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정*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8
검색어 입력폼
  • 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전략
    목 차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전략Ⅰ.삼성 SDI는?⑴삼성 SDI 소개⑵삼성 SDI의 연혁Ⅱ.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현황과 전략⑴유럽, 북미, 중남미의 진출 현황⑵유럽, 북미, 중남미 시장의 진출전략⑶중국시장 진출현황⑷중국의 시장환경⑸중국시장 진출전략Ⅲ.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전략의평가와 향후 과제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전략Ⅰ.삼성 SDI는?⑴삼성 SDI 소개삼성 SDI는 1970년 1월 삼성-NEC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진공관과 흑백 브라운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84년 삼성전관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99년 12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성 SDI 주식회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SDI는 S가 Samsung의 머릿글자(initial)이고, D는 Display와 Digital의 의미를, I는 Interface와 Internet Component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新사명은 다가오는 21세기의 핵심산업인 디지털, 디스플레이, 그리고 2차전지와 같은 인터넷 컴포넌트(Components)를 중심으로 첨단사업을 전개하는 회사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삼성 SDI의 주생산품은 컬러브라운관 및 동부분품 등, TN-LCD, STN-LCD, VFD, LED 등으로, 주요 사업으로는 전자, 전기, 기계기구와 그 부품 및 소재의 제조, 판매, 임대업, 전자계산 조직 및 동 관련제품과 그 응용시스템의 제조, 판매, 부동산업, 수출업 및 동 대행업, 전자, 전기, 공작기계 및 설비 등의 플랜트 수출과 노하우 및 기술용역 수출 주택사업 임대 및 분양 등이다. 최근 녹색성장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면서 삼성 SDI의 2차전지 사업도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⑵삼성 SDI의 연혁1970년 삼성 SDI는 진공관과 브라운관, 방전표시관 등 당시의 주요 전자부품을 생산할 목적으로 탄생했다. 까다롭고 설비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생산 설비 시설, 부품 산업에 많은 비용을 투자함으로써 우리나라 전자부품의 일류화를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진공관과 흑백 벌 경영 3대 목표를 세우고 프로세스 혁신 을 지속적으로 펼쳐 국내외 모든 생산법인이 탁월한 경영성과를 거두고 있다.Ⅱ.삼성 SDI의 해외시장진출현황과 전략⑴유럽, 북미, 중남미의 진출 현황◎ LA 법인88년 설립된 SDI 최초의 해외 판매 법인으로 현재 LCD, VFD 등의 Flat Panel Dispaly 제품 이외에 2차전지의 미주 시장 판매와 향후 PDP, OLED 등의 신규사업 제품의 초기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으며, 고객 밀착 관리를 위해 샌디에고와시카고에 각각 사무소를 두고 있다. LA 법인의 특징은 공장설립을 통한 해외직접투자 형식의 법인이 아닌 판매 법인이라는 점이다. 미국 지역의 판매 전초기지는 멕시코 법인으로 서로 상호 보안적 역활을 하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북미지역의 판매에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법인1990년 10월 설립된 말레이시아 법인은 삼성 SDI의 최초 해외공장으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남쪽에 위치한 세렘방(Seremban)시의 투앙쿠자파 공단에 자리를 잡았다. 말레이시아에는 SONY, 마쓰시다 등 일본계와 현지업체들이 년간 350만대의 컬러TV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브라운관 생산업체로는 1991년 부터 양산을 시작한 중화영관 뿐이었다. 일단 공급이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회사는 판매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법인은 우선 14인치 CPT 라인과 전자총 조립라인을 설치하는 한편 한국에 유학은 말레이시아 유학생들을 채용하여 그들이 안내로 현지문화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물론 초기에 해외 첫번째 진출이라는 점에서 경영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려움이 많았다. 설비고장의 속출, 예고없는 잦은 정전 등의 문제점들이 자주 발생하였고, 영국령이었던 말레이시아의 특성상 영어가 잘 통용되는 줄로 알았던 부분에서도 착오가 발생했다. 그들에게는 말레이어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초기 말레이시아 법인의 양품률은 겨우 30%에 머물 정도였다.이러한 로 인수하여 독일공장을 본격 가동하게 된다.삼성SDI에서 가장 먼저 취한 전략은 두 회사의 공식 시스템과 절차를 합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시스템과 절차, 문화 등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독일 기업들은 매출을 늘리려면 생산설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헸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더 큰 비중을 두었으며 한국의 운용 방식을 독일 노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노동 문화의 차이에서도 문제점이 생겼던 것이다. 