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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체의 윤리학
    < 목 차 >Ⅰ. 서 론1.도덕에 관한 회의Ⅱ.선과 악의 개념과 公同善의 가치1.그 동안의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하여2.망상에 따르는 公同善의 가치Ⅲ.노예의 도덕반란과 주인의 도덕1.도덕에서의 노예의 반란2.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Ⅳ.양심 죄의식1.양심의 개념2.양심Ⅴ.죄의식1.강제한 선한의지의 결과는 죄의식2.양심의 가책Ⅵ.금욕주의적 이상과 극복1.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질병에 대한 극복3.극복인(Ubermensch)Ⅶ.결 론Ⅰ.서 론1.도덕에 관한 회의오늘날 유럽에서의 도덕 감각은 섬세하고 말기 단계이며 다양하고 민감하며 세련되었는데 그에 속하는 도덕학 은 아직 젊고 미숙하며 서툴고 조야하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그동안 자명하게 여겨왔던 도덕에 대하여 회의를 품으며 우리가 알고 있던 도덕에 대해 순진한 믿음을 멀리하라고 외친다. 그 누구도 해치지 말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도와라. 이것이야말로 진정 모든 윤리학자가 정초하려고 노력하는 명제다… 이것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현자의 돌처럼 사람들이 찾았던 윤리학의 진정한 초석이다. ) 이러한 문장으로 그동안의 도덕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이 힘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이 세계 속에서 이 명제가 얼마나 무미건조한 거짓이고 감상적인지를 표현하고 있다.그는 자신의 저서『도덕의 계보』에서 그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으며, 실천하는 모습은 병든 것이며 그 이전의 윤리학자들의 도덕적 주장과 2천년의 서구 사상을 지배했던 기독교 사상에서의 당연시 되었던 도덕적 가치들에 대하여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Ⅱ.선과 악의 개념과 公同善의 가치1.그 동안의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하여니체는 그동안의 도덕관에서 말하는 善과惡의 대립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선과 악이라고 불리는 진부한 망상이 있다. 저들은 낡아빠진 자부심 하나를 갖고 있었다. 저들 모두는 사람에게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사가 되는 것이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Ⅲ.노예의 도덕반란과 주인의 도덕1.도덕에서의 노예의 반란그렇다면 언제부터 귀족적인 정신인 전쟁과 힘, 강한 몸과 모험, 그리고 활력이 넘치고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들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적들을 불신과 증오 또는 감금으로서 제거하는 가치전도의 상태를 이어받은 두려움의 사회의 살고 있는 자발적 전사가 된 것일까? 그것은 역사적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지배권이 교회와 성직자들 에게로 넘어갔을 때 이러한 성직자 귀족들은 초기에 등장하였던 선의 개념을 니체가 무리와 군중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한 비천한 善의 개념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비천하고 저급하고 무의미한 정신을 지칭하였던 나쁨의 개념을 公同惡으로 바꾸어 버렸으며, 유대인들을 이러한 성직자 부류에 속하는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으며, 그 책임은 기독교인들이 이어받아 지지하고 더욱 확대하여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배후에는 2천년의 역사가 있으며 바로 이 반란 때문에 우리의 눈이 멀게 된 것이라 하였다.성직자 민족인 유대인, 이들이 자신의 적과 압제자에게 결국 오직 그들의 가치를 철저하게 전도시킴으로써, 즉 가장 정신적인 복수 행위로 명예회복을 할 줄 알았다 )2.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니체는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이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강한 자들을 사악하다고 부름으로써 복수를 시도하지만 단지 상상적인 복수, 즉 그들의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복수에 그친다. 자신들을 긍정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과는 달리 노예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즉 주인들이 내세우는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낸다.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 자기가 아닌 것 을 부정한다 : 그리고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가치를 설정하는 시선을 이렇게 전도시키는 것 - 이렇안정, 평화, 안식일 , 정서적 긴장 완화, 안도로, 수동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니체는 주인의 도덕에서 발견되는 좋음과 나쁨 사이의 대립이 원한으로부터 등장한 善과 사악함이 전혀 다른 사실을 강조하면서 주인의 관점에서 우월하고, 강력하고, 통치하는 선한 자와 대비되는 노예의 약한 자의 관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두 도덕 사이에서 가치의 재평가뿐만이 아니라 가치의 전도를 발견하게 된다.그러나 원한의 도덕이 너무나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서 원한과 본능과 반응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 이른바 문화의 도구들이 되었다며 노예의 승리를 일종의 퇴보라고 말하였다.Ⅳ.양심1.양심의 개념니체는 양심의 형성과정과 죄의식의 등장을 추적하여 노예 도덕의 중요한 요소를 찾아내었다. 