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카르멘을 보고 난 후......2005년 가을의 공기는 내게 너무나도 차가우면서도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대학 생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유롭게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걸린다는 대사병에 나도 걸린 것일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취업 준비와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이 주는 심적 부담 때문에 예전에는 자주 접하던 문화 공연을 접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그러던 찰나에 오페라 감상법을 가르쳐 주시는 김영신 교수님께서 내려 주신 과제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잠시나마 되찾아줄 문화 공연을 접할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오페라 감상법을 수강하기에 정통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서 공연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딱히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공연이 없었다. 이 때 오페라 카르멘을 뮤지컬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공연을 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보기로 마음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카르멘’하면 떠올리는 것은 비제의 카르멘과 오페라일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하바네라나 투우사의 노래와 같은 음악들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카르멘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오페라이다.이런 대중성 있는 오페라를 뮤지컬로 새롭게 만든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뮤지컬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에 따르는 부담감과 위험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도 뮤지컬 카르멘을 보기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위치한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이 공연에는 뮤지컬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쟁쟁한 뮤지컬 스타들과 가창력을 인정받은 대중 가수들 그리고 뮤지컬에 처음 데뷔를 하는 탤런트 등이 출연하고 있었다. 이 공연이 내게 더욱 흥미를 준 것은 브라운관에서 접하던 가수와 탤런트 등을 뮤지컬 무대에서 접하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공연을 예약하게 되었다. 학생신분에 부담이 가는 금액의 공연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적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는 이정도의 투자는 아깝지 않다는 생각에 공연티켓을 구매하게 되었다.공연 당일 전철을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 카르멘을 공연하는‘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니 황금빛으로 물들은 은행나무들이 “뮤지컬을 잘 보러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듯이 나를 반겨 주었다. 황금빛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행렬을 지나 공연장 입구에 다다르니 여러 가지 포스터들이 공연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카르멘...카르멘...‘카르멘’이라는 세 글자는 내게 많이 익숙한 단어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 후에는 거실에 앉아 클래식과 가곡, 오페라 등을 감상하며 자라왔는데 그 중 비제의 카르멘도 굉장히 좋아했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르멘을 뮤지컬로써 접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흥분도 되고 기대감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공연일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공연 팜플렛도 구입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이는 공연을 조금이라도 잘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시각이 가까워지자 공연장 입구가 개방되었다. 공연장안으로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물밀 듯이 흘러 들어갔다. 나도 미리 예약해둔 자리에 앉아 공연장 내부를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공연장은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빼고는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공연을 알리는 종소리가 몇 번 울리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위에서 플룻과 첼로의 연주가 시작되었고 연주가 끝나자 무대의 막이 오르며 하늘에서 줄에 매달린 카르멘과 돈 호세가 내려왔다.어두운 조명 속에서 와이어에 매달려 이리저리 몸을 흔들다가 돈 호세가 카르멘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게 되었고 둘은 무대 바닥으로 내려왔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분위기가 관중들을 압도했다. 이는 돈 호세와 카르멘의 비극적 사랑의 결말을 알려 준 것이다. 이 때 집시 마마가 나와서 카르멘과 돈 호세의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카르멘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게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카르멘을 소설책으로 혹은 오페라 등으로 접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무대는 재빠르게 탈바꿈하였고 카르멘과 돈 호세는 사라졌다. 이어서 카탈루냐 광장에서의 장미축제 모습이 나오고 카르멘은 열정적인 노래와 춤을 보여주게 된다. 본격적인 극의 전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르멘과 그를 둘러싼 젊은 남녀들의 자극적인 율동과 노래 정말 축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웅장한 사운드와 화려한 조명 배우들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율동 모든 것이 잘 어울렸고 조화를 이루었다. 아크로바틱을 하는 배우들의 덤블링과 재주넘기는 관중들에게 좋은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였고 극의 흥미를 키워주었다. 카르멘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마음을 빼앗긴 돈 호세와 카르멘이 던져준 장미 한송이를 들고 멍하니 서있는 돈 호세에게 사랑을 확인하는 돈 호세의 약혼자 미카엘라 이들 세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의 관계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무대는 바뀌어 카르멘이 일하는 술집 여기서 카르멘과 그녀를 질시하는 프라스기타의 심리를 노래로 잘 표현한다. 