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시와 박람회의 차이점(1) 전시전시회는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탄생된 '신생산업'으로서 형태는 산업전시회로 나타난다.그리고 전시회의 목적이 무역의 장이 되어야 하고 기술비교의 장이 되어야 하며 정보교류의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역 전시회라고도 한다. 따라서 전시회를 '산업 전시회'라거나 '전문 전시회', 또는 '무역 전시회'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동일한 의미이다.회의와 관련하여 개최되는 트레이드쇼나 전시회는 회의의 핵심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회의참석자나 전시회사나 모두 중요한 편익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회의단체로서는 최대의 수입창출활동이다. 본질적으로 주최기관은 제삼자인 전시자에게 장소를 임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회의단체는 호텔이나 컨벤션센타로부터 교섭된 가격으로 전시장을 임차해서 그것을 되팔음으로써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 이익은 전시회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국제회의의 운영자금은 물론 연간예산총액의 상당 부분을 부담할 수 있다.전시회는 회의프로그램을 보충해 주는 교육적인 자원이다. 전시는 회의 참석자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는 제품과 장비를 실제로 보여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회의발표회에서 토론되었던 이론을 실제의 도구나 서비스를 실연해 보임으로써 실제화 되도록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과정에서 실습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시업체의 참여로 부수적인 편익이 얻어지는 것이다.전시업체의 대표가 회의단체의 회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들 전시업체는 회의의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별회원이나 준비회원들이다. 이들은 참가자들의 특수분야의 노력에 대해서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회의나 그 주최조직의 성공에 관심을 갖고 있다.회의단체가 전시회에서 편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의 참가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시회는 신상품이든 구제품이든 신제품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학습 경험장으로 스스로의 업무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와 참고서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전시회이다. 그회에 출품하업체는 대부분이 외국과의 무역이나 거래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적인 전시회의 출품을 통해 국내외 무역의 자리를 넓힐 수 있다.② 기술 비교의 장이 되어야 한다.③정보 획득의 장이 되어야 한다.4) 전시회의 효과① 마케팅의 효과 - 전시회의 1차적인 효과이자첫째목적② 광고. 홍보의 효과③ 산업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효과 - 기업에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건전한 사회와 활기찬 산업 사회로 만드는데 그 어떤 행사보다도 큰 사회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역할과 효과를 가지고 있다.5) 그밖의 효과① 피드백(Feed Back)의 효과전시회는 5감각이 동시에 동원되어 갖가지 효과를 얻어내는 산업으로서 관람객들에게 흥미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반복해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결과를 즉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② 잠재 구매력 찾기가 용이하다③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전시회와 매우 유사하나 다른 점은 컨벤션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행사로 열린다는 것이다. 여러날 지속되는 대형 박람회에는 참가자 수가 최고 50만 명을 넘는 경우도 있다.(2) 박람회1)박람회의 개념'박람회'라고 하는 것은 "판매를 직접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전시"라고 러크하트는 정의하고 있다. 인간은 진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라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박람회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오래된 것이다. 최고의 박람회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구약성서 속에서 볼 수 있는 페르시아왕 아하슈에로스가 개최한 행사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부강을 과시하기 위해 왕국 내의 여러 가지 보물을 전시하고 자국의 왕후와 시민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동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의 양제가 대업 6년(610년)에 장안에서 연 행사는 오늘날의 박람회와 비슷하다. 서역이나 발해의 사절도 참가하고, 주위는 13km에 이르는 대행사였다고 한다.이상과 같이 박람회의 역사는 동서양에 있어서 오래되었으며, 이는 '진귀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라고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많은 사람들과 되었다.