이러한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책임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속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 확실히 결정하고 대략 계산하며 산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야만 하지 않는가! - 약속하는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듯이, 결국 그러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보증할 수 있기 위해서, 인간 자신은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의 관념에 대해서조차도 예측할 수 있고 규칙적이며 필연적인 존재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약속을 통한 자연스러운 개인은 사회적 강제와 풍습의 도덕 이라 불리는 거대한 작업을 통해 예측될 수 있도록 만들어 졌으며 철저히 조직화된 개인으로 변질 되었다. 풍습의 도덕 즉, 관습화 된 도덕은 책임이라는 이상한 특권에 대한 자랑스러운 인식, 희한한 자유에 대한 의식, 자기 자신과 운명을 지배하는 이 힘에 대한 의식은 지배적인 본능이 되었으며 이러한 본능을 양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2.양심양심의 본능에 대해 니체는 인간은 기억을 통해 신경과 지성의 전 조직에 최면을 걸었으며 그 과정을 인간의 역사에 등장하는 형벌에 관한 기억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심리학적 견해를 피력한다. (이것은 융의 집단무의식이 니체의 영향을 받속성으로 변질 시킨 것을 망각하였으나, 고대인 들인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최고의 매력을, 삶에 이르는 진정한 유혹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다시 현대인들로 돌아가면 사회의 법들을 준수 하고 이익에 자기 몫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채무로 생각하고 이것을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죄의식의 개념이 형성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당한 그 것에서 정의와 부정이 생겨났으며 사회의 범죄자들의 대항해 채무를 모아서 집행하는 개인과 무관한 폭력을 사용하여 삶의 본질을 왜곡 하였고 그러한 폭력을 힘의 열등한 자들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강제하는 선한 의지라고 말한다.1.강제한 선한의지의 결과는 죄의식이렇게 강제한 선한 의지에 대해 니체는 밖으로 발산되지 않은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하게 된다. - 이것이 내가 인간의 내면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 이것으로 인해 후에 영혼 이라고 불리는 것이 인간에게서 자라난다. ) 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과 반대되는 것에 관해 적대감을 느러내었고 이러한 본능을 발산하는 것을 죄의식으로 왜곡하며, 이곳에서 형벌을 통한 죄의식을 구축을 통해 스스로의 방어선인 양심의 가책 이 생겨난 것이다. 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인간의 저 본능을 모두 거꾸로 돌려 인간 자신을 향하게 하는 일을 해냈다. 적의, 잔인함과 박해, 습격이나 변혁이나 파괴에 대한 쾌감 - 그러한 본능을 소유한 자에게서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 이것이 양심의 가책 의 기원이다. ) 이렇게 오래된 본능의 표현을 죄의식으로 설정하고 양심의 가책을 갖게 됨으로써 정복자에 대해 스스로 복종하는 것, 자유를 향한 본능을 억압하게 되었다.2.양심의 가책니체는 자유를 향한 본능을 힘에의 의지 라 부르며,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산하려 한다… )라고 표현 한다. 결국 양심의 가책이야 말로, 자기를 학대를 하려고 하는 의지야말로 모든 비이기적인 것의 가치를 낳는 전제이며 양심의 가책이라는 질병으로부터 도덕적 이상의 아름다움이 생겨났다.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은 구원을 통한 최후의 영예 욕이며, 신속에서의 안식이고, 찬란의 형식이라 부른다. 금욕주의적 이상이 이간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 안에는 인간 의지의 근본 사실, 즉 인간 의지가 지닌 공허의 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 이러한 표현의 일면에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도덕주의자들의 삶의 부정, 감각을 믿지 않고 관능에서 벗어나려는 부분과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의 실재를 강조하면서 감각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지극히 낮게 평가하며 현실적인 삶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이러한 삶의 방식에 있어 쾌락은 사악함으로 전락하며 삶과 대결을 벌이기 위해서 삶을 생각하고, 창조하고, 훈련을 하기위해 잠시 삶으로부터 피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삶을 증오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부정은 삶에 대한 일종의 자기모순과 불합리를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금욕주의적 이상은 심각하게 고려되어 본 일 이 없는가?금욕주의적 이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을 다른 생존을 위한 하나의 다리이며, 원한이 힘의 의지를 지배함으로써 죽음의 고통에 대해 승리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견줄 데 없는 원한이, 즉 삶에서의 어떤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 그 가장 깊고, 강력하며, 가장 기저에 있는 조건들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기갈 들린 본능과 힘 의지의 원한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힘의 원천을 봉쇄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바로 마지막 죽음의 고통 속에서의 승리. )이러한 금욕주의적 삶은 성직자들을 통해 자신 안에 놓여있는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고 삶을 부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을 보존하고 거대한 힘 옆에 양심의 가책을 만들어 낸다. 또한 성직자들은 원한을 통한 보존으로 비참함을 감싸는 나쁜 질병을 퍼뜨린다. 즉 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에 대해서!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에 대해서!… )이들은 고통 받는 자에게 자신의 기교를 과신하다.
