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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교양] (개인분석)김정일의 성격과 그에 맞는 통일 방법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에서는 6월이 되면 반공에 관한 포스터를 그리는 행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학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한번 나는 입상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그렸던 것은 빨간색으로 가득 색칠한 한반도 위에 검은 색 곱슬머리와 볼록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약간 찢어진 듯한 눈을 특징으로 한 김정일 이었다. 그리고 제일아래 ‘공산주의를 무찌르자’ 라는 문구도 적어 넣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나의 김정일에 대한 이미지는 무조건 ‘나쁜 사람, 무서운 사람’ 이었던 듯하다. 이와 더불어 공산주의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인간에게 해악만을 가져다주는 체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정된 이미지는 공산주의 체제가 어느 다른 체제보다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는 남아서 여전히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읽은 김정일의 성품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그저 ‘난폭하고 무자비한 사람’으로만 각인되어 있던 그에 대한 나의 편견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지도자로서 갖추어야할 대범함과 어떤 일을 결정하여 아래 사람들에게 수행하도록 하는 강렬한 카리스마, 그리고 급한 성격, 때때로 나타나는 포악함이나 잔인함 등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유년시절부터 남달랐던 지적 호기심과 진지한 탐구력, 이를 바탕으로 한 총명함과 지혜로움은 물론, 아버지와 동생 앞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려는 가족에 대한 배려심, 그리고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 등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김정일의 모습이었다. 항상 포악하고 동정심이나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자신의 좁은 주관대로만 할 것 같은 김정일에게도 이렇게 의외의 면모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가 딱딱하게 경직 되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머를 겸비한 사람이기도 하며, 높은 수준의 예술적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도 실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김정일의 이러한 의외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평범한 개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지도자라는 그의 부담스러운 지위가 그를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하고는 있지만, 미시적으로 그를 관찰해보면 그도 부모와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그러나 이 측은한 감정은 곧 하나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김정일이 이렇게 현명하고 자애로운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폐쇄적인 체제를 고수하는가? 그는 왜 인민을 자애롭게 보살핀다는 인덕정치를 추구하면서도 그들에게 고통만을 안겨주는 억압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인가? 김정일도 분명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삶을 보면서 자신이 고수하고 있는 현 공산체제하에서는 더 이상 경제발전과 그에 따르는 사회 안정을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하는 것은 그의 특정한 성격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내가 발견해낸 그 해답은 바로 김정일이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착적인 권력욕은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경우에 맞이하게 될 권력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크게 할 것이다. 김정일 자신도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바깥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뜻 자유시장 원리를 도입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를 경험한 인민들이 일으키게 될 동요, 또 그 동요로 인해 흔들리게 될 북한의 권력체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일성이 빨치산 투쟁을 하는 와중에 태어난 김정일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그러한 공산사회의 최고 권력자의 후계자로서의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 권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그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치에 대해 함부로 접근해 올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며 조아리게 만드는 그 권력의 맛은 진정 포기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설령 독재라고 일컬어지고 있고, ‘악의 축’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용천 폭발 사고와 같은 잇따른 불행들, 불안한 사회 민심 때문에 북한사회는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원조를 받기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외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는 계속해서 이어져 가고 있다. 결국 김정일은 따듯하고 인간적인 한 개인으로서의 면모도 가지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변화를 두려워하는 권력추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지속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분단 상황 자체를 지속시키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질서, 나아가 세계질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장기화된 남북분단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 모두에게 분단의 상황에 익숙한 태도를 낳게 하였으며 분단속의 안정을 한반도를 위한 평화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북한은 서로 협력하여 이 위기의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하는데, 이 때, 지금까지 언급했던 김정일의 특징적인 성격들을 이용하면 보다 현실적인 방안마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김정일은 자신의 체제가 위협받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김정일의 권력욕을 상기하면서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성급하게 통일을 주장하거나 북한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1993년, 핵개발 문제로 열린 회의에서 김일성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에 대해 걱정하자, 그렇게 될 경우, 지구를 폭파해버리겠다고 말할 만큼 그는 대범하고 도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체제를 보장해줌으로써 더욱더 자신을 고립시켜가고 있는 북한을 국제무대로 끌고 나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부드럽게 화해의 분위기속으로 김정일을 끌어들인 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한민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함을 각인시키고 협조하겠다는 김정일의 확답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김정일이 국가사안에 대해 직접 나서서 결정하고 그것을 하달하는 통치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전략은 그가 문제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더욱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은 바로 경제적 지원이다. 김정일은 어렸을 때부터 최고 권력자의 아들로서 주변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자존심 또한 대단히 셀 것이다. 그러므로 대북 경제지원은 김정일 체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식량, 의약품, 비료 등의 인도적 지원은 다른 사안과 연계 없이 무조건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주민들의 영양은 극도의 결핍상태에 있다. 따라서 이들의 상태호전을 바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도적 지원을 해야 것이다. 이것을 상호 주의적으로 다른 것과 연계시키는 것은 인도적 지원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김정일에게는 큰 거부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거듭하다보면 김정일도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간의 다양한 사안에 대해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과학| 2004.11.21| 3페이지| 2,500원| 조회(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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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감상] 미디어시티서울2002를보고
