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 / 일본 경향소설의 비교경향소설이란 영어의 Tendency Novel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정의 주의, 주장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문학을 뜻한다. 한국의 경향소설 작가들은, 일본문학으로부터 그 대부분의 이론 및 실제를 영향 받았고 교류도 왕성하였다. 일본은 19세기 근대 자본주의체제와 국가관을 확립, 제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세계적인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를 배경으로 한 공업화의 진전과 대자본의 형성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켜 위화감을 조성했으며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급속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주장으로 ‘민중예술’이 출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 사상은 3.1운동을 전후해서였다. 이 배경의 가장 큰 이유는 식민지하에서의 현실이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수용되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1910년 합병과 함께 시작하여 진행된 일제의 토지수탈사업들은 반노예적 빈농층을 증가 시켰고 이는 지주와 소작인과의 계층적 대립을 첨예화 시키게 된다.
고전문학과 중세해체기과목명:고전문학배경론교수님:김 기 형 교수님조 원:99 국문학과 이강인02 국문학과 신호림02 국문학과 권지훈03 수학과 서준호- 목 차 -1. 중세 해체기에 대하여...2. 중세 해체기의 정치ㆍ사회① 비변사와 군사제도② 붕당정치와 예송논쟁, 세도정치③ 부세정책의 변화④ 농업생산력의 발달⑤ 지대형태의 변화3. 조선시대 신분제의 변화① 조선 초ㆍ중기의 신분제② 조선 중ㆍ후반의 사회ㆍ제도적 변화③ 조선시대 후반의 신분제의 변화4. 농민운동을 통해 본 중세 해체기① 19세기 전반기 사회정세와 평안도② 평안도 농민전쟁의 전개와 그 속사정③ 평안도 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④ 1862년 전국농민항쟁[ 부록 ]중세해체기의 서민문화와 문학...■ 중세 해체기에 대한 생각과 발표에 앞서 들어가는 말특정한 기간(길건 짧건 간에)에 일정한 이름이 붙는 다는 것은 그 기간이 이웃한 다른 기간과는 어떤 특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웃한 기간과 비교하여 특징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간은 마땅히 그의 이웃과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살아온 과정을 돌이킬 때 ‘등나무 집에서 살 때’, ‘우리...왜, 그 돈 없어서 암울하게 살 때’ 등의 몇 가지 정도의 특징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추억의 시간적 스펙트럼을 잘라서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에서 시대구분 이라는 것도 그러한 모양일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시간적 스펙트럼을 의미 있게 구분하는 작업에서는, 상당한 주관적이고 개인적 견해가 작용해 서로의 기준으로 구분하려는 의지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도처에 널려 있다. 때문에 한 시대에 혹은 의미 있는 구분이 된 일정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그 시대를 왜 따로 뭉떵 잘라놓은 것이냐’ 라는 방법적인 문제제기 부터 ‘그 시대를 왜 그런 이름으로 부르느냐’ 같은 원론적인 문제제기 까지 모두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가 지금 발표하고자 하는 대상인 ‘중세사회 해체기’ 역시 그러한 문제점을 조광, 최광식 외 / 한길사 / 1995한국사 10 중세사회의해체 2 / 강만길, 조광, 최광식 외 / 한길사 / 1995한국사 1 총설 / 권혁재, 김준호, 노태돈 외 / 국사편찬위원회 / 2002조선전사 11 중세편 리조편 4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1980조선전사 12 중세편 리조편 5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1980韓國史通論 / 邊太戀 / 三英社 / 1986韓國史 時代區分論 / 車河淳, 李基東 外 / 소화 / 1995한국사의 재조명 / 고려대학교 출판부 / 2003중세의 세계 / 프리드리히 헤르 /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사 / 1998봉건제의 이해 / 러쉬튼 쿨본 / 김동순 옮김 / 대우학술총서 / 1996봉건사회의 기본법칙 / 山岡亮一, 本原正雄 / 김석민 옮김 / 아침 / 1987옹고집전 연구, 한국학보 75 / 김종철 / 일지사 / 1994탐욕이 넘쳐나는 시대에 흥부전 다시 읽기, 문학과 경계 9 / 정출헌 / 문학과 경계 / 2003-정치ㆍ경제-조선왕조의 역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17세기 이후에 이르러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양란 이후 조선후기의 사회에서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것이다. 