    인문/어학| 2007.10.24| 9페이지| 2,000원| 조회(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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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의 선험적 인식론
    -칸트의 선험적(先驗的) 인식론(認識論)-철학과 4학년20020353손동천1. 칸트의 철학내가 말하는 비판은 서적이나 체계의 비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모든 경험과 독립하여 추구할 수 있는 인식에 관한 이성능력 일반의 비판, 따라서 형이상학 일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결정, 형이상학의 원천 및 범위와 한계의 확정―이 모든 것은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을 의미한다.)영국의 경험론은 회의론(懷疑論)에, 대륙의 합리론(合理論)은 독단론에 빠졌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칸트(I. Kant, 1724~1804)이다. 경험론은 인식의 기원을 경험으로 보고 이성의 작용을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이성론은 이성을 만능의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양자가 모두 오류에 빠졌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작용의 검토, 즉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칸트 철학을 비판철학(kritische philosophie)이라고 부르는데 비판이란 어떤 주어진 사실이 진리성임을 주장할 경우 그 주장하는 근거와 권리를 탐구 분석하는 것, 즉 참된 인식이 성립하는 과정을 구명하는 것이다.)칸트는『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의 세 가지 비판서를 저술하였는데), 각각 진리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선(善)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미(美)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진(眞)-선(善)-미(美)의 가치의 실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인식론에 관한 것을 다룬 부분이『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는 순수 이성을 모든 경험에서 독립한, 곧 선천적(a priori)으로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인식 능력이라고 부른다. 인식 능력은 선험적이다. 따라서 순수 이성은 우리들이 어떻든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러한 모든 선험적 원리의 총체이다. 순수이성비판은 인식 능력의 이러한 선험적 원리에 대한. 따라서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관의 인식능력 및 인식작용, 그리고 이 능력에 근거하는 인식조건들에 대한 문제가 먼저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위의 인식방식들이 선척적인 한, 이것들을 문제 삼는 인식론은 ‘선험적’이다.선험적 인식론은 선천적인 것, 즉 대상들의 선천적 인식 및 이 선천적인 인식의 요소들을 다루는 반성적 학문이다. 수학과 자연과학, 형이상학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그런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칸트의 인식론은 선험적 이론이기 때문에 이 이론이 관계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천적 인식들, 수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형이상학과는 다른 이론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 선험적 인식론은, 감성적 대상들에 향하는 수학과 자연과학, 초감성적 대상들에 관계하는 형이상학처럼 직접 대상들로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이 감성적이든 초감성적이든, 실재적이든 관념적이든 이 대상 자체에 관계하는 학문과는 전연 다른 인식방성의 학문이다. 모든 선천적 인식이 선험적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수나 삼각형 같은 관념적 대상들을 다루는 수학은 물론 객관적으로 타당하지만 결코 선험적?반성적?비판적 학문이 아니다. 수학이 객관적 인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만 선험적이라 불릴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그러한 선천적 인식들의 가능성을 다루는 선험적 인식론은 선천적 인식들의 필연적 조건들을 분석하여 이 인식들의 조건들로서 순수직관들(공간과 시간)과 순수한 논증적 개념들(실체나 원인 같은 범주들 등)을 발견한다. 이처럼 선험적 인식론은 수학과 자연과학과 형이상학, 이 선천적 인식들을 구성하고 있는 인식요소들, 즉 공간과 시간이라는 우리의 순수직관들 및 오성의 범주들과 이성의 이념들을 포함한 우리의 순수개념들을 다루는 반성적 이론이다.)3. 선천적 종합판단칸트에 의하면, 인식은 판단이다. 판단은 명제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주어와 술어가 있다. 따라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판단에 있어서 주어의 개념 속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 이와 다르다. 종합판단에 있어서는 아직 술어 개념의 주어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종합판단은 오히려 주어개념에 전혀 새로운 술어개념을 첨부시킨다. 오로지 그렇게 하여 지식의 참다운 내용의 확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판단은 비로소 후천적(a posteriori)으로 가능하다.) 결국, 종합판단에 의해서만 새로운 지식이 얻어지는 것이다.칸트가 들고 있는 분석판단(分析判斷)과 종합판단(綜合判斷)의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모든 물체는 연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분석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나는 연장이 물체와 결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내가 ‘물체’로써 표시하는 ‘개념을 넘어서’ 나아갈 필요가 없고, 다만 이 개념을 분석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내가 ‘연장’이라는 이 술어를 주개념 중에서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가 언제든지 이 개념 중에서 사고하는 다양(多樣)이 나에게 의식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분석적 판단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라고 말한다면, 이 때에는 술어가 내가 다만 물체 일반이라는 개념 중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전연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술어를 부가함으로써 종합적 판단이 성립한다.)분석적 판단에 있어서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선천적이지만 종합적 판단에는 새로운 사실의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적이다.) 그러나 종합판단에 의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지식이 보편타당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 지식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 인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에서 독립된 선험적인 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합판단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선천적인 인식 즉 선천적 종합판단(先天的 綜合判斷)이 아니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주관의 인식형식이 곧 인식된 대상세계의 존재형식이 되며, 따라서 인간의 선험적 종합판단이 세계의 존재질서에 대한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에게 참다운 보편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인식을 열망하는 이성은 경험으로써 만족하느니보다 오히려 자극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 인식은 동시에 내적 필연성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경험과 관계없이 자명하고 또 확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선천적 인식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결국 경험에서 빌려온 것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다만 후천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인식된다.)