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 학문의 선구자[외솔과 한결의 사상]을 읽고[구성]들어가며외솔과 한결ⅰ사회 사상가 - 외솔과 한결ⅱ교육 사상가로서의 외솔과 한결마치면서들어가며매일 외솔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앞의 외솔 최현배의 동상을 지나다니면서도 사실 난 외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깊이 사유하지 않음’,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잘못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사물을 대하기보다는 그냥 희미한 눈으로 내 앞의 길만 보고 걷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매일 생활하는 곳에 붙여진 이름에도 전혀 의문과 호기심 가지지 않는 나의 모습, 여느 안이한 대학생들과 똑같다.어렸을 때부터 식민지 시기의 많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왔다. ‘님의 침묵’과 같은 시로 당시의 시인을 대표하는 한용운, 저항시익 이육사 등의 문인들을 비롯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던 서재필, 독립투사 안중근, 김구 선생 등 많은 인물들의 위인전을 읽고 배워 왔으나 정작 우리 고유의 것, 한글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했던 두 인물, 외솔과 한결에 대한 관심과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성찰 없이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이 두 인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외솔과 한결이 책 [외솔과 한결의 사상] 을 읽고 나서야 난, 외솔과 한결이 정확히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공통적 사실이라 하면 어려운 시기 - 일제 식민기, 강점기 - 에 우리나라의 고유 언어, 한글을 수호하고자 애썼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알려진’ 언어학자적 외솔과 한결을 말하고 있기 보다는 교육자적 측면과 사회사상가적 측면 - 간과해왔던 - 을 중심으로 두 인물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두 인물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점 말고도 그들에게는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외솔을 ‘성찰적 민족주의자’ 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다면, 한결은 ‘기독교적 사상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할까?우선 외솔을 살펴보면 그는 단순히 일본의 강탈 식민 통치 하에서 문제시 되어왔던 조선 민족의 민족성 문제-즉 조선 민족은 열등하기 때문에 우등한 일본 황국 시민에 의한 식민 통치는 정당하다는 식의-에 비판을 제기하고 이러한 의식을 가지게 된데 에는 일본의 강탈 식민 통치의 영향이 크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식민지 상황에 대한 비판과 함께 조선시대 이후 구조화된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를 자신의 민족 스스로의 모순과 왜곡을 비판할 수 있었던 ‘성찰적 민족주의자’ 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결 김 윤경’ 은 한글학자이자, 한명의 사상가로서 그의 삶과 의식은 기독교 윤리 의식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그와 기독교와의 고리는 그의 전 생애를 이끈 중요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역시 외솔과 같이 민족의 어려웠던 시기를 겪으면서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사상가로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외솔과 한결, 두 인물을 ‘사회 사상가적 측면’ 과 ‘교육 사상가적 측면’ 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살펴보자.ⅰ사회 사상가 - 외솔과 한결당시에는 이러한 식민지적 조선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았는데, 이에 외솔은 이러한 생각들을 ‘외적 사회 조직’ 의 문제만으로 조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 말하면서 “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진상의 핵심과 근본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민족 전체를 유기체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 전체 - 민족 전체와 그 속의 각각의 개인 - 가 전부 질병을 앓고 있다고 외솔은 진단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당시의 패배주의적 비관론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비판적 ‘자성’의 소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에게서는 식민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더불어 조선 시대 이후의 구조화, 고착화된 봉건적 신분 제도에서 기인한 모순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는 말이 있듯이, 결코 객관적이기 어려운 민족의 문제 앞에서 그가 하고 있는 자기 ‘내부’ 에 대한 성찰적 관심은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자각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나아가 주체적 반성과 행동 요청이 그의 의견의 핵심이라 생각된다. 식민지라는 시대적 암울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그의 주장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솔이 당시 조선사회의 구조화된 모순 중 ‘가족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우리나라가 1970-80년대 근대화를 이루고,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의 근본 바탕에는 이러한 ‘가족 중심주의’ 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가족주의적 발상은 ‘한국만의 자본주의 구조’ 를 낳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식민지 시대라는 과거에 지적되었던 조선, 그 이전에서부터 유래한 ‘가족중심주의’ 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그런 측면에 볼 때, 외솔의 생각이 의미는 더욱 커진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생각이 ‘유심이냐, 유물이냐’ 의 양극화된 이분법적 논리로 규정지어지는 것을 부인하며, 동시에 만연해 있던 경제중심의 사고방식 역시 비판한다. 물질적, 경제적 사고의 만연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 같다. 당시, 식민지 상황에서 역시 다를 바 없는데 그는 문화적 측면에서의 투쟁을 고수한다. ‘민족 집합체로서 모두가 함께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하고, 함께 나라를 세우고, 함께 겨레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도덕적 민족이 되어 그것을 실천하는 문화 투쟁꾼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외쳤다.반면 한결은 어떠한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사상의 뿌리와 줄기는 ‘기독교’ 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머물러 사고하기보다는 넓은 세계로의 사고의 폭 확장을 요구하면서 하나님에게로 귀의하고자 했던 인물이 한결이다. 그에 대한 사회 사상가적 부분을 읽어보면 다소 시대적 상황과는 동떨어져 원론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는 기분이 든다. 