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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문화] 서양의 근대적 민족 개념 형성 과정과 우리 나라의 민족 개념의 비교
    Q. 서양(유럽)에서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민(nation)'은 언제, 어떻게 출현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 갔는가? 학생 여러분의 초중고 시절, 나아가 예를 들어 작년 월드컵 경험 등에 비추어 볼 때, 서양에서의 민족/국민 만들기 과정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 것과 어떠한 유사점 혹은 차이점이 있는가?16C 이전 서양의 공동체 개념은 기독교적 공동체의 개념으로써 유럽과 기독교 왕국의 동일시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기독교와의 동일성에 대한 인식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뤄지면서 급속하게 해체되었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라는 유럽의 아이디어는 급속하게 약화되고 해체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이 시기를 기독교 중심의 유럽정체성의 분열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민족주의의 발아는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6C 유럽의 근대 민족주의는 태동했지만 국가가 군주의 절대권과 부국 강병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민 국가적 요소가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서양의 민족주의의 정착은 1789년 발생한 프랑스 혁명(국민 주권과 자유, 시민적 평등의 원리 확산)을 통했다고 본다. 왕이 없어지고 정체성의 혼란 뒤에 동등한 국민들의 집합체 "민족"이란 개념이 중요하게 되었다.이처럼 서양의 근대적인 '민족/국민'의 개념은 전쟁과 혁명의 발발 등을 통해 자리잡아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념'에 대해 알기 위해선 서양이 과연 어떠한 방법과 역사로 그 정체성이 구성되어 왔느냐를 아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유럽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적인 대비'를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서양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동양"이라는 반대적인 상상의 공동체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주체와 타자의 대비' 개념은 현대사까지도 유효한(사실이 아님에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은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며 그리스 시대 지리적 유럽과 문화적 유럽의 개념이 등장했고) 지리적 개념으로서 유럽은 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 영토를 가리키거나 아시아와 리비아와의 대비되는 영토로서 지칭됨로마시대에 문화적 유럽의 약화와 기독교가 유입된 유럽의 과정을 거쳐 중세시대 이슬람 문명과 조우함으로 유럽 정체성이 탄생했다. 이 시기 동안 이 지역에선 민족적 이동도 상당히 많았으며 로마가 생긴 것도 민족의 이동이고 로마가 망한 것도 민족의 이동이었다. 또한 국경적인 개념도 약하여 예를 들어 백년전쟁 전에는 대륙에 영국의 영토가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섬 쪽에 프랑스 땅도 있었다. 현재랑 비슷해진 것은 절대왕조 무렵이고 그 후 얼마 안 있어 근대국가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새로이 여러 가지 정치적 시도를 하던 유럽 국가들에게 있어서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의 동질감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를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려면 소속감을 느낄 어떤 이념적인 것이 필요한데 민족적 동질성도 없고 게다가 영토적인 개념도 너무나 자주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구분하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똑같이 권리를 갖고 의무도 가지는 동등한 입장이고 한 국가를 이루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소속감을 만들기 위해 생긴 것이 근대적 국민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통일'이 굉장한 관건이었으며 급진주의 혁명정부는 강제적으로 언어 통일을 시켜야만 했다. 언어를 통해 '민족/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로 편입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를 부여함으로써 소속감을 부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보-불 전쟁 때에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하고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이 다스리게 되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프랑스어 선생님은 아주 슬프고 비장한 표정으로 "저 지붕 위의 비둘기들마저 이제부터는 독일어로 울어야만 하다니..."라며 마치 독일어가 전혀 낯선 언어인 것처럼 비장하게 말을 한다. 바로 이러한 표현 자체가 '정체성 부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역인 알자스-로렌 지방은 역사적으로 양국으로부터 번갈아 가며 지배를 받아왔다.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독일어권에 가깝다. 알자스어 자체가 독일어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이제부터 학교에서 독일어만 가르치라고 해도 이 지역 학생들은 실제 아무 혼란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 언어 교육을 통해 (서양사에서 흔히 그래왔던 이분법을 쓰면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독일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냐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너희는 프랑스 민족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라고 주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민족 개념은 "상상의 공동체" 바로 허구적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그렇다면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민족' 개념은 어떠한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민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05년 이후라고 보인다. '국가'라는 말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고, '국민'이란 말은 갑오개혁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갑오개혁기에 개화파는 소학교의 교재로서 『국민소학독본』을 만들었으며, 역사의 수업목표를 "본국역사다 國體에 大要링 알게 힝야 國民된 志操링 養힝을 要旨로 힝"이라고 규정하였다. (『官報』 제138호, 학부령 3호 「小學校校則大綱」(개국 504년 8월 12일, 왕현종, 「갑오개혁연구」, 연세대박사학위논문, 1999, 263쪽 참조)하지만 '민족'이란 말은 그보다 늦은 1905년 이후 이른바 자강운동기 혹은 계몽운동기라 불리는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이는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에 실린 '민족'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양계초는 「政治學大家伯倫知理之學說」(1903년 집필)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소개하였다.) 그는 블룬츌리의 학설을 빌려 "왕왕 국민과 민족을 혼동하는 이가 있으나 이는 다른 것이다. 