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작품특징-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을 중심으로-1. 박태원박태원(1909~1986) : 소설가. 호 구보(仇甫). 단편들에서는 여러 가지 문장 표현의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썼으며, 장편인 《천변풍경》(1936)에서는 세태 풍속에 대한 착실한 묘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서유기》《수호전》등 중국 고전을 번역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고, 1950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갑오농민전쟁》등 역사소설을 주로 창작하였다.1909( 1세) 1월6일(음력12월7일) 서울 수중박골(지금의 수송동)에서 父 密陽 朴氏 容桓 과 南洋 洪氏 사이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남. 初名은 등 한쪽에 커다란 검은 점이 있어 點星으로 지었는데, 1918년 8월 14일 泰遠으로 개명함.1913( 5세) 11월21일 祖母 長水 黃氏 사망함.1916( 8세) 큰할아버지 박규병으로부터 천자문과 통감 등 한문 수업을 받기 시작함.1918(10세) 경성사범 부속보통학교 입학.1922(14세) 보통학교 제 4학년 수료후, 입학시험을 보아 4월22일 경성제일 공립 고등학 교 입학. 『동명』제 33호 (4월)의 소년칼럼난에 「달마지」이란 작문이 뽑힘1926(18세) 의사인 숙부 朴容南과 고모 朴容一(이화여고 교월)이 문인들과 교분이 깊어, 그들의 소개로 춘원 이광수, 백화 양건식에게 지도를 받게 됨. 제일고보 재 학중이던 당시에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공식 적으로 데뷔. 그후 ,『신생』등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1927(19세) 제일고보 휴학.1928(20세) 3월 15일 오전 1시 경성부 다옥정 7번지에서 아버지 朴容桓사망.1929(21세) 경성제일고보 졸업 (25회). 필명 泊太苑으로 『신생』에 시 「외로움」을 발 표하는 한편 에 소설 「해하의 일야」등을 연재하기 시작.1930(22세) 동경법정대학 예과 입학. 영화, 미술, 음악 등 서양 예술과 신심리주의 문학에 경도됨. 동경 유학생활은 소설 「반년간」에 잘 반영됨. 단편 소설편소설『홍길동전』출간.1948(40세) 보도연맹에 가담하여 전향 성명서 발표. 성북동 39번지로 가족과 함께 이사.『중국소설선 Ⅰ·Ⅱ』,『이순신 장군』,『금은탑』출간. 단편집『성탄집』출간.1949(41세) 에 (갑오농민전쟁의 모태가 되는) 「群像」을 6월 15일~50년 2월 2일까지 발표. 종군기자로 활동(1부만 완성됨).1950(42세) 6·25동란중 월북.*북한에서의 활동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국내 신문 잡지 가족들의 증언 등을 통하여 알려진 상황을 수집 정리한 것임.1951(43세) 동생 박문원, 박경원 그리고 맏딸 설영과 평양에서 재회.1953(45세)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국립고전예술극장 전속작가로 曺雲과 함께 「조선창극집」을 출간.1955(47세) 학창시절 절친했던 정인택의 미망인 권영희와 재혼.1956(48세) 남로당 계열로 몰려 함경도 벽지학교 교장으로 좌천. 이때 『갑오농민전쟁』 을 16부작으로 구상하고 농민전쟁에 관련되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함.1960(52세) 작가로 복귀.1963(55세) 혁명적 대창작 그루빠 의 통제 아래,16부작 구상 중 『갑오농민전쟁』의 전편 에 해당하는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를 집필.1965(57세) 망막염으로 실명.1975(67세) 고혈압으로 전신불수의 불운이 겹침. 김일성이 쾌유를 비는 전문과 함께 약을 내려줌.1977(69세) 완전실명과 전신불수의 몸으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대하 소설 『갑오농민전 쟁』을 구술로 받아쓰게 하여 1부 완성.1980(72세) 『갑오농민전쟁』2부 완성.1986(78세) 『갑오농민전쟁』3부 완성. 북한 『조선문학』7월호에는 박태원이 고혈압에 시 달리다 7월 10일(음력 6월 4일) 오후 사망했다고 발표. 부인 김정애는 죽기 전에 꼭 남편을 만날 것이란 희망을 안고 살다가 1980년 4월 21일(음력 3월 7일) 오후 7시 30분에 세상을 뜸.{) 강진호 류보선 이선미 정현숙 外, 『박태원 소설연구』, 깊은샘, 1995, pp.441-443.2. 작품분석직업과 아내를 갖지도시 생활에서 생겨난 사람으로서, 이것은 행위로만 보면 도시를 배회하며 도시의 풍물과 근대적인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는 자이고, 거리를 오가는 익명의 군중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이선미, 「 소설가 의 고독과 억압된 욕망-「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론」, 『박태원 소설연구』, 깊은샘. 1995, p.331.도시의 조형 자체가 근대의 사상을 대변하기 때문에 근대 풍경을 노래함이 곧 근대사상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당대 모더니즘의 주요 의도임을 감안할 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소설가 구보시의 일일』, 문장사, 1938. 이하 같은 작품의 인용은 인용문 끝에 해당 쪽수만 표시함.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 작품에 묘사된 1930년대의 경성공간 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허구로서 소설의 기능이 의도적으로 무시된 듯이 보일 정도로 사실에 입각하고 있으며, 경성공간 이야말로 이 소설의 배경이자 내용이다.{) 최혜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에 나타나는 산책자(flaneur)'연구-모더니즘 소설의 전형에 대한 일고찰-」『朴泰遠』, 새미, 1995, p207.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은 작가의 분신인 소설가 구보가 정오에 집을 나와 서울 거리를 배회하다 새벽 2시에 집으로 귀가하는 원점회귀의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바,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이 거부되고 도시공간 포착의 순간순간 속에 정지되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주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의 편린(fragment)들이며 작가는 이 편린들에 과도할 정도의 성실한 표현을 가하고 있다. 첫 출발점인 구보의 집은 광교천변의 다옥정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광교, 화신백화점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어서 구보는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구보는 전차를 탄다. 전차는 종묘, 대학 병원, 경성운동장, 훈련원, 약초정, 본정통을 지나 조선은행 앞에 새워진다. 이런 전차궤도는 당시 경성 외곽의 순환 어떤 극적 구성 및 주요 사건이 없이, 구보가 경성의 도심지를 걸으면서 과거를 회상 한다는 단순한 일상사의 일로 구성되어 있음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수용되는 신선한 충격을 부정할 수 없는 바, 그 원인을 규명하고자 텍스트의 내용에 해당하는 위의 모티프를 좀더 자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모티프의 두 요소인 도시체험 과 과거회상 은 항상 동일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관계를 갖고 있는가, 있다면 어떤의미를 갖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예컨대, 광교연변에서 구보는 지나가는 자전거의 경적소리를 듣고,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갔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도심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긴 회상을 하는 식의 구성은 작품 전체에 반복되어 나타남으로써, 이 작품은 자극-반응의 편린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지게 된다.