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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문학/독일문학] 독일 청소년 문학(에레히 케스트너/미하일엔데) 평가B괜찮아요
    . 작가소개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는 1899년 드레스덴에서 내어났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 포병으로 종군하게 된다. 세계 대전 후 라이프찌히와 베를린의 각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하여 주로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를 그려낸 작품 , 등으로 아동 문학가로서 알려진다. 실제로 그는 아동 문학의 가장 값진 작품에 수여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을 수상하기도 한다.그러나 성인들에게는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지식인 작가로서 그 시대를 주름잡은 나치즘에 저항한 주요 인물로 기억된다.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 정신 때문에 한동안 집필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고 자신의 책이 불살라지는 고통도 겪어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서부 독일에서 활동했고 1974년 사망했다.. Das Fliegende Klassenzimmer크리스마스를 앞둔 한 기숙사 학교 김나지움. 항상 먹을 것을 들고 다니며 배가 가득 차야지 만 싸울 힘이 생기고 생각을 하는 마티어스, 잘난체 하면서 다른 친구를 무시하는 제바스티안, 공부도 잘하고 의리와 책임감도 강한 모범생이지만 집이 가난하여 남모른 아픔을 지닌 소년 마르틴, 부모한테 버림받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 요니, 모두에게 겁쟁이라고 놀림받는 가운데 용기를 증명해 보인다고 엉뚱한 짓을 벌이는 울리. 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무대에 선보일 '하늘을 나는 교실' 연극 연습에 정신이 없다.이 책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아이들이 등장한다. 용기 있는 아이, 겁쟁이, 슬기로운 아이, 어리석은 아이, 먹보와 우두머리,,,여기에 아이들에게 유스투스(정의로운) 선생님이라 불리 우는 사감 선생님 요한 뵈크, 본명은 모르지만 아이들과의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기차의 금연간에 살고 있어 니히트라우어 라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등장 인물만 들어도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 펼쳐진다. 그이다. 마르틴은 행동에 불을 당기고 있으며, 그의 동급생 중 하나가 거친 기세로 즉시 적을 습격하려고 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너 여기 남아 있어! 마르틴이 명령했다. 때려서 혼내주는 것만 갖고는 우리한테 도움이 안돼. 그리고 네가 에거란트를 호되게 다루어도 우린 여전히크로이츠캄이 공책을 어디 숨겼는지를 알지 못해. 조금만 기다려.우린 꼭 널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중심인물들이 보여주는 신중한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과 결부되면 배려의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급우구출 및 실업학교 학생들과의 결투를 위해 허가도 없이 기숙사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두가지 가능성 뿐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들의 부탁을 거절하실 수 있는 경우; 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선생님의 금지를 어기고 행동해야 했을 겁니다.또는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정말로 내보내주실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사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다들 선생님께 책임을 씌우겠지요이들이 보여 주는 신중함에는 겸허함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동적인 반응에 대한 제어된 태도가 신중함이듯 자신과 환경에 대해 과다한 요구를 하지 않는 적절한 태도는 겸손함인 것이다. 케스트너의 중심인물들은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케스트너는 이 아동들을 반복해서 유복한 아동들과 대면하게 하며 그들과의 차이를 뚜렷이 느끼게끔 하고 있는데, 이들은 유복한 아이들처럼 외적으로 안락하게 근심걱정 없는 삶을 향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시기하지 않으며 각자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있으며 부모님과 자신이 가진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설령 그런 바람을 대부분의 아동들이 그러하듯 마음속으로는 갖고 있을지라도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여의치 않으면 이런 마음을 말없이 혼자서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가난으로 인해 크리스마스에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마르틴이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면, 저는 하지 않아대해 볼 때 긍정적으로 대비를 이루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케스트너는 주요인물인 안톤이나 마르틴을 묘사할 때 사건만 달리하여 거의 동일한 인물의 특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들 주변인물들의 경우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티아스의 성격에서는 솔직함이라든지 용기가, 울리에게서는 솔직함과 배려심이, 제바스티안은 자부심, 요니는 적극성과자부심, 정의감 등을 두드러지게 갖추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아 이들 역시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중심인물 못지 않게 독자와 정서적 동질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개별 덕목보다는 성장기에 겪는 내적인갈등과 그 극복과정, 스스로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여 능력을 계발하고 약점을 버려 가는 의지와 능력이다.울리 폰 짐머른은 험악한 분위기에서는 마티아스 등 뒤에 숨거나 슬쩍 달아나고 싶어하는 작고 소심한 소년이다. 하지만 호감을 주고 덩치 큰 마티아스와는 성실한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사랑스런 소년으로, 울리 폰 짐머른에게서는 청소년에 있어 불가피한 문제인 또래들에게서 인정받는 것의 문제가 전개되고 있다. 친절하고 곧은 성격 때문에 울리는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간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계획을 추진할 때라든지 울리가 발언할 때 그를 가볍게 무시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모든 위험을 두려워 피해 가는 울리의 약점은 이렇듯 남들로부터 모종의 무시를 당하는 듯한 경우를 종종 겪게만든다. 울리는 이로 인해 몹시 괴로와한다. 이때 그는 자신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해서 자신을 속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책임을 다른 이에게서 찾지 않으며 그것을 피해 가지 않고 문제가 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넌 몰라 울리가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곱은 손가락을 비볐다.내가 겁많음을 버리기 위해 해왔던 모든 노력은 - 그건 이루 다 말할 수 없어.도망치지 않겠다고, 다부지게 되겠다고, 매번 난 다짐하지. 바위처럼 단단제가 될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반론을 펼 수 있도록 자극하기도 한다.