또한 경영상의 문제로 물류의 복잡성, 과다한 설비 가동시간, 회사조직과 직원들의 지나치게 이완되어있는 자세 등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원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삼성SDI는 합리화 공사계획 수립, 방만한 조직 간소화, 영업거래선 변경 및 확대, 본사의 구매거래선을 통한 거래선 이원화를 추진하면서 구매단가 인하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특히 노사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그 결과 독일 법인은 빠른 속도로 안정되어 갔고, 인수한지 2년째 되는 해 후반부터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동독 기업을 인수한 업체 중 손에 꼽을 정도의 드문 일어었다. 1995년 연간 흑자를 기록 했고, 그 해 삼성 SDI의 유럽시장 점유율도 10%로 상승했다.하지만 1997년말에 불어닥친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때문에 경쟁업체들이 아시아시장에서 유럽시장으로 진출하면서 경쟁이 가열 되었고, 기존의 필립스와 톰슨과의 경쟁,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하는 독일의 인건비는 삼성 SDI의 독일 법인에 크나큰 약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로 인해 1998년 대규모 감원을 단행, 설비자동화 및 신설비에 대한 계속적인 투자와 종업원들에 대한 교육, 생산시스템 개선 등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1992년보다 생산성은 거의 10배에 달해 있었고, WF사는 완정히 정상화 되었다.차후 독일법인은 PDP TV, LCD TV 등 평판 TV로의 수요 전환에 따른 유럽 브라운관 시장의 급속한 위축과 완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98년의 시장을 지나치게 밝게 전망하여 무리하게 재고를 쌓아두게 되고 기존 거래선과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라질의 상관습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9년 브라질 경제 최악의 상황이 발생 하였다. 이에 브라질 법인의 생존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이로인해 브라질 시장의 유일한 경쟁사였던 필립스와의 출혈경쟁을 끝내게 되었다. 2000년 3월에는 기존 라인에 CRT 생산설비를 개조해 현재 연간 60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헝가리 법인삼성SDI는 동구권 시장확대를 위해 2002년 6월 헝가리에 CPT생산공정을 준공하고 유럽 제2의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것은 독일의 법인이 높은 인건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다른 유럽시장의 교두보가 필요해 지면서 헝가리로의 해외시장진출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004년 1월 32인치 WDF 생산을 시작으로 향후 현재 초대형 CPT 등의 유럽 거점으로서 신규사업을 육성해 나갈 계획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⑵유럽, 북미, 중남미 시장의 진출전략삼성 SDI는 90년 초 말레이시아 법인을 필두로 지난해 헝가리와 중국 상하이 법인에 이르기까지 지역별로 차별된 해외진출 전략을 구사했다. 말레이시아는 중소형 제품의 생산거점으로서 원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멕시코 독일 브라질은 지역 내 시장 확보 차원에서, 중국과 헝가리는 원가경쟁력과 시장 확보 차원에서 진출했다.지난 91년 단돈 1마르크(500원)에 청산절차를 밟던 옛 동독 브라운관업체를 인수해 생긴 독일 법인은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 없이 공정 혁신과 품질 향상, 열린 경영을 통해 빠른 속도로 경영을 정상화한 사례로 유명하다. 인수 첫 해 8600만 마르크(약 417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4억4600만유로(약 5254억원)로 12배 가까이 급증했다. 삼성 SDI는 기능별 전문가 집단에 의한 지원활동과 국내와 연계된 현지 우수인력에 대한 교육을 통해 전세계 법인의 품질 상향 평준화소싱을 위한 IPO 사업에 착수했다. 1998년 10월 중국 텐진에 제3공장을 신설, 세계 브라운관 시장에 대한 공략을 한층 강화했다. 25인치에서 29인치 등 대형 CPT와 15인치 CDT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2001년 8월에는 34인치AF 브라운관을 첫 출하해 초대형 신기종 브라운관 제품 양산체제를 구축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때부터 삼성 SDI의 브라운관 생산능력은 세계1위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삼성 SDI는 시장이 있는 곳 가까이 가서 고객관리를 해주어야 고객이 믿고 따른다는 모토아래 세계 최대 브라운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1999년 선전과 톈진 생산법인이 260억 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특히 톈진 공장은 공장을 가동한지 1년이 안돼 흑자를 보는 이변을 낳았다. 선전법인은 2000년 전세계 SDI 법인 중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공장으로 뽑혔다.⑷중국의 시장환경중국은 2000년대 들어 고속 경제 성장과 더불어 모니터와 TV 시장도 함게 고속 성장하고 있는 국가이다. 2001년 중국 모니터 시장의 성장률은 16.9%로 세계 평균 1%에 비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6년도에는 중국에 수요가 2천만대 이상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며 세계 시장에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TV의 경우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침체기가 있었고, 컬러TV의 공급 과잉 현상이 있었으나 그 시기를 지나고 다시 고속 성장을 하였다. 시장조사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중국 LCD TV 시장은 지난해 약 1320만대에서 올해 1890만대로 늘고, 2011년엔 3100만대로 북미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시장규모를 형성할 전망이다. 또 2013년엔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현재는 중국의 TV 업체의 성장과 중국과 대만과의 국공합작으로 인해 한국 업체의 시장 점유률이 다소 낮아진 상황이다. 최근 중국 LCD TV 성장은 가전하향정책에 기인한다. 중국 정부가 자국 제품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노후된 있다.