기존의 질서가 전쟁으로 인해 와해되어 갔고, 이 와해 현상은 시간의 경과에 비례하여 더욱 널리 나타났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무너져가던 기존의 질서를 재편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각 분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두 가지 경향이 함께 드러나고 있었는데, 결국은 이 두 힘이 서로 작용하여 중세의 해체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는 이 시기의 정치, 경제, 신분,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중세가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제시하겠다.1. 정치?경제① 비변사와 군사제도왜란과 호란을 통해 조선왕조는 정치적으로 큰 변동을 겪게 되었다. 즉, 전란의 효율적 극복책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중앙기구와 군사조직이 일대 변동을 겪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란으로 인해서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되자, 조선왕조는 국가 체제 전반을 재정비해야할 상황에 처했따라 진결(陳結), 은결(隱結), 누결(漏結)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고, 도결(都結)?방결(防結) 등이 증가하는 등 적지 않은 폐해가 나타났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과세 표준을 간편화하고, 그것을 1634년(인조 12)에 영정법(永定法)으로 법제화했다. EH한 대동법 시행에 따른 총괄적인 전정 운영과 이앙법 확대에 따라 급재(給災) 운영에도 수정이 요구되었다. 이에 18세기 중엽을 전후로 하여 전세운영의 방식의 변화를 도모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형식적인 급재와 백징(白徵)?인징(隣徵)?족징(族徵)의 구조화로 인해 부세가 소민?빈농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전정은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공납제(貢納制) 또한 변질되었다. 원래 호(戶) 단위로 부과되던 공납제는 이미 16세기를 전후하여 방납이 출현하게 되자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일어났다. 공납제 운영의 파행은 농가경제의 파탄을 초래했고, 농민층의 담세능력 저하는 국가재정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16세기 초부터 진행된 공납제 개혁논의는 수미법(收米法)에서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의 단계를 거쳐 대동법(大同法)으로 법제화되었다. 하지만 결국 18세기 후반 중앙재정의 팽창으로 상납미의 수량이 늘어나고, 지방 재정의 궁핍함이 농민에 대한 수탈로 이어지면서 대동법은 당초의 성과를 잃게 되었다.조선후기는 군정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조선시대 병역체제는 병농일치?개병제 원칙에 따라 번상병(番上兵)을 차출하고, 그에게는 보인(保人)을 배정해 줌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군역의 부담이 커서 피역이 많아지자 대립제와 수포제가 등장했고, 1541년(중종36)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로 법제화했다. 또한 양반불역론(兩班不役論)이 등장하여 양반사족들이 점차 군역의 부담에서 이탈함에 따라 군역은 양인에게만 부과되어 양역으로 불리게 되었다.16세기부터 진행되던 군역의 납포군화는 17세기에 접어들어 더욱 광범위해졌다. 이에 따란 군역의 부담도 실역 형태에서 물납 형태가 일반적계와 경제적 지주, 양 반으로서의 신분적 특권을 누리며 사족 공동의 이익을 추구. 신분내혼을 원칙으로 하 여 지배계층에 안주하고자 하였다.② 서얼과 중인층? 서얼이나 중인층은 양반도 상민에도 속하지 못한 채 차별대우를 받았다.③ 상민층? 국가의 각종 수취대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토지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전세, 양인장정 의 인신을 대상으로 하는 군역, 토지소유를 기준으로 하는 요역, 토지ㆍ호구의 복합 기 준에다 분정하는 호역으로서의 공물, 환곡, 등을 부담.④ 노비? 크게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뉜다. 소유주가 국가이면 공노비이고 개인이면 사노비이 다. 노비는 양반의 재산으로 인식되었다. 노비는 사족들의 시중과 수행을 들고, 납공, 집안의 가사노동을 하기도 하였지만, 사족이 소유한 땅에서 농업노동을 담당하였다.2. 조선 중ㆍ후반의 사회ㆍ제도적 변화임진왜란은 조선시대 신분제를 변화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임진왜란 이후 군역면역층으로 전환되고, 공동 납체제가 인정되어 신분제는 양반에게만 유용한 제도가 되어 버렸다. 조선 초기 이래로 군역은 양인층의 권리였다. 그러나 임진왜 란 이후 원래는 역의 의무가 없었던 천인층을 포함시켜 군역을 편성하고, 훈련도감을 설 치하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군역과 군제의 이러한 변화는 군역의 대상층으로 간주되 던 양반층의 면역 가능성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즉,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양반층은 면역층으로서의 지위를 국가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 국가에 노력 다했던 양반과 국가에 적대의식을 드러낸 상민은, 임진왜란 이후 각각 그에 상당한 보상 을 받았다. 