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과 개화기 국어들어가기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근대 문화와 근대사상은 이 나라에 반봉건의 개혁과 독립 자주적 역사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한 개혁과 독립 자주적 역사 의식의 하나로 민족의 얼을 담은 국어의 연구로 전개되고, 그 연구는 신학문의 새로운 방법에 의하여 연구 분석되어 나갔다. 이러한 국어학 연구를 형성한 선각자는 한힌샘 주시경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주시경과 개화기 국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머물기우선 주시경과 개화기 국어에 대해 알아보려면 개화기 국어의 선각자라고 볼 수 있는 유길준에 대해 먼저 알아보려고 한다.유길준은 일본과 미국 유학 중의 자료와 귀국하는 도중에 유럽 각국을 둘러보면서 견문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서유견문"을 저술하였다. 갑오개혁 되면서 등용되어 일본에 가는 길에 가지고 가 1895년 간행하기에 이르렀다.그 내용은 크게 여행기, 서양 문물에 대한 소개, 개화 사상, 애국심의표현 등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가장 많은 분량은 서양을 소개하는 내용으로서, 이에는 국가의 권리, 국민의 교육, 국민의 권리, 정부의 종류 및 정치 제도, 정부의 기능, 조세, 화폐, 법률 등 서양의 정치, 학문과 각종 풍속, 신앙, 산업, 문명의 이기 등에 관해 소개와 해설을 함께 싣고 있다.서유견문은 그 문체가 전통적인 문체에서 벗어나 국·한문을 혼용하고 새로운 문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국어학 상으로도 귀중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19세기 말 외세가 침투하는 상황에서 나라의 자주 독립 유지와 근대 국가로 발전하는 개화 운동의 사상적 측면과 서양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 가는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이렇게 하여 서구 문법을 도입한 최초의 문법서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데, 유인본(油印本)인 유길준의 (1906)이 바로 그 것이다.이 책은 총론과 언어론 및 문장론의 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8품사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조사, 접속사, 감탄사)이고, 역사지지특별과를 졸업하고 1900년 6월 보통과를 졸업했다. 그는 배재 학당 시절 독립신문사에서 서재필의 언문 조필로 있으면서 철자법을 통일할 목적으로 1896년 국문 동식회(國文 同式會)(한글 맞춤법 통일을 위한 모임)를 신문사 안에 설립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1907년 지석영이 만든 국어연구회(국문 연구소)의 회원으로 4개월 간 활동했으며, 같은 해 7월 학부(지금의 교육부) 내의 국문연구소 주임위원으로 임명되어 3년 동안 국문 연구 안을 작성·제출·토의했다.(국문연구 의정안을 만듬) 상동청년학원(상동(尙洞)교회) 안에 개설된 하기(夏期)국어강습소(1900년부터 강의 시작)의 졸업생과 유지들을 규합하여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한 후 2년 동안 이끌었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조선 언문회(배달말글몬음)로, 강습소는 조선어 강습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13년 학회의 이름이 한글모로, 1914년 조선어 강습원의 이름이 한글배곧으로 다시 바뀌었다.