    미디어 시티 서울 2002를 보고...사 회 과 학 부0 2 7 8 3 2 0정 지 현이제 아무도, 지금의 시대를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라 부르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는 벌써 전환기를 지나 변화된 사회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변화가 말 그대로 거대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변화를 부르는 말만해도 수십 가지가 가능한 형편이다. 어떤 이는 오늘날의 변화란 결국 지식, 정보 사회로의 변화 라고 말하고 있고, 어떤 이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 , 멀티미디어의 시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정보화의 물결은 가히 범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보화 야 말로 21세기의 주도권을 쥐는 열쇠라는 인식에는 전 세계가 동의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기술혁신은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관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먼저 이번 전시의 주제가 되는 디지털 아트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디지털 아트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조각, 회화,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멀티미디어 아트, 넷 아트라고도 한다. 이 분야는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되고 다양한 그래픽 프로그램이 개발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디지털 아트의 시작은, 백남준과 같은 비디오 아트작가들이 후반 작업을 컴퓨터를 이용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설치 미술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동원했는데 그 중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수용하여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이미 언급했듯이, 디지털 아트의 최대 공헌자는 인터넷의 보급이다. 인터넷을 통해 미술가는 프로그램을 다운받거나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되었고, 대중은 미술가의 홈페이지와 사이버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러한 점들을 상기하며 돌아본 전시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동안, 강의시간에 접했던 비디오 아트와 인터랙티브 아트들을 아우르는 디지털 아트들이 작품의 대부분이었던 터라 더욱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Moon an River라는 작품은 원형의 수로 위에 카메라가 떠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전시공간을 녹화하고 그 이미지들을 각 모니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는데, 모니터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사전 조작이나 센서를 이용한 관객의 참여로 변형된 이미지이며, 그것은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고자 한다. 원통 안에 있는 움직이는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관객의 이미지가 컴퓨터 안에서 변형되어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데, 꿈꾸는 듯한 푸른색의 대형 스크린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아닌 기계의 눈으로 인식된 전혀 다른 실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현실과 꿈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물에 비친 달의 형상을 인터랙티브의 피드백 효과를 통해 증폭시키는 작품 Digital Moon은 관람객이 프로젝트의 푸른 빛을 완전히 가리면서 지나갈 때 우주의 빅뱅을 닮은 화면의 폭발이 이루어지고, 이어서 생성과 소멸의 카오스적 이미지를 거쳐 평온한 달의 형상으로 복원되는 것이 신기해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밖에도, 인터랙티브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으로서, 움직이는 새장 이라는 작품이 인상에 남는데, 이것은 모니터 속의 새는 가만히 잇고 모니터만 돌아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역사 의식 속에서 이성적으로 분할되어진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되돌리는 작업을 모니터를 돌림으로써, 분할된 세계, 즉, 한 면만 볼 수 있는 사물을 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그러나, 전시 작품들이 흥미로웠다고 해서, 내가 갖고있는 디지털아트에 대한 의문들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아트의 가장 혁신적인 특징(이전 시대의 예술에 비해)은 무엇보다 관객이 찾아와서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가질 수도 있다. 전시회장에 가서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 작품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작가와 관객이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을 인터랙티브 아트라 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소통의 예술들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작가와 관객이 상호 소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작가들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작가들과 관객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해도, 작품에 관여하는 비율은 작가 쪽이 훨씬 높을 것이다. 즉, 작가는 어떠한 장치들을 어떻게 설치했을 때,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 참여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며, 또한 관객들의 어떠한 참여가 작품에 어떠한 영향,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효과는 이전의 예술형태(tv나 영화들이 정치적 선전에 이용되었던 것을 상기해보자)에 비해 훨씬 클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주입되는 것보다는 직접 체험함으로써 습득하는 것이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상호소통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작품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위치 등에 있어서 작가와 관객이 대등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악용될 경우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이 문제의 시발점이 된다 하겠다.한편, 디지털 아트는 매체에 대한 기능 위주의 접근과 기술적인 효과를 무분별하게 따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상호작용으로 개방되어 있다고 해도 반대로 지나친 사이버 세계 속의 아트에만 머무르게 하여 오히려 폐쇄적인 성향의 문화 취향을 양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예체능| 2002.11.19| 3페이지| 2,000원| 조회(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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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예술] 테크놀로지 예술 (사진 영화) 평가B괜찮아요