{자극연상반응1.자전거귀병원에 갔던 일 회상2.행인눈병원에 갔던 일 회상3.전차노선도의 교외명한적함자신의 고독4.대학병원 건물연구실에서 정신병 공부하는 친구5.승객혼담생활, 행복, 과거연애 회상6.카페손님대인관계에 대한 미로7.행인의 건장함자신의 몸의 쇠약어린시절 독서 체험8.어린애 울음죄악의 자신벗의 애정행각 회상9.전보배달자전차편지집에서 편지 받을 어머니 회상10.경성우체국좋은 소식11.여급의 이름여급모집광고를 보고 온 아낙네도표 왼쪽에 자극의 종류를 살펴 볼 때, 군중(2,6,7,8,11), 교통기관(1,3,9,), 건물(4,10) 의 세 요소로 범주화 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세 요소는 도시를 이루는 대표적 존재들이다. 결국 구보는 가장 도시적인 것들의 자극에 의해 반응을 일으키는 산책자로, 도심에서 구보의 반응양상은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대표적인 극복의 방법으로 보아져야 할 것이다.경성 공간을 거닐 때 구보는 대중 교통수단과 군중, 석조로 된 빌딩들을 결코 종합적으로 감지할 수 없다. 예컨대 군중의 성장배경, 성격, 능력들을 결코 파악할 수 없으므로 개별성이 종합화되어 보편적 체계로 파악되지 못하고, 막연한 덩어리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할 수 있다. 이는 서술 기법상 이중노출의 기법과 무관하지 않다. 이중노출이란, 주제가 공간에 고정되어 있고 작중인물의 의식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방법, 즉 어느 한 시점의 영상과 관념을 다른 시점의 영상에 겹쳐 놓는 기법으로 몽타주의 기법과 방불하다.{) 이윤진, 『박태원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국학자료원, 2004, pp.75-76.女子는 총명하였다. 그들이 武藏野館(무장야관) 앞에서 자동차를 내렸을 때, 그러나 구보는 잠시 그곳에 우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뒤에서 내리는 여자를 기다리기 위하여서가 아니다. 그의 앞에 외국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서있었던 까닭이다. 구보의 영어교사는 남녀를 번갈아보고, 새로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고 오늘 행복을 비오, 그리고 제 길을 걸었다. 그것에는 혹은 삼십 독신녀의 젊은 남녀에게 대한 빈정거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소년과 같이 이마와 코잔등이에 무수한 땀방울을 깨달았다. 그래 구보는 바지 주머니에서 수건을 끄내어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름 저녁에 먹은 한그릇의 설렁탕은 그렇게도 더웠다. (271쪽)정밀한 세부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의 새로운 문장 표현방식은 이 작품에서 네가지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자유간접화법의 사용, 둘째는 단정을 회피하는 문장 표현, 셋째는 쉼표를 이용한 긴 문장의 사용이며, 넷째로는 독특한 소제목의 사용이다.1 그러나 돌아와, 채 어머니가 무어라고 말할 수 있기 전에, 입때 안 주무셨세요, 어서 주무세요, 어서 주무세요, 그리고 자리옷으로 갈아 입고는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펴 놓는다. (224쪽)2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오늘 전차에서 그 색시를 만났죠 하면, 어머니는 응당 반색을 하고, 그리고, 그래서 그래서 , 뒤를 캐오 물을 게다. 그가 만약 오직 그 뿐이라고만 말한다면, 어머니는 실망하고 그리고 그를 주변머리 없다고 책할지도 모른다.(234쪽)위의 두 예문은 이 작품의 앞부분에서 인용한 것인데, 자유간법화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자유간접화법은 인물0
모더니즘에 대하여1. 모더니즘이란?모더니즘은 오직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 서구 문학사를 통하여 나타난 특정한 예술운동이나 경향을 가리킨다. 시기를 좁혀 말하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대전 사이에 유행한 사조이지만 20세기 내내 사실주의의 대척점에 서서 영향력이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모더니즘은 기존의 사실주의와 유물론적 세계관, 전통적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이며 D.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등이 모더니즘의 대표자로 꼽히고 있다. 모더니스트들은 기존의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할 것을 주장했다.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모방하거나 재현하려는 사실주의의 태도를 배격하여 예술의 자기목적성을 주장했다.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될 수 없고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봤기에 반정치적인 경향을 띠었다.현대인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실존주의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신 없는 세계에서의 삶, 책임과 선택의 문제에 대한 관심, 삶의 비극적 의미와 허무주의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와 다른 것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긴장, 소외의식과 고립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은 현대 기계문명과 도시감각을 중시하는 문예사조로서 도시인의 도시에서의 삶을 묘사하되 문명 비판적인 성향이 강했다. 자연과 실재를 상상에 의거해 표현하는 주관성을 인정했고, 지식인의 공허감과 허무의식을 많이 표현했다. 전위적 실험성을 지향하여 내적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구사했다는 것도 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색이다. 또한 모더니스트들은 자신에 대한 자각을 중요시하여 1인칭 화법을 즐겨 썼다. 작가의 주관적인 내면세계로 눈을 돌렸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모더니즘은 사실 그 의미가 대단히 넓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도시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상징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주지주의 인상주의 이미지즘)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볼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전통이나 인습과 급진적 단절을 시도한 점에서 근대미학의 한 성분을 공유하지만 과거의 예술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예술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아방가르드가 동시대의 예술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나타낸 데에는 기존 제도 예술을 비판하고 예술과 살을 통합시키려 한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잇다. 