다소 그의 사상이 종교적 측면에서 비추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글학자로서의’ 모습만 조명되어 왔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생각과 대화하는 새로운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글의 논의에 맞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넓은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던 한결은 Marx의 유물사관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정신적 요소 역시 ‘역사적 진화의 결정력’ 인 것이라 말한다. 이상적 모습을 실현하고자 하는 방법에서 다를 뿐,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결이 톨스토이에게서 읽은 하느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도 온전하여라” 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은 대체 무엇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한결의 가독교의 믿음과 이어져 있으며 이는 한결의 인생과, 역사관 등의 전반을 지배하는 흐름이다. 이렇듯 한결은 기독교적 사상의 배경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ⅱ 교육 사상가로서의 외솔과 한결식민지시기에 대한 깊은 역사적 지식이 없는 이들도 당시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문제에 매달려왔는지는 알고 있다. 한글학자였던 외솔과 한결에게 있어서도 ‘교육’ 이라는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시대적 상황에 의해 관립 학교에의 꿈이 좌절되었던 외솔은 주 시경과 ‘조선어강습원’ 에서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그에게 있어 삶의 방향을 정해준 결정적 계기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언어적 애국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왜 그는 교육학을 전공했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의 말에서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나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였다. 여기에서 아이들 가르침은 나의 무한한 기쁨이기는 하였지마는 나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만 이 가련한 망국 백성을 자유민으로 건져낼 수가 있을까. 나라의 독립 자유를 얻자면 모름지기 먼저 민족을 개조하고 사회를 개조하여야 하겠다. 이 거룩한 사업을 하려면 나는 먼저 더 배워야 하겠다. 이에 나는 뜻을 결하고 진보의 원리. 사회 개조의 방책들을 연구할 목적으로 다시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일본 교토대학에 입학함을 얻었다.”
사르트르J.P Sartre[말]과 [지도자의 유년시절]순서 - Ⅰ 들어가는 말Ⅱ 두 작품의 주인공 비교ⅰ말로 본 사르트르에 대한 어린시절ⅱ지도자의 유년시절 속의 뤼시앙Ⅲ 작품속 주제 의식ⅰ 존재에 대한 의식 - 실존주의와 관련하여- 죽음에 대한 생각ⅱ 부르조아지 계급에 대한 비판 의식 - 참여 문학론과 관련Ⅳ 끝맺는 말...참고자료들어가는 말대개 한 작가가 자신이 글을 쓴 데에는 개개인에 따라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말]은 사르트르의 자서전적 글이라고 하지만, 실제 그가 작가의 길을 택하게 된 하나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에서 나왔듯 어린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가 차표없이 기차에 올라 탄 군더더기의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이 이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 작가로서의 소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르트르는 작가가 되었고, 이후 철학가이자 개혁자로서 많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 혹은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한 결과로 그는 여러 작품을 남기게 되고 [지도자의 유년시절 L'Enfance d'un chef] 과 [말 Les Mots]이 그들 하나이다. 사르트르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의 유년시절]을 완성하였고 이후 자신의 자서전인 [말]을 완성하기에 두 작품은 비슷한 구도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서로 한 인물의 유년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다.사르트르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철학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인 만큼 그러한 시각으로 두 작품을 비교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두 작품의 주인공 비교ⅰ[말]을 통해 본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말]은 장 폴 사르트르, 자신의 어린 시절(주로 5세에서 12세까지의 유년기)의 이야기이다. 우선 이야기는 사르트르의 외증조부인 필립 슈바이처로부터 시작되어 한참을 가족사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글 중간에 갑작스레 사르트르 ‘나’가 등장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의 조건에 관한 글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 사르트르 역시 어린아이로 태어났기 보다는 점점 자신이 어린아이로 만들어지고, 꾸며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만들어 나아간다”는 본문의 글과 같이 이러한 사고는 훗날 실존주의 철학가로서 활동하는 사르트르의 의식의 바탕을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극적 행태는 그가 할아버지 서재를 통해 책을 접하게 되면서도 이어진다. 독일과 프랑스의 고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책장에서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그 내용과 등장 인물에 대한 자신만의 연극적 상상을 계속하게 되며 사르트르 스스로도 ‘나는 어른들 틈에 홀로 낀 축소판 어른이었고, 독서 또한 어른드르이 독서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 역시 가짜의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사실이 단지 그러했을 뿐이며, 자신의 (독서에 대한)탐험과 사냥은 ‘집안의 희극’의 일부였다고 고백한다. 독서 역시 위치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가족 연극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한 진실되지 않은 행동의 연속인 것이다. ‘교양의 신파극’, 이것이 바로 문학-책과 관련한 사르트르의 연극인 것이다. 어찌보면 가족 연극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사르트르의 독서는 이중적인 것으로 자신의 나이에 맞는 동화와 모험집에의 탐독과 보이기 위해 연극하는 독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동 사르트르는 종래에 이르러 자신의 연극에 대한 허무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군더더기적 존재성에 대한 탈출구로 죽음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종교도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존재 의식은 차표없는 여행자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성을 찾기 위한 행동으로 공상-모험소설의 영웅주의적인-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재정립 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아무의 관심을 끌지 않는 일개 궁상맞은 꼬마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책있다는 것도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뤼시앵은 부르조아적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지만,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모든 일들을 연극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물론 3인칭적 소설인 만큼 사고 과정에서의 묘사가 [말]에 비해 자세하지는 않다) 그리고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연극을 하면서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인형’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간다. 