민족이란 민속과 연혁이 만든 결과로서 민족은 8가지 특징을 지닌다. 즉 1)처음에 한 곳에 모여 살았으며, 2)처음부터 혈통이 같고, 3) 그 지체와 형상이 같고, 4) 그 언어가 같고, 5) 그 문자가 같고, 6) 그 종교가 같고, 7) 그 풍속이 같고, 8) 그 생계가 같은 것 등으로 부지부식간에 스스로 他族과 거리를 두면서 하나의 특별한 단체를 형성하게 되고, 그 고유한 성질을 그 자손에게 전하는 것을 가리켜 민족이라 한다"고 소개하였다. 그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경우도 있고, 다른 민족을 받아들여 동화시키면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경우도 있고,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하였다.) 梁啓超, 「政治學大家伯倫知理之學說」 『飮氷室文集』(하) 「學說」, 上海, 廣智書局, 1907, 141∼142쪽양계초는 민족을 지리, 혈통, 형질, 언어, 문자, 종교, 풍속, 경제생활의 공통성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이러한 '민족'개념이 사용되게 된 이래 우리에게 이 개념은 어떤 의미로 받들어져 왔을까?내가 초등학생 시절 (당시는 국민학교라 명명했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교과서 맨 앞에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두에는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그것이다. 내가 언제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는 멋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외우지 않으면 선생님이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우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역사적인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교육되어져 온 것이다. 또한 국사 시간에는 반만년의 역사의 단일 민족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선생님들은 자주 하셨다. 서양은 고작 200년이라는 비교를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순수혈통의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민족과 혈통 중요시 여기는 것이 정당하다고 배워진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리는 과거 외침이 하나도 없었나? 그렇지 않다면 수많았던 외침에도 순수한 혈통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로 통일된 국사 교과서(국정교과서)는 항상 똑같은 국사지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한 학자의 문제 제기로 떠오른 문제이지만 "발해"는 속말말갈인인 대조영이 세운 나라인데 그 당시의 위세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시켜 우리 민족이 강성했다는 역사를 교육시키고 있는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왜 "민족"개념이 이렇게 교육되어져 왔을까?
    인문/어학| 2003.12.12| 3페이지| 1,0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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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일본헌법(한글) 평가B괜찮아요
    일본헌법1946년 11월 3일 공포일본 국민은, 정당하게 선거된 국회에 있어서의 대표자를 통해 행동하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을 위해서, 모든 국민과의 협동에 의한 성과와, 우리 나라 전 국토에서 자유가 가져오는 혜택을 확보하고, 정부의 행위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것을 결의하고, 여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이 헌법을 확정한다.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이것은 인류 보편의 원리이고, 이 헌법은 이러한 원리에 기초한다. 우리들은, 이것에 반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을 배제한다.일본 국민은, 영원한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 상호의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게 자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고, 우리들의 안전과 생존을 유지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들은, 평화를 유지하고, 전제와 예종, 압박과 편협을 지상에서 영원하게 제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전세계의 국민이, 공포와 결핍을 면하고,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확인한다.우리들은, 어떠한 국가도 자국의 이익에만 전념하여 타국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정치 도덕의 법칙은 보편적인 것으로, 이 법칙에 따라서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고, 타국과 대등 관계에 서는 것이 각국의 책무라고 믿는다. 일본 국민은, 국가의 명예에 걸고, 전력을 다해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할 것을 맹세한다.제1장 천황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제2조 황위는 세습되며,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이 규정한대로 계승된다.제3조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고, 내각은 그 책임을 진다.제4조1 천황은, 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적 인권은, 침범할 수 없는 영구의 권리로서, 현재 및 장래의 국민에게 부여된다.제12조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 및 권리는 국민의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국민은 이것을 남용해서는 안되며, 항상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이것을 이용하는 책임을 갖는다.제13조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된다.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에 관해서는, 공공의 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기타의 국정의 위에서, 최대한 존중된다.제14조1 모든 국민은 법 아래 평등하며, 인종, 신조, 성별, 사회적 신분 내지는 문벌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차별되지 않는다.2 화족 기타 귀족의 제도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다.3 영예, 훈장 기타의 영전의 수여는, 어떠한 특권도 수반되지 않는다. 영전의 수여는, 현재 이것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장래 이것을 받는 자 일대에 한하여 그 효력을 갖는다.제15조1 공무원을 선정하고, 파면하는 것은 국민 고유의 권리다.2 모든 공무원은 전체의 봉사자이지, 일부의 봉사자가 아니다.3 공무원의 선거에 대해서는, 성년자에 의한 보통 선거를 보장한다.4 모든 선거에 있어서 투표의 비밀은 침범돼서는 안 된다. 선거인은, 그 선택에 관한 공적 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제16조 누구도 손해의 구제, 공무원의 파면,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제정, 폐지 또는 개정 기타의 사항에 관계되고, 평온하게 청원할 권리를 갖는다. 누구도 이러한 청원을 함에 있어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제17조 누구도, 공무원의 불법 행위에 의해 손해를 받았을 때는, 법률의 정한 바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그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제18조 누구도 어떠한 노예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 또 범죄로 인한 처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뜻에 반한 고역에 종사하지 않는다.