그리고 카르멘을 흠모하는 즈니가 경감과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술집주인 파스키야등이 등장하며 이둘이 사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러 사라진 사이에 프라스기타의 카르멘을 음해하기 위한 자작극으로 인해 카르멘과 돈 호세는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중후한 멋이 감도는 즈니가 경감과 카르멘을 자신의 보배라 말하면서 촐랑대는 모습과 돈 벌이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파스키야의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기와 노래하는 모습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정열적이고 카리스마를 지닌 투우사 에스카미요와의 카르멘을 향한 구애와 이를 거절하고 돈 호세에게 달려가 안기는 카르멘 이 둘을 보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에스카미요 사이에서도 묘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특히 에스카미요 역할을 맡은 배우의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성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무대가 바뀌고 갑자기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객석사이에서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나타난 세 명의 남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객석사이에서 노래를 부르며 무대위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깜짝 등장에 관객들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는 뮤지컬에서나 가능한 깜짝 이벤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이들은 다름 아닌 무법자 당카이레 일당으로서 부패한 경찰 즈니가 경감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비호를 받는 세력으로 보여 지게 된다. 이들이 등장할 때 등에 매달은 천사의 날개는 이들의 언행과 반대되는 천사의 이미지를 부합시킴으로써 이들의 악인 역할을 더 강조하고자 했음을 아닐는지 싶다.당카이레 일당의 등장과 함께 극은 점점 더 결말로 치닫게 되고 파스키야의 술집에서 즈니가 경감이 카르멘과 함께있는 돈 호세를 보고 자신의 부하인 돈 호세에게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고 즈니가는 카르멘에게 ‘창녀’라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고 하게 되고 결국 이들은 실랑이 끝에 돈 호세가 실수로 쏜 총에 즈니가 경감이 맞게 된다. 이어서 당카이레가 즈니가 경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당카이레는 부하들과 도망을 가고 술집 주인 파스키야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무희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무희들은 무대를 플라맹고의 격렬한 리듬으로 휩싸이게 만들고 이들의 붉은 치마가 모든 것을 덮어 버리게 된다.후에 2막에서는 집시들의 자유 촌에서의 결혼과 돈 호세의 내적 갈등 그리고 약혼자 미카엘라와의 만남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돈 호세의 카르멘을 향한 욕정 그리고 에스카미요의 등장과 구애에 돈 호세에게 등을 돌리는 카르멘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스카미요와 투우사들의 춤과 노래로 새로운 무대가 열리고 이 때 너무나도 유명한 ‘투우사의 노래’가 나오게 된다. 언제 들어도 멋지고 남성적이며 강렬한 멜로디인 투우사의 노래에 한글 가사를 붙여 부르니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투우장에 나타난 돈 호세는 카르멘에게 마음을 돌릴 것을 부탁하고 애원하지만 카르멘은 이를 거절하고 돈 호세를 격정에 치닫게 만든다. 카르멘의 거절과 분노에 격분한 돈 호세는 결국 카르멘을 칼로 찌르게 된다. 비장한 음악과 함께 카르멘이 칼레 찔려 죽자 붉은 꽃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덮고 객석까지 날아와서 카르멘의 죽음을 알리게 된다. 이어서 카르멘은 줄에 매달린 채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집시마마는 불행한 사랑의 아픔을 위로해 주는 노래를 하고 배우들도 합창으로 함께 빌어준다. ‘카르멘 바람의 여인아’를 외치면서 말이다.더 뮤지컬 카르멘은 1막4장과, 2막2장을 합쳐서 총 2막 6장으로 구성되었으며 2시간 10분 정도의 공연 분량이었다. 정통 오페라 카르멘을 뮤지컬로 새롭게 만든 더 뮤지컬 카르멘의 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우리 문화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이지만 원작에도 충실한 뮤지컬 카르멘은 새로운 시도를 몇 가지 보여준다. 기존의 음악애 새롭게 만든 가사를 붙여 부른 것 그리고 전통 집시 의상과는 달리 현대의 미적 흐름에 맞고 배우의 컨셉에 어울리는 복식을 적용했다는 점 등이다. 화려하며 섹시하고 도발적인 미를 표출할 수 있도록 여성배우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만들어서 입혔으며 남성 배우들의 의상은 여성 배우들을 뒷받침 해주는 수준에서 제작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오페라와는 달리 관객들이 심플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재미요소를 더했고, 보다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비제의 오페라 아리아는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음악은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 오페라의 정의2. 오페라의 기원 - 성립과 배경3. 오페라의 역사4. 오페라의 종류5. 오페라의 구성요소6.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7.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8. 오페라 용어9. 재미있는 오페라 감상법10. 수업을 통해 느낀 점1.《오페라의 정의》종합예술로서 노래를 중심으로 한 극의 형태로 상연하는 오페라는 음악을 위시하여 시, 연극, 미술, 무용 등으로 이루어지는 극히 복잡한 예술이다. 쉽게 말하지만 어떤 작품을 무대위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일관성 있게 노래하는 비극적 또는 희극적인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으며 거기에 문학적인 요소를 가진 대사와 연극적인 요소의 구성과 연기가 따르기 마련이다. 여기에 덧붙여 발레와 무용이 있고 무대장치와 의상 등 미술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므로 오페라는 이러한 모든 자매예술을 총망라한 종합예술이다.Opera라는 말은 본래 라틴어 opus(작품이라는 뜻)의 복수형으로서 초창기에는 Drama in Musica 또는 Drama per Musica라 불렸다. 후에 Opera in Musica라 했고 이를 다시 생략하여 Opera로 사용하게 되었다.오페라에 있어서 극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이 어떻게 조화될 것이며, 또한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생각할 때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오페라는 대사에 멜로디를 작곡한 것이며 이러한 음악은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독창자는 그 배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으로 구분하여 독창, 중창을 노래한다.독창자는 Aria, Recitative 그리고 장면에 따라 Aria보다 단순한 Cavatina 또는 Romance, Serenade 등을 노래한다. 