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1. 시대배경2. 복식의 전체적 배경3. 낭만주의 시대의 유행 변천 과정4. 의상에 대하여...1) 겉옷① 가운(gown)② 네크라인(Neckline)③ 소매 (Sleeves)2) 속옷① 페티코트② 슈미즈(Chemise)③ 코르셋④ 후프(Hoop)-파니에(Panier)⑤ 힙 패드(Hip pad)⑥ 드로어즈(drawers)3) 장신구(Accessory)① 벨트(Belt)② 장갑③ 신발④ 보석들4) 머리 스타일5.복식을 입는 순서6.결론7. 현대 패션의 활용8. 참고문헌9. Meeting Time◈ 왕정복고 시대 로맨틱 스타일 (1820~1850)1. 시대 배경전쟁과 혁명이 지나간 후, 유럽의 지배층이 그 동안에 겪은 급격한 여러 변화에 싫증을 느끼고, 구체적인 귀족중심사회로 다시 되돌아간 것을 왕정복고시대라고 한다.나폴레옹 제국이 붕괴된 후 유럽의 영토 재조정을 위해 각국 대표들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Vienna)에서 회의를 했다. 이 결과 유럽의 군주들과 지배계급은 1789년 이전의 구체제로 복귀할 것을 결정하였다.이후 프랑스에서는 루이 18세(1755-1824)에서 샤를 10세(1757-1836)로 이어지는 왕정시대가 시작되었고 귀족과 성직자들은 계급제도를 다시 수립하고 특권을 부활시켜, 생활전반에 걸쳐 기호와 양식이 소생하게 되었다.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주로 직물산업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직물기계의 발명과 염색공업의 발전으로 다채로운 색조의 직물이 생산되어 의상의 외관을 변화시키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시민 계급의 지위가 향상되는 반면에 노동자 대 자본가의 대립은 문학, 미술, 연극 등 모든 사회문화에 있어서 당시의 시대사조를 낭만주의의 경향으로 유도하였다. 낭만주의의 본질은 감정과 본능의 찬미,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 형식주의에 대한 경멸, 일반 민중에 대한 감상적인 사랑, 격렬한 운동감 등이 포함되며, 현실에서의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민중의 마음속에 창조력을 유발시킨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회화에서는 낭만주의 시대의 여러 층의 레이스를 장식한 버사(Bertha) 칼라를 사용하였고, 진동부터 손목까지 끈으로 묶어 여러 등분으로 나눈 형태의 매머 룩 슬리브(mameluk sleeve), 양의 다리처럼 소매 상부를 부풀리고 소매 끝을 가늘게 오므린 래그 오브 머튼 슬리브(Leg of mutton sleeve) 등이 사용되었다.이 시대의 여자의상에 있어서 중세 초기 이후 오랫동안 남자전용으로만 인식되었던 바지가 처음으로 여자의상으로 적용되는데 이는 승마나 자전거와 같은 스포츠의 보급 결과이다.이 시대 초기의 머리 모양이나 장식은 짧게 다듬은 머리와 조촐한 보닛 등이 주로 사용되었고 중반부터는 모자의 챙이 넓어지고 아름다운 색상의 리본, 꽃, 깃털장식 등을 하여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는 18세기 로코코 스타일을 재생시킨 것이다.3. 낭만주의 시대의 유행 변천 과정왕정복고가 1815년에 시작되었으나 Empire style은 몇 년간 더 버티다가 high waistline만을 남겨놓고 자취를 감추었고 복식에 나타난 로맨틱 스타일(Romantic style)은 1820년부터 시작되었다.1824년경부터는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에 디자인 되었던 뾰족한 허리선을 소유하면서 허리선의 위치를 다시 내려놓기 시작하였다.1830년 경 신고전주의 시대에서는 제 허리선을 되찾아 내려왔고, 허리를 더 가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드레스 위에 넓은 장식벨트를 맸다. 