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 또한 이러한 교육적 기본입장을 토대로 하고 있다.케스트너를 교육가적 작가 혹은 저술활동을 하는 교육가로 만든 요인은 자전적 배경에서 찾아질 수 있다. 교육열이 강했던 그의 어머니; 어린시절의 그에게 좋은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방향 삼을 만한 모범을 제시해 주었던 교사들, 교원 양성기관에서의 비인간적인 체험으로 인해 갖게 된 권위주의적인 교육관, 평화에 대한 소망과 성인에 대한 체념적, 회의적 상을 얻어 준 1차대전의 경험,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성의 원리 등이 지배했던 계몽주의 시대의 작품과 교육학에의 몰두 등이 그것이다.케스트너는 ‘문학을 통한 교육’이라는 자신의 소망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추구한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인간이 자신에게 내재해있는 능력과 약점을 발견하여 스스로를 발전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인류와 세상의 개선에 기여하는 것을 뜻한다.여기서 그는 무엇보다도 이성과 도덕을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조한다.그는 도덕적인 인간, 개체의 이성이 모여들어 잘 짜여진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이러한 인간과 사회를 자신의 문학속에서 모범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선함과악함’, ‘어리석음과분별있음’, ‘교육가능성과 개선불능’은 케스트너가 작품구상에서중요하게 여기는 테마로서, 그는 이러한 도덕가치가 아동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그는 아동들이 자신의 아동도서들을 통하여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성인세계를 바꿀 수 있는 이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가 역점을 두는 것들은 18세기에 완성된 시민적 미덕, 이성이 원칙으로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의지, 개체가 내면에 지닌 도덕적 자질등이다. 이는 그가 정신적으로 계몽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문학을 통한교육’이라는 계몽주의 문학의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모모는 신비한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고 그들의 추격권에서 사라진다. 모모가 사라진 것을 안 회색도당은 모모가 없는 틈에 그의 여러 친구들을 모모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모모가 거북이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들어간 곳은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가 있는 초공간(超空間)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모모는 시간의 원천을 구경한다. 호라 박사와 함께 있던 하루 동안 세상에선 일년의 시간이 흐른다.세상으로 돌아온 모모는 자기의 친구들이 모두 회색신사들에 의해 시간의 노예가 되었음을 알게 되고, 고심하던 중에 잃어버렸던 거북이를 만나 호라 박사를 찾아간다. 모모를 추적해 초공간을 에워싼 회색도당에 위협을 느낀 호라 박사는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는데, 그것은 모모에게 시간의 꽃으로 한 시간을 주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시간을 멈추게 함으로써 회색도둑의 무리를 없애는 것이다.모모는 시간의 꽃을 이용해 창고의 문을 닫아 회색신사들을 전멸시키고 다시 문을 열어 모든 사람의 시간이 원래 주인에게 찾아가도록 한다. 대도시 전체는 다시 풍부해진 시간으로 모두들 기뻐하며, 예전의 여유 있고 따스한 마음을 되찾게 된다.. 모모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 동화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중핵의 인물은 꼬마 소녀 모모이다. 비록 처음부터 대도시에서 살게 된 것은 아니었고, 외부에서 유입된 인물이나 실제 그 영향력에 있어서는 원래 거주하던 주민 못지 않게 자신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 영향은 결코 의도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은 아니다. 모모는 순수한 자신의 행위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귀기울여 들어준다든가, 세상이 정해준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동요되지 않고 자신 나름의 시야를 개척해나가는 방식들이 그것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어린이로서의 특성과 어른들의 세계를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조화시켜 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귀감으로 형성된다..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인문/어학| 2004.05.05| 24페이지| 1,000원| 조회(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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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 독일의 언론과 한국의 신문 평가A+최고예요
    . 독일의 언론기관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와 정보통신 분야는 서구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발행되고 있는 신문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아서 지구 위의 사건들을 신속히 보도함은 물론, 각종 지식정보, 문화, 교양, 시사 등 독자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 중에서도 독일은 세계최초의 주간신문인 'Relation'이 발간된 나라이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등으로 인해 신문산업이 크게 발달한 나라여서 근대 신문의 틀을 만든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독일에서 세계최초의 일간지인 '라이프찌거 짜이퉁'(Leipziger Zeitung)이 창간하여 신문이라는 미디어의 선구자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이처럼 독일은 세계 신문의 발상지이며, 그 모체이다. 그리고 현재 독일의 알게마이네 짜이퉁 등과 같은 신문의 권위는 세계의 유수 신문사에 필적할 만한 영향력과 정론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독일 신문의 힘은 과연 무엇이 만들었을까?독일의 방송 또한 신문과 마찬가지로 독일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였고 다른 유럽의 나라들 보다 발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대전과 분단을 계기로 독일 방송 발전은 주춤하였지만 공영 방송이라는 취지 아래 독일은 그들만의 방송을 발전 시켜 왔다 그리고 독일의 방송은 통일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독일은 헌법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현재 약 430종 이상의 일간지, 60종 이상의 주간지, 2만 이상의 각종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독일은 자국의 통신사(DPA)를 운영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주요도시에 2종 이상의 일간지가 있으며 규모가 작은 소읍(小邑)에서도 대개 그 지역을 위한 일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신문 및 잡지는 특별지를 제외하고 일간, 주간, 월간지를 포함해 2,600개 정도이다. 일간 신문이 발행되어, 1,000명당 독자수는 세계 제4위이다. 