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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학] 김일성 부자의 권력승계와 정치적 배경
    1.권력승계에 대한 이론적 조망1.공산주의체제에서의 권력승계 이론⊙비교·분석할 수 있는 모델과 기초의 부족으로 공산주의 연구는 단순한 사실의 축적일 수 밖에 없고, 정치적으로 관련된 사실과 모델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권력승계나 정책변화에 관한 이론도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험적 선례에 비추어 조망해 보는 수준.◆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권력승계1)권력승계의 계기에 의한 분류*자연적 원인 : 정치지도자의 사망이나 극심한 신체적 노쇠화에 따른 자연적 결과에서오는 권력승계*정치적 원인 : 정치적 압력요인(폭력, 음모)에 의한 물리적인 권력승계2)권력승계의 폭에 의한 분류공식적인 승계시점을 기준으로 전임자의 권력이 후계자에게 동일한 정도와 폭으로 승계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완전승계와 불완전승계로 나눌 수 있다.3)권력승계의 방법에 의한 분류*정실모델 : 일반적인 공산주의의 승계방법으로써 혈연등의 귀속적 요인에 의한 충원 방법이며, 투표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단일후보에 의한 만장일치투표방식.*합리모델 : 합리적 경쟁원리에 의하여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거의 보이진 않지만, 사회적변화로 인하여 채택의 가능성은 남아있다.4)권력승계의 관리과정권력승계를 위한 관리과정의 유무와 기간에 따라 승계후의 사회적 상황의 안정성에 영향을 끼친다.2. 권력승계와 정책문제공산주의국가의 권력승계에 있어서 정책노선형태는 2가지 모습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과거를 비판하면서 잘못된 책임을 전임 지도자에게 돌리고 정책의 전환과 과감한 개혁을 모색하는 변화수용적 형태의 정책 노선이 있고, 두 번째는 변화를 거부하는 정책노선으로서 전임자보다 지도력이 낮은 새로운 지도자가 권력의 공고화를 위하여 안정과 보수적인 면을 보이는 형태이다. 이 형태는 승계가 있은 초기에는 전임자의 유지등을 강조하면서, 엘리트 지향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권력이 공고화된 다음에 대중 지향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 북한의 경우가 전형적인 변화거부노선 형태의 권력승계 모습이다.3. 북한에서의 권력승계론⊙지도자론 - 김정일 후계지위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권력세습의 이론전개와 후계체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교리이며, 혁명계승론, 세대교체론, 혈통계승론, 역사적 준비단계론, 김일성화신론의 논리를 내세운다.1)혁명계승론 :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은 한 세대에서 끝이나는 것이 아니고 대를 이어나가야 완수될 수 있다.2)세대교체론 : 후계자는 새로운 세대에서 나와야 하며, 영도자로서의 위대한 풍모를 갖춘 인물이어야 하며, 새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3)혈통 계승론 : 수령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4)역사적 준비단계론 : 수령이 지니고 있는 사상과 논리, 영도예법을 배울 준비기간이 필요하다.5)김일성화신론 : 김일성을 사상의 천재, 영도의 천재, 인민의 자애로운 스승으로 미화하고 김정일을 김일성의 화신이라 칭하는 논리이다.2. 김일성의 일생과 유산가)소년기1)출생 :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지금의 만경대)에서 부 김형직과 모 강반석의 장남으로 태어남. 그의 할아버지 김보현은 나라의 기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김성주(金成柱)라고 이름을 지음.2)가정환경 :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숭실중학교까지 다니며 독립운동에도 가담했고, 1918년에는 일제의 감옥을 탈출하여 만주국경지대를 전전하며 한의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지만 공산주의자들과는 멀리하여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했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은 장로회 교회의 장로였던 강돈욱의 둘째딸로 김형직과는 교회를 통하여 알게되 결혼하였다.나)청년기 : 항일무장 투쟁1) ㅌ·ㄷ동맹 의 결성북한의 문헌들에는 김일성의 항일운동의 출발을 1926년 ㅌ·ㄷ동맹(타도제국주의 동맹)으로 잡고 있다.2)조선공산청년회 가입김일성은 1929년 5월경에 조선공산청년회 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공산청년회 는 당시 기존의 상해파와 화요파의 주변에 불과한 무명의 조그만 그룹이었다. 이것은 김일성이 공산주의 조직원으로 가담한 최초의 일이다.3)조선혁명군의 대원생활김일성은 이종락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의 부대에 대원으로 배속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북한 문헌에는 1929년 일경에 체포되 옥살이를 하던중 다음해 5월 길림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조직원을 끌어모아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 사이에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간부회의를 열고 조선혁명의 진로 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고 되어 있으며 여기서 조직을 만들고 조선혁명군 을 창설했다는 것이다.4)항일무장투쟁의 시작다)노년기 : 절대권력과 신격화 작업*김일성은 통치 46년간 자의타의에 의하여 인류역사상 전례가 없을 만큼의 영화와 함께 우상화, 신격화로 절대절명의 신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다음은 그에대한 생전의 우상화 내용과 방법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본 것이다.1)김일성의 노래 : 1946년 7월에 창작된 것으로 김일성장군의 노래 를 위시하여 김일성장군님은 우리의 태양 , 김일성원수님께 드리는 노래 등2)김일성의 꽃 : 1964년에 인도네시아의 식물학자가 육종한 란초과의 한 종류3)김일성의 생일 : 1912년 4월 15일은 최대의 명절이며 국경일로 주민들에게는 특별배급이 나오고 이틀간 이틀 간의 휴일로 정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그의 생일을 태양절 이라고 부르고 그의 생년인 1912년을 기점으로하여 주체1년 으로 정하여 부른다고 당 중앙위가 발표.4)동상과 기념비 : 전국적으로 동상의 숫자가 60여개, 흉상의 숫자는 3만여개에 이른다.5)전설집 간행 : 1987년에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시기를 중심으로 각종의 허황되고 날조된 이야기들을 백두산전설집 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간행하였다. 