합창은 군중들의 역활을 하며 오케스트라는 노래의 반주와 등장인물의 감정과 정서적인 면, 행동 등을 묘사하고 강조하며 무대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밖에도 서곡과 전주곡 등을 연주한다.2.《오페라의 기원 - 성립과 배경》오페라의 탄생은 바로크 음악(16세기 말 ~ 18세기 중반)의 가장 중요한 다.* 징스필의 탄생민족이나 종교는 달라도 게르만 제국의 왕후들은 모두 독일어에 의한 예술의 모든 민족적인 시도를 한결같이 의심의 눈길로 보고 있었다. 왕후들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지하고 있었다.드레스덴의 핫세, 베를린의 그라운, 슈투트가르트의 이그나츠 홀츠바우어(1711-83) 등은 모두 이탈리아파의 작곡가였고 빈의 가스만, 글룩, 바겐자일(1715-77)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사르티나 나우만은 덴마크나 스웨덴 혹은 러시아로 활동의 무대를 넓혀 나갔다.그리고 오늘날에는 하이든의 오페라가 당시의 오페라 세리아나 세미세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그러나 독일어에 의한 최초의 몇 가지 시도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상연된 사적인 환경이 그러한 작품이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역사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징스필(Singspiel,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는 말은, 오케스트라의 비중은 두드러져 있었으나 아직 오페라 코미크와 대등한 말로 정의되기 이전에는 바로크 오페라나 북부 지방의 발라드 오페라를 이어받은 국민적 오페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북부에서는 고트셰트 Gottsched가 오페라라는 장르 고유의 허구성을 물리치고 대본의 절대적인 우위성을 주장했고, 요한 아돌프 샤이베(1708-76)는 1749년에 이미 대본과 음악 모두 자기가 쓴 작품을 징슈필이라고 불렀다.* 모차르트에 의한 통합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오늘날에야 당시의 전 작품의 정상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식적인 혁신을 가져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당시에는 오늘날 상상하는 만큼의 충격은 주지 못했다.대본이 너무 복잡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고, 아주 새로운 대본에 따른 “피가로의 결혼”은 제외하면 이야기의 줄거리는 모두 이미 다른 음악가들이 다룬 것이었다.또 징슈필의 작자들이나 트라에타, 살리에리, 파이지엘로, 달레라크 등으로부터 차용한 부분은 관례를 따르고만 있었다.“리에토 피네 lieto fine[I](해피엔드바흐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평민 관객은 악극을 즐길 수 있었는데 19세기가 되어 평민이 시민으로 승격이 되고 과거의 악극이 오페라에 흡수되자 다시 이전의 악극 같은 부담 없는 형식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장르인 오페레타를 즐기는 관객은 과거처럼 반드시 무식한 대중이 아니었다. 오페레타는 가볍지만 이전의 악극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주로 프랑스 관객의 구미를 당기는 것은 신랄한 정치 풍자였는데 정치 풍자는 시간이 흐르면 맛이 덜해지기 마련이고 더구나 러시아와 프랑스가 전쟁을 하면서 독일 출신이던 오펜바흐도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오페레타는 빈으로 중심지를 옮겨 또 다른 성격을 부여받게 된다. 복잡한 세상사를 피해 마시고 춤추며 남녀가 어울려 마냥 즐겁게 놀아 보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에 부합한 것이 빈 풍의 오페레타이다. 20세기가 되자 빈 이외에도 베를린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당시의 경음악에 가까워진 오페레타가 나왔으나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오페레타도 즐겁기만 할 수 는 없었다. 빈 오페레타도 점차 센티멘탈한 경향으로 나가다가 독일권을 나치 정권이 점령하고 나서는 거의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뮤지컬은 미국의 악극도 계승하여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작품이 나왔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스타일을 발전 시켰다. 형식이 오페레타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소재가 훨씬 다양하고 희극에 국한 하지 않으며 문학 작품의 각색도 많다. 그 밖에 큰 차이점이라면 성악의 위상이 다른 점이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의 발성법을 사용하지만 뮤지컬은 그렇지가 않다. 노래의 기교적 부담이 오페레타보다 적어진 대신 배우가 직접 춤을 추어야 한다. 따라서 뮤지컬 배우는 따로 훈련이 필요하다.♠ 팝페라 (POPERA)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새롭게 각광 받아온 크로스오버 음악이 바로 팝페라 [Popera]다.팝(POP)과 오페라(Opera)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합성어는 '대중화된 오페라' 혹은 '팝음악 스타일화 된 오페라',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은 생애 동안 벨리니는 평균적으로 1년에 한 작품밖에는 만들지 않았다. 그의 다음 오페라는 였는데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1831년에 , 등을 발표하면서 벨리니의 행보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이 두 작품은 성격에 있어서 크게 대조되는데, 앞의 것이 목가적이고 부드럽다면 뒤의 것은 영웅적이고 비극적이다. 벨리니의 다음 번 오페라 는 벨리니에게는 고통의 원천이 되었다. 작품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은 벨리니 자신의 높은 기대와는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벨리니는 의 실패에 깊이 좌절하여 이탈리아를 떠나서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파리에 잠시 머무른 그는 런던에 가서 한여름까지 머물면서 그곳에서 공연되기로 되어 있던 새로운 작품에 대한 협상을 계속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남은 생애 두 해를 파리와 그 근방에서 보냈다. 1835년 마지막 작품인 를 발표하고, 서른 네 번째 생을 불과 여섯 주 남겨 두고 파리 근교 푸토에서 숨을 거두었다.♠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 (1797-1848)) ♠베르가모 태생인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로시니, 벨리니 등과 함께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은 가업을 계승시키려고 했으나, 음악 공부를 고집하여 결국에는 부친의 허락을 얻어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18세기 경에 그는 볼로냐 음악원에 입학하여, 맛티에게 대위법을 배워, 그 무렵부터 가곡, 종교곡, 오페라를 썼는데, 초기의 오페라 3편은 미상연이었다. 그의 초기 오페라 작품은 로시니의 영향을 받아 로시니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는데, 1830년에 , 이듬해에 , 이어 등 연달아 발표하여 국내에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높였다. 계속해서 , 등으로 인기의 절정에 올라섰다. 속필이었던 도니제티는 생애에 67곡에 이르는 오페라 외에, 다수의 성악곡, 기악곡을 작곡했는데, 그는 주로 오페라 분야에 걸작을 남겼다.19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오페라부파에서 오페라세리이는 말에 그녀의 가슴은 메어질 것 같다.