개관식 때 빅토리아 여왕은 그 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이락 말했는데, 그것이 유서깊은 엑스포의 역사를 열게 될 줄은 아마 그 자신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이 박람회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서서 자유무역이 19세기 경제정책의 지배원리로 자리잡는 계기가 외었다. 모든 전시물은 인류가 이룩한 노력의 결정이었으며, 당시의 뻗어 가는 공업력과 치솟는 상상력의 소산이었고, 그것이 곧바로 20세기의 과학문명시대를 여는 기폭제로 작용되었음은 물론이다. 두 번째 엑스포는 1853년 뉴욕에서 열렸다. 이 역시 수정궁 박람회였고, 런던을 능가하자는 의도로 기획되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뉴욕 엑스포 역시 산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한편 영국의 엑스포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에서는 1855년부터 시작해 1900년까지 다섯 번의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첫 번째 박람회는 나폴레옹 3세가 개최했는데, 샹젤리에 산업궁을 건설하여 수정궁보다 더 완벽한 금속구조물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프랑스는 계속된 엑스포 개최를 통해 영국에 뒤쳐져 있던 산업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특히 파리는 이 기간동안 도시 전체의 재개발에 성공하였다.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에펠탑'이 프랑스 하늘 아래 세워진 것도 1889년의 박람회에서이다. 이 엑스포가 개최되었을 때 에펠탑은 당시 가장 높았던 건물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높이의 구조물이었다. 에펠탑은 27개월동안 단 한명의 부상자도 없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엑스포의 기술적 상징이었던 에펠탑은 지급껏 파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고 있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구타프 에펠이 높이 300m의 철탑을 세우자는 이색적인 착안을 하는 동안 다른 발명가들과 기술자들은 각자 나름의 새로운 기술을 창조함으로써 에펠탑 건설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강철기둥의 조립이 가능했고, 전등이 비춰졌고, 발전기와 가솔린 엔진의 동력이 공급되고, 동선이 곳곳에 둘러쳐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에펠탑은 당시의 다양한 공업기술들이. 1930년과 1940년의 뉴욕 박람회는 '내일의 세계'를 주제로 63개국이 참여했고, 1년동안 4천 5백만명이 참관했으나 적자였다. 이 엑스포는 워싱턴 대통령이 뉴욕에서 취임한지 1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때마침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반에는 행사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뉴욕박람회는 이전에 미국에서 열렸던 박람회 중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박람회에서 제시한 '내일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나일론과 플라스틱이 출품된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쉽게 변형되지 않고 영구불변한 나일론과 플라스틱 개발은 20세기의 인류 생활문화를 급진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우리의 근대화 역사에서도 나일론고 플라스틱의 문화적 충격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뉴욕 박람회가 제시한 '내일'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세기 내내 구가되던 나일론고 플라스틱의 명성은 환경파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함에 따라 오늘날에 와서는 풀어 가야 한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는 발전과 진보가 역사에 상흔을 남길 수도 있다는 역설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1951년의 영국 박람회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상혼을 딛고 미래의 번영을 예고한 영국의 축제 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영제국의 위세는 크게 위축되어있었다. 5개 대륙에 걸쳐 존재하던 영국지배하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독립을 하거나 영연방에서 탈퇴를 했고, 세계의 중심도시는 런던에서 워싱턴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이런 와중에서 열린 '영국 축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박람회의 무대가 된 사우스 뱅크 지역의 수천평에 이르는 개펄이 개간되었고, 란스베리 단지는 전쟁 중에 적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었으나, 이상적인 미래의 주거형태를 영국 국민들에게 선보이는 쾌적r한 공용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런던 박람회는 한세기 이전의 수정궁 박람회 못지 않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영국인들이 전쟁을 치르며 지키려 했던 더 나은 세계를 실제 현실에서 제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엑스포라 할 수 있는 것은 1851년 영국의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이다. 