칸트는 재료와 형식의 통일로써 경험론과 이성론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학적 인식에 있어서 인식주관의 선천적 형식을 상정하고 있는 칸트의 태도는 말하자면 대륙의 합리론의 입장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한 경험적, 즉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인식의 질료를 상정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영국의 경험론의 입장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칸트가 말하는 재료란, 외계의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우리의 감성에 주어지는 표상 즉 의식 내용을 말한다. 재료는 인식의 소재 또는 질료로서 외래적인 것이므로 후천적, 경험적인 요소이다. 한편 형식이란 질료 즉 다양한 감각의 내용을 종합 통일하는 한정성(限定性)이며 테두리이다. 즉 감각적 단계에서 형성된 각종의 질료를 통일하는 뼈대이다. 이 형식이야말로 선천적인 것이며, 그 감성적 내용에 통일성을 주는 테두리이다.모든 인식은 주어진 재료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러나 재료만으로는 인식이 성립하지 못한다. 그것을 파악하고 결합하는 인간의 능력이 첨가되어야 한다. 감각에 의해서 느껴지는 외부의 자극은 지각(Empfindung)에 불과하다. 지각은 오관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지각에 인간의 선천적인 형식이 작용해야 인식이 발생한다. 칸트는 인간의 선천적인 형식, 즉 지각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능력을 3가지로 구분한다. 감성(Sinnlichkeit), 오성(Verstand), 이성(Vernunft)이다. 감성은 지각을 파악한다. 감성에 의하여 지각은 직관(Anschauung)이 된다. 직관은 개별적인 표상(Vorstellung)이다. 부여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선험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들은 우리들의 지각을 새로운 산물로 변형시킨다.) 표상이란 공간과 시간의 형식 속에서 정리된 재료이다. 감성에 의하여 구성된 직관도 아직은 인식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직관의 단계는 어렴풋이 안개 속에서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단계와 유사하다. 이 직관을 결합하여 개념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감성이 다양한 재료를 제공해 준다면 오성은 이 재료의 통일적인 형식을 부여한다. 감성에는 형식과 질서가 없다면 오성에는 재료가 없다. 두 영역이 결합하지 않으면 인식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직관의 단계에도 공간과 시간 형식에 의한 어느 정도의 질서가 나타나지만 그것은 개별적이고 미약하기 때문에 오성의 도움 없이는 완전히 인식되지 못한다. 오성은 감성이 제공한 직관이라는 재료를 결합하여 개념을 형성하는데 오성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선천적 형식이 범주(Kategorie)이다. 인식은 감성과 협의의 오성의 작용으로 완성된다.) 즉 감성은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다시 말하면 감성에 의하여 사물은 표상화 된다. 그리고 오성은 감성에 의하여 표상화 된 대상, 즉 표상을 다시 사유한다. 그러므로 오성은 감성과는 달리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념 작용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겸험은 이와 같이 두 개의 인식 기능에 의하여 구성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기능은 별개의 대상을 갖고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을 갖고 협력하여 경험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기능은 전혀 다른 작용을 하고 있으나 인식 대상은 하나이며 경험도 하나이다.)그러나 세상에는 인식될 수 없는 이념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념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이 이성이다. 그러므로 인식에 관계하는 오성과 달리 인간의 이성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대상과 관계한다. 이러한 이념의 예로서 칸트는 영혼, 세계, 신을 들고 있다. 영혼의 불멸성, 세계의 무한성, 신의 존재 등에
    인문/어학| 2007.10.20| 5페이지| 1,5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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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약용의 역사인식 평가C아쉬워요
    정약용의 역사의식1. 들어가는 말2. 다산 정약용의 생애3. 시대적 배경1) 정치적 정세2) 사회경제적 현상3) 신학풍의 대두4. 다산의 사관과 대외관1) 다산의 사관2) 다산의 대외관5. 다산의 역사인식6. 맺음말1. 들어가는 말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일컬어 흔히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한다. 정약용이 태어나서 살다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사회는 중세 농경사회에서 근대적 상공업사회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또한, 소위 영정시대로부터 문예부흥기라 불리는 신학풍이 고비를 이루는 때 인만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시기이다. 한편 정약용의 역사인식은 그의 개혁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혁사상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며 올바른 현실 인식은 투철한 역사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약용의 개혁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역사인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는 정약용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및 사상을 통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역사관과 대외관을 살펴보려 한다.2.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생애다산은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로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에서 태어난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정은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에 따른 유배를 전후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그의 사회개혁사상 역시 이에 대응되어 나타난다.먼저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는 주로 관료생활의 시기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고 15세에 서울로 올라온 후 이가환(李家煥)과 자신의 매부인 이승훈(李承薰) 등으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했다. 이미 이때부터 이익과 같은 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그의 제자인 이중환(李重煥)?안)?벽(僻)양파의 형성과, 천주교 신앙문제의 대두인 것이다. 영조 38년에 장헌세자 즉 사도세자가 폐위되고 서인으로서 뒤주 속에서 아사한 임오사건이 있자 세자를 동정하는 시파와 세자를 더욱 공격하는 벽파가 갈라져 나왔다. 시파는 대부분 남인계통이 많았고 벽파는 주로 노론계통이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남인계통의 시파를 가까이 하면서 그들을 기용한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었고 다산의 등용도 그러한 배경에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영조의 계비인 벽파계 김씨가 수렴청정하게 되자 정치적 판국은 일변 하였다. 신유사옥 사건도 그의 천주교 신자 대부분이 남인시파계통이었다는 연유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럼으로, 다산일가를 포함한 대다수의 소위 실학파 계열의인물들이 천주교 옥사에 연좌되어 몰락된 것은 신교의 문제보다도 그들의 정치적 사색당쟁(四色黨爭)의 또 다른 형태의 희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2) 사회 경제적 현상왜란(1592~1598)과 호란(1636~1637)이라는 엄청난 난리를 연거푸 두 번씩이나 치른 나라 경제는 말이 아니었으니 이 때문에 파생된 현상이 소위 삼정의 문란이다. 