양반층은 사회를 주도하는 특권층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고 상민층은 사족지 배구조가 정착되면서 상놈이란 호칭으로 고정되기에 이르렀다. 전후복구사업이 완료되어 간 17세기 전반 이후엔 이들이 양반층과 상민층으로 구분되었다.3. 조선시대 후반의 신분제의 변화① 양반조선후기에 신분이 상향조정되면서 양반층은 수적으로 크게 증가하게 되었고 그들 내에서 계층분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대구속신'이라 한다. 대구속신의 제도는 신분제도가 동요하는 가운데 국가에서 필요 한 최소한의 노비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비합법적인 신분상승 운동 -? 도망노비는 도망하여 유민들이 새로 거주하는 곳에서 호적에 새로 등재할 때 신분을 숨김으 로써 쉽게 소속관사나 상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도망하여서 신분을 모칭한 것이다. 도망노비는 특히 상전의 지배력이 약한 외거노비와 교통이 편리한 강변읍에서 많 이 발생하였다. 노비들은 섬이나 서북지방의 변방, 국가에서 국방상의 요충지에 인구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추노를 금지한 곳 등으로 많이 도망갔다. 섬은 어장이 설치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추노를 금지했으며, 서북지방은 추노가 금지된 지역인 데다 교통의 요지여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가능했을 것이다.그 외에는 추쇄가 곤란한 깊은 산 속이나 중이 되는 자도 있었다. 노비들은 새로운 정착 지에서 고용노동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장시에서 상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신분모칭노비들은 도망하거나 유리하여 신분을 감추고 양인신분을 모칭하였다. 도망노비들은 남 의 족보에 모록하여 신분을 속이기도 했으며, 감영에 姓을 갖추어 양인을 칭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또는 노양처소생종모종량법이 실시된 이후에 출생한 것처럼 속이는 방법이 이 용 되기도 하였다. 이들 도망노비의 후손들은 양인을 모칭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학이나 종반, 훈족 등 양반의 후예임을 모칭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농민운동을 통해 본 중세 해체기 -1. 19세기 전반기 사회정세와 평안도농촌사회의 분화가 가속화되고, 지방사회에서 새로운 사회계층이 성장하는 가운데 중앙권력의 집중성이 강화되면서 지방사회의 저항 또한 거세졌다 1800년 정조가 죽은 후 몇 번의 농민항쟁이 일어났으며, 특히 평안도 농민전쟁을 몇 개월 앞둔 1811년 2월에는 황해도 곡산부에서 대규모 농민항쟁이 일어났다.곡산농민항쟁은 60여 일간의 장기적인 항쟁이라는 측면, 연루자 .
요즘의 대중문화는 국경, 인종, 문화권, 언어 등, 말하자면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특히 대중음악분야에서는, 어떠한 곡이나 음반이 한 나라에서 유행이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 그러한 현상은 단순히 그 나라의 행사에 끝나지 않고 전 세계가 공유하고 공감하게 되는데 이는 음악이 새로운 의미의 세계 공용어가 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 가지 한계를 지적하고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장르의 문제인데 요즘, 혹은 요 몇 십년간 전 세계의 주류 대중음악을 주도한 장르는 대부분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한 장르의 차용이나 서양의 음악적 문법을 빌려 쓴 것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본의든 아니든 간에) 영·미 주도적인 대중음악 조류는, 수용자들이 이러한 유행에만 휩쓸려 각 문화권의 고유한 음악적 특성을 망각하기 쉽게 만든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이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비교적 영·미 문화권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유럽권이나 남미권은 알파벳을 기본으로 언어와 문자를 구사하고 서로의 음악적인 문법이 유사하다는 데서 그들은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겠으나 정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로의 영·미 문화권 대중음악장르의 습격인 것이다.
집단 정신치료와 치료적 요인(요약본)고려대학교 심리학과집단상담 : 정정숙 교수님I. 집단 치료의 치료적 요인들치료적 변화란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며 다양하게 인도된 인간 경험이 뒤얽힌 상호작용을 통하여 일어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치료적 요인들’이라 부르기로 하자. 접근의 방법으로는, 기본적인 구성과정을 거쳐서 총체적 현상으로 접근해서 들어가는 것이 상당히 이점이 있기에 이러한 기본 요인들을 기술하고 논의 하며 ‘집단 치료가 어떻게 환자들을 돕는가?’에 대한 대답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1. 희망의 고취2. 보편성3. 정보 전달4. 이타심5. 일차 가족집단의 교정적 반복발달6. 사회화 기술의 발달7. 모방 행동8. 대인학습9. 집단 응집력10. 정화11. 실존적 요인들이 구분들은 임의적이고 또 크게는 상호의존적이다. 