손님들이 식당으로 물러간 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불러 돌아가달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는 비올레타의 배반을 추궁한다.제르몽과의 약속 때문에 비올레타는 남작을 사랑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로 그를 단념시키려고 하나, 이 말에 더욱 흥분한 알프레도는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불러서 비올레타를 조소한 끝에, 도박에서 딴 돈을 그녀에게 던진다.일동은 알프레도를 비난하고 비올레타는 격한 감정을 어쩔줄 몰라 그 자리에 실신해 쓰러진다. 그 곳에 제르몽이 들어와서 아들을 몹시 책망한다. 알프레도는 자기의 추태를 뉘우친다.한편, 비올레타는 자신의 저주스럽기만 한 처지를 애통해 한다.8중창이 합창으로 확대되어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제3막은 비올레타의 병실, 때마침 거리는 카니발로 들끓고 있건만 병실에서는 침울한 죽음의 장막이 드리운 듯하다. 비올레타의 병상 옆에서 하녀 안니나가 간호에 지쳐서 졸고 있다. 왕진 온 의사는 안니나에게 비올레타의 생명이 경각에 있다는 것을 귀뜀해주고 간다.비올레타는 하녀를 심부름 보낸 뒤, 제르몽에게서 온 감사의 편지를 꺼내서 읽는다.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게 되고 오해가 풀린 것은 반갑지만, 이제 죽음을 앞두고 비올레타는 모든 것이 허망하기만 하다.거울에 비친 수척한 얼굴을 보고, 그녀는 '지난 날의 아름다운 꿈이여, 안녕'이라는 한없이 애달픈 노래를 부른다. 밖에서 들려오는 카니발의 흥겨운 합창은 더한층 방의 적막감과 대비된다.이때, 하녀가 뛰어 들어오면서 알프레도를 만났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프레도가 들어와서 그녀를 포옹한다."아! 나의 비올레타! 나는 죄 많은 사나이다!"비올레타의 두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뿐이다.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행복의 꿈을 맺어보자는 내용의 '파리를 떠나서'라는 2중창을 부른다.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가슴에 힘없이 쓰러진다. 달려온 제르몽의 인자한 말에 대답하는 비올레타의 두 볼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다.
2003년 11월 27일 목요일 아침. 검은 빛이 스산하게 감도는 하늘의 모습이 왠지 심상치 않다. 마치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하늘을 이따금씩 올려다보며 여자친구와 함께 발걸음을 재촉 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아침 고요 원예 수목원’이란 곳인데, 수목원을 다녀온 후 그 답사기를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답사기를 위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 경기도 가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며칠 전 사고를 당해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었던 탓에 보고서 제출 소식을 늦게 접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5일 전에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해야 하는 광릉수목원이나, 주말에만 주민들에게 개장을 하는 홍릉수목원 등 서울 근교에 위치한, 그나마 찾아가서 관람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점찍어 두었던 수목원 몇 곳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질 않아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연찮게 친구의 도움으로 ‘아침고요 원예 수목원’ 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 생각하고,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적극적인 답사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서 접한 정보를 최종적으로 정리한 후에 이정도면 다녀와도 후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친구와 함께 사고의 아픈 기억도 잊을 겸, 바람도 쐴 겸 해서 길을 나서게 되었다.일단은 집 근처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으로 간 후에 전철을 타고 청량리 역으로 간 다음 경춘선 기차를 타고 청평역에서 하차한 후에, 렌터카를 이용해서 가평에 위치한 ‘아침고요 수목원’ 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계획대로 한 단계, 한 단계씩 일이 진행되어 지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니 어린 시절 소풍을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기차간에서 판매하는 김밥을 사먹어 보기도 하였다.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풍경들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임을 잘 느낄 수다. 잠시 동안 이런 저런 옛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다. 지인들과 적지 않은 추억들이 스며들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옛 생각을 뒤로 한 채 미리 알아둔 렌터카 회사에 연락을 취하고 5분 정도 기다리니 봉고차 한대가 어디선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우리 앞에 차를 세우고 뒤 칸에 타라는 손짓을 보냈다. 우리는 마냥 즐거웠고 그런 탓에 싱글벙글 웃으며 봉고차에 올라탔다. 수목원으로 가는 길에 운전기사 아저씨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목원으로 향하였다. 기사아저씨 얘기로는 청평역에서 수목원까지는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 된다고 하였고, 5월 달이 가장 꽃구경하기가 좋은 시기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수목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고, 도로 확장공사와 포장공사를 하는 바람에 여기 저기 널린 중장비들과 도구들로 인해 좁아진 길을 차량들이 간신히 피해서 통행을 하는 모습을 보고 위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언덕길과 좁다란 비포장 길을 달린 후에야 아침고요 수목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수목원 입구에 우리를 내려준 뒤 렌터카 기사 아저씨는 풋풋한 시골내음 나는 친절한 미소가 담긴 인사를 뒤로한 채 달려온 길을 되짚어 갔다.넓게 트인 전망 차가운 공기 다 같은 사람이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공기겠지만 서울이란 대도시의 공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수목원에 입장하기 전에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에 매표소로 향하였다. 수목원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아침고요 수목원’ 은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정원을 만들려는 뜻을 가지고 1996년에 한상경 교수(삼육대학교 원예학과)가 설립한 원예 수목원이라고 한다. 