김일성을 하늘로 날아오른 힘장수 , 가랑잎타고 다니는 군사 , 아흔아홉가지 축지법 , 바람타고 다니는 장수 등의 초능력과 신비로움으로 포장하여 그의 카리스마를 창출하는 등 대중조작을 하고 있다.라)김일성 유산의 역사적 평가1948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46년간의 장기집권이 남긴 유산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토록 염원했던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비단옷, 고기국에 이밥을 먹는 우리 인민들… 을 보지 못하고 풀뿌리로 연명하는 인민들을 남겼고, 구걸외교를 해야만 하는 국가적 상황의 현실만 남았다. 그의 권력장악 초기에는 민족정기를 세우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 결단력과 추진력으로서 유능한 지도자였으며 실제로 평가할만한 업적도 많았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고 본격적인 세습정치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독재정권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현재의 김정일은 군부에 의존하여 그의 권력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3.김정일의 성장사와 권력세습가)소년기1)출생지 혼란 (1942년 2월 16일 김일성과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한 것은 사실)◈백두산 밀영설, 사말칸드(Samarkand)설, 하바로프스크(Khabarovsk)설,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설2)학창시절1949년 9월 평양의 남산인민학교의 입학을 시작으로 1952년 만경대혁명 유자녀학원 전학. 1960년 남산고급중학교(현 평양제1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64년 사회주의건설에서의 군(郡)의 위치와 역할 이라는 졸업논문으로 대학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짐.나)김정일의 신격화와 카리스마 작업대중적 지지가 취약했던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력을 이어 받기에는 과거 조선의 이씨 왕권세습으로의 대내외적인 인식을 우려하여 1972년 12월 당 중앙위 총회(제5기 6차)에서 김정일을 유일한 후계자로의 결정을 비밀리에 진행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다방면적인 우상화작업이 진행되다가 1980년 10월 제 6차 당대회 이후부터 본격화되었다. 그의 출생지를 소련이 아닌 밴구산 밀영이라고 왜곡하기 시작했고 어릴 때에는 부모에게 극진한 효자였고 두뇌가 뛰어나며 축시법(縮時法)을 쓰는 전설적 초인으로까지 묘사하고 있다.다)성격 특징*김정일의 인물연구로 가장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진 조영환의 분석이다.1)성격의 양면적 특징⊙긍정적 요소 : 1)인지력, 판단력, 창조력, 박력, 추진력 2)성취욕구 3)문화예술적 자 질 4)개혁,개방 성향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5)신속과감한 정책 결정 6) 비교적 신속 정확한 민원처리 7)장기간의 정치학습⊙부정적 요소 : 1)감정처리, 갈등처리 미흡 2)의심이 많고, 인내심이 부족 3)정서불 안, 냉혹성 4)독선적, 토론기피 5)즉흥성과 자기과시성 6)기득권 그 룹과 군부, 공안부서를 중심으로 정책입안 7)감시, 공안기구 팽창2)성격 구조*인지력-다양한 교육으로 박식하고, 인지력, 판단력이 민첩함, 편집적 사고가 강함*성취욕-매우 강한 성취욕 보유*창조력-상상력이 풍부함, 엉뚱한 발상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로 함*수용력-스케일은 크나 피해망상과 열등의식 등으로 반대의견을 수용하기어려움*적응력-현실에 적응하기보다 부단한 변화를 추구*감정-자신의 존재에 대해 늘 불안해 함(인기관리, 문학예술성으로 일부승화)죽음에 대한 공포(위협을 느끼면 잔인무도해짐)*자아-자아미숙, 권위의존적 경향*갈등처리-조화보다는 극단적 방법 선택공격적 행동(사냥, 사격)자기학대적 행동(드라이브, 경비행기 운전)라)김정일의 체제관리론*김정일에게는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통치이념이 없기에 집권초기에는 김일성의 유훈통치 라는 이름으로 죽은 아버지의 국가관리 원칙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하는 형식을 취하다가 종래의 인덕정치론 과 광폭정치론 도 부각시켜 보았으나 그것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계에 이르자 1999년부터는 강성대국론 을 들고 나오면서 군국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사회과학| 2003.01.06| 5페이지| 1,0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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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학] 우랑과 직녀 신화에 대한 고찰
    우랑(牛郞)과 직녀(織女)◈대략의 줄거리티 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銀河)를 경계로 하여 천상의 세계에는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살고 있었고, 인간 세계에는 우랑(牛郞)이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우랑에게는 늙은 소 한 마리가 있었는데, 말을 할 줄 아는 신통한 소였다. 소가 시키는 데로 은하로 목욕을 하러 내려온 직녀의 옷을 감추어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천제와 서왕모(西王母)도 알게되고, 천신(天神)으로 하여금 직녀를 소환하게 하여 그 둘을 갈라놓는다. 우랑과 그의 어린 자식들은 서왕모의 끈질긴 방해와 신통력에도 직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러한 노력은 천제와 서왕모의 차가운 마음을 감동시킴으로써 1년에 한번 7월 칠석날의 만남을 허락한다.◈해 석우랑(牛郞)과 직녀(織女) 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당연히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어렸을 적 어르신들께 들었던 견우와 직녀 의 이야기였다. 7월 7석 날에 오작교를 건너 1년에 단 한번 견우와 직녀는 만나고, 그리던 서로를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분다는 내용이 흡사했다. 