지팡이가 될 수도 있고, 발이 될 수도 있고, 술잔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리키고 있는‘달’이지 무엇으로 가리키는 것인가가 아니다. 주역도 마찬가지이다. 주역이란 성인의 뜻을 알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도구에 너무 빠져들어 정작 중요한 성인의 뜻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중용『중용』은 유가(儒家)의 인생철학(人生哲學)으로서 그것을 밑받침하는『주역』의 역철학(易哲學)과 함께 유가 철학의 체계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역철학에서 밝히고 있는 존재관과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삶의 의미를 맛보며 그 길을 가는 사람, 곧‘된사람[군자(君子)]’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중용』이다.{) 박정근, 『중국적 사유의 원형- 주역과 중용을 중심으로』, 살림, 2004, P.58.라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빙산의 비유를 들어『중용』이 대해에 떠 있는 빙산 중 보이는 부분이라면 역철학은 바닷물 밑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Ibid., P.58.주지하다시피 빙산의 보이는 부분은 전체에 2%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이 것은『중용』에서 말하는 君子가 되려면(혹은 이루려면) 주역의 사상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말로 풀이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하다.저자는『중용』을‘낮고, 또 크지도 않지만, 그 떨림에는 천고(千古)의 세월이 베어 있는 듯한’장중한 소리{) Ibid., P.58.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중용』에서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잘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높고, 큰 소리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매우 둔감해 지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05.01.26| 5페이지| 1,000원| 조회(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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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 장자(莊子)-응제왕(應帝王)편 에 대한 작은 생각
    장자(莊子)-응제왕(應帝王)편 에 대한 작은 생각들어가는 말장자의 7편 응제왕 편은 내편중 마지막 장이다. 여기서는 진정한 왕의 도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왕, 다스릴 수 있는 자의 진정한 덕목은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12가지 이야기로서 장자는 풀어나간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 이야기마다 하고자 하는 말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풀어 가는 말1번 이야기는 설결(齧缺)이라는 사람이 왕예(王倪)에게 4가지 질문한 것에 대하여 왕예가 4가지 모두 모른다고 하는 것, 그리고 설결은 그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 매우 이상한 일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 것이 과연 지금의 상식에 맞는 일인지 의문이 간다. 물론 이러한 보이는 것을 놓고 참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라는 숨겨진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장자는 정치라는 상황을 단지 참 깨달음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정치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기술로서가 아닌 자연이 이끄는 데로 이루어지는 것을 참 정치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2번 이야기는 정치 지도자가 여러 가지 제도나 법만을 사용하는 것이 바른 정치인의 자세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이 바로 서는 일 이 우선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거짓 덕으로는 잠깐 사람들 위에 설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양날의 검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3번에서는 무명인을 등장시켜 다시 한번 정치의 도를 이야기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강압적인 정치인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자기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일이 참된 정치인의 자세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4번 이야기는 위정자가 꼭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니 장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어서는 않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재주 때문에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사람들이다. 장자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위정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비단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새겨볼 사항이라고 생각한다.5∼9장에 이르는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시리즈 물이다. 용한 무당에게 혹 한 열자라는 인물에게 그의 스승인 호자가 진정한 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이 수행을 통하여 얻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진짜라고 말하는 것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지금의 우리 역시 겪고 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정보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당시 열자가 겪은 일이 그가 아둔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자는 호자의 입을 통하여 보이는 것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 매진할 것을 장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10장은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열자의 후일담이다. 열자는 자신의 얕은 배움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두문불출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패배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 먹이기를 사람처럼 하면서 점차 자신을 다스린다. 그 결과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다 일생을 마친다. 결국 그는 스승으로부터 칭찬이 아닌 꾸지람을 들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로서 장자는 우리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어느 것에도 구속됨이 없이 자유로워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내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말도 않된다. 따라서 자유로운 자 만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본다.
    인문/어학| 2005.01.26| 2페이지| 1,000원| 조회(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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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물학의 철학] 인간 본성의 딜레마를 읽고...
    인간 본성의 딜레마를 읽고...이 글은 기본적으로 인문학과 생물학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학문을 접하여 쓴 글이다. 흄의 논제에서 출발하여 포괄적인 개념의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포괄적인 개념의 생물학과의 학문적 접목을 시도하는 글이다. 그리고 특이할 만한 점은 철학적 주제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글이라는 점이다. 즉, 철학과 생물학을 서로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제 1장이기 때문에 개괄적인 주제만이 다루어졌지만 어쨌든 저자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생물학적 답이 아닐까 한다.우선 저자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같은 기존의 이론은 배제한다. 그 이론이 크게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에 부합하지 않은 이론이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이후 신자연주의에 대해 참이라는 가설을 새웠을 때 생가는 딜레마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그 첫 번째는 “인간을 포함한 그 어떤 종도 자신의 유전적 역사가 부과한 의무를 초월하는 다른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간의 정신이 이런 근원적인 속박에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있어, 오로지 생물학적 수단만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일체를 생물학적 활동에 속하는 범주로 인식한다고 해도 크게 벗어남이 없을 듯 싶다. 즉 “인간의 정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며, 이성은 그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 생각을 내 놓았다. 그러나 이 것은 “지성이라는 것은 원자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 유전자의 생존을 촉진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도 있다.”는 표현으로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저자가 제시한 첫 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해진 곳이란 없다.”이다. 이러한 첫 번째 딜레마에서는 사회가 에너지를 특정 방향으로 집중시키면 선험적인 목표들이 급속히 붕괴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딜레마가 도출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 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세한 논증은 다음 장으로 넘기고 원리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뇌에는 우리의 윤리적 전제들에 심층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선천적인 감지기와 작동기가 있다는 것이고 그 둘 중 어느 것에 마음을 더 쓰느냐 혹은 어느 것에 이끌려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가? 라는 것이다. 결국 윤리적 상황의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인데 그 것이 바로 딜레마라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01.26| 2페이지| 1,000원| 조회(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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