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전의 창출 및 공유조직의 리더와 조직원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비전을 공유하고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나만의 병법을 정리해 보세요.아무리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하여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나 사업계획을 책정하여도, 이를 실행하는 것은 다름아닌 업무를 수행하는 사원들이다. 따라서 사원들이 시장이나 고객의 요구변화에 적절하게 임기응변으로 잘 대응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해당 기업의 재도약이나 성장의 관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업으로서는 사원으로 하여금 ‘더욱 더 고객에게 공헌하고 싶다’, ‘상품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정보를 회사에게 제공하고 싶다’, ‘경쟁회사에게 지고 싶지 않다’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동기를 자극하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단합이나 협동심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즉 물질적인 동기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성과급제도를 적극 추천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성과가 미흡했어도 타 부서의 좋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향이 필요할 것이다.2. 능력개발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변화를 읽어내고 시대가요구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나만의 병법을 정리해 보세요.시대의 변화가 빠르고 복잡해질수록 나 자신이 혼자 시대변화를 예측 하기 보다는 전문가나 미래학자의 도움이 더 필요해질 시점인것이다. 즉 시대변화를 읽어내는 힘은 나자신보다 미래학자들의 식견과 관점이 더욱 예측력이 정확하기 때문에 미래학자들의 쓴 책이나 신문 스크랩등을 통해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요즘 같이 자기개발을 위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된 때는 없었다. 직장인을 위한 교육기관도 많아졌고 제공되는 교육프로그램도 아주 다양하고 풍부하다.마음먹고 눈만 돌려보면 질 좋은 교육과정과 무료로 제공되는 프로그램들을 금방 찾을 수 있으며, 교육비용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과정도 많아서 큰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시간절약을 위해 다양하게 제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겸손한 태도로 “부장님, 뜻밖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라고 의논하는 것이 더 효과적. 부하가 상사의 능력을 신뢰하고 손을 뻗으면 상사는 그 보답으로 부하를 인간적으로 대하다3>상사와 논쟁하지 않는다. 업무를 둘러싼 논쟁이건 개인적인 논쟁이건 부하에게 밀렸다는 느낌은 아주 불쾌하다. 부하의 논리가 아무리 설득력이 강해도 그 수치심은 상사에게 상처가 되기 쉽다. 설령 상사에게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해도 상사와 논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4>상사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지 마라. 상사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주력한 나머지 쓸데없이 상사의 시간을 뺏는 어리석은 행동은 금물. 별것 아닌 일로 늘 상사의 주위를 맴돌며 시간을 뺏으면 당신은 언젠가 귀찮은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6. 조직 관리조직이 유기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원칙과 소신을 갖고 시스템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나만의 병법을 정리해 보세요.조직을 외부에서 보면 한 색깔을 띠지만 조직 내부로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있다. 다양한 색들이 조화롭게 혼합돼 한 색깔을 내는 것. 혼자서 는 낼 수 없지만 모이면 낼 수 있는 색, 그것이 ‘조직의 힘’이다. 조직은 한 척의 배와 같다. 배가 바다 위를 순항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항해사도 선장 때문도 아니다.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할 때 가능한 일이다. 여러 요소가 응집돼서 나온 힘, 그것이 바로 조직 힘의 원천인 것이다. 조직의 힘에는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게 지속하는 힘이 있다.조직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조직 구성원의 가치의식과 행동방식, 기업 경영시스템, 최고경영자의 경영이념과 사원정신으로 표출된다.기업마다 다른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 색이 빛을 발산해서 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도 있고 그저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한국 기업들은 그 동안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강한amul/437" t "_blank" 리더의 조건과 덕목 < 張 薰 > (노은풍물단) |작성자 HYPERLINK "http://cafe.naver.com/noeunsamul.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jbw8255" t "_blank" 장 훈나만의 인재 발굴 요령이 있다면 첫째, 외모를 보고 사람을 채용하지 말아라.마케팅부문의 사람을 채용할 때 외모 등 겉모습이 그럴싸하고,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채용했는데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진실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둘째, 언어능력을 채용기준으로 삼지 말아라. 지원자가 영어를 잘하면 다른 능력도 뒷받침될 것으로 생각하여 채용했지만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즉 언어능력만을 채용기준으로 삼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셋째, 학벌을 능력과 연계시키지 말아라.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꼭 필요한 인재는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 적격이고, 특히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원이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8. 정보 네트워크정보 네트워크에서 경쟁사보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 및 리더의 전략적인 자세에 대한 나만의 병법을 정리해 보세요.최근 들어 ‘마케팅전쟁’이라는 표현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용어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마케팅전쟁’이라는 용어에서 우리가 간파해야 할 시사점은 결국 마케팅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정보라는 점이다. 정보는 마케팅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경쟁사를 정확히 알고, 소비자를 정확히 알고, 자사의 역량을 정확히 안다면 마케팅전쟁에서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보는 경쟁의 출발점 자사의 고객가운데 어떤 고객층이 가장 수익률이 좋은가, 또 이러한 수익률이 현재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토대로 목표고객층을 하여 각 고객의 신용평가를 단 1,2초 사이에 수행한다. 