모든 전통이나 인습과 급진적 단절을 시도한 점에서 근대미학의 한 성분을 공유하지만 과거의 예술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예술을 비판적 관점을 나타난 데에는 기존이 예술이 사회에서 기능하는 방식과 미적 형식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첫째로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 속에서 제도 예술로 정착하고 있는 기성의 예술들을 비판하고 예술이 실천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한다. 예술의 세계에 자기 유폐되는 유미주의와 같은 형식들을 거부함으로써 삶과 예술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예술을 실제생활 속에서 지양한다는 원칙을 내놓은 것이다. 즉 아방가르드는 실천이 미적인 것이 되고 예술이 실천적인 것이 되는 상태를 지향한다.둘째, 아방가르드는 유기적 예술작품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파괴하고 작품이 단편들로서 조립되는 형식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종래의 작품이 일종의 자연의 가상 을 창조하려고 한 데 반해서 아방가르드는 작품이 인위적인 구성물이고 제작물임을 알리기 위한 수단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아방가르드에서는 비유기적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이 발전한다. 작품의 부분들이 전체와 유기적 관련을 맺음으로서 총체성의 살아 있는 상을 제시한다는 관점을 거부하고 예술의 재료를 그 구체적 기능연관에서 분리시키고 일탈시킴으로써 그 재료들에 의해 재구성된 전체가 어떤 통일성의 원칙 아래 놓인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무관한 단편들의 조립 일 뿐임을 드러낸다.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부분과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는 관념이 거부될 뿐만 아니라 부분은 전체를 위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는 관념이 거부될 뿐만 성이 상실된 것이다.표현주의 문학에서 사물의 세부적인 시공간적 관련성이 조성되지 않고 커다란 윤관과 선이 강조되면서 간결한 형식이 채직된 것은 시각, 청각과 같은 지각적 요소가 아니라 정신의 눈이 중요시됐기 때문이다.표현주의는 정신의 눈에 의해서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 인간의 내분에서 형성된 열정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을 중시했다. 또한 문체적으로 논리성보다는 비논리성이 두드러지고 평이한 서술보다는 직설법과 영탄법이 자주 쓰이며 사물에 대한 평면적인 파악보다도 동적이고 입체적인 파악이 현저해진 것은 정신의 눈과 폭발적인 감정의 표현을 중시한 데 따른 것이었다.(1) 미래주의1918년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자 곧 유럽의 지성인들은 과거의 시대가 멀어져가고, 인간의 지성이 쌓아올린 모든 유산들과 전통들이 전쟁으로 인류를 몰아갔음을 통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철학은 전통적인 인간 이해에 큰 변혁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당시의 예술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부르조아적인 모랄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기독교도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운 지적 분위기가 이루어진다. 문학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과거의 소재와 형식을 버리고 현대에 맞는 미적 가치를 이룩하려는 모더니즘적인 지적 도전이 계속되었다.모더니즘은 19세기 보들레르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아폴리네르에 이르러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적극적으로 탐구되고 실험된다. 또한 그는 새로운 정신 이라는 글에서 진실은 숭고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경이야말로 모든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 신현숙, 초현실주의 , 서울:동아출판사, 1992, p.16에서 재인용.고 주장하여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자신도 아방가르드라는 흐름에 휩싸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든 예술계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충실,범주, 기술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술가가 그것을 미술이라고 간주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라는 것이다.다다 운동은 모두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은 인간정신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예술가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리하여 1924년의 다다 운동에 이어서 초현실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그것의 주요 정신은 의식적�이성적 측면을 무시하고 무의식적 측면을 중요시하여 상상력을 자유롭게 작용시키는 데에 있었다.다다는 일상세계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했다. 그리고 이것은 악순환으로 빠져버려 거기로부터 탈피해야만 되었다. 결국 새로운 질서에의 요구가 일고 다다이즘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초현실주의는 다다가 남긴 폐허 속에서 건설을 시작하려는 긍정적인 행동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3) 초현실주의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운동의 정식 출발은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 간행한 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이성에 의한 어떠한 제한도 없고 미학적 또는 도덕상의 어떤 선입감에서도 자유로운 사고를 표현하기" 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에 의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현실을 초월한 꿈이나 잠재의식의 세계를 해방하여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려 하였던 것이다.프로이드의 이론을 원용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이성은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만 무의식 혹은 초현실은 조작된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고 보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최면상태에서의 글쓰기(자동기술)가 오히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동기술이란 꿈꾸는 자가 손이 가는 대로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표출해나가는 듯한 입장에서 작품을 써나가는 창작방법이다.