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동양보다 서양에서 먼저 발전한 이유사 회 학 과20012241 정재영자본주의는 봉건제에 이어서 나타난 경제체제로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자기의 노동력 밖에는 팔 것이 없는 노동자로부터 노동력을 상품으로 사들여 상품생산을 하는 경제체제이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먼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먼저 발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다. 종교적인 입장과 사회적인 제도가 틀렸기 때문에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더 먼저 발전할 수 있게끔 해준 종교는 개신교이다. 더불어 사회적인 제도는 봉건제이다. 이와는 다르게 동양의 종교는 유교이고 사회제도는 개신교였다. 개신교와 유교를 비교하고 봉건제와 가산제를 비교하여 자본주의가 왜 서양에서 먼저 발전할 수 있게 되었는지 비교·분석하여 보자.1.종교적인 입장에서 봉건제와 가산제가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페리 앤더슨은 봉건제를 전형적으로 귀족이라는 사회계급이 농민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면서 법적으로는 농노를 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같이 다소 엄밀한 정의를 사용하여, 앤더슨은 봉건제란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하였다. 봉건제는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진보를 나타냈고 봉건제 사회속에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맹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발전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 중에서 자신이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타인의 노동생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물물교환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지역 안, 지역 간의 교환이 활발해진 결과 교환에 사용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매개물로서 화폐가 널리 사용되고, 상업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도시가 형성되게 된다. 15세기 말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무역, 교환수단과 상품의 증가는 상업과 해운업과 공업의 충격을 가하여 시장을 해외로까지 확대시켰으며, 말기에 다다른 봉건사회의 혁명적 재편의 계기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시장의 확대로 가내수공업적인 소상품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발전해 갔으며, 수공업자가 분화되면서 소수의 부유한 자는 자본가로 되고, 다수 빈곤한 자들은 생산수단을 박탈당하여 임노동자로 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속에서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 봉건제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개념이 생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사적 소유의 개념이 생김으로서 사회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추구를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데 봉건제는 이를 가능케 하였다. 이에 반해 동양사회의 지배유형은 가산제였다. 가산제는 통치자와 막료의 관계가 아버지의 권위와 자식의 효성스러운 복종에 바탕한 가계의 확장된 형태이다. 가산제 안에서는 녹봉제적 지배구조가 지속되어 왔는데 녹봉제는 국가에서 관리에게 미곡이나 포 등의 현물로 지급하는 급료 제도이다. 그러나 녹봉을 바탕으로 한 가산제적 지배체제는 서양의 봉건제가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로의 발전 가능성들을 억압하였다. 봉건적인 사회제도의 유형을 띄고 있던 서구사회의 경우 지배집단에 대한 도전 특히, 사회집단들간의 경쟁을 용인하는데 반해 가산제적 사회제도의 유형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회집단들간의 경쟁, 자유노동, 합리적 상업화 등은 오직 서구의 봉건적 지배 안에서 가능하였다. 세계의 고대문명들은 대체로 서양에서처럼 봉건제로 발전하거나 중국에서처럼 녹봉제로 변천되어 갔다. 녹봉제는 단기적으로 볼 때는 정치 경제적 발전에 더 유리한 듯이 보였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자본축적의 요건들을 성립시킨 것은 오히려 봉건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기원은 집단간의 경쟁이 가능했던 분권적인 서구사회의 제도적 특성에서 찾아야 하며 동양사회는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가산제적 제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기에 자율적인 부의 축적을 어떤 사회집단에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보다 자본주의가 늦게 발전되었던 것이다.2. 사회적 제도입장에서 개신교와 유교가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막스베버는 [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 ] 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을 16세기~17세기 영국의 청교도를 중심으로 연구한 끝에 자본주의 기원을 개신교에서 찾고 있다. 당시 서양사회에서는 개신교가 발전하고 있었다. 서양의 카톨릭에서는 경제활동의 추구를 가장 세속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많은 카톨릭 교인들은 속세를 떠나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부정한 것을 멀리하며 금욕적이고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러나 막스베버는 경제활동을 합리적인 것으로 보았다. 개신교의 금욕적 종교윤리는 시장상황에서 합목적적으로 행위하는 시민계급적 중간계층으로 하여금 "부단한 직업노동"에 헌신하고 직업 외적 일상생활을 자본주의에 적합한 원리에 따라서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조화하고 영위하는 것이 가능토록 했다고 한다. 개신교는 또한 현재 자기 삶에 충실하라는 뜻의 직업 소명설을 중요시 하였다. 'God keeps those who keep themselves'의 뜻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다. 이는 신으로 부터 자기 몫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는 근면하게 직업 노동에 종사하며, 모든 사치와 낭비를 배격하고, 생활 전체를 합리적으로 조직할 것을 권고 받았다. 이러한 가르침은 서유럽 여러 나라로 퍼지고 특히 그의 직업 윤리는 중산 시민계층에게 받아들여져 발흥하고 있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결국 근대 서구 경제 시민계급은 금욕적인 개신교 덕분에 좀더 합리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개신교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하여 지니는 중대한 인과론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당시 종교가 다른 모든 삶의 영역에 대해서 가치를 창출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이들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고 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유교가 과거 2,500년 동안 동양 사회의 사회관계의 성격을 규정해 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교는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장애물로 여겨져 왔다. 유교사상에는 자본주의와는 맞지 않는 사회질서 의식들, 예를 들면 가족중심주의, 가부장적인 권위질서, 남녀의 불평등 등이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 유교는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다. 