마케팅정보시스템의 필요 정보 마케팅정보시스템을 운영하여 마케팅 의사결정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여야 한다.● 일상적인 마케팅 정보마케팅정보시스템은 일상적인 마케팅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 특히 시장규모, 시장의 구조 등 시장전반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PC시장의 경우 일반소비자용 시장과 기업체용 시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486급 PC시장과 펜티엄 시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와 같이 시장구조의 변화를 파악하여야만 한다.또 시장의 동향,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 법률적 이슈 등에 대한 정보도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소비자 문화의 변화는 매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거실 등의 바닥에 사용하는 바닥재 시장에서 민속장판은 전통적인 종이 장판보다 실용적인 제품을 선호하면서도 전통 장판의 문양은 선호하는 소비자의 문화적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제품이다.● 판매정보두번째로, 매출액 및 수익률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매출액 측면에서 볼 때 제품별, 브랜드별, 지역별, 영업팀별, 대리점별, 심지어는 영업사원 개인별로 매출액을 파악할 수 있다. 판매정보는 자사의 약점 파악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으며, 각 영업인력에 대한 목표 부여 및 평가를 위해서도 활용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매출액 정보를 수립할 때 유의할 점이 있다. 매출액 정보가 유의미한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실매출 정보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사에서의 출하기준 매출액은 정보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매출액이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구매한 실매출 기준의 매출 정보가 필요하다. 기존의 매출 정보시스템은 출하기준의 정보였기 때문에 자사 영업사원과 대리점과의 유대관계 내지는 압력관계만을 파악하는 척도에 불과하였다. 자사 제품 및 영업 인력의 판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기준의 실판매 실적이 중요을 말한다. 이를 위하여, 업무수행에 혼선이 없도록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이를 상황에 맞게 실행하도록 관련된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정보를 지휘해야 한다. BPM의 이러한 역할은 일관된 업무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업무처리의 혼선을 줄여주며, 그 결과 오류비용과 유휴시간을 감소시킨다.2. 실시간 가시성(Real-time Visibility), 투명성을 통한 실시간 위험관리RTE의 핵심 개념 중에 위협요소와 기회요인의 즉시 파악,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다. 이는, 기업의 위협요소나 기회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핵심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특히, 실시간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프로세스의 성격이나 역할에 따라 요구되는 가시성의 수준이 다를 수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상황에 맞게 프로세스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BPM을 통해 이를 구현할 수 있다.또한, 비즈니스의 변화와 기회, 그리고 위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위협요소나 기회요인의 상당부분은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감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핵심 프로세스에 대한 위협과 기회를 인식하는 기준 즉, 지표(Indicator)를 정의하고, 해당 지표의 일반적인 값의 범위와 위협이나 기회에 해당 하는 값의 범위를 정의한다. BPM이 프로세스 수행 중 발생하는 정보를 토대로 해당 지표 값이 위협과 기회의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관련된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적절한 프로세스가 진행되도록 할 수 있다.3. 프로세스의 지연요소 최소화RTE의 실현을 위하여 End-to-End Process가 사람과 시스템의 역할이 적절하게 구성되어 끊김이 없이,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프로세스의 자동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반드시 사람이 처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프로세스 내에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과 반드시 사람이.
1.(Wikipedia)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지식이 얼마나 정확하느냐를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설명하고 그 효과성에 대해서 소개하시오.웹2.0이 떠오르고 있다. 월드와이드웹( World Wide Web) 즉 우리가 알고 있던 인터넷이 발전된 형태인 웹2.0은 무엇인가. 웹이 일반인에게 서비스를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웹의 기술적 발전은 가히 놀랍지만 여기서는 다른 측면에서 다가가야 할 것 이다. 웹브라우저를 켜서 원하는 사이트에 접속하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뉴스를 시청하는 행위는 보편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사용자 스스로가 콘텐츠를 제작하여 웹에 게시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참여를 이끄는 시대가 되었다.다시 말해 웹2.0 시대라는 말은 소수가 독점하던 콘텐츠의 재산권과 공유권이 대중에게로 움직이는 “공유” “참여” “개방”이 존재하는 시대를 뜻한다.웹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정보화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웹을 통하여 다양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2001년 이러한 닷컴기업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을 통하여 검증이 이루어지고 이들 기업의 거품이 사라지면서 인터넷 비즈니스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이러한 전반적인 비즈니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보검색 서비스는 인터넷 초기에 비해 안정되고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검색광고)의 정착으로 인해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몇 안 되는 확실한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의 주요 포털 사이트 간에도 그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정보검색 서비스는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서비스로서 사용방법이 단순하고 쉽기 때문에(질의어를 입력 창에 입력하고 클릭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용자의 참여, 개방성, 집단지능 등의 특징을 갖고 있는 Web 2.0 환경과 좀 더 사용자의 의도에 근접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고자 하는 정보검색 개발 및 서비스 업체의 의지가 결합되어 단순히 수요자나 소비자 입장에 있던 일반 대중들이 공급자와 생산자가 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정보검색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이런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은 1990년 휘몰아친 닷컴버블의 혼란 속에서 명확한 생존 정답을 제시하였고 크라우디드 소싱(Crowd Sourcing) , 지금의 위키피디아를 가능케 한 위키 기술로 그 모습을 발전시켜 나간다.