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법학과 2006922004 강희정Ⅰ. 개괄1. 의의우파니샤드는 어원적으로 자격을 갖춘 제자가 스승 가까이(upa-ni) 앉음(sad)을 의미하여, 우주와 인간의 궁극적 진리에 대한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상징하는 말이다. B.C. 800년 이후 수세기에 걸쳐 많은 철인(哲人)과 신비가들에 의해 형성된 이 문헌은 종류도 많고, 내용도 일관된 것이 아니지만 이후의 인도 종교와 철학사상을 결정짓는 바탕이 되고 있다. 존재의 기본적 힘을 찬탄하고 존재의 근원에 회귀하여 세계와 삶의 재창조에 참여하는 행위인 제사가 아랸야까에선 내면화되고 상징화되기에 이르렀으며, 우파니샤드에 와선 그 근원적인 존재(=브라흐만, 梵)를 외적인 제사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적인 제사, 즉 작은 나의 포기와, 참 나, 근원적인 자아(아트만)에 대한 명상적이고 신비한 지식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행위로부터 내적인 지식(직관적, 신비적 지식)으로 모색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 우파니샤드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역사상 가장 심오한 탐구의 집대성이며 합리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Ⅱ. 내용1. 브라흐만ㆍ道, 自然, 神(인격신이 아님), 세계 그 자체의 본 모습ㆍ초월적이며 내재적인 보편아, 전체의 우주는 그 안에서 살고 숨쉰다ㆍ일체 만유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모든 피조물에 내재한다(경이)ㆍ온 세계의 통일성과 유기성에 대한 자각, 만유의 하나 됨에 대한 신비적인 깨달음이며 영적인 삶의 절정ㆍ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통합되어 있고 통합되는 장“ 이 모든 것은 실로 브라흐만이다 ”브라흐만은 유일무이한 것이며 이 우주에서 브라흐만 외의 제 2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의 창조와 유지와 소멸은 모두 브라흐만의 장 안에서 이루어지며 세계가 변화를 격더라도 브라흐만은 영원히 불변하는 상태로 존재한다.1) 브라흐만은 영원이다.2) 브라흐만은 존재, 지식, 무한이다. : 브라흐만은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겪는 것들과는 구별된다. 그래서 변화를 겪는 것들은 비존재이고, 브라흐만은 존재이다.3) 지식, 환희로서의 브라흐만. : 브라흐만은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들과는 구별된다. 그래서 물질적인 것은 무지식이고, 브라흐만은 지식이다.즉, 브라흐만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탁월한 지성을 가진 것이며, 그 어떤 한계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브라흐만은 어떤 속성도 갖지 않고 또 모든 존재의 바탕이므로 다른 사물이나 대상을 인식하듯이 지각이나 개념적 사고에 의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브라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에서 철인 야갸왈캬는 “그것을 안다고 하는 자는 그것을 모르는 자이고, 그것을 모른다고 하는 자는 아는 자이다.” 라고 말한다. 즉, 브라흐만은 개념화될 수도 기술될 수도 없는 초월적 실재이므로 가장 가까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의 “참 나” 즉 아트만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2. 아트만ㆍ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참된 삶ㆍ관념 이상의 흐르는 주체ㆍ삶과 죽음을 초월한, 속박에서 해탈한 유일한 자아 “나는 실로 일체 만유의 우주다”ㆍ순수직관, 내적이거나 외적인 대상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지식(편견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ㆍ자아가 지닌 의식의 유일한 본질, 세계의 완성, 영원한 평화와 행복ㆍ오직 자기 안에 있는 신이 실현될 때, 인간의 운명은 완성된다.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아트만은 최고의 가치로서, 다른 모든 가치들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것이 아니라 바로 아트만 때문에 귀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것들은 언젠가 모두 소멸하지만 아트만은 시간에 의해 파괴되지 않으며 늙음과 죽음,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고자 해야 하며 그것을 아는 자는 전 세계를 얻는다고 말한다.아뜨만은 자아가 아닌 것과 자아인 것을 통일하는 어떤 내재적 원리로 간주되고 있다. 물질과 정신, 대상과 주관, 너와 나를 하나로 꿰뚫는 어떤 내밀한 원리인 것이다.불교에서는 아뜨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뜨만은 ‘나’의 배후에 존재하는 어떤 불변의 원리이자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불멸의 영혼인데 아뜨만은 ‘나’의 앎을 가능케 해주는 순수 의식이고 ‘나’의 경험에 토대가 되는 순수 존재이다.불교에서는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저 허망하고 무상함을 제대로 알아야 함을 강조하나 힌두교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망하고 무상할지라도 그것과는 다른 영원불변의 아뜨만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불교와 힌두교의 큰 차이점3.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관계브라흐만은 간접적이며 원접한 것이고 아트만은 직접적이고 근접한 것으로 멀리 가기 위해 가까운 곳을 먼저 가듯 아트만을 먼저 접해 브라흐만으로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궁극적 실재를 인간 자신에게서 찾으면 브라흐만을 또한 알게 된다. 이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관계가 인도 철학이 인간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아뜨만은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의 안에 있다. 고로 우파니샤드에서는 초월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인간의 안에서, 아뜨만의 영역 안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경험 된다. 오직 아뜨만을 [그 자신의] 세계로 명상해야 한다. 여기에서 아트만을 통해 브라흐만에 접한다는 것은 “온 세계 운동 원리를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에 적극 순응하는 것” 으로, 인간 내면의 신성을 발견 하는 것이다.
