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I한국 - 칠레FTA 평가와 대응전략{FTA : Free Trade Agreement- 국가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시키는 협정교 과 명 // 교 수 님개 인 정 보 썼 던 공 간{순 서{{서 론본 론 I1. 칠레와의 FTA체결 배경 및 절차2. 왜 칠레인가?본 론 II1. 칠레와의 FTA 체결에 따른 영향2. 칠레와의 FTA 체결에서 아쉬운점과 대응방안결 론참고문헌서론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몇몇 나라들은 쉽게 다른 나라와 FTA 체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쉬운 예를 들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국가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적 특징이라 하면 농업부문의 취약을 들 수 있다. 우리와 일본의 농업부문은 높은 토지비용과 인건비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취약하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UR협상의 결과에 따른 무역정책의 일반적인 틀이 붕괴되어 농업부문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UR협상은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 둔 비관세장벽을 관세화 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산업발달 수준을 감안해 관세율을 반영시켜 두었으나 FTA는 이러한 여건에 대한 반영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는 FTA를 통해 이익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FTA를 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1995년 WTO 협정 체결이후 그 어떤 국가도 이제는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독자 생존이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들은 세계 시장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장벽을 원칙적으로 없애는 세계적인 흐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자유무역을 위한 대외 개방은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의 차원이 되었고, 특히 대외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샌산(GDP)의 70%에 이르는 한국으로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 더욱더 시장개방에 앞장서야만 하게되었다.지금까지 한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수혜국으로서 다자주의에 의존해온 만큼 지역경제 통, 통관절차, 위생검역 조치, 기술장벽, 경쟁정책, 분쟁해결 등 협정문의 모든 분야에 합의를 보았다.- 2003년 2월 15일 정식서명(서울). 의 의- 우리나라의 첫 FTA·세계 주요 무역대상국과의 FTA, 그리고 아태지역 경제통합 움직임에 대비해 나가야 하는 우리나라 FTA 추진의 시발점임- 태평양을 사이에 둔(Trans-Pacific) 국가간의 첫 FTA·유망시장인 중남미로 우리 기업의 활동반경을 넓히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데 필 요한 통상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음·남미권과의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 중 첫 성공사례- 통상정책 수단의 다원화{·WTO 체제의 다자간 협상을 통한 무역자유화와는 별도로 우리 스스로 무역자유화 상대국을 선택하고, 우리 실정을 적절히 반영한 무역자유화방식(FTA)을 채택함- 상호 호혜적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FTA·쌀, 사과, 배 등을 동 협정의 예외품목으로 하여 농업부분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 였으며 승용차, 화물자동차, 컴퓨터 등 대칠레 수출의 67%를 차지하는 품목에 대해 발효즉시 관세철폐를 확보하였음·칠레로서는 아시아국가와의 FTA를 최초로 성사시킴으로써 이 지역으로의 교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우리 또한 칠레를 넘어 중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음- 우리의 대외개방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대외 신뢰도 제고·우리의 대외개방 및 내부 개혁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대외신뢰도를 크게 제 고함2. 왜 칠레인가?1998년 11월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뒤, 첫 대상국으로 칠레가 선정되었다. 그 후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결렬위기{2) FTA 협상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결렬위기를 맞는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금융시장개방에 대한 마찰(통상능력 부재)과 농산물 개방에 대한 반대시위(농민단체의 실력행사) 등으로, 한-칠레간 FTA 협상은 3년의 산고를 거쳐야 했다.를 맞으며 논란이 계속되었다. 이런 문제점{) 문제점. 강력한 정책 메커니즘 부가장 민감한 쌀, 사과, 배를 자유화 대상에서 완전 제외함으로써 우리 농업계의 입장을 반영하였다.- 또한 우리측의 농산물 고관세 및 이중관세 구조로 인해 관세 철폐가 어려운 입장임 을 고려하여 고율관세 민감품목인 마늘, 양파, 고추, 분유, 오렌지, 참깨를 포함한 370 여개의 농산물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 문제를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종료된 이후 논의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에 대해서는 일정량의 쿼터를 허용하거나 관세를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 하였다.- 한편, 농산물에만 적용할 수 있는 발동이 용이한 양자 세이프가드를 협정문에 규정함 으로써 예상치 못한 수입급증에 대비한 조치도 강구하였다.{. 당초 예상보다 미흡한 경제적 효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한-칠레 FTA가 체결될 경우 제조업 전체의 대 칠레 수출은 6억3천600만달러, 수입은 2억500만달러가 각각 증가되어 4억3천100만달 러의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것으로 추정되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전품목이 즉시 무관세화되는 상황을 가정한 결과라는 점을 고 려할 때 주요 품목이 양허 예외품목으로 지정되고 공산품의 단계적 무관세화 기간이 다소 길어짐에 따라 실제 효과는 당초 기대에 못미칠 전망이다.