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哲學의 理解-Report영화속의 철학-1999년작 조셉 러스낵(Josef Rusnak)감독 作 “13층”학과: 국어국문학과학번: 9818005성명: 김동호담당교수: 이수연1.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흔히 듣는 이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연해 보이는 이 말에 대해 우리는 장난조로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라든가 “나는 졸린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패러디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먹으므로 존재하며 수면을 취함으로 존재한다. 먹지 않고서, 자지 않고서 존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느끼지 않고도 존재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의 우리 인간과는 무척 다른 존재일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그만큼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먹는 것’, ‘잠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본질이 생각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은 왜일까?그저 머리로 생각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다.실로 데카르트가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은 일상적인 의미의 생각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진다. 그가 생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에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 느낌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생각한다고 할 때 그것은 곧 의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나는 그저 굴러다니는 돌덩이나 들에 핀 꽃송이가 아니라 의식이 깨어있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존재다. 물론 사람 말고도 상당수의 고등동물은 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강아지와 같은 동물은 일종의 자동기계와 같다고 보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말도 하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를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6세기 말에 태어난 데카르트는 은 그로부터 불과 40년 전에 무한한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무수히 많다고 주장하다 화형당한 브루노(Giodano Bruno)의 경우에 비하면 무척 관대한 처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만큼 교회의 권위는 약해져 있었고 이제는 경험적 연구에만 치중하는 과학자들이 아니라 사변적인 통찰에 힘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담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교회는 물론 다른 어떤 권위로부터도 자유롭게 각자에게 주어진 이성적 능력만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물론 그러한 생각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척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교회의 권위가 모든 것을 말해주던 것과 달리, 인간은 이제 스스로의 능력으로 관찰하고 발견하고 생각하며 지식을 얻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수동적 인간관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생각하는 나’의 위치를 한층 높이 평가하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다른 권위로부터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엄마 품에 안겨서 한가로이 젖을 빠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영위가 가능한 상태에서 인간은 이제 스스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과거의 권위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철학을 시도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데카르트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지식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배제해 나가면서 더 이상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을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자신의 새로운 방법을 데카르트는 ‘의심의 방법’ 또는 ‘방법적 회의’라고 불렀다.단연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알려 준 것이나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 확인되지 않은 사례 등은 언제든지 그 진위가 뒤집힐 수 있다. 결국 나에게 알려진 모든 주장에 대한 과거의 나의 생각, 그리고 막연지식이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 하나뿐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위의 이야기에 귀가 더욱 솔깃해진다. 그러나 현명한 데카르트는 그러한 반론에 답하기 위해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진 악마를 상정한다. 이 데카르트의 악마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서 1+1=2라는 것을 우리들이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지식으로 여기도록 미리 손을 써놓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가 계산해도 언제나 동일한 값이 나오므로 확실한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악한 악마의 농간에 넘어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악마가 우리로 하여금 덧셈체계에서 그런 답이 나오는 것을 확실한 진리로 여기게끔 미리 조작해놓은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 천재적인 능력의 악마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영햐을 미치고 있다.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다. 