이는 민생고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경세실학파 대두의 배경이기도 했던 것이다.농경국가에서 이 삼정의 문란은 국가재정의 기반을 흔들어버린 결과가 된다. 동시에 사회불안의 요소도 그 안에서 빚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전란으로 농경지의 태반이 황폐해진데다 궁방전?둔전 등의 면세지와 귀족들이 대장에서 누락시킨 땅의 증가로 인하여 국고수입의 감소를 초래하게 하는 등 전정은 문란했다. 상대적으로 불쌍한 농민들의 부담만 가중하였으며 탐관오리들은 황폐한 토지에까지 세금을 부과하였다. 당시의 군정은 장정이 병역을 치르는 대신 군포를 내던 제도였는데 원래 양반 아전 관노들은 이러한 병역에서 면제되었고 악독한 서리들의 행패는 자심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헤어날 길이 없게 되었다. 환곡의 문란은 더욱 심하여 본래 가난한 빈민의 구제를 위해 미곡을 대여해 주었다가 가을에 이자를 붙여 받아들이는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본 취하기 때문인 것이다.4. 다산(茶山)의 사관(史觀)과 대외관(對外觀)1) 다산의 사관다산의 사관은 자연환경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시하고, 환경의 차이가 가져온 사회발전의 선후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흥망성쇠에 관한 해석에서, 그는 도덕주의적 해석방법을 피하고 철저히 물질적 제도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마한(馬韓)과 백제사(百濟史)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한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강역고(疆域考)』에서 다산은 한강 이남에서 형성된 마한(馬韓)의 자연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서북(西北)이 황한(荒寒)하고, 동도(東道)가 험착(險窄)하며, 영남(嶺南)은 벽원(遠僻)하고 경기북읍(京畿北邑) 또한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百姓)이 가난하다. 오직 열수(洌水) 남쪽은 마한의 고지로서 풍기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하니, 이곳은 동국의 중국이다. 그래서 마한이 당시에 주인이 되었고 삼한의 패자(覇者)가 되었다.이와 같이 자연환경에 의거해서 역사발전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에 대한 설명에서도 보이고 있다.백제는 풍속이 교사(驕詐)하고 이웃나라와 화목하지 못해서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 김부식의『삼국사기』이래로 거의 통설처럼 믿어져 왔다. 그러나 다산은 이러한 도덕적 해석방법을 따르지 않고, 수도를 남쪽으로 옮긴 천도의 실수에서 멸망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백제론」에서,백제는 삼국 중 가장 강했으나 가장 먼저 망했다……어떤이는 말하기를, 백제의 풍속이 교사(驕詐)하고 이웃나라와 화목하지 못해서 쉽게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백제의 단점이 될 뿐이며 나라가 망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 하여 백제가 삼국 중 가장 강성하였으면서도 가장 먼저 망한 원인으로서 풍속이 교사한 것과 이웃나라와의 불목(不睦)을 들지만, 이러한 조건들은 백제의 단점은 될지라도 멸망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이어서 백제가 요새지인 위례성 즉 한성을 버리고, 큰 평야지대인 부여로 천도한 것이 멸망의 근본원인이 되는 것이라고고 있던 남방의 도민 사이에는 살마족과 대마도족의 상호불화 때문에 6~7년 내에 왜침이 있으리라는 풍문이 나돌아 피난심리가 고조되고 있었는데, 더욱이 1811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전라도 연해민들에게까지 영향이 파급되어 도호공존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었다. 다산은 당시 남해연안의 강진에 유배 중이었던 까닭에 이 같은 남방주민의 동요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었고, 그러한 위기의식에서「민보의」를 저술하게 된 것임을 그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민보의」에 나타난 다산의 대일관은 비록 일본 전체를 경계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또 일본 막부 지도층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단계에까지 나간 것은 아니지만 앞서「일본론」에서 보였던 낙관론이 후퇴하고 위기론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큰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의 말기 저술로 보이는『일본고(日本考)』와『비어고(備禦考)』에서의 대일관은 일본의 전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단계로 나갔음을 보여 준다. 4권의『일본고』는 중국의 역대사서와『문헌통고』, 그리고 모원의의『무비지』및 우리나라의『삼국사기』?『고려사』?『여지승람』등에 기록된 일본 관계 자료를 집성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국방자료총서의 성격을 띠고 편찬된 것이 5권의『비어고』인데, 이 책의 제 1권은 임진왜란 관계자료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비어고』의 제 4권에서는 대마도에 관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바, 대마도가 본래 우리 땅으로서 언어와 의복이 우리와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비어고』는 미완성으로 끝날 만큼 다산의 말년의 국방의식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던가를 말해 준다.지금까지 살펴 온 다산의 대일관을 요약한다면, 말년에 이를수록 일본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면서 동시게 일본의 침략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적어도 종전에 일본을 문화적으로 야만시하고 왜란에 대한 적개심만 충만하던 고식적인 대일관에서 벗어나서 일본문물의 발전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대응태세를 모색한 것은 보다 현실적인 대일관의 정립이라고 할 것재평가하고, 지역중심으로 굳어진 화이관을 문화중심의 화이관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가 높은 곳은 어디라도 중국이라고 보는 다산의 중국관은「송한교리사연서」에도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방위상으로 본다면 자기가 서 있는 곳은 어디든지 중(中)이 되는 것으로 중국이 마치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중국이란 지역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문화수준에 따라 부단히 변동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대외관은 현실적으로 본다면, 청의 중원지배를 인정하고 청과의 우호관계를 정당화하는 태도로 이해된다. 이미「기예론」에서 보았듯이 그가 이해하는 청은 문물이 융성하여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로 비쳐지고 있다. 과거의 이적이 지금은 동아시아 세계의 주역으로 등장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다산의 대외관은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의 협력관계를 모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5. 다산의 역사인식다산의 역사인식을 살펴보면 첫째, 역사의 동인과 관련하여 정약용은 28세 때의「지리책」단계에서는 역사에서의 지리적 요인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요인을 보다 중시하는 전통적인 유가의 견해에 머물렀다. 그러나 1799~1800년 무렵(38~39세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기예론」에서는 시대가 내려갈수록 기술은 진보하며 이것은 민중의 힘이 발전하는 어쩔 수 없는 형세라고 하였다. 1800년 무렵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백제론」에서는 지리적 요인을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으로 보았으나 이와 같은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고구려론」에서는 주변의 상황이라는 도전에 대한 인간의 주체적 응전을 아울러 중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지리적 요인의 강조와 주체적 응전의 인정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주체적 응전 자체가 지리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기예론」에서 민중의 힘을 기술발전의 요인으로 보면서도 민중의 노력에 의한 기술발전을 필연적인 형세로 파악한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둘째, 사관과 관련있다.