목선은 최대한 넓히려고 어깨를 다 들어 내놓게 되었으며 상체를 부풀리려는 욕망은 소매를 크게 puff시켰다. 또한 이 시기에는 운동을 할 때 입는 드레스도 유행했다. 영국의 르뎅고뜨(Redingotte)에서 시작된 드레스는 남성복에서 유래된 것이라 남성적인 분위기를 준다.1836년이 지나면 굉장히 부풀렸던 소매는 넓어지는 치마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반대로 부피가 줄어든다. 낭만주의시대의 말에는 기형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던 소매는 사라지고 편안하게 맞는 직선 실루엣의 7부 소매가 나타났고 치마의 폭은 점점 커져서 크리놀린 페티의 스커트로 고정시키기 위해 아교풀을 빳빳이 먹인 버크럼(Buckrum)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러플(Ruffles), 플라운스(Flounces), 플레어(Flare), 꽃(Flower), 리본(Ribbon), 브레이드(Braid)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여 최대한 귀족족인 우아함과 호화스럽게 보이려고 하였다. 입는 방법은 뒷 중심선을 따라 단추나 끈 또는 후크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여 여몄다.소재로는 제정시대의 직물들에 비해 다양한 색상의 직물들이 나타났는데 새틴, 벨벳, 나폴리제 그로그랭(grosgrain), 러스트링(lutestring), 아일랜드 포플린, 기계로 만든 레이스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레이스의 그물 바탕을 닮은 기계로 만든 직물인 보비네트(bobinet)는 1809년 생산되어 1820년에는 플라운스는 물론 드레스 전체까지도 이 천으로 만들어졌다.인기 색상들은 1810년대에 비해서 색조가 풍부해졌다. 암록색, 자주색, 밝은 장미색, 체리 빛, 암홍색 등이 유행하였고 흰색이나 오렌지색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였다.② 네크라인(Neckline)1820년부터 네크라인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어깨에 많은 장식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렸으나 어깨점을 벗어나지는 않았다.그러나 그 뒤에는 옆으로 넓게 파서 어깨를 많이 드러내 놓는 드롭 숄더 (Dropped shoulder)가 등장했다. 또한 그 네크라인에 화려한 레이스나 러플로 장식하였고 버사(Bertha collar) 칼라가 달렸다. 버사 칼라 (Bertha collar)란 앞트임이 없이 케이프 풍으로 된 칼라로 낮게 파인 칼라 부리에 칼라를 붙었으며 짧은 소매의 구실도 한다.③ 소매 (Sleeves)1820년경부터 이미 맨 위쪽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짧게 부풀린 퍼프(Puff)소매 형태로 넓게 퍼진 네크라인 아래 조그마한 소매를 달기도 했으나 네크라인 장식이 크게 확장되어 네크라인이 소매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소매 끝에는 아주 짧은 소매 단이 있고, 위쪽에 장식을 했으며 길이는 무릎정도였 는데 왕정복고 시대 때도 거의 같은 형태였다. 머슬린으 로 장식된 것이 많았으나 목선은 원형도 있었으며 밑으 로 쳐진 덮개 모양의 목장식도 있었고, 어떤 것은 망사 나 레이스 테가 둘러진 수놓은 손목밴드와 함께 긴 소 매도 사용되었다.슈미즈의 길이는 무릎 정도나 조금 더 밑에까지 내려와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형이었다.