악마가 미리 손을 써서 그것을 책이라고 믿도록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을 쓴 사람도 만든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도 사실은 나의 눈에 비친 것과 같은 세상은 아니다.악마가 우리를 기만하는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엔 나도 너도 없다. 모든 것이 가짜고 허상이다. 매일 매순간 나는 악마의 농간에 놀아나는 불쌍한 존재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생각한다”는 것도 악마가 나에게 심어놓은 착각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데카르트의 절묘한 답이 흘러나온다. 데카르트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정말로 사악한 악마가 있어서 나를 줄곧 속여왔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내가 생각한다는 것조차도 악마가 나에게 일으킨 착각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바로 그런 착각이 일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악마에 의해서 속임을 당하는 ‘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혼자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칠 수는 없다. 거짓말이나 사기는위해서 신을 도입했다. 전지전능한 신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바로 그런 까닭에 피조물인 인간을 악마의 농간에 놀아나는 가벼운 존재로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악한 악마가 존재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신을 도입하는 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이른바 신 존재증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의 시도의 성공 여부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우리 현실의 삶에서 그런 악마의 존재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며 우리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존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존재의 가능성을 보일 수도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절대로 그럴 법하지 않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에는 흥미진진하게 등장하곤 한다.2. 영화 “13층”(The 13th floor)다니엘 갤로우에의 SF소설 을 영화화한 “13층”은 데카르트 못지 않게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글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조셉 러스낵의 철학적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더글라스 홀(크레이그 비어코)은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그 회사 사장 풀러(아민 뮐러-스탈)와 가상현실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1937년의 미국 LA를 모델로 창조해 낸 가상현실 시스템으로서 그 안의 시뮬레이션 캐릭터들은 현실 세계의 인간을 본따서 만들었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인 더글라스와 풀러 그리고 휘트니는 그들의 시스템 안에 각기 자신들의 외모를 가진 사이버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그런데 이 가상현실 시스템은 현실세계와 그 안의 존재들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나머지 각 캐릭터들이 시스템 속에 존재하면서 생각하고, 일하고, 먹고, 생활지만 적어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하나의 완결된 세상을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하는 일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일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는 가상도시나 가상마을을 만들어서 현실 세계의 이용자들이 그 시스템에 접속하여 접속된 다른 이용자들과 사이버 공간 안에서 상호관계를 맺는 정도는 가능하다. 이 경우 근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이용자들이 온라인에서 가상적으로 만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영화 “13층”의 아이디어는 거기에서 두 단계를 뛰어넘고 있다.먼저, 마치 기독교의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듯이 현실세계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모습과 똑같이 닮은 사이버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사이버 캐릭터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만 존재할 뿐 실재적인 존재는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전자회로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이 전자회로 다발은 너무도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져서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생생히 구현해 내는 시스템이다. 아마도 컴퓨터 산업의 발전으로 가까운 미래에 이 정도의 시스템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일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급속도로 기술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그런데 “13층”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러한 완결된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는 시스템에 인간이 접속하여 사이버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스템에 접속한 나는 시스템 안의 또 다른 나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현실 세계의 나와 가상현실의 나는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외모상으로는 동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두 개의 나는 내면적으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홀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고 존 퍼거슨은 은행원인 것처럼 말이다.물론 이때 퍼거슨이란 캐릭터와 성격은 더글러스에 의해서 창조된 것으로서 더글러스가 퍼거슨 캐릭터의 이용자가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용자가 가상현실에 접속하여 자신의 의식을 사이버 캐릭터 속으로 것이다.