전국지로 유명한 일간지로는 등이 있고, 주간지로는 등이 있속한 보급 발전이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와 나치와 파시즘 독재,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신문의 수난기가 계속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에서는 나치체제하의 신문이 점령군에 의해서 사라지고 프랑스에서도 대전중의 대독일 협력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단된 독일의 신문. 서독.사회적 배경독일은 근대신문의 발상지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15세기에 이미 Flugblatt라는 신문이 나오게 되었으며, 1600년에는 Strasbourg에서 Relation이라는 주간지가 나왔으며, 1660년에는 시계 최초의 일간지인 Leipziger Zeitung이 발간되었다.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혁명과 산업의 팽창으로 신문도 급진적 팽창을 가져오게 되지만, 1933년 히틀러의 등장으로 언론도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나치의 언론관은 언론매체를 정치도구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나치 수법으로는 (1)일방적 주장 (2)단순화의 반복 (3)침묵선전 (4)날조선전을 들 수 있다.첫째, 일방적 주장이란 어떤 문제나 이슈의 일면성만을 강조하고, 일체의 반대토론을 금지하고, 사물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나 판단에 근거를 두지 않는데다 어떤 객관성도 인정치 않으며, 오로지 강요와 명령만이 사용된다.둘째, 히틀러는 나의 투쟁이라는 저서에서 효과적인 선전이 되려면 선전 내용을 불과 몇 개의 문제점으로 축소시켜 모든 사람이 선전의 진의를 터득할 때까지 이를 계속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적선전보다는 통속적 선전에 몰두해야 하고, 복잡성을 회피해야 하며, 구호나 표어를 사용해야 하고, 단순한 비논리적이어야 하며, 조작과 과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셋째, 침묵선전이란 어느 특정 사건이나 내용에 관해서는 큰 관심을 표시하고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해서 대대적으로 취급하는 반면, 또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도 않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자 않는 것을 의미한다.침묵선전으로는 보도 금지, 토론 금지, 사실 말살 등이 있으며, 나치정권은 특히 1.나치정권에 불리한 사실을 발표하지 못하게만부)로 부수뿐만 아니라 영향력에서도 소련의 Pravda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수가 많고 중요한 신문으로는 Berlinger Zeitung (50만부)를 들 수 있다..신문의 특징특정한 독자를 목표로 하는 신문이 많은데, 이같은 예로 Bauern Echo는 농부를 National Zeitung은 직업군인을 Der morgen과 Neue Zeitung은 지식계층을 Junge Well는 젊은 계층을 위주로 하고 있다.동독은 신문 보급률이 1천명 당 472부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높다. 동독에서 모든 신문과 출판물은 우편 제도에 의해 배부되고 있다.히틀러의 등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모든 사회주의 신문과 공산주의 신문을 불법화하고 이들을 나치 선전신문에 흡수시켰다.나치정권 후 소련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당이 인정하는 신문만 허용되었다. 당을 중심으로 신문이 발행되었으며, 그 외에 단체(다른 정당 또는 노조, 기업 등)도 시문을 발행할 수 있었지만 당을 지배를 받아서 별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통독 이후의 독일 신문 통합.일간지구 동독 시절에는 39종의 일간지가 있었는데 장벽개방 이후부터 국가의 보조금이 폐지되어 일간지들은 재정난을 겪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독의 대규모 출판사와 언론사들은 동독 공산당 지구당 및 제휴 정당의 기관지와 협력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서독 회사들은 기술, 자본, 인력지원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협력 계약을 체결, 동독신문사의 재조직 및 설비 현대화를 시작하였다. 1990년 말까지 동독의 거의 모든 일간지와 주요 잡지는 서독회사와 협력하고 있거나 일부 지분을 매각한 상태였다.함부르크 소재 Bauer-Verlag 출판사 등 5개의 서독 출판사가 구동독신문의 절반을 점유고 있다. 또한 통일이후 신탁청은 이들 일간지를 비롯한 여타 신문사를 인수하여,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15개 공산당 지구당 기관지의 경우 통일이전에 이미 서독회사가 진출, 협력사업을 추진, 신문사가 잘 가동되고 있었으므로 신탁청이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역 : 독일전역 및 유럽 각국, 미국6. 보도성향 : 진보적, 대한보도성향 : 중립적7. 참고사항·독일 내 시사 주간지 중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갖고 있으며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 고 있는 시사주간지이다.·대부분의 필자가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으며, 현장감 있는 기사와 무게 있는 논설로 독 일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기사는 독일 국내문제, 유럽문제, 국제문제, 스포츠, 문화 소식 순으로 게재되며 심층 기 사, 기획기사가 돋보이고 있다.. 독일 TV의 역사와 현황. 방송이란?방송이란 단지 전기기술에 의존하여 메시지가 불특정 일반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수용되는 전체적인 과정으로만 파악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른바 뉴미디어 방송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방송의 개념에 대한 파악 또한 달라지게 되었다. 우선 전달방식에서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지상파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방송이 이제는 위성송출 방식의 천공파(天工波)와 땅 속 케이블망의 연결방식인 지하파(地下波)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이 같은 방송환경의 변화는 곧 방송의 송수신 형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불특정 일반다수를 대상으로 하던 종전의 메시지의 전달이 이제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의지에 따라서 양자간의 계약에 의하여 특정한 수만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즉 전달범위를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일과성과 동소성이 특히 요구되는 방송이 이제는 수용예약과 기록저장 그리고 자의적인 재생이 가능해짐에 따라 수용양상의 폭이 훨씬 넓어지게 되었다.. 독일 방송이 추구하는 방송 이념(공영방송 :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시청료 따위를 주된 재원으로 하고 영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는 방송기관)독일 방송은 곧 자유평등의 사상이 긷든 원적 커뮤니케이션 형태임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즉 방송을 형평과 공공을 전제로 한 공개성의 구현행위로 파악하려는 공시적인 관점이 굳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일제,문화등 모든 분야에 상세한 보도, 독일과 여러 나라와의 관계, 민족간의 상호이해, 세계 평화구현에의 노력등 대단히 중요한 사명을 띄고 있다. 그밖에 시사문제와 중요한 사태진전 추세에 대한 독일인의 견해나 입장을 전달하기도 한다.현재 독일의 방송 관련 규정의 토대는 기본법 상의 2개 조항이다. 하나는 5조 1항의 "방송이나 필름을 통한 언론의 자유 및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 검열은 없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70조 1항으로서 관할권에 관한 일반 규정에 따라 서독에서 방송은 연방주가 관할한다는 것이다.