이 요인들은 따로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독립적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우리는 다른 집단치료자들로부터 다채로우며 내적으로 서로 일치하지 않는 치료 요인들에 대한 항목들을 전해 받곤 한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숙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되곤 하고 특정 학파의 신념에 좌우되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치료자들 사이에서도 환자 호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기도 한다. 나는 많은 성공적인 치료자들이 그들의 성공을 치료 과정과 관계없는 요인에 돌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뜨거운 의자 기법이나, 비언어적 훈련, 또는 치료자 자신의 직접적 충격 등이 그러한 요인이다.환자들의 경우는 성공적인 치료에 영향을 미친 요인에 대해 치료자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도움이 가장 된 요인과 도움이 적다고 생각되는 치료요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또한 우리는 환자들의 평가가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치료자나 집단과 맺는 관계에 의하여 왜곡되는 등의 통제받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많은 요인들이 환자들이 치료 요인들을 평가하는 데에 영향력을 게 희망을 심어 주는 데에 주력 점을 두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갈등과 동일한 생활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그들은 큰 안도감을 표현하였다.정보 전달1. 교수적 교육교수적 가르침은 구조와 설명에 대한 준비를 통하여 내재적 가치를 가지며 종종 일차적 질병 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고 알려진, 불확실성에 연원을 둔 이차적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여러 가지 치료 집단이 정보전달에 주력 점을 두고 있기도 한다. 그들은 환자의 질환과 환자의 생활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명백한 교육을 실시하며 자기 탐색 방법뿐만 아니라 심리적 기능장애의 중요한 원인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치료에 대한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데에 성공적이었으며 또한 그 자체가 효과적인 치료로도 입증되었다.2. 직접적 충고충고를 주는 것은 상호작용적 치료집단의 초기에 흔히 있는 사실이지만, 환자에게는 별로 유익을 주지 못한다. 직접적인 충고는 가장 효과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간접적인 충고는 그 내용보다는 간접적인 충고를 하는 과정이 환자에게 유익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충고의 형태는 체계적인 강의나, 의도된 목적에 도달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이타심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기 스스로를 부담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남들에게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험은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러한 치료적 요인이 다른 심리치료 체계에 없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도움의 진가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실현이나 삶의 의의는 주도면밀한 자기-의식적 추구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뛰어 넘었을 때 성공적으로 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치료 방식은 새로운 관점을 치료자들에게 제공해 준다.일차 가족집단의 교정적 반복발달많은 치료 집단은 부모의 모습에 가깝게 가장하고 환자에게 신중한 노력을 가한다. 환자는 마있다. 대인 관계에 대한 격리가 계속 되면 그 결과는 부정적으로 심화된다.인간의 행위를 살펴볼 때에 사람은 사회적 체계 속에서 살 뿐 아니라, 동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한 방식으로 모두들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Sullivan은 성격이란 거의 전적으로 중요한 인물과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은 중요 인물이 하는 지각된 승인에 기초해서 자기 개념을 발달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관계 왜곡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에, 상대방의 현실적인 속성에 근거하여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상과 자신의 개인적 욕구에 반응해서 왜곡하여 대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관계 왜곡은 자신의 대인관계적 평가를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는 합의적 확인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우리는 환자들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에 수반되는 외로움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접촉이고 치료자나 의사가 그들의 일부분임을 기억해야 한다.