국어 분류어휘표 작성을 위한 예비 작업- 어휘 분류항 검토와 분류어휘표의 설계 -1. 머리말2. 어휘 분류 항목 비교 검토2.1. 1970년대 이후 국어 분류어휘집의 검토2.2. 국어 분류어휘집의 분류항 종합3. 분류어휘표의 설계3.1. 어휘 분류 항목3.2. 어휘 배열과 체계4. 맺음말1. 머리말언어학의 제 분야가 순수하게 언어 내부의 문제나 언어 형식의 문제로서 완결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어휘 연구는 언어 외 사실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어휘는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직접적 관련을 맺음은 물론, 해당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사유나 의미, 개념에 공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에 의해 산출된 작품이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되지 않기도 한다.한 언어의 음운이나 문법은 변화가 심하지 않고, 소수의 규칙 혹은 질서로 체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어휘는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하고 그 수가 방대하여 체계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낱말밭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단어는 제 홀로 존재한다기보다는 다른 단어와 유기적인 관련을 맺으면서 존재한다. 음운론적인 대응이나 형태론적인 짜임, 의미론적인 연관성, 어원 등에 있어서 단어들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관련성은 의미에 의한 연관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의 어휘를 체계화하는 일은 주로 의미를 중심으로 하여 행해지고 그것은 분류어휘집이란 형태로 나타난다. 분류어휘집의 활용성은 다음 몇 가지다. 첫째, 의미군별로 단어의 분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각 품사 또는 語種(고유어, 한자어, 외래어)과 의미 분야의 관계를 조감할 수 있다. 셋째, 각 단어가 해당 의미 분야에서 어떠한 분포를 보이는가를 알 수 있다. 넷째,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의 언어 체계 또는 어떤 언어 작품이 갖는 표현상의 특색을 알아보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어휘교육의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여섯째, 전자 사전 제작과 기계 기서 다시 검토한다.분류 체계는 품사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로 짜여져 있다. 기왕의 방언사전들[김형규(1974), 최학근(1978), 김병제(1980)]은 명사에 대해서만 의미 분류항을 설정하고 있으나 본 질문지는 형용사, 동사도 의미 분류항을 설정하고 있다. 분류항의 순서는 방언 조사 지역이 주로 농촌지역이기 때문에 농사부터 시작되었고 해당 분류항 내에서의 단어 배열은 생활의 중요도 또는 일이 일어난 순서(예. 결혼-며느리)에 따랐다. 경우에 따라 관련된 단어를 보충하였는데, 주로 해당 명사와 관련된 동사나 숙어 등을 보충하였다. 이때는 해당 의미 분류항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예. [음식]-간장-간장 종지), 품사도 넘나들고 있다. 의미 분류항은 (1)과 같다.(1) 農事 : 耕作, 打作, 搗精, 穀物, 菜蔬.飮食 : 副食, 主食, 別食, 그릇, 부엌.家屋 : 家具, 房, 建物, 마당, 우물.衣服 : 洗濯, 服飾.人體 : 머리, 얼굴, 눈, 코귀, 세수, 상체, 하체, 피부병, 질병, 生理.育兒 : 발달, 재롱, 놀이.人倫 : 가족, 결혼, 친척.經濟 : 마을, 대장간, 單位, 數.動物 : 물고기, 벌레, 가축, 산짐승, 날짐승.植物 : 꽃, 나물, 열매, 과실, 野生樹.自然 : 山, 돌, 하루, 時候, 날씨, 방향.狀態 : 길이두께, 넓이높이, 수량무게, 색채농도깊이,감각정서, 맛, 성품인상.動作 : 요리, 受惠, 갈무리, 사육, 놀이, 이동, 감각, 교육, 인체.임지룡(1991)은 국어의 기초 어휘를 선정한 업적인데, 선정된 1,500개의 기초 어휘를 의미에 따라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다. 분류항은 기존 국어 분류어휘집의 어휘 항목을 참조하였는데 9개의 대항목 아래 35개의 중항목을 설정하고 그 아래 항목에 따라 소항목을 설정하기도 하여 명사의 경우 3단 계층 체계와 4단 계층 체계를 병행하고 있다. 분류 체계는 품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분류 항목은 명사에만 설정하고 나머지 품사는 의미 분류를 하지 않아, 기존 방언사전의 틀을 잇고 있다. 분류항 많이 차지하므로 대항목과 중항목만을 제시한다.(3) 실체 : 실체, 물질, 생성, 위치, 形相, 성상, 수량, 관계, 작용, 물체운동인간 : 인간, 인생, 日常, 인체, 능력, 形姿, 태세, 情意, 思考, 몸동작자연 : 지구, 하늘, 기상, 時空, 에너지, 생물, 동물, 식물, 식물류, 지리가정 : 가정, 인칭, 친족, 집, 세간, 옷, 음식, 살림, 경조사, 생활상사회 : 사회, 인물, 건물, 단체, 교육, 생산, 물건, 치료, 통치, 군사사회 생활 : 언어, 활동, 수단, 사업, 장사, 행사, 사귐, 놀이, 여행, 경기정신 생활 : 문화, 학술, 논저, 글, 실험, 문학, 미술, 음악, 예능, 신앙신현숙(2000)은 한국어 학습자와 한국어 교육자를 위한 학습 사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14,000여 단어를 43가지 의미 범주에 따라 분류한 2단 계층 체계이고, 각 분류 항목에 속하는 단어(=표제어)는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여 뜻풀이를 베풀고 있다. 유의어와 반의어는 표제어 외에 표로 제시하고, 그림도 곁들이고 있다. 분류 체계는 임홍빈한재영(1993)과 마찬가지로, 의미 범주를 토대로 하고 있다. 표제어는 빈도수가 높은 단어를 대상으로 선정하였고 新語도 포함하였으나 외국어, 구절 문장은 제외하였다. 품사 통용의 경우 많이 쓰이는 품사만 표시하였다. 의미 분류항은 (4)와 같다.(4) 인간과 인간관계, 가족과 친인척, 성과 결혼, 신체와 생리작용, 병과 치료, 삶과 죽음, 감각과 감각기관, 생각과 감정, 성격과 태도,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 말과 글, 언론과 출판, 정보와 통신, 교육, 과학과 학문, 종교와 믿음, 문명과 문화, 예술, 취미, 놀이와 게임, 운동, 나라 이름, 국가와 정치, 법과 질서, 국방, 사회와 사회활동, 경제와 경제활동, 직업과 직장, 산업, 연료와 에너지, 도로와 교통, 자연현상, 동물, 식물, 모양, 빛과 색채, 수와 수량, 시간, 공간과 우주, 상태와 정도, 동작이상에서 네 종류의 분류어휘집을 검토해 보았는데, 앞 두 가지는 품인용한 Browing이 편집한 Roget의 시소러스는 6개의 대분류항이고, Kipfer(1999)가 편집한 시소러스는 10개의 항목으로 되어있다., 일본의 分類語彙表는 체언류만을 대상으로 할 때, 5개의 대분류항(추상적 관계, 인간 활동의 주체, 인간활동 정신 및 행위, 섕산물 및 용구, 자연물 및 자연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와 에서 설정된 대항목은 분류항의 계층을 몇 개로 나누느냐에 따라 수용 여부가 달라진다. 