산업혁명의 만개와 더불어 각국 간의 교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다양한 기술과 문화가 양산되었던 당시의 사회ㆍ경제적 상황은 런던 박람회가 큰 성과를 얻도록 한 중요한 토대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엑스포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엑스포는 근대 올림픽과 더불어 현대 인류문명의 양대 이벤트로 정착하게 되었다.그 후 엑스포를 개최함으로써 많은 효과가 창출되자 각국에서는 경쟁적으로 엑스포를 유치하려 했는데 이 때문에 고열경쟁이 일어났고 많은 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생겨났다. 또한 엑스포가 빈번히 개최됨으로써 그 자체의 권위가 실추되고 참가국은 그들대로 지나친 예산을 소모하게 되어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도 빚어졌다. 이런 문제점들이 누적되자 서양 각국에서는 참가국의 권리를 보장하고 엑스포의 남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인식이 바로 엑스포를 관장할 국제기구의 설립으로 나타났다.먼저 1907년 프랑스가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제창하였고 1912년에는 독일의 주도로 엑스포협약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마침내 192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31개국의 대표들이 협약을 맺고 파리에 국제박람회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국제박람회기구는 국제박람회가 원활하게 개최되는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주최국과 참가국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며, 개최횟수를 규제하고, 개최국과 참가국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는 등 국제박람회를 통괄ㆍ관장하는 국제기구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BIE는 회장과 4인의 부회장 그리고 행정예산위원외ㆍ집행위원회ㆍ규정위원회ㆍ홍보위원회ㆍ사무국 등으로 구성되어있는데 1년에 2회씩 회원국의 대표가 총회에서 주요 의제를 상정하고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BIE의 회원국이 되면 사무국의 모든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엑스포 주최국과 더불어 처음부터
국제관광기구와의 협력방안제2차 세계재전 이후 평화를 추구하는 분위기와 인간의 기본권 존중에 관한 이념이 팽배함으로써 인간 이동의 자유를 전제로 한 관돼에 관한 인식이 새롭게 부각되었으며, 특히 민간 항공기의 대형과ㆍ고속화ㆍ경제화 등과 더불어 세계적인 경제 호황은 국제관광의 대중화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세계 각국에서는 관공을 통한 국제간 이해증진과 국제화ㆍ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노력으로 국가간ㆍ지역간 균형있는 발전과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동이익 추구를 위한 다각적인 협의체 구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각국 정보 또는 민간 수준에서 각기 그 영역과 기능을 달리하는 대ㆍ소 관광관계를 맺게 된 국제협력기구귀 결성을 추진한 결과, 현재 60여개의 관광관련 기구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최승미. 이지혜, 「국제관광론」, 대왕사, 2001.9.10., p394우리나라는 국제관광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각종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는데 그중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 기구는 WTO를 시작으로 AACVB, ASAE, ASTA, FIYTO, PATA, OECD 등 22개이며 우리나라가 가입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관광기구는 총31개이다.1. WTO(World Tourism Organiation)1)WTO조직WTO는 관광분야에 있어서 유일한 정부간 기구로 현재 139개국 정부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정부 회원 이외에도 홍콩, 마카오 등 특수지위나 자치령이 6개 그리고 350개 단체가 넘는 찬조회원(최근에는 종종 비즈니스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불림)이 있는데 지방자치단체, 지역간 기구, 교육기관, NTO(국가운영관광기구), 관광업체 등이 포함된다. 교황청과 팔레스타인은 옵서버 자격으로 되어 있다.WTO는 UN(국제연합)의 산하기관은 아니나 UN이 관광분야의 진흥과 발전에 대한 권한을 위임한 집행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래서 UN 시스템 속에 포함되는데 최근에는 한편, 인력고용에 따르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업무를 지원받는다는 이점이 있고, 우리 정부로서는 국제관광동향을 신속하게 입수하여 대응하고 국제관광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1988년 처음으로 관광전문가를 파견한 이래 현재까지 총 8명이 파견되어 WTO의 업무를 지원해 오고 있으며, 국제관광사회에의 기여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제고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그리고 WTO의 각종 기구에서의 활동을 보면 2차례에 걸쳐 집행이사회 이사국을 역임(1980-1983, 1992-1995)한 것을 비롯, 사업조정위원회(1995-1999)와 여행객 편의 촉진위원회 (1980-1991)의 위원국으로 활동하였다.