- 주요 수출품목인 무선전화기와 컬러TV, 승용차, 화물차 등이 즉시 무관세화 품목에 속한 것은 잘된 일이지만 타이어, 철강, 섬유 같은 공산품은 최고 13년에 걸친 무세 화를 추진키로 해 이들 품목의 경우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편 한국은행은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칠레와 FTA 체결시 수출은 연 3천만달러, 수입은 1천만달러 증가해 연 2천만달러의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 KIEP 추정치와 큰 차이를 보여 경제적 효과에 대해 다소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협상타결로 예상되는 사항- 한-칠레 FTA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비교열위 상품인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비교 우위 상품인 공산품에서의 이득을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점 부분에서 영향력을 떨친다면, 당연히 칠레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는 커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영향력 또한 커지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칠레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결과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효과이다. 이에 이번 협상에서 칠레로부터 금융시장 개방을 얻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결론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시장개방화 지역블록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올해 10월 처음으로 칠레와 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GATT와 WTO체제의 다자주의 아래에서 이런 자유무엽협정에 소흘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이에 발맞추어 나가고 더 나아가 세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그동안 칠레, 뉴질랜드, 멕시코, 태국등과 자유무엽협정 체결을 논의해 왔으며, 그 첫 결과로서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 하다. 다른 여러나라들은 이미 많은 지역공동체를 형성중이거나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이번 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독자생존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FTA와 같은 무역협정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은 분명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영토나 자원등의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내부에서 경쟁력을 키워 그들을 따라 잡는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국내시장만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과 많은 교역을 하여야 한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하여 경제대국들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를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세계시장을 잘 이용하여야 하며, 여기서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FTA등 지역경제 공동체에 적극 참여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앞으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 EU 등과 같은 거대 경제권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980년대 중반이후 아세안 각국이 독자적인 산업정책을 추구하면서 역내국가간 경쟁이 가열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따른 회원국간 협조체제 결여문제를 해결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경제발전단계와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간 또는 공정간 분업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넷째,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아세안이 세계각국의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수 있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엔고에 따른 가격경쟁력의 향상으로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아세안 경제는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달성하였다. 물론 아세안 경제는 고도성장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사회 간접시설의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1990년대 초반에는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었으나, 1992년 하반기 이후 달러화의 약세, 저금리 추세, 저유가 등 신3저 현상이 나타났고, 아세안 각국이 인프라 부문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면서 1993년 아세안 경제는 1992년의 저성장에서 벗어나 또다시 두자리수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아세안 자유무역지대는 1971년 3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4차 아세안 경제성장회의에서 마르코스 필리핀 전대통령이 제안한 바 있으며, 1981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제2회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필리핀 정부가 향후 10년 이내에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였다.{그러나 1990년에 들어서면서 필리핀의 아세안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안, 인도네시아의 특혜관세협정의 활성화를 위한 공동유효특혜관세구상, 싱가포르의 성장삼각지대등 아세안 국가간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안되었다. 이러한 제안들은 아세안 각국의 경제협력 확대 필요성을 증폭시켰고 AFTA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특히 미국 Ford Foundation 및 화와이대학 East-West센터의 권유등으로 1980년대 말부터 아세안 무역자유화지대에 대한 검토 움직임이 재개되었으며, 1990년 10월 발다.