(참고로 국영 텔레비젼 방송은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좌절된 이후(1961년 2월 28일 결정),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전국 방송이 실시되기 전에는 북서독방송(Nordwestdeutscher Rundfunk, NDWR,오늘날에는 NDR)이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2시간씩 방송을 1952년12월 25일부터 했었고, 1954년 11월 1일에는 공식방송을 했다.. 독일 방송의 자치 단체독일 텔레비젼방송은 국민에게 유익한 생활정보를 제공해 주며 공정한 보도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부분의 텔레비젼 방송사는 다음 3가지의 자치기구를 구성하고 있다..텔레비젼위원회 : 이 위원회는 방송의회로 불리며 모든 정치, 이념 및 사회단체의 대표자로 구성된다. 이 위원회는 방송사와 관련된 주요문제를 취급하며 최고 책임자로 방송사 관리자를 선출한다..행정위원회 : 방송사의 일반 행정업무를 담당한다..방송사 관리자 : 행정업무를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내용을 조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진다.이 3가지 자치기구로 인해 방송사는 외부로부터 부당한 간섭에 대처할 수 있다. 방송사가 완전히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국내문제 등에 대해서는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연방의회에서 국민의 관심사항이 논의될 때에는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의견을 모두 공정하게 보도한다. 방송사가 어느 한편의 의견을 집중보도하고 다른 편의 의견을 고의적으로 소홀.
    인문/어학| 2003.12.02| 28페이지| 1,000원| 조회(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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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평가A좋아요
    작가 박완서이 소설의 작가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여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 25로 학업 중단. 1970년 마흔살의 나이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국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빛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70년부터 시작된 삼십 년의 창작 기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다작의 작가이다.90년 초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은 한국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갖는 같은 여성간의 문제까지도 보여주고 있으며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여성 자신의 의식 정립과 여성들간의 연대를 해방의 전망으로 내놓는다."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못 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 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작가의 말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너지는 꿈, 무너져도 되살아나는 꿈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하고 있다. 우리의 꿈은 무엇이고, 꿈을 좌초시키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비정상적인 남녀관계의 억압구조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며 때로는 바람직한 풍속으로 호도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작품 내에 반체제적인 여성인물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지속되고 있는 여성 억압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1980년대에 오면서 박완서는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반기를 들고 여성에 평등하기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적 작품을 쓰게 된다. 이 작품들을 통하여 작가 박완서는 여성 문제 문학과 의식의 확산을 도모하므로 해서 1980년대 여성 문학을 한 단계 높이 끌어 올렸다. 여성문제란 남성 일반에 의한 여성 일반의 억압이라기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우리사회의 전체적 모순을 읽어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여성에게만 정절을 요구하는 이중성 규범, 남아 선호사상, 여성 관련법과 제도적 불평등의 사회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이 소설은 전직교사이자 30대 이혼녀인 차문경이 그녀가 처한 상황적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현실에 눈떠 가는 과정과 현실적 투쟁으로써 자신의 불이익을 척결해 가는 한 여성 개인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1) 남성우월주의로 가득 찬 사회작품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남아선호 사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전보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는 남자아이들이 유리한 남자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더 유리한 점이 많다."그건 꼭 아들이 있어야겠다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입문하는 조건을 100점 만점이라고 칠 때 남자로 태어나면 기본점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라구.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상대적으로 50점 감점인 셈이지. 대학입시에서 만일 제 자식이 까닭 없이 1, 2점만 감점을 당해도 사생결단하고 덤비지 않을 엄마 없을 걸. 50점의 불이익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건 당연해."위의 인용문은 주인공인 문경의 동료인 임선생이 그녀의 임신을 두고 한 대사이다. 이 대사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남성 우월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남자로 태어났을 때에 따고 들어갈 수 있는 50점이야말로 현 사회에서 남자와 여성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차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이러한 남성우월주의 적인 사회를 나타내는 또 다른 부분으로 문경이 처녀로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문경은 아이를 감추지 않는다. 미혼인 문경이 임신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다. 노교장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벗어나서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는 듯한 발언을 한다. 노교장은 주류 남자를 대표하고 있고 사회적 인식을 말해주는 것이다.아이를 임신하고 아들을 낳게 된 문경은 이어서 이런 대물림이란 현실에 의해 문경은 아들을 빼앗길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어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몰라서 묻냐? 우리 집안은 대가 끊어지게 됐다. 이게 이만저만한 일이냐. 그까짓 계집애 둘 아 니라 열이 있으면 뭘 하냐. 대를 못 잇는 걸""어머니, 대를 잇는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중략)"뭔 뭐냐. 자식된 도리지."