(후에 한글학회) 이 단체들의 회장이자 강사로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1909년에는 J.S.게일, 다카하시[高橋亭] 등과 더불어 한어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이화학당·흥화학교·기호학교·융희학교·중앙학교·휘문의숙·배재학당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상동교회 내의 상동청년학원과 여러 강습소를 중심으로 국어 강의를 전개했다. 1900년 상동사립 학숙에 국어문법과를 부설하고 1907년 여름에 상동청년학원의 국어강습소, 같은 해 11월 같은 학원에 설치된 국어야학과, 1908~09년 국어강습소, 1910년 재령 나무리강습소 등의 많은 강습소를 통해 음학(音學)·자분학(字分學)·격분학(格分學)·도해학(圖解學)·변체학(變體學)·실용연습 등을 가르쳤다. 그에게서 직접·간접으로 배운 사람들은 김두봉·이규영·최현배·김윤경·권덕규·신명균·장지영·이필수·김원우·정열모·이윤재·이병기·김두종·백남규 등이다.(2) 학문주시경의 국어학은 갑오경장 뒤에 대두한 과학적인 신문학과 민족 자존의 사상에 터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 학설의 확립은 그의 "말의 소리"(1914)에서 이루어진다.우리말 연구를 역사적으로 볼 때, "훈민정음" 시대로부터 갑오개혁에 이르는 국어학은 문자학과 더불어 음운학이 거의 전부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음운학의 연구는 오늘날과는 다른, 조음학과 동양의 역철학(易哲學)에 의한 이원적인 언어관 밑에서 이루어졌음이 특징이다. 그러던 것이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학자 중에 최광옥(崔光玉), 유길준(兪吉濬), 주시경 등을 기점으로 최초로 이른바 "문전"이나 "문법"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게 되고, 그 "문전"이나 "문법"에 나오는 말의 소리에 관한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역철학적 언어관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리고, 말의 소리에 대한 연구에서 근대 과학적인 뜻을 찾으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특히 이러한 기운은 주시경의 연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1. 소리의 낱덩이 인식과 물리음향적 이해 및 변별적 이해주시경의 소리갈(음성학)(소리를 연마한다)에서는 조음음성학적 설명 및 소리의 기준을 세우는데 얼마간의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낱덩이(단위)에로의 음성 분류와 과학적 음성관은 말소리의 물리음향적(物理音響的)인 이해와 변별적 이해에 효시가 된다.2. 소리 배합과 낱내(음절)의 인식말소리를 낱덩이로서의 낱소리로 인식할 뿐 아니라, 낱소리의 배합 관계에 착안하여, 거기에서 이른바 낱내(음절)를 유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어에 있어서의 낱내의 유형의 임시와 그 낱내의 특장 곧 닫침낱내(폐쇄음절)와 열림낱내(개방음절)등을 밝혔다. 오늘날을 빌린다면 이는 하나의 음운배합론(phonotactics)이라 할 만하다3. 