제19조 사상 및 양심의 자유는, 이것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제20조1 신앙의 자유는, 누구나 이것을 보장한다. 어떠한 종교 단체도, 국가로부터 특권을 행동을 할 권리는, 이것을 보장한다.제29조1 재산권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2 재산권의 내용은, 공공의 복지에 적합하게 법률로 정한다.3 사유 재산은, 정당한 보상 아래, 공공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제30조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갖는다.제31조 누구도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그 생명 내지는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며 또한 기타의 형벌을 부과받지 않는다.제32조 누구도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다.제33조 누구도, 현행범으로서 체포되는 경우를 없애고는, 권한을 가진 사법 관헌이 발행하고, 이유와 범죄를 명시한 영장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되지 않는다.제34조 누구도 이유를 직접 통고받지 않고, 직접 변호인에게 의뢰할 권리를 갖지 않는 한, 억류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또, 누구도 정당한 이유가 없이 구금되지 않으며, 이유가 있으면, 그 이유를 즉시 본인 또는 그 변호인이 출석하는 공개의 법정에서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35조1 누구도, 그의 주거, 서류 및 소지품에 대해서 침입, 수색 및 압수를 받지 않을 권리는, 제33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한 이유에 기초하여 발행되고 동시에 수색하는 장소 및 압수하는 물건을 명시한 영장이 없으면 침범받지 않는다.2 수색 또는 압수는, 권한을 가지는 사법 관헌이 발행하는 별도의 영장에 의해 집행한다.제36조 공무원에 의한 고문 및 잔학한 형벌은 절대로 금지한다.제37조1 모든 형사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은 공평한 재판소의 신속하고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2 형사 피고인은 모든 증인에 대해 심문할 충분한 기회를 갖고, 또한 공비로 자기를 위해 강제적 방법으로라도 증인을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3 형사 피고인은 여하한 경우에도 자격을 갖춘 변호사를 의뢰할 수 있다. 피고인 스스로 의뢰할 수 없을 경우에는 국가에서 의뢰한다.제38조1 누구도 자신에게 불리한 공술을 강요받지 않는다.2 강제, 고문 또는 협박에 의한 자백 내지는 부당하게 장기 억류 또는 구금에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제52조 국회의 상회는, 매년 1회 소집한다.제53조 내각은 국회의 임시회의 소집을 결정할 수 있다. 어떠한 의원도 총 의원의 사분의 일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내각은 그 소집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54조1 중의원이 해산되었을 때는, 해산일로부터 사십일 이내에, 중의원의 총선거를 행하고, 그 선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국회를 소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2 중의원이 해산되었을 때는, 참의원은 동시에 폐회된다. 단, 내각은, 국가에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는 참의원의 긴급 집회를 요구할 수 있다.3 전항 단서의 긴급 집회에 있어서 채택된 조치는, 임시의 것으로, 다음의 국회 개회 후 십일 이내에, 중의원의 동의가 없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상실한다.제55조 양 의원은 각각 의원의 자격에 관한 쟁송을 재판한다. 단, 의원의 의석을 상실하게 할 경우에는 출석 의원의 삼분의 이 이상의 다수에 의한 의결을 필요로 한다.제56조1 양 의원은 각각 그 총 의원의 삼분의 일 이상의 출석이 없으면, 회의를 하여 의결할 수 없다.2 양 의원의 의사는, 이 헌법이 특별히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 의원 과반수로 의결하고 가부 동수 시는 의장의 결정에 따른다.제57조1 양 의원의 회의는 공개로 한다. 단, 출석 의원의 삼분의 이 이상의 다수로 의결했을 때는 비밀 회의를 열 수 있다.2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의 기록을 보존하고, 비밀회의 기록 중에서 특히 비밀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것을 공표하고 일반에 반포하지 않으면 않된다.3 출석 의원의 오분의 일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각 의원의 표결은 이것을 회의록에 기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58조1 양 의원은 각각 그 의장 기타의 임원을 선임한다.2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 기타의 수속 및 내부의 규율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또 원내의 질서를 위반한 의원을 징벌할 수 있다. 단, 의원을 제명할 때에는 출석 의원의 삼분의 이 이상의 다수에 의한 의결을 필요로 한다.제59조1 법률안은 이 헌법에 특별히 내각 총리 대신 내지는 기타 국무 대신으로 이것을 조직한다.2 내각 총리 대신, 기타 국무 대신은 문민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3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에 대해서 국회에 대해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제67조1 내각 총리 대신은 국회 의원 중에서 국회의 의결로 지명한다. 이 지명은 다른 모든 안건에 우선하여 시행한다.2 중의원과 참의원이 다른 지명을 한 경우, 법률의 정한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어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또는 중의원이 지명 의결을 한 뒤, 국회 휴회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십일 이내에 참의원이 지명의 의결을 하지 않을 때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제68조1 내각 총리대신은, 국무 대신을 임명한다. 단, 그 과반수는 국회의원 중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2 내각 총리대신은 임의로 국무 대신을 파면할 수 있다.제69조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 결의안을 가결하거나 신임의 결의안을 부결했을 때는, 십일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않는 한, 총사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70조 내각 총리대신이 없을 때, 또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뒤 처음으로 국회의 소집이 있을 때는, 내각은 총사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71조 전 이조의 경우에 내각은 새롭게 내각 총리대신이 임명될 때까지는 계속 그 직무를 수행한다.제72조 내각 총리대신은 내각을 대표해 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일반 국무 및 외교 관계에 대해서 국회에 보고하고, 또 행정 각부를 지휘 감독한다.제73조 내각은 다른 일반 행정 사무 외에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1 법률을 성실하게 집행하고, 국무를 총리하는 것.2 외교 관계를 처리하는 것.3 조약을 체결하는 것. 단, 사전에 시의에 따르고 사후에 국회의 승인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4 법률의 정하는 기준에 따라 관리에 관한 사무를 장리하는 것.5 예산을 작성해 국회에 제출하는 것.6 이 헌법 및 법률의 규정을 실시하기 위해 정령을 제정하는 것. 단, 정령에는, 특히 그 법률의 위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벌칙을 둘 수 없다.7 대다.