여기서 보듯이 자궁 악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며느리에 대한 걱정보다 시어머니에게 더 걱정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가 끊긴다는 것에 대한 통탄이다. 이런 남성 우월적인 사회보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같은 여자조차 그런 남성 중심적 사회에 순응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또 남자주인공의 우유부단함과 무책임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실리를 찾자는 영악스러움 외에 이혼녀 하나쯤 건드려도 죄의식이 없다는 방자함도 함께 있어 6년 후 친자 확인 소송까지 하는 남성중심주의의 편협성과 몰 도덕성을 나타낸다. 이 책은 이 땅에 여성으로써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문경이가 이혼녀라는 점,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이 문경이를 더 옭아맨 측면이 있지만 임선생의 말처럼 '여자로 태어나면 50점 감점인 나라'가 한국인 것이다.(2) 여성성의 인식과 자아발견페미니즘 문학은 여주인공이 자기만의 일을 갖거나 사회적 경제적인 자립을 통하여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분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여성이 전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있는 것이 여성 문제의 결론인 듯 외향적인 방면으로 나아간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는 70년대 작가로서 인간 상실에 대한 관념적 접근과 소시민적 삶의 모순을 깨닫게 하는 작가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여성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 소설로 보인 다. 본 작품은 사회의 도덕적 관습과의 갈등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첫째, 이혼녀로 아이를 갖는 것이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1988부터 여성 신문에 연재된 작품이다. 여성관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로 보이는 것이다.둘째, 자신의 사회적 기반인 교직을 버리고 아이를 택한 것이다. 교직을 떠나는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장의 사표 권고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나 문경이 아이를 낳는다고 했을 때 교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문경의 사직은 그 동안 문경을 지켜준 안정된 경제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그녀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그녀는 교직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아이를 택하는 것이 그녀로서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 없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친권 소송에서 승소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친권은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부여해 왔고 여성에게는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판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작가는 문경에게 생모의 권리를 보장해준다. 이것은 작가 박완서의 가족법에 대한 관심과 문제인식을 나타낸 것이고 구체적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단지 관찰자의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서 미혼모에게 불리한 양육권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자녀에 대한 친권을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부여해 온 것으로 여성에게는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법률에 기초한 것인데 여기서 작가는 생모에게도 권리를 보장하므로 해서 시대적 변화와 가족법에 대한 관심과 문제 인식을 나타낸 것이다.위와 같이 유교적 관습을 지니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아 인식의 과정을 박완서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밝혀내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불합리한 가족법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므로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서 호소력을 높이고 있다.3)작가의 말"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을 못 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 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이 말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무너지는 꿈, 무너져도 되살아나는 꿈의 것이다작품과 여성소설박완서는 사건의 일상성, 여성의 감성의 민감함, 풍속 묘사의 탁월함, 디테일 묘사의 정밀성 등의 특징으로 보아 전형적인 여성 양식의 소설가이지만, 그녀에게서는 낭만적인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다.박완서는 현실을 직시하려고 한다. 박완서의 소설에 나오는 남녀 관계는 사랑과 화합의 관계보다는 갈등과 불화의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하지만 남녀의 유대가 느슨한 반면 모자관계는 강세를 나타낸다. 그의 소설 속의 여인들은 여자이기 보다 어머니에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항상 여인들의 모성성을 노출시키는 것이다.이 소설에서 보듯이 문경은 사랑하지 않는 남자, 자신을 배반한 남자의 아이를 왜 낳았으며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밝힐 수 없는 교사라는 신분의 현실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책임을 진 아이를 알뜰히 키우겠다는 모성의 자주, 자존, 자립을 선택한다.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성차별의 벽이 얼마나 완강한지를 보여주며 사회제도의 관습적 보수성에 대한 여성권리 선언의 의미를 띠고 있다. 이는 여성자각에 대한 그의 의식을 확고하게 보여준다.그녀는 여성으로서 체험적 문학과 당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사회적 비판을 가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피해자의 입장에만 있었던 여성을 능동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수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아버지나 남편의 자리를 대신 하여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삶을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자기인식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가 중에서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인간에 대한 문제로 보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이 작품에서 '누가 꿈꾸고 있다'는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작품의 제목을 보면 꿈꾸고 있는 자에 대한 질타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품고 있다가 배신당한 사람에게 흔히 하는 표현이다. '너 아직도 꿈꾸고 있니?'라는 식으로. 그런 면에서 문경은 꿈꾸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문경은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부딪힌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까.