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 역시 강한 사회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수용과 교제에 대한 욕구가 정반대의 운명에 처해 있는 권력자나 명예, 부를 지닌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다.집단에 무관심하다고 고백하는 환자들 역시 집단에 오래 있게 되면 다른 모습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이러한 사항들은 집단적 치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교정적 정서 체험환자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이전의 외상적 경험을 수정하기에 적당한 교정적 정서체험을 겪어야만 한다고 Franz Alexander가 주장하였다. 집단 치료는 이러한 교정적 정서체험의 생성을 위해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집단 치료는 자체 않에 많은 긴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긴장들은 교정적 정서체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집단원들은 집단을 충분히 안전하고 지지적인 장으로 경험해야 하고, 효과적인 현실검증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피드백과 표현의 솔직성이 있어야 한다.치료란 ‘정서적 의 특유반응은 그 반응자에 관한 많은 정보를 내포한다.집단원들은 흔히 같은 자극에 대해 매우 다르게 반응한다. 동일한 치료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미시사회의 개념은 환자에 의해 자주 도전을 받는데, 경험이 많지 않은 치료자에게 환자의 이의제기는 만만치 않으며 그럴듯하게도 보이지만 그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집단은 인위적이지만 역설적으로 집단은 밖의 세계보다 훨씬 더 진지할 수 있다.개관위의 원리들을 논리적 순서로 조직하면.1. 정신과적 증상은 혼란한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2. 정신치료 집단은 각 환자의 사회적 환경의 축소판인 미시사회로 발전된다.3. 합의적 확인과 자기관찰을 통하여 집단원들은 그들의 대인관계 행동에 대한 중요한 양상들을 알게 된다.4. 자신의 행동을 드러낸다 -> 자기 행동에 대해 더 좋은 관찰자가 된다. -> 다른사람들의 느낌에, 다른사람들이 갖는 자신에 대한 견해에, 자신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미치는 자신의 행동의 영향을 평가한다. ::: 이러한 정해진 대인관계의 단계들이 발생.5. 4번에 대한 개인적 책임감을 느낀다.6. 그러한 세계를 만든자만이 그것을 변경시킬 수 있다는 발견을 하게되어 고심한다.7. 경험이 진실되고 감성적일수록 그 영향은 더욱 강력하다.8. 환자는 다른 사람과 지내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 점점 변화한다.9. 환자는 지금까지 그의 행동에 장애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10. 집단에서 배운 행동은 결국 환자의 사회적 환경으로 옮겨간다.11. 적응적 순환이 집단 안에서부터 집단 밖으로 진행, 사회적 불안은 감소되고 자존감은 높아진다. 또한 이 과정은 치료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성과 효능성을 가져온다.전이와 통찰전이는 대인지각적 왜곡의 한 특정한 형태이다. 대인관계의 왜곡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업은 상당히 중요하다. 덧붙여 대부분의 집단원들은 지도자와의 관계보다 다른 집단원들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구결과는 말한다.통찰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풀어 말하자면 직면하고, 설명하고, 억한다.환자들은 집단을 자기것으로 내재화하기도 한다. 한 집단의 수용과 인정은 개인발달에서 지극히 중요하다. 환자들에게 집단 경험에 대한 성공적 교섭 그 자체가 치료적일 수도 있다.우리는 인정과 수용뿐 아니라 우리의 중요한 가치체계에 대해 계속적인 확인을 위해 남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치료 집단원들은 서로에게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집단에 응집력이 있다고 지각하는 환자들은 더 오랜기간 출석하고, 다른 집단원들과 더 많은 사회적 접촉을 경험하며, 집단이 치료적인 양상을 제공한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다음을 유의미하게 갖는 경향이 있다.1)다른 집단원들에게 수용된다고 느낀다2)집단원들 사이에 유사성을 느낀다.3)집단경험에 대해 질문받을 때 특정 개인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한다.또한 집단에 속해있다는 느낌과 집단 응집력에 대한 그들의 평가, 치료효과가 유의미하게 관련된다는 연구들이 있다.행위의 기제개인치료에서 좋은 관계 형성과 집단 치료에서의 응집력은 환자가 더 큰 자기 인식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실험적 증거가 있다. 집단에서 깊게 느낀 인간적 경험을 환자들에게 가치가 클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보다 인간적이며 풍부한 면을 경험하고 이를 내적 준거점으로 지닌다.