조음음성학과 물리음향학적 배경에 따른 얹힘음운의 인식소리갈(음성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조음음성학과 물리음향학적 배경에 따른 얹힘음운의 인식이다.얹힘음운음소 : 분절음 - 자음, 모음운소 : 자립분절음 - 고저, 강약, 장단 (얹힘음운)4.소리 규칙의 발견과 형태음소론의 태동주시경의 말소리에 대한 연구에서는 말소리의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몸씨 실질 형태소), 겻(助), 잇(連), 언(冠), 억(副), 놀(感), 끗(終)//(-토씨) "의 9품사 체계는, 그의 최종적 학설이라 할 수 있는 "말의 소리"(1914) 끝 부분에서는, "임, 잇, 움, 것, 잇, 긋(끗)"의 6품사 체계로 바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결국 주시경의 품사 체계는 6품사 체계라고 할 수 있다.2) "늣씨"와 형태소"말의 소리" 끝 부분에서는 "늣씨"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다. 이 "늣씨"는 분석하여 놓은 결과로 보면 꼭 이는 오늘날 최소의 뜻 단위인 형태소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낱말을 더 작은 뜻의 "낱덩이"로 분류한 것을 "늣씨"로 생각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본다면 주시경은 그의 최종적 학설에서서 낱말의 하위 분류도 뜻의 더 작은 낱덩이 곧 최소의 뜻 단위인 형태소를 분석하여 본 우리나라 최초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3) "씨몸바꿈(말의 씨가 몸을 바꾼다 예)동사가 명사로...)"과 "씸몸셈"을 통한 형태론적 변환과 조어법(파생법, 합성어)인식"말의 소리"에는 말본의 측면에서 볼 때 위에서 언급한 6품사 분류 체계와, "늦씨"에 대한 그 밖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없다. 나머지 말의 본에 관한 특징은 "국어문법(國語文法)"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그 특징의 하나가 "씨몸바꿈"과 "씨몸셈"을 통한 형태론적 변환을 인식한 그것이다. 씨몸바꿈은 그의 기록대로 보면, "기(씨)몸박굼"인데, 이는 오늘날 파생법(派生法,품사전성)에 해당하고, "씨몸셈"은 "기(씨)몸헴(셈)"인데, 오늘날의 합성법(合性法)에 해당한다. 이러한 파생법과 합성법의 인식은 곧 조어법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위의 "기(씨)몸박굼"은 후계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최현배님의 "씨끝바꿈"에서의 갑목법(자격법)과 씨몸바꿈의 체계의 확립으로 나타난다.4) 씨뜻바꿈 체계주시경님의 말본에서는 "기(씨)뜻박굼" 이 풀이되어 있다. 이는, 형태 배합에 따라 일어나는 뜻의 변화를 살핀 것으로, 형태 배합과 관계되는 것이다.주시경의 위에 말한 "끗기(씨)"(종지사)의 하위 분류를 통하여 제시해 준 말본(문법)의 범주로, ⓐ敍法(서법)과 ⓑ 時(시)·相(상)문제와, ⓒ 尊待(존대)법의 문제를 들 수 있다.ⓐ 敍法(서법)의 범주주시경은 서법의 분류 원칙을 분명히 밝히지는 아니했으나 뜻매김으로 보아서 "말하는 당사자(말할이)"의 말을 중심하여 분류한 흔적이 짙다. 주시경은 그러한 말하는 당사자의 말을 중심으로 서법의 분류를 "이름"(서술, 진술), "물음"(의문), "시김"(시킴, 명령), "홀로"의 넷으로 나누었다.이러한 서법의 문제는 외솔(최현배)에 와서 "끝바꿈(語尾活用)체계로 발전하여 끝바꿈을 "마침법, 이음법, 감목법"으로 나누고, 그 중, 마침법을 말할이와 말들을 이와의 관계를 따라, "베풂"(서술, 진술), "물음"(의문), "시킴"(명령), "꾀임"(유인)의 네 가지로 나누기에 이른 것이다.