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surrealism)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19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문학, 예술 운동이다.문명의 속박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이성의 횡포로 억압되어 왔던 무의식의 원칙이라 볼 수 있다. 표현주의가 모든 사물의 내면적인 것을 표출하는 것을 중심과제로 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즉 명칭상으로 보더라도 인상주의까지가 외계로부터 받은 인상(eindrunk)을 소극적으로 재현한다고 해서 impression으로 표현하고 표현주의는 자신의 내부의 부르짖음을 표출(ausdruck)한다고 해서 expression(ism)이라 하는 것이다. 물론 이상과 같은 인간성의 회복이라든가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는 경향은 일찍이 그리스 시대에 싹텄던 것이고 18세기 계몽주의에 와서도 많이 강조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표현주의는 자연과 관념의 세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점에서 계몽주의의 절정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표현주의는 인간을 온 우주의 핵심적 위치에 놓고 모든 창조의 중추적 구실은 인간이 한다는 전제를 세계관으로 삼고 있다.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인간관을 정립하고자 했으며 새로운 형의 인간상을 추구하게 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인간상이란 기존의 전통을 전면 부정하고 오로지 내면에 충실한 전인적 삶을 영위하는 존재를 의미한다.전통을 전면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와 인간상을 창조해내자니 자연히 기존의 예술형식은 타파될 수밖에 없었고 내면세계와 원초적 세계를 표출할 수 있는 혁명적 양식이 대두케 된 것이다. 가령 쉔베르크의 12음기법이라든가 브레히트의 서사극론 등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은 개혁적이고 추상예술로서의 과감성 등도 그런 소산의 하나라 볼 수 있다. 표현주의는 이제까지의 유미적 문예가 갖는 도덕적 가치관과 미의 개념을 대대적으로 혁신시킨 문예사조이다. 따라서 권위주의적인 고정관념과 전통에 젖어 있던 계급의식의 타파와 함께 인간의 자아의식을 확립시켜 나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본 사상은 밀어닥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아울러 개인중심적인 서구문화의 핵심 단위라 할 개아(個我)의 개념이 더욱 확고하게 이룩된 셈이다.표현주의 문학운동의 선구자들 중에는 도스토예프스키, 철학자 니체, 스웨덴의 극작가 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세계1. 서론낯선 현실과 상상력을 가득 실은 미확인비행물체가 우리 주변을 선회할 때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은 신경질적인 증오감을 담아 그를 사이코 나 백해무익한 감독 이라고 비난했다. 김기덕 자신은 이를 제도권이 비제도권에 대해 갖는 불안 이라고 부른다. 그는 홍상수 이창동 등 지식인 취향 의 감독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고 각각 제도권 과 비제도권 이라고 명명했다. 이념이나 미학의 차별성을 천명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자신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간접적 술회이기도 할 것이다.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17세부터 공장에 다녔던 이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1990년 비행기 삯만을 마련해 프랑스로 떠나 2년간 그림을 그려 팔면서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른바 정상적인 제도 교육의 수혜자가 아니다. 그러니 제도권 의 감성과 논법은 주변 혹은 외부로 떠돌았던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불편할 게 분명하다.김기덕은 또한 1996년 <악어>로 데뷔할 때까지 영화에 대해서 배우거나 본 적이 없다. 도리어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영화에 대해 배우고, 배우는 동시에 실험을 감행한다. 이 때문에 그의 영화는 기본기나 미학적 완성도와 관련한 공격에도 쉽게 노출된다. 그는 다시 제도권을 향해 김기덕이 어설프다는 사실이 그들로서는 너무나 다행일 것 이라는 독설을 내뱉는다.그러므로 김기덕 영화를 둘러싼 대립이 생산적으로 되려면, 그 영화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를 두고 다투기보다는 오히려 영화의 기원으로 회귀하여 우리가 영화 혹은 현실이라 불러온 것의 경계와 실제를 다시 질문해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김기덕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변인 혹은 사회부적응자라고 말한다면 감독 자신의 삶도 그러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유년시절은 기이한 에피소드들로 엮어진 아픈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1) 김기덕김기덕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산골마을에서 동네 아이들의 팔을 부러뜨린다든지, 이상한 전자 장비를 만들어서 보여준다든지 하는 일들을 곧잘 저지르던 평범준히 초대를 하는 걸 보면 무언가 있음에 의심치 않을 수 없다.2) 주요작품2006년 타임 (Time)2005년 활 (The Bow)2004년 빈 집2003년 사마리아2003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Spring, Summer, Fall, Winter... And Spring)2002년 해안선 (The Coast Guard)2001년 수취인 불명 (Address Unknown)2001년 나쁜 남자 (Bad Guy)2000년 실제상황 (Real Fiction)1999년 섬 (The Isle)1998년 파란 대문 (Birdcage Inn)1997년 야생동물 보호구역 (Wild Animals)1996년 악어2005년 활 (The Bow)2004년 빈 집2003년 사마리아2003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Spring, Summer, Fall, Winter... And Spring)2002년 해안선 (The Coast Guard)2001년 수취인 불명 (Address Unknown)2001년 나쁜 남자 (Bad Guy)2000년 실제상황 (Real Fiction)1999년 섬 (The Isle)1998년 파란 대문 (Birdcage Inn)1996년 악어2005년 활 (The Bow)2004년 빈 집2003년 사마리아2005년 활 (The Bow)2004년 빈 집2003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Spring, Summer, Fall, Winter... And Spring)2003년 사마리아2001년 수취인 불명 (Address Unknown)1999년 섬 (The Isle)2. 본론1) 파란대문바닷가에 위치한 파란 대문의 '새장 여인숙'에 어느 날 한 여자가 찾아온다. 진아라는 이름의 23세 창녀. 숙박업과 함께 매춘 알선도 함께 하는 새장 여인숙에는 진아와 동갑내기 여대생 혜미가 살고 있다. 말이 없고 조용한 성품의 진아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남동생 현우는 호감을 갖지만, 혜미는 노골적으로 진아를 경멸하면서 진아가 보이는 일련의 호의들을 무시한다.