집단원들의 서로에 대한 수용은 집단치료 과정에서 중요하지만 그 발전을 느릴 수도 있다. Rubin의 실험 결과 자기 수용의 증진은 다른 사람에 대한 수용의 증진과 유의미한 상관을 가진다고 밝혀졌다.보통 환자들은 의미있는 대인관계유지와 자존감 유지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자존감과 공적인 존중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 사회적 관계에서의 개인의 경험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인에게 집단이 중요할수록, 개인이 집단의 가치에 찬동할수록, 개인은 더욱 집단의 판단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과 집단간의 불일치가 부정적인 국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 경우 집단의 평가를 부인하거나 왜곡하여 악순환을 낳을 수가 있다. 그 불일치를 해결하는 최종적인 치료방법은 개인이 비.
2006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참관기 2전통, 전통문화, 전통문화축제에 대하여상업적 측면을 중심으로1. 전통, 전통문화, 전통문화축제전통이란 우리가 배워야 하거나 배울 점이 있는 일련의 문화유산들을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는 흔히 인습이라는 개념과 대조적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여러 문맥상에서 쓰는 전통이란 단어는 왠지 모르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조금은 강제성이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 자체가 오래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구식이라는 느낌도 든다. 전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러한 느낌들은 모두 전통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우리에게 전해져 온 것이라 틀리다고 할 수 없다.전통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용례 중에 ‘전통의 계승’ 이라는 관형적인 표현이 있다. 계승이란 단어는, 어떠한 것이 그 자체로 머물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가져다가 계속 그 모습을 이어나가는 형태를 표현 한 것인데 이 속에는 일시적인 모습 보다는 지속적인 모습을, 변화의 모습보다는 보존의 모습의 의미가 담겨있다.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이란 단어의 의미는 ‘오래된, 좋은, 지속적으로 현세에 보존해야(만) 하는’ 문화유산을 말하는 것이다.시대가 변화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해서, 전통의 문화유산들은 흔히 여가생활의 하나로 여겨져 공연예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로 만들어 지거나 축제 (일정 기간 동안만 벌어지는) 의 양상을 띠게 된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소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판소리나 창극, 시조창 등은 우리 생활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교적 고액의 돈을 지불하고 공연장에 가서 관람해야 한다. 그리고 농경문화를 주제로 한 각종 축제들과 행사, 특정 공연예술장르와 유명 옛 인물을 주제로 하는 축제 등은 생활의 일부라고 느낄 수 없는 정도의 특정한 짧은 기간 동안 치러지며,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다르다는) 특이함과 흥미로움 정도의 가치를 두고 축제를 즐기게 된다.이러한 전통 축제의 목적은 이미 더 이상 옛 농경사회에서 행해지던 축제 개념에서 많이 변질되거나 벗어나 있으며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말 그대로 전통적인 목적으로서의 축제의 취지는 이미 사라졌고 이를 대신하는 것으로써 대표적으로 상업성이라는 개념이 삽입되게 된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서 불가피한 점이자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된다.2. 전통축제의 상업성하지만 흔히 현대의 전통축제를 언급하거나 평가할 때 이 상업성을 걸고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축제라는 대형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공익성’이 강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의 연장선이라는 생각 아래 자신의 생활을 투자 (혹은 희생)해서 준비를 한다면 (마치 옛날 농경사회의 축제처럼) 상업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희미하거나 생활의 일부로써의 상업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취지는 사라진지 오래이며 축제를 준비하는 주체도 (이윤을 최우선을 삼는) 기업체나, 지역 단체, 관공서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상업성의 측면은 어쩔 수 없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점은 아닌 것 같다.