일 반 특 혜 관 세( 무 역 법 규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성 명 :제 출 일 :담당교수 :순 서I. 서 론가. 일반특혜관세제도의 개괄나. 조사의 목적II. 본 론가. 일반특혜관세제도(1) 연혁(2) 일반특혜관세제도의 대상품목 및 특혜폭(3) 일반특혜관세제도 공여의 제한(4) 수혜요건(5) 일반특혜관세의 활용절차(6) Form A 작성 및 발급나. 일반특혜관세제도의 경제적 효과다. 우리나라에 대한 공여국들의 최근 정책(1) EU(2) 일본II. 결 론I. 緖 論가. 일반특혜관세제도의 개괄일반특혜관세제도는 개발도상국의 수출확대와 공업화의 촉진을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원산지로 하는 수입품에 대하여 일반관세율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거나 또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관세상의 특혜제도를 말한다.여기서 일반적이라 함은 기존특혜기존특혜 : 기존특혜는 제 1차 세계대전 후 경제 블록화의 경향에 따라 발전한 특혜관세로서, 식민지를 보유하는 본국을 중심으로 식민지 및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독립국이 서로 특별히 낮은 율로 부과하던 경우의 관세를 말한다.가 수개 국가에 국한된 데 비하여, 일반특혜관세제도는 범세계적인 것임을 의미하며, 무차별적이란 지역통합·자유무역지역 및 관세동맹에 나타나는 역외국가에 대한 차별을 배제한다는 것으로, 일반특혜관세제도를 실시하는 국가가 그 수혜국에게 관세 또는 무역상의 대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특혜관세의 편익은 ① 경제가 개발도상 단계에 있는 국가로서, ② 특혜의 편익을 받기를 희망하는 국가 중에서, ③ 공여국이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국가에 대해서 공여된다.현재 실시되고 있는 일반특혜관세제도는 1968년 제2차 UN 무역개발계획회의UNCTAD :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 국제연합통상개발회의 또는 운크타드라고도 한다. 1964년개발도상국의산업화와 국제무역을 지원하고 심화된 남북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1971 품목리스트(negative listNegative list : 원칙적으로 수입의 자유화가 인정된 무역제도하에서 예외적으로 수입의 금지나 제한을 가하는 품목의 리스트(Positive list에 대응), 한국은 1967년부터 종래의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하였다.)를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일반적으로 각 공여국은 대부분의 공산품을 GSP 대상품목으로 하고 있으나 1996년 들어 캐나다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공여중지, 러시아의 승용차 및 일부 의류 등 상당수의 품목에 대한 공여중지, EU의 한국산 대부분의 폼목에 대한 공여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점차적으로 GSP 수혜품목이 축소경향에 있다.각 GSP 공여국별로 어떤 품목이 GSP 대상품목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하여는 각 GSP 공여국의 관세율표에 의하여 확인해야 한다. 각 공여국별 GSP 대상품목을 확인하기 위하여는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진흥공사, 각 시·도의 GSP 담당자에게 문의하면 된다.GSP 대상품목에 대한 GSP 특혜폭은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전체 공여국이 공산품에 대하여 완전 무세를 적용하고 있으며, 농수산품에 대하여는 노르웨이가 완전 무세를 적용하고 기타 공여국은 품목별로 관세를 인하하고 있다.(3) 일반특혜관세 공여의 제한일반특혜관세제도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때 관세상의 특혜를 주는 제도이기는 하나, 선진국으로서도 자국의 산업보호, 실업방지 및 관세수입 확보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무한정 관세상의 특혜를 공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GSP 공여국들은 특혜수입에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현재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보장조치(safeguardSafeguard : 특정상품의 수입급증으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하는 긴급수입제한 조치. 세이프가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하여 보완되어야 한다. ① 이해당사국인 수출국 수입국간의 사전협의 ② 국제조정기구 ③ 발동의 기준 ④ 제한조치의 한계와 방식 ⑤ 무차별의 원칙 ⑥개발도상국및 선의의 제 추출하였거나 수확된 산품과 이러한 산품으로부터 전적으로 제조된 상품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수입원자재가 투입되지 않은 1개 수혜국의 완전생산품은 원산지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수입원자재나 부품(원산지가 미상인 원료나 부품 포함)을 사용하여 제조·가공한 상품의 경우에는 생산과정에서 사용된 원료나 부품의 특성을 실질적으로 변형시키는 가공을 거쳐야 원산지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모든 GSP 공여국은 수입원자재의 '실질적 변형'의 원칙으로 가공도 기준과 부가가치 기준 중 하나를 채택하고 있다.① 가공도 기준가공도 기준이란 수입원자재가 수혜국의 수출품 생산과정에서 일정한 가공공정을 거쳤느냐에 따라 수혜국의 원산지 제품으로 인정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가공도 기준의 기본원칙인 수입원자재의 HS번호 10단위중 앞 4단위(Heading)가 일정한 가공과정을 거친후 생산된 수출품의 HS Heading과 달라야 하는 것이나 HS 4단위의 변경이 모든 경우에 수입원자재의 실질적 변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HS Heading이 같은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에 예외로서 list A와 list B가 있따.list A는 상기한 기본원칙에도 불구하고 즉, HS 4단위가 다르지 않더라도 (기본원칙의 반대) GSP 수혜자격을 인정하는 제조과정을 명시한 것이다. 따라서 list A상의 품목은 기본원칙에 추가하여 각 품목별로 list A상에 명기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나, list B상의 품목은 수입원자재의 HS 4단위가 수출품의 HS 4단위와 같더라도 list B상에 명시된 품목별 조건을 충족시키면 GSP 원산지 기준에 합당한 것으로 인정된다.GSP 원산지 기준으로 가공도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국가는 EU, 일본, 노르웨이, 스위스 등이다. EU와 일본의 경우는 1988년 HS제도 도입에 따라 list A와 list B를 구분하지 않고 이를 단일화시켜 품목별로 원산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② 부가가치 ulative Origin)제3의 개도국에서 수입된 원재료를 GSP 대상품목 수출개도국의 원자재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주로 지역경제블록 회원국간에 원자재 이전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② 공여국(수입국) 원자재 사용분 인정기준(Donor Country Rule)GSP 공여국의 원자재를 사용하여 생산한 제품을 동일한 GSP 공여국에 수출한 경우 공여국으로부터의 수입원자재를 수출국의 원자재로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5) 일반특혜관세의 활용절차가) GSP 대상품목 확인해당 수출상품이 GSP 공여국의 원산지 기준에 부합하는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GSP 수혜대상 품목이더라도 우리나라에 대해 GSP 수혜제한이 가하여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나) 원산지 기준확인해당 수출상품이 GSP 공여국의 원산지 기준에는 가공도기준과 부가가치기준이 있는데, 이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GSP 수혜국의 생산품으로 인정되어 GSP 수혜가 가능하게 된다.