때 천한 일이고 더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창녀라고 해서 그녀를 인간적으로 쓰레기 취급받는 것은 억울하다. 누가 처음 날 때부터 고상한 대학생이고 천한 창녀였던가.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그는 희생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좀 더 똑똑하지 못해서 자신을 지킬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신분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왜냐면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만들어 놓은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다 외면해 버리고 이상한 사람으로 내던져 버리는 세상은 과연 옳은 세상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혜미의 아버지는 진아와 섹스를 한다. 그러면서 '너만 벗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다 벗고 사는 거다'라고 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아니 우리가 일어나길 싫어하는 일들이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막 헤짚어 놓는다. 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많은 비평가로부터 비난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니아를 갖는 것일 게다. 그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말 좋은 영화 아니면 정말 나쁜 영화라고.진아의 애인이라 자청하며 그녀에게 늘 돈을 빼앗는 파렴치한 인간이 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진아가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발생한다. 혜미는 진아가 쓰던 방에 가서 그녀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그녀의 가족들을 그린) 그녀가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하는지 혜미의 가족들을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혜미는 진정으로 진아를 이해하게 되고 혜미가 진아에게 꽃 핀을 꽂아줌으로써 둘은 화해하게 된다. 그런데 진아와 혜미가 화해하게 되는 것에서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억지로 끼워 맞추기 식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눈 내리는 밤에 손님이 여인숙에 들어오고 진아 대신 손님을 방으로 안내한 혜미는 눈으로 공을 만들어 떼구르르 굴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진아를 부르지 않고 자신이 손님의 방으로 들어간다.그렇게 경멸하던 일을 혜미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론 념한 듯한 현식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좌대에 짐을 푼 현식은 고뇌 끝에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희진은 좌대 밑으로 잠수하여 현식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 자살을 막는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 사이엔 묘한 교감이 생긴다.낚시터에 검문을 온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마침 그 낚시터에 은둔 중이던 또 다른 수배자 하나가 도주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그 광경을 목격한 현식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상황을 참지 못한 현식은 낚시 바늘을 입에 넣고 자해를 시도한다. 희진은 경찰을 따돌려 현식을 구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현식을 섹스로 치유한다. 희진의 섹스는 현식에게 있어 정신적 불안과 육체적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이 된다. 그날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지만, 현식은 희진의 집착적 사랑과 공간적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현식은 희진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관광객이 마침 시체를 버린 곳에 시계를 떨어뜨려 잠수부를 불러와 시체를 찾게 되고 둘은 어디론가 떠난다.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음산한 분위기이다.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여자는 낚시터에서 잡부로 생활한다. 보트로 다른 곳의 낚시터까지 태워다주기도 하고 커피배달, 식사배달, 그리고 잠도 잔다.애인을 죽이고 자책감에 밤마다 자살을 꿈꾸는 전직 경찰관이 낚시터에 숨어 들어와 생활하고 있다. 여자는 철사로 자그마한 철 그네를 만들어준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비 내리는 날 둘은 낚시터 집에서 나와 술을 나눠 마신다. 갑자기 남자는 욕정을 발산하기 위해 난폭하게 그녀에게 덮친다. 그녀는 그것이 그가 그녀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의 섹스를 거부한다. 대신 다방내지를 불러 그에게 보낸다. 하지만 남자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묵묵히 철사로 자전거를 만든다. 보통 남자들과 다른 그의 모습에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철사로 자전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 다방내지는 삐죽한 철사로 부드러운 자전거를 만내고 핥아준다. 이제 둘은 한사람의 집착, 편협한 사랑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둘만의 집에 노란색 페인트칠을 한다.그리고 여자는 배에 있던 보트를 노란색 집에 장착하고 낚시터에서 멀어져 간다. 푸른 바다의 노란 집 한 채가 둥둥 떠 있다. 잠수에서 깨어난 남자. 노란 집은 오도가도 없고 여자는 배에 나체로 시신이 된 채 죽어 있다. 모든 것은 깨어나 보니 꿈인 듯 하다.일방적인 사랑, 소유와 집착은 상대를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단지 꿈일 뿐이다라는 것을 감독은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기존의 그의 영화에서 보여주던 신분차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는 여기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명필름과 손을 잡아 제작한 영화라 그런지 시각적인 것에 한층 돋보인다. 그러나 감독 자신의 영화에서는 다소 벗어난 느낌이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3) 나쁜 남자사창가의 깡패 두목인 한기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대생 선화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선화는 허름한 한기를 싸늘하게 쏘아보고, 한기는 홧김에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한다. 선화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한기는 계략으로 선화를 창녀촌으로 끌어들인다. 한기의 계략에 말려들어 창녀가 된 선화의 방 거울은 밀실의 유리와 연결되어, 한기는 밀실을 통해서 매일 밤 서서히 창녀로 변해가는 선화를 지켜본다. 치욕과 공포에 찌들어 가는 선화를 지켜보면서 한기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선화는 그녀를 좋아하는 한기의 부하 명수로 인해 한기의 계략에 대해 듣게 되고, 명수를 이용해서 창녀촌을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집 앞에서 한기에게 잡혀 다시 창녀촌으로 끌려온다. 창녀촌의 일상에 젖은 선화가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한기를 밀어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을 즈음 한기는 숙적인 달수파의 공격을 받는다. 이에 한기 부하인 정태는 이에 대한 복수로 달수를 죽이지만 한기가 정태를다.