* CONTENTS 의의 5. 영향 2. 브라흐만 3. 아트만 6. 結 4. 범아일여1. 의의 Upa – ni ( 스승 가까이 ) + Sad ( 앉다 ) - 인간과 우주의 궁극적 진리에 대한 비밀스런 가르침 Vedanta ( 베단타 ) - 베다의 마지막 부분 , 궁극적 취지 제사 ( 외적 ) 명상 ( 내적 ) 브라흐만 아트만1. 의의 카르마 ( 업 ) 카르마에 의해 생사의 반복인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일치를 탐구 범아일여 ( 梵我一如 )2. 브라흐만 Brahman 이 모든 것은 실로 브라흐만이다2. 브라흐만 Brahman2. 브라흐만 Brahman 그것을 안다고 하는 자는 그것을 모르는 자이고 , 그것을 모른다고 하는 자는 아는 자이다 . 브라흐만의 존재는 아트만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 .3. 아트만 Atman3. 아트만 Atman 삶과 죽음을 초월한 , 속박에서 해탈한 유일한 자아 “ 나는 실로 일체 만유의 우주다 ” 순수직관 , 내적이거나 외적인 대상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지식 ( 편견이나 판단 ) 도 없는 상태 힌두 교 불교 ‘ 나 ’ 가 허망하고 무상할지라도 그것과는 다른 영원불변의 아트만이 존재함을 알아야 함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저 허망하고 무상함을 제대로 알아야 함을 강조3. 아트만 Atman 원접한 브라흐만을 근접한 아트만으로 접근 아트만을 통해 브라흐만으로 다가서다 이 세계의 궁극적 실재를 인간 자신에게서 찾음 - 인도 철학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 브라흐만과 아트만 온 세계 운동 원리를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에 적극 순응 하는 것 인간 내면의 신성을 발견하는 것4. 범아일여 梵我一如 “이 브라만 , 이 끄샤뜨리야 , 이 세상 , 이 신들 , 이 모든 생명체들 , 이 모두가 곧 아트만이라오 .” 브리 2.4.6 “이 아트만은 모든 생명체들의 꿀이요 , 모든 생명체는 이 아트만에게 꿀이로다 . 아트만 속에 빛과 불멸의 뿌루샤가 있고 , 영적인 아트만으로 존재하는 것도 빛과 불멸의 푸루샤다 . 이것이 바로 아트만이니 그는 불멸이며 브라흐만이며 모든 것이다 .” 브리 2.5.14 범아일여 梵我一如5. 영향6. 結 세계의 상대적 실재성 , 영혼의 유일성 및 전체성 , 윤리 · 종교적 삶의 필요를 주장하는 가운데에 의식의 통일성에 대한 근본 개념이나 모든 존재를 하나로 묶는 근본 원리 다양한 요소 – 논리적 조화 부족 , 관념에 그쳐 힌두교와 불교의 처음과 시작* 참고문헌 거꾸로 읽는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 1, 2 권 - 이재숙 옮김 [ 한길사 ] 우파니샤드 , 귓속말로 전하는 지혜 - 이재숙 풀어씀 [ 풀빛 ]THE END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