영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이미 10개국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 서비스인 위키피디아(http://www.wikipedia.org)의 서비스를 살펴보면, 브리태니커 같은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던 백과사전을 다수의 네티즌에 의해 만들어지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Web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검색, 블로깅, 태깅 등을 활용해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정보의 연관관계를 만들어내고 생산된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하게 되면서 성공적인 위키피디아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위키피디아는 인터넷으로 공동으로 편집할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이다.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 여러 가지 언어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지식의 축적물이다. 우리나라언어로 번역된 것은 전체적으로 봤을 경우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잘 정리 되어있는 것 같다. 전체 350만개의 기사 중에서 한국어판에는 약 2만 이라고 하니 그 사용현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여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역시 웹 2.0을 잘 보여주는 사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커뮤니티의 가입 후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내용은 틀린 부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수정을 할 수 있으며 보강할 내용이 있으면 더 추가 할 수 도 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내용에 있어서는 링크가 되어 하나의 것을 찾아 볼 때 필요한 다른 주변지식들도 알아보기 편리하게 되어있다. 백과사전에서 중요한 점은 그 정보의 정확성과 양에 있는데, 위키피디아는 그 양에 있어서는 다른 백과사전에 비해 최고라고 할 수 있으며, 질 또한 계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아무리 좋고 다수의 정보를 지니더라도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전 세계 네티즌들이 즐겨 찾는 이용자 참여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는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이 많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사이트의 공동설립자에 의해 제기됐다. 자유롭게 내용을 편집하고 변형시킬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악의적으로 백과사전의 내용을 변형시킬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백과사전' 이기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백과사전이라는 원래의 성질을 잃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낸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위키피디아에서 몇 개의 글들의 내용을 틀린 형태로 수정한 결과 그 것들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출처가 위키피디아인 자료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영국 더타임스는 11일 인터넷판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이 인터넷 사전 공동설립자인 래리 생거는 최근 앨런 존슨 영국 교육부장관이 인터넷의 교육적 효용성을 설명하면서 특히 위키피디아의 장점을 칭찬한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존슨 장관은 최근 벨파스트에서 열린 교사연합-여교사연맹(NASUWT) 연례회의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소유할 여유가 있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 방대한 목록을 뒤적여야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지금은 위키피디아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생거는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존슨 장관은 운영 및 기능상의 문제로부터 종종 신뢰할 수 없는 내용과 이런 저런 추문에 이르기까지 위키피디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키피디아는 아직도 상당히 유용하지만 이미 너무 망가져 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현직 대학 교수를 자처하던 저명한 위키피디아 자료 제공자가 실제로는 24살 난 대학중퇴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미국 정치계의 더러운 흑색선전의 선구자가 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정치가들이나 반대 정당 사람들의 프로필을 위키피디아에서 바꾸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키피디아의 소개란에 따르면 100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위키백과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24시간 내내 감시와 수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하지만 ‘백과사전’ 분량의 방대한 정보를 감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위키피디아의 존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다. 다수의 편집자들이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키피디아 사용자들의 경험이 “흥미로운 것”인 동시에 “당신이 지금 즉시 이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위키피디아의 설립원칙처럼 즉각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런 발전 모델의 장점은 “여러 프로젝트들이 재빨리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지성”은 참여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 질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 점은 경험적으로 확인되는데, 위키피디아 문서항목에 수록된 참조사항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 그 질도 높아진다. 