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할아버지께서는 박하사탕 한 봉지를 문갑 속 깊숙히 감춰두셨다가 방학 때 시골에 내려온 내게만 몰래 한 웅큼씩 집어주시곤 하셨다. 나는 입 속이 시원해지면서 달콤한 그 느낌이 좋아 사탕을 아끼가며 천천히 녹여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도는 추억이다. 이제는 흔하디 흔하고 맛도 없어 잘 먹지 않는 박하사탕이 그땐 왜 그리도 맛있었을까...아직도 박하사탕을 보면 어린시절의 순수한 그 추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박하사탕이라는, 뭔가 촌스럽고도 아득한 그리움의 흔적을 생각하면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을 보았다. 천천히 음미해가면서 말이다.이 영화의 시작은 1999년 야유회 장면이다. 주인공 영호는 갑자기 철길 위에 올라선다. 달려오는 열차와 마주 선 영호. 그리고 나 돌아갈래... 라는 외침과 함께 시간은 철로를 따라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고, 이 영화가 택하고 있는 스토리 진행의 방식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영화의 구성은 영호의 삶 중 7개의 에피소드를 끄집어 내어 이어 놓은 형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에는 별다른 부연 설명이 없고 단순히 자막 처리가 된 년 야유회, 면회 등 만이 시간 순서를 가르쳐 줄 뿐이다. 그러나 관객은 이 단순한 제시만으로도 7개의 에피소드가 영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건들이 영호 개인의 삶의 흔적 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영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1979년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국가 개발에 동원되었던 공장 직원으로,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는 민주화항쟁을 진압하는 군인으로, 87년 군사정권 말기에는 악명 높은 고문형사로, 1994년 문민정부하에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구점 사장으로, 1999년 IMF하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부랑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광풍을 온 몸으로 경험해야 했던 주인공 영호. 감독은 김영호 라는 평범한 이름의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한다. 학창시절 한 반에 한명 쯤은 꼭 있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이름 영호 . 그렇기에 주인공 영호는 단순히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70∼90년대를 살아낸 우리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 인 것이다. 이런 인물을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영호의 모습에 우리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가면서 적극적인 영화보기를 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호의 에피소드 7개가 시간의 역순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영호의 1999년의 모습은 마치 인간 쓰레기인 것 처럼 느껴지지만 20년 전 1979년 야유회에서의 영호까지 모두 보고 난 후에는 왠지 모르게 영호에 대해 일종의 연민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순수했던 영호가 왜 그렇게 망가진 모습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었는가?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답을 제시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꽃과 사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던 1979년의 순수한 영호는 커다란 역사의 풍랑 앞에 점차 너무나 세속적이다 못해 악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영호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악영향을 준 것은 80년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면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실수로) 어린 민간인 소녀를 죽이게 되는 사건이다. 영호는 그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절규한다. 그리고 신참형사 시절을 지나 고참 형사가 되었을 때 영호는 그의 천성적 순수함을 거의 다 잃어버리고 만다.그렇다면 영호의 삶에 있어 구원의 가능성 이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는 영호에게 두 번의 구원의 기회가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그 구원의 가능성은 영호의 첫사랑인 순임 이라는 여성이다. 영호의 가슴을 처음으로 떨리게 했던 순임은 광주학살의 상처를 안은채 제대해 신참형사로 있던 영호를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영호에게 건네진 첫 번째 구원의 손길이었다. 그러나 영호는 이런 순임에게 의도적으로 상스러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녀를 밀어낸다. 아마도 이 때 영호는 이미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신이 순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두 번째 구원의 손길은 영호가 모든 것을 잃고 부랑자와 같은 삶을 살며 누구가에 대한 살의를 키워가고 있을 때 죽음의 문턱에서 또 다시 영호를 찾은 순임이었다. 영호는 순임이 자신을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하며 잊지못하고 있음에 놀라지만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으로 또 다시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영호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다가왔던 구원의 손길-순임. 하지만 그 손길은 영화의 큰 줄기와는 맞지않게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나 싶다. 더구나 영호 자신은 갱생의 가능성을 전혀 열어 두지 않은 채 세파에 묻혀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이제 영화의 첫 장면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장면인 영화의 종착역으로 한번 가보자. 영호는 1979년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야유회에 참석한다. 그 장소는 아직도 순수했던 그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강과 꽃과 철로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아름다움. 영호는 왜 그 야유회에 참석한 것일까? 야유회에서 이방인일뿐인 영호는 아마도 그 곳에서 20년 전 자신과 순임의 순수한 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