    경영/경제| 2009.06.18| 13페이지| 3,000원| 조회(1,374)
    미리보기
  •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 평가A+최고예요
    목차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서론본론1.한국의 협상문화와 문제점2.한국의 협상사례①김선일씨 피랍사건과 대우자동차 인수건②한미 FTA③박신양 사태④쇠고기 협상⑤한·불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결론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서론한국은 그동안 주요 협상에서 대부분 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다시 뺏긴 한·불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한국 어민의 생존권을 박탈한 한·러 어업협상, 헐값에 팔린 대우자동차 매각협상, 합의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한·중 마늘협상, 협상 실수로 이라크서 비극적 죽음 맞이한 김선일씨 사건, 미국 쇠고기수입 협상 등 대부분의 협상에서 만족할만한 이득을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는 국제간 협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모르지만, 번번히 ‘참패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우리의 협상 성적표와는 다르게 세계적으로 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과 관련된 협상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두 명의 전 미국 대통령 밑에서 대테러 협상 전문가를 지낸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은 “인생의 80%가 협상”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해당사자간의 갈등을 관리하고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으로서 협상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협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왜 한국인은 국제간 협상에서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번 레포트를 통해 한국 협상의 특성과 문제점 ‘왜 한국인은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본론1.한국의 협상문화와 문제점협상문화란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혹은 어렵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의미하며, 한 나라의 역사·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패턴이 협상문화와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한국의 협상문화는 어떨까?김기홍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에다. 예컨대, 권위주의적 정치세력을 찬성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정치세력이 하는 일에 사안별로 찬성을 하거나 반대를 한다는 것은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한미FTA타결 등으로 인해 진보 진영측에서 신자유주의자라는 식의 비판을 들어야 했으며, 제대로 된 협상조차 진행 되지 못하고 지지층의 비난을 받았던 것은 이것을 설명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조폭기질이라는 것은 조폭의 문제해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질을 말한다. 조폭의 문제해결 방식은 힘에 바탕을 두기는 하나 단순히 힘만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차라리 귀여운 애교일 수 있다. 개인의 감정에 기초를 둔 협박과 위협, 그리고 거친소리를 배경으로 마지막에 힘이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비틀어 쥐어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보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흔히 이야기 되는 저 말이 대표적인 조폭의 문제해결 방식이라 할 수 있다.비합리성은 우리사회에서 협상문화가 제대로 확산되지 않은 것은 사회 저변에 만연되어 있는 비합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대로 된 협상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일의 관계, 그리고 일과 일의 관계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데 현재 그러한 합리성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 사회적 갈등의 대상은 조그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행한 사건 혹은 어느 집단이 가진 견해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람과 일을 분리하고 집단과 견해를 분리하여 사람의 일과 집단의 견해만을 다루어야 한다. 사람과 문제를 한묶음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002년 여름 한국협상학회에서 한국의 협상 문화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와 역사가 치열한 협상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우선 우리의 유교문화가 협상에는 적절하지 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왜 타협과 협상의 유전자와는 그토록 거리가 먼 것일까.. 다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첫째, 우리에게는 제대로 훈련을 받은 협상가가 없다. 어업협상과 농업협상,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협상 등 대부분의 협상에서 관련 부처의 실무담당자가 우리의 협상대표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공무원이지 협상가가 아니다. 공무원이라고 협상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이들 공무원은 제대로 된 협상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공무원이 협상에 나설 경우 전문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순환보직이라는 공무원의 특성상 전문지식 습득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둘째, 협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협상과 흥정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협상에는 흥정과 같은 ‘주고받는’ 요소가 필수적이나 정말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흥정하지 않고 (주고받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예컨대,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협상에서 우리 대표가 외국 채권단의 무리한 요구(워크아웃 참여 대신 자신들의 채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를 단호히 거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잘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의궤(儀軌)반환 협상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약탈해 간 의궤를 돌려받기 위해 우리 의궤를 프랑스에 다시 대여하기로 한 협상 결과는 ‘주고받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다. 이 경우 ‘주고받지 않는 것’이 협상을 가장 잘한 것이 된다. 협상을 실패로 끝내는 것이 가장 협상을 잘한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성립한다는 것이다.셋째, 협상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협상은 협상가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의 마늘협상을 예로 들자. 겉으로 드러나기엔 중국과 한국의 협상가들이 마주앉아 마늘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연장문제를 논의(외부협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협상가들이 자기 마음대로 협상을 하지 않는 한 협상가는 각각 자기 나라 농가, 더 크게는 자국 국민 전체의 입장을 대변할 따름이다. 그러니 통상협상이의 부족, 정책의 비일관성 등을 확인해 보면 우리의 협상을 꼭 실패한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가 우리의 협상이 항상 실패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협상에 너무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기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어울리는 강력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강력한 협상력이 문제이다. 미국의 협상전문가 Jim Camp는 'Starting with Law'라는 책에서, '한국의 비즈니스 협상가는 집요하며 언제나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문제는 바로 이런 전투적인 협상태도에서 비롯된다. 전투적인 협상태도는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그럼으로써 원활하고 생산적인 협상을 방해한다. 즉, 한국이 항상 협상에서 지는 이유는 협상에 대한 기대가 크고,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 전투적이라는데 있다. 우리의 문제가 협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전투적인 협상태도라 할 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협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2.한국의 협상사례①김선일씨 피랍사건과 대우자동차 인수건2004년 김선일씨 피랍 당시 정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질범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 이념적 목표라기보다 금전적 동기에서 비롯된 인질극으로 생각하며 협상을 진행하면서 납치법들의 이라크 파병 철회 요구에 단호한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가 김선일씨의 비극적 죽음을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김선일씨가 미군 군납을 하던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등 석방에 불리한 김씨의 배경을 언론이 보도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김씨의 죽음을 재촉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비즈니스 협상론》의 저자이자 국제변호사인 김병국 KNP컨설팅 대표는 “당시 우리 정부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협상의 초보적인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김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다.김선일 씨의 사례는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을 관리하고 의견을 조정하는 능력으로서 ‘올상이 이루어지는 기간 중에도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구체적인 매각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마지막으로 상대방이 협상의 기본룰을 어겼을 때의 제재 조치를 제대로 명기하지 않아 포드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파기하였음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단돈 4억달러에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대우자동차(현 GM대우)를 아시아·태평양 시장 공략의 전진기지이자 소형차 제조본부로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인수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잘된 협상은 기업의 수익을 수십 배 높여주고 잘못된 협상은 기업의 존폐를 위협한다.이처럼 협상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협상 전문가의 양성과 실무자들의 협상능력 배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IGM(세계경영연구원)이나 능률협회 등 일부 경영교육기관에서 협상교육 과정을 개설해 CEO와 실무자들에게 협상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으며 LG그룹 등 일부 기업들도 직원연수에 협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건교부는 공공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산하에 갈등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찰에서도 협상전문가 채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협상문화나 협상 전문가 양성 수준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②한미 FTA과서 한·미 FTA 체결을 위한 한국과 미국 정부 대표단의 2차 협상이 이뤄질 당시 서울시내 곳곳에서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농민, 시민단체의 시위가 하루 종일 벌어졌다. 시위대는 양국 대표단의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신라호텔과 장충체육관 주변에서 ‘한·미 FTA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 참석한 인원은 10만여 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ㆍ의경 3000명을 양국 협상단이 묵고 있는 신라호텔 주변에 배치하고 6000명을 서울역과 마로니에 공원 등에 배치해야 했다. 적어도 이날 하루 서울시내의 풍경은 1980년대 삼엄했던 군사정권 다.