    학교| 2002.06.21| 13페이지| 1,500원| 조회(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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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노와 공창제
    Ⅰ. 서론한국사회는 외국에 비하여 훨씬 쉽게 성을 매매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노를 비롯한 수많은 성 상품들이 허위적인 법망을 피해 비교적 자유로이 유통되고 있으며, 매매춘 또한 이중적 법규범과 국가의 묵시적 허용하에 성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하에 포르노에 대한 논의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과 비예술의 논쟁 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논의되어 왔으며, 매매춘에 대한 논의 또한 얼마전 한 여당의 국회의원의 공창제 실시에 대한 발언과 함께 우리 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본 글에서는 성 상품화와 성적 착취의 테두리 안에서 그 구체적 사례로서 포르노와 공창제에 대해 급진적 여성주의에 입각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Ⅱ.포르노그래피(pornography)포르노그래피란 어원상 성의 상업적 매매를 뜻하는 포르네(porne)의 어떤 것을 묘사한다는 뜻의 그라페(graphein)라는 희랍어에서 나온 합성어이다. 즉 포르노그래피란 근본적으로 매매춘 행위에 준하는 모든 활동에 적용되는 셈인데, 오늘날 상업적인 유통구조를 갖는 영화, 잡지, 소설, 그림, 만화, 광고 등 거의 모든 대중매체가 이 작업에 이용된다. 여기서 제작자나 소비자는 주로 남성임은 당연하다. 포르노그래피는 영화가 됐든 연극이 됐든, 또는 문학양식을 빌었던 다른 어떤 미디어를 사용했든 모두 여성의 신체 자체를 구경거리로 한다. 여기에서 재현은 사실 그대로의 복사 내지 묘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약호에 따라 구성되고 연출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포르노그래피 속의 여성은 특별한 방식으로 전시된다. 요란한 치장으로 구성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렇게 변태적인 성적 욕망에 갇혀 몸부림치는 여성을 남성이 구원해줘야 한다는 뒤틀린 논리를 강요한다. 물론 그 뒤에는 일부일처제에서 남성의 외도를 정당화하는 잠재의식도 깔려있다.이런 포르노그래피적 성적 환타지가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흥미를 끄는 것은 한국사회의 특징 비정상적인 성행위에 대한 욕망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구실로 어떤 남성들에게 작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어떤 남성이 이런 포르노그래피에 탐닉한다면 오히려 그는 더욱 여성의 실체와 멀어지게 하는 포르노그래피적 남성중심주의 시선에 포획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만인 지금 이곳의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를 굳건히 유희하는데 여성의 성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해롭다는 무의식적 전략이 있는지도 모른다.포르노는 성관계를 성교-성기중심 만으로 규정짓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예우니 하는 것은 배제시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포르노가 세상에 나와 모든 이간에게 성기중심적 사고 와 그것을 만들어낸 남성중심의 문화 를 강요하고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성장해 왔다. 포르노를 아이들이 보든 어른이 보든 중요한 것은 너무 오랫동안 그 문화 속에서 그렇게 사고하도록 강요받아 왔다는 것이다. 포르노가 기득권에 저항 해 왔다면 모를까, 오히려 기득권의 논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는 남성들의 성욕에 대한 자연성을 강조하는 논리로 합리화될 수 없다. 남성의 성욕도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포르노/표현의 자유로 이분화 되어 나타나는 주장들은 남성지배 권력사회에서 모든 지식과 정보들은 편향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양립할 수 없는 논의임이 분명하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지식을 유포하는 주체, 지식을 수용하는 주체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고 이는 곧 권력이 되는 상황에서 정보에도 마찬가지 논의가 적용될 것이다. 포르노는 성에 관련된 정보로써 그 정보의 제작자와 수용자, 배급자는 모두 남성이다. 여성이 완전히 제외되어 있는 여성대상화의 전진기지가 바로 포르노인 것이다. 포르노 안에서 옷을 벗고 있는 여자가 고통을 받는 상태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례들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이유만으로도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사고해서는 안될 것이다. 1970년대 시작된 포르노그래피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에 따라 드원킨과 맥키넌이 개발한 시민권인 포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즉, 포르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여성의 몸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하게 만들며, 포르노가 드러내는 여성의 이미지와 남성의 이미지는 은밀하게 은폐되어 보는 이에게 하여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성기 노출과 성행위의 노골적인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드러나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 그리고 여성을 상품화시키고 대상화시키는 것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며 직접적인 포르노 말고도 이러한 내용을 지닌 채 은폐되어 있는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과 같이 포르노의 표상들이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의 성적차이를 이용한 다양한 지배의 형태로 에로틱화 할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의 평등주의적 가치들을 고양시키는 대안적 담론과 해석을 침묵시키기 때문이다. 표상은 벗은 몸이나 성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정한 규약에 따라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사회에 의해 포르노적인 것으로 해석되게 한다. 즉 문제는 여성의 몸은 점점 더 포르노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기호화된다는 것이다. 