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行政學의 發達序행정학이 미국으로부터 소개된 지 40년 이상이 흐르면서 행정학은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과학의 하나로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행정학회의 창설, 행정학과 및 행정대학원의 설립, 그리고 수많은 행정학자의 배출과 관련학문에 대한 교과서출판 및 연구 결과의 집적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성숙되어간 한국행정학의 발달과정과 경향 그리고 한국행정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과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I . 한국 행정학의 뿌리한국의 행정학은 50년대 말기부터 미국의 행정학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대표적인 행정학 교과서들은 거의 모두가 미국의 교과서 또는 행정학개론 강의 계획서의 편제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한국 행정학의 교과서들은 모두 조직, 인사, 재무, 정책이 반드시 포함되고, 서론 격인 부분에서는 행정학의 역사, 접근방법, 행정부의 성장과 확대, 그리고 행정의 기초개념으로서 행정학의 목적, 행정과 정치의 관계, 행정과 경영의 차이 등을 취급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미국의 행정학 교과서나 개론강의계획서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유사한 내용으로서 정부구조로서 권력분립, 행정과 여론, 민주주의, 시민참여 등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미국에서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서 한국행정학교과서가 취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는데, 정부간 관계가 소홀히 취급되고, 경영마인드, 고객관계, 공무원단체와 노조, 직무분석, 새로운 관리기법 등이 가볍게 취급되거나 전혀 취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1.) 미국의 행정학 -슈타인의 행정학과 정치ㆍ행정이원론한국행정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행정학뿐 아니라, 유럽의 행정학, 행정학의 주요 이론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한국행정학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미국행정학과 슈타인의 행정학을 간략하게 알아보려 한다. 미국행정학의 변화과정을 연구목적과 연구대상을 중심으로 보면, 초기에 능률을 목적으로 행정조직내부관리를 주된 대상으로가 있다.슈타인의 행정학은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지는데, 당위성(Sollen)을 위한 것이 행정법학이고, 사회행정현상의 존재 지향성을 위하여 문제인식을 하는 것이 행정학이며, 목적 또는 가치지향성을 가지고 국민의 자유와 평등권원칙의 추구와 시민사회의 복지향상과 안정을 위한 것이 행정정책학이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행정법학에서는 행정가가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를 취급하고, 행정정책학은 목적달성을 위해서 해야 할 처방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책분석과 유사하고, 행정학은 문제파악을 위한 사실진단과 행정의 실제를 파악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어느 것이나, 행정이 담당해야 할 기능, 즉 이상적인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행정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이다.요약하면, 현대 미국행정학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슈타인행정학은 규범론적 국가론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정치행정이원론에 의하여 정치학이 헌법학과 다른 독자적인 사실과학으로서의 행정학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윤재풍 교수에 의하면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행정학의 기반이 된 정치행정이원론은 슈타인의 행정학보다 앞선 플아스 보닌의 행정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60여 년 이후에 등장하여 미국행정학의 효시가 된 윌슨 행정학의 정치행정이원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지금에는 누구라도 그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치행정이원론은 행정학의 독자성 확보를 위한 초석으로 주장되어졌고 적어도 윌슨의 경우는 그 이후에 등장한 과학적 관리운동에 힘입어 정치학이나 헌법학과는 다른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미국행정학으로 결실을 본 셈이다.2.) 다산행정사상 -그 현대적 의미, 새로운 한국행정학의 틀을 위한 교훈-우리 나라에서는 일찍이 다산 정약용이 행정사상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다. 비록 외국행정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다산선생의 행정사상도 동시대의 서구학자들에 못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가기능의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하여 예리한 사실판단에 입각한 엄청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는 점에서 서구의 어느 누구지도원리로서 내걸고 있는 민권주의, 민생주의, 정균주의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행정이념으로서 그 기본정신은 지금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다산의 조직관리나 인사행정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실적주의확립을 의미하며, 이는 재무관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극심한 행정부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실인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며, 관료들의 행동수칙도 본인만이 아니라 지방행정을 담당하고 있던 아전들의 부패와 농민착취를 막으려고 만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농민들, 즉 국민들 위에 군림하던 관료들로 하여금 국민을 위한 봉사정신을 지니도록 강조하기 위한 이념적 기초로서 민권주의, 민생주의 등을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다산의 행정사상은 행정부패를 제거하고 능력 있는 실적주의 관료조직을 구축하며 국민을 위한 국민에게 봉사하는 관료 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실적주의 제도는 60년대 이후 어느 정도 구축되었지만 나머지 행정부패의 제거와 국민에게 친절하게 봉사하는 관료의 양성에는 아직도 문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국민 위에 군림하여 국민을 수탈하고, 부패하면서도 무능한 관료들 문제는 사실 유사이래 끊임없이 한국행정을 괴롭혀 온 고질적인 문제들이다. 