    인문/어학| 2003.05.27| 5페이지| 1,000원| 조회(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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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샤르트르 평가B괜찮아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고1. 사르트르 사상의 원천들사르트르는 이미 세계의 본질을 설명하고 인간의 조건, 즉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함으로써 삶을 이끌어 줄 진지한 철학을 구성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어떤 철학자에 의지하려 하였으며, 어떤 철학자로부터 돌아서려 하였는가? 그는 모든 경험론으로부터 돌아섰다. 왜냐하면 경험론은 지식을 감각 경험에 한정하고 철학이 인간의 삶을 이끌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또한 데카르트의 합리론적 연역으로부터도 돌아섰다, 왜냐하면 형식적 추론으로서 그것은 세계를 설명하지도 못하고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그렇다면 사르트르가 의지한 철학자들은 누구인가? 철학의 역사에서 사르트르 사상의 강력한 원천이 되고, 그로부터 사르트르 철학의 풍부함이 이끌어져 나온 철학자들은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사르트르의 철학은 모든 현대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서 그를 뒤따른 모든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데카르트로부터 이끌어져 나왔다. 사르트르에게 미친 데카르트 의 영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유하는 자아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철학적 주관주의이다. 그것은 철학이 사유하는 존재인, 나 자신에 대한 의식의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다.사르트르가 의존한 두 번째 사상적 원천은 베를린에 있는 프랑스 연구소에서 지내는 동안 사르트르가 열심히 연구한 에드문드 훗설(1859~1938)과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자극적인 새로운 철학이었다. 1916년부터 1929년까지 독일의 푸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에서 철학 교수를 한 에드문트 훗설 은 원래는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역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훗설은 철학에서 수학의 확실성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훗설 자신이 데카르트에 대한 자신의 유사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철학을 위해 확실성을 발견하려 했고아니라 지향성에 의해 그것과 결합해 있다. 사르트르는 의식에 대한 훗설의 복잡하고 형식적인 철학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요소들만을 취한다.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실체에 대한 거부, 의식을 지향적인 것으로, 즉 그것이 지향하고 언급하는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의식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그 때문에 의식은 그 지향성을 통해서 세계와 관계하는 것으로 보는 의식 개념 등.사르트르 사상의 주된 원천은, 훗설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으며 그의 보조자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그의 교수직을 계승한 사람인 독일의 실존주의 마르틴 하이데거 의 철학이었다. 사르트르가 베를린에서 훗설과 하이데거 연구에 매달려 있던 1933년과 1934년 사이에 유대인인 훗설은 나치에 의해 굴욕적인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반면에 나치에 의해 국가 사회주의 하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 자리에 올라 있던 하이데거는 얼마동안 나치 운동의 철학적 의미를 찬양하고 훗설의 철학을 부인하였다. 하이데거에게서 사르트르는 세계 내 존재로서의 의식적 실존이라는 개념, 의식적 존재의 세계와 사물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 부조리하게 실존으로 던져진 존재라는 개념, 불안, 무, 주체적 실존과 비주체적 실존의 구별, 사실성과 초월의 구별, 미래로 던져 감으로써 자신을 만드는 인간이라는 개념 등을 이어받았다.데카르트의 주관주의, 훗설의 의식에 대한 분석,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개념과 주제들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사르트르는 변증법의 철학자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도 가치있는 철학적 재료들을 발견했다. 사르트르는 헤겔 에게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상과 주체에 대하여 존재하는 대상의 구별을 이어받았으며, 또한 생사를 건 투쟁, 인정 욕구, 주인과 노예, 불행한 의식, 그리고 소외 등의 개념도 받아들였다. 사르트르는 또한 헤겔로부터 존재와 무의 변증법 개념과 부정의 원리도 받아들였다. 사르트르는 1960년대 마르크스로부터 약간의 유보를 단 채 그의 전체계를 받아들이고 실존주의를 그것의 내부로 통합시킨다고 고백하였다. 사르트르 있다.2.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실존주의란 무엇인가?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존주의의 정의가 있다. 실존주의는 본질보다 실존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철학적 입장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존주의가 나에게 귀속되는 어떤 본질,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정치학에 의한 나에 대한 정의나 설명보다도 의식적 주체로서의 나의 실존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존에 의미의 우위와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합리주의와 근대 합리주의가 이성적 본질이나 자명한 관념이 개별 사물에 대해 우선권을 가지며 개별 사물은 오직 본질이나 관념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얻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반해서, 실존주의는 개별적 실존의 우선권을 주장하였다. 합리주의가 개인은 본질이나 개념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서, 실존주의는 개인의 실존이 개념이나 본질, 또는 어떤 개념에 체계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본질주의 라는 말은 실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와 반대하는 사유 양식, 즉 실존보다 본질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사유양식에 붙인 이름이다. 본질주의는 실존을 정의하거나 설명하는 개념, 본질, 또는 체계보다 개인의 실존이 이차적인 것이라고 보는 사유 양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철학사에서의 합리주의와 체계화, 과학에서의 양화, 그리고 사회 이론과 정치 이론에서의 추상 등이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본질주의의 지배적인 형태로 인식된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실존주의는 의식적 존재로서의 구체적 실존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철학, 과학, 정치 조직, 그리고 종교에 의해 무시되어 왔다고 외친다. 의식적 존재로서의 대학 신입생, 세탁소 배달부, 의회의 여성 의원, 야근 간호사, 술고래 시인의 실존은 무엇인가? 그들은 철학의 추상적이고 지적인 체계와 담화, 과학의 가설과 통계학, 연방 관료들과 상업적, 종교적, 정치적 조직들의 일람표, 조사, 그리고 정책 속에서 설명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의식적 존재로서의 그들의 실존 은 중요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한 무시된 무제라고 말한다.현대 특징에 대항하는 인간정신의 대변자요 옹호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의 관심은 좁다. 실존주의는 오직 인간의 실존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구체적인 인간 실존의 철학, 의식적 존재인 인간의 철학이다.3. 실존주의 두 갈래존재가 본질을 앞선다 는 실존주의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미 나도 들은 바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실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만 인식한다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다. 실존주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뉜다. 