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WTO의 기술자문사업으로는 관광안내체계 개선(1995),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1996)를 들 수 있다.WTO 관련 회의로는 2001년 6월 제주에서 WTO와 제주도가 공동으로 개최한 도서지역의 관광에 관한 국제회의가 있었고, 같은 해 9월 23-27일에는 제14차 WTO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WTO의 최고의결기관인 총회는 2년마다 열리는데 각국의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우리의 경우 1997년 칠레에서의 제13차 총회시 일본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 결국 사상 처음으로 두 나라가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었다. 118개 회원국의 대표단 740명(장·차관급 56명)이 참가한 서울 총회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개막되었으며 총회 기간중 우리 정부의 주도로 '평화와 관광에 관한 서울 선언문'과 '대미 테러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였으며, '세계관광윤리강령 실행의정서'를 승인하였다.3)협력 가능 분야WTO와의 협력분야는 다양하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WTO에의 인적 진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총회가 선출하는 사무총장과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유럽이나 미주에 편중되어 왔는데 앞으로 우리나라나 아시아지역에서도 진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고위직이 WTO 각종 업무에 노출되어야 하고(집행이사회 등), 다 고작이다. 중국의 경우 많은 성(샨동, 윈난, 하이난, 쟝수 등)들이 관광개발계획을 WTO에 의뢰하고 있다. WTO에서는 지방정부와 의회지도자를 위한 컨퍼런스도 2-3년마다 한 번 정도 개최한다.) 이병두, 계간「한국관광정책」"WTO와의 협력방안" 2002년 신년호 통권제12호2. PATA(Pacific Asia Travel Association)1)PATA의 조직PATA(Pacific Asia Travel Association)는 1952년 하와이에서 태평양 지역의 관광발전을 위해 창설되었다. 현재는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아ㆍ태 지역내 관광교류 촉진, 관광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및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역내 41개 국가의 정부관광기구, 항공업체 및 민간업체 약 2천200여기관(업체)에서 회원으로 가입, 활동하고 있는 동 지역내 최대의 민간관광기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한국관광공사가 정부회원으로 이 기구에 정식 가입하였다.동 기구가 창설된 후 홍콩과 뉴질랜드에서 1961년 최초 해외지부를 설립하였고 필리핀(마닐라, 1954), 일본(도쿄, 1956), 싱가포르(1959), 홍콩(1962), 인도네시아(자카르타, 1963)에 이어 아시아에서 6번째로 1965년 Contrast of the Pacific 이라는 주제로 제14차 PATA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 국제관광목적지로서 한국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또한 79년과 94년에 PATA 총회, 관광교역전, 워크숍 및 세계지부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였고 2001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PATA 이사회에서 제주도가 2004년 PATA 연차총회 개최지로 확정됨으로써 아ㆍ태지역의 역내 주요 관광목적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PATA는 지난 50년간 명실공히 아ㆍ태지역의 관광 관련 전문 민간기구로서 역내 관광산업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왔으며 1975년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제24차 PATA 총회에 가장 많은 1천923명의 관광관련 유력인사들이 Committee에도 관광공사 해외진흥본부장이 선임됨으로써 한국의 영향력이 최근 가장 높아진 점을 국내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한국지부에서는 PATA 본부와의 협력으로 북한의 관광산업 발전 도모는 물론, 관광분야의 남북협력사업을 주도할 평양 Task Force를 구성하여 시행단계에서 무산된 적이 있으며, 2001년 개최된 PATA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말레이시아 총회에는 80여명의 한국대표단이 공동 참가하여 PATA 총회기간중 개최된 Korea Night 행사를 통하여 한국방문의해, 월드컵 및 2004년 총회 개최국가로서의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등 최근 PATA 본부와의 협력관계는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또, 최근 PATA 한국지부는 국내관광업계 유력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의 효율적인 운영과 적극적인 업무협조체제가 구축되어 137개 국내 관광관련 기관, 지자체, 업체를 대상으로 PATA 본부 및 국내회원간의 실질적인 민 관협력기구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향후 국내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이사회의 중추적인 역할과 기대가 점차 증대되고 있다.③ PATA 한국지부 정기총회 활성화수도권 관광업계와 지자체 관계자간의 효과적인 네트워킹 구축과 국내관광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PATA 한국지부 정기총회의 지자체 순환 개최 및 지자체의 유치제안을 통한 이사회에서 개최지를 선정하는 방침 이후 처음으로 2001년 3월 13일간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개최된 PATA 한국지부 정기총회는 관계기관 및 업계인사 303명이 참가하여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2002년 정기총회는 경상북도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리며, 해외지부 회원도 참여하는 500여명 규모의 행사로 이미 확정되어 현재 등록이 추진되고 있다.