    인문/어학| 2007.10.20| 9페이지| 1,000원| 조회(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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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이나교와 상키야 철학
    ★ 자이나교의 개요자나교라고도 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교의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주창한다. 즉 생명(jiva)과 비생명(ajiva)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생명은 다시 공(空:운동의 원리)·비공(非空:정지의 원리)·물질재료·허공·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자이나교의 인식론지식의 이론이 관계되는 한, 자이나교는 외부적인 대상들의 인식에 의한 모든 지식은 우선 첫째로, 불확정적이고, 단정적이지 않은 불교의 견해에 공헌한 것은 아니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자이나교와 불교의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인식이 색깔이나 형태들과 같은 그들의 다양한 특성들과 일치하는 외부적인 대상들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비갸나바바딘 불교(유식불교)에서처럼 대상들은 지식의 형태들일 뿐만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무지는 장막처럼 자아를 가리고 있고, 이 장막은 확고한 인식에 의해서 제거되어 진다. 자이나교에서는 불교와는 반대로 불확실한(니르비칼파) 단계의 인식을 부정하고 확실한(스바비칼파) 인식의 단계에 이른다. 반면에 불교는 불확실한 감각의 물질들의 표상이 구성된 첫번째 단계는 인식의 단지 유용한 부분이고, 확실한 단계는 진실로 표상하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상, 기억 등과 같은 정신적 범주들의 적용의 결과라고 간주한다. 자이나교에서는 불교의 실재가 원인이 되는 능률에 있다는 견해를 부정하는데, 그 견해란 다시 말하면, 그 대상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할 때만 그 대상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가공의 뱀이 두려움등과 같은 결과를 일으키는 것처럼, 환영의 뱀이 실제적인 것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이유로 이러한 접근을 거부한다. 사실 결과의 산출이라는 것은 불교에서처럼, 유일한 존재의 정의이다. 각각의 결과의 단위는 어떠한 다른 단위와 다르지만, 결과의 다른 단위들의 연속은 각각의 순간의 새로운 실체들의 연속을 나타내고, 그것이 모든 사물들이 일시적인 이유가 된다. 자이나교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이러한 견해를 논박한다. : 우리는 단지 사물의 존재가 대응하는 경험에 의해 나타내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생산된 결과의 각각의 단위가 각각의 시간의 새로운 지점에 동일하지 않고,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이 순간적이라는 불교의 견해는 거짓된 것이고, 왜냐하면 경험이 모든 대상의 매 순간에 변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 장식품에 있어서 금이 귀걸이나 팔찌 같은 것으로 변하는 것이 형성되지만, 영원한 것으로 남게 되는 것으로 발견되어 진다. 그러한 경험에 맞서서 모든 사물이 매순간 소멸하고 새로운 것들이 연속된 순간에 다시 생산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이 근거없는 분석이 불교를 미 발견적 허무주의에 이르게 하는 호기심 많은 arthakriy?k?ritva 원리를 낳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에 의하여 간다면, 우리는 자아나 외계를 부정할 수 없다. 경험을 통한 인식의 발생은 어떠한 사물들의 병치에 대응 되어질 수 있다. 마하야나(대승불교)의 두 학파들, 즉 순야바다(공론학파)와 비갸나바다(유식학파)를 제외하고는 불교는 현실주의의 감각에서 시작하여 석녀의 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만큼이나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경험적인 세계를 간주하는 절대적인 이상주의에 이른다. 그 철학사의 과정에 있어서 자이나교는 또한 몇몇 이상주의적인 경향들을 발전시켰으나, 자이나교의 논점의 실제적인 본성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자이나교는 그들이 감각기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론학파나 유식학파에 반대한다. 의존적인 기원을 가진 불교의 이론은 그 자신의 개별적인 방법에 있어서 생멸하는 일련의 속성들을 품고 있으나, 그것은 이러한 속성의 근원들의 형태에 있어서의 어떠한 원자적 형태로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인식 가능한 세상위에 미묘한 요소들의 완전히 구별되는 두 가지 유형의 불확정적인 수를 위치시키는데, 그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적인 것이다. 거대한 세상은 그것에 따라서 미묘한 물질적 요소들의 단지 결과(카랴), 혹은 변경(파리마나)이다.일반적으로 인식의 문제들 중에서, 자이나교는 인식의 자신 현현의 특성적 논점에 관한 유식학파에 속하는 불교와 일치 하지만, 반면에 유식학파는 인식과 별개인 대상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의 특수한 한 부분은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자이나교는 외부 대상들을 인정하고, 인식을 발생된 현상으로 간주한다고 주장한다. 유용한 인식과 유용한 인식의 도구를 의미하는 인식방법의 문제가 관련되는 한, 불교 논리학자들은 자의식이나 자기 현현의 사상을 도입한 것인데, 그것은 시다세나와 사만타바드라와 같은 초기 자이나 논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인식의 한 부분의 유용성과 무용성이 내재하거나 외부적인가 하는 문제에 관련해서, 샨타라크쉬타에 의해서 지지되는 것처럼 불교의 견해는 인식의 한 부분의 유용성과 무용성은 어떠한 한 경우에 있어서는 내재적일 수 있다고 하고,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외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복된 지식(아뱌사-다샤)의 경우에 있어서는 첫번째 지식(아나뱌사-다샤)에 있어서 인식의 한 부분의 무용성만의 유용성은 외부적인 것으로 간주 되어져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이 내부적인 것으로 간주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위치는 또한 샨타라크쉬테에 의해 제시된 불교의 경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식방법의 결과들의 본성에 관해서는, 불교전통은 두가지 견해들을 주장한다. : (1) 그것은 대상의 인식에 존재하는 것이며, (2) 그것은 자기의식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전통에 따르면, 프라마나의 곧장의 결과는 무지를 제거하는 것이지만, 떨어진 결과는 대상을 받아 들이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는 기억(스므리티)을 인식의 도구로 간주하고 그것을 비인식적인 지식의 아래에 분류하지만 불교는 이 사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을 불교 원자론에 관한 간단한 언급으로서 마무리 하는데, 불교원자론의 개념은 자이나교의 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자론의 이론은 불교의 사르바스티바다 학파(설일체유부 학파)에서만 찾을 수 있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원자들은 영원하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은데, 그 이유는 불교는 교리적으로 볼 때 모든 것들을 무상한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불교에 따르면 원자들은 에너지의 촛점에 비교될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만을 가질 수 있다. 네가지 요소들의 원자들과 또한 그들의 분자들은 오감과 관련되어 진다. 네 요소들은 구별되는 속성들과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地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단함과 유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水는 습기와 점착력을 가지고 있고, 火의 경우에는 열과 익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空의 경우에 있어서는 움직임과 확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원자들은 네 요소들 중 적어도 하나의 원자를 포함하는 분자들을 구성하고, 두드러지게 그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에 따라서 그것들의 특성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들은 니야야·바이셰시카에 더 밀접한 자이나의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자이나교의 존재론자이나에서는 존재를 정의하기를, `존재하는 것(astik ya, 실재)을 고유의 본질로 하는 실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일면적인 특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는 항상 3가지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3가지 특성이란 바로 실체(dravya)·성질(gu a)·양상(pary ya)이다. 