개인이 만들고 가꾼 수목원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정말 나무를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편지’ 의 촬영 장소로도 많이 유명해졌는데 수목원 관람 도중에 극중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지닌 나무가 있는 자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받고 안내책자를 한 장 받았는데, 간략한 수목원 소개와 함께 수목원 내부의 안내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계절별 원예 전시회 일정도 적혀있었는데, 11월에는 국화 전시회가 있다고 하였다. 수목원의 개원 시간은 오전 9시였고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개방 운영하고 있었다. 모두 18개의 관람 코스로 이루어진 아담한 크기의 수목원 이었는데 그 구성이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수목원에서는 지원 및 계획 사업도 진행 중이었는데, 수목원 내에 위치한 시청각실 에서는 수목원 소개와 사계절에 관한 슬라이드를 무료로 상영하였고 영화나 드라마, CF, 뮤직비디오나 웨딩 촬영 등의 장소로도 제공되고 있었다.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과 전통찻집 그리고 선물코너와 허브용품 등을 판매하는 허브샵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허브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허브샵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하였다. 그리고 수목원에서는 전시장을 대여해 주기도 하였는데 미술전이나 사진전 등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수목원 입구에서는 산불조심이라는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곳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꽃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특히 더 불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문구였다.매표소 입구를 지나 고향집 정원과 분재 정원, 단풍정원, 에덴동산, 아이리스 정원 등 각각의 주제를 가진 정원과 동산들이 위치하고 있었고, 자세하게 표시된 나무로 만들어진 안내 푯말은 수목원 안의 길을 쉽게 알려주고 있었다. 수목원 안에서 처음으로 접한 고향집 정원과 분재 정원은 이름 그대로 고향집의 정원의 모습을 만들어 보여주고 있었으며 정자보다는 원두막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구조물과 수석 그리고 나무들이 고향집의 향취를 느끼게 하고 있었고, 분재 정원에서는 자연경관에 소나무, 단풍나무, 소사나무 등의 분재 작품을 조화시켜 놓은 자연과 분재의 조화를 꾀한 정원의 모습이었다. 수 인지 나무 벤치도 많이 있었다.분재 정원에서는 크고 작은 분재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항아리처럼 생긴 화분에 분재를 해놓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본 곳이 단풍정원과 아이리스 정원이었는데 단풍정원은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가을빛깔의 단풍나무들로 꾸며진 정원이었는데, 날씨가 많이 추워진 까닭인지 단풍이 다 지고 화려한 단풍의 모습은 많이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 정원이었다. 아이리스 정원은 5월과 6월이 절정기인데 300여종의 아이리스가 울긋불긋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며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는 정원이라고 하는데, 아이리스 정원에서도 화려함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시기가 많이 늦고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봄과 여름의 수목과 꽃의 화려함 들과 싱그러움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꽃 잔디와 철쭉으로 이루어진 하경정원과 정원나라 그리고 하경정원 전망대를 지나 도착한 곳이 에덴동산 이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있던 에덴동산은 아니지만 에덴의 동산처럼 아름답게 잘 꾸며놓은 동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에덴동산에서도 겨울은 느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가본 곳은 한국정원(민속마을) 이었는데 이곳에는 도원이라는 전통 찻집도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정원에는 전통가옥 서 너 채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가옥 뒤편에는 땔감으로 쓰일 땔 나무들이 차곡차곡 잘 쌓여져 있었다. 가옥 주변에 항아리처럼 생긴 모양의 굴뚝이 있었는데, 아마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나오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정원에는 장독대가 있는 초가집, 양반대가집 등의 종류별 전통가옥과 각 종의 한국의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이었는데, 수목원 측에서 말하기를 고향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의 마음에 포근한 위안이 되도록 꾸며 놓은 정원이라고 하였다. 한국정원에서 감상을 마치고 성서산책로 라는 긴 흙길을 따라서 다다른 곳이 ‘하늘나라’ 라는 곳이었는데, 우리들이 흔히들 말하는 하늘나라 즉 천국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하늘나라에는 통나무로 만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길에 놓인 계단을 밟고 하늘나라 십자가 곁에 서보았는데, 수목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말 하늘나라 같이 높고 깨끗하며 신성한 느낌을 받는 그런 곳이었다.하늘나라에서 내려오니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는데, 금방 날이 저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선녀탕이란 곳을 감상하게 되어있는데, 계곡과 같은 곳으로서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로 인해 선녀탕은 직접 보고 오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하늘나라에서 바로 간 곳이 침엽수 정원과 야생화 정원이었는데 침엽수 정원은 말 그대로 침엽수들로 이루어진 정원으로써 구상나무, 은청가문비, 주목, 황금화백 등의 다양한 색상의 침엽수를 배식하여 표현한 늘 푸른 다시 말해서 상록의 정원이었다. 멀리서 보면 금빛과 초록빛의 조화가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정원이었다. 야생화정원은 한국에 자생하고 있는 각종 야생식물로 꾸며진 정원으로서 우리 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뿌리를 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곳이었다. 수목원을 관람하면서 안내책자에 나온 관람 순서 말고 따로 표시된 곳도 몇 곳이 있었는데 구근정원과 매화정원 탑골과 에덴 계곡등이 그것이었는데, 구근정원은 튜울립과 수선화, 크로커스 등의 화려하고 컬러풀한 꽃들로서 봄을 수놓고 여름에는 각종의 백합꽃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정원인데, 시기를 잘못 골라서 간 이유로 화려한 꽃들이 펼치는 장관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려고 하니 정말 많이 섭섭했고, 내년 봄이나 여름이 돌아오면 꼭 다시 한 번 수목원을 찾아서 화려한 꽃들의 향연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까지 했다. 수목원 안에는 시가 있는 산책로와 온실전시장이 있었는데 그나마 온실 전시장 안에서는 만개한 꽃들의 자태를 맘껏 볼 수 있었다. 꽃을 보는 순간 정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나팔꽃이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다. 비밀로 만들어진 온실 안에는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난로도 들여놓은 것 같았는데, 꽃말이다.