실질적으로 소수의 전문가 의견보다는 다수의 지식을 이용하여 정보를 표준화하는 것이 훨씬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모든 정보가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정보의 갱신은 필수적이고 빠르고 정확한 갱신을 위해서는 소수보다는 다수가 정보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위키피디아 초기시절 악의적인 편집이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전달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정보를 갱신해 나가면서 더욱 정확하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위키피디아의 정확성 부족은 한계가 존재하긴 하다. 백과사전의 목표는 진리다. 이 진리는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과학적 목표다. 이러한 한계를 조금이나마 최소화 하기 위해서 위키피디아에서는 새로운 개선책을 진행하고 있다.글을 올리고 검증하는 방식은 상당히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정보를 올리려는 사용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이미 수록된 정보를 수정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등록 없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정보는 수정에도 제동이 걸린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노출 빈도가 높은 항목은 정보 왜곡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편집진만이 수정 절차에 접근할 수 있다. 상근편집진도 별도 운영된다. 지금까지는 상근편집자 없이 600명의 자원자로 구성된 비상근편집그룹이 정보의 정확성, 저작권 침해 여부를 심사했으나 검증 강화를 위해 자체 편집 인력을 가동하기로 했다. 가장 장기적인 계획은 각 항목에 ‘더블 버전’을 두는 것이다. ‘열린 버전’을 통해 사용자가 계속 정보를 입력 및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일단 정확성이 보장된 정보는 ‘영속 버전’으로 별도 보존해 ‘열린 버전’ 이용자들이 참고용으로 활용하도록 했다.위키피디아의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개선책이 효과를 어느 정도 걷을 경우 다수의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편집도 축소될 것이며, 소수의 전문가가 많은 정보를 담당하는 비효율성도 감소될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다수가 편집하는 것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웹 2.0시대에서 더욱더 합리적이고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은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정치적, 종교적, 논쟁적인 부분의 정보들에서는 매우 치열한 네티즌들의 주장이 올라오는 소모전이 예상되지만, 정확한 진리가 도출이 되지 않는 시점에서 백과사전에서는 논의조차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보의 접근성, 생성성 면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이 일년 단위로 업데이트 되고 정보의 변화가 일년 단위로 늦게 될 바에는 위키피디아같이 실시간으로 정보의 변화를 빨리 변경시켜주는 것이 웹2.0시대에서 더욱 효율적이고 경제적 비용을 줄이면서 전문가들도 간과한 부분을 다수의사용자들이 메워주는 것이 정보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미국에서 진행된 금융 개혁에 대해서 논하라.※채점기준- 연방은행의 설립에 대한 논의 배경과 결과 (30점)- 예금보험 공사 (FDIC) 의 설립 배경과 결과에 대한 논의 (30점)- Glass-Steagall Act 에 대한 논의 (40점)-연방은행의 설립배경 및 결과연방은행의 설립은 1907년 공황을 기점으로 금융실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들어 진것이다. 1907년 10월 공황을 직접적으로 야기 시킨 것은 프리츠 오거스터스 하인즈와 형제들 그리고 찰스 모스라는 주식 투기꾼의 주식매점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뱅크런이 촉발되었고, 그 결과 은행들이 줄도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발생으로 시중유동성 복구자금을 대거 흡수하면서 유동성부족이 야기되었고, 심지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반재벌정책으로 투자심리를 급랭시킨점도 간과 할수 없는 점이다.즉 1907년의 금융공황은 샌프란시스코 지진 발생과 연란은행의 미국 금융어음 규제 이 두 가지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일어났다. 이때 F. 오거스터스 하인즈와 찰스 모스가 유나이티드 구리회사의 주식 매점을 시도함으로써 공황의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니커보커 신탁회사의 총재인 찰스 바니가 하인즈 및 모스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알려지자, 예금자 18,000여명이 돈을 찾으러 니커보커 신탁회사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뱅크런이 니커보커 신탁회사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은 아메리카 신탁회사를 비롯한 다른 금융기관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월스트리트가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급박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J. P. 모건은 월스트리트로 돌아와 자금 지원체계를 조직해 뱅크런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907년 공황이 초래한 가장 심각한 결과는 자금 부족과 유동성 부재였다. 이때에도 또 다시 J. P. 모건은 공황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한 역할을 했다. 모건은 더 많은 문제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에스스틸이 소규모 강철 제조회사를 사들이도록 했다. 운용자금 부족으로 거의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뉴욕 시와 뉴욕 증권거래소 문제 역시 J. P. 모건이 해결사 노릇을 했다. 이런 위기가 지나간 뒤 미 의회는 은행을 감독하고 금융 시스템의 미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설립하기로 했다.경제정책기관으로서 FRB의 목표는 크게 2가지,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이다.즉, 낮은 실업률과 안정된 물가 속에서도 균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FRB는 90년의 역사 속에서 매 시기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경제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3가지의 주요 기능을 수행해 왔다.첫 번째는 통화정책의 결정 및 집행이며,두 번째는 금융시장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금융기관 감독,세 번째는 화폐 발행 및 정부 여신이다.이들 기능 중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통화정책으로, FRB는 이를 위해 '공개 시장 조작'(Open Market Operation), 지급 준비율(Reserve Requirement), 재 할인률(Discout Rate)이란 3대 금융정책 수단을 사용한다.