다) Form A 작성해당 수출상품이 GSP 수혜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수출업자는 GSP 수혜를 받기 위한 소정양식(Form A, 기준별 사실신고서)을 기재하여 GSP 원산지증명서 발급기관에 Form A 발급을 신청하여야 한다.이상과 같은 절차에 따라 GSP 원산지증명서인 Form A를 발급받아 그 선적서류와 함께 원본을 수입업자에게 송부함으로써 GSP 활용절차는 완료된다.(6) Form A 작성 및 발급가) Form A의 의의Form A란 일반특혜관세 제도상의 원산지증명서로서 GSP 수혜를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서류이다.즉, GSP 품목 수출업자는 해당 GSP 수출상품이 수입국(GSP 공여국)의 GSP 원산지 기준에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이때 필요한 서류가 Form A이며 국제적으로 통일된 서식이다.나) Form A의 발급[관련규정]. 대외무역법 시행령 제63조 3(수출물품의 원산지 증명서의 발급) 및 제 103조(수수료). 관세양허대상수출품 원산지증명 발급규정(통상산업고시제 1996-3발급한다.③ 재발급Form A가 도난, 분실 또는 훼손되었을 때 수출업자는 소정양식에 의거 발급기관에 재발급을 신청하게 되며 발급기관은 Form A 제4란에 'Dupligate'라는 스탬프를 찍고 Form A를 발급받게 된다. 이 경우 재발급한 Form A의 발급일자는 최초의 발급일자이어야 한다.라) 각국의 원산지 증명서(Form A) 관련사항 비교국 가유효기간소급발급재발급임시발급만기일 이후의 제시공용란(8란) 요건캐나다2년인정인정인정안함·'F' 표시·누적의 경우 'G'뉴질랜드제한없음인정안함인정안함기재불요체코, 러시아1년인정안함분실시만 인정인정안함·'Y' 표시하고수혜국 부가가치기재·누적의 경우 'RK'일본1년인정인정인정안함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W' 표시하고 HS 세번 기재EU10개월인정인정인정불가항력,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EFTAEFTA(유럽자유무역연합,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 EC를 제외한 서유럽의 지역경제기구, 1994년 EC와 통합하여 EEA(European Economic Area:유럽경제지역)를 결성제한없음(오지리, 스위스 : 10개월)인정인정인정오지리와 스위스에서 불가항력이거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서류작성시 유의사항]. 기재사항은 영어나 불어로 작성하여야 하며 반드시 타이프로 작성하여야 함. 육필(肉筆)의 경우는 잉크를 사용하여 Block체로 써야 함. 수정시에는 타자 지우개, 화이트 등으로 지우거나 겹쳐서도 안되고 반드시 틀린부분은 타자로(대문자 'X'자를 사용) 수정한후 발급기관의 정정날인을 받아야 증명서를 유효함. 그리고 Box 5, 6, 7, 8, 9, 10의 당해사항의 기재를 완료한 다음에는 바로 밑에 마감선을 그어야 하며, 그 이유는 이상의 추가 기재를 방지하기 위함임. 특히 작성분량이 많아 '란'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별도의 Form A 용지를 추가 사용해야하며 별지를 부착해서는 안됨. 서명란은 실서명하여야 하며 일본의 경우만 스탬프 서명이 가능함. 원산지 기준(Form A 8번란)을 'P(완시킨다.
"내가 겪은 민주와 독재"- 강 성 원 -다음을 평가하며...'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최선을 다한다''남은 용서하되 자신은 용서하지 말라'- 강성원편과목명 / 담당교수대학 / 학과 / 학번 / 이름 썼던 공간순 서내 용 요 약- 강성원편을 읽고...사 건 조 사- 박정희의 10월 유신평 가내용요약 - 강성원강성원. 그는 자신의 어릴적 꿈과는 다른 삶을 살게된다. 살아가면서 겪게된 시련-공산당에 의한 아버지의 죽음-때문에 그는 반공이라는 신념 하나에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된다거기에 더하여 그가 은사라고 자신하며 내세우는 최현배 선생이라는 분에게 그는 자신의 사상과 이념에 대한 확고한 지침을 얻게된다. 그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만약 이후 나의 삶이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최현배 선생의 교육 때문일 것이다'라고... 앞서의 두인물은 강성원이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영향을 주고 있다.일제시대를 겪은 그에게는 또하나의 시련 한국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최현배 선생에 의해 군입대의 결심을 하게되고, 아버지의 자금전달책이던 백모씨에 의해 육군종합학교 8기로 들어가게 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공산당에 의해 고초를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강성원의 마음에 자리잡게 된 가장 확고한 신념이 반공이었고, 이 반공이라는 요소는 한국전쟁 당시와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일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 꿈이었던 소설가가 되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죽인 공산당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군대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면서까지 반공에 집착하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이런 군복무는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인물들과의 접촉기회를 마련해준다. 이를테면 김종필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약 JP를 만나지 못하고 5·16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오랫동안 군에 남아있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보면 새로기를 오로지 상사로 모시던 김종필씨 때문이었다라고 한다. 자신의 포부때문이 아닌 오로지 자신이 존경하던 김종필이라는 분의 '혁명'을 도와 자신의 반공신념까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그 이후 그는 박정희와 김종필 등이 꾸리는 여러 조직들에 직책들을 도맡으며 그들의 참모역할을 해준다. 그들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중앙정보부가 실시한 4대 의혹중 증권파동의 주모자가 되면서까지도 그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박정희 정권의 부당함과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일들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정치를 그만둔 그는 연이 없어보이는 축산이라는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찾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하자는 뜻으로 축산에 뛰어들었다고 하고있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그의 신념으로 그는 축산이라는 분야를 통해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라는 명목을 갖고 축산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축산업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그의 삶은 어찌보면 파란만장 한듯하다. 5·16 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아버지의 원수인 공산당에 대한 분노로 군대에 입대하고, 그를 통한 5·16 혁명,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른 삶 곧, 정치라는 것에 얽매여 살다가 회의를 갖고 결별하게 된다. 