쿠데타란 무엇인가?行政學科 민현수쿠데타 발표 자료coup d'etat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목 차(目次)쿠데타 발표 자료Ⅰ.서론(序論)-들어가며 1.쿠데타의 개념(槪念) 2.쿠데타의 본질(本質)과 특징 3.쿠테타의 유형(類型) 4.쿠데타와 혁명의 유사점(類似點)과 차이점(差異點) 5.쿠데타의 성립(成立)조건 Ⅱ.본론(本論)-쿠데타에 대한 사례분석 1.프랑스의 나폴레옹1세, 3세 쿠데타(프랑스의 사례) 2.한국(韓國)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사례(5∙16과 12∙12 쿠데타) 3.한국 군사쿠데타의 결과와 과제 Ⅲ.결론(結論)-발표를 마치며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1.쿠데타의 개념쿠데타는 프랑스어로 국가에 대한 일격을 가한다는 뜻으로 개인 또는 집단이 제한된 폭력을 행사하여 정부당국의 지위를 기습적으로 탈취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쿠데타는 지배적 세력의 일부가 이미 장악하고 있는 권력을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하여 또는 새로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동일한 지배세력 내의 다른 부분에 대해 비합법적이고도 무력적인 수단으로 기습을 감행하는 것을 말한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쿠데타의 본질과 특징(1)쿠데타의 본질 쿠데타는 피치자 대중(大衆)이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혁명과는 달리 동일한 지배계급 내의 권력의 탈취투쟁에 의해서 정권이 이동하는 것이다. 쿠데타는 비합법적 방법에 의한 통치기구 내의 수뇌부의 교체, 즉 정치권력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쿠데타도 역시 일종의 정치변동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쿠데타를 권력의 수평적 이동이라고 한다면 혁명은 권력의 수직적 이동이라 할 수 있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쿠데타의 본질과 특징(2)쿠데타의 특징 군대, 경찰, 기타의 무장집단(돌격대나 무장민중)에 의한 무력행사로서 대부분의 경우 극비리에 계획되고 준비가 진행되어 급습에 의해서 일시에 일을 결정하는 형식을 취한다. 권력기관이나 보도, 통신기관이 집중된 수도에서 발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력탈취에 성공한 경우 군사력을 배경으로 해서 계엄령의 시행, 언론 출판의 통제, 반대파의 숙청, 의회의 정지, 헌법의 개폐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3.쿠데타의 유형쿠데타는 혁명과는 달리 지배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쿠데타의 유형은 주체자의 신분과, 발생장소, 그리고 방법 등에 따라서 ①궁정혁명(palace revolution) ②군부쿠데타 ③교조주의적(敎條主義的)인 전투정당에 의한 대중적 급습 ④수동적 혁명(passive revolution) 등으로 분류된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4.쿠데타와 혁명의 유사점과 차이점(1)유사점 기존의 법질서를 무시하고 비합법적인 무력에 의해 권력을 탈취하는 점. 의회 정지나 헌법의 개폐 등 일련의 변혁을 위로부터 강행한다는 점. 나폴레옹 3세 帝政의 경우처럼 쿠데타로 인한 체제변혁 등에 대해 모든 외국에 대한 新정부의 승인문제나 동맹관계의 계속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점.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4.쿠데타와 혁명의 유사점과 차이점(2)차이점 쿠데타는 본질상 지배층내부에 있어서의 권력쟁탈의 투쟁이고 권력이동이다. 설사 쿠데타가 여론의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야심적인 개인 또는 집단의 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 기초한 정권전복인 경우가 많은 점 등은 혁명과 다르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5.쿠데타의 성립 조건사회적 무질서와 야심적인 정치가나 군인 등이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민적인 규모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와 심각한 불안이 존재하고 또 기성 정치세력에 문제해결의 능력이 없고,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되어 있을 때 등의 요소를 쿠데타성립의 객관적 요소라 한다. 힘에 의한 정치의 풍조가 강하고 또 국내에 있어서 거의 완벽한 조직으로서의 군대와 실력과 위신을 가지고 정치에 대한 강한 야망을 갖는 야심적인 정치가나 장군 등의 존재를 쿠데타성립의 주관적 요소라 한다.쿠데타 발표 자료-서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Ⅱ.본론- 쿠데타에 대한 사례분석coup d'etat storke of state blow of state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1.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 3세 쿠데타근대 정치사적 관점에서 최초의 쿠데타쿠데타 발표 자료-본론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3세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1).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1)배경: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 이후 집권한 디렉투와르(총재정부)의 부패와 무능함. *전쟁의 지속으로 인한 군부세력의 성장. *국제적으로 고립된 프랑스 내외의 정세. 2)전개: dix-huit Brumaire -브뤼메르 18일 *1799년 11월 9일(혁명력 3년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총재정부를 뒤엎고 독재체제를 구축한 사건.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1)배경: 제 1제정의 붕괴 이후 계속된 사회 혼란(2월 혁명) *대통령 당선 이후 의회와의 충돌 2)전개: 1851년 12월, '공화파'를 추방하고 독재적 권력 장악 *대통령 임기 10년으로 연장, 황제의 자리에 오름.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 한국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사례 - 5.16 과 12.12 쿠데타-왜 쿠데타로 불리는가: 지배 권력의 수단 (군부)의 권력장악 - 반란 쿠데타 체제개편 없음 (5.16의 경우 명목상의 혁명공약)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1).1961년 5 ∙16 쿠데타1)배경: 부산정치파동 정군운동 파벌주의 2)전개: 혁명공약(반공, UN헌장 및 국제협약 준수, 자유우방과의 유대강화, 민생 고 해결, 통일을 위한 실력 배양, 정 권이양)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1).1961년 5 ∙16 쿠데타3)원인 : ☞ 촉발요인 ① 인사불만 ② 과대성장 ③ 신기술의 발달 ④ 신 직업주의 ⑤ 군부 내 파벌갈등 ☞ 유인요인 ① 장면정권의 무능 ② 좌우대립 격화 이념의 양극화 사회 혼란 ③ 국민지지 상실 = 성공요인으로 보기도 함 4)평가 : ① 부정적인 면 ② 긍정적인 면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 1979년 12∙12 쿠데타 (전두환-노태우 군사 쿠데타)1)배경: *박정희의 군내 친위세력이었던 '하나회' *신 직업주의적 정치성향의 군부 *10.26 사태 2)전개: 정승화 강제 연행 · 병력 이동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2) 1979년 12∙12 쿠데타3)원인: ☞ 촉발요인 ① 고도로 정치 의식화 된 '하나회' ② 신 직업주의적 성향 ③ 하나회 세력의 인사불만과 불안, 도당적 이익 ④ 군부 내 파벌의 조성과 대립 ⑤ 하나회 세력의 기존질서 수호 ☞ 유인요인- 없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2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군부에 비해 사회 세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성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3.