③ 코르셋a: 가슴을 부풀리기 위한 gussetb: hip을 부풀리기 위한 gussetc: 허리를 팽팽하게 하기 위한 stitch신체를 가다듬기 위해 착용했던 코르셋은 그 형태나 재질이 시대마다 무척 차이가 많아 겉옷에 맞추어 꾸준히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를 제대로 갖춘 코르셋의 모습은 14세기에 와서야 찾아볼 수 있는데, 대개 짧고 좁은 소매가 붙어있고, 바디스를 가늘게 해주며 긴 스커트가 붙어있다. 소매의 길이는 팔꿈치 위까지였으며 목둘레는 슈미즈와 마찬가지로 크게 앞 중심이 동(胴)의 아래까지 열려져 있고 끈으로 꽉 조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코르셋이라 부르지 않고 과장적인 의상 형태에 따라 바스뀐느(basquine), 꼬르삐께(corps-pique), 꼬르발렌느(corps baleine) 라는 구성기술상의 진보에 따라 특징을 나타낸 명칭이 불려졌으며 코르셋은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코르셋은 옷감사이에 고래수염이나 등나무 줄기를 넣고 촘촘하게 누분 것이 대부분으로 앞 중심선에 뼈와 같은 바스끄(bask)를 넣고 코르셋의 아래 도련은 일정한 간격으로 째어진 것처럼 탭(tab)형태로 되어 있어서 엉덩이의 곡선에 자연스럽게 맞도록 구성되어 있다. 코르셋은 여미는 것이 대부분이고 두껍고 거친 직물로 만든 것이 있으며 실크로 겉을 싸고 수를 놓아 장식한 것도 있었다. 슈미즈 위에 코르셋을 입어 허리를 가늘게 조이고 아래는 후프를 입어서 스커트를 뻗치게 하였다.17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사이에 사대부인이 사용한 코르셋으로 궁중세력이 강화되면서 다시 귀족풍이 유행하게 되어 네덜란드풍후에 가는 허리가 모드의 중심이 되자 더욱 세련되어 갔다. 이 코르셋은 부풀린 스커트가 유행한 18세기 로코코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고 좀더 정교해져서 유방을 떠받치고 허리를 가늘게 보이도록 전 세기보다 제작기술이 발달되었다. 코르셋을 가봉하고 있는 것으로써 코르셋을 만드는 데는 힘이 필요하고 숙련과 끈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남성이 모두 점유하고 있었다.꼬르발렌느에다 고래수염으로 채운 넓적한 바스끄를 집어넣은 것 외에 발렌느 드 드레사지(baleine de dressage)가 있었다. 이것은 유방의 선과 같은 모양의 곡선으로 된 고래수염을 가슴 부분에 지면과 수평 방향으로 삽입시켜서 곡선을 다듬고 등에는 지면과 수직 방향으로 직선 고래수염을 지어 넣어 판판하게 다듬은 것이다. 꼬르발렌느처럼 버팀대인 바스끄, 고래수염, 헝겊 등의 이음선의 방향은 모두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앞 중앙을 향해 V 자처럼 선을 만들며 구성되었다. 그리고 고래수염을 전체적으로 지어 넣고 3-4㎜ 간격으로 중앙을 향해 대각선 방향으로 꿰맸기 때문에, 늘어나지 않고 몸을 조이는 데 성능이 좋았다. 그러나 고래 뼈와 고래수염 등을 넣어 촘촘하게 바느질한 것은 허리를 가늘게 하는데 퍽 효과적이었으나 입고 활동하기에 불편해서 그 정도를 줄여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것도 고안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코르셋의 형태나 재료에 많은 발전이 있어 점차 합리적인 속옷이 되었다.④ 후프(Hoop)둥근 뼈대나 밴드로서 의복을 과장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써 겉모양으로 15세기말 스페인의 귀족들이 그들의 권위와 부를 나타내기 위해 베르뛰가뎅(vertugadine)을 사용하였다. 프랑스식에는 롤(Rool)형과 휠(Wheel)형이 있는데 롤 형은 속에 심을 넣고 면직물로 싼 튜브형태로서 앞에서 끈으로 매게 되어 있으며 휠 형은 오쓰 뀌 (Hausse cul : 엉덩이 받침이란 뜻)라고도 하며 16세기 후반에 나온 것 이고 이런 것들은 병행해서 사용되었다.-파니에(Panier)네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