이는 2004년 PATA 제주총회를 앞둔 시점에서 PATA 한국지부 회원은 물론 비회원사, 관광언론인 및 관광대학 등 국내 관광업계를 중심으로 동 총회 참가를 통한 자사 홍보, 비즈니스 업무증진, 네트워킹 및 각종 세미나,되, 역외국에 대한 배타적인 지역주의는 지양하고 다자무역체제를 보완·강화해 나감을 의미한다. 아울러 아·태 지역내 무역·투자 자유화를 통해 역내 국가들의 자유화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유도하는 기능도 있다.② 발전적 과정(Evolving Process)APEC은 UN이나 WHO, ESCAP, UNESCO와 같은 UN전문기구 또는 관련기구와 같이 형식적인 틀을 가진 기구로 출범하지 않았으며, 창설당시 아·태 협력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만 합의하였고, 운용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아직도 발전단계(evolving process)에 있는 협의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도 APEC 각 FORA의 의사규정이나 규칙이 생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③ 전원합의(Consensus)에 입각한 의사결정 과정APEC 회원국들은 최첨단 기술을 소유하고 1인당 GNP가 3만불에 달하는 고도산업 국가로부터 1인당 GNP가 300불에 불과한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경제발전 단계에서 큰 차이가 있고, 경제구조나 역사·문화 등에 있어 여타 지역보다 많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APEC은 이러한 역내 각국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협력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전원합의(consensus)에 의거한 의사결정 원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④ 경제체(Economy)로서의 회원APEC은 회원국들을 'Member Country' 또는 'Member State'로 부르는 여타의 국제기구와는 달리 회원 경제체(Member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회원이 될 수 있는 주체기관이 반드시 국가일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중국의 일개 지방정부라고 할 수 있는 홍콩과 UN에서 회원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만도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3)TWG(관광실무부)APEC SOM(Senior Officials Meeting: 고위급회의) 산하에는 공동협력 사안다.
목차Ⅰ. 국제회의의 개념...........1Ⅱ. 우리 나라의 국제회의 발전역사......2Ⅲ. 국제회의 유형.....51. covention...........52. conference.........53. forum64. symposium........65. panel discussion................66. workshop...........67. lecture......4[표Ⅱ-5] 세계국제회의 개최현황 중 우리나라 국제회의 점유율............5[표Ⅳ-1] 관광자와 국제회의 참가자 비교..7[표Ⅴ-1-1] 장소유형별 국제회의 개최현황9[표Ⅴ-1-2] 서울시내 특1급 호텔의 최근 5년간 7월 객실점유율............9[표Ⅴ-1-3] 서울시내 특1급 호텔의 최근 5년간 10월 식음료부문 수익10[표Ⅵ-1] 지역별 컨벤션센터 특성화 방향...11Ⅰ. 국제회의의 개념국제회의(International Meting)란 주로 의회, 집회, 대회 등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회의의 주제, 진행방법, 참가인원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와 명칭을 기지든 국제회의는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며, 문화교류는 물론 관광을 포함하는 사회적 기능을 포괄하고 있다. 요컨대 국제회의란 국가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상호 정보 및 자료의 교류를 도모하여, 우호를 증진하기 위하여 마련되는 대화의 장이다.) 최승이, 한광종 국제회의산업론, 백산출판사, 1995.p.19.현재 국제회의는 참가규모, 범위, 대상, 회의 목적에 따랄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각 국제기구나 국가마다 정의를 달리하고 있어 국제회의 산업에 대한 통계조사의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 Gian Calo Fighiera, op.cit., 1988,pp.145-146또한 국제회의와 컨벤션이 동일한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처음에는 컨벤션의.80%경기도603.46%부산392.25%대전955.48%대구251.44%강원도261.50%경북764.39%경남40.23%전북60.35%전남20.12%충북70.40%충남60.35%제주834.79%인천90.52%광주150.87%울산10.06%합 계161733100.00%1960년대 국제회의 지역별 개최현황을 살펴보면 지역과 장소가 밝혀진 총 데이터 52개중 50개, 즉 96%가 서울에서 개최됨을 알 수 있다. 충북 지역의 국제회의로는 "도시문화와 인간 지도자" 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세미나로 충북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3일 동안 개최되었다.) 