자신의 꿈과도 다르고 자신이 얽매인 정치와도 전혀 상관없는 축산업을 하는 그이지만 그에게 축산업은 자신의 신념표출에 다른 한 형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사건조사 - 박정희의 10월 유신71년 제 7대 대선에서 95만표 차이로 김대중 후보를 겨우 이긴데다 5월 총선에서 야당의 약진(신민당 89석) 밖으로의 긴장 완화의 분위기, 그리고 장기 집권에 따른 국민의 불만이 점차 강하게 표출되는 속에서 박대통령은 물리적 강경책을 쓰게 된다. 그것은 1971년 10월 15일의 위수령, 12월 6일의 국가비상사태 선언, 12월 27일의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의 발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은 유신 체제로 가는 예고편이었다.결국 박정희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였다. 박대통령은 자신의 새 체제를 유신(維新)이라 부르며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강력한 지도체제 아래 일치 단결해야 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조치를 합리화했다. 이 날 발표된 특별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등 현행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2. 일부 효력이 정지된 헌법 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해 수행되며, 비상 국무회의의 기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3.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 조국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며, 이를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국민 투표에 붙여 확정시킨다.4. 헌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정된 헌법 절차에 따라 늦어도 금년 말 이전에 헌정 질서를 정상화시킨다.박 대통령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토착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국회를 해산하고, 각종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대학에는 휴교령을 내렸으며 언론과 출판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으며, 야당 정치인들도 계엄 당국에 끌려가 수사를 받았다. 정국은 말 그대로 꽁꽁 얼어 붙었다.10월 유신은 안팎으로 곤경에 처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영구 집권을 달성하기 위해 내 놓은 대안이었다. 다시 말하면 10월 유신은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에서 보나 그것이 추구한 목적에서 보나 사실상 제 2의 5.16쿠데타였다. 과거에는 반공 대결을 위해 독재가 필요했다고 했다가 이제는 평화통일을 위해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박대통령은 유신체제를 선포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번 비상조치는 결코 한낱 정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권을 수호하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성실한 대화를 통해 전쟁 재발의 위험을 미연에 막고, 나아가서는 5천만 민족의 영광스러운 통일과 중흥을 이룩하려는, 실로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확신한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새로운 연장되었으며, 종신집권이 가능하고, 국회해산권과 긴급 조치권을 가지며,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명할 수 있었다.이 헌법안은 10월 27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 공고되었다. 뒤이어 국민 투표 계도 요원들의 찬성 발언만이 가능한 상황에서 11월 21일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는 91.9%의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 91%를 기록하였다. 국민의 선거권과 국회의 국정 비판 감독권을 제한, 위축시킨 채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도록 한 것이 바로 이 유신 헌법이었다.'유신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2월 23일 단독 출마한 박정희 후보를 99.9%의 찬성(2359명 중 2명이 기권한 2357명의 찬성)으로 제 8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의 영구 집권을 보장하는 유신체제의 막이 올랐다. 역시 6년 뒤 1978년 7월 6일 치뤄진 제 9대 대통령 선거 역시 99.9%의 찬성(2578명 중 단 1명이 무효표를 던져 2577명의 찬성)으로 제 9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선출했다.참고문헌 : 김정렴 [아, 박정희] 중앙M&B사 1997 // 조선일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중]평 가개인적으로는 청와대의 경호실에 소속되어 군복무를 했었다. 그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군복무중 5·16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내가 들은 이야기라면 야사이겠고, 경호적인 입장에서 들었던 부분이 많다. 그때 당시에 내가 흥미있었던 부분이라면야 5·16 자체라기 보다는 우리부대가 처한 그때 당시의 상황, 이를테면 쿠데타를 이끈 군에 대한 대통령 경호실 측면에서의 입장에 더욱 관심이 갔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역후 복학하여 처음맞는 역사수업이고 또 그 역사의 중심인 청와대에 잠시나마 머물렀었기 때문인지 이런부분에 더더욱 관심이 가져진다.강성원이라는 인물을 택한건 내 이름과 철자하나 틀린 이름이기도 하고, 내가 아는 이의 이름이기도 하여 그냥 읽게 되었다.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누구를 읽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편로 접하였으나 나중에는 혼란이 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강성원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을 과연 나는 얼마나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혼란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그 사람이 거짓말한다라는 기분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주관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책인지라 그랬던 것 같다. 