한국 군사쿠데타의 결과와 과제결과: 사회 곳곳에 팽배한 군사문화, 권위주의 과제: 군의 정치적 중립 확립 사회세력의 성장 민주시민의식의 확립 = 유인요인 제거쿠데타 발표 자료-본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Ⅲ.결론(結論)-발표를 마치며혁명이나 반란(특히 그 규모가 큰 반란)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대중봉기」를 수반하는 데 대하여, 쿠데타는 정치적 또는 군사적 엘리트의 내부에서 일어나며 그 자체로는-(비밀리에 단행해야 한다는 속성상)-널리 대중적 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같이 혁명, 반란, 쿠데타는 그 목적, 수단, 결과의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므로 그 개념규정이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쿠데타 발표 자료-결론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참고문헌(參考文獻)배찬복, 『풀어쓰는 정치학』 (한국학술정보, 2003). 안청시 외, 『현대한국정치론』 (법문사, 2000). 이극찬, 『정치학』 (법문사, 2000). 김호진, 『한국정치체제론』 (박영사, 1997).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공저, 『정치학의 이해』 (박영사, 2003). 김순규 외, 『정치학의 이해』, (박영사, 2000).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aedia Britannica) 한컴 국어사전(용어참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백과사전 및 지식정보 시스템 참고. (daum, naver, yahoo etc...)쿠데타 발표 자료-참고자료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THE END끝까지 저희들의 미흡한 발표를 경청해 주신 교수님 이하 학우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쿠데타 발표 자료-THE END정치학 개론(槪論) – 이영형 교수님{nameOfApplication=Show}
목 차(目次)Ⅰ.들어가며(序 論)Ⅱ.본론(本 論)1. 재래시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2. 재래시장 활성화 필요성3. 재래시장의 문제점과 정비의 필요성4. 재래시장 활성화 추진현황과 문제점5. 재래시장의 활성화 방안6. 재래시장 활성화 모델7. 종합적 시사점 및 표준 로드맵8. 재래시장의 발전방향 및 미래상Ⅲ.끝맺음(結 論)※기타 참고 자료 첨부Ⅰ. 序 論(들어가며)한 국가의 경제가 올바르게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유통부문, 생산부문, 소비부문의 균형적인 발전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거 우리나라의 유통산업은 정부의 제조업 위주의 성장 정책과 공급자 주도의 시장 시스템으로 인해 성장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비효율적인 산업 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또한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 아래에서의 유통산업 부문은 재생력을 키우는 데 소홀히 했으며, 불합리한 유통구조로 인한 비효율도 대부분 소비자에게 전가되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과 함께 시장 개방화의 압력이 거세어지면서 1996년부터 우리나라는 유통시장을 완전 개방하였다. 이러한 개방의 물결에 따라 막대한 자금력과 풍부한 경영 노하우를 배경으로 하는 선진 외국의 유통업체가 국내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국내 유통업체로서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외국 유통업체는 선진경영기법과 조직적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유통업체는 규모나 경영노하우 측면에서 경쟁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외국 유통업체의 국내시장 침투에 대해 국내유통업체 및 정부가 신속하고도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국가경제의 손실과 함께 개별 유통업체의 경영악화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여겨진다.특히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은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직도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유통현대화 과정에서 계속 낙후되어 가고 있다. 또한 재래시장은 디스카운트 스토아, 회원제 창고 형 점포, 상설할인매장 등 저가 할인점들의 등장으로 기존의각 다른 입장에 서 있어 효과적인 운영을 저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 간의 상반반 이해관계로 인한 각종 분규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 통일된 의사결정이 요구되거나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고자 할 때 장애요인으로 나타난다.둘째는 재래시장을 현대화하는데 있어 주체가 모호하다. 시장은 시장개설자가 임대하는 임대시장과 분양시장으로 나눌 수 있고 분양시장은 다시 분양자가 직영하는 직영시장과 재 임대하는 재 임대시장으로 나누어진다. 이때 시장개설자는 산업분류상 부동산임대업으로 분류되어 있어 자체 자금이외에 타인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고자 할 때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여신운영규정상 부동산임대업은 서민주택 임대업과 공장부지 임대업을 제외하고는 여신금지업종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에 입주해 있는 입점영세상인들은 시설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설근대화를 할 수가 없다.셋째는 건축 관련 법규가 미비하고 용도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건축법상 주거지역내에는 시장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단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할 경우 기존판매시설의 면적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시장이나 주택건설촉진법에서 주택 단지 내에서 재개발되는 시장만은 기존의 매장면적을 기존면적의 2배까지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일반주거지역과 전용주거지역에서는 신규 시장개설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지역들 일부는 이미 상당히 상업화되어 있는 실정이다.현재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지역에 대한 도시계획시설의 결정은 시?도지사에 위임되어 있는 실정이므로 상기지역들이 준주거지역으로 변경되어야 시장의 신규개설이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시장현대화 계획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도?소매 재래시장을 주상복합건물로 개발할 경우 개발단계에서의 역할집단인 건축주와 임대시장상인, 그리고 개발 후 건축물의 사용자인 거주인과 거주 집단간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넷째 재래시장을 재개발하기도 용이치 못하다. 