    경영/경제| 2009.06.18| 11페이지| 2,500원| 조회(631)
    미리보기
  • 한국의 국제위상에 따른 국제기구분담금 지출규모 평가C아쉬워요
    한국의 국제위상에 따른 국제기구 분담금 지출규모Ⅰ.서론1962년 경제 개발의 시작 년도에 0.55억 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는 현재(2007년)에는 수출입 규모로 세계 11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3위, 무역 규모 12위, 외환보유액 순위 6위 등을 차지하는 국제사회의 상위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성장은 한국의 국제위상을 함께 상승 시켰고,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 되는 하나의 결실을 낳았다.출처: 한국무역협회 http://www.kita.net/한국의 한국전쟁을 딛고 이룩한 이러한 성장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성장이었다. 한국이 이러한 성장이 가능 했던 그 한 부분에는 분명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200억달러 이상의 유무상 원조도 있었다. 즉 한국은 한때 국제사회의 최대 원조수혜국 중 하나였다.이렇듯 한때 국제사회의 원조수혜국이었던 한국이 성장한 후에 국제사회에 대한 역할과 국제적 기여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이번 레포트를 통해 한국의 국제기구 분담금 지출 규모를 파악하고, 그 지출규모와 수준이 한국의 국제위상에 걸맞은지 알아보자.Ⅱ.본론1.국제기구 분담금이란?국제기구분담금이란 국제연합분담금이라고도 불리우며 국제기구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을 말한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국제기구 분담금은 유엔의 각종 구호 활동은 물론이고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도 긴요하게 사용된다. 각국의 분담률은 분담률에 따라 그룹을 지정해 놓고 배정하며 매 3년마다 정규 분담률 산정시 시행하고 있다.UN 분담률 산정방식은 2000년 개정된 바 있다. 개정내용은 미국의 정규분담률 인하(25% ~ 22%)와 95년 이래 적용해 오던 분담률 과다변동제한제도를 폐지하는 것, 중국과 러시아의 분담률을 적정수준으로 유지 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PKO 분담률 산정방식도 이전 4단계 분담금 그룹을 10개 그룹으로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 싱가폴, 쿠웨이트 등 분담률이 상향 조정되었다. 우리8년) 7월 방한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일본의 100분의 1로 창피한 수준”이라면서 “세계 11위의 글로벌 파워라는 위상에 걸맞은 기여를 해달라”고 촉구한바 있으며,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어느 정도 일까?가장 큰 국제기구인 유엔에 한국이 납부하는 분담금 비율은 전체 192개 회원국 가운데 11위로 경제력 규모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은 유엔에서 분담금 납부 비율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이것은 한국일보가 현재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 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이 분담금 비율에 걸맞은 위상을 갖지 못한다’는 응답이 71.4%순위의무분담금사업분담금(02-06)유엔 정규 (07-09)PKO (07-09)1미 국22.000%미국25.9624%미국2일 본16.624%일본16.6240%영국3독 일8.577%독일8.5770%일본4영국6.642%영국7.8383%네덜란드5프랑스6.301%프랑스7.4359%노르웨이6이태리5.079%이태리5.0790%스웨덴7캐나다2.977%중국3.1474%캐나다8스페인2.968%캐나다2.9770%이태리9중국2.716%스페인2.9680%UAE10멕시코2.257%한국2.1730%독일11한국2.173%네덜란드1.8730%브라질12네덜란드1.873%호주1.7870%호주13호주1.787%러시아1.4161%덴마크14스위스1.216%스위스1.2160%프랑스15러시아1.200%벨기에1.1020%아르헨티나16벨기에1.102%스웨덴1.0710%스위스17스웨덴1.071%오스트리아0.8870%벨기에18브라질0.893%노르웨이0.7820%이스라엘19오스트리아0.887%덴마크0.7390%페루20노르웨이0.782%핀랜드0.5640%핀랜드......29한국출처: 외교통상부에 이르렀다. 그 중 가장 큰 원인으로 ‘개발원조 등 국제사회적 책임 소홀’을 들었다. 미국과 일본이 많은 분담금을 납부하면서 국제기구 제사회에 대한 기여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국제위상이 급속히 상승하면서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기대치도 상승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소극적인 대응은 우려할만한 일이 된다.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그만큼 권리행사 또한 약화되기 때문이다.이것이 국제기구분담금을 납부하는 것, 국제사회에 이미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룬 국가로써 기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2005년까지 한국의 분담금 체납 액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가 각종 국제기구에 내야 할 분담금 체납액은 2005년 8100만 달했다.국제기구 분담금은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납부해야 하는 의무로, 계속적인 분담금 체납은 국제사회에서 ‘신용불량’국가로 낙인, 국가신인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의무분담금 체납이 누적되면 각 국제기구에서 투표권을 상실하는 데다 이대로 체납이 장기화 될 경우 2005년 당시 2007∼2008년 임기에 유엔 비상임이사국 진출 계획을 세워놓던 정부로서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해가 넘어갈 수록 체납액 상승폭이 더욱 커지고 있어 그 심각함이 더 했다. 당시 130여개의 국제기구에 가입해 있었고, 이 가운데 체납된 곳은 40여곳에 이르렀다.