    테크놀로지...예술에 꽃 피우다..사회과학부0278320 정 지 현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과정이었다. 그 진보의 과정 속에서 가장 엄청난 결과물은 아마도 산업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기계 문명이라 하겠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전개된 기계 문명(혹은 과학문명)의 발달은 진보의 대가로 전반적인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즉, 산업혁명의 의의는 기계의 발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사회 구조와 경제 조직 및 경영 방법의 변혁에 있다는 뜻과 연결된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기계 문명의 발달이 문화 예술 부분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기계 문명은 인간의 정신 문명을 황폐화 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기계 문명이 문화 예술 면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계 문명과 문화 예술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19세기 산업혁명의 결과 눈부신 속도로 발달한 기계 문명은 인간의 인식 공간을 확대시킨 것을 그 시발점으로 하여 여러 문화,예술영역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1884년에 세워진 에펠탑을 예로 들어 보자. 에펠탑은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에 세워진 것으로, 그 당시 획기적인 높이와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에펠탑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인간의 시각적 환경의 변화는 곧바로 인식의 변화로 이어졌고, 사람들로 하여금 인습적인 사고 방식에서 탈피하게 하였으며, 결국에는 그것(인습)을 파괴하는 데에 까지 이르게 하였다. 사람들은 인간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화가들은 물감이나 캔버스만으로는 급변한 인간 의식의 변화를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소재적 측면에서도 기하학적 무늬나 도시의 역동성을 표현해낼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미술 사조가 바로 입체주의이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자연 속의 모든 대상은 기하학적 형식, 즉, 원통, 구, 원추로 돌아갈 수 있다 고 주장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입체주의 미학의 근본은 감각적 정서보다도 이지적 질서에 기초하여 현실 세계를 화면위에 재구성 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지각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감각에 의해 왜곡된 진실한 모습을 화면에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방향에서 본 대상의 모습으로는 불완전하다.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것이 곧 시점의 복수화이다. 이처럼 대상은 모든 각도에서 보여지고 각가의 면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입체주의의 미학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기계 문명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의 예술로서 사진과 영화를 들 수 있겠다. 사진은 기계문명에 의해 태어났고, 영화는 이러한 사진을 모체삼아 탄생한 기계미학의 꽃이기 때문이다. 미술, 음악, 연극, 문학 등이 자신 고유의 형태를 갖고 발달해온 예술분야임에 비해, 사진은 어느날 갑자기 과학 기술의 발명으로 등장한 새로운 예술형태이다. 움직이는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사진틀을 발명하게 된 것은 예술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진은 1823년 프랑스에서 처음 사진술 발명이 이루어진 이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기계적인 방법을 통한 시각의 재현이라는 사진의 특성 때문에 초기에는 예술영역으로의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곧, 카메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시각을 통해 사진의 독자성을 획득하게 되면서 사진은 점차,리얼리티의 예술로서 인정받아가기 시작한다. 사진의 등장으로 이전의 예술과는 전혀다른 새로운 이미지와 기계미학을 창출하게 됨으로써 영상시대가 전개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대량생산과 대량복제, 전달이 가능해짐으로써 시공개념의 변화등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며, 예술품에대한 생산과 가치 기준등도 달라지게 되었다.사진이 기계 문명에 의해 태어난 예술 분야라면, 영화는 오늘날까지도 테크노 문화의 꽃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한 예술분야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진만을 찍는 카메라 이후,무비 카메라로 이동해 가기위한 무수한 종류의 카메라들이 발명되고, 폐기되고, 다시 발명되었다. 그 모든 종류의 카메라들은 서로 다른 종류로 이름 붙여졌지만 그것들이 가지는 공통적요소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 카메라들이 이미지에 움직임의 환영을 덧붙여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을 알려 주면서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얼마나 파편적이고 허구적일 수 있는가를 알려 준다는 것이다.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보는 것이 믿는 것 이라는 경구가 유효했다면, 영화 카메라는 보는 것도 때로는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현실을 자각하는 다른 시각적 형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된 초기 영화사의 일화가 바로 머이브리지(Muybridge)의 경마장 촬영 이야기이다.이것은 사람이 보는 방식과 기계가 보는 방식사이의 차이점을 확인시켜준 사건의 이야기이다. 1878년, 캘리포니아 경마장에서 말이 달릴 때 네발이 다 땅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느냐 하는 내기가 벌어졌다. 사진사 머이브리지는 1879년에 몇 대의 카메라로 말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주프락시스코프라는 카메라를 들고 경마장에 나타나 말의 네 발이 공중에 한꺼번에 떠 있는 순간이 기록된 사진을 찍어낸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의 계기로 인간의 눈과 카메라 눈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했고,그것은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였다.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회화나 사진을 통해 정적인 상태의 이미지만을 보던 사람들에게는 그 움직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매우 낯선경험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영화는 1895년에 처음으로 공개 상영된 이래, 20세기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성장했고 때로는 경멸을 받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전 영화적 세계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화는 텔레비전으로, 비디오 아트로, 홀로그램으로 그리고 가상 현실 체험으로 놀랄만큼 빠르게 확대되어 나갔다. 영화와 그 이후 뉴미디어들도 역시 우리가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형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한 변화의 동인은 무엇인가. 기계 문명 이전, 즉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의 회화사에서 원근법 은 세계를 재현하는 형식이었고, 사실 이것은 자연적인 인간의 눈과는 다른 보기의 형식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의 눈 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비자연적인 것, 말하자면, 사실은 인간의 구성물을 가장 자연스러운 무엇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이데올로기 의 작용인데, 일련의 움직임을 차례로 기록한 사진과 영화들은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테크놀로지적 특성과 문화적인 예술의 특성의 결합으로 발전해 나갔고,현재에도 예술영역에서 그 어떤 것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체능| 2002.10.29| 4페이지| 1,000원| 조회(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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