다만, 이 글의 내용에서는 직녀가 서왕모(西王母)의 외손녀로 전해지고, 한국의 전설에서는 옥황상제의 손녀로 바뀌었고, 우랑이 직녀의 옷가지를 숨겨서 은하로 승천 못하게 함으로서 아내로 맞이한다는 내용은 우리 나라의 선녀와 나뭇꾼 의 내용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직녀는 베를 짜는 솜씨가 일품이며, 그 길쌈 실력을 바탕으로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천의(天衣)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는 당시의 중국인들이 천상(天上)의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 유사성을 부여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과 동질감을 느끼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여성들이 사회참여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처럼 당시에도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을 가지고 성실히 수행하려던 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는 면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랑이 사는 인간세계가 티 없이 맑고 야트막한 은하의 사이에 존재 했었다는 표현은 고대 중국인들이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과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와의 밀접함을 나타냄으로서 이상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서고자 했던 바램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우랑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소에 대한 해석은 소가 우리 나라의 속담이나 민담에서도 봉사, 희생, 우직(愚直)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동물이고, 분명 고대 중국에서 또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동물이었을 것이며, 농경이 주를 이루었을 당시의 든든한 재산이었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기에 영물(靈物)적인 존재로 나왔을 것이다. 생이별한 직녀를 찾아 우랑과 어린 자식들은 서왕모의 온갖 신통력과 방해를 맞아 눈물겨운 노력들을 시도하게 되고, 결국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와 서왕모(西王母)는 직녀와의 칠석날 단 한번의 만남을 허락하게 되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통해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과 이를 뒷받침하는 진정한 노력에 대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고, 카타르시스에 못지 않은 정화된 감정을 이 신화의 내용을 보면서 가졌을 것이라 생각한다.우랑과 직녀의 칠석날의 만남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문에서는 까치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견우직녀 이야기 속에는 까치와 더불어 까마귀가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어 둘의 만남을 도왔다고 전해지는데, 개인적인 생각에는 오작교(烏鵲橋)의 글자를 봐서도, 또 중국 漢代의 괴담을 기록한 책인 재해기(齋諧記) 에도 오작교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두 종류의 새가 합심하여 다리를 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까치가 길조를 나타내는 새이고, 중국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중국의 신화에서 까마귀를 현조(玄鳥) 로 북방을 지키는 새로 인식하고 있고, 오행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북방을 검정색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마땅히 영물(靈物)적인 가치가 높은 까마귀의 등장이 더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중국의 신화는 그 일관성이 부족하고, 똑같은 주제의 신화라도 전해지는 서적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까마귀가 빠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끝 부분에 견우성과 직녀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천상에 대한 동경, 그리고 지상세계 이외의 창공(蒼空)과 나아가서 우주(宇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우랑(牛郞)과 직녀(織女) 의 신화는 세인들에게 분명 지고지순한 남녀간의 사랑을 통하여 낭만적인 감성을 북돋우고, 인간 삶의 지표로서의 예를 제시하고자 전해지는 신화라고 말하고 싶다.마지막으로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종교적이면서 색다른 관점에서 이 신화를 생각해 보았다. 우랑과 직녀가 일년에 한 번씩 만나려 애를 쓰고, 중간에 서로의 소식을 전하려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일년에 한 번이라 하는 것도, 우리가 인간 세계에서 생각할 때는 일년이지만 그 천상(天上)에서 생각할 때는 일초, 하루를 뜻할 것이라고 우리가 듣고 보았던 보통의 다른 신화를 통한 사전 지식으로 가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 수명이 일년이면 은하건너 천상에서는, 말하자면 하루라고 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러니 그 일년, 하루를 비유해 보면 우리가 여기에서 하루 24시간 동안에 한 번 만나는 것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 만이 만나는 것이 된다. 별 것 같지 않은 일상적인 만남이 말이다. 그러면 천지(天地)의 모든 생명과 천차만별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우랑과 직녀의 관계가 아닌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우리가, 즉 하늘과 땅이 있으면 인간이 있듯이 모두가 이렇게 결부되고 인연이 되어야 평온한 삶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일상의 인용구와 글 속에서 우랑(혹은 견우)이니 직녀며 그들의 신화를 말하는 것은 모두가 인연이 없으면 생산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삶의 발전도 되어질 수가 없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문/어학| 2003.01.06| 3페이지| 1,000원| 조회(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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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과학] 식문화를 통한 중국인의 특징 평가B괜찮아요