ⓑ 時(시)·相(상)문제주시경의 "잇기(씨)"(접속사)와 "끗기(씨)"(종지사)에서는 때(時間)의 개념과 이른바 상의 개념을 추출해 볼 수 있다. 곧 하나의 때를 나타내는 표지에서 때와 상에 해당하는 개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는 매우 흥미 있는 이른바 시·상의 관점이다.시제 : 동작(사건)이 발생한 예⇒ 발화시(U.T-Utterance Time)를 기준으로 한 동작시(A.T-Accident Time)의 선후관계.상 : 동작의 종류작게는 시작, 진행, 완료로 크게는 시작과 완료로 나누어짐ⓒ "序分(서분)"과 尊待法(존대법)문제주시경이 말한 序分(서분)의 분류를 통하여 우리말의 존대(높낮이) 관계를 엿 볼 수 있다. 주시경에 따르면 "임기(씨)"(이름씨, 명사)나 "끗기(씨)"(종지사)에서 지표 되는 높낮이 존대는 말할이와 말들을이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존대의 형성 요인을 "長幼尊卑"의 "나이"에 둔다는 사실이다.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주시경은 존대의 초점을, 비록 말할이와 말들을 이와의 상대관계를 생각하면서, 그러나 말할이보다는 들을이
四學-일본어 중국어 몽고어 만주어1. 서론일본인의 본격적 국어연구는 서양인에 비하여 시간적으로 뒤떨어진다. 역사적으로 한일 양국의 정치적 교섭이나 일본학자의 연구업적을 1892년 대마도 嚴原에 조선어학소를 설치한 이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그들은 政治的 野心과 國力을 배경으로 하여 집단적으로 學校敎育을 통하여 국어를 연구했다. 國語硏究에 있어 西洋人보다 出發은 뒤지지만 地理的으로 인접하고 국내 사정에 어느 정도 정통하며 우리의 言語와 文學에도 基礎知識이 있었다. 그리하여 비교적 많은 論文과 單行本이 나왔으며 國語의 科學的 硏究에 기여한 바가 크며 시대의 나아감과 더불어 독무대를 이루었다.2. 일본인의 국어연구1)國語語彙에 對한 硏究① 國語學習書일본인의 國語硏究는 서양인에 比해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서양인이 우리나라의 過去事精에 어두웠을 뿐만 아니라 生活制度·方式의 모든 짐이 그들에게는 未知의 世界이어서, 전혀 백지의 상황에서 출발한 데 대하여, 일본인은 과거의 政治的交涉으로 우리나라의 事情에 어느 정도 통하였고 언어에 대해서도 약간의 基礎知識을 갖고 있었으므로 서양인들보다는 유리한 입장에서 국어연구를 할 수 있었다.日本人 雨森芳洲는 國語學習書로서 "全人道人"은 英祖 5年(1792 A.D.)에 著述된 것인데, 忠臣· 孝子·節婦 등에 관한 佳話를 모은 韓國書 「三綱行實·五倫行實」등의 韓國文에 日本文의 對譯을 붙인 것이며 또"交隣順知"는 對馬通事의 原編纂한 것인데, 여러 사람에 의하여 여러 번 增補校訂 印刊되었다.② 國語의 語源일본인들의 國語의 語源에 대한 업적은 크게 평가할 것은 못되더라도 여기저기 文獻에 발견되는데, 그 중 韓國語의 語源 등에 언급한 著書를 들면·新井白石, 東雅(20卷), 1717.·白島庫吉, 韓國古代城邑의 稱號인 忍(kol)골짜기-의 原義(史學雜誌 所載論文)城(성),邑(읍),村(촌)-북방: 忽(홀) →xol〉kol남방: 伐(벌), 불 →pal·中田薰, 郡·村이란 語의 原義(國語學會誌 論文), 1905·金澤庄三郞, 郡村이란 語原에 대하여(史學雜誌 論文), 1902등이 있다 .2) 國語 系統에 對한 硏究國語의 系統論問題에 關하여 서양인의 關心은 일찍부터 큰 바 있어 이에 대한 論及이 매우 多岐多樣한 터이다.日本人 學者들도 韓國語가 日本語 또는 琉球語와의 比較에서 同系語임을 主張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 論文이나 著述에 나타나 있다.國語의 系統에 관한 서양인의 韓日同系說과 北方說이 제기된 이후, 일인들도 대체로 大矢透와 小倉進平이 알타이語 系統說을 高僑二郞·赤峰瀨一郞·白烏庫吉·中田薰·官崎道三郞·金澤庄三郞은 韓日語同系說을 주장하였다.