일간신문에서 여성의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여성의 몸을 숨기기를 원했던 얌전빼는 성관념에서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표상을 포르노적으로 기호화하는 과정이 개방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시키고 생산 과정에서 고도로 분절화시키고 분업화시킨다. 이에 따라 성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각인되면서 지천으로 유통되고 있다. 포르노는 성적 흥분과 쾌락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며, 성적 행위와 여성의 몸을 대량 상품화하는 것이다. 즉 성경험에 대한 욕구가 조작, 강화되며 동시에 희소성 높은 상품이 품귀 현상을 부추긴다. 그것을 찾는 소비자의 욕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상승하므로 점점 더 이질적인 성행위가 고안되는 것이다. 즉 남성의 시선은 더욱 분절화되고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상품들에 더욱 현혹되며 역으로 포르노는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들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들은통적인 사상을 고질화시키고 있는 것이다.Ⅲ.공창제에 관하여공창제란 매매춘을 완전히 합법화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리하는 것으로, 이 정책의 일반적 근거는 이것이 성병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창제도가 생기자 많은 여자들은 임시직업으로 생각했던 매춘을 평생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과거 매춘부가 노예도 아니고, 영구히 낙인이 찍힌 직업도 아니었던 때의 경력을 보면 매춘이 대체로 일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좋은 길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던 대기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등록이 되면 영구히 그 딱지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선은 이러한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공창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론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제사회구조적, 심리적 관점 모두에서 매매춘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매매춘이 아무리 성과 돈의 거래라고 할지라도 매춘여성의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과정이다. 즉 물질적인 보상을 위해서 억지로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손님의 어떠한 요구도 들어주어야 하는 처지다.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는 남자들은 보통 아주 모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남자들의 행위는 가릴 것이 없다. 남자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매춘 여성들의 인격모욕을 수반한다. 결국 이들의 반인간적 상황을 보았을 때. 매매춘은 절대 합리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다. 이는 권력에서 열등한 여자가 남자들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대상화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한 단면이다. 매매춘은 남자들의 문화적 헤게모니의 상징일뿐이다. 이런 상황을 합리적인 거래관계라고 하는 사회적 통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매매춘은 비인격적인 거래관계로 매춘여성들이 모욕을 당하는 상황이며, 서로를 수단시하는 성관계에서 매매춘 당사자들은 모두 몰인격화한다. 매매춘의 심각성은 여기에도 있다.오직 매춘여성만을 처벌하는 우리 사회에서 매춘여성은 언제나 불리하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매매춘 법은 이지 못하며, 매춘 여성만을 지목하는 법규정으로 인해서 매춘여성은 언제나 불리하다. 법이 남성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행위에서도 여자는 불리할 수 밖에 없다.자유주의자들은 매매춘 합법화를 제창한다. 이들은 매매춘의 해결은 합법화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매춘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결국 매춘여성에게 더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 이들의 존재양식을 사회적 직업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자고 외친다. 합법화는 어쩌면 매춘여성의 일시적 복지를 위해서는 유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매매춘이 난무한 사회에서 법적인 구속은 단지 매춘여성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쌍방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매매춘에서 매매춘의 금지는 남자를 처벌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화대를 받는 여자만이 처벌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매춘 금지는 오히려 경찰의 부패와 밀착되기 쉽다. 그러나 과연 매매춘이 매춘여성의 사적인 행위이고 거래관계라고 할 수 있는지, 또 그 숫자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매춘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대책인지 의문을 제기해 보지 않을 수 없다.합법화 논의는 매춘여성을 성적인 병리자 나 성범죄 집단 이라고 몰아붙이는 기존의 관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춘여성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그러나 이 논의는 너무나 관념적이다. 먼저 합리적인 계약관계에 대한 개념 자체도 틀린 것이다. 우리는 매매춘이 발생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문제삼아야 한다. 가령 이들은 매춘여성이 매춘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든지. 매춘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 등은 설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매춘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거래관계 라고 보는 시각은 강제에 대한 개념자체가 그릇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즉 매춘여성들이 돈 있는 남자들에 의해서 얼마나 통제되고 있는지, 또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지 전혀 관여치 않는다. 즉 열악한 입장에 있는 한 여자가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게 되는 상황, 그리고 그러한 계약으로 이끄는 경제적, 심리적 강제를 고려하지 다.