동아일보 1968년 9월 27일 신문기사1970년대에 개최된 국제회의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109건 중 100건이 서울에서 개최된 것으로 91.7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비교해 볼 때 지역별 개최현황이 다양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88.44%를 차지할 만큼 국제회의 개최지로 서울 집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역시 서울에서의 국제회의 개최 비율은 73.80%로 높은 편이지만 다른 연대와 비교했을 때 지역별 개최지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경향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제회의 개최지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다소 분산화 됨을 아 수 있다.[표Ⅱ-3]근대화 이후 국제회의의 주제별 변화(1위∼5위)연도주제개수구성비1960년∼1969년경제1015.63%국제관계812.50%농림수산업57.81%교육46.25%언론/신문34.69%1970년∼1979년국제관계1814.06%경제1612.50%예술/문학107.81%농림수산업97.03%교육86.25%1980년∼1989년스포츠9810.06%사회/복지878.93%경제717.29%국제관계697.08%의학/약학666.78%1990년∼1999년과학/기술26715.39%산업18710.77%교육/학술1498.59%의학/약학1468.41%경제1277.32%경제 부분에 관한 국제회의 개최건수 구성비율은 60년대에서 90년대에 갈수록 급격한 감소율을 보야에서의 전문가적 견해를 발표하는 공개토론회로서 청중도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6. 워크숍(workshop)컨퍼런스, 컨벤션 또는 기타 회의의 한 부분으로 개최되는 짧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30∼35명 정도의 인원이 특정 문제나 과제에 관한 새로운 지식, 기술, 통찰방법 등을 서로 교환한다.7. 강연(lecture)한사람의 전문가가 일정한 형식에 따라 강연하며 청중에게 질의 및 응답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8. 세미나(seminar)주로 교육 목적을 띤 회의로서 참가자 중 1인의 주도하에 특정 분야에 대한 각자의 지식이나 경험을 발표, 토의하는 회의이다.9. 엑시비젼(exhibition)엑시비젼은 회의와 병행하여 개최되는 전시회로 회의기간 내내 또는 회의기간 중 며칠동안 개최할 수 있다. 회의 행사의 일부로 진행되는 칵테일파티나 연회행사에서 물품을 전시하는 소규모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회의가 열리는 호텔의 볼륨, 전시장 또는 인근 전시장에서 대규모로 개최되기도 한다.Ⅳ. 국제회의산업의 특성일반관광자와 국제회의 참가자의 총 외화수입과 평균소비액 등을 비교하여 보면 외래관광객 재비 컨벤션 참가자들의 경우 총 외화수입은 5.8%, 평균소비액은 1.5배, 평균체재일수는 1.3배 높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즉 일반관광객에 비하여 컨벤션 참가자들의 숙박일수와 소비패턴이 더욱 적극적이다.[표Ⅳ-1]관광자와 국제회의 참가자 비교구분총입국자외래관광객컨벤션참가자외래관광객 중 컨벤션참가자비율입국자(천명)1,6591594,564,53.9%총외화수입(백만달러)1,5471,456.890.25.8%평균소비액(달러)932N/A1,3981.5배평균체재일수5.5N/A7.21.3배자료: 최승이 외 1인. 국제회의 산업론(서울: 백산출판사).1995. p.20N/A는 'Not Avilable'를 나타냄1. 장치산업국제회의산업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ㆍ선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국제회의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 회의에 적합한 회의관련시설(숙박시설, 대회의장, 세미나룸, 전시장, 연회장, 동시도하는 데 기여하며 새로운 관광상품의 개발을 촉진한다.『95년도 한국의 총 관광외화 수입액이 4조 6,200억인데 컨벤션의 지출규모는 4천 174억원으로 컨벤션산업이 관광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이다. 이는 6.6%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카지노매출 보다 외화가득율이 높다.) 김우곤, '국내 컨벤션산업의 현황 및 경제 파급효과에 관한 연구', 세종대 초텔 관광경영연구, 제12집, 1997, p.94.또한 관광참여를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 풍습, 자연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이미지 개선 및 제고에 영향을 주며 귀국 후 한국에 대한 관광 홍보자로 역할을 한다.』Ⅴ-1. 컨벤션 개최가 호텔 매출액에 미치는 영향99년 우리 나라에서 개최된 287건의 국제회의 중 159건은 호텔에서 개최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 외의 개최장소로는 대학교 및 연구기관이 주 개최장소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곳에서는 주로 소규모 기술회의가 개최되어 개최건수에 비하여 참가자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표Ⅴ-1-1]장소유형별 국제회의 개최현황 (단위: 건, %, 명)장소별건수구성비전체 참가자수외국인 참가자 수호텔대학교/ 연구기관기타159646455.40%22.30%22.30%64,2949,99154,77422,4872,3699,182계287100.00%129,05934,03899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287건의 국제회이 중 159건은 호텔에서 개최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 외의 개최장소로는 대학교 및 연구기관(64)이 주 개최장소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곳에서는 주로 소규모 기술회의가 개최되어 개최건수에 비하여 참가자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표Ⅴ-1-2]서울시내 특1급 호텔의 최근 5년간 7월 객실점유율 (단위 %)ABCDEFGHIJKL합계969798990081.379.076.884.685.875.775.375.375.976.362.493.483.880.686.759.776.278.081.669.652.578.685.584.590.972.876.078.866.189.78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