즉 관료의 봉사정신의 결여나 부패의 문제는 한국행정의 통시대적인 과제로서 이들 문제의 해결과 관련된 요소들이 행정연구의 대상으로서 어느 무엇보다도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행정윤리의 문제나 인사행정제도의 문제는 물론이고, 정치의 행정통제 등도 모두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Ⅱ 우리나라 행정학의 발달과정1. 개관우리나라의 행정학은 왕조시대의 행정기술이나 실학의 행정학적 학술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단절되고 말았다. 이는 멸망과 일제의 강점·미군정의 실시 등과 같은 역사적 이유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행정구역명칭이나 부처명칭에서 고려왕조나 임시정부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단절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반면에 이러한 행정정대학원이 설치되었다. 초창기 대학의 행정학과에서는 주로 공법학이 중심이었고, 정치학도 동시에 강의되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설치로 본격적인 미국식 행정학의 보급되기 시작했다.2) 현장보급의 강화대학교육에 이어 행정현장에 행정학의 지식과 기술을 보급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먼저 1949년에는 공무원 교육을 위해 국립공무원훈련원이 설립되어 1959년부터는 행정학 강의가 시작되었으며, 1961년에는 중앙공무원교육원으로 바뀌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1961년에는 총무처에 행정관리국, 1963년에는 행정개혁조사위원회가 각각 설치되어 공무원들에게 행정학 지식을 실용화시키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1961년에는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 시험에서부터 행정학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게 함으로써 행정학의 보편화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행정학자들의 정부 자문활동이 늘어나면서 행정학자들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3) 저술활동 시작우리나라 최초의 행정학 교과서는 1956년에 제일문화사에서 펴낸 정인흥 교수의 행정학원론 이다. 그는 해방 전 일본 경도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하였다가 후일 우리나라 행정학 연구의 태두가 되었다. 이어서 1958년에는 한국행정연구회 6명의 학자들이 미국 화이트(Leonard D. White) 교수의 교과서인 행정학개론(Introduction to the Study of Public Administration) 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또한 1959년에는 한국행정연구회가 행정학사전 을 출간하였다. 1962년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논총 을 창간하였고, 1967년에는 한국행정학회가 학회보인 한국행정학보 를 창간하였다.4)연구단체 결성1956년에는 행정에 관련되는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자와 행정실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모여 행정연구회 를 설립하였으며, 1961년에 이를 한국행정학회 로 개칭하였다. 한국행정학회의 창립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행정학 연구의 정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한국행정학 연구의 메카, 있다.-한국행정학보-3. 행정학의 정착과 발전1) 행정학 연구의 정착우리나라에 행정학이 정착하여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 국가발전 과정에서 행정이 사회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행정학에 대한 수요가 매우 컸기 때문에 연구자 수가 급증하게 된다. 게다가 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원조계획에 공무원의 훈련이나 유학생의 훈련도 포함되어 가속화되었다. 국내적으로 군사혁명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의 실천에 필요한 인력공급계획에 행정학 전공자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한 몫을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행정학 정착에는 고등고시 등 각종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의 채용시험에서 행정학이 필수과목으로 선정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1970년대에는 행정학이 명실공히 학문으로서 정착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2) 행정학 연구의 발전1970년대의 정착기를 거쳐서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행정학의 발전이 본격화되었다. 행정학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이유는 아래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a. 관료지향적 문화오랜 관료선호의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공직희망자가 많은 데다가, 시대적 요구로 공직희망자가 많다졌다. 이러한 공직희망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행정학이었다. 행정국가시대에서는 행정이 어떤 다른 학문보다도 우선적으로 배려되었다.b. 정치학 연구 억제로 인한 상대적 발전우리나라는 정치지향적 사회여서 정치학에 대한 수요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런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군사정권의 경제발전 우선적 국정목표로 정치활동이 상당히 억제되었다. 이런 이유로 대학에 정치학과의 정설이 억제되면서 대안으로서 유사학과인 행정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른 강사 수요도 급증하여 석사학위소지자들도 대학에서 전임교수가 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c. 유학 자유화에 따른 행정학 연구자 급증1983년 외국유학 자유화에 따라 유학생수가 급증한다. 이에 따라 외국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는 수도.