에서 설정한 ‘실체’라는 항목은 ‘사람, 자연’을, ‘사회생활’이란 항목은 ‘사회, 의식주’를 항목으로 거느릴 수 있기 때문이다.다음으로, 중항목은 대상이 된 분류어휘집 중 4종 이상에서 중복되어 나타나는 항목은 동물(C, D, E, F, H, I), 식물(C, D, E, F, H, I), 음식(A, B, C, D, H), 인체(B, D, E, F, H), 지리(B, E, F, H) 등 네 항목이다. 그러나 유사 용어를 통합하고, 의미의 상하관계 혹은 포함관계에 따라 항목을 조정하면 4종 이상에서 중복되어 나타나는 항목은 (5.ㄱ)과 같다. (5.ㄴ)은 3종의 분류어휘집에서 중복되는 항목이다. 중복되는 항목은 어휘 분류 항목을 설정하는 데에 참고가 된다. 그러나 검토 대상이 된 분류어휘집이 각각 그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5)에 제시된 항목을 그대로 분류 항목으로 채택할 수는 없다. 중항목이라기보다는 대항목이나 소항목으로 설정해야 할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5) ㄱ. 겨레붙이, 경제경제활동, 광물, 교통통신, 기구도구, 農耕, 동물, 병치료, 행위, 생각감정, 數量, 時空, 時候, 식물, 食生活, 衣生活, 인간, 住生活, 地理, 天文ㄴ. 경조사, 교육, 놀이게임, 민속놀이, 사회사회활동, 언어, 예능, 人倫人事, 自然(5)의 중항목을 대항목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종합하면 (6)과 같다.(6) 자연 : 인간, 동물, 식물, 광물, 지리, 천문시공 : 시공, 時候, 수량, 교통통신인간 행위 : 인륜인사,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 경제999:256~259).그러나 국어의 9품사에 의한 분류를 하면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좀더 큰 단위인 단어의 문법적 기능에 따른 분류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용언(={동사, 형용사}), 수식언(={부사, 관형사}), 기타(={감탄사, 조사, 의존명사})로 나누고 그 아래 의미에 따른 분류 항목을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 의존명사는 실질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기타 항목에 넣어서 처리한다.분류항의 계층 구조가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져야 적당할지 말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역대 분류어휘집 중 物譜가 ‘編>部>類>項目’의 4단 계층 구조를 갖고(임지룡.1989:423), 임홍빈한재영(1993)도 4단 계층 구조로 짜여져 있어 가장 깊은 계층 구조를 보여준다. 계층의 깊이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분류가 정밀하다는 뜻이 된다. 참고로 일본 分類語彙表의 의미 계층은 5단 계층 구조이고, Roget의 시소러스는 3단 계층 구조이다.필자가 잠정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계층 구조는 문법 범주에 따른 분류항 1개, 의미에 따른 분류항으로 대, 중, 중소, 소 분류항을 설정하여 결국 6단 계층 체계를 갖는 분류표를 계획한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8)과 같다. 괄호 안의 숫자는 분류 기호다. 기타에 속하는 감탄사와 조사는 의미에 따른 분류가 가능하지 않다. 감탄사는 기쁨과 관련된 감탄사, 슬픔과 관련된 감탄사, 놀람과 관련된 감탄사, 입버릇과 관련된 감탄사 등등으로 구분하여 어느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구분해서 제시하면 될 것이다. 조사와 의존명사는 문법적 기능과 관련된 구분만 하여 제시하면 되겠다. 다만, 단위성 의존명사는 수량 항목에 포함시켜서 제시한다.(8) 체언(1)-대분류항(1.1)-중분류항(1.1.1)-중소분류항(1.1.1.1)-소분류항(1.1.1.1.1)-어휘-대분류항(1.2)-중분류항(1.2.1)-중소분류항(1.2.1.1)-소분류항(1.2.1.1.1)-어휘-중분류항(1.2.2)-중소분류항(1.2.2.1)-소분)
의 설화와 설화의 소설화과정김 동 호1. 서 론 (2) 임란 이전 형성의 의미2. 근거 자료의 검토 4. 금돼지의 정체(1) 자료 내용 (1) 역대 기록 추적(2) 관련 인물 (2) 중국 소설과의 관계3. 작품 형성 시기 5. 결 론(1) 시기 추정1. 서 론지금까지 최치원(崔致遠) 관련 설화 전승과 에 대하여는 비교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작품이 이루어진 시기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그것을 분명하게 규정지을 만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며, 그리고 작품 속에서의 최고운 출생담에 얽힌 금돼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민간 설화와의 관련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우리 고소설의 경우, 많은 작품들이 그 형성 시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설사의 기술은 물론, 작품을 해석하는 연구에 있어서도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작품을 논평하는 연구에 있어서,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중반의 작품을 오늘날 채록 민간 설화와의 관련으로 그 내용을 고찰할 때, 상당부분 소설에서 민간 설화로 이전되었을 내용을 逆으로 추정하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작품 연대의 추정은 가능한 한 기록에 의한 고증을 필요로 한다.을 최초로 학계에 발표한 정병욱(鄭炳昱) 교수에 의하면, 11편의 고소설 작품과 1편의 율시가 함께 실린 이 전기집(傳奇集: 정병욱 교수가 잠정 명명)은 그 속에 신독재(愼獨齋)의 수필(手筆)로 기록된 글이 있음으로 하여 신독재 김집(金集: 1574~1655)과의 관련성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이들 11편의 고소설 작품들은 에서 2 작품을 뽑아 싣고 있으며, 또 임란 이후의 소설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작품이 함께 들어 있어서 일단은 신독재 자신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점과, 임란 이후의 찬집이라는 것까지는 확인이 된 셈이다. 그래서 여기 11번째에 실린 도 작품 시기를 신독재가 활동하였던 시기인 효종 연간을 하한선으로 하여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이 작품을 17세기 중반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임란과 병3~1623)의 연대와 어긋나지 않아 확정적이다. 