이것은 그 당시의 韓日間의 미묘한 政治的 關係에 있어서 國第上의 問題가 介在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大矢 透의 韓日語同系說은 結局 兩國語가 다 알타이어 계통이란 주장 인 듯하다.3) 國字에 對한 硏究日本人의 國字에 對한 關心의 始初者는 伊 東涯인 것 같다. 그는 肅宗30年(1704)에 저술한"紹述雜抄" 卷 14에서 "朝鮮諺文八字母反切二十八字"라 하여 최세진 훈몽자회의 것을 옮겼으나, 일본인 初學者를 위한 것이므로 注目 할 만하다. 또 英祖 35년(1759)의 松岡玄達의 "紹 錄"(3卷)에도 훈몽자회에 의한 국자에 관한 설명이 보인다. 그리고 英祖 39년(1763)의 靑木昆陽의 "昆陽漫錄"과 純祖 34년(1834)의 行智의 '麗本', 黑川春村의 '音韻考證'(哲宗 13년, 1862), 小田管作의 '象胥紀聞拾遺(1841)', '類聚物明考'(山岡浚明) 등에도 國字에 관한 논설이 있다.4) 國字起源에 대한 연구일본인 학자들의 국문자 기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서양에 만치 활발하지 못하였으나 개략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伊藤東涯는 '紹述雜抄'(1709)중 三韓紀略 에서 方諺略이라 나타내고 諺文悉 起源說을, 山岡浚明은 '類聚明物考'에서 한글 문체가 梵字에 의하여 만들어졌음을, 行智는 '麗本'(1834)에서 단언은 하지 않았으나 吏讀起源說을, 白島考吉은 '諺文'(1897)에서 梵字→八西藏文字→八思巴文字에서 한글이 나왔다고 八思巴文字起源說을 주장한 바 있으나, 후에 發音器官象形說로 수정하였다. 발음기관상형설은 당시로서는 주목할 만한 가치 있는 說이라 하겠다. 金澤庄三郞은 '日本文法新論'(1912)중 문자론에서 梵字가 韻鏡을 거쳐 한글에 간접영향을 끼쳤다고 하면서 梵字起源說을 내세웠다. 그는 언문이 國字로 정해진 것은 세종 28년이나 기원은 고려조말경 불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하였다. 또 高稿亨은 八思巴文字起源說을 주장하였다.5) 國語文法에 대한 연구일본인의 한국어에 대한 연구가 會話習得의 필요에서 출발하였다. 그들의 문법연구도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고, 가장 권위있는 문법서로 알려져 있는 韓語通에서도 많은 회화문의 용례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법연구가 주로 일본문법과의 비교에서 회화습득의 편리를 도모하는 데 있었다.(1) 韓語通(前間恭作, 1909)① 품사분류는 日本文法에 따라 10품사(명사·수사·대명사·동사·형용사·부사·접속사·감동사· 爾乎波·조동사)를 설정하였고,② 명사에 있어서는 어근을 밝혀 말음절(末音節)에 따라 분류하고, 관형사에 해당하는 것을 접두어로 처리하였으며,③ 수사는 명사의 성질을 가진 것, 명사 위에 관(冠)하는 것, 년월일을 표하는 것, 순위로 표하는 것의 네 가지 구분하고,④ 爾乎波는 일본어의 조사와 대응시켜 설명하였고.⑤ 대명사는 人대명사와 의문대명사의 둘로 구분하고, 人대명사에는 제1인칭·제2인칭·제3인칭을, 의문대명사는 人·事物·場所·時·不定·數·指示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⑥ 어간은 받침 여하에 따라 분류하고, 相에는 所相·勢相·使役相이 있고, 稱에는 尊稱을 들어 설명하였으며, 법에는 道設法·疑問法·命令法·連用法·接續法·連體法·揷入法·不定法 등을 두었다. ⑦ 부사에는 긍정·부정을 뜻하는 것, 첩어(疊語)의 부사를 들고 있다.(2) 韓語文典(高稿亨, 1909)①품사분류는 역시 10품사를 설정하였고, 명사·대명사·수사를 體言이라 하고 활용하는 형용사·수사·조동사를 用言이라 하였다.