    제1장.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중국인은 같은 중국인이라 해도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무척 불친절하다. 미국이나 일본과같이 싹싹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한 이유는 자신과 같은 부류인지 아닌 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중국인의 특성은 음흉하다 라는 말과같이 속을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사업이나 어떤 특정 분야에서 한국인들은 중국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한국인에게 자장면은 중국음식 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 우리가 먹는 자장면의 춘장과 중국의 자장이 다른 이유에서이다. 중국인이 우리 나라에 대거 이주해 이른바 화교라는 특수한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때는 1882년 임오군란 후로 알려진다. 1976년 박정희 정부의 화교에 대한 교육권 과 재산권 박탈 정책은 화교들을 완전히 떠나도록 유도했다. 이때부터 화교가 운영했던 중국집’에서 조수나 배달원으로 살았던 한국인들이 직접 ‘중국집’을차리기 시작했고, 한국인 주방장 또는 주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은 화교들의 ‘중국집 수를 앞지르는 현상이 일어났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중국대륙은 비록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3류 국가이다. 심지어 공자나 맹자까지도 그들의 고향 중국에서보다는 한국에서 더욱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중국대륙을 동경했던 많은 한국인들이 실제로 그 땅을 밟아본 후 확인했던 현실은 그들에 비해 우리가 훨씬 더 고대 중국적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인에게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든지 한번 이용해볼 만한 곳,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느꼈던 비굴함을 한번쯤 분풀이해볼 수 있는 곳,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곳, 지저분한 곳, 그래서 우리보다는 3, 40년 정도 뒤떨어진 곳,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이 중국을 대하면서 가지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견과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중국과 중국인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중국음식을 만드는 이들도 초기에는 중국인 주방장이 다수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상당수의 중국식당에 서 한국인 주방장을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한 ·중 수교 이후 한국인이 인식하는 중국음식의 범주는 매우 다양해졌다. 쓰촨, 광둥, 산둥 등지의 지역명이 붙은 요리의 특징과 몇 가지 요리 이름을 아는 사람도 많다. 1990년대 이후 대형화된 중국음식점이 국내에 등장하면서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음식을 이해하는 사람도 늘었다. 요리는 전채(前菜)로 시작해 주요리가 나오고, 이것은 신맛에서 시작해 단맛으로 마치는데 차가운 요리에서 시작해 따뜻한 음식으로 끝낸다는 식사 절차와 식사법을 정확히 아는 중국요릿집 전문가도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중국인, 중국음 식에 대한 이해는 많은 부분에서 그 실체와 차이를 보인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실체를 알려는 노력마저도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 이라는 문화적 행위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두 가지에 집중된다. 하나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음식 소비에 대한 것이다. 전통 이란 오늘날의 삶 속에서 일정하게 작용하는, 한 사회의 오래된 규칙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도 살아 움직이는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 불명확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재적 시점에 기준을 두고 대륙중국의 도시인이 보이는 음식 소비에 대한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이면서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중국인이 급격하게 겪고 있는 문화변동 과정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의 음식 소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대륙중국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제2장. 중국인의 전통적인 음식소비중국인의 음식 행위를 가장 극명하게 설명하는 말은 인스 (飯食) 라는 용어이다. 이 말은 음식물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시는 행위와 먹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다. 중국인은 마시고 먹는 행위를 다른 말로 ‘음식 활동’이라고 부르말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각을 체계화하고 행동을 정립하기 위해 어떤 조직적인 지식 및 신앙의 체계를 행위에 담아내는 과정을 뜻한다. 그러므로 ‘음식 활동 이란사람들이 음식의 재료로 무엇을 선택하는가, 어떻게 원료를 확보하는가, 무슨 음식을 어떻게 조리하려 하는가, 어떤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완성하는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마시고 먹는가 그리고 어떤 음식은 어떻게 소화되어 배설되는가 등에 걸쳐 있는 인간이 음식 행위를 하기 위해 마련해둔 체계적인 지식을 둘러싼 모든 행위, 행태, 인식, 신념 등을 두루 포함한다. 중국인은 스스로 자기 나라를 요리의 천국’이라 부른다. 