현재 많은.정부에서도 재래시장의 시설개선에 초점을 두고 시장의 시설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대폭적인 재개발 자금의 지원, 재건축 기준의 완화(상업시설의 건폐율과 용적률의 상향조정, 기존매장면적의 4배까지 건축가능 등)를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시장의 재건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지주, 건물주, 점포분양권자, 임대상인 및 노점상)간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과 지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재건축사업의 합의를 유도해 낼 수 있는 개발주체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시장재개발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쇼핑센터, 주상복합건물, 복합 상가 등의 형태가 있다.쇼핑센터로의 재개발은 백화점, 전문점, 할인점 형태의 대규모 소매점으로 변신하는 개발방식으로 도시계획상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서 대규모상권을 포용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에 적합하며 주로 1인 과점주주체제의 상가주식회사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복합 상가로의 재개발은 기존시장의 업종을 층별로 분류, 수용하고 스포츠시설, 레저 및 근린생활시설을 추가 설치하는 개발방식으로 도시계획상 준주거지역으로 상가분양이 양호한 지역과 주거지역이라 해도 상가면적에 제한 없는 도시계획시설결정지구에 적합하며 대주주 또는 다수 소주주로 구성된 상가주식회사 모두에게 가능하다. 주상복합건물로의 재개발은 저층 부는 상가용도로, 상층부는 아파트용도로 복합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시계획상 준주거지역이나 상가분양이 불량한 곳과 주거지역중 상가면적에 제한이 있는 재래시장 재개발에 접합하며 다수의 소주주로 구성된 시장주식회사에서 채택이 가능하다.(2). 운영관리의 현대화최근의 급격한 소비구조의 변화는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삶의 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따라서 전근대적인 상거래 행태에 젖어 있는 상인들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며 소비패턴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걸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공급함으로써 스스로 시장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장상인들의 자구노력이 기 침체*노동력 대가는 증대, 공동 번영*영세 테넌트 중심 유치*대형 테넌트와 상품제휴상품전략*상품구색 빈약과 선도관리 취약*상품구색 풍부와 선도관리 철저*상품화 전략 부재로 상품력 취약*상품력 전략 조직화로 상품력 강화상업위상*입점업체 대부분 빈사상태*근린상권의 구심적 시설*신나는 장터로 변혁(4). 재래시장의 미래상항목현재모습미래모습비전도전*비전부재*재래시장 활성화로 소매시장 주도세력화경영, 마케팅*전근대적, 고령자 운영*현대적, 감각적, 과학적 경영 및 마케팅의 고도화재산가치*권리금 폭락, 매매 없음*권리금 회복 및 증대, 재산가치 증가, 매매원활Ⅲ. 結 論(끝맺음)근대화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유통업계를 대표해 오던 재래시장이 그 이후 백화점과 슈퍼마켓,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의 현대적 유통업태의 성장으로 인해 타격을 입기 시작하였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소비행태의 변화 등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더욱 침체화, 사양화되기에 이르렀다. 백화점 등 대형소매기관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온 재래시장은 이제 유통시장 개방으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 이유는 외국 유통업체들 가운데 국내시장진출이 가격경쟁력을 갖춘 대형할인업체 중심으로, 취급품목 역시 생필품중심이 되고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재래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재래시장의 경쟁 환경은 취급품목 및 경쟁요인으로 볼 때 의류의 경우는 백화점과 전문대리점에, 생필품의 경우 신업태에, 점포경쟁요인으로는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객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외에 다른 모든 점에서 대형소매점 및 신업태에 뒤떨어져 있다.이러한 여건 속에서 재래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역할은 그동안 매우 미약했고, 재래시장 상인들의 자구적인 노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재래시장은 수많은 지역 영세상인들의 삶의 터전이고 지역주민들의 소비생활의 기초적 기능을 수행하며, 유통업의 실뿌리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경제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더갑”또는 “을”은 이 협약을 중도에 “해지 등”을 하고자 하는 때에는 해지 등의 예정일 10일 전까지 그 사유를 기재한 문서로ㅆ 상대방에게 통보하여 협의하여야 한다.②“갑”은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때에는 본 협약을 “해지 등”을 할 수 있다.1. “을”이 협약사항을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이를 위반한 경우2. “을”이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갑”이 인정하는 경우3. “을”이 법령 또는 보조금 교부조건을 위반한 경우4. “을”이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한 경우5. “을”이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 받은 경우6. “을”이 서울시 보조금 관리 조례에 의한 명령이나 처분에 위반하거나 검사를 거부한때 또는 허위로 보고를 한 경우7. “갑”에게 공익상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③“갑”은 제2항 제1호 내지 제7호의 사유로 인하여 협약의 해지 등을 하고자 하는 때에는 사전에 “을”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④“갑”은 “을”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협약이 해지 등이 되는 경우에는 제8조 제3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급한 사업비 전액을 반납하게 할 수 있다.⑤ 제2항 제1호 내지 제6호의 사유로 인하여 협약의 해지 등이 되는 경우 “을”은 이로 인한 손해배상 등을 “갑”에게 청구할 수 없다.제13조(기타사항) 이 협약에 명시되지 아니한 사항은 “갑”과 “을”이 상호 협의하여 정한다.14조(협약의 효력 등 ) ①이 협약은 서명일로부터 협약사항의 이행을 완료하거나 협약이 해지 등이 되는 날까지 효력을 가진다. 다만, 민?형사상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사건?사고가 종료될 때까지 그 사건?사고와 관련하되 조항에 한하여 효력이 있다.② 이 협약의 체결을 증명하고 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협약서2부를 작성하고 “갑”과 “을”이 서명날인 하여 각각 1부씩 보관한다.재래시장 활성화사업 추진? 재래시장 현황? 서울시 소재 재래시장 : 312개소(등록 200, 무등록 112)- 유형별 분류계무등록시 장등록시장소계30의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