그리고 사르트르와 같이 뤼시앵 역시 존재에 대한 의식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스스로의 존재 의식을 찾기 보다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한 자기 규정을 자신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다른 이들이 정의하는 자신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지도자의 유년시절]의 뤼시앵의 유년기 역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다음 중앙공과학교라는 권위 속에서 존재를 찾으려하는 뤼시앵은 예비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말]과는 달리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는 과정이 긴 것 역시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처음의 베르리아크와의 관계가 가식적인 것임을 깨닫고 베르제르와 만남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나 이 역시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타락속에서 자신을 지켰음을 다행히 여긴다. 그리고 여전히 존재에 대한 물음을 찾지 못한 뤼시앵은 르모르당의 신념있는 당당한 모습에 끌려 청년들의 우파적 모임에 열정을 가지게 되고, 결국 자신이 그것에 대한 신념을 통해 자신이 정의되는 모습에 만족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변신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위해 수염을 기를 것을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나게 된다.두 작품 속의 주제 의식ⅰ존재에 대한 의식- 실존주의와 관련고대 플라톤의 철학에서부터 참된 존재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으로 항상 인간에게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그런데 실제로 ‘실존주의’에 대해 명확히 정의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존주의의 경계가 매우 모호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실존주의라는 이름아래 여러 사고를하는 이유를 말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있음이 정당화될 수 있는 한에서만 우리의 행위 및 관계 맺음을 통해 실존하게 된다. 우리의 ’있음‘은 우리 자신이 실행해야 하는 어떤것이며, 그러한 생각에 사르트르는 어릴 적엔 할아버지와의 연극을 통해 자신의 있음을 실행했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이론, 즉 우리의 실존이 ’연기(演技)‘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연기해야 하며, 동료들과 함께 있을 수 있기 위해 하나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이론을 위한 뿌리-그것도 체험적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이러한 생각에 따라 똑똑하고 재치있고 총명하며 어른들을 즐검베 하는 기발한 아이 역을 맡았고, 이러한 역할을 통해 자신이 정당화되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추구하는 주체성의 이상상은 ’즉자적 존재‘로써, 자신에 대한 존재의식이 확실한 존재를 추구한다. [말]중에서 어린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한 존재감에 고민하며 자신을 ’여분의 인간‘- 대자적 존재로 파악하고 이런 불안한 의식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자신을 과장하고 연극을 하지만, 이와 반대의 존재감이 확실한 시모노씨를 즉자적 존재로 파악하고 부러워 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모든게 연극적, 특히 희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행위로서, 이에 대한 고민은 다른 여러 가지 모습으로도 표출되며 결국 죽음을 극복하고 존재감에 대한 해결로써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은 즉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의 또다른 표현이며 작가에 대한 소명을 상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에 이른다.사르트르는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서 과거의 인습, 기존적인 모든 가치관에 의탁하여 주체성을 잃고 그 속에 비겁하게 안주하려고 든다’고 말한다. 사르트르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지도자의 유년 시절]에서의 뤼시앵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글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정받게 됨을 느끼며(’뤼시앵은 유대인을 싫어한다“) 드디어 자기 자신, 그리고 존재의미를 찾았다고 결론내리기에 이른다.(‘그렇다. 내게는 권리가 있다.’ , ‘나는 존재한다. 존재할 권리가 있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결국 주변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특히 기가르의 집에서 유대인과 마주하기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뤼시앵은 스스로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 당당하기 보다는 다른 이들이 자신을 무례하다고 여길까 내내 두려워 한다. 그리고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는데, 이후 다른 이들이 이런 자신의 행동을 신념적 행동으로 인정해주자 결국 그는 마치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겨 버리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참된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말]에서 어린 사르트르 역시 존재의 의미를 찾던 중 글쓰기, 즉 작가로서의 소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사르트르 역시 그러한 소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사르트르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었다. 물론 사르트르가 태어난 그 다음해에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은 찾을 수 없으나 아버지의 죽음은 사르트르가 외가로 와서 외할아버지와 살게 된 이유가 된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어릴 적부터 죽음과 관계된다. 외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책속의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을 알게되면서 ‘끝장이 좋았던’ 그들에 대해 전기적 환상을 가지면서 자신의 죽음에 관한 공상도 하게 된다. ‘나는 죽음을 살아간다.’([말]94:14~) 이렇게 그는 자신이 죽음과 어릴 적부터 관계있었음을 말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나는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신경병이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자신이 억지로 꾸밀 필요가 있는 무용성의 존재, 군더더기의 존재로서 자신은 마땅히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