또한 선진국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OECD는 개도국 개발을 위한 원조확대 및 회원국 간 원조정책에 대한 협의 및 조정을 담당하는 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를 두어 회원국은 공적개발자금인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t)를 통해 개도국을 지원하고 있는데 ODA에 대한 원조 금액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이들 DAC 회원국의 개도국 원조 규모는 2004년 786억달러였는데, 이 중 미국이 190억달러로 전체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이 일본 88억6000만달러, 프랑스 84억7000만달러, 영국 78억4000만달러, 독일75억 달러 순이다.DAC 회원국의 국민소과했다.출처: 외교통상부이렇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한국이 크게 변화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2006년에 있었던 반기문 전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취임이었다. 2005년 체납액 액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국제기구분담금 체납이 국제활동에 저해요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점에 반기문 전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한국은 국제적 책임과 기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한국의 분담금 체납은 지불능력 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2008년 내 체납액 전부를 납부할 수 있는 예산을 책정하게 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 뒤 2007년 정부는 당해 국민총소득 대비 대외원조(ODA) 비율 목표를 0.08%로 잡고, 점차 비율을 높여가 2030년에는 0.7%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우며 개발원조에 높아진 관심을 표현하게 된다.하지만 유엔 권고기준이 0.7%, OECD 회원국 평균이 0.25%인 것을 감안하면, 2007년의 수치는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9번째, GNI 대비 원조 규모로는 27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GNI의 0.17%인 일본에 비하면 10분의 1이 안되는 수치로 한국의 경제수준에 비해 너무 낮은 수치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3.저조한 국제사회기여도에 따른 문제점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도가 낮을수록 한국의 입지는 작아진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개인의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이미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 부제는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키고, 국가 신인도의 하락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일본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차분히 넓혀왔다. 현재 일본의 유엔 분담금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의 납부국이며, 2007년에는 대외원조(ODA)로 76억9100만달러를 지원해 세계 5위의 지원액을 보이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키워왔다. 이러한 일본의 외교전략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거론된 국가들에 비해 뒤질게 없는 우리나라지만 그동안 펼쳐온 외교의 차이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요즘 불거진 금융공황과 같이 전 세계의 금융과 경제가 밀접히 연관되어 움직이는 상황에서 외교적인 내 아군의 확보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또 다른 문제는 납부하고 있는 금액에 비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의 수는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정부차원에서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인 유엔 사무국 직원은 32명으로, 국가별 쿼터에 따른 한국 쿼터(35명 수준)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 외에 UN 산하기구 우리 국민의 적정 진출 규모를 훨씬 못 미치는 숫자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그리고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기업이 진출시에도 해당 국가가 개발원조를 많이 하는 국가를 더 선호할 것은 자명한 일이며, 그것이 기업의 수익에 밀접히 연관되어진다는 점이 문제이다. 결국 이제 개발원조 등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도 여부는 뜬구름 잡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무역, 정치, 외교 등에 밀접히 연관 되어있는 한 부분인 것이다.이렇게 한국은 외교부분에 대한 특히 개발원조와 같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에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러한 인식이 없이는 원조 정책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개발원조와 관련된 좋은 무역정책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Ⅲ.결론한국의 경제는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국제기구분담금 지출 규모에 관한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결국 모든 문제는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적극적인 이해와 연구를 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개발원조.