그런데 이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보다 13년이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이 소설을 충청도 보령에서 김황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군수의 신분으로서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닌, 친구의 아들에게 역사적인 위대한 문인을 왜곡 허구 과장 구성한 패설을 자랑삼아 보여 주었다는 것과, 또 고상안이 이를 자상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 등이 예사의 일로 보아 넘기기에는 무엇인가 의문이 남는다. 혹시 이들과 『최고운전』의 작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나)에서도 2 가지의 내용을 말해 주고 있다. 그 하나는 금돼지 이야기가 여기에 기술되어 있었다고 표현한 점인데, 기록의 내용으로 보아 고상안이 이전에 여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다음은, 이 소설에서 최치원의 모친이 금돼지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구출된 뒤 최치원을 낳았다고 하는 구성은 당대(唐代) 소설에 구성된 흰 원숭이 관련 구양순 이야기를 효빈했음이 의심 없다고 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금돼지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혈통과 관련된 이물교구(異物交)와 영이탄생(靈異誕生)에 비중이 더 실려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2) 관련 인물이 기록에 관련된 인물들을 자세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그 내용을 기록한 고상안은 명종 8년(1553)에 나서 선조 6년(1573)에 초시를 거쳐 3년 뒤인 선조 9년(1576)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니까 위의 이야기에 적은 기묘년(1579), 즉 선조 12년은 그의 나이 26살 때이고, 관계(官界)에 입문한 지 2~3년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시절의 일이다. 그리하여 그는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광해군이 즉위하니 임금의 난정(亂政)을 피하여 풍기(豊基) 군수직을 사임하고 향리인 용궁현(龍宮縣)으로 돌아가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인조 1년(1623)에 세상을 떠났다. 위의 기록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사람들은 이전에는 이것에 대하여 보아왔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이는 고상안이 금돼지 문제에 관하여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면서, 뒤에 당사(唐史)를 보고서 구양순 이야기와의 관련성을 알았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추단을 가능하게 한다.둘째, 고상안이 여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때, 그 뒤로 40여 년 간을 통하여 그 이상의 어떤 새로운 흔적을 발격하지 못하였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신변 잡기를 기록하면서 40년 전의 사실을 그대로 기술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어떤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였다고 한다면, 당사(唐史) 운운하는 것과 같은 또 다른 내용의 기록이 반드시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대로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히 이전부터 있어 왔다는 어떤 단서를 얻지 못했었다고 추정할 수가 있다.셋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소설을 가지고 있다가 보여준 김황의 행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의 작자를 어쩌면 그의 주변에서 찾을 수 있으 리라는 추단이다. 고상안이 이 문제를 서술하면서 너무나도 자세하게 시기와 장소, 인물과 내용 등 육하원칙에 가까울 정도의 확실성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 소설과 김황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 소설의 내용이 실제 인물, 그것도 민족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하기에 충분한 최치원의 행적을 서술하는 것처럼 하면서, 모든 소재를 가공으로 일관되게 허구 구성한 것을 그렇게 진지하게 고상안이 서술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면이 있다. 필연적으로 여기에는 민족의 우월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 내용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김황의 행적과 그의 애국정신 등을 결부시켜 생각할 때 그의 작품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를 잘 아는 주변 인물에 의하여 창작되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다.그리고 또 하나, 최치원을 죽이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러서 질책한 것에 대한 최치원의 응수이다. 밑줄 친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 황제는 자리에서 내려와 엎드려 최치원에게 돈수(頓首) 사죄 항복하고 있다.이렇게까지 당시 학자들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 것은 일상적인 어떤 굴욕에서 왔다기보다는 어떤 특수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고찰로는 이것은 이른바‘종계변무(宗系辨誣)’라는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는다. 이 사건이 문제되기는 중종 13년(1518)부터이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은 명종 · 선조 연간으로서 서력 기원 1550~1580년 무렵이었다. 이 무렵 많은 사신들이 중국에 가 교섭하는 과정에서 한없는 수모를 겪어야만 하였으니, 당시의 왕조실록 기록들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래서 황정욱(黃廷彧) 일행의 주청사(奏請使)에 의해 완전히 에서 고쳐진 것을 확인한 것은 선조 17년(1584) 11월의 일이다. 이해 11월 초하룻날, 주청사 황정욱 등이 중국 황제가 보여 주는 고쳐진 내용을 확인하고 칙명을 받들어 돌아 왔을 때의 상황을 보면, 당시 이 문제를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다음 왕조실록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의 최고 경사에 해당하는 행사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왕이 모화관에서 맞이하고(사신을), 종묘에 고한 다음, 축하를 받고, 백관의 품계를 올려 주고, 특별한 사형수를 제외하고는 죄인을 용서해 주며, 주청사 황정욱과 서장관 한응인(韓應寅) 및 상통사(上通事) 홍순언(洪純彦) 등에게는 벼슬을 올려 주고, 또 노비와 전답 그리고 잡물(雜物)들을 차등 두어 하사하였다.