일전에 본 어떤 역사스페셜에서 한 인물이 다른 피해자들로는 공동의 질책을 받고있지만, 오히려 본인은 부정하며 어떤 핑계식의 말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때야 상대방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실렸기에 그런 사람에 대해 다른 부분에서 생각할 여지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의 인터뷰식 기술에서는 도저히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 기본지식이 없는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평가를 내리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건 표면적으로 나타난 그의 태도와는 다른 부분을 나는 느끼고 있다라는 것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일지도 모르지만...강성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5·16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내가 혁명, 쿠데타라는 의미를 나누는데 있어서 어떤 충분한 지식이 있어 그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배우기는 쿠데타라고 배웠으며, 또한 일반적인 평가가 쿠데타임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있자니, 반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물론 자신이 치른 일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쏟아졌던 일이었던건 분명하므로 자신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혁명이었다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부분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강성원은 군사정권이 출현한대 대하여 이러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5·16혁명으로 인해 우리사회에 군사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시의 풍토가 분열과 비타협 등으로 인한 혼란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 당시 민족중흥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위계적인 군사정권은 어쩌면 다.
마르고 닳도록( 감 상 문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성 명 :제 출 일 :담당교수 :'마르고 닳도록'을 보고...언제나 연극이라는 장르가 신선한 충격의 하나로 다가온다는게 바로 이 과목의 묘미인 듯 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다음에는 또 무슨 연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조금은 들뜨게 하는 것 같다.불필요한 사족일지는 모르지만, 연극이라는 장르도 극장에서 보는 것과 화면상으로 보는 것에는 감동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장르보다 확연하게 느껴진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일까?마르고 닳도록이라는 작품. 누구나 생각하지는 못했을 소재인 것 같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볼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방법으로, 실제로 있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요즘 한창인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대선전이다. 역대 최고기록이 될 것이라는게 대개의 전망이다. 90여개가 넘는 금메달. 그리고 그 개수만큼 울려퍼졌을 애국가. 애국가를 들으면 절로 애국심이 솟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연극에 대한 감상문을 쓰려고 하니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스페인 마피아들은 우리나라 정부를 대상으로 사기극을 연출하려 한다. 애국가의 저작권료 청구라고 하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시도는 한국 정부의 지도자가 거부하면서 허사로 그치고 만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장장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들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끊임없는 저작권 사용료의 청구를 요청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와 정부가 바뀌면서의 정책변화 등에 시달리면서 그들은 자포자기의 상황에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끊임없는 도전의 성과였을까? 30년의 도전 끝에 마침내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지려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나보다.이 연극의 제목은 「마르고 닳도록」이다. 물론 애국가의 한 구절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하여 마피아들의 노력을 함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노력한 그들이다. 비록 사기라고 할지라도.내용의 전개는 무척 코믹했다. 비록 마피아들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할지라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만큼은 매장면장면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연기, 마피아들의 어이없는 태도, 끊임없는 그들의 도전들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짓게하는 웃음의 대부분은 '실소'이거나 '조소'인면이 많은 것 같다. 부끄러운 역사의 이면을 풍자하고, 일개 마피아의 사기에 농락당하는 무지한 정부의 이면도 보고있어야 한다. 픽션의 소재가 논픽션의 상황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무언가 아쉽기만 하다.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스케일이 꽤 크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소극장 정도의 연극규모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동원인원이 많다라는 것이다. 배역의 겹침이 있음에도 아주많은 인원이 무대에 보인다. 그리고 5·18등의 묘사등에서 보여준 면들이라던지, 여러장면에서 연극에서의 한계일 것만 같았던 규모의 웅장함을 보여주었다.또한 이 작품은 장치적인 면에서 새로운 면을 보여준 듯 하다. 하늘의 묘사, 비행기 등의 크고작은 소품, 거기에 더하여 장면전환의 독특함 등. 비록 몇 편 보지못한 연극이지만, 늘상 연극을 볼때마다 새롭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데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각 장면마다의 조명, 음향, 영상, 그리고 무대장치 등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생각했던 연극을 다시보게 하는 듯 했다.여느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이 작품도 완벽하지만은 못한 것 같다.