    경영/경제| 2008.10.23| 12페이지| 2,000원| 조회(558)
    미리보기
  • 키치란 무엇인가? (도예미학)
    서론본론1.키치의 정의2.키치의 양식적 특징3.현대도예의 키치적 특성①키치적인 현대 도예의 시작②키치적인 현대도예의 진행과 특성1」현대인의 자서전2」메타 언어3」허구적인 이야기4」기능을 덮어버린 용기5」장식속에 숨겨진 풍자6」광고용 키치 도예결론서론현대 소비사회의 현상을 반영하여 탄생한 싸구려 미술품을 지칭하는 속어인 키치는, 1910년대 이후로 고급예술품에 대비되는 대중문화 상품을 지칭하거나 예술적인 나쁜 취미 혹은 사이비예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오늘날 사회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대중 문화로서의 키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의 의식 속으로, 삶 속으로 유입되고 있다. 인간과 사회가 공유하는 하나의 행동양식으로서, 그리고 개인과 환경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방식으로서 키치는 소비사회의 정신적 태도를 일컫는 세계 공통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든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게 키치문화의 수요자겸 창조자가 되어가고 있고, 어느 것이 키치이며 어느 것이 키치가 아닌지에 대한 판단과 예술적인 가치를 규정짓기 힘들게 하고 있다.예술과 산업, 문화, 경제, 정치, 종교등 모든 분야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키치적인 양상은 현대도예의 작품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어 온 커뮤니케이션적인 흐름은 21세기에도 지속되어 보다 더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어가고 있다. 21세기 현대도예의 양상 중에서 이전의 도예와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요소로는 압도적인 키치적 접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키치적 특성의 의미는 오늘날 키치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키치인간으로서의 도예가들이 선택한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예술언어란 점에 있다. 현대도예의 성향이 키치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소비 사회와 대중문화와의 관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키치로 둘러 쌓인 우리의 삶에 대한 도예가들의 커뮤니케이션은 한편으로는 도자 작업에 내재된 친밀함의 키치에 의존하여 역사적인 도자 제품들에 대한 복제와 재해석의쳐 사용되었으며, 당시의 예술적인 나쁜 취미를 지칭하는 많은 유사 용어들 중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되며 하나의 국제적 공식 용어로 변화하였다. 키치라는 용어가 19세기의 산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키치 현상의 기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그 시기는 먼저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승리를 쟁취한 때에 정점에 도달했으며 사물들로 범람하는 풍요로운 사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하류 계층들은 새로운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산업제품을 소비하는 도시생활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여분의 수입을 얻기 시작했을 때 마팀내 중류 계층으로 상승하는 ?사회적 지위 이동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적 지위 이동 현상과 함께 중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부자와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표시하기 위해 순수 미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모습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키치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적인 감수성을 개발할 여유를 갖지 못하였던 탓에 심미적 소외감을 키치를 사들임으로서 대리 만족을 하였을 것이다. 이같은 소외현상과 함께 새로운 키치 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대량 생산된 미술품과 같은 오브제들의 증가였다. 이런 종류의 키치는 언제 어느 때나 소유가 가능했으며, 백화점은 미술가가 아니라 익명의 제작자 또는 디자이너들이 제공한?값싼 미술품 같은 사물들의 전시장?이었다. 백화점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눈뜨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물건을 공급해 주면서 물건들을 사용하는 쾌적한 생활방식까지도 창출했다.)2.키치의 양식적 특징전형적인 키치의 양식적 특징은 키치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에서 공통적인 원리를 검토하는 것이 키치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첫 번째 특징은 '부적합성'으로 '엔켈하르트는 병따개 등과 같은 공업제품에서 부적합성의 개념을 추출해냈는데, 키치에는 본래의 기능을 거부하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다명과 본질적으로 관계가 있으며 오늘날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대중'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다섯 번째 특징은 '중용'으로 키치의 폐단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중용 또는 범용의 원리 안에서이다. 키치는 그 초기 단계에서는 본질적으로 민속 예술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사이비'와 같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중용의 원리로 변질되면서부터인 것이다. 이 원리가 미적 영역이나 정치, 종교, 기능의 영역 등 각 영역의 키치를 하나로 녹여 전부 '타락한 물건'이란 상표를 붙이는 것이다. '이 중용은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중간적인 위치이며 그것이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들로 구성되는 집합인 키치를 관통하는 원리인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키치는 중용으로 위치한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수용함을 의미한다.' 키치는 본질적으로 전위에 해당하는 대중 예술로서의 준비 단계를 거치며, 대중에 의해 수용되어 나름대로 하나의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중용이라고 판단한 순간부터 미적 차별성을 추구하는 심리에 따라 소비자는 키치를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경멸하는 미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러한 태도야말로 어쩌면 가장 키치적인 태도일 수 있다.오늘날 키치는 사물을 소비하는 쪽의 행동양식인 동시에 사물을 만드는 쪽의 태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을 창조하는 상업적 디자이너들의 행동양식도 키치이며, 소비자는 왕이라는 타협도 역시 키치이다. 그러므로 키치는 생활방식과 관계한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며 생활방식의 중요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키치는 바로 평균적인 감수성을 지닌 인간들에 의해, 평균적인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지며, 바로 그 인간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번영을 향수하고 있는 인간들이다.이러한 키치의 특징들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여 무엇이 키치인가에 대한 판단은 옳고 그름의 가치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키치가 우리의 삶을 어떠한 시각으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고려하여 그 맥락을 사회와 인간의 존재양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ons는 매스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미술가는 이러한 것을 미디어로부터 배움으로써만 예술의 힘을 복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혁명과 사진술, 영화, 라디오, 컴퓨터, TV와 같은 신기술이 대중문화를 강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오늘날의 문화를 양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순수예술이 아니라 이러한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는 대중문화이다. 