또한 실체(dravya)는 속성, 본질로써 변화하지 않는 불가변적인 성질(quna)과 양태로서 가변적인 양상(paryaya)을 소유한 존재로 정의된다. 물을 예로 들면 물은 변하지 않는 습(濕)한 성질이 있지만 얼음, 물, 수증기라는 다른 양태가 있다. 또한 불은 섭씨 700도의 불, 빨간 불, 파란 불 등 많은 양태가 있지만 뜨거운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인간에 있어서 양태는 다양하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은 독립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고, 건물은 시멘트, 설계가, 노동자들의 원인에 의해 결과로써 존재하고 산에 있는 나무는 씨앗과 그 이전의 나무에 의존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의 실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기 위해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의 요소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변화하지만 영원한 영혼과 비영혼이라는 실재를 내포하고 있는 존재는 모두 실체(dravya)로 간주한다. 그들은 힌두의 브라흐만이나 아트만처럼 `불변의 고정된 실체` 또는 `초월적인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영원히 존속하는 실체`를 존재 개념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이나 철학에서 인정하는 실체는 결코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성질과 양상을 버팀목으로 구유(具有)하고 있는 구체적인 존재이다. 즉 실체는 성질과 양상에 의지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의 특성을 이루고 있는 성질과 양상은 결코 실체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 각각을 고립적 특성으로 하는 존재는 그 무엇도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존재는 그 3특성을 모두 본질로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체의 것에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를 주장하는 불교와는 무척 다른 관점에 서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7.10.20| 4페이지| 1,0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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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 원자론과 삶의 형식
    1. 논리적 원자론더 이상 단순한 명제(命題)로 분해할 수 없는 가장 간단한 형식의 명제가 있으며, 이러한 명제는 그 체계에 관한 한 논리적 기초가 되어야 하고, 그 밖의 여러 명제는 그것들의 복합 및 일반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이론.원자명제(原子命題)라고도 한다. 이것은 B.A.W.러셀의 철학적 입장으로서 1918년 초에 행한 ‘논리적 원자론의 철학’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나타난다. 그 서문에서 러셀은 이 철학의 중요한 점들은 그의 제자이면서 친구인 L.비트겐슈타인에게서 배웠다고 밝혔다. 논리적 원자론은 이 세계에 관한 하나의 이상적 언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언어가 이상적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 세계와 동형구조(同型構造: isomorphism)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리하여 세계와 동형구조인 언어를 일단 완성하기만 하면 이 언어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떠한 명제도 이 세계에 관해서 참이 된다. 그리하여 이 언어를 들여다보아서 이 세계의 실상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두 체계들 간의 동형구조성은 한 체계의 참은 다른 체계의 참을, 또한 한 체계의 거짓은 다른 체계의 거짓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상언어의 구성은 러셀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상언어에 있어 출발점은 세계란 원자적 사실들로써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자적 사실이란 단순적 개별자가 단순한 성질에 대하여 단순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발생한다. 에디슨이나 은진미륵은 개별자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성질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논리적 복합체이다. 이들은 더 단순한 것으로 분할될 수 있다.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것을 단순하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예를 들 수는 없다. 예는 이름을 통하여 주어지는 데 반하여 이름을 줄 수 있다면 벌써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적 개별자는 ‘이것’이라는 이름으로만 지칭될 수 있다. 그리고 단순적 성질도 ‘빨강’처럼 복합적이 아닌 성질이다. 그리하여 양자가 단순하게 연결되면 '이것은 빨갛다'라는 원자적 사실이 얻어진다. 여기 부분으로는 2개의 명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빨갛다’라는 긍정적 원자명제(肯定的原子命題)와 ‘이것은 빨갛지 않다’라는 부정명제(否定命題)이다. 그래서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참 명제와 거짓 명제가 대응하게 된다. 그러나 러셀은 스스로 이 이론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모든’이라는 단어나 ‘믿는다’와 같은 표현에 대한 원자론적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원자’나 ‘단순’이라는 개념을 물리적으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러셀의 기여는 그러한 제약들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연적(外延的) 논리학을 이 세계에 대한 언어로 구상해 봄으로써 후대의 이 방향으로의 문호를 여는 데 있었다고 생각된다.2. 삶의 형식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는 삶의 형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언어는 그것이 쓰여 지고 있는 사회의 삶의 형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언어는 구체적인 사회적 행위로서 단순히 세계를 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세계 속에서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언어는 인간적,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어질 수 없다.1)정의와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비트겐슈타인의 다음 언급을 고려해 보자.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일 수 있으려면, 정의(Definition)의 일치뿐 아니라,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agreement in judgement)가 요구된다." 가령 '붉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그 말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며, 그 정의가 일치해야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 '붉다'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 단어로서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정의의 일치가 요구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의의 일치뿐 아니라 그 말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도 일치가 요구된다고 비트겐슈타인은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명현 교수는 '붉다'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의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없다. 