헐리우드 영화의 지배적 이데올로기헐리우드의 영화산업은 끊임없는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나타내는 전형적 예이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은 미국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헐리우드 영화는 뚜렷한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즉,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숨겨진 이데올로기라면, 오락으로서의 영화 이데올로기는 영화가 이데올로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영화란 관객의 다양한 `잠재적 욕구와 성향을 만족시켜주는 `오락 이며 그로 인해 카타르시스적 효과가 생겨난다는 것이다.어두운 극장 공간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키는 관객의 심리상태는 흔히 관음주의(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훔쳐봄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상심리), 재부정, 물신주의로 설명된다. 영화는 관객의 영상에 대한 신념을 부재에서 존재로 돌리는 재부정을 위해 물신주의를 사용하는데, 영화산업은 오랫동안 다양한 물신을 개발해왔다. 즉 고전적 이야기구조와 장르, 스타 등과 같은 장치가 그것으로 이러한 장치는 관객의 관심을 영화매체로부터 메시지로 돌리거나 스크린 세계로 빠져들게 하여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결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관객을 스크린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화의 감성적 측면들을 여하히 다루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헐리우드 영화의 관심은 지배 이데올로기이다.헐리우드 영화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집요하게 지배적 제도와 전통적 가치를 긍정하고 강화시킨다.헐리우드 영화는 1개인주의, 2자본주의의 가치(경쟁, 적자생존), 3가부장적 제도(남성의 지배적 역할과 여성의 부차적 지위), 4인종차별주의(사회적 힘의 불공평한 분할) 5아메리카 드림 6영웅주의 등이 지배적인 가치이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의 주된 형식은 객관적 사실의 중립적 기록보다는 특정관점에서의 조작된 환상의 제시를 위한 형식, 오직 한 계급에 대해서만 관심과 지지를 표명한다. 그래서 `기회와 균등 이란 특정 계급에 한에서만 평등 할뿐, 여성, 가난한 자, 소수인종 등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미국의 최대의 화두이자 쟁점인 인종 문제는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백인 중심사회 내에서 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의 반영은 흑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 서구문화 이외의 문화에 대한 배타적 시각으로 인한 인디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은 인종 그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활상이나 풍습 등의 왜곡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는 또 미국의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러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편견은 `람보 나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헐리우드 영화의 환상주의와 지배 이데올로기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즉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객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환상주의, 또는 오락으로서의 영화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는 것이다.`람보 와 같이, 영웅과 폭력에의 심취(환상주의)가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교묘하게 결합하는 것처럼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직접 이야기되지 않는다.헐리우드 영화는 또한 `합의의 이데올로기 를 조장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관객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지배 이데올로기는 환상주의 외형 밑에 숨겨져 있다. 헐리우드 영화속의 멋진 배우나 자동차, 패션 등에 매료되어 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게 되고 이러한 요구는 대개 소비적인 경우가 많아 자신이 속한 사회가 그 욕구를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게되면 곧 미국을 동경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긍정하게된다. 또한, 이분적 사고의 주입도 큰 문제이다.국제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산업인 헐리우드 영화는 외형적 수치만으로 그 영향력을 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세계 곳곳에 점유하고있는 헐리우드 영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잠재적 동조자와 미국 상품에 대한 잠재적 소비자를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911테러로 미국에는 애국주의의 물결이 일고있고 이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예외는 아니다.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들에게 권한을 준 적은 없지만 미국은 스스로 전 세계 경찰로서의 권한과 의무를 주장해 왔다. 정의의 이름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세계 곳곳을 지배하고 침투해 옴에 따라 자연스럽게 미국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방해되는 대상을 적으로 규정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가장 잘 대중적으로 풀어내고 선전해 나가는 도구가 바로 할리우드가 만들어 내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