20세기의 대중문화는 국제적인 것이 되었고, 항상 변화에 민감하며 확장되는 시장과 관중을 위해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현대미술에서?독창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새로움?이 대중문화에서 찬양받게 되었다.) 동시대 서구의 미술가들은 두 가지의 새로운 조건에 직면해 있다. 즉 모더니즘은 이제 역사 속으로 물러가고 대신 문화산업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중문화에 대한 모더니즘의 두 가지 기본적인 입장들이 이제는 부분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에 대한 가차없는 거부도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물질성에 변증법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오늘날은 반드시 비판적인 것은 아니라) 는 현대미술에 대한 전망에서처럼, 키치의 파급에 따라 변화된 예술의 의미와 현상들은 이미 뿌리를 내리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②키치적인 현대도예의 진행과 특성이렇게 진행된 키치적인 특성의 도예가 압도적으로 다수의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 이다. 지금부터 1990년대부터 2001년 중반까지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 특성들에 대하여 고찰하기로 한다.1」현대인의 자서전오늘날의 문화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도예가들이 누구라도 경험했음직한 일상적인 일들을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양상은 키치적인 성격이 추가되면서 한층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다. Jessica Romero y Nelson은 1991년 이후로 어린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어린이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 즉 모방의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도예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어떤 종류 가족의 여성적인 측면인 독특하고 겁이 없음을 드러내고, 재빠르고 날랜 송어는 나의 생에서 남성의 영향을 나타낸다. 함께 묶여져 있는 그들은 전체적으로 나를 만들고 있다.?) Nakamura Kimpei는 전통과 키치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열중하여 현대인의 생활을 점유하고 있는 도시적인 산물들과 풍경들에 대한 은유로서?메타 세라믹스(Meta Ceramics)?란 합성어를 만들었다. 그는 현대인의 풍경이란 도시의 이미지로서 이 시대의 참의미는 수공예와 산업 기술, 예술과 공예, 평범함과 비상함, 기능적인 것과 탈 기능적인 것, 일본과 서양, 모던과 포스트모던, 수직적 시각과 수평적 시각 등을 비교하여 혼합함으로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작업방식으로 키치의 참모습을 탐구한다.3」허구적인 이야기가상적인 허구의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들은 현대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많이 표현하고 있고, 유아기적인 소재의 동화로부터 어른들을 위한 동화, 그리고 그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허구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전개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다른 장르의 예술을 자신의 표현의 세계로 확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Paul Dipasqua의 부질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은 순수한 영혼, 넘치는 즐거움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그는 우리들 모두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버려진 물건들, 화려한 색채의 플라스틱 물건, 폐기된 물건, 어린이 장난감, 미국 풍물의 미니어쳐 등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의 취향대로 선택된 재료들을 계획에 맞게 배치한 것으로서 그만의 기술에 의해 독특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그는 일본 무사의 의상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무사들의 모습은 화려함과 번쩍임 그 자체이다. 나를 그러한 종류의 배치에 관심이 있다 … 또한 나는 성스러운 미술에는 관심이 없다. 삶은 거친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보며 웃고 즐거워하기를 원한다.?)라는 표명은 키치에 내재된 일반적인 태도로서 그의 작품은 공들인것이다.
    예체능| 2008.09.18| 16페이지| 2,000원| 조회(487)
    미리보기
  • 한국전쟁의 원인
    목차서론본론1. 남북분단 전 미·소 관계2. 남북 분단 직후 미·소 관계와 38선3. 한국전쟁의 원인과 배경4.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해석들Ⅰ.초기의 해석Ⅱ.남한의 해석Ⅲ.북한의 해석Ⅳ.미국의 해석Ⅴ.소련(중국)의 해석결론서론한국전쟁이 한국사와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이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이것은 해방 50년을 맞이하여 실시한 여론조사{ 조선일보(1995)를 봐도 알 수 있다. 일제의 식민 정치에서 해방된 이후 최대 사건으로 국민들의 약60%가 단연 한국전쟁을 꼽는다. 여론조사를 한 1995년 당시 남한인구의 72.9%가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 세대이다.{ 통계청, [남북한 경제사회상 비교] (서울통계청, 1995) p.21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해방 이후 최대 사건으로 꼽는 것은 그 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이만큼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 한국전쟁에 관한 그동안의 연구는 자료의 부족, 정치적 편견, 그리고 학자들의 다른 시각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냉전 시기에는 전통주의적 학자나 수정주의 학자들 모두 자료의 빈곤과 정치적 편견 때문에 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 제한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연구를 거치고도 많은 다양한 논쟁들이 있어왔다. 특히 이번에 다루려 하는 한국전쟁의 기원은 지금까지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다. 이러한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파악하고 재발을 막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그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살펴보기로 한다.본론1.남북분단 전 미·소 관계한국현대사는 분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전쟁 역시 분단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을 각각 점령하게 됨으로써 분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까지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 일본을 격파하기 위해 내키지 않지만 어할점령은 피해야 한다고 했었음에도 갑자기 분할점령정책으로 바뀐다. 이것이 여러 주장이 엇갈리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한반도 분할정책에서 가장 확실한 부분은 미군의 한반도 진주 계획 자체가 졸속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미국의 정책에 변화의 이유로 루즈벨트 사망을 들 수 있다. 루즈벨트는 소련에게 우호적이었으나 루즈벨트의 후계자로 대통령에 취임한 트루먼은 상당히 보수적이었으며 소련에 대한 태도는 강경책에 가까웠다. 트루먼의 소련에 대한 강경책으로 인한 미·소 냉전이 결국 한국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독제 체제인 소련의 체제는 미국보다 신속하게 계획의 변경이나 정책의 변경을 할 수 있다. 이것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어 서둘러 분할통치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 짓게 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미국에게는 어차피 소련은 이용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형태는 흔히 말하는 적대적 의존관계 였을 뿐이다. 공연히 우리나라만 반쪽이 잘리고 만 셈이다.3.