②대명사에 있어서 인칭을 自稱·對稱·他稱·否定稱으로 바꾸고, 사물에 관한 것은 近稱·遠稱·中稱으로 분류한 점.③체언은 조동사 '이다'를 취하여 疑問·指定·時間 등을 표시한다고 하였으며,④ 용언은 조동사와 어울려서 활용한다 하고, 그 형태는 活用態라 한 점.⑤ 變格活用을 설정하는 점.⑥ 동사의 자동·타동을 性이라 하고, 조동사를 독립품사로 설정한 점, 그리고 동사의 相에는 通常·使役·被動의 세 가지가 있다 하였고,⑦ 조사를 독립품사로 다루었다.⇒ 그밖에 많은 저자들 또한 국어문법을 썼는데, 自國語를 지문으로 하고 自國語 문법체계를 骨子로 하여, 이에 맞추어 꾸미려는 力量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畸形的인 것이 되어버렸다.6) 音韻에 대한 연구음운에 관해서는 韓語通이나 韓語文典에서도 소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즉, 韓語文典은 총 233면으로 문자 및 음성에 관한 것은 불과 14면에 지나지 않고, 韓語通도 총 360면에서 음성에 관한 것은 30면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어를 학습하는데 필요한 정도로 발음을 설명하는데 그쳤으니, 그들이 문법보다 음운에 대한 연구를 비교적 소홀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1)韓語文典(高稿亨)① 子音組成規則·合音의 規則·轉音 및 連聲의 3절로 나누어져 있다.② 자음조성규칙에서는 모음과 자음이 결합하여 音節字를 구성하는 원리를 설명하였다.③ 合音의 규칙에서는 된소리·받침·자음과 모음의 결합원리를 설명하였다.④ 전성에서는 자음동화현상을 설명하였다.⑤ 連聲에서는 '받침'이 모음과 連續할 때 다음 음절의 頭音으로 내려가 발음됨을 발하고 있다.⑥ 子音을 父音, 음절을 子音, 硬音을 절박한 半濁音이라 하고, 음운이 점차 간략화하는 경향에 있으며, 아프오 더 단순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⑦ 9종의 자음동화를 들고 있다.ㄱ>ㆁ, ㄹ>ㄴ, ㄹ>ㆁ 또는 ㄴ, ㄹ>ㄴ, ㅅ>ㄴ, ㅅ>ㅊ 또는 ㅌ, 淸音>半濁音, ㅂ>ㅁ, ㅅ+y+ㅇ>ㅅ+ㅇ(2) 韓語通(前間恭作)① 모음에 'ㅏㅗㅜㅓㅖㅡㅣㆍ'자음에 'ㄱㄷㅂㅈㅅㄴㅁㅐㄹㅎㅋㅌㅍㅊㅺㅼㅽㅾㅆ'이 있다고 하였다.②「ㆍ」음은 불판명하게 발음하는 모음, 「ㅖ」를 일본음 「ェ」와 비슷한 음이라 하였으며, 모음에는 각각 장단 2종이 있다고 하였다.③ 자음을 普通子音 'ㄱㄷㅂㅈㅅㄴㅁㅐㄹㅎ', 氣音 'ㅋㅌㅍㅊ', 詰音 'ㅺㅼㅽㅾㅆ'으로 분류하였고, 보통자음은 유성자음에 비슷하게 발음하는 수가 있으며, 유성자음이 없는 대신 詰音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④ 小失字 의 音價를 추정하였는데, 'ㅿ'음 '日'의 중국초성과 같고, 'r'에 가까운 'j'음이라 하였으며, 'ㅸ'은 'w·f' 또는 'v'에 유사한 일종의 자음이라 하고, 'ㆁ'와는 구별되었다고 하였다.그리고 'ㅈ'은 'ts', 'ㅅ'은 '샤셔쇼슈'는 지금 '사서소수'와 같이 발음하고, 'sh'음은 현재는 없으나 한자음에서는 구별이 있으며, 'ㆆ'음은 그 뜻을 해석하기 어렵고, 실제사용은 詰音을 표시할 때, 'ㅈ'앞에 사용된 약간의 용례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⑤ 'ㅏㅗㅜㅓㅖㅡㅣㆍ'는 'ㅣ'와 결합하여 初母音을 만드는데, 이 경우 'ㅣ'는 'ィ'보다 'ェ'에 유사한 발음을 한다고 하였다.7) 일본인들의 국어연구의 본격화일본인들의 국어연구는 1920년대 들어와서 본격화하여 학문으로서 깊이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小倉進平·前間恭作·高稿亨·河野六郞 등의 연구는 국내학자들에게 많은 영향과 자극을 주었다. 여기서는 小倉進平·前間恭作·河野六郞을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