서양이 자율적이고 생산 지향적이었음에 비하여 동양의 유교는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며 소비 지향적 인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유교는 과거 2,500년 동안 동양에 깊은 뿌리를 내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부분에서 유교적 성격이 드러났다. 하지만 유교의 이러한 위계적, 권위적인 모습은 동양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여러 가지로 영향력을 미쳐서 자본주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근대적 이행 과정에서 혁명과 전쟁이 국가건설에 미친 영향과 효과사 회 학 과20012241 정재영일반적으로 전쟁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서운 소리들과 함께 사람들이 죽고 공장, 집 등이 파괴되어 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생각한다. 그 예로 우리나라가 겪은 1950년대에 한국전쟁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애써 지은 공장과 집들이 파괴되는 등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이와는 비슷한 맥락에서 혁명을 들 수 있다. 혁명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전쟁과 같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 일어났던 4·19혁명의 결과를 보면 사망자 약 100명에 부상자 약 450명에 달한 엄청난 인명피해와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경제적 피해를 가져왔다고 한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전쟁과 혁명을 겪으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전쟁과 혁명의 결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전쟁과 혁명을 통해 국가가 형성되고 발전되었다고 한다. 전쟁과 혁명이 어떤 면에서 국가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전쟁이 국가 형성과 발전에 미친 영향한국고대사연구 16 (1999. 11)古代의 戰爭과 國家形成 (李永植)전쟁은 인간의 유전적 투쟁본능호전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필연보다는 인류의 사회적 발명품으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전쟁은 농경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문명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전쟁이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산출과 축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은 각기 다른 정치통합을 가진 집단간에 일어나는 조직적 무력충돌로 정의할 수 있지만, 역사적 실제에서 어느 사회단계의 어떤 무력충돌을 전쟁으로 규정해야 할 것인가는 쉽지 않다. '전쟁은 정치의 한 형태이다' 라는 말과 같이, 전쟁은 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어 졌으며, 세계의 거의 모든 시대와 사회에 존재하였고, 사회의 발전단계마다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카네이로의 국가발생론은 전쟁을 국가형성의 동인으로서 가장 중시했던 전쟁모델의 대표적인 연구였다. 1970년까지의 여러 국가형성론들을 비판하면서, 남미의 페루연안에서 국가가 발생하였던 사례적 연구를 바탕으로 생태적 조건이나 인구증가의 요소와 함께 전쟁이 국가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기원전 4000년경에 최초로 형성된 국가는 하나의 영역에 많은 공동체를 가지며, 세금의 징수·전쟁을 위한 징병·노역동원·법률을 준수시킬 수 있는 강제력을 가진 중앙정부가 존재하는 자율적 정치단위였다. 차일드는 농경의 시작은 잉여를 창출하였고, 잉여생산물의 축적은 노동의 분화를 촉진하였으며, 노동분화는 도시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하였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에 잉여생산물의 축적은 있었어도 노동의 분화는 없었다. 전쟁이 국가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전쟁만으로 국가가 형성되었던 것은 아니며, 전쟁은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름의 예는 인구증가와 제한된 농경지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사례이다. 태평양·안데스산맥·사막으로 둘러 쌓인 페루연안지역에는 78개의 좁은 계곡마다 농경집단들이 있었다. 인구증가에 따라 요구되는 농경지의 확대나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의 식량의 편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었다. 전쟁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어도 패자는 달리 달아날 곳도 없었기 때문에 승자에 예속할 수밖에 없었고, 패자는 승자의 정치조직에 새로운 차별계층으로 흡수되었다. 이 경우에 전쟁은 사회적 계층이 발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계층의 발생은 국가형성의 사회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전쟁의 발생원인과 국가형성의 환경적 제약을 강조한 것이 카네이로의 전쟁모델이었다. 카네이로가 자신의 이론을 전쟁모델이라 하지 않고, '생태학적 가설' 또는 '제약이론' 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페루연안의 78개 계곡에 산재해 있던 여러 부족집단들은 계곡 내부의 전쟁을 통해 하나의 계곡을 아우르는 군장사회로 통합되었고, 계곡과 계곡의 군장사회간의 전쟁은 국가를 출현시켰으며,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소국에 대한 정복전쟁은 잉카제국을 탄생시켰다. 페루연안의 제한된 환경과 인구압력은 전쟁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전쟁은 부족사회에서 군장사회를 거쳐 국가 또는 제국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국가형성에 관한 카네이로의 전쟁모델인구증가군대조직전쟁의 증가행정관리의필요성중앙집권화조직(국가)제한된농경지사회적복종공납물의 흐름혁명이 국가 형성과 발전에 미친 영향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혁명을 겪어 보았을 것이다. 혁명이란,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이다. 여기서 혁명은 크게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으로 구분 된다고 한다. 정치혁명의 예로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의 4·19혁명을 들 수 있고 사회혁명으로의 예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혁명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사회혁명은 근대자본주의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들이었다. 1970년대의 프랑스혁명에서 20세기 중엽의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혁명은 국가조직, 계급구조, 지배이념을 변혁시켜 왔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적 신분제와 영주제의 폐지를 단행되었다. 프랑스에는 비로소 법 앞에 평등한 조건이 실현되어 전 국민이 대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증받는 형태가 되었다. 혁명의 결과 그들의 힘과 자율권이 혁명 이전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들을 능가하는 국가들이 탄생했다. 