흔히 '금리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FRB가 공개조작수단의 하나인 '연방기금 금리'를 이용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이후에 FRB의 영향을 막대해지면서 연 8회의 정기적 통화정책 회의나 비 정기적 회의를 거쳐 금리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월가는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의 귀는 일제히 FRB로 향한다. 그러나 FRB의 존재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면 미국 정부에 예속된 공기관 성격의 은행이 아닌 개인 사설 은행이다. 제3세계의 약소국의 중앙은행도 아니고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FRB. 세계의 경찰이라 불리는 초유일 강대국 미국은 아이러니 하게도 FRB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채무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즉 은행의 건정성 감시와 예금자의 심리적 안정을 주는 문제 은행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만 반대로 서브프라임 같은 은행의 규제 감시를 소홀히 했을 경우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는 사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예금보험 공사 (FDIC) 의 설립 배경과 결과에 대한 논의미국은 1809년 최초로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일반대중 은행도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경제불황으로 은행파산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금융부문의 불안정성이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금융제도의 개혁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1829년 뉴욕주는 은행채무에 대해 주정부가 보증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이는 보험원리를 적용한 형태의 최초의 예금보험제도로서, 기본적인 원칙으로 다음사항을 설정하였다. 첫째, 모든 은행이 참가하여 부과금을 내고 기금으로 운용함, 둘째, 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행에 대한 검사권을 부여함, 셋째, 은행자산의 운용방법을 특정 항목에 제한함 등이었다. 이후 1858년까지 5개 은행이 이와 유사한 보증프로그램을 채택하였다. 보험기금은 주에 따라서 기금형태로 운영되거나, 혹은 무기금형태로 운영되어 사후징수형식을 취하였다. 보호대상은 은행권 소유자와 예금자였으나 은행권 소유자가 주 보호대상이었다. 보증은 주로 은행의 파산시 은행권 소유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지급이 항시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은행청산이 모두 완료될 때까지 지연된 경우도 있었다. 은행파산이 증가하여 기금이 고갈된 경우에는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부족액은 참가은행들이 사후에 납부하는 부과금으로 보전한 경우도 있었다. 주정부에 의한 예금지급보증은 은행시스템의 안정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이후 주단위 은행들이 국법은행(national bank)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국법은행의 은행권은 모두 채권으로 담보가 설정되어 있었으나, 은행권 발행은행의 파산시에는 채권의 가치에 관계없이 연방정부에 의해 즉시 지급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국법은행권은 연방정부에 의해 보증된 것이었다. 주정부에 의한 은행채무보증 이후 20세기 초까지 정부가 직접 예금지급을 보증하는 형태의 예금보호는 시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금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1907년에서 1917년 사이에 8개주에서 예금보호기금이 설정되었다. 이들 주에서는 참가은행들이 부과금을 징수하여 예금보호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나, 주정부가 명시적으로 예금을 보증한 것이 아니라, 파산은행의 예금자에게 일단 이자부 배당증권을 교부하고 파산은행의 청산이 완료되면 실제 지급을 하되 부족분이 발생하면 예금보험기금에서 지급하는 식이었다. 만일 가용 예금 보험 기금이 증가하면 지급하였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 이후 농업 불황으로 보험기금이 고갈되면서 1930년에 이르러 모두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1930년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예금보험에 대한 아이디어가 연방예금 보험공사의 탄생으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Golembe는 1930년에서1933년 사이의 대공황과 금융산업의 붕괴가 없었다면 명시적 예금보험제도가 채택되기 힘들었을것이라고 주장한다. 매년 1000개이상의 은행이 파산했으면 1933년 4000개의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따라서 예금인출사태를 방지하고 은행부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연방정부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여론이 생성되었다. 1933년 은해업이 개정되어 임시예금보험기금이 설정되고 모든 연방준비제도 산하은행은 기금에 가입하게 되었다 예금보호의 최고한도는 2500달러 였는데 이는 예금자의 97프로가 보호되는 수준이었으며 1935년 은행법 개정으로 임시 예금보험기금은 영ㅇ구 기금으로 전화되었고 FDIC가 설립되어 이를 관리하였다. 예금보호한도가 5000달러로 인상되었고 FDIC와는 별도로 1934년 저축대부조합을 대상으로 FSLIC가 설립되어 저축대부조합의 예금보험을 담당하였다 1980년대 중반이후 대규모의 저축대부조합도산사태로 FSLIC가 채무초과 상태에 이르자 1989년 FDIC가 저축대부조합의 예금보험까지도 담당하게 되었다 1970년부터는 신용조합의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국신용조합협회가 운용하는 전국신용조합자금보험기금이 운영되고 있다.
☞ 들어가면서? 왜 산업혁명을 고찰해야하는가.? 산업혁명기 디자인의 변화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본 문? 산업혁명의 사회상? 산업혁명이 디자인분야에 끼친 영향?-1.산업혁명의 표면적영향 - ‘대량생산’디자인의 경제성 부각?-2.산업혁명의 이념적, 사상적 영향 - ‘미술공예운동’촉발 현대디자인이념의 모태생성☞ 마무리하면서? 산업혁명이 끼친 디자인분야의 득 과 실? 역사적 관점에서 현시대에 디자인이 나아가야할 방향?참고문헌?영국 산업혁명의 재조명 김종현 서울대학교출판부?20세기 디자인 조나단 M.우드 시공아트?산업디자인150년 정시화 미진사?20세기 디자인 카시와기히로시 조형교육Ⅰ-1. 왜 산업혁명을 고찰해야하는가.인류역사상 다방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주제가 ‘산업혁명’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학자 토인비(A.Toybee)는 산업혁명의 개념을 확립하면서 18c ~19c 일어난 근대경제사회로의 급격한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주목했고, 콜맨(D.C Coleman)은 산업혁명을 ‘공업성장 곡선과 단순한 기계화를 넘어서 그 속에서 인구성장, 대규모 및 광범한 공업투자, 그리고 공업에 대한 과학의 두드러진 침투효과가 급속하고 누적적인 공업화 과정을 낳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변화의 결정적시기로 보고 있으며, 마티아스(P.Mathias)도 ’공업화의 장기적 과정의 초기국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산업혁명을 역사적 변화의 중요한 시기로 규정하고 많은 연구자 및 학자들의 관심을 이끄는 요인은 무엇인가? (김문겸, 근대산업생산의 노동과 여가)만약 산업혁명이 경제, 공업 분야의 성장 및 기술 분야의 진보만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면 역사적으로 그렇게 큰 의미를 둘 수 없지만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전통적, 전근대적인 경제가 근대 자본주의적요소의 경제로 전환하며, 사회 전반에 관한 모든 형식들이 바뀌게 되었다는 현상은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산업혁명의 본질을 기술혁신을 기 장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또한 산업혁명기를 지나서 20c에도 변화의 패러다임과 사상, 이념이 유지되어 온 점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주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어떠한 분야이든 이론 확립과 사건의 인과과정을 통한 미래의 방향성 정립에 어려움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산업혁명과 그에 영향을 받아 발생된 변화 및 사상에 대해 집중조명하고자 한다.