윤동주의 저항정신1. 서론저항시인이란, 시 속에 작가의 저항 의지가 내포되어 있고, 현실에서의 삶 또한 작가가 표현했던 저항의 의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며 살았던 시인을 지칭한다.“작가”중심으로 그의 성격, 그와 관련된 글 등 개인적인 자료의 분석을 기본으로 하되 작 품 분석 및 우리 조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들을 비교 자료로서 첨부하였다.2. 기존 연구 소개사실 일제 말 암흑기를 겪은 시인이 윤동주 하나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겪고 그 시대에 살아 남았다는 것과 그가 시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문학적 업적과는 별개의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암흑기의 문학을 정리해 본다면 그는 그 시대의 문학의 사명을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짊어지고 나간 시인임을 알게 된다. {) 김우종, 『윤동주연구』,『문학사상사』,1995, p 139...윤동주 체포의 사유가 된 사상 불온, 독립 운동 이라는 일제의 죄목은 어떤 적극적인 저항을 가리키기보다는 일제 경찰의 탄압적 수법에 쓰인 일반적 의미 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김흥규씨의 견해는 그럴싸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윤동주에게 괴로웠던 것은 당대의 사회가 넒은 의미에서 자기 완성의 추구를 허용하지 아니한다는 점이었고, 그 결과 그는 현상 타파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직접적인 의미의 애국심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사이에 갈등을 느낀 경우도 적지 않았다 {) 김우창, 『윤동주연구』,『문학사상사』,1995, p 125, p 170{3. 견해의 대립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저항) 평생 절대적 양심의 구현자로 살아가겠다.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저항) 부정적 의미. 일제 치하에서의 어둡고 암울한 상황.나는 괴로워했다비저항)시인의 개인적 마음자세 (1~4연)1 양심에 대한 필요 이상의 결벽증 2 무언가 속죄하고자 하는 마음 (속죄양의식)3 티 없이 살고자 하는 아름다운 심성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저항) 희망적 의미. 즉 조국의 광복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저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전문결론: 저항){) 저항) 이건청,『윤동주』,『건국대학교출판부』,1994,p72.부정한 가치가 권력의 힘이 되어 지배하고 있는 시대상황 속에서 청명한 신념 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작품.비저항){) 비저항) 오세영,『윤동주연구』,『문학사상사』,1995,p337적극적 행동 없이 다만 현실에 대한 패배를 감상적으로 시화한 작품.4. 주장과 근거1) 발표하지 않은 시는 저항시일 수 없다.작가 의식이나 시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문학 작품에 있어서의 저항이란 그 작품이 발 표된 시대적 상황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윤동주 시의 대상은 일제를 의미하지만 윤동주의 작품이 세상에 발표된 것은 해방 후인 1948년의 일이므로 그의 시가 저항시가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 작품의 궁극적 완성이란 작품과 독자와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전달적 언어기능이 중요한 저항시를 독자에게 발표하지 않았 다는 점은 그 시가 저항시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이 아무리 저항적 이어도 그 저항해야 될 시대가 지나가 버린 다음에 발표된 시일 경우, 그것은 한낱 사회 학적 또는 역사적 기록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2) 성격적 면에서도 윤동주는 독립운동과 같은 과격한 투쟁의식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다음은 어릴 때부터 윤동주와 가장 친근했고 또한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았던 친구들의 글이다.“그(윤동주)의 저항 정신은 불멸의 전형이다”라는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얼른 수긍하 지 못한다. 그에게 와서는 모든 대립은 해소되었었다. ······ 그는 민족의 새 아침을 바라고 그리워 하는 점에서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것을 그의 저항 정신이라 부르는 것이리라.-문익환, 중에서동주는 깊은 애정과 폭 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자기는 회의와 일종의 혐오로 자신을 부정하는 괴벽한 휴머니스트다. 남에 대한 애정이 자신에 대한 자학으로 변모하는 그의 인생관 이······.-장덕순, 중에서이러한 윤동주의 성격을 미루어 보음의 의미는 식민지 인텔리의 불운한 죽음에 더 가깝다고 본다.3) 윤동주는 시대 상황에 무관심했다.다음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윤동주의 부끄러움이 일제의 탄압이나 시대적인 비극에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우리 기차는 느릿느릿 가다 숨차면 가정거장에서도 선다. 매일같이 웬 여자들인지 주룽주룽 서 있다. 제마다 꾸러미를 안았는데 예의 그 꾸러민 듯싶다. 다들 방년(芳年)된 아가씨들인데 몸매로 보아 하니 공장으로 가는 직공들은 아닌 모양이다. 얌전히들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판단 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하나 경망스럽게 유리창을 통하여 미인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중에서윤동주의 부끄러움이 시대상황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는 간이역 플랫폼에서 굶주림에 지 쳐 간도로 사할린으로 이민을 떠나는 이농의 대열에 웅크리고 서 있던 여인들의 모습을 정 확히 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생활에 지친 소녀의 아름다운 몸매 였다. 이것은 그의 부끄러움이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4) 윤동주는 저항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았다.