혁명 후, 프랑스는 갑자기 중유럽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다른 나라를 보면 혁명에 의해 러시아는 산업, 군사적 강대국이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는 혁명으로 인해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가장 산업화된 국가가 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얻게 되어 라틴아메리카에서 군사혁명이 가장 발생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확립한 경제상 또는 기술상의 혁명으로 시민 혁명과 더불어 근대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산업 혁명의 과정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변화인 생산력의 엄청난 증대와 도시의 팽창, 이 양자는 바로 근대 문화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기반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혁명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많은 갈등과 피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혁명의 또 다른 면을 보면 이처럼 문화, 정치, 경제, 많은 부분에 있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음악의 기능과 역할사 회 학 과20012241 정재영우리 인간의 삶은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음악을 들으며 생활한다. 우리는 항상 음악 속에서 살며 음악이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는 재능과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음치라도 누구든지 노래는 부를 수 있으며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가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아기에게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처럼 음악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음악의 인간에서 있어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의 박자가 빠르고 음의 높낮이 변화가 심하면 이상하게 사람은 신이 난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흔들어 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에 박자와 리듬이 빠르지 않고 음의 높낮이 변화가 심하지 않으며 주로 저음에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은 너무나 편해지며 쉬고 싶으며 명상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끔 우울해 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자살한다. 단지 음악을 들었다는 이유로 자살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음악은 사람의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악은 또한 단결의 역할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교가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은 군가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찬송가를 들으면서 그 속에서 뭉치게끔 하는 역할도 한다. 올해에 있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음악은 우리나라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거리로 모여들고 음악과 함께 너나없이 부둥켜 안고 울고 웃고 하였다. 텔레비전에 외국사람이 나와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을땐 정말 뿌듯했다. 월드컵때 이후로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잘 알려진 사실은 음악의 영향이 컸던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몇 달전에 이모가 임신을 하셔서 인사드리러 간적이 있다. 그런데 평소 즐겨 듣지 않으시던 클래식 음악을 들으시는 것을 보았다. 음악이 태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기의 두뇌는 여러 가지 자극을 통해서 발달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도 음악은 가장 훌륭한 교육방법이 된다. 유아에게 있어서 좋은 음악은 두뇌뿐 아니라 언어능력과 감성을 키우고 올바른 성격 형성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흔히 대중음악은 태아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조용한 클래식만이 인격함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클래식이 성격형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고 따라 부르고 싶은 욕구는 억제된다. 그러므로 어떤 한 장르의 음악만 들려주지 말고, 느린곡과 빠른곡을 적절히 들려주며 가사가 있는 동요나 아이의 정서에 맞을 듯한 대중가요를 고루 듣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생아의 경우 시각보다는 청각의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소리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음악을 들려주면 하루가 다르게 나름대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음악을 어느 정도 집중하여 듣고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야후 코리아! >> 음악 >> 태교 >> 서울대 교수의 태교 이야기)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악은 집중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고3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음악이 없으면 공부가 잘 안되었다. 물론 심리적인 이유일수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때도 음악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나는 타이타닉을 잊을 수가 없다. 가장 감동적인 영화중에 하나로 생각하는데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를 어디 지나가다가 듣게 되면 영화속의 멋진 장면들이 다시 생각나곤 한다. 레포트를 쓰기 위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한 내용중에 처음 듣는 소리가 있었다. 사람을 치료하는데 있어 음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까. 우선 음악치료에 대해 알아보면 음악치료는 치료적인 목적 즉,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 유지시키며 향상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치료적인 환경속에서 치료대상자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음악치료사가 음악을 단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치료를 받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변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하여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음악치료는 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통합을 도와주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치료적 환경에서 모든 연령의 집단에 적용될 수 있다. 음악은 비언어적 성격을 가지며 언어적 소리 표현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음악치료는 흔히 클라이언트의 내면의 개발되지 않은 자원을 발달시키고 인식하는 가능한 인간적인 접근법을 제공한다. 음악치료사는 개인에게 발달된 자기개념으로 변화되고 넓은 의미에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잠재성을 개발하도록 돕기를 원한다.(야후> 건강과 의학 > 정신건강 > 정신상담, 심리치료 > 치료요법 > 예술치료 > 음악 치료) 찾아보면서 이해한 것이지만 음악이 장애인에게 많은 심리적, 사회적인 영향을 주며 그들이 음악으로 하여금 좀더 밝은 모습, 활동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음악이 정말 다양하게 많은 분야에서 쓰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