양자가 모두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달리 말하면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실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신론적·무신론적이라는 단어만 봐도 전자는 전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후자는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셀, 야스퍼스 등이 전자를 대변하고 있으며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이 후자를 대변하고 있다. 사르트르도 후자에 속한다.사르트르는 자신이 주창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가장 일관성 있다고 말한다. 신이 없다면 적어도 본질보다도 앞선 하나의 존재, 또는 어떠한 개념으로도 정의되기 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가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는 기술적 세계관과 반대되는 견해로 사람이 먼저 있어 세상에서 존재하고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사람은 먼저 있다 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 이후에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이 주체성 이라고 부르는 실존주의의 제1원칙이다.사르트르는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를 위하여 선택하는 것이 동시에 모든 사람을 선택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이지만 다음과 같은 예에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내가 결혼을 하려 하고 자식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설사 그 결혼이 나의 형편과욕망에 달려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나는 나 자신이 아니고 전 인류의 일부일처제의길에 참버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한게 있다. 내 의견으로는 사르트르의 이러한 언급이 다분히 자기 중심적인 소지가 있다고 본다. 앞에서 그 스스로 실존주의를 두 갈래로 나누었고 각각의 개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실존주의를 무신론으로 단정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것만 보면 그냥 자신의 주장을 펼친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 주장의 주체를 모든 실존주의자로 설정해 버렸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도 실존주의자들임에는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아예 무신론적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의식적으로 그 수식어를 생각하며 이해하도록 하겠다.4.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윤리학에 대한 비판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은, 그것이 어떠한 일반적 원리나 이상도 도덕적 선택을 위한 기초로 삼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윤리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사르트르가 우리에게 행위를 위한 하나의 원칙, 즉 잘못된 신념을 피하라, 또는 그것을 거부하라, 또는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채 행위하거나 진지한 정신에서 행위하는 것을 거부하라는 원칙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단지 부정적인 규칙일 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내가 비진실성을 거부하라는 규칙을 따르려고 한다면, 나는 진실성의 적극적인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사르트르는 진실하게 행위한다는 것은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그리고 내가 할 것을 선택함에 있어 나는 자유이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행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성에 대한 사르트르의 정의는 B보다 A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제공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은 자의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선택일 뿐이며, 아무런 기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부조리하다. 잘못된 신념을 피하고 진실하게 선택하라는 규칙은다.
    인문/어학| 2002.12.14| 6페이지| 1,000원| 조회(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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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원론]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책을 읽기에 앞서서책을 읽기에 앞서 사르트르에 대한 전반적인 인물과 시대배경에 대해 알아보았다.장 폴 사르트르(Sartre, Jean Paul)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소설가이다. 그가 태어난 당시의 시대는 1870년 무렵에서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독점화로 인한 조직적 수탈이 감행되는 '제국주의'의 단계가 시작되는 시기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레닌의 사상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즉, 조직 대 조직의 수탈이나 계급투쟁이 격화하는 단계가 시작하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시샘하면서도 이것을 저주하고 이것에서 도피한다고 하는 '저주받은 시인'(사회에서 이탈한 개인)들이 그 생활을 완전히 원숙시킨 시대이기도 했다. 사회의 발전을 필연성으로 그리는 마르크스주의와 개인을 그 개별성으로 파악하는 실존주의가 시대를 갈라놓기 시작한 것이다.사르트르의 개인적 상황은 실존주의를 형성하는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라게 되는데 그 집안의 가족으로 소속되고는 있었으나, 언제나 남이었고 군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저주받은 시인'의 자세와 같은 것이었으며, '이 저주받은 개인에서 출발하면서 이 개인이 어째서 조직이나 사회와 일체화 될 수 있는가'하는 방법이나 이념을 추구하는 일생이었던 것이다.자식에게 사회의 질서와 권위를 가르치고 그 질서와 권위에 복종하는 여느 부모들의 단계가 사르트르에게는 없었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것에도 복종할 줄 몰랐고 사람들을 명령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는, 복종과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운 홀가분함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당연히 의지해서 살아야 할 집, 자신을 떠받쳐주는 장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질서가 잡힌 이 세계에 있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돌아가야 할 항구를 가지지 못한 유령선과 같은 이상한 자신의 존재를 부끄럽게는 것은 또 어떤 것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다. 그 자유는 존재를 가지지 않으며 공허하다. 이 자유와 존재의 단층을 메우는 것이 사르트르의 최대의 테마였으며 사르트르의 생애는 '자유와 존재'와의 사이의 대립과 통일의 역사이다.나이 어린 사르트르가 할 수 있었던 최초의 행위는 어른들에게 존재와 자유가 일치된 척하는 잘 꾸민 연극으로 가짜 존재극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사르트르에게 자신은 사기꾼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함으로서 존재에서 추방당하였다. 존재에 의지하지 못하는 철학적 의미의 '사생아'로서 존재와의 단절을 알고 자신의 연기가 무익함과 기만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이 무익한 연기를 되풀이하는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자유는 있었지만 그 자유는 연기를 위한 자유이며 그의 연기도 그에게 존재를 주지 않았다.이런 자유와 존재의 불일치는 의식이 자기자신과 일치하지 않는(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와의 대결과제가 생긴다. 이와 같이 사르트르의 철학은 끊임없는 자기분단으로서의 자기의 사생아성의 조건을 도피하는 일없이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위에 어떻게 하면 자유를 잃는 일이 없이 자유를 보전한 채로 동시에 자기자신의 존재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서, 결국 사르트르는 자유와 존재 그리고 사실성(거기에 있음)과 초월성(무엇인가 하기 때문에 자신을 만드는 능력)과의 종합을 획득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이번 학기 철학수업을 들으며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형이상학과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현대철학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나에게 조금씩 이 말들이 이해가기 시작한 것 같다.