혹은 우리는 고통이나 슬픔에 대한 단어로써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는 단어적용방식의 일치, 궁극적으로는 어떤 것에 반응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의 일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판단의 일치가 있어야만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탐구』,242에서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언어 사용자들간의 정의와 판단의 일치가 요구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다시, 언어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인간들 사이의 일치가 요구되며, 그 일치는 바로 삶의 형식에 있어서의 일치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정의와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와 삶의 형식에 있어서의 일치를 같은 것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즉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동일한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또 이 언어로서 의사소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의와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가 요구됨으로 삶의 형식에 일치를 한다면 정의와 판단에 있어서도 일치한다. 말하자면 정의와 판단에 일치한다는 것은 언어사용방식에 일치한다는 것이고, 언어사용방식에 일치한다는 것은 동일한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2) 삶의 형식의 두 가지 국면위에서 논자는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삶의 형식이 언어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살펴보았다. 삶의 형식에 대한 해석들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행해져 왔다. 언어사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가 있어야 함을 보였다. 그리고 정의와 판단에 있어서 일치한다는 것은 동일한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였다. 즉 인간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인간들 사이에 삶의 형식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형식은 인간의 원초적인 특성, 즉 생물학적 공통특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인간의 판단양식이나 반응양식을 말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하나의 생물학적 종에 속하므로 동일한 생물학적 운 행위들이다. 이러한 행위들을 우리는 본능에 의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학습을 통해서 배운 행위들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사(natural history)"에 속하는 행위들이다. 개체 보존과 종족보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행위들, 먹고 마시고, 걷고 자고, 사랑하고 그리고 웃고 울며, 희망하는 일들이 그런 것들이다. 언어는 이런 행위 위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형식 속에는 인간의 자연사에 속하는 원시적 행위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삶의 형식은 판단양식이나 반응양식, 그리고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시적인 행동양식 등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의 양식과 반응의 양식은 사람들의 삶의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서 드러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제까지의 대부분의 비트겐슈타인의 연구가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식은 그런 문화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문화공동체에 따라 특수적이고 상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서 이명현 교수는 삶의 형식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입장 앞에 서 있음을 발견하고서 두 가지의 다른 입장을 원초적 삶의 형식(primor- dial form of life)과 문화적 삶의 형식(cultural form of life)이라고 명명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식을 전적으로 문화적인 것으로만 해석한 종래의 해석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삶의 형식은 인간의 원시적인 행동양식과 같은 자연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자연사에 속하는 행동은 문화적 소산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종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 따라서 문화의 차이에 무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형식의 문화적인 국면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의 형상에 관한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형상을 하나의 형태 교체(ge 머리로도 보인다. 토끼-오리형상을 보는 것은 그 형상이 망막에 나타난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다. 즉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사람이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은 조직화를 포함한다. 그것은 시야에 놓인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시야에 놓여 있는 사물들이 보여 지는 방식이다. 실제가 어떤 것인가는 보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삶의 문화적 형식은 일정한 문화적 틀 안에서 창안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런 삶의 문화적 형식은 여러 가지 사회적 훈련에 의해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달리 형성될 수 있다. 오리-토끼의 형상을 보는 방식의 변화가능성을 시사해주기 때문에 그것은 삶의 형식의 문화적인 국면을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삶의 형식의 개념이 문화적인 국면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원초적인 국면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면 이 두 국면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앞에서 논자는 삶의 형식의 일치가 의사전달 수단으로서 언어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삶의 형식, 즉 삶의 문화적 형식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삶의 형식의 일치가 언어사용 가능성의 전제조건이다'라고 했을 때의 '삶의 형식'이라는 것은, 1차적으로 원초적 삶의 형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삶의 형식의 일치'라는 말을 '동일한 삶의 형식을 가지고 있음'으로 번역하여, 이것을 삶의 원초적 형식에 적용하면, 이런 경우가 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동일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사물을 보고 판단하며, 사태에 반응하는 장치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고 판단하며, 사태에 반응하는 동일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이 인간들 사이의 의사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작동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서 논의를 더 전개해 보면, '언어가 작동할 수 있는'이라는 말은 언
    인문/어학| 2007.10.20| 5페이지| 1,000원| 조회(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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