이 무렵,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이 사건으로 하여 중국에 대한 반감이 매우 고조되었었는데,『최고운전』에 유난이도 강하게 나타난 중국에 대한 반항 의식은 작품 논의 시기와 관련하여 고찰할 때, 바로 이 ‘종계변무’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4. 금돼지의 정체(1) 역대 기록 추적고상안의 기록에는 오직 금돼지의 사실성과 관련된 옛 문헌의 기록은 대체로 이러한 정도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돼지 관련 기록에 영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미 조선시대 이후는 돼지를 재산 증식 또는 식품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고, 일반적으로 널리 제향이나 연음에 이용하였지만, 특별히 교시(郊豕)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 선인들의 의식 속에 따로 신성성을 부여한 금돼지 의식이 새롭게 자리잡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나) 금돼지의 기술금돼지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위 돼지 기록 중 ‘고려세계(高麗世系)’와 관련된 내용에서이다. 고려 왕조의 혈통이 용손(龍孫)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 고려의 세계(世系) 기록은 와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전하지만, 그 근거는 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고려 의종(毅宗: 1146~1170) 때의 학자인 김관의(金寬毅)의 에서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이 책을 볼 수가 없으므로 조선 초에 기술된 상기의 몇 가지 전적들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이들 기록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용궁에서 가지고 나온 돼지에 대하여 그냥‘豚’으로만 표기되어 있고‘금돼지’란 표현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그런데, 같은 고려의 세계(世系)를 기술하고 있는 전적으로서, 고려 때에 기록된 것으로는 왕명에 의하여 찬술한 이승휴(李承休)의 가 유일한 것이다. 이 기록에는 작제건이 용궁에서 가지고 나온 돼지가 그냥 ‘豚’이 아니라,‘금모시(金毛豕)’로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이 부분의 원문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龍王復出謝 용왕이 다시 나와 사례한 다음,引入深宮裏 깊은 용궁 속으로 인도해 들어 가서,遂妻以長女 장녀를 아내로 맞게 해 주었도다.乞與金毛豕 금색털 돼지를 달라하고 청했더니,兼以七寶隨 칠보를 겸하여 함께 딸리어서,載送西江 실어 서강의 강가에로 보내 주었도다.還來松岳居 돌아와 송악에 거처하면서,於焉誕聖智 어언간 성스럽고 지혜로운 분을 낳았도다.위 인용문의 밑줄 친 부분에
박인로 가사 문학의 특징- 목 차 -1. 머리말-17세기 국어시가 문학발전과 사회문화적 지반2. 본론2.1. 박인로의 생애2.2. 박인로의 시가가사와 노계집2.2.1 태평사의 성격2.2.2 선상탄에서의 애국적 기상2.2.3 누항사의 현실적 묘사2.2.4 기타 작품들(술회, 노계에서 살며, 사우점 등)3.끝맺는 말1. 머리말-17세기 국어시가 문학발전과 사회문학적 기반전쟁을 통하여 무능력과 부패상을 직접 목격한 백성들은 종전과 같이 양반관료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사회생활의 각 방면에 걸쳐 자기들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기세를 강화함으로써 마침내 17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는 중세기 봉건제도의 종말을 예고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상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환경 속에서 자기들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유교윤리는 한갓 공리공담으로서 허례의식을 위해서 밖에는 더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며 삼강오륜을 표방하는 봉건적 철학인 주자성리학이 흔들리게 되었다. 양반 출신의 진보적 학자들이었던 이수광, 유형원 등은 바로 이와 같은 주자성리학의 악폐를 극복하고 중세 관념론의 제한성 속에서나마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존중하는 실학사상을 내놓았다. 이것은 그들이 학문이란 보다 ‘실천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으며 정치, 경제, 군사, 문화등 분야에서 심한 봉건제도의 폐습을 고쳐 그것을 바로 세우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실학사상은 중세기적 제한성이 있었으나 봉건사회제도의 부패상과 반동성을 비판하고 나라의 경제성과 과학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17세기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이밖에도 훈민정음이 더욱 광범히 보급되어 그것이 서사생활에서 결정적지위를 차지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훈민정음이 얼마나 이 시기 서사생활에서 광범히 그리고 실절적인 효과를 가지고 쓰이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것은 이때에 국문에 의하여 장편 소설문학이 활발히 창작되게 된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능히 알 수 있다.17세기 봉건사회에서 벌어진 이상과 같은 모든 시대적 변화는 이 시기국문시인들을 배출시켰으며 그것으로 국어시가에서 사실주의사조를 더욱 발전 풍부화 시켰다.그럼 이제 박인로의 가사문학과 그 특징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2. 본론2.1 박인로의 생애세련된 언어기교에 힘쓰기보다는 체험한 사회정치적문제를 직접 토로한, 웅건한 필치로 특정지어지는 그의 시가 작품들은 에 수록되어 있다. 에는 그의 한자 시문과 함께 ,,,,,,, 등 8편의 가사와 59수의 시조작품이 들어있다.박인로는 1561년 6월 12일 경상북도 영천 도천리의 한 넉넉지 못한 양반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제힘으로 학습하여 문장에 능하였으며 소위 ‘신동’이란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남달리 무술을 닦는데 힘을 썼으며 농사일에도 관심한 바가 컸다. 그리하여 그의 청년시절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주로 무술가로 알려지었다.