실존이라 함은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실존철학은 진실 그 자체에 접근하는 사상을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명쾌하고 명료한 것 같고, 또 그렇게 믿어진다. 혹 이 말 이상의, 내지는 이 말과 다른 뜻이 있더라도 나는 여태까지 이런 의미로 실존주의를 이해하였고 또 이하에서의 글에서도 이 목적으로 한 작은 책자로서 사르트르가 1945년에 멩뜨낭(Maintenant) 클럽에서 행한 강연을 수록한 것이다. 번역본의 역자의 해설과 책의 모두에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당시에 실존주의라고 하였던 사르트르의 생각을 반박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그의 해명이 주된 내용이 되고 있으며, 아마 그러한 실존주의에 대한 반박 내지 적대감의 많은 부분은 실존주의는 비인간적이라는 것에 몰려 있었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이 책은 그 분량도 적었지만, 다소 이해하기에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몇권의 일반적인 20세기 철학에 대한 해설서와 철학자에 관한 책 등도 참고로 보게 되었다.. 실존의 의미에 대하여고대의 원시 자연 철학자들은 셰계의 근원에 대한 무수한 추측과 탐구를 하였으며 소피스트들을 계기로 하여 그 근원 에 대한 관심은 곧 인간에게 돌려져서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문과 실험을 하게 되었다.이러한 궁금증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그리하여 오랜동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오직 신 만이 그 원인을 알고 있으며 또 신 이 그 원인 자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사람들의 사고의 방법이 좀더 경험적이 되어 가는 것과 또 신에 대한 일종의 좌절감과 더불어 좀더 진지하게 우리 인간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는 노력이 싹트게 되었다.그러던 중 데카르트는 여러 가지 의심 가운데에서 오로지 지금 생각하며 따라서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을 하였다.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근대 철학의 시발점이 된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이전의 명제인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존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인간의 창조보다도 인간 자체의 창조가 선행한다는 것, 혹은 더 비약하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나는 생각하고 고로 존재한다'는 것은 만물의 근원을 인간의 인식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문제를 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의심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서 다가오게 되었다.이런 과정 중에서도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시간의 속도였다. 수 백년 동안 비슷해 보였던 생활의 모습들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접하는 생활의 영역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넓어졌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고민거리들이 전 시대를 살던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세계의 복잡한 관계를 둘러싸고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당황은 큰 불안과 정체를 가져왔다.이런 복잡한 상황속에서 커다란 불확실성과 의심 가운데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자신의 존재이며 나아가서 이러한 모든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것 역시 자기 자신, 곧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사르트르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도 오직 우리들 자신의 결정과 참여에 의하여 해결된 다는 것을 주장한다.실존한다는 것은 그 외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밖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우리는 생각한다는 것이고, 또한 실존주의에서 우리는 삶을 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낡은 관념과 우매함을 떨치고 진정한 이 삶에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 이러한 삶에 대한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방식, 이것이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적(휴머니즘)인가?실존주의를 자연주의의 한가지로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자연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와 분개를 일으켰다고 하며 특히 실존주의는 자연주의 이상의 비관적인 주장을 한다고 당시의 사르트르 비판론자들은 말했다고 한다.하지만 사르트르는 실존주의가 인간의 주어진 상황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인간의 스스로에 의한 행동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결코 정적주의가 될 수 없으며 또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관적 묘사도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 자신 속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낙관적이라고 한다.실존주의가 낙관론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자기간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사르트르의 주장에 대하여 지나치게 실존주의가 인간을 개체적 주체성에 가둔다는 비판에 대해, 사르트르는 결국 생각과 진리의 출발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하나 뿐인 진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점에서 구하므로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또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것이라고 한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르트르의 생각은 결국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사상이 된다. 이런 실존주의의 생각은 인간마저도 하나의 물질로 평가하려는 사상과는 그 방향이 전혀 반대이다. 사르트르의 생각의 출발점이 인간 개인의 주체성인 점에서 유물론자(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연대 의무를 져버렸다 고 하거나 순수주관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인간을 고독한 것으로 생각한다 고 비난한다고 한다.먼저, 두 번째 비난에 대하여 사르트르는 인간의 주체성을 사상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다른 사상보다도 더욱 인간에 다가온 것이고 이러한 비난은 인간이 돌이나 책상보다도 더 큰 존엄성을 가진 것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실존주의가 인간의 연대의무를 져버렸다는 것에 대하여도, 결국 사르트르에 있어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그와 관계된 문제는 결국 인간의 선택과 행동·참여로 해결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그의 생각에서는 오히려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연대의무 가 책임으로 다가서게 된다.실제로도 사르트르는 가장 참여적이었으며 연대를 강조한 지성인이기도 했다.사르트르는 많은 사람들의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고,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예를 여러 가지 들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예를 선정하여 내 나름대로 실존주의에 있어 갈등과 도덕성, 그리고 개인의 자유에 대해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한 청년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지고 또 친독적(親獨的) 경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의 형은 1940년의 독일군 침공시 살해된 터라 좀 원시적이라고는 하겠으나 갸륵한 생각으로 이 청년은형의 원수를 갚고 싶어한다. 로
    인문/어학| 2002.12.14| 5페이지| 1,000원| 조회(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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