물론 상업성이란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인정하는 바이고 축제라는 행사 자체가 TV의 홈쇼핑이나 광고수준의 저급의 상업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는 문제가 되고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점이다. 저급이라는 말은 상급이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잠시 축제라는 행사에서 드러나는 상업성의 여러 모습을 구분해 보려고 한다.일단 ‘축제의 주제를 바탕으로 하였는가’, ‘하지 않았는가’로 분류 해 볼 수 있다. 축제를 바탕으로 한 상업성으로는 기념품 사업이나 축제안의 작은 행사나 공연들의 참가비, 공연비등이 있겠고 축제의 주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상업성으로는 축제를 기회로 입점한 여러 업체들이나 기업홍보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구분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상업성의 매개가 되는 물건이나 아이디어가 ‘독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축제에 관련된 마스코트나 소재를 바탕으로, 그 축제만을 위한 것을 창조해 내어 소비자를 만나는 경우, 후자의 경우는 우리나라 전 관광명소에서 판매되는, 태극무늬 열쇠고리나 부채 등으로 대표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일시적인 것인가’, ‘지속적인 것인가’의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인 것은 대표적으로 음식이 있을 것이고, 지속적인 것은 기념품이 대표적인 것이다.이를 표로 정리해서 각각의 구분이 가지는 의미를 적어 보자면;축제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것축제의 주제와 무관한 것독창적인 것(Original)일시적인 것지속적인 것일시적인 것지속적인 것(돈을 받는)전통공연관람참여 가능한 행사전통음식 등관련전통문물모조품사진기록물 책자, 음반 등특이한 음식 부스최신 오락시설 등기업체의 신제품신 발명품 전시 등일반적인 것(Typical)일시적인 것지속적인 것일시적인 것지속적인 것전통음식 (음식축제가 아닐 때)사진 찍어주는 사람관광지 기념품 가게전통문화 관련 가게 (도자기, 붓글씨 등)동물원, 식물원놀이공원 시설 등기타 잡화 가게 등전통 축제가 비교적 고급의, 거부감 없는 상업성을 띄기 위해서는 밝은 음영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검은 부분은 오히려 축제의 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는, 부작용을 낳을 여지의 상업성이다.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2006년도 안성 바우덕이 축제는 상업성적인 측면에서 반쪽의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생각된다.3. 2006 안성 바우덕이 축제를 바라보며2006 안성 바우덕이 축제는 관람객에게 의무적으로 부담 지워지는 금액은 없었다. 다섯 개의 공연주제로 축제장의 곳곳에서 마당놀이형식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자신이 흥에 겨워서 재주꾼들에게 돈을 일이만원 쥐어주는 경우는 있어도 티켓이나 여타 다른 참가비 형식의 금액은 없었다. 또한 사람들의 참여를 도모하는 남사당패관련 재주 체험 장이 열려 참가자들의 열띤 참여를 유도했다. 물론 무료로 진행되었다. 또한 바우덕이를 소개하는 부스와 관련한 물품들을 전시하여 놓았고 비싸지 않은 각종 기념품들 전시장도 준비하였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상업성에서 자유로워 졌다는 것의 증거이고, 이것이 바람직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일단 위의 요소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논의를 계속하겠다. 각각의 요소들에 대한 한계는 다음과 같다.1. 남사당패의 재주 (공연) - 별다른 기초적인 설명 없이 바로 공연이 진행되었고 공연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몇 개 있었던 공연 팀의 멘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축제 임에도 불구하고 ‘축제에 돈 받고 공연 해주는 행사 팀’ 정도로 전락시켰다. 축제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다듬어 지지 않은 듯 한 느낌을 주었다.2. 재주 체험 장 - 취지도 좋고 다양한 시도도 좋았으나 유지시켜주는 관리팀이나 간단하게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모양새만 갖춘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3. 축제 소개 - 바우덕이와 남사당패를 소개해주는 부스는 입구 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규모가 너무나 작고 협소했으며 사진 몇 장과 교과서에 나올 법한 몇 점의 설명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있으나 마나한 구성이었으며 현재 남사당패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나 학술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4. 기념품 코너 -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악대의 목각인형을 대량으로 팔고 있었으며 바우덕이의 캐릭터를 이용한 물건들은 너무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그나마 종류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