그는 32세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붓을 던지고 용약 전선에로 달려가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598년에는 강화 절도사 성윤문의 막하에 초청되어 원수격멸에서 위훈을 떨쳤다. 1598년 겨울에 우리 강토로부터 왜적이 완전히 소탕되자 기쁨에 넘친 박인로는 가사 를 지어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을 위로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남달리 국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599년 39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며 수문장, 선전관 등 벼슬을 하다가 나포 만호로 계속 국방에 힘썼다. 박인로와 관련된 일련의 기록들은 그가 벼슬을 하는 기간 생활이 매우 청렴하였다고 쓰고 있는 바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무인생활과 그 후 더 큰 봉건 관직에 오르지 아니하였다는 한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통 양반관료들과는 다른 성격적 특질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이 시기에 전쟁에서 가장 혹심한 상처를 입은 영남백성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를 지었고 백성들 생활의 안정을 희구하는 자가의 인도주의적 감정을 노래한 것도 그의 성격적 특징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가에 대하여 말하면서 “시 조선에 ‘화칭’을 제의하여 옴으로ㅆ 놈들과의 관계는 다시 긴장성을 띠게 되었다. 이때 박인로는 통주사로서 부산에 부임하여 왜군들의 동향을 살피는 해상경계 근무를 책임지었다. 그의 가사 은 이때 그가 다시 소란해진 적정을 두고 지은 작품이다. 1636년 병자전쟁이 불명예스러운 강화조약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접한 그는 그때 심정을 7언 절구에 담아 다음과 같이 읊었다.나라 위한 마음 뜻 못 이루고시름으로 기나긴 밤 잠 못 이루네꿈에도 요양길 달이고 싶어라단우를 사살하고 개가를 부르고 싶네박인로는 산촌에서 밭을 갈고 노동과 빈궁을 겪으면서 말년을 보내다가 1643년에 82살의 고령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이 산촌생활의 가난하고 고달팠던 형편을 가사 에서 노래하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또한 와 함께 를 지었으며 당시 농민들이 가난한 생활처지와 불합리한 당대현실을 보여주는 한자사 , 등을 창작하였고 도덕 윤리적인 시조작품도 썼다.2.2. 박인로의 시가가사와 노계집2.2.1 태평사의 성격는 박인로가 1598년에 적들의 최후 거점인 부산에서 적들이 패주하는 것을 목격하고 급기야 서울 본영에 돌아와 전쟁에 피로한 병사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작품은 왜군들이 우리 조상들의 찬란한 문화와 평화스런 생활을 하루아침에 유린하기 시작한 전쟁발단에서 시작하여 전쟁초기의 피해 입은 생활 참상을 그린 다음 우리 군사가 마침내 적들의 무모한 침략기도를 좌절시키고 놈들을 남해바다 속으로 몰아넣은 영용한 투쟁과정을 활달한 필체로 노래한 것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마지막에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에 대한 자기의 염원과 지향을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가사는 우리나라가 동방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예로부터 예의를 숭상하고 문물이 발전하여 큰 나라들에 능히 비길 수 있다는 민족적 긍지를 노래한 다음 왜군들을 용감무쌍하게 쳐부수는 우리 군대의 위용을 영웅사적인 필체로 노래하였다. 황조일석에/대풍이 다시이니/용같안 장수와/구름같안 용사들이/정기폐공하야/만이에 이어시니/병성이 대진하야 대조적인 명랑한 색조와 정서 속에 흘러넘친다. 시인은 이 후반부에서 나팔과 북, 피리 등 악기소리를 높이 울리며 춤추고 노래부르는 병사들의 모습을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에 대한 염원과 결부시켜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가사 는 그의 강한 사회정치적 서정이 힘찬 시어와 운율로 하여 더욱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긍지, 조선의 공민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깊은 자각 등으로 커다란 교양적 의의를 체현하고 있는 정론적 가사이다.2.2.2 선상탄에서의 애국적 기상가 전승의 기쁨을 노래한 개선가였다면 그가 통주사로 왜적의 계속되는 준동에 격분을 참지 못해하면서 배우에서 부른 은 조국의 바다를 굳건히 지켜선 박인로의 변함없는 애국적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적진 쓰시마를 굽어보고 적들을 서리바람에 지는 낙엽과 같이 결파하겠다는 공민적 열정과 기개를 보여주는 은 이 세상에 전쟁의 화근이 있게 된 연원을 사회비평적 필치와 질책하는 심정을 가지고 추구하면서 자기의 멸적의 기세를 극히 격한 어조로 노래한 보다 정론적인 가사이다. 늙고 병든 몸을/주사로 보내실세/을사 삼하애/진동영 나려오니/관방 중지예/병이 깊다 앉아시랴/일장검 비기차고/병선에 구테올라/려기 신목하야/대마도를 굽어보니/바람쫓인 황운은/원근에 쌓여있고/아득한 창파난/긴 하늘과 한빛일쇠......그는 조국이 그의 방위에 자기를 불렀을 때 비록 늙은 몸이지만 병석을 박차고 분연히 궐기하게 된 심정을 노래하면서 일장검을 비껴차고 병선에 달아올라 적개심에 충만된 눈초리로 멀리 남쪽 바다속의 적들을 노려보며 의 전술로 9,10월의 서리바람에 지는 나뭇잎처럼 적을 무찌를 투지를 높은 정론적 기백을 가지고 노래하였다. 시인은 왜적이 노상 재를 타고 우리 나라를 침범해 오는 것과 관련하여 이 세상에 배가 생겨난 근원을 원망하기도 하며 또한 배가 없으면 폐도 많을 것을 고쳐 생각하면서 전설에 왜적이 생겨난 역사를 저주하는 등으로 시종일관 왜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표현하였다. 시인은 가사으 마지막도 웅건하고 활달한 문체적특성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고사와 한자시어가 많은 부족함이 있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박인로의 와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침략자를 물리친 우리나라 군대의 씩씩한 모습을 생동하게 재현하고 나라의 안전과 평화로운 생활에 대한 지향을 고조된 문체로 표현한 일종의 서사시적 가사로서 우리나라의 애국적 국문시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가사체 시가문학에서 공민적인 동시에 특히 정론적 가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시가사적 의의를 가지며 임진왜란 당시의 우리나라의 전쟁 승리와 그때 사회현실을 이해함에 있어서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2.2.3 누항사의 현실적 묘사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박인로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무관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밭을 갈고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곤궁한 여생을 보냈다. 