한국 전쟁의 원인 및 배경한국전쟁의 발발 배경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변화, 남한의 이승만 체제 강화, 북한의 통일 정책, 소련 등과 관계가 깊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대소 관계에서 전쟁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통제가 강화되고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4대강국 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가고 이란과 터키에 대한 소련의 압력이 가중되자,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소련에 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응 전략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에 자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통일정부의 수립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에 자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통일 정부의 수립이 소련의 반대와 민중의 저항으로 어려워지자 국제 연합 기구(U.N.) 감시 하에 남한 단독 정부를 세웠다.1945년 8월 15일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은 미군정의 도움으로 한국독립당 등의 우익 세력까지도 배제하고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승만 정 박헌영의 대담이나 , 그리고 박길룡의 증언을 통해 그들의 인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련 외교관들과의 대담에서도 남한 인민의 혁명성에 대한 그들의 확신은 확고하였다. 즉 박헌영과 김일성은 전쟁이 발발하면 남한 인민들이 적극적으로 봉기하여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믿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이러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원 중 하나가 위에서 지적한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경제적 실패로 남한 국민들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신이었다.그러나 이 자신감은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는 이점에 대해 드디어 예정된 시각이 다가옴에 따라 전쟁은 시작되었다. 인민군은 재빨리 남으로 휩쓸고 내려갔다. 그러나 처음 몇 발의 총성만 울리면 남한 내에서 민중이 궐기해서 이승만을 타도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장담한 김일성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고 진술하고 있다.여기에서 처음 몇 발의 총성만 울리면 남한 내에서 민중이 궐기해서 이승만을 타도할 것 을 (김일성이) 입버릇처럼 장담하였다. 는 것은 우리가 최근에 입수한 의 전문 내용들과 거의 일치한다. 이를 보면 김일성, 박헌영의 확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불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남한에 대한 그동안의 미국의 태도 때문이었다. 미국은 국군에게 필요한 수준의 무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비용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하던 엄청난 양의 무기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 상황이었으므로 상당량의 무기를 폐기 처분해야만 했다. 이렇게 폐기처분해야 할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비용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결국 미국은 한국에 최소한의 방어력도 제공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북한에게는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참여한다 해도 미국이 참여하기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미국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남한이 무사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Journal of Korean Affairs, Vol.4, No.3-4 (October 1976-January 1977), pp.10-11.여기에 대한 해답으로써 채피교수는 한국전쟁을 통한 한반도의 공산화를 든다. 한반도 전체를 적화시켜 친 소정권을 세워놓고 여기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면 소련을 정책적 고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스탈린은 계산 했다는 것이다.이상의 추론들은 명백하게 입증될 공식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정황증서들에 의한 분석이다. 이러한 가설들에 대해 서방의 국제정치학계는 오랫동안 미-일 조약 견제설과 저항력 실험설에 호의적이다.위에서 살펴본 추론위에서 스탈린 주도설을 펼친 전통주의자들은 스탈린이 중국과도 음모 했다고 주장한다. 풀어 말해, 전통주의자들은 1947년 가을 즈다노프의 선언을 계기로 세계 적화를 노골적으로 추구한 소련이 1949년 10월 중화 인민 공화국의 수립이후에는 아시아 지역의 공산혁명 전략의 주도권을 자신의 보조역 인 중국에 위임 했다고 주장한다. 이어, 그들은 이에따라 중국은 소련의 주도 아래 북한과 남침을 위한 일련의 군사협정을 밀약하고 한국전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전략을 조정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주장은 한국전을 아시아 적화를 위한 중국과 소련 사이의 제 1단계 공동 전략으로 본다.전통주의자들은 이러한 중-소의 음모 아래 북한의 전쟁준비가 이루어 졌다고 주장했다. 전통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널리 인용된 자료는 세 가지이다.첫째가 북한에서 근무하다가 동독으로 전속되었을때 서독으로 탈출한 소련군의 칼라노프의 증언이다. 둘째가 주일 소련 대사관 정보원으로 근무중 미국으로 망명한 라스트보르보프의 증언이다. 셋째가 평양주재 폴란드 대사관 무관으로 있다가 서방으로 망명한 모나트의 증언이다. 이들은 모두 소련이 중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 전쟁안을 확정지으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지원을 활성화 시켰다고 회고했다.2 수정주의 해석의 대두위에서 살펴본 전통주의적 해석에 대해 공산권은 즉각 반발했다. 북한은 한국전쟁이 미제와 그 통일이라는 숙원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Kolko는 이승만 대통령이 계속적으로 북진통일을 주장해 온 점을 지적하고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개입이 절대 필요 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Kolko, The Limits of Power, pp. 568-569, 578, 582, 585.또 Jon Halliday는 북침을 주장하면서 이승만 정부가 미국 지상군의 개입을 유도하여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3) 이승만 체제 위기David Horowitz, Barton J.Bernstein등은 한국 정부의 이승만 정권이 당시 내부적으로 붕괴될 위기적 상황이 북한에게 남침을 위한 호기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Horowitz, The Free World Colossus, pp.171,121 ; Barton J.Bernstein, " American Intervention in the Korean Civil War," Foreign Sevice Journal(January 1977), p.8.Bernstein이 지적하고 있는 당시의 위기적 상황은 정치적 위기, 경제적 혼란, 게릴라의 군사적 활동등이다.{.Ibid.Simmons도 한국 내부의 게릴라 세력으로부터의 압력이 남침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Simmons, The Strain Alliance,pp.103-104.한편 Stone은 이승만 정부가 북침을 공모한 것은 당시 국내적으로 이 승만 정권이 실각될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Stone,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 pp.42-52.Stone은 한국전쟁이 결과적으로 반공주의 세력에게 많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 주었음을 지적하고 당시 이승만 정권이 국내적 지지 기반을 상실,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여 미국과 U.N.의 지지를 획득할 필요가 있었고 미국의 개입이 요청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Ibid., p.43.Fl
    인문/어학| 2008.09.18| 23페이지| 2,500원| 조회(31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5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