첫째는, 불필요한 장면등으로 보고있는 사람의 맥을 빼는 요소가 그러하다. 예를들면, 안토니오라는 사람과 한국 여기자와의 사랑장면은, 이야기의 주요핵심을 흐려놓을뿐 아니라 연극에서 그 어떤 요소도 해주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액션영화에 사랑이라는 요소를 가미시키듯, 그냥 추가시킨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로 인해 연극이 지루해지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 같다.둘째는, 명확한 주인공을 찾기가 곤란했다. 물론 보기에 나름이겠고, 마피아들이 주인공인 듯 해 보이지만, 확답을 내리기에는 어정쩡한 요소인 것 같다. 왠지 안토니오가 주인공일 것 같기도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컴퓨터 혁명의 선구자"스티브 잡스"-애플, 픽사-See the Future, digital hub.(우리는 미래를 보았고, 이를 실현했다.)- 스티브 잡스21세기 벤처창업 // 윤종록 교수님- 학 과 / 학 번 / 이 름 썼 던 공 간 -순 서현재의 상황- 빌 게이츠와의 숙명의 대결, 결투는 시작됐다.스티브 잡스- 슈퍼스타, 선구자, 영웅 : 그에겐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어다닌다.스티브 잡스의 기업컴퓨터 혁명- 퍼스널컴퓨터 시대 도래 : 이는 혁명이다. 그리고 이를 이끈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애플 vs IBM애플 vs M S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억만장자의 꿈 - 실리콘밸리의 매력- 실리콘밸리의 매력은 돈이다. : 어떻게 억만장자가 되는가?현재의 상황「빌 게이츠와의 숙명의 대결, 결투는 시작됐다.」나는 이 발표의 중점을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컴퓨터의 비교에 두려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비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비교라고 할 수 있다.이들은 PC혁명의 영웅들이라는 공통의 칭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창업가의 성질은 매우 다르다. 한명은 장사꾼이라는 비하를, 한명은 선구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동시대의 경쟁자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경쟁을 결투라고까지 명명한다.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에 스티브 잡스는 그리 유명인은 되지 못한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한명'의 대상이 내가 의도하는 바와는 다른쪽으로 생각들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컴퓨터의 광고를 통해, 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들의 상품을 접해보는 일이 흔해졌다. 이들의 신제품들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상이 되지만, 하나는 비판의, 나머지 하나는 찬사의 길을 걷게 된다. CEO의 비교와 비슷하다고 해야하나?MS의 최근 발표제품을 언급해보자. win95, win98, winME, win2000, winXP등의 운영체제를 비롯하여, office 제품군, 프로그래밍 개발툴인 Visual Studio등 MS의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굵직굵직한 상품들이 가 붙어다닌다.」그의 어린시절만큼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고아, 입양아. 단과대학에 잠시 다니다가 그것마저 중퇴한... 그냥 지극히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히피기질이 좀 강하고,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그런 그가 현재는 슈퍼스타, 선구자, 영웅 등의 찬사를 받으며 인기있는 CEO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제나 세간의 화재를 일으키는 인물 스티브 잡스, 그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빌 게이츠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벌이고 있을(실제로 빌게이츠는 포커판에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뭔지를 처음으로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다. '하룻밤에 50만원 정도를 잃고서 기분 나빴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다.)나이에 스티브 잡스는 휴렛팩커드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 빌게이츠가 엄마의 소개로 IBM쪽에 손쉽게 줄을 대고 있던 것과 달리 잡스는 몰래 장거리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동료와 함께...빌 게이츠의 장사꾼적인 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물론 빌 게이츠도 나름대로 최고의 경영자인건 사실이지만, 마음에 안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스티브 잡스의 기업그는 창업가로서 애플컴퓨터, 경영자로서 픽사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인기인이라서 그런가? 말도 많고 탈도 많다.성공한 창업가, 실패한 경영자?자신의 폭스바겐 자동차와 워즈니액의 전자계산기를 팔아 만든 단돈 1천3백달러로 애플I을 만들어낸 자신감을 가진 잡스는 이듬해인 77년 애플II를 발표, 첫 달에만 무려 2만대를 팔았고, 그 후 7년 동안 애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84년 IBM 호환기종에 대항해 매킨토시는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최초로 사용한 획기적인 제품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95년에 내놓은 윈도 95의 원형을 이룰 만큼 앞서가는 것이었다.그러나 천재성에서 비롯된 그의 독단적 성격은 애플의 경영악화를 빚고 말았다. 81년 IBM PC의 등장으로 시장을 잃기 시작최고의 컴퓨터는 개발되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우스운 이유로 실패라는 것을 하게된다. 물론 이 시기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차 자신의 최고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 생각대로 애플컴퓨터측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되고 다시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자신들의 임시 CEO로 책정하기에 이른다. 쫓겨났던 CEO의 금의환양인가? ]애플이 역적으로 내몰았던 잡스를 다시 모셔올 수밖에 없었던대는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시장점유율 12%대로 PC업계 선두를 달렸던 애플의 성장그래프는 지난 2∼3년간 곤두박질쳐 6%대를 맴도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다른 회사에 경영권을 넘기는 모욕적인 합병절차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이때 신임회장으로 영입된 감량경영의 명수 아멜리오회장은 애플을 가장 잘 아는 공상가이며 차세대 운영체제의 모태가 될만한 넥스트스텝을 갖고있는 스티브 잡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물론 이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가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잡스는 픽사라는 회사의 경영자로 부임하게 된다. 