가사 는 그가 시골에서 살고 있을 때의 생활체험을 읇은 시로서 당시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재현한 동시에 소위 “안빈낙도”와 “삼강오륜”의 이념도 일정하게 표명하였다. 그는 이 가사에서 몰락한 농촌양반의 생활처지를 반영하면서 임진왜란 농민들이 당하고 있는 일반적인 생활적 궁핍함에 대하여 노래하였다. 원래 이 가사는 이덕형이 그의 생활형편을 물은데 대해서 자기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구체적으로 숨김없이 토로하여 지은 작품이다.풍조 우석에석은 짚이 섶이 되야서홉 밥 닷홉 죽에연기도 하도할사설데인 숙랭에븬 배 쇡일뿐이노다여기에는 비바람도 가리우기 힘든 초막에서 죽도 변변히 없어 숭늉으로 빈 배를 달래는 극도의 생활난이 그려져 있다.가알히 부족거든봄이라 유여하며주머니 뷔였거든병이라 담겻이랴빈곤한 인생이천지간에 나뿐이랴여기에는 1년내내 가난에 쪼들려 사는 생활이 어디가도 매한가지 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정경은 비록 자기뿐이 아니라 모든 농민들에게 공통된 현상이라고 함으로써 이 시대 백성들의 빈곤한 현실을 일반화 하고 있다. 시인은 자기 작품에서 몸소 밭갈이를 할래야 소가 없어 못하는 자신과 물질로 좌우되는 신의없는 마을 부자와의 소 교섭과정을
☞ 파생어어근과 접사가 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이루는 것이 파생법이고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단어가 파생어이다.(합성어: 어근+어근, 이미 있는 형태소를 이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방법)☞동사 파생명사가장 생산적인 동사 파생명사: -ㅁ, -기① 명사화소 (동명사) -(으)ㅁ/-기의 역사적 조망자질에 관계없이 모든 동사어간에 자유로이 붙음-ㅁ은 행위나 결과 나타냄-기는 활동이나 본질자체 나타냄1. -ㅁ과 -기의 문법적 해석의 문제파생접사 -ㅁ, -기는 명사형 어미로도 가능해서 두 문법형태가 다의적인가 동음이의적인가 하는 문법적 해석의 문제가 제기된다.ㄱ. 나는 그가 달리기를 바랬다.ㄴ. 나는 너의 믿음을 말하고 있다.ㄱ의 경우는 (많은 사람중에)그가 달리기를/그가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달리기를ㄴ의 경우는 나는 너에 대한 믿음을/나는 니가 가진 믿음을위의 예에서 보다시피 이런 문법적인 해석의 문제들을 야기한다.2. -ㅁ과 -기의 의미론적 구분실제성과 결정성 두 자질로써 -ㅁ과 -기의 의미론적 구분을 시도한 심재기는 소일거리로(는) 바둑을 두기가 좋다, 소일거리로(는) 바둑을 둠이 좋다를 예로 들며 이 예에서 목격되는 차이는 -ㅁ이 갖는 인지자질 결정성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둠은 동사 두-에 의해 지배되는 명사 ‘바둑’을 강조하는 것으로 -ㅁ형 동명사는 지배되는 명사에 대한 선택의 가능성을 없애고 -기는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실체성의 자질로써 -기가 -ㅁ보다 명사형으로는 약하다. 소유격 조사 -의 다음에는 거의 -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ㅁ으로 된 파생명사가 왜 더 많은지 설명해준다. -기는 동작성을 지녀 형용사에는 거의 붙지 않는다.동명사와 파생명사 : 두 가지의 -ㅁ중세국어에는 -ㅁ이 의도형 접미사(삽입모음) -오/우-가 선행되어 널리 쓰였다. 이는 파생명사와 동명사형을 구분하기 위함인데 이는 곧 명사 파생접사와 명사형 어미를 구분하기 위함을 뜻한다.ㄱ. 여룸(열림,동명사) 열(우)+음=여룸ㄴ. 여름(파생명사) 열(으)+ㅁ=여름동명사에는 반드시 오/우가 쓰였으나 파생명사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음은 동명사와 파생명사의 구별이 엄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는 16세기부터 잘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ㅁ과 -기의 통계적 불균형 때문에 실체성의 자질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가 쓰인 시기가 짧기 때문인데 오히려 현대에 와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힘 때문에 학교 교육용어와 운동경기 용어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예: 누르기, 던지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뒤집기....)그럼 이제 두가지의 -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파생접사(명사파생접미사)와 굴절접사(명사형 어미) : 두가지의 -기파생접사와 굴절접사의 정의예) 산돼지가 올벼를 짓밟아 놓았다.파생접사‘산, 올-, 짓-’과 같은 형태소는 어근 형태소의 의미 내용을 한정하는 구실. 그러나 ‘산’은 그 자체로 자립 가능하며 ‘산이 높다’에서는 어근의 자리 차지할 수 있으나 ‘올-, 짓-’은 그럴 수가 없음. 산은 어근이 될 것이나, 올-과 짓-은 어근과는 다른 종류의 형태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형태소들은 뒤의 어근에 붙어 새로운 단어 만드는데 쓰이므로 파생접사라 함. 붙어 쓸 수 있는 어근의 수가 극히 국한됨.굴절접사-가,-를,-아,-았,-다 같은 형태소는 의미내용이 어근에 비해 한층 추상적이며 한 문장의 전체의미내용에 대한 판단형식을 결정함과 같은 문법적 뜻 가지고 있음이 특색이어서 파생접사와 구분되나 그것이 붙어있는 어근에 딸려 있는 점은 파생접사와 한가지. 어근에 이러한 접사가 붙는 현상을 ‘굴절’이라 하므로 굴절접사라 한다.파생접사와 굴절접사의 비교파생접사-붙을 수 있는 어근의 범위 국한됨굴절접사-제약없음파생접사-음성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한 최소자립형식 안의 어근과 의미상 관련있음. 올-,짓-은 뒤 의 어근 뜻 한정굴절접사-최소자립형식사이의 관계 나타내기도 하고,화자의 마음가짐,청자에대한 태도 따위 나타냄파생접사-파생접사가 붙으면 다른 새단어를 만들어내 때로는 원단어와 품사 달리하는 일 있음. 올벼, 짓밟다는 각각 벼, 밟다와 다른 단어이고 singer는 sing에서 나왔지만 sing과 품사는 다르다.굴절접사-새로운 단어를 만들지 않는다. 가-다, 가-고, 가-니 따위는 한 단어의 어형변화(굴절)임.파생접사는 굴절접사보다 어근에 대해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다.예) 깨뜨리셨다.-뜨리- => 파생접사 / -으시-, -엇-, -다 => 굴절접사-뜨리-는 어근 깨-에 대해 가까운 자리 차지두가지 -기의 차이점-기가 두가지의 기능으로 나누어지는 이유는 ‘보이시었겠기’ 와 같은 문장에서의 -기가 파생접사인지 굴절접사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보기의 -기는 파생접사이다. 그러나 보이시기의 경우를 보면 -시-가 -이-와 -기 사이에 들어있어 파생속에 굴절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시-가 굴절접사이므로)그러나 일반적으로 굴절접사는 파생접사의 바깥에 와서 단어를 마감한다. 국어에서 파생명사 속에 굴절접사가 있는 것은 없다. 보기는 파생명사지만 보시기는 파생명사가 아니다. 여기에 두가지 -기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동명사 구문에 쓰이는 굴절접사 -기와 파생접사로서의 -기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예) 술래잡기 : 명사로써 파생접사 (술래잡+기 : 명사파생접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