Ⅰ-2. 산업혁명기 디자인의 변화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와 혁신 등이 이루어졌지만 특히 용어까지 생기면서 큰 혁신이 이루어진 성과는 기계분야의 성장을 통한 ‘공업화’ 와 예술분야 ‘디자인’이라는 개념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농업 문명사회로부터 공업문명사회로의 이행을 뜻하므로 보통 이를 라 부르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사회경제적 틀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공업화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확립과정이었다. 한편 무어(W.G. Moore)는 공업화를 “경제재 및 서비스의 생산에서 무생물 동력원의 광범한 이용”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산물로서 공업화를 포괄적 범위에서 “경제 근대화”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논의 주제의 한축을 시도할 방향이다. 또한 휴스(J.R.T.Hughes)는 경제적 측면에서 공업화를 바라보았는데 공업화의 주요목적은 단위당 재화 및 서비스 생산의 실질비용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라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최소의비용으로 최대의 생산량 창출이라는 의미를 뜻한다. 즉 ‘대량생산’을 통한 ‘경제성’이라는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산업혁명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는 수공업적 제조과정을 통해서 모든 생활제품이 생산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미술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었지만, 산업혁명으로 초래된 제조생산 방법의 변화와 시장의 변화로부터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어지고 있었다. 산업시대 초기에 디자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분야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디자인이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두 번째 소주제로 산업사회의 발단으로 전개된 사회상이 디자인역사와 디자인이념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Ⅱ-1. 산업혁명의 사회상산업혁명의 전개과정을 보면 농업, 광업, 공업분야등 다방면에서 변화가 일어났지만, 혁신을 주도적으로 해나간 분야는 공업분야이다. 잭슨(R.V. Jackson)의 산업생산 지수를 보면 공업생산은 1750~1830년에 약 5배가 증가하고 인구는 약 2.3배 그리고 1인당 공업생산은 약 2.2배 증가하였다. 특히 공업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면공업은 82배, 철공업은 11배, 석탄산업은 7배나 증가하였는데 놀라운 성장을 보일 수 있었던 배경은 영국의 상업중시풍토와 식민지를 통한 판매촉진, 무역의 성장성을 들 수 있다. 엄청난 이윤을 목적으로 다량의 제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계화를 통한 생산증가가 필수적이었으며, 기계 발전을 통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촉진되었던 것이다. 즉 산업조직분야에서의 소규모 가내수공업에서 기계화된 공장 공업조직으로 전환이 필수 불가결한 변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으며, 필연적으로 산업혁명을 촉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 된 것이다. 공장제 기계 공업의 발달에 의한 생산량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대량소비를 충족시키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이로써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하게 되었으며, 기업의 대규모화가 진전되었다. 또한 공업의 근대적 변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에 선행 또는 병행해서 도로 , 항만, 운하, 교량,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이 건설되고 확대되었다. 교통수단이 근대화되고 수송 능력이 확대됨으로써 경제적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되었으며, 시장의 확대가 가능해지고, 국제화시대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그에 밀리지 않게 국내시장도 규모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국내시장규모가 증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으로 인한 소득증대였다. 길보이에 의하면 비숙련노동자와 직인은 일당으로 18c말까지 약 2배 이상의 상승을 하였으며, 국내제품 수요확대의 일반 증대했고, 계급간의 향유하던 문화의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즉 사회의 구조적특성으로 사회계급간의 거리의 짧음과 계급간의 가동성이라는 요인이 새로운 욕망의 급속한 전파, 새로운 유행의 급속한 확산, 계급간의 경쟁, 사회적 겨루기 , 경쟁적 소비지출을 촉진한 사회적 환경에 중요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시기에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경제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품의 판매촉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다. 그중 한분야가 ‘디자인’ 분야이다. 본격적으로 산업혁명기의 변화가 디자인에 미친 영향을 표면적 부분과 이념적 부분으로 나뉘어서 논의해보겠다.Ⅱ-2. 산업혁명이 디자인분야에 끼친 영향?-1.산업혁명의 표면적영향 - ‘대량생산’ =>디자인의 경제성 부각산업혁명시기에 미술이라는 용어보다 좀 더 발전적인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생성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전에도 미술이나 장식이라는 개념으로 미적, 독창성, 기능성등 항상 추구되어 왔던 현상이지만 자본주의의 시대가 팽배한 사회의 도래로 모든 산업의 목표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한 능률의 증대를 목표로 상품생산을 하게 되었다. 즉 기계의 공업화의 출현으로 인간의 능력의 몇 배가 되는 생산속도의 증가와 작업량의 급증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가 과거의 미술이라는 개념은 쇠퇴하고 경제적인 원칙에 부합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이전에는 소수의 장인이나 공방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은 너무나 한정된 양이었고, 소수의 생산품이나 장식을 이윤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하고 장식적인 미를 추가하여 고가상품으로 만든 시스템(고가품 소량생산)이었다. 