픽사라는 회사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토이스토리I, II, 벅스라이프를 만든 회사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러한 일련의 성과물로 그는 경영자로서의 감각을 유감없이 표출하였다.이러한 그를 실패한 경영자로 부를 수 있는가?컴퓨터 혁명「퍼스널컴퓨터(PC)의 시대 도래- 이는 혁명이다. 그리고 이를 이끈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컴퓨터 자격증 필기시험을 보게되면 컴퓨터의 역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게 된다. 에니악, 유니박, 에드박 등등등. 중요한건 옛날에는 컴퓨터의 존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퍼스널컴퓨터화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컴퓨터 혁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 혁명을 주도한 자들은 크게 둘로 본다. 한명은 빌 게이츠, 그리고 한 사람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모든 분야에서 비교되는 이유이다시장 판도에 빌 게이츠가 개입하게 된다. IBM PC의 공식 운영체제로 MS-DOS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애플컴퓨터는 IBM에 비해 대중화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의 패배인가?애플 vs MS애플 - MAC OSMS - Windows(차세대 운영체제 MAC OS X)(차세대 운영체제 Win XP)IBM이 하드웨어의 규격을,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식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협력하는 관계라고 한다면, 애플컴퓨터는 자신의 회사에서 하드웨어 규격을 만들고 거기에 걸맞는 운영체제를 스스로 개발해서 쓰는 회사라 하겠다.물론 이런저런 이견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한 사실이 있다. MS의 대표적인 운영체제인 Windows의 시작은 Mac OS에서 일련의 아이디어를 얻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일반컴퓨터의 대표적인 운영체제로 Windows가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는 또한 스티브 잡스의 패배를 뜻하는가?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둘의 공통점은 PC 혁명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빌 게이츠는 MS의 창업자로, 스티브 잡스는 애플컴퓨터의 창업자로.이러한 이들은 항상 비교되며 경쟁상대로 표현되며, 또한 둘의 경쟁을 결투로 비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교의 대부분에서는 빌 게이츠보다는 스티브 잡스에 우호적이다. 그러한 면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빌 게이츠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 컴퓨터를 좀 안다는 사람도 빌 게이츠 하면 뛰어난 프로그래머로 출발해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빌 게이츠에 대한 찬사. 하지만 실상 알고보면 찬사보다는 야유를 많이 듣는 사람.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빌 게이츠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빌 게이츠가 도대체 무엇을 창조해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그의 첫 작품이라고 명명된 Q-Basic이라는 프로그램조차도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조금 뚝딱거려서 내놓은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주장하는 것.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츠. 그에 대한 유일한 우호적인 평가는 그가 한 명의 기업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데 기초를 둔 것이 많다. 물론 그의 장사꾼적인 감각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걸 빼버리면, 그에게 창업가를 꿈꾸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는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빌 게이츠는 실제로 욕을 많이 먹는 인물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업가로 유명하다. 자신들이 지닌 힘으로 경쟁업체를 하나 둘씩 무너트리는. 과연 이런점을 창업가로서의 성공적인 모습이라고 해야만 하는가? ]스티브 잡스태어날때부터 불행했던 사람. 그런 그가 현재 퍼스널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을 한다. "누가 컴퓨터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스티브잡스를 보게하라."새로운 트랜드를 창조하고, 차세대 핵심기술을 가장 선구적으로 업계에 소개해온(그것도 가장 우아한 스타일로) 스티브 잡스[ 이런 면에서 잡스는 빌 게이츠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애플사의 모든 신제품은 모든이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만큼의 우아함을 갖는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선견지명의 예는 많다. 퍼스널컴퓨터의 도래, 차후 MS-Windows라는 모조품이 세상에 나타나는 기초를 제공한 매킨토시, 아이맥을 통한 인터넷PC의 원형을 보여준 사람. 이런 것들 외에도 그의 선구자적 모양새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은 많다.[ 이런 선구자적인 모습 때문에 여러번의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제품의 우수성이 시대를 초월하는 일때문에의 실패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지금까지의 컴퓨터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의 컴퓨터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것을 생각해보라. 우매하다고 해야하는가? ]황야의 건맨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다. 그에게는 어떤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 임무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짓눌려있는 애플을 회생시키는 일. 그중에서도 어떤 PC에서도 돌아가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잡스는 전세계 PC 운영체제의 90% 이상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석권하고 있지만 기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