송몽규 (윤동주의 고종사촌)는 1939년 2월경, 연희전문학교의 동급생인 윤동주, 백인준, 강처중 등 수명과 함께 조선 문학의 동인지를 출판할 것을 모의하여 동년 8월에 이르기까지 학교 기숙사 또는 다방에서 수차에 걸쳐 민족적 작품의 합평회를 열어 서로 민족의식의 양양과 조선 문화의 유지에 힘썼고, 그 동인지의 간행이 불가능하게 되자 연희 전문학교 동창회지 文友(문우)의 간사가 되어 윤동주를 권유하여 뜻을 함께 함으로써 조선 문화의 유지와 민족의식의 양양에 힘썼다 3)판결문을 곰곰이 살펴보면, 혐의는 결국 모국의 친구들이 이역에서 서로 만날 때마다 민족의 앞날을 근심하고 문화를 애기하고 책을 주고받고 앞날을 기약했다는 것이며, 뚜렷한 신념을 갖고 했으며, 판결문의 서두에서 끝까지 두 분이 얼마나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독립을 갈망했는지 알게 한다. 그러나 결사도 행동도 하지 않은, 무고한 젊은이를 움’의 이미지가 등장 하는 작품들이다 .이것을 통하여 그의 부끄러움이 사회보단 윤동주 자신에게, 적극적이기 보단 소극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신앙적, 개인적, 도 덕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자아의 각성과 치욕스런 존재의 자각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만 24년 1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지나온 삶에 대한 참회(살아온 삶이 욕된 삶임을 반성)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 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오늘의 고백에 대한 미래의 참회(순수, 양심에 도달하는 때에 대한 결의와 기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끊임없는 자아성찰{3)권일송편저,윤동주 평전,민예사,1984,p2594)권영민엮음,윤동주 연구,문학사상사,1995,p555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랑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서 나타나온다.고독하고 슬픈 자아상(인간적 한계를 자각한 비극적 자아)- 전문(나)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햇빛: 이상이나 희망의 이미지십자가: 시적 화자의 종교관이나 역사관 또는 인생관과 관련된 목표꼭대기: 정의로운 삶의 추구가 극한점에 다다랐음=> 화자가 추구하는 삶이 이제 극한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삶의 목표와 시적화자의 거리감, 단절의식. 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이 내 포되어 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정의로운 삶의 추구가 어려움)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시인의 고독함, 신념과 행동의 괴리감에서 고민하는 모습.(시인의 나약하고 자조적인 행동을 볼 수 있다.)괴로왔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존재해 있음을 암시)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돌담은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의 세계이지만, 화자는 그곳에 도저히 도달 할 수 없음을 나타냄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절망적 상황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부끄러움은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줌)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6,7연)(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본질적 자아를 찾으려 함)- 전문(가)-은 젊은 날에 대한 반성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반성 이 시대와 관련되었 으리라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나)-는 윤동주의 종교관과 인생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윤동주는 철저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는 그러한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징표로서 관습적 상징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고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 를 뜻하는 개인적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결국,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신앙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다)-은 인생이라는 길 을 걷는 시인이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 방황함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여기서의 부끄러움은 윤동주 자신의 인생의 문제로 사용된 것이다. 이로써 볼 때, 그의 부끄러움은 일종의 휴머니즘에서 기인된 속죄 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오세영 ,윤동주 연구,문학사상사,1995,p 3815)6. 결론윤동주는 1940년대의 식민지 치하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 시인이다. 그는 작품 에서 내적으로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현실 속의 자아가 절대적인 순수를 찾지 못하는 것 에 대한 강한 부끄러움으로 매우 괴로워하는 모습을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서론독일은 국민의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사회보장제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이고 지금도 높은 수준의 복지정책을 가지고 있다. 사회보장의 시초는 중세에 광부들이 사고 당한 어려운 처지의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의 금고를 설립한 것이다. 이후 비스마르크는 사회법을 만들어 노동자의 복지향상 약속했는데 이는 산업화로 인한 산업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의료보험(1883년) 산재보험(1884년) 연금보험(1889년) 도입되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법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국내총생산의 약35%를 사회보장제도의 비용으로 사용하며, 특징으로는 자주관리 원칙(노사 간 협의에 의해 결정), 집단적 자조의 원칙, 능력주의 원칙이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종류로는 연금보험·의료보험·사고보험·실업보험 등과 같은 보험제도와 자녀의 양육이나 교육을 돕는 가정복지제도, 생활보호제도가 있다. 연금제도는 지출규모가 가장 큰 보험으로 전체 사회보장제도 비용 중 30%를 차지한다. 직업종사자들이 퇴직 후 별 어려움 없이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험료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고 나머지는 연방 보조금(약 17%)에 의해 충당한다. 의료보험은 독일의 거의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사설보험을 제외한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에서 보험료는 피보험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해마다 의료보험금 지출이 크게 늘어나 1991년 의료보험 서비스 항목이 제한되어 피보험자의 부담 확대되었다. 사고보험은 근로사고와 직업재해를 당한 피보험자를 보호하고 도와주며 법률상 강제보험이다. 