그러나 기계의 발달로 대량생산이라는 시스템(저가품 다량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세밀성이나 미적 감각은 좀 떨어지지만 저가에 상품을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생산은 곧바로 소비붐(boom)을 충족시켜주었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윤극대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 미적이나 심미성에는 냉소적 반응이었다. 다시 말해 산업혁명 이후에 디자인의 패러다임은 시장판매를 위한 가격우선주의적 단순한 형태의 제품디자인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라는 현상은 현대 및 미래사회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사실이며, 디자인을 창조하고 계속적으로 지배해온 산업자본주의 틀 안에서 디자인은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 이중적인 관계를 맺는 특징을 지니게 된 것 있다. 이러한 풍토는 야누스처럼 두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디자인 속에 내포된 경제적인 가치 및 전략이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 계승되어 왔다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2.산업혁명의 이념적, 사상적 영향 - ‘미술공예운동’촉발 현대디자인이념의 모태생성디자인 분야이든 경제 정치 사회분야이든 역사적인 방향은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을 통한 일치와 불일치, 찬성과 반대를 거치면서 통합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역사는 정(正)·반(反)·합(合)을 이루면서 시대를 선도해가는 것이 특징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소 비용을 지출하면서 상품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품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낮은 질의 대량생산품은 심미성이라는 예술의 일부분을 도려낼 수밖에 없는 사회상이 만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기업가, 생산자 측면에서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상품을 저가에 공급하는 정(正)이라는 측면이 있었지만 반대로 심미성을 추구 하고자는 예술가나 장인에게는 반(反)이라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시발점이 된 사건은 1851년에 개최된 영국런던박람회였다. 출품된 기계와 기술혁신은 엄청난 발전상을 보여주었지만 값이 싸고 저속하며 조잡한 기계생산 공예품에 대한 반감이 유발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윌리엄모리스는 (정시화,산업디자인150년)그러나 산업혁명의 기계화에 대한 반기를 들면서 윌리엄모리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상 이념은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미술로서 현대디자인의 이념적 배경이 되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기계화에 의한 생산양식의 변화에 다.
사조별에 따른 유럽의 건축 양식들어가는 말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자 격언이다. 우리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알아야 하듯이 유럽을 공부하면서 유럽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안다면 유럽을 좀더 쉽고 가깝게 안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반성하고 현재의 모습을 평가하며, 미래의 모습을 좀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즉 유럽을 과거의 역사부터 알고 미래를 예측한다면 현재 협의적으로 나를 광의적으로는 유럽을 능가하려는 많은 국가들이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건축등 여러분야가 있지만 그 중 건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교수님이 내주신 의도에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축은 사회적인 표현행위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건축이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형태를 취하며, 다른 어떤 것이 아닌가를 알려고 한다면, 우리는 사회를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우리의 건축 및 도시는 우리사회의 복사판이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의 비판적 연구는 그 모태가 사회상황의 연구가 될 것이다.” 라고 한 루이스 설리반의 말을 생각지 않더라도 당연히 건축물이라는 것이 보이는 물자체만을 가지고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관습, 풍습, 가치관, 종교관 그리고 경제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중복적으로 나타나서 어느 시대 특정지역의 보편적인 특성을 나타낼 때 문화라고 한다. 여기서 건축을 하나의 문화현상을 파악하고 양식을 조사하면서 유럽에 대해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다.1.고전 건축1) 그리스 건축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도시국가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도시국가는 종교와 정치, 경제가 접목되어 있었고, 전통신앙을 기반으로 도시의 기원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의 종교는 현세적이어서 사실적이며, 동적인 것을 바탕으로 사회와 도시구조의 기본원리였으며, 이는 신전건축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에 의한 비례를 최상의 이상적 조화로 여겼다. 또 이러한 모든 것을 서양문명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인이 독창적인데 비해 로마인은 조직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점이 로마가 갖는 중요한 역사적위치가 발견된다. 로마문화의 특징을 우선 살펴보자면 3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첫째, 로마문화의 절충적 성격이 지적될 수 있다. 로마문화의 일차적 추진력은 그리스문화에서 유래되었다. 로마문화는 거기에만 멈추지 않고, 헬레니즘, 에트루리아, 이집트등 선행하는 모든 문화를 거의 다 흡수하여 폭과 깊이를 부여하여 한층 더 종합적이며 보편적인 형태로 체계화 하였다.둘째, 로마문화는 실제적인 문화이다. 일생생활을 좀더 원활히 하고 실용가치를 존중한 문화내용을 갖춘 것이 로마인들의 문화적 성향이었다. 그리하여 추상적이며 명상적인 면보다는 실용적인 토목공법이나 의학을 창작과 미학적인 면보다는 현실적 해결방법인 과학기술과 법률을 발달시킨 것이다.셋째, 로마문화의 교량적 역할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는 그리스 및 그이전의 고전문명을 서방으로 옮기고 오늘날의 유럽중심부로 이식하여 이른바‘유럽화’를 달성하였다.이시대의 건축양식의 특징은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 건축은 외관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는 달리 거주성에 기초를 두고 내부 공간을 충실히 하였다.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진 그리스 건축과 에트루리아의 분묘나 성문에 사용한 아치형식 또는 교차식 궁륭을 채용함으로써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의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3양식에 덧붙여 새로 이오니아식의 주두와 코린트식의 주두를 짜맞춘 콤포지트식, 그리고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유래한 토스카나식을 발전시켰다.