    사회과학| 2003.06.10| 5페이지| 1,000원| 조회(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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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평가A좋아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서론이 책속에 지은이는 삶을 살아가는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은이와 같이 많은 이들은 아직도 돈에대하여 의시적으로 무시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더욱 심하다. 이는 전통적 유교사상과 관련이 깊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관직에 나가서 나라일을 하는 것을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은퇴에 대한 생각역시 지은이와는 무척 다르다. 우리는 은퇴를 생각할 때 세상에서 낙오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남자는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것만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아직 불확실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역시 정치학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전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에 동조하기 힘들다. 이책을 다 읽고 느낀 처음 느낌은 내가 군 제대할 때 친구를 따라갔던 다단계 생각이 났다. 모르고 간 그곳에서 친구는 강의만 듣고 가라고 했다.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돈을 벌기가 쉽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은이가 보기에는 바보같을 지는 모르지만, 욕심은 나지만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 친구를 뿌리치고 나왔던 기억이 났다. 물론 지은이도 쉽게 돈을 번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쓴 글속에서는 누구든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에서 강의하던 사람도 그런식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실제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을 버는 것 만을 생각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돈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 마르크스는 세상을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으로만 보았다. 그러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이 옳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한가지 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지은이의 가난한 아버지역시 돈에 의하여 곤란은 격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잠깐 나온다. 그녀가 화가 났던 것은 그녀의 글 쓰는 목적을 돈을 벌기위한 것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쓴 좋은 글들과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였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바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은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자신의 삶에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기에 그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그녀의 글에 대한 보상일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본론이 책은 지은이가 돈을 벌기위한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싶어서 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는 돈버는 사람들의 사고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부자 아버지 vs 가난한 아버지라는 소제목으로 글로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부자아버지와의 경험을 통하여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자 아버지는 지은이의 친구인 마이크의 아버지이며, 마이크의 아버지는 지은이에게 부자들의 삶의 방식을 체험을 통하여 체득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의 삶의 목표는 어느정도의 부를 획득하여 은퇴후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점은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단으로 서의 돈이라는 개념은 그에게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생활을 하며, 그러한 돈이 목적이 된 삶은 계속적인 악순환 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돈이 자신을 위해 일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다.다음으로 부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여섯가지 교훈 부분이 있는데 이는 부자들의 생활의 모습을 통하여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첫째로는 부자들은 절대 돈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것으로 부자 아버지는 두려움과 욕망이 아주 위험한 함정으로 우리를 몰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다. 평인한 일이지. 돈을 위해 일하면서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고, 한밤중에 깨어나 청구서 처리에 겁을 먹는 것 또한 끔찍한 삶이지 않겠니. 월급 봉투의 크기로 결정되는 삶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직장이 안정감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잔인한 일이며, 나는 너희만큼은 그런 함정을 피했으면 한다. 나는 돈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잘 보아왔다. 너희들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돈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한다. 이는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실속에서 잊기 쉬운 것이다. 누구도 돈의 노예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고 있다. 이렇게 되지않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겠다.두 번째 교훈으로 지은이는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돈에 관한 지식을 가르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돈을 탐하는 것은 저급한 욕망이라고 치부되어지는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왔다. 이는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심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요즘은 돈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대하고 있으나, 지금도 돈에 대하여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을 바람직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돈에 대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적다. 부모님도 가르쳐 주시지 않고 학교에서도 가르처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학교를 통하여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 왔다. 이러하다보니 돈에 대하여 정확히 알지 못한다. 돈 때문에 곤란을 겪지만,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세 번째 교훈은 부자들은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사업을 한다라는 것이다. 이 교훈 설명하면서 지은이는 맥도널드의 창업자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맥도날드 사업의 본질은 부동산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보는 사업관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부자들은 사치품을 맨 나중에 사는데, 가난한 사난한 사람과 중산층 사람들은 부자로 보이기 위해 큰 집과 보석, 모피, 혹은 고급 차를 사곤 한다. 그렇게 하면 부자로는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점점 더 빚만 질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으로 사치품을 산다. 이러한 지은이의 지적은 적절하다. 우리나라에도 조금만 경기가 좋아지만, 고가 제품들의 판매가 급증한다고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지은이의 지적에서 많이 느낄 것이있다. 최근에 신용카드 현금 써비스 문제가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부자의 외형만을 따라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자로 살고자 한다면, 사업을 하고 그 사업에 이익을 가지고 자신의 사치품을 사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라고 하겠다.네 번째 교훈으로 부자들은 세금의 원리와 기업의 힘을 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부자들은 실질적으로 세금을 통하여 자신의 부가 국가로 들어가지 않도록 할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기업을 통하여 이러한 일을 해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항상 세금 때문에 고통받는 계급은 월급 생활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세금을 꼬박꼬박내고 있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세금에 대하여 월급 생활자보다 자유롭다. 이것은 실생활에서 많이 겪을 수 있다. 국가는 이글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기업과 끊임없이 협조를 하고 있다. 어떤때에는 세금해택을 주기도 하고 연기해 주기도 한다. 또 부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충분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자가 부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다섯 번째로 부자들은 돈을 만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세가지 필요한 기술을 설명하는 데, 우선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낡고 초라한 집을 하나 샀다. 그 집은 보기에도 끔찍한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집을 왜 샀는지 의아하게는 점이다. 그 집을 산 후에 그 친구는 집을 허물고 그 빈 집터를 건축업자에게 팔았다. 내 친구는 두 달 동안 일해서 7만 5천 달러를 벌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최저 임금보다는많았고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물건을 보는 관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돈을 벌고 싶다면 철저히 그곳에 관점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명인이라 불이워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가끔 놀라곤 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부분에 있어서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 부자가 되고 싶다면,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또 돈을 조달하는 법을 알아야한다. 이는 돈을 단순히 은행을 통하거나, 사채를 빌린다는 개념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예를 들었는데, 전에 나는 120만 달러를 주고 연립 주택을 샀다. 내가 한 것은 이른바 였는데, 이것은 팔려는 사람과 구매자 사이를 계약서로 묶는 것이다. 그런 후에 나는 10만 달러의 예치금을 조달했고, 그렇게 해서 나머지 돈을 조달할 90일의 시간을 벌었다.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나는 그 건물의 가치가 200만 달러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돈을 조달하지 않았다. 대신 10만 달러를 제공한 그 사람이 거래를 찾은 대가로 5만 달러를 주었고, 그 사람이 내 자리를 넘겨받았다. 나는 그 일에서 물러났다.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임에 분명하다. 자신이 생각한 가치의 확신과 시장의 반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험이 없이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복권을 구매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똑똑한 사람들을 활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을 고용하여 일을 하게 될 경우 자신은 자신의 일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부분에서 유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적절한 사람을 활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것이다.