그 만큼 중국음식에서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그 종류 역시 재료, 조리법 그리고 지역과 민족에 따라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인의 요리도 일상적인 것과 의례적인 것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식사는 가능한 간단하게 마련한다. 특히 대륙중국에서는 모든 직장의 숙소에 식당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기보다는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중국인은 일상의 음식생활을 가능하면 간단하고 편리하게 해결하려 한다.중국인의 전통적인 음료에는 차와 술이 있다. 차는 당나라 (618∼907)에 들어와서 비로소 음료로 일반에 보편화된다. 기름이 많이 사용되면서 발생되는 음식의 산성화 경향은 중국인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바로 차(茶) 가 산성화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차에는 카페인과 함께 각종 알칼리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차를 마시면 찻물이 체내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농도가 짙은 알칼리성 대사물질을 만들어낸다. 기름지고 달고 찬 중국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질이 산성화되어 만성 피로, 정서불안, 소화불량 등을 일으키는데. 이때 차를 마시면 산성화된 체질을 개선하여 혈액 중의 산성과 알칼리성의 균형을 유지시켜준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을 품에 안고 살며, 어디를 가든지 찻치고 있었다. 중국인에게 차 마시는 습관은 단순히 목을 축이고 체질을 개선하는 데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차는 술과 함께 손님을 접대하는 의례(儀禮) 음식으로 인식된다.중국인이 생각하는 식탁은 작은 우주이다. 타이완에서 만들어진 영화 〈음식남녀〉가 우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칼럼이나 이야기를 ‘음식남녀’라고 간단히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수 있다. 그런데 이 음식남녀(飮食男女)’란 말은 그 영화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중국 고대 문헌에 등장 동판 숙어다. 《예기(禮記)》의 〈예운(禮運)〉에는 “‘음죄남녀’ 라는 것은 사람의 큰 욕심이 머무는 곳이다 라고 했다. 즉 ‘음식남녀’란 먹고 마시는 욕구와 남녀의 성에 대한 욕구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에는 인간의 세상사가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영화 〈음식남녀〉에도 주인공 줘스푸와 딸들간의 세대 차이 그리고 딸들의 세상살이를 통해 오늘날 타이완 중국인들이 겪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 나타난다. 곧 식탁이란 가족 사이의 관계망이 펼쳐지는 곳이다.그런데 중국인이 지닌 이러한 식사 접대의 태도는 그들이 지닌 전통적인 음식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인의 음식에 대한 관념 중 하나는 둘을 더해 하나로 만드는 ‘합이위일 (合二烏一)’의 정신과 관계가 있다. 단맛과 신맛, 쓴맛과 매운 맛, 비린 맛과 산뜻한 맛은 서로 음양(陰陽)의 조화가 가능하다. 태극(太極)에서의 음양의 조화는 태음(太陰) 속에 소양(少陽)이 있고, 태양(太陽) 속에 소음(少陰)이 있다는 원리이다. 따라서 중국음식은 서로 스며드는 데 있지, 서로를 갈라서 나누는 데 있지 않다. 그리고 합이위일의 정신은 이론보다는 실천에 더 강하며, 임기응변으로 재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정신은 다시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실천되어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주인과 손님 사이에서 음식을 통한 ‘위일(爲一)’을 이룬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합이위일 정신은 다시 국. 조리법에서도 많은 부분이 중원의 한족이 주위의 소수 민족으로부터 영향받아 형성된 것이다. 밀가루를 이용한 국수 만드는 법, 찐빵과 만두 만드는 방법 등은 원래 중앙아시아로부터 유입된 것이다.한족 문화가 지닌 융합력과 동화력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제이다. 한족 문화는 언제나 외부의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쉽게 다른 것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러나 그 수용은 일면에서 융합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 한족 중심 체제로 동화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중화주의라 할 수 있다. 음식의 중화주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각 곳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확인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중국인, 중국 문화 그리고 중국음식이 지닌 문화적 특정이다.제3장. 개혁개방 이후 중국 도시인의 음식 소비많은 사람들이 대륙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어린이와 관련된 제품을 판매할 것을 강조한다. 적어도 1960년대에 태어나 문화대혁명을 거친 오늘날 30, 40대 부모들이 중국의 주류 소비층을 이루는 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황제가 주류 구매층이 될 시점에도 그러한 마케팅 전략이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앞선다. 왜냐하면 한 명의 지식으로 구성된 가족제도의 변화가 ‘소황제’라는 특수한 집단을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가족제도의 변화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뿐만 아니라 행동을 위한 규칙까지도 변화시킨다. 이런 면에서 중국의 소황제 열풍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중국의 북방인은 우리의 국수에 해당하는 ‘미엔티아오’를 주식처럼 먹는 사람들이다. 베이징, 지난, 선양 사람들은 얼마나 국수를 좋아하는지, 그냥 미엔’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반드시 미엔티아오라 한다. 중국의 밀가루 음식 종류와 조리법은 세계 어느 나 라도 능가하지 못할 정도로 발달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도 중국에서 배워간 것이라 한다. 원나라 때 중국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가 중앙아시아에서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워 이탈리같다.