한편 구조면에서는 아치형이나 교차식궁륭을 채용함으로써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리고 다시 그 위에 분말로 된 일종의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을 도입함으로써 거대한 건물의 건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말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가장 큰 원개건축이다. 로마 건축의 또 다른 큰 특징은 건축의 다양성이다.예를들어 콜로세움 ome 또는 Vault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건축 부분이 중앙 집중적으로 유기적 전체로서 통일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성 콘스탄자 성당등이 있다.2)비잔틴 건축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비잔틴 제국은 395~1453년 사이 약1000년간 지속도면서 그리스정교를 기초로 그리스적 동방적인 동유럽세계를 형성했다. 전통적인 고전고대의 문명을 계승, 보존하여 지리적 조건, 시대 및 환경에 알맞은 독특한 하나의 문명권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로마 문화는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문화가 융합된 소산물이다.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그리스문화의 전통과 기독교가 융합된 위에 동방문화의 요소가 가미되어 하나의 독특한 문화권이 형성되었으며 동방의 문화를 서유럽에 전달하는 중계역할을 하기도 했다.건축의 양식을 들여다보자면 기독교 특유의 신앙세계를 그리기 위하여 모자이크화가 내벽이나 천장전체를 장식하고 있고, 이들은 내부에 유입되는 관선에 의해 빛을 발하는 벽면으로 쌓인 공간을 형성한다. 건축양식은 사라센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양적 요소를 가미한 건축형식을 장려하였고, 동서 건축의 기조가 되었다. 건물의 외부는 단조로움과 재료의 본질성만을 강조하는 정도이나 건물의 내부는 조각 회화장식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평면의 각 부분은 정사각형으로 취급 되었으며, 로마 카톨릭에서부터 그리스 정교로 분리되면서 라틴 십자형에서 그리스 십장형을 즐겨 사용하였다. 또한 신 주범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주두를 경쾌하게 조가 하였고 주신의 길이의 통의 비는 30:1,주초를 없앴고, 주두에 부주두를 겹쳐 얹었다. 콘트리트나 벽돌로 구체 구성을 하고 그 표면을 대리석으로 포장하였다. 벽돌쌓기는 색을 달리하여 횡선을 만드는 비잔틴식 쌓기법을 창안하였다.구조적으로는 진실된 표현과 펜던티브돔(pendentive dome)을 창안하였다.-펜던티브돔: 비잔틴 건축에서는 돔, 아치, 궁륭 등이 사용되었으므로 그리스와 로마건축에서 사용되던 엔터블러처는 불필요하게 되었다. 4각형의 평면에 돔을 올리는 것은 교의 지배력은 넓혀갔으며 게르만 족에 의해 독창적 문명을 창조한 시기보다는 새문명의 기초를 마련하는 모색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의 문화를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기독교 교회제도와 봉건제도이다. 유럽에 이주, 침략해 온 야만족들이 공통으로 갖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라틴계 언어의 사용이다. 로마네스크 사회는 봉건주의의 무정부적 경향에 내재해 있는 불확실성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 수용이전 북방유럽의 종교 감정이 그리스, 로마와 달리 현실과 비현실을 융합한 불안한 공상이 지배적이어서 주된 신들은 신비한 공상적 신계구조가 특징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때 외부로부터 초월적 관념에 매우 근사하면서도 세련된 논리체계를 갖춘 기독교와 로마법이 받아들여져 그들의 문화체계에 결정적 방향제시의 발판이 된 것이다.'로마네스크'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후세의 일이다. 영어를 통해 우리에게 들어온 로마네스크란 '로마풍의'라는 뜻이다. 11~12세기에 유행했던 건축물에서는 로마시대 건축물의 특징이었던 머리가 둥근 아치나 원통 볼트가 구사되었으며 또한 전체적으로 로마풍의 중후한 취향이 있었다.로마네스크의 건축양식은 십자형 평면을 기본으로 기둥의 간격체계, 교차볼트, 개구부의 반원아치, 육중한 벽 등을 특징으로 하며, 네이브 부분에 빛을 유입 시킬수 있는 조적볼트구조를 발전시킨 것이다. 초기 크리스트교 바실리카식 교회로부터 발전한 평면 형식은 이시기에 와서는 중저를 없애고 현관을 도로에 접하게 하여 고탑을 올렸다. 신자의 증가에 다라 신랑과 측랑의 장단축의 길이를 연장하고 성직자 전용의 기도소를 측랑 끝에 둠으로서 라틴십자형 평면형식을 완성하였다. 신도석인 신랑, 측랑과 성단은 시각적으로 구별 짓는 대아치가 있다. 제비에 의하면 로마네스크 건축은 건축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고 한다.첫째, 표면 혹은 표피로서 기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둘째, 부재, 구조적인 선형요소, 골조 등으로서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로마네스크가 기여한 것 중 중요한 점은 그 내*포인티드아치로마네스크의 리브볼트는 그 단면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기둥간격에서 높이는 자연스럽게 정해지게 마련이다. 어떻게든 하늘 높이 솟은 공간을 만들고 자 하는 종교적 열정은 아치의 정점을 뾰족하게 하여 기둥 간격에 상관없이 그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하였다. 이 첨두형 아치는 고딕의 구조발전의 눈부신 성과였다.*플라잉 버트레스첨두형 아치로 지붕이 높아짐에 따라 기둥에 걸리는 지붕의 하중이 증가하고 따라서 횡하중도 증가하였다. 증가된 횡하중은 버트레스로 지지가 불가능하여 사람이 손을 뻗어 벽면을 지지하는 형상의 플라잉 버트레스가 등장하였다.*리브 볼트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사용되었던 교차볼트에 첨두형 아치의 리브를 덧대어 구조적으로 보강한 것으로써 첨두형 아치의 사용으로 로마네스크 시대처럼 리브 볼트의 구조체계가 정방형에 한정되지 않고 장방형도 가능하게 되었다.또한 로마네스크 교회의 크고 무거운 벽은 지지용의 가는 피어로 대치되었다. 이 피어들 사이에는 얇은 막과 같은 벽이 있는데 주로 채색유리와 트레이서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건물전체에 개방적인 성격을 주고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트레이서리첨두형 아치의 내부 창의 모습을 장식하였는데, 특히 독특한 장식적 수법이 발휘된 곳이 트레이서리이다.실제로 예를 들자면 밀라노 성당, 시에나 성당 코로뉴 성당, 파리의 노틀담 성당, 샤르트르 성당, 랑스 성당, 솔즈베리 성당등이 있다.3.근세 건축1)르네상스 건축서양근대문화의 모체가 된 문예부흥운동은 인간의 정신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전개되었지만, 그 중심사상은 현세를 존중하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란 용어는 프랑스어로 재생이라는 의미로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예술전반에 복고주의적 경향에 따라 건축도 과거의 고전주의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신 중심의 사고관에서 벗어나 합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을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수학적 비례체계가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고 보고 건축의 법칙을 추구하였다. 15세기에 이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