    경영/경제| 2003.06.10| 5페이지| 1,000원| 조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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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정치] 러시아의 대외관계
    러시아의 대외관계Ⅰ . 들어가면서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층의 개혁정책으로 인해 74년 만에 막을 내렸고 1992년 독립국가 연합(CIS)이 출범했다.러시아는 대내외적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법적 계승자이다. 러시아는 소련이 가졌던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물려받았으며 소련의 해외자산을 인수받았다. 대외관계에 있어 러시아는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았고 70여 년 동안 형성되어 온 대외관계의 체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러시아는 국제관계 발전의 지정학적 방향의 소비에트적 틀을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다. 러시아의 정치 제도는 구소련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며 (러시아 정치 발표 참조) 70여 년 간 공산 체제 하에서 민주정치의 경험이 결여된 러시아는 새로운 민주정치 체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정치불안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러시아의 대외정책 변화와 현 대외정책, 그리고 동북아와의 관계와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러시아 대외정책 흐름1. 푸틴 대통령 이전1 구소련 시기구소련 외교의 기본 방침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서방과의 적대적 대결이었다. 구소련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국내의 정치 체제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다음에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부산물로서 형성된 동유럽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정권들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그 결과 구소련의 외교 정책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안전 보장을 중시하는 경직된 외교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1) 이데올로기 중시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외교 부문에서도 기능, 자국의 영향권 내에 있는 국가에 대해 강한 이데올로기적 외교 전개, 나아가 제 3세계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정권 출현을 돕기 위해 이데올로기 중시의 외교 강화.2) 안전보장 중시냉전 시 외교 정책 수행이 주요 수단은 군사력.1. 대미(美)전략 2. 대동유럽 전략 3. 대제3세계 전략이 핵심 안보전략.3득하여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의 취임은 실제적으로 소연방 해체의 시 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8월 쿠데타의 결과, 공산당 권력은 붕괴되었고 이후 발틱 3국을 필두로 하여 소연방을 구성하고 있었던 15개의 공화국이 독립하였다.영토적 일체성 유지, 국가 안전 보장, 러시아사회의 민주화, 개혁 실시와 시장 경제에로의 통합 등 4가지의 외교적 개념 중시. CIS 외교는 계속 최중시. 유엔의 역할을 중시하고, 미국의 일극 지배에는 강하게 반발하며 러시아의 국제적 역할 유지를 지향. NATO 확대에는 반대하나 97년 5월 협력 기본 문서에 서명. 또, 99년 12월에 러시아 벨라루시 연합 국가 창설 조약에 서명. 99년의 대통령 교서에서 종래의 다극화 세계 원칙, 국익 중시 등의 기본에 정착하지 않고 러시아의 특질을 감안하고 협조해 가는 외교를 진행시킬 것이라고 말함. CIS, G8{) 서방 선진 7개국(G7 - 프랑스·미국·영국·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과 러시아 정상, 구주, 미국, 아시아, 중근동 등과의 관계 강화와 경제 외교를 추진하는 의향을 표명. 코소보 문제에서는 대미 견제와 평화 조정에서 국제적 역할을 발휘. 코소보 평화 유지 부대에도 참가. 최근은 체첸 문제에 관계되어 구미 제국으로부터 강한 염려가 나타나는 중. 옐친 대통령이 방중하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생각하는 등, 국제 사회에 있어서의 입장 확보에 부심.1) 1단계-(1991~1993) 유럽 일변도 친서방 외교 정향2) 2단계-(1994~1995) 지정학적·실용주의 외교3) 3단계-(1996~1999) 전방위 강대국 노선2.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 집권1 대외정책 기조가 모든 국가의 평등성 원칙 하에 국제질서의 안정을 강화하는 다극적 국제질서 구축 지향이를 위해 UN헌장과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법 규범을 기초로 한 국제협력 증진 노력가 국력을 감안한 현실적인 대외정책 추구- 외교에 있어 이념배제, 국익에 입각한 실리외교 추구가 국내 경제회복 및 위대 기도이자, 주권국가의 최대한의 자결권과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의 고 립주의는 자급자족의 자신감,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우월감, 타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간의 상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톰슨이 정의한 바처럼 고립주의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즉, 1 국제정치적 소용돌이로부터 자국을 분리시키려는 기도와(이상주의적 인 측면) 2 주권국가의 최대한의 자결권과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로(현실주의적인 측면) 동전의 앞뒷면을 형성한다. 그런데 미국의 고립주의는 전자보다는 후자를 목표로 한 측면이 강했다. 미국의 고립주의 태동 배경과 그 경과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고립주의는 19세기 초 제정러시아를 필두로 한 유럽열강의 미주대륙 세력권 분할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1823년 먼로 대통령이 불간섭 고립주의를 선언한 이른바 ‘먼로 독트린’에서 비롯된다. 