    사회과학| 2003.01.06| 5페이지| 1,000원| 조회(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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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문학사] 미국문학속의 American Dream과 인간소외
    ▣서론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수많은 영문소설과 시와같은 문학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영문학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문학의 작품은 솔직히 대중적인 인기와 지명도를 지닌 작품이외에는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호손이나 헤밍웨이등의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 깃들어져 있는 미국적인 사고방식과 인물들, 그리고 여러 사상들이 내면에 흐르고 있음을 느꼈으며 그중 미국 문학에 대해 언급하면서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미국 문학속에 흐르는 American dream과 인간소외에 대한 내용을 이 term-paper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본론*미국 문학속의 American Dream우리가 미국 문학의 본질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American Dream(미국의 꿈)'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미국 문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그것이 나타내는 뜻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American Dream'은 미국 문학의 특성을 포괄적으로 암시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American Dream'은 미국 문화의 거의 모든 속성을 포괄하는 미국적 이상(理想)의 총화(總和)로 그 의미를 정의 내릴 수 있다. 그것은 넓게는 미국적 평등, 미국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대한 꿈을 의미하는 것인데, 약속받은 땅에 대한 꿈을 뜻하며, 좁은 의미로는 근면, 노력, 성실, 정직, 정직, 검소 그리고 신앙 등에 의해 신분의 귀천이나 빈부에 관계없이 미국 사회에서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성공에 대한 꿈을 의미한다.미국의 역사는 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신세계라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간의 삶을 찾고 그곳에 새로운 인간의 낙원을 세우려는 건강한 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신대륙의 초기정착민들은 그들의 조국, 기존의 문명, 기존의 생활양식을 등지고 이러한 새로운 꿈의 실현을 위하여 미지의 땅을 찾아 감히 모험에 나선, 꿈을 추구한 이상주의자들인 것이다. 신대륙은 비록 황무지였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광활한 '자리를 이루었던 것이다.루이스(R.W.B. Lewis)는 그의 저서 'The American Adam'에서 미국인의 이미지를 아담에 비유하고 있다. 마치 에덴동산의 순박한 모습을 지니고 있던 아담의 이미지와 같이 대서양을 건너와 미지의 찾아온 미국인들의 용기와 모험심, 강인한 의지와 끈질긴 노력, 그리고 신앙으로써 그들의 꿈을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모습을 비유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 끝에 자주 국가로서 독립을 하였고, 민주 공화국을 이룩하고 광활한 서부를 개척해 나감으로써 영토를 확장하고 짧은 시간 내에 물질적 부를 축적할 수 있게된 이유가 바로 미래에 대한 신념과 순수한 꿈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하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산업화의 물결이 미대륙을 휩쓸고 지나가게 되고, 극대화된 남과 북의 대립이 결국 남북전쟁의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또, '자유의 땅'의 강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던 서부의 개척이 종말에 다가가게 됨으로써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되어 있던 전원적 농업주의와 도시적 산업주의 사이의 괴리는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산업주의의 급격한 발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문제들은 약속된 밝은 미래에 대한 순박하고 천진스런 미국의 꿈을 그 뿌리부터 서서히 흔들어 놓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꿈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19세기 미국의 문학과 문화적 패턴을 서부로의 확장과 관련지어 분석하고 있는 '처녀지(Virgin Land)'에서 헨리 내쉬 스미스는 문명의 발전에 의하여 사라져가는 '자유의 땅'에 대한 아쉬움과 그 발전을 문명의 영광스런 승리로 예찬하는 二重的인 애증의 감정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의 문학 및 사상을 그 문명의 변증적 추이와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하나의 시도인 'The American Adam'에서 루이스는 19세기의 미국이 직면한 이러한 문화적 딜레마와 그 갈등을 되돌아보는 눈길로 미국의 앞날을 지켜 보는 다분히 비관적이고 향수적인 회고파, 지나칠 만민들은 그들이 대체적으로 의심 없이 선봉해 온 미국의 순박함(American innocence), 미국적 평등(American equality), 미국적 기회(American opportunity),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약속된 밝은 미래의 전망, 이러한 가치 체계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심각한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산업화의 급성장과 더불어 미국 사회를 더욱 거세게 휩쓸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퇴폐 풍조와 물질주의적·기계주의적 사고 방식이 결국 미국의 꿈의 이상을 무자비하게 뒤틀어 놓는 것을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통하여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1925년 같은 해에 출판된 피츠제랄드의 'The Great Gatsby'와 드라이저의 'An American Tragedy'는 각각 그 나름대로으 미국의 꿈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다. 이미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해 버린 미국의 풍요한 물질 문명과 기계 문명이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바로 그 자신을 가능케 했던 미국의 꿈의 이상을 살해하고 마는 현장에서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의미심장한 아이러니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껏 미국의 역사적 추이와 관련지어 보았듯이 미국의 꿈은 미국의 역사와 미국의 문화의 저류를 이어온, 미국적 경험의 핵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신화이다. 따라서 미국의 꿈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야 말로 미국 문학 그 자체에 대한 철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꿈은 새로운 낙원의 가능성, 즉 에덴의 꿈의 신화이며 아담적 주인공의 신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부터 살펴볼 태마는 미국 문학 의 중요한 몇몇 작품속에 담겨있는 미국의 꿈의 내용들을 고찰해 보는 것이다.아마도 우리는 가장 미국적인 이미지를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클린이 걸어온 생애는 바로 신생국 미국이 걸어가야 할 길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싶다. 열인공"을 연상시킨다. 