보험료는 사용자가 100% 부담하며, 대학생, 초·중·고등학생, 유치원 원아들도 사고보험의 혜택 범위에 포함되고, 사고 당사자의 사고 전 총수입, 직업과 관련된 질환 및 손실의 정도에 따라 보험료가 결정된다. 실업보험은 일자리를 잃었을 경우 피보험자의 생계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보험이다. 보험료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며, 실업수당은 대기기산 채운사람(지난 3년동안 12개월 이상 일을 했고 보험료를 납입한 사람)만 받는다.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무기한으로 액수가 적은 실업보조금 받는다. 교육진흥비는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기 위해 장학금 형태의 보조금과 융자로 지급한다. 자녀 양육비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체제로 자녀가 16세까지 지원한다. 생활보호제도는 무자력, 저소득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로 생계유지, 장애, 질병, 노령과 같은 특수한 처지의 극복에 도움을 준다. 독일 사회보장은 경제 불황과 고실업으로 인한 재정난과 사회보험 중심의 차별급부 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갖는다.1. 사회보장제도의 정의독일 국민의 사회보장제도는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들에 의해 광범위한 연계망을 구축하고 있다. 사회보장체제는 보험(Versicherungsprinzip), 부양(Versorgungsprinzip), 보호(Fuersorgeprinzip)라는 세 가지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2. 독일의 사회보장 제도의 성립과 역사적 배경1) 초기의 사회보장제도(1) 설립배경독일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시초는 광부들이 사고를 당한 어려운 처지의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의 금고를 설립하였다. 당시의 제국총리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는 점진적으로 사회법을 만들어 나갔다.이는 격화되어 가는 노동자 운동의 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입법으로 다른 산업 국가들에게 표본이 되기도 한 현대적인 사회보장의 기틀이 마련되었다.(2) 최초도입시기1883년 질병보험법,1884년 근로자 재해보험법,1889년 양로 및 폐질 보험법등이 제정되었는데, 이들 법이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법 이라고 할 수 있다.기존의 사회, 정치질서 속에서 산업화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비스마르크의 이러한 사회정책은, 진정한 사회개혁, 즉 자원의 공정한 재분배라든가 또는 인권 및 인간 존엄성의 확보차원과는 사실 거리가 먼 것 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회보험 제도는 시대와 상황에 따른 변화와 개선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오늘날 독일의 사회정책, 특히 사회보장제도로 이어지게 된다.(3) 비스마르크 시대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 노동자의 불만을 해소하고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적 질서에 노동 자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 질병보험, 재해보험, 폐질보험제도를 도입, 근로자만을 위한 정책.(4) 빌헬름 2세 시대노동자보호법의 발전과 동시에 노동자의 경영참여권을 제정 1891년 기업법 을 3회에 걸쳐 개정.(5)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사회보장체계가 성숙한 발전을 하는 전환기, 외형적으로 독일 사회보장의 체계가 완성.(6) 히틀러 시대(1933~1945)노동시장정책에 있어 많은 변화. 하지만 이 시기의 사회정책은 독일 사회정책 발전사에 있어서 퇴보의 시대와 탈 정책화 및 탈정치화의 시대로 규정되며, 많은 비판을 받게 됨.2) 2차 세계대전 이 후의 독일의 사회보장 (서독중심)(1) 제 1차 연금개혁의 완성기- 연방의회는 1949년부터 1953년에 걸친 제1회기에서 전쟁희생자 원호를 위한 연방원호법, 타국 으로부터의 추방에 의한 피해나 전쟁에 의한 물적 손해 등에 대한 자치관리권 회복의 자치관리법, 사회재판소등 사회보장의 기초조직에 관한 입법이 제정- 제2회기인 1953년부터 1957년까지에서 사회보장개혁을 비롯한 질병보험이나 아동수당의 분야에 서도 개혁이 실행- 1955년에 발표된 슈라이버 계획(2) 제 2차 연금개혁의 시기- 1959년 제2차 아동수당법의 개혁에 이어 1961년에는 아동수당금고법이 마련되었으며 급여개선이 이루어짐.- 1969년 이후 질병보험개혁- 1972년 제2차 연금개혁(3) 장기경제침체하의 사회보장- 새로운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간 조정에 관한 개혁(4) 1980년대의 사회보장- 1988년 12월에는 질병보험 구조개혁법 이, 1989년 12월에는 연금개혁법 이 통과되어 사회보장의 급여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함(5) 통일 이후의 사회보장- 동독은 서독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회부조체계를 그대로 도입, 통일 이후에 사회보장의 상황은 더욱 악화3. 현재사회보장제도1) 사회보험의 종류와 내용{종류/운영내역도입 시기급여의 내용실시기관재 정현물급여현금급여연금보험1889년의료부조직업장려부조피보험자 연금유족 연금사망일시금 등연금공단피보험자 50%사용자 50%질병보험1883년상병부조출산부조경영부조가사부조상병수당출산수당질병금고피보험자 50%사용자 50%재해보험1884년치료 직업부조피재자수당피재자연금유족 급여직업협동조합사용자 100%고용촉진(실업보험)1927년직업훈련 촉진계속훈련 촉진전직훈련 촉진직업 상담직업 소개실업 수당실업보조금연방노동공단피보험자 50%사용자 50%4. 독일사회보장제도의 특징- 사회보험의 자주관리 원칙으로서, 사회보험의 운영은 노사 간 협의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다.- 집단적 자조의 원칙-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높은 효율성을 외국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집단적 자조의 원칙5. 독일 사회보장 제도의 종류1) 보험료에 의한 사회보장제도(1) 연금보험- 연금보험은 지출규모가 가장 큰 보험으로서 전체 사회보장제도 비용 중 약 30%를 차지한다.- 목적: 연금보험의 목적은 노령자, 노동불능자, 유족들의 최저 생계유지 보장- 대상: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직장으로부터 퇴직한 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 중요한 연금 네 가지: 직업불능연금, 생계불능연금, 유족연금, '일반'연금- 연금보험의 재정은 직장인의 경우에 대부분 고용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보험금을 통해 조달되고, 나머지는 연방 보조금(약 17%)에 의해 충당(2)의료보험- 독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음- 1991년 1월 1일 구동독에서는 의료보험체제가 서독의 모범에 따라 도입- 사설보험을 제외한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에서 보험료는 피보험자와 고용주의 보험료에 의해 절반씩 조달- 모든 피보험자는 등록된 보험의사와 치과의사들 중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1989년 보건제도를 법률적으로 개혁하려는 이른바 '보건개혁법'이 발효, 1989/90년에 몇 가지 규정이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