당시 먼로 독트린은 타국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표방하 였으나 사실은 실리와 대의명분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하는 아주 현실주의적인 정책이었다. 즉, 실리적 측면은 미주대륙에서 유럽세 력의 간섭을 배제해 미국의 영향권을 형성하는 것이었고, 대의명분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였다.4) 결론적으로 말해 먼로 독트린 은 미국이 미주대륙을 식민지화하려는 유럽열강들과의 세력권 다툼에서 평화와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의 국익옹호와 미주대 륙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5) 요컨대 미주대륙을 분할하려는 유럽세력들과의 전략적 관계에서 열세에 처한 미 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이었다. 그리고 먼로주의로 표현되는 고립주의는 오랜 동안 미국의 국익을 견고히 옹호하는 데 기 여한 매우 성공적인 외교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푸틴의 고립주의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Contructive Isolationism)- 구체적 외교 전략1 무차별적 '핵 카드'2 미국과 서유럽간의 틈새전략3 반미 세력 결집2) 세계전략- 옐친의 전방위 노선의 연의 핵심은 국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동원 가능한 자원의 부족, 피폐한 경제 상황, 소수의 경제집중에 의한 사회적 분열, 내부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체첸 전쟁의 지속, 지방정부 통치기강의 해이 등이 세계질서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것을 제약하는 주요 원인이다. 그런 측면에서 푸틴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은 외연적 대외전략의 정비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 빠른 시일 내에 국내 혼돈을 극복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4. 동북아 국가와의 관계1미국냉전 체제의 주축이었던 특수한 성격이 관계에 내포. 소련의 붕괴 후 양국의 변화로 미국과 러시아는 정치적 안정, 시장경제의 정착 및 핵무기 확산 방지를 통한 전략적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식. 미국은 냉전 시기와 질적으로 다른 중요한 러시아의 외교 대상국이 됨. 그러나 미국에 경제적 긴밀한 협조를 바라는 러시아와 다르게 미국은 러시아를 무시하는 외교를 함. 러시아는 ala국 및 서구 일변도의 외교정책 방향에서 다변화를 꾀하는 정책으로 수정함. 최근 미국의 독자적인 세계질서 결정 경향에 대해서는 견제하고 특히 미국의 NMD 구축은 전략적 안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군비 경쟁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적극 반대 입장92. 2 양국 대통령 캠프 데이비드 선언 서명그해 여름 위싱턴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파트너 및 우정에 관한 헌장 채택93. 1 옐친 대옹령과 부시 대통령 START-2에 대해 서명93. 4 뱅쿠버 선언95. 유고 연방의 보스니아 문제를 유엔을 통한 문제해결 접근 방법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주장 배제, 보스니아 폭격 나토 를 통해 단행96. 러시아 외교 변화 : 소련 시기 우방국이었던 국가들과 관계를 재정립 시작.이라크, 이란과 경제 및 우호관계 재정립, 인도와 경제 협력을 활성화, 미국을 겨냥 중국과 정략적 동반자 관계를 규정 하는 문서에 서명98-99 양국의 갈등 관계 정점.2중국중국과는 96년 4월 정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이래, 옐친 대통령 방중(99. 1 전개 되는 것 우려. 이에 러시아와 일본 화해 모색과 경제 협력 중심으로 관계 발전 노력.97. 8 일본 수상 하시모토 유라시아 외교 라는 개념 제안97. 11 시베리아의 끄라스노야르스끄에서 양국 정상 비공식 회동2000년까지 평화협정 체결하기 위한 노력 약속98. 4 위에 대한 답방으로 옐친 대통령 일본의 휴양 도시 가바노 방문98. 11 모스크바 방문한 오부치 게이조 총리 맞아 창조적 파트너십 구축에 간한 모스크바 선언 발표99. 12 일본 세계은행이 주선한 대러 1억 달러 차관 지불 승인2000. 2 이바노프 외무장관 일본 방문, 고노 요헤이 외상과 회담2000. 9 푸틴 대통령 도쿄 공식 방문, 새로운 경제협력계획(모리-푸틴 플랜)을 발표, 모리 총리를 모스크바로 초청4북한초창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북한과 상이한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지향하게된 러시아는 중·러 관계 개선으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구 동맹국 북한을 제쳐주고 한국 편향의 정책을 펴게 됨. 그러나 1995년 말 러시아 총선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신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이 유라시아주의를 외교기조로 내세우던 차,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배제하는 4자 회담을 제안하자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노력을 가속화하게 됨. 미국의 전략적 압박, 동북아에서 중국과의 접근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전략적 반성, 연해주 등 북·러 국경지역의 안정과 평화 도모, 한·러 관계의 소원화·악화단계를 거쳐 우호관계 복구과정에서 터득한 북·러 관계 정상화의 전략적 가치 등의 요인들도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촉진하고 있음.92-93 양국관계 악화기93. 3 북한이 핵무기 비확산에 관한 조약 NPT 탈퇴의사를 발표94-95 양국 접근기93. 후반부터는 북한도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의 움직임.당시 북한은 사회 주의권의 붕괴와 러시아와 중국의 한국과의 수교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핵문제로 인해 고착상태에 있이룸
    사회과학| 2002.06.21| 6페이지| 1,000원| 조회(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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