프랭클린은 가난하고 문벌 없는 한 소년이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에 의하여 결국 명성과 부를 얻게 되는 이상적인 미국적 성공의 패턴을 몸소 실천해 보인 최초의 위대한 미국인이었던 것이다. 프랭클린의 성공은 미국적 기회와 미국적 자유를 포괄하는 '미국의 꿈'의 구현이었으며, 한 영세 인쇄업자가 어떻게 세계적인 인물로 입신했는가 하는 전형적인 미국적 성공담을 담고 있는 그의 '자서전'은 위대한 '미국의 꿈'의 최초의 성전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특히 '리차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을 통하여 근면, 검소, 인내, 자기 향상을 줄곧 고취하였으며 경제적 자립, 사회에서의 지위, 부의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러한 미덕들을 강조했다. 미국민들이 프랭클린의 생애를 이상적인 미국의 꿈의 구현으로 그 귀감을 삼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미국의 꿈의 몇가지 중요한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근면과 검소, 인내, 경건 등 개인적 미덕을 강조한 점, 둘째, 자기 향상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주의의 의의와 자수성가한 인물의 이미지를 선명히 한점, 셋째, 경제적 자립, 부의 획득, 사회에서의 지위 등 소위 물질적 성공을 중요한 목표로 내세운 점, 넷째, 이러한 성공에 대한 낙관적이고 비교적 순박한 신념을 보여준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속성은 당시의 미국 사회를 지배해 온 청교도주의 사상과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뒤이어 18세기 중엽 이후에 일어난 합리주의 사상에 근거를 둔 계몽주의의 정신에도 부합함으로써 거의 전통적인 '미국의 꿈'의 속성으로 받아들여져 오게 된 것이다.그러나 많은 대중 소설들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도 프랭클린식의 미국의 꿈의 패턴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우리는 건전한 미국적 성공의 꿈을 위협하는 저해 요소가 강력히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저해 요소는 아마도 자수성가 인물의 이상에서 비롯된 개인서 폭넓게 파악하지 못한 데에 어느 정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실패는 성공의 이상의 근본적인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물론 부의 추구를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보았다. 즉 보다 높은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경제적 부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의 自助 예찬론자들은 이러한 프랭클린의 지적, 도덕적, 경제적 향상의 이상을 개인적인 경제적 성취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한편 미국 문화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초기의 인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프랭클린과 비교 대조될 수 있는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경우, 이상적인 자수성가 인물의 인간상을 사회적 발전과정에 긴밀히 연관지어 생각하여 사회제도가 이러한 인간의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훌륭한 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지만, 그가 생각하는 사회는 다분히 자급자족적인 지역 공동사회였으며 미국 사회에서의 필연적인 산업주의의 발전과 점증하는 기업 추구의 중요성을 예견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이상은 반산업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고, 따라서 점차로 팽창해가는 산업사회에 그 호소력을 잃고 말았다. 이렇듯 미국의 꿈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 중에는 윌리엄 딘 하우얼즈의 'The Rise of Silas Lapham'이 있는데, 이 작품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성공(rise)과 실패(fall)의 진실에 관한, 동시에 사회 계층간의 인간적 이해의 문제에 관한 하나의 문학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 이후에 나온 테오도어 드라이저의 'Sister Carrie'는 미국의 꿈에 대한 보다 심각하고 충격적인 이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작자인 드라이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난 Carrie Meeber라는 한 시골 처녀가 시카고로, 다시 뉴욕으로 진출하여 주당 4달러 50센트 짜리의 초라한 공장 여직공으로부터 화려한 일류 배우의 위치로 올라서서 부와 명성을 함께 누리게 되는 전형적인 미국지
    인문/어학| 2002.12.23| 5페이지| 1,000원| 조회(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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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문학]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의미와 작가들 평가C아쉬워요
    1. 의미는 무엇인가?Lost Generation이라는 말은 1900년대까지 미국의 존재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던 미국 집단을 묘사하는 용어이다. 그 당시는 미국이 점점 사업의 터전으로서 거대한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Lost Generation 작가들은 미국이 범세계적인 문화를 회피하였기 때문에 그리 성공적인 이야기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작가들은 파리나 런던같은 유럽으로 가방을 짊어지고 유럽의 세계적인 문화속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그 속에서 문학적 자유와 삶의 범세계적인 방식을 찾고자 하였다. 범세계주의 문화는 배경과 문화의 가치를 매기고 내포하는 문화이다. 잃어버린 세대.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에게 주어진 명칭이다. E.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G.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는데, 오늘날에는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에 건너가서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세대의 작가로는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F.S.피츠제럴드, J.더스패서스, E.E.커밍스, W.C.포크너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결코 허무적이었던 것은 아니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의욕적이고도 우수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또, 같은 세대의 비평가인 M.카울리는 《망명자(亡命者) 돌아오다》(34)에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였다.2. 누가 Lost Generation의 작가인가?*T.S.Eliot미국의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하였다. 스미스 아카데미를 거쳐 1906년) 연극을 연구하였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한때 프랑스의 소르본대학에 유학, 이어 1914년에 독일에 유학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영국에 피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15년에 처음으로 지상(誌上)에 시를 발표하였다. 그후에도 계속 영국에 머물며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시작(詩作)에 몰두, 1917년에 처녀시집 《프루프록 및 그 밖의 관찰 Prufrock and Other Observation》을 냈고, 이어 1920년에는 처녀평론집 《성스러운 숲 The Sacred Wood》을 내놓아 새로운 문예평론의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높여 준 것은 1922년에 그가 편집·창간한 문화평론지 《크라이티어리언 Criterion》에 발표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Dial상 수상)이다. 이 작품으로 종래의 미온적인 낭만주의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일부 보수적인 시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20세기 시단(詩壇)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27년 영국에 귀화하는 동시에 영국 국교(國敎)로 개종(改宗), 1928년에 강행된 평론집 《랜슬롯 앤드루스를 위하여 For Lancelot Andrewes》의 서문에서,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자, 정치적으로는 왕정 지지자, 종교적으로는 영국 국교도'임을 선언하였다. 1932년 미국에 돌아가 하버드대학교 시학 교수 칭호를 받았으며, 그후에는 주로 런던에 거주하면서, 참신한 문예서적을 많이 간행하는 출판사 'Favour & Favour'의 중역이 되어 영국문단의 중진(重鎭)으로 활동하였고,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초기의 시(詩)는 영국의 형이상학시와 프랑스 상징시에서 받은 영향이 짙으며, 현대문명의 퇴폐상을 그리면서 그 배경으로 신화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Ezra Pound1909년 영국으로 건너가, 언제나 이미지즘과 그 밖의 신문학 운동의 중심이 되어 T.S.엘리엇과 J.조이스를 세상에 소개하였다. 상징파(象徵派)와 같은 애매한 표현os》(1925∼1959) 등이 있다. 특히 《캔토스》는 엘리엇의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1922)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동시에 구사한 신화적 방법으로 장편시(長篇詩)를 시도한 것이다. 그 연작(連作)의 하나인 《피산 캔토스 Pisan Cantos》(1948)에 의해서 보링겐상을 받았다. 또 번역가로서는 이탈리아의 카바르칸티, 로마의 시인 프로페르티우스 이외에도 E.F.페놀로사의 번역을 토대로 한 이백(李白)의 영역(英譯) 《The Ta Hio》(1928) 등 다방면에 걸쳐 우수한 번역을 남겼다. 동서 문학에 관한 깊은 조예는 《문학안내》(1931) 《문화로의 길잡이》(1938)에 응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미활동의 혐의로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연금되었으나, 시인들의 운동으로 1960년 석방되어 이탈리아에서 살았다.*Geryude Stein펜실베이니아주 앨러개니 출생이며, 래드클리프대학교을 졸업했다. 1903년 런던으로 건너갔다가 파리로 옮겨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W.제임스와 H.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소설이나 시에서 대담한 언어상의 실험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운동의 비호자가 되었다. H.마티스, P.피카소, A.지드를 비롯한 많은 젊은 작가나 화가와 교우 관계를 맺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 모더니스트로서 활약한 한 사람으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기도 하였다. S.앤더슨이나 E.헤밍웨이와의 교우를 통하여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문학에 미친 영향은 크다. 단편집 《3인의 생애 Three Lives》(1908), 시집 《텐더 버턴스 Tender Buttons》(1915) 등과 소설 《미국인의 형성 The Making of Americans》(1925), 자서전 《엘리스 B.토클러스의 자서전》(1933)을 비롯하여 많은 평론 ·강연 ·오페라 등이 있다. 1951년 예일대학교에서 그의 유고를 양도받아 《미간 저작집》을 잇달아 출판하였다. 1950년대에는 ‘다다이 성질이 그의 인생과 문학에 미묘한 영향을 주었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 그 가운데에는 후에 유명해진 그의 문체(文體)의 맹아(萌芽)가 이미 나타나 있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Star》지(紙) 기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시찰 여행,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였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창작상의 많은 것을 배웠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처녀출판하였고, 1924년 주로 청소년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In Our Time》를 발표하였으며, 다음 작품 《봄의 분류(奔流) The Torrents of Spring》(1926)에 이어 발표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파리와 에스파냐를 무대로 찰나적 ·향락적인 남녀들을 중심으로 전후(戰後)의 풍속을 묘사하여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의 대표작가로 지목되었다. 1928년 귀국, 같은 해 아버지의 권총자살 등 어려운 사건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 이듬해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테마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를 완성, 전쟁문학의 걸작으로서 국외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에스파냐의 투우를 다룬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1932), 아프리카에서의 맹수사냥에다 문학론과 인생론을 교차시킨 에세이집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Green Hills of Africa》(1935)을 발표하였는데, 이들 지향한 것이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사회소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1936년 에스파냐내란 발발과 함께 그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 그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第五列) The Fifth Column》(1938)이 탄생되었고, 다시 1940년에는 에스파냐내란을 배경으로 미국 청년 로버트 조단을 주인공으로 한 그의 최대의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를 발표, 《무기여 잘 있거라》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1950)는 예전의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지만,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인데,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 Men Without Women》(1927) 《승자(勝者)는 허무하다 Winner Take Nothing》(1932)가 있다. 후에 다른 작품들을 첨가하여 한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는 하드보일드(hardboiled)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The Killers》(1927), 표현기술의 정수를 구사한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 of Kilimanjaro》(1936) 등 미국문학의 고전(古典)으로 간주되는 명단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를 오히려 단편작가로서 높이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많이 있다. 1953년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헤밍웨이는 두 번이나 비행기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이후 전지요양에 힘썼다. 그 후 1961년 7월 갑자기 엽총사고로 죽었는데, 